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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7 02:30

루에르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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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
이미 이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루에르

- 고동치는 보물 - 

8



  한달이란 시간은 길고도, 나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상의 나날이였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기억을 가슴에 안고 지내기는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고 싶지만, 뻗을 상대는 이미 이곳에 존재하지않는다. 이곳에 남아있는건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 뿐. 심지어, 로빈 역시 내 곁에 머물지 않았다.

  「 쾅 - !」

  미쳐버리겠다. 머릿 속이 복잡해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잊고 싶다. 잊을 수만 있으면 금방이라도 그 사실을 잊을 수만 있다면, 내가 이토록 밤잠을 설쳐가며 악몽에 시달릴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머리가 나쁘다면, 그 기억 또한 잊혀지고 또 다시 평소와 같은 날로 돌아갈 수 있는걸까? 모르겠다. 심지어, 이 세상으로 돌아온 나는 그럴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잊으려해도 다시 내 기억 속으로 찾아와, 나에게 죄책감을 물려주고 가는 그의 뒷모습을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 부디,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 ”

  젠장 … 젠장, 젠장, 젠장 ― !! 왜, 나는 그 시간에 올 수 밖에 없었는가. 아직, 내가 해야할 일이 남아있음에도 왜 내 생각은 물어보지도않고 마음대로 이곳으로 데려놓느냔 말이다. 마음대로 나를 그곳에 보냈으면, 갈때라도 내 의사를 물어보지. 왜, 왜, 그런 시간 때에 나에게 이런 비참한 기억을 안게 하냔 말이야 …. 

  ' …. '

  후회해도 소용 없다. 그걸 잘 아는데도 그리 쉽게 포기가 되지 않는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음에 나는 지금도 절망에 빠져있다. 나 자신을 원망해도 소용 없는 그 날의 기억은 영원히 내 곁에 머물고, 또한 나 역시 하루가 다르게 초췌해져가겠지 ….

  ' . '

  내가 죽기 전까지는 ….


  
  " 늦은 시간에 이곳에 오다니,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건가? 루에르. "

  잿빛산 정상에서 멍하니 달을 바라보는 내 뒤로 사로이가 다가오며 말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멀뚱히 하늘을 바라보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사로이는 묵묵히 내 옆으로 걸어오며 말한다.

  " 이곳에서 보는 달빛은 아름답다. 태양보다 빛나고, 태양보다 많은 기쁨을 주지. 이 또한, 이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경이다. 어때, 볼만한가? "

  내심 미소를 짓는 듯하면서도, 조금은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그의 말에도 나는 아무 말 없이 긴 한숨을 끄집어내며 자리를 피했다.

  " 만약,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를 보여줄 수 있겠나? "

  ' ! '

  " 만약, 너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

  " 그. 그게 대체 무슨 …. "

  발걸음을 멈추고 황급히 뒤를 돌아보며 사로이를 쳐다보자, 사로이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조용히 달빛의 몸을 담근다. 밤 하늘에 무수히 담긴 별들이 달빛에 가려져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그 자리에 있 듯이. 사로이 또한 그들의 모습을 띄며 내 앞에 있다. 그의 얼굴에는 수많은 갈등과 오해 담겨있는 미소를 지으며 슬쩍 내 쪽을 돌아본다.

  " 나는 너에게만은 그런 슬픔을 주고 싶지 않군. 내가 느꼈던 그때의 업적을, 너 또한 느끼는걸 원치않아. 분명, 우리들은 아무런 관계도 상관은 없다. 그러나, 그 표정만은, 그 표정만은 너한테서 보고싶진 않다. "

  이해 못할 말을 하며 사로이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고, 그가 사라진 벼랑 끝에 다가선 나는 가슴에서 타오르는 연기를 뱉으며 하늘을 바라보던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움직이며 서서히 그곳을 벗어났다.

  

  아련 마을로 향하던 우리들은 늦은 밤을 지세기위해 가까운 풀숲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깊은 밤일수록 쌀쌀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모닥불마저 꺼지는 날씨는 꽤나 우리들을 성가시게한다. 추위에 약한 로빈의 떨림이 나한테까지 느껴지니, 나는 조용히 로빈을 꼬옥 안아주며 모진 바람을 피하기에 급했다. 빼곡히 자리 잡은 나무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인정머리 없는 바람들은 나무 속을 비집고 들어와 우리를 헤치며 사라졌고, 그럴 수록 커지는 피로가 조금씩 나의 눈꺼풀을 감기게 한다. 이 날씨에 그대로 잠들면, 다음에 일어날땐 이 세상이 아닐텐데, 그 점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건 어찌해야할까 ….

  " 루. 루에르 씨 …. "

  부들 부들 떨며 내 품에 안겨있던 로빈이 떨리는 손으로 무언가를 건네주며 슬그머니 내 품에서 나온다. 이 추위에 어디론가 가려는 모양인 듯, 그녀는 바닥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런 로빈을 바라보던 나는 어딜 가려는 생각이냐며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그녀의 표정이 보였다.

  " … 로빈. "

  후우, 내 기분만을 생각하여 로빈의 마음도 심란하게 만들고 말았군. 이제는 하지 말아야지 했었음에도 계속 반복되는 이 패턴에 인해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져만 가는 세상에 비례한 듯, 나의 마음의 무게조차 그녀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미안하다 사과를 해도, 그것은 내 마음 속의 사과일 뿐, 그녀를 대면할 때에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소리 없는 죄책감에 빠질 뿐이다. 이제는 이러지 말아야지 해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나 또한 하루가 달리 지쳐만 간다. 로빈은 자리에서 멈춰섰다. 홧김에 일어난건지, 아님 나의 모습은 맨정신으로 볼 수는 없었는지, 그녀의 다리를 부들 부들 떨리고 있었다. 나는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차갑고도 떨리는 손을 차마 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로빈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녀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녀를 꼬옥 안았다. 

  " … 이제 다신, 후회 따위 하지않아 …. 이미, 내겐 지나간 기억일 뿐이니까 …. "

  깨어진 달빛 속, 불어닥치는 바람과 함께 나의 몸 또한 휘날린다. 펄럭이는 머리카락 뒤로 보이는 수 많은 잡념의 생각들이 모래알처럼 부스러지며 저멀리 사라진다. 잊으려곤 했다. 그러나 잊을 순 없었다. 그 날의 기억은 평생토록 내게 짐을 짊어지게 할테니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다시 한번 그곳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으니까. 지금 내가 해야할 일도 바쁜 이 시기에 나는 또 다른 누군가의 부탁을 받으며 하루하루 고달프게 지난다. 펑펑 울어서 그 일들을 모조리 다 재끼고 싶어도, 나의 마음은 그러한걸 원치않는 듯, 파고드는 가시처럼 따끔거리는 나의 심장이 하루가 달리 두근거릴 뿐이다. 로빈의 목소리도, 그의 한이 담긴 외침에도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는 내 자신이 미워지며, 원망스럽게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뭔가가 나아질 리는 없다. 이미. 그 일들은 되돌릴 수 없는 기억이며, 영원히 기억될 그 날의 참혹한 현실이니까. 더 이상, 내 자신이 증오를 일삼아봤자, 전혀 나아질 일은 없다.

  “ 부디,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 ”

  … 전혀, 개운치가않아 ….



  “ 이 세계에는 여러 종류의 전사들의 영혼이 존재한다. 더군다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들을 각기 다른 성질 뿐이라, 그들이 어떤 특정한 장소에 하나되어 모이면, 이 세상이 뒤틀리고, 이내 세상을 파멸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마, 1년 전에 있었던 그것들도 아마, 그들이 하나로 모였기에 일어난 일이겠지. 하지만, 내가 정상에 올라가 전사들의 영혼을 확인했을 때는, 이미 그곳엔 전사들의 영혼이 놓여져있었지만. 그러나, 전사들의 영혼은 온전한 모습이 아니였지 …. 지금에 반쪽으로 갈라진 조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을 뿐. 우리들은 결국, 전사들의 영혼에 나머지 부분을 찾지 못했다. “

  현실로 돌아온 쿠피디타스의 모습은 내가 과거로 떠나기 이전의 모습 그대로 잿빛산 정상에 고이 놓여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의 흐름이 바뀐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사로이가 조각을 들던 순간부터였을거다. 그때부터 나와 로빈은 허겁지겁 잿빛산을 내려와 루에르 마을로 향했고, 그곳에서 메달의 나머지 조각을 발견했지. 그런데 그게 현실이 아닌 가상에 일이였다니 …. 너무나도 생생해서 그런 생각은 한번도 못했는데, 이미 우리들은 메달에게서 농락을 당하고 있던건가.

  “ 반이 잘려나갔다해도 그 본질을 달라지지않지. 네가 알다시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사들의 영혼의 능력은 ' 시간이동 ' 이다. 뭐, 도시인들에겐 ' 타임머신 ' 식으로 이해하면 좋겠지. 네가 알고 싶던 과거보다 그 이전의 과거로 떨어진건 아마도 반쪽으로 나눠진 메달의 불균형으로 인해 오작동을 일으켜 그러한 일이 벌어진 것 같다. 하지만, 그 덕분에 더 좋은 사실들을 얻게 되었지만. ”

  “ 그렇다는건, 메달의 나머지 조각을 찾아 하나로 만들면, 시간조각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

  “ 그렇다. 시간조각은 물론이며, 네가 알고 싶어한 진실들을 모조리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렇기위해서는 나머지 부분을 찾아야하지만 말이다. 지금껏 우리 마키 족이 발견하지 못한 나머지 조각의 행방을 알 수 있나? ”

  사로이가 슬쩍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그는 내가 쿠피디타스의 나머지 조각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을거라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고, 나는 그런 사로이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 물론, 알 수 있다. 메달의 나머지 부분은 그곳에 있을테지. 만약, 내가 그것을 가져온다면, 나를 다시 과거로 보내줄 수 있어? ”

  “ 그렇다. ”

  “ 마키 족이란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 ”

  “ 맹세한다. 네가 나에게 그 조각을 갖다준다면, 나는 너를 도와줄 것이며. 하물며, 너에게 도움을 줄 것을 약속한다. 이거면, 되겠지? ”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P.s : 소설이 무겁다보니, 묘사와 서술이 너무 힘드네요. 원래는 상큼발랄 컨셉으로 가야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을텐데. 계속 이렇게 우울하게 간다면, 루에르 연재가 조금은 힘겨울지도? 소재 고갈은 오랜 옛날에 사라졌긴해도. 이렇게가면 제 기량의 6~70%도 보여주지 못한건데, 조금은 아쉽네요. 다음편부터는 조금 소설의 분위기를 띄워서 묘사와 서술을 풍부하게 만들고 찾아뵙겠습니다.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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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탓하지마라.

시간을 흘려보낸건 나 자신이다.

시간은 주어진게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연히 나라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그 시간의 흐름에 어떻게 따라가느냐의 내가 증명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증명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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