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이미 이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루에르- 영원의 신념 -1 - 2
이곳에 온지도 사흘이란 시간이 흘렀다.
「 끼이익 」
모든게 낯설었다. 내가 기억 했던 세상과는 정반대의 세상. 모든 것이 뒤바뀌어 있었다.
집 밖으로 나서자 낯 익은 얼굴의 한 노인이 시뿌연 입김을 내뱉으며 집 주위를 서성거렸다. 그의 발 밑에는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지게들이 바닥에 살포시 놓여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온 몸의 소름이 돋았는지, 부들 부들 떨고 있던 어르신이 흘깃 내 쪽을 바라본다. 문 앞에서 머뭇거리던 나를 발견한 어르신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묻는다.
" 벌써 일어난건가? 아직 아침 해가 밝으려면 2~3시간은 걸릴텐데. "
" 잠이 안 와서 일찍 나와봤습니다. "
" 그런가? 하긴 그 나이 때는 피가 들끓는 시기니까. "
" 오늘 할 일은 뭐죠? "
" 오늘은 별거 없어, 그냥 간단히 산에 올라서 장작 몇개만 주워 오면 되니까. 어제처럼 그렇게 빡세진 않을걸세. "
" 다른 분들은 …. "
" 자칸과 라칸은 집에서 뭔가 챙겨 올게 있다고 조금 늦는다고 했고, 바론은 잠시 촌장 님이 불러서 촌장댁에 갔어. "
" 촌장 … 님이요? "
" 바론 빼고는 10분 후면 모두 올테니까, 우리 먼저 산에 오르자고. "
어르신은 바닥에 놓여진 지게를 어깨에 메고는 자리를 뜬다. 나는 어르신이 들고 온 지게 중 하나를 등에 짊어지고는 그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사흘동안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은 정말 바람 같은 일들의 연속이였다.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음에도 주체하지 못하고 흘러가는 시간 앞에 나는 자연스레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쿠피디타스를 봉인하던 그때, 내 앞엔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 여긴 …. "
간지러운 산들바람이 나의 목을 간질이며 나의 의식을 깨웠다. 주변은 온통 푸른 빛을 띈 수풀들과, 어두어지려는지 시뻘건 하늘에선 광채나는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수그러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직감했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은 내가 알던 그 세계가 아니라는 것. 방금 전까지 두 발로 디디고 있던 땅과는 다른 세계의 땅이라는 걸, 나도 모르게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산 아래로 보이는 낯 익은 풍경의 마을과, 그 뒤로 보이는 가슴을 조여오는 통증을 불어 일으키는 한 건물도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고, 나는 다시 한번 시간과 공간을 초월 했다는 것에 대한 눈물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산 아래로 천천히 마을 쪽을 향해 걸어갔다.
전에 왔던 마을과는 사뭇 다른 냄새와 분위기가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라셀이 말했던 것처럼 이곳은 내가 전에 왔던 곳이 아닌, 그 이전에 있던 마을이였다는 생각이 자츰 내 머릿 속을 훑고 지나갔다. 아쉽게도 내가 원하는 세상, 즉 그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니였지만, 내가 그토록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한가지.
“ 부디,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 ”
내 가슴 속에 맺혀 있는 붉은 악몽을 깨트리기 위해서다. 언제까지나 이런 한을 품고 세상을 헤쳐 나갈 순 없다. 과거의 속박에 계속해서 묶여 있다면 난 역시 파멸에 치닫고 말테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끈질기고 무거운 짐을 벗어나야 한다. 그게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이며, 다른 이들의 내게 부탁했던 임무다.
마을 안엔 사람들의 냄새로 가득했다. 내가 그 전에 방문 했던 마을과는 전혀 상반되는 마을이 나는 조금은 놀랍기도 했다. 파멸과 불운의 연속이였던 세상 속에 겨우 건전했던 마을 역시도 사람들의 추악한 모습과 사람들의 알 수 없는 눈물로 인해 고약한 악취를 풍겼지만, 이곳은 달랐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한치의 슬픔도 서려 있지 않는 듯 싶었다. 그들의 입가엔 반짝이는 보석이 달린 듯, 눈부시는 그들의 모습을 나는 똑바로 바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제일 먼저 촌장댁으로 향했다. 마을 구조는 약간씩은 달랐으나, 그 이전의 마을과 현재의 마을의 모습은 거의 바뀐게 없는 듯 싶었다. 그 말은 즉, 이곳에 있는 촌장은 옛 선조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는 뜻이 되겠지. 그렇다는건 이곳 촌장이 틀림없이 그 사람 밖에 없다는 생각에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촌장댁을 향하는 도중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얼굴에도 슬픔은 보이지 않았다.
“ 마키 족인가 뭔가하는 부족과는 자매결연을 맺은 사이네. ”
그때 어르신이 내게 말했던 것과 거의 일치했다. 그렇다는건 정말로 옛날엔 마키 족과 이곳 사람들은 서로 상부상조를 하며 부족과 마을의 발전을 위해 서로 힘을 썼다는 결론이 난다. 그렇기 때문에 둘 중 한 곳이라도 균형이 무너지면 서로에게 불똥이 튀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로 하루 하루를 버텨나가는거겠지. 그렇지 않다면 이 마을 그 누구도 나를 견제하지 않는건 말이 되지 않으니까.
분주히 움직이는 듯 싶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활기 찬 모습에 나도 모르게 정신을 놓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금 발걸음을 옮겨 촌장댁으로 향했다.
촌장댁을 향하는 길은 전과는 달리 꽤나 고급스럽게 바뀐 듯 싶었다. 울퉁불퉁했던 길과는 달리, 노인분들도 쉽게 걸어갈 수 있도록 개선을 해 나간 모습이 두 눈에 딱 들어온 정도로 변해 있었다. 전에 란이 이 마을을 위해 해왔던 것처럼, 그의 자손 역시 그의 뒤를 따라 마을을 위해 몸을 바치고 있다는건가 …,
「 툭 」
주변을 둘러보며 걷던 도중, 맞은 편에서 불안한 발걸음으로 걸어오던 누군가와 부딪쳤다. 무언가를 한아름 들고 있었는지,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분홍색 비단 옷을 입은 한 여자가 무릎을 굽히고 서둘러 바닥에 떨어진 것을 줍는다. 그 모습에 잠시 멍청히 서 있던 나는 황급히 허리를 숙여 떨어진 물건들을 주웠다.
"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한 눈을 팔았네요. "
미안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거리며 사과하는 나를 보며 그녀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 아니에요. 제가 너무 욕심을 부려서 들고 왔더니 … 죄송합니다. "
그녀는 되려 내게 사과하며 미안함을 표했다.
" 그럼. "
그녀는 다시 한번 내게 고개짓을 하며 서둘러 어디론가 달려갔고,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피식 웃으며 발길을 돌렸다. 황급히 어디론가 향하는 그녀에게 왠지 모르게 낯 익음을 느꼈다.
그녀가 미처 보지 못하고 남겨 놓은 사각형 물체를 집어 들은 나는 슬쩍 뒤를 돌아 봤다. 하지만 이미 멀리 가버린 듯,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꽤, 중요한 물건 같았는데. "
뭐, 나중에 만나면 다시 주기로 하고 일단은 촌장댁으로 가자.
늦춘 발걸음을 다시 움직여 서둘러 촌장댁으로 향했다. 곧 있으면 해가 완전히 잠기고 어두컴컴한 밤이 될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갈데도 없는 내가 어디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촌장댁에 가서 도움을 요하고자 했다. 물론 그들이 쉽게 내 요구를 들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내가 알던 란이 있던 마을이고, 이 마을의 촌장을 잇는 자가 그의 딸이라면 … 거의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초행길은 아니였지만 왠지 모르게 가는 방향이 조금은 뒤틀린 것처럼 쉽사리 촌장댁이 보이지 않는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미 오래 전에 촌장댁을 발견해야 했으나, 무슨 일인지 촌장댁의 모습은 커녕, 마을과도 동 떨어진 듯 불빛 한 점 없이 어두컴컴한 공간에 혼자 떨궈진 것처럼 주위는 아주 고요했다. 나무에 가려져 희마하게나마 달빛을 의존해 걷긴 했지만, 그 달빛으로 사람의 모습을 찾기엔 조금은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설령 촌장댁을 찾지 못했도 일단은 마을에 가까이 갔으면 했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나는 조금씩 마을과 멀어지는 듯 싶었다.
마을의 번창과 동시에 촌장댁으로 향하는 길의 보안이 더욱 더 철저해진걸까? 조금씩 몽롱해지는 기분과 함께 두 다리를 지탱하던 내 두 발이 조금씩 피로해지는 것을 느꼈다.
2~3초간 눈을 감고 걸으면 금방이라도 잠에 들 것 같은 기분에 애써 졸음을 내쫓기 위해 애꿎은 두 뺨을 쳐내며 간신히 인내심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마을을 찾기는 커녕,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잠에 들지 모른다. 그리고 다음날 눈을 뜨고 일어 났을 땐, 생전 처음 보는 곳에서 아침을 맞을지도 ….
「 털썩 」
더 이상 힘을 낼 수가 없었는지 다리에 힘이 빠져 제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가뜩이나 앞도 보이지 않아서 순전히 내 감으로 걷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되어서 더 걷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곳에 온 뒤부턴 아무 것도 먹지 않아서 배는 고플 때로 고팠기 때문에 안 그래도 모자란 힘을 더 못 쓴 것 같다. 이대로 모든걸 놓고 잠을 잔다해도, 다음날이 되면 또 다시 눈을 떠서 마을로 향하는 길을 헤맬게 분명하다. 잠깐의 숙면 때문에 피로는 어느 정도 날아갈진 몰라도 공복감은 감출 수 없을거다. 그렇게 되면 나는 기력을 잃고 어디에서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에서 벗어나야한다.
「 꼬르륵 」
물도 한 모금 못 마신 상황에서 배는 계속 꼬르륵거리며 밥을 달라 아우성을 친다. 마음 같아서는 주변에 나뭇잎 같은거라도 씹어 먹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렇게 했다간 애꿎은 공복감만이 더 커질 것만 같다. 나는 혹시나하는 마음에 두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둘러 봤지만, 역시나 아무 것도 없었다.
" . "
문득, 아까 전에 바닥에서 주웠던 물건이 떠오른 나는 황급히 주머니를 뒤졌다.
뭔가가 들어 있는지 흔들면 흔들 수록 뭔가가 있는 소리와 함께 내 식감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그냥 단순한 나무인지 알았는데 그 안에는 무언가가 가득 들어 있는지 감칠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편으론 먹을 수 있는거면 좋겠다시퍼 황급히 뚜껑을 열어 보았다.
" ! "
사각형 물건에 들어 있던건 다름 아닌 쌀이였다. 나는 그 안에 쌀이 있음을 알고는 주저 없이 쌀을 입 안으로 집어 넣었다.
와그작 와그작 소리를 내는 여느 쌀과는 달리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하며 자연스레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쌀에 또 한번 감동을 한 나는 이내 쌀이 든 물건을 그대로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아쉽게도 큰 포만감을 주진 못했지만 어느정도 기력 회복엔 도움을 준 것 같다. 나는 입가에 묻은 쌀까지 마저 씹어 넘기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서둘러 다시 배가 고파지기 전에 마을을 찾도록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공복감이 줄어 들고 약간의 포만감이 생기자 발걸음에도 힘이 들어 있는 듯 싶었다. 그리고 조금의 여유가 생겨서인지 아까 만났던 그녀와의 기억도 새삼 머릿 속에 들어왔다.
그때 그녀가 품 안에 소중히 들고 갔던게 모두 쌀이였다는 것에 조금은 의아스러운 점도 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신분이 좀 높은 것 같던데, 대체 그녀는 어디로 그 많은 쌀들을 가지고 갔던걸까? 단순히 쌀을 어디론가 옮기는거였다면 그렇게 따로 따로 담아가지 않아도 됬을텐데, 아니 그보다도 그 무거운 쌀을 여자 혼자서 운반하는 것도 의심스럽다. 만약 정말로 그 쌀들을 어디론가 운반하려는거였다면, 빠른 시간 내에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여자 혼자의 힘이 아닌, 건장한 남자 여럿이 동시에 운반하는게 더 빨랐을텐데.
" …. "
왜 그녀는 혼자서 그런 힘든 일을 자초했던걸까 …. 하필이면 그런 늦은 시간에 혼자서 말이야.
그녀에 대한 의문을 품기를 몇분. 조금씩 바닥나는 쌀의 효능에 나는 다시 지쳐가고 있었다. 조금 포만감을 지니고 있을 때 한 발이라도 더 먼저 마을을 찾아 간다는 마음가짐으로 걸었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계속해서 가던 길을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 더군다나 걸으면 걸을 수록 희미해지는 시야 앞에서 점점 내 의식도 흐려지는 듯 하다.
P.s : 브금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이상한걸 넣을 수도 없어서, 소설을 쓰면서 듣고 있던 브금을 올립니다. 아마도 제가 소설을 쓰는 중 대다수의 비중을 갖는 것이 아마도 브금인 듯 싶네요. 그날 들었던 브금에 따라 스토리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말이죠. 아무튼 즐감하세요.
P.s2 : 마지막 화 ' 영원의 신념' 은 1부, 2부로 나뉘어집니다.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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