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이미 이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루에르- 고동치는 보물 -40 ~ 53
" 이곳이, 사로이가 말한 그 마을이란 말인가. 꽤나 고요한게 사람은 한명도 살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 "" 그래도 이런 곳에 아직도 마을이 남아있다는건, 누군가 한명쯤은 이 마을에 살고 있을거라 생각되지않나요? "" 뭐, 그렇게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뭐, 그건 직접 확인해야 알 수 있겠지. 그럼, 가볼까? "로빈과 나는 인적이 드문 한 작은 마을에 들어섰다. 그 마을은 루에르 마을과는 달리 외관상도 그렇고 낡고 허름한 건물들이 즐비하고, 사람의 인기척 또한 느껴지지않는 그런 마을이였다. 눈에 보이는건 낡아빠진 건물 속 흐르는 작은 놋물, 놋물과 함께 우물로 흘러들어가는 그들의 썩은 물 또한 악취가 심하게 풍겼다. 사로이의 말대로라면 이 마을엔 또 하나의 비밀이 숨겨져있겠지. 나와 로빈은 그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뜬 눈으로 밤을 센지 어언 일주일이 넘은 것 같다. 머리는 부시시하고, 얼굴은 푸석 푸석한게 그닥 기분이 좋진 않다. 하지만, 그런 고생쯤이야, 내가 전에 느꼈던 느낌과는 정 다르지. 지금은 이렇게 마음 한켠이라도 편하겠지만, 그때의 나는 마음을 편히 쉴만큼의 여유를 못 느꼈으니까. 그러니, 조금은 지금 이 상황이 그나마 낫다는 정도? 하지만, 그때까지 이 평온함이 남아있었으면 좋겠군.' …. '그나저나, 아까부터 로빈이 말이 없는게 조금 이상하다. 평소 때 같았으면 이런 침묵은 찾아 볼 수 없을텐데. 오늘은 유난리 말 수가 적다. 무슨 이상한 낌새라도 느낀걸까, 아까부터 뭔가를 경계를 하는 눈치가 꽤나 신경 쓰인다." 로빈, 무슨 문제있어? 아까부터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던데. "" 에? 아. 아뇨, 문제라뇨. 그런거 없어요. "" 그런데 왜 그렇게 긴장을 하고 있는거야?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냥, 아까부터 기분이 이상해서 …. "기분이 이상하다는 말과 함께 로빈은 어색한 미소를 띄며 내 옆에 슬쩍 달라붙으며 걷는다. 역시나, 로빈의 행동은 전과는 달리 수상하다. 말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렸지만, 이런 행동을 보일 때마다 우리한텐 무슨 일이 일어났다. 그러니, 만약 내가 짐작했던대로라면 조만간 우리들 앞에 무언가가 닥치겠지. 그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로빈은 지금 무언가를 의식하고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낯선 곳에 엄마와 같이 와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않으면 마음이 놓이지않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나는 조금이나마 로빈이 평온함을 찾아주기위해 살짝 로빈의 어깨를 잡아주었다.한동안 마을을 거닐던 그때 어디선가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한 사당을 발견했다. 그 사당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않은 채, 수많은 시간을 견딘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듯, 꽤 많이 낡아 있었다. 그 전에도 나는 한번 이런 모양을 한 사당을 본 적이 있다. 아마, 본 적이 있었다면 과거의 루에르 마을에서였을테지만. 사당을 보자마자 아까부터 뭔가를 의식하던 로빈의 떨림이 증가했고, 나는 그런 로빈을 안심시키기위해 서둘러 사당 주위를 벗어났다. 역시, 로빈은 무언가가 자신을 덮칠거라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 말은 우리들이 이곳에 많이 머물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말이겠지. 마음 같아선 서둘러 이 마을을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찾지도 못했으며, 로빈의 말대로 이곳에 사람이 사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었기에. 단 1분이라도 이곳에 남아 그들의 지난 행적을 밟는게 내가 해야할 일이다.' …. '그렇다고는 해도, 로빈이 이런 상태에서 계속 이 마을에 머물면 무슨 문제라도 발견하겠지. 로빈이 다시 안정을 찾을 때까지는 이 마을은 당분간 출입을 금해야겠다. 나는 로빈을 데리고 서둘러 마을 밖으로 벗어났다. 그리고 그제서야 마을에서 나온 로빈은 안정을 차린 듯, 금세 새하얗던 얼굴이 붉게 물든다."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 그런 소리하지마. 우린 동료라고, 누구 한 사람이 아파서야 되겠어? 괜히 억지부리고 움직여봐야 상황만 악화될 뿐이야. 무슨 이윤지는 모르겠지만, 로빈은 저 마을에 들어가는걸 별로 원치 않는 것 같으니 일단은 돌아갈까? "로빈은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로빈과 함께 그곳을 빠져나왔다. 로빈도 내가 한 말의 의의를 알고 있는지 순순히 내 말에 응해주었다. 안타깝게도 마을에서 중요한 단서를 찾지는 못했지만, 그 단서는 나중에 찾아도 괜찮을거다. 다만, 그곳에 사람이 있다면 내 예상과는 빗나가겠지만." 그런데 로빈, 아까 전부터 물어보고 싶은게 있었는데 물어봐도 될까? 왜, 그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그렇게 뭔가에 쫓기는 듯이 벌벌 떨고 있던거야? 무슨 이상한 낌새라도 느낀거야? "" 그건 … 후,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왠지 모르게 저한테는 그런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 능력 … 이라고? "" 네, 저도 얼마 전에 안건데. 저는 특정한 장소에 들어가면 방금 전과 같은 떨림증상이 일어나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해요. 그리고, 천천히 뭔가에 감시를 당하는 마냥, 안심할 수 없게 되고요. 더군다나 아까 전에 갔던 마을에도 똑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아마, 그 장소도 무언가가 관련되 있는게 분명하겠죠. "어떤 특정장소에 들어서면 그러한 증상들이 일어난다라 …." 그런건가 … 하지만, 왜 하필이면 그런 증상이 일어나는거지? 혹시 전에도 그러한 증상이 있었어? "" 아뇨, 그런 증상은 없었지만서도. 제가 워낙 그렇게 사건을 일으키는 성격은 아니였으니까요. 아마도 제 생각으론 ' 그 일 ' 이 발생한 이후 였던 것 같아요. 그렇지않다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적이 한번도 없다는건 이상하니까요. "하긴, 만약 그렇다면 로빈은 지금쯤 탐정이 됬을지도 모르지. 로빈의 말대로라면 그 증상은 그 일로부터 야기된건가. 뭐, 그렇다고해도 그리 이상하진 않지만. 그리고 이런 증상은 전에도 볼 수 있었다. 그때, 로빈과 함께 잿빛산을 향하려할 때도 로빈은 이런 행동을 보이며 잿빛산에 가는 것을 꺼려했지. 하지만, 그때 나는 로빈의 행동을 가볍게 여기고 그곳에 간 결과. 꽤나 불편한 접대를 받았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그 결과, 나는 이 세상과 관련된 일들 중 하나를 알게됬고, 그 사실 하나말고도 수 많은 진실과 거짓이 혼돈한다는 사실에 발 벗고 이러한 상황에 뛰어들게된 계기니까. 어떻게보면 로빈의 능력은 나한테는 최적의 힘 아닌가싶다. 그리고 그때, 잿빛산을 떠나려던 나한테 했던 사로이의 말도 그때서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이해가 간다.“ 세상을 혼자서 짊어지는건 힘들지라도, 둘이라면 조금은 힘이 덜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여자의 힘이 절실하다. 그러니, 너는 어떻게하면 그녀의 힘을 의롭게 사용할지에 대해 조금은 공부해놓는게 좋겠군. ”그냥, 간단히 ' 로빈의 힘을 빌려! ' 라고 말하면 될 것 가지고, 괜히 말만 번지르르하게 한다. 하지만, 그런 점이 사로이의 매력이라고 해야할까나? 아무튼, 사로이를 포함한 마키 족이란 부족은 꽤나 재밌는 집단이다. 겉으로는 조금 냉정하고 차가울지는 몰라도, 그 속은 그 누구보다도 따뜻하다는걸 약간은 알게된 나한테는 그들은 이 세상에서 만난 두번째 사람이자, 동료들이니." 오늘은 이만하고, 이 근처에서 쉬도록 하자. 날도 저물었고, 우리 둘 다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는 것 같으니까. 오랜만에 푹 자고, 내일부터 다시 움직이자. "나의 말에 로빈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와 함께 마을 근처에 적당한 누울 곳이 있을지 살펴보았다. 다행히, 새벽녘에 흐르는 이슬 정도는 막아줄 것 같은 나무 근처에서 쉬기로 했다. 그리고 밤새 우리들을 한기에 몰아넣을 쌀쌀한 바람을 막기위한 모닥불을 피워, 조금이나마 따뜻함을 유지하기로 했다. 더군다나, 슬슬 겨울이 되려는지. 아침공기는 꽤 차갑다. 그 때문에 자칫하면 감가라도 걸릴지 모르니, 모닥불은 필시 중요하겠지.' …. '잠깐 나무에 기댄 것 뿐인데, 로빈은 이미 잠들어있었다. 하긴, 피곤했을거다. 그동안 하루도 쉴 틈 없이 계속 걸어왔으니까. 그나저나, 오늘은 밤하늘에 보름달이 떴다. 아마도 지금 쯤 마키 족도 움직이기 시작했겠지. 왠지, 그 일이 일어난 후로 보름달을 볼 때마다 조금씩 심장이 요동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왜일까, 뭣 때문에 내 심장이 이렇게 뛰는지는 모르겠다. 이미, 오래된 시간 속에 묻힐 과거의 추억일텐데도, 오늘은 꽤나 쓸쓸한 기분이다." 하아 …. "언제까지나 이런 기분으로 밤을 맞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가는 그 날의 기억을 잃고, 평소와 같은 행동을 하며 하루를 보내겠지. 그 어느 때처럼 말이야.“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 ”란 … 애석하게도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아. 이미, 당신의 딸 로라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당신 딸은 이미 당신과 함께 있을테니까. 내가 당신 딸을 볼 수 있는건 과거로 돌아가는 것 밖에 없으니까. 당신이 내게 부탁했던 것처럼, 내가 당신의 말을 들어줄 수 있다면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 하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일이겠지. 당신이 이룬 그 꿈을 내가 못 이뤘으니 말이야. 당신이 부탁한 그 소원 역시 나는 지킬 수 없을지도 …." 루에르 씨, 이만 일어나세요. "어느덧 잠에 든 듯,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하늘은 밝아졌다. 밤새 이런 저런 고민에 휩싸여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할거라 생각했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그리 쉽게만은 되지않는 것 같다. 그래도 오랜만에 취한 잠자리라서 그런지 몸이 조금 개운해진 기분이다." 어때, 로빈. 오늘은 갈 수 있겠어? "마음의 안정을 위해 잠시 취한 그간의 휴식을 통해 로빈도 조금은 안심이 되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럼, 가볼까? 어제는 미처 발견하진 못한 보물, 누군가가 먼저 와서 가져갈라. "실 없는 농담까지 할 수 있는걸 보면, 어느 정도 안정이 된 것 같다. 바닥까지 긁어모아서라도 끌어오르던 인내심은 이제 오늘부로 사용하지않아도 되는건가. 이제, 나만의 스테미나로 다시 한번 새로운 진실을 향해 도약하게 되는거겠지. 밤부터 아침까지 우리의 체온을 대신한 모닥불을 근처에 모래를 주워 뿌리곤 마을로 향했다. 비록, 괜찮다는 말은 했지만 정말로 로빈이 괜찮을지는 잘 모르겠다. 로빈의 말로 의하면 특정 장소에 무언가가 얽힌 기억이 남아있으면 그런 증상은 매번 발생한다고는 했는데. 과연, 하루 정도 쉬었다고 그 증상이 나아질까? 괜시리 마음 한쪽은 로빈을 향해 기울어있었다.얼마 걷지않아 눈 앞에 나타난 마을은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초췌한 모습을 나타냈다. 사람이 산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그럴 가능성은 없어보이는 마을이다. 하지만, 이 마을 어느 한 곳에는 내가 찾는 무언가가 잠재워져있겠지. 그것을 확인하는게 나와 로빈의 의무. 그리고 그것을 파악해야만 다음 장소로 갈 수 있다. 제일 첫번째 코스인 이 마을에서 사로이의 부탁을 이루기만 한다면 말이다." 로빈, 괜찮아? "" 네, 아예 증상이 나타나지않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제보단 조금은 나은 것 같아요. "로빈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어제보단 괜찮다곤 했지만, 여전히 떨리는 로빈의 몸과 또 다시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긴박한 그녀의 얼굴을 보니 또 한번 의욕이 꺾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로빈도 저렇게 나를 위해 괴롭지만 참아가는데 내가 참지 못하면 되겠느냐 싶어. 그런 로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금 더 마을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보기로 했다.밖에서 본 마을의 모습과는 달리 꽤나 깨끗하고 고풍스러움이 물씬 느껴진다. 어제는 지친 몸과 더불어 우리의 몸을 짖누르던 피로 때문에 제대로 이곳을 탐방하지 못해서일까, 오늘은 왠지 다른 곳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이 마을은 너무나도 위엄이 느껴졌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알 수 없는 분위기와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선다. 내 옆을 따라 걸어오던 로빈조차 이 모습에 감탄한 듯, 할 말을 잃고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가 정말, 어제 우리가 왔던 마을이 맞는걸까요? 어떻게 하루 사이에 이런 모습으로. "" 아마도, 미처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거겠지. 어제는 이런 저런 일 때문에 경황이 없었잖아. 하지만, 덕분에 이젠 확신이 섰어. 분명, 이곳엔 우리가 찾는 ' 보물 ' 이 있을거라고. 더군다나, 로빈의 증상 역시 특정한 장소에만 일어나는 케이스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보물은 이곳에 있을거야. 아니, 있어. "나의 말에 로빈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웃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보물이 있다고 확신한건 아니다. 약간의 의심도 들지만, 그렇지않다고도 말 못하겠다. 왠지, 로빈만이 아닌 나한테도 이 마을엔 무언가가 있다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알기 위해선 아직도 우리한테 남은 일이 많으니까, 그 일을 차차 헤쳐나가기 전까진 그 보물의 모습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더군다나, 예상과는 달리 그리 황폐한 모습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리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과 이것의 차이가 조금은 난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이 마을엔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 그런데 루에르 씨, 어제 분명히 이 근방에 사당 같은게 있지 않았나요? "" 응? 아, 그래. 분명 이곳에 사당이 있었지. "" 그런데 왜 오늘은 그 사당이 없는거죠? 어제까지만해도 저쪽에 있어야할 사당이 오늘은 없어요. "" 뭐 … ? "사당이 있어야할 자리에 사당이 없다며 이상한 낌새를 느낀 로빈이 내게 말했다. 나는 로빈의 말에 황급히 고개를 돌려 사당이 있던 곳을 돌아봤고, 로빈의 말대로 그곳에 있어야할 사당은 쓸쓸한 바람만을 남기고 사라져있었다." 분명, 어제까지는 저곳에 있었는데 …. "당황스럽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분명, 이곳엔 아무도 없고 온 것도 우리 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루 밤 사이에 사당이 흔적도 남기지않은 채 완전히 소멸될 수 있는거지? 이건 자연의 힘이 아니라, 완전한 사람의 손길이 닿은거다. 그렇지않으면 이렇게 깔끔하게 사라질 수는 없겠지.' ! '그렇다는 말은 이곳에 사람이 산다는건가?" 루. 루에르 씨, 저. 저기 ….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른 로빈을 보며 나는 재빨리 로빈이 가리키는 건물 쪽으로 달려갔다. 로빈이 가리킨 곳에는 무언가가 꿈틀대는 모습이 보였고, 그 근처에 놓여진 건물 잔해들을 하나 하나씩 주워담으며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간다. 설마, 로빈이 말한 사람이란게 바로 저 사람이였나? 젠장, 그렇다면 놓칠 수 없다!" 이봐요! 잠깐, 잠깐 저희랑 얘기 좀 나눌 수. "그때, 순간적으로 내 눈 앞에 수많은 잔해들이 나를 위협함과 동시에 오래되어 낡아빠진 두건을 쓴 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너희는 누구지? 누구길래, 감히 내 마을에 함부로 발을 디딘 것이냐? 너 또한, 나를 죽이기 위해 온 것이야? 하지만, 그렇게는 안되지. 내가 죽기 전에 내가 먼저 널 죽여버리겠다!! "그는 이내 이성을 잃은 듯, 들고있던 나무막대를 나를 향해 내리쳤고, 나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사람은 바닥에 쓰러진 나를 향해 들고 있던 자재들로 나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했고, 그것으로 인해 나를 기절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그게 정상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라면 이미 나는 오래 전에 정신을 잃었을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이 들고 있는건 이 마을을 지을때 사용된 오래된 자재들 뿐. 세월의 무게를 감당할 정도로 그가 나에게 던지는 자재들은 그리 튼튼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 자재들은 나와 부서지면 그 동시에 산산조각이 나기 때문에 내게 타격을 주긴 주지만, 그리 큰 충격을 주진 못한다. 그렇게 그 사람에게 공격을 당한 나는 그가 더 이상 내게 던질게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 자식, 아직도 살아있는거냐?! "" 죄송한 얘기지만, 저는 당신을 살해하려 온게 아닙니다. 다만, 알고 싶은게 있어서요. "" 뭐? 그게 무슨 말이냐? 알고 싶은 일이라니? 내가 그걸 네 녀석한테 알려줄 것 같으냐?! "" 하지만, 그렇지않으면 저도 이곳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일주일동안 이곳을 찾기위해 제 친구와 함께 지금껏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저희에게 돌아가라하면 저희들도 쉽게는 못간다는 말입니다. "" 그래서, 나를 협박이라도 할 생각이냐? 택도 없는 소리하지 말아라! 나는 절대 너희들한테 한마디도 해주지 않을테니까! "" … 부디, 부탁드립니다. 제발, 저희들을 도와주세요. "" 너.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는거냐? 당장 일어나지 못해! "" 이렇게까지 하지않으면 당신은 우리들에게 협력을 하지 않을거 아닙니까? 그러니, 이정도 행동은 사치일 뿐이죠. 그러니,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부디, 저희를 도와주세요.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간청한 나의 부탁에 그 남자는 한참동안 말을 잃고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만약, 우리가 찾는 사람이 이 사람이 맞다면 이 사람은 ' 그것 ' 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게 있겠지. 그가 우리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기만 한다면, 사건의 진실은 조금씩 파헤쳐나가는 단계에 들어서게 되겠지. 하지만, 의외다. 정말로 이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게 말이다. 물론, 이 마을을 찾아 떠나기 전 사로이가 내게 말했던 말이 있었지만, 잠시 잊고 있었는데 … 역시, 그랬던건가." 제발, 부탁드립니다. 부디 저희를, 이 세상을 위한 한 걸음을 내딛도록 도와주세요. "" … 이거 참, 난처하게 됬군. 생판 모르는 남에게 무릎까지 꿇게하고 말이야. 하지만, 아는것 많은 것들 중에 극히 소수일 뿐인데. "" 그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부디, 제게 그때의 그 사실을 말씀해주세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이거, 이거 원. 알았네 알았어. 그러니까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게. 계속 그러고 있으니까 내가 미안하지 않는가? 이만 일어나네. "" 정말, 도와주시는겁니까? "" 그래, 그래. 도와주겠네. 그러니까 그만 일어나게. 늙은 노인네 힘들게하지 말고. "가까스로 그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내 값 싼 무릎이 그 빛을 발한게 됬다. 이제 남은건 이분이 하는 말씀 뿐, 그것만 듣는다면 우리는 조금 더 이 세상의 멸망에 대한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되는 셈이 되겠지." 그쪽 처자도 젊은이랑 같이 온거겠지? 이제 괜찮으니까 이쪽으로 오게. 더 이상, 자네들은 침입자가 아니니 말이네. "그 사람의 말에 로빈도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 듯, 이쪽으로 성큼 성큼 다가온다." 이곳에서 얘기하기는 뭐하니까, 내 집으로 가지. 그곳이라면 조금은 쉴 수 있을게야. "그는 아까와는 달리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로빈을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마을은 꽤나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밖에서 봤을때는 몰랐는데, 이 마을은 아마 강이 있었던 자리까지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강은 이미 말라서 큰 구덩이만 만들었지만. 그 근처 한 낡은 건물 앞에서 그는 발걸음을 멈췄고, 뒤를 따르던 나와 로빈 역시 자리에서 멈추곤 슬쩍 그 건물을 바라봤다." 꽤 오래된 건물 같네요. 줄곧 이곳에서 지내신건가요? "로빈의 물음에 그는 이내 그윽한 눈으로 건물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곳에서 지냈지. 그때의 마을은 이렇지 않았는데 ….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나와 로빈을 안으로 들였다. 그가 오랫동안 지낸다는 건물 안을 들어서자마자, 깊은 향의 냄새가 코를 찌르며 우리 앞을 지나갔다. 그리고 현관을 지나자 보이는 벽에 걸린 수많은 그림들. 그 그림은 항상 이 마을의 모습이 담긴 그림들로 빼곡했다. 아마, 이 그림들은 모두 저 어르신이 그린거겠지. 그렇지않으면 이 그림들을 무엇으로 말하겠는가. 굳이, 이런 모습으로 그려도 됬을까싶을 정도로 어르신은 마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잠깐동안 느낀거지만, 어르신은 원하고 있다. 그때의 모습을." 복도에서 뭘하고 있는건가? 얼른 방으로 들어가지않고. "" 이 그림들, 모두 어르신께서 그리신건가요? "나는 벽에 걸린 그림들을 가리키며 어르신에게 물었고, 어르신은 한참을 그림들을 쳐다보며 향수에 빠진 듯, 평온해보이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그리 대단한건 아니네. 그냥, 머릿 속에서 떠오르는걸 그대로 그린 것 뿐이니까. 물론, 지금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그림들이지만 말이야. "" 그럼, 이것들은 모두 머릿 속에 담긴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그리신 그림들이란 말인가요? "" 그렇지, 그렇지않으면 이 그림들을 어떻게 그렸겠는가? 자네들도 알다시피 이 마을은 오래 전에 끝났어. 더 이상 이 마을엔 아무도 살지않지. 나를 제외하곤 말이야.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어르신은 차를 갖고 오겠다며 주방으로 향했고, 나와 로빈은 어르신이 알려준 방으로 들어가 잠시나마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어르신의 방 안에도 그가 그린 그림들로 가득했다. 어르신은 그때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그리워하는거라면 아마 저게 아닌가 싶다, 벽을 가득 메운 그림들 속에서도 딱 한 그림만은 마을을 그린게 아닌 자신의 가족들을 그린 것 같은 사람들로 그려진 그림이 눈에 보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드르륵 」문을 열고 어르신이 안으로 들어왔다. 로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르신이 들고있는 찻상을 대신 받아들고는 조심히 바닥에 내려놓는다. 어르신은 내게 향긋한 허브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찻잔을 건네시면서 조금이나마 언 몸을 따뜻하게 해줄거라는 말을 하며 자신도 찻잔을 든다.' . '허브티의 따듯하고도 산뜻한 맛이 몸을 가득 채우는 듯한 느낌이 들며 조금은 한기가 돌던 몸에 따스함이 찾아왔다. 로빈 역시 허브티를 마시며 몸을 녹이는 듯 싶었고, 그런 모습을 보며 어르신은 흡족한 미소를 띄며 찻잔을 비워낸다." 이렇게 쌀쌀한 날에는 허브티가 최고지. 옛날 내 어머니께서도 허브티를 즐기셨다네. 그 때문인지, 옛날부터 어머니를 따라 마시던 허브티를 지금까지도 마시고 있는걸 보면 참 재밌는 현상이지. 그 때는 죽어라 먹기 싫던 허브티가 늙어서 제 빛을 내는지 죽어라 먹고 싶으니까. 자네들에게는 허브티가 조금은 맞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 아니에요. 맛있어요. 이렇게 맛있는 허브티를 마시는건 처음이에요. "" 그런가? 하하, 그렇게 말해준다니 나는 고마울 따름이지. "어르신은 웃으며 주방에서 마저 차를 갖고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려하자, 옆에 앉아있던 로빈이 대신 갖다오겠다며 어르신을 자리에 앉히고 자기가 주방으로 향한다. 로빈이 주방으로 가고 어르신 방에 단둘이 남은 나는 슬쩍 어르신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왜 그런가? 자네한텐 허브티가 맞지 않는건가? 이거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냉큼 다른 차로 준비해오겠네. "" 아뇨, 허브티는 충분히 즐겼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어르신에게 묻고 싶은게 있어서요. "" 나한테? 아, 그랬지 참. 그래, 맞아. 방금 전에 내게 무언가를 물어본다고 했었지. 그런데 그렇게 성급히 해도 되는건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몸을 좀 녹이는게. "" 로빈이 오기 전에 묻고 싶은 말이 있어서입니다. 로빈이 오면 차마 물어보지 못할 것 같으니까요.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찻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며 얘기를 이어가던 나는 말을 멈추고 찻상에 놓여진 찻잔을 들어 안에 남아있는 허브티를 입에 털어넣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어르신은 내가 보이는 이상한 행동에 무언가를 느낀 듯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며 이내 얼굴색을 바꾸곤, 아까와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대체 뭘 알고 싶은겐가? "" 어르신. 아니, 당신 … 이 마을에 살고 있지 않지? ""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이 마을에 살고 있지 않다니? 보다시피 나는 이 마을에. "" 내가 묻는건 그게 아니야. 당신의 육체를 묻는거지. "" ! "역시나, 내 짐작이 맞는건가 …. 어르신은 나의 말에 살짝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내 나와의 시선을 회피한다. 그리곤 숨을 몇번 고르곤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곤 입을 연다." 그게 무슨 말인가? 육체라니. "" 당신, 오래 전에 죽었지? "" ! "아까와는 달리 확연히 드러나는 모습에 나는 확신을 서게 됬다. 지금 나와 대화를 하는건 사람이 아닌 영혼, 즉 유령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이곳에 남아 나와 이야기를 건네는 그도 이미 자신이 유령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 하지만, 왜 그가 살아있는 사람에게 모습을 보이면서까지 이곳에 머무른건 대체 무엇 때문이였을까? 그저, 무언가를 갈구하는 영혼의 한을 풀기 위해서일까? 그렇다면 대체 이 자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 ! '역시, 그것 뿐인가 ….
그는 깊은 숨을 내쉬며 그윽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곤, 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벽에 걸린 많은 그림들 중, 하나의 그림을 벽에서 떼어내어 내게 건넨다. 어르신에게 그림을 건네받은 나는 슬쩍 어르신을 쳐다보며 물었다.
" 이걸 저에게 주는 이유가 뭐죠? "
" 별 뜻 없네. 다만, 그 그림은 내가 지금까지 그린 그림들 중 내가 제일 아끼는거라는 말 밖에는. "
" …. "
제일 아끼는 그림이라며 건네준 그 액자 안에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벽에 걸린 똑같은 그림들과는 매한가지일텐데, 왠지 모르게 이 그림에는 알 수 없는 기운이 있었다. 어르신은 찻잔을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물끄러미 나의 얼굴을 쳐다봤다. 무언가를 말할려는 눈치였지만, 왜인지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던 나는 그런 어르신의 시선에 살짝 그림
을 무릎 위에 덮어놓곤 나를 쳐다보는 어르신을 보며 말했다.
"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그림을 저에게 보여준건 그에 대한 무언가를 원하시는거겠죠. 하지만, 이 그림을 봐서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겠군요. "
" 그 말, 진심인가? 정말로 그 그림에서 아무 것도 느껴지지않는겐가? "
그림에게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는 나의 거짓말을 알아챈 듯, 어르신은 날카로운 눈매로 나를 쳐다보며 다시 한번 내게 물었다. 뻔뻔스럽게 얼굴색 하나 바뀌지않고 어르신의 눈을 바라보던 나는 끝내 시선을 회피하고, 입 안에 가득 찬 고민을 내뱉으며 그를 쳐다봤다.
"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는건 거짓이지만, 그렇다고해도 딱히 이 그림이 뭐다라는 기운도 못 느껴서 말이죠. 도대체 이 그림에 무엇이 있길래 그러시는거죠? "
사실대로 털어놓은 내 말에 어르신은 묵묵히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나를 쳐다보며 찻상 위에 놓여진 찻잔을 집어 입에 갖다댄다. 이미, 오래 전에 비운 찻잔 안엔 아무 것도 없었을텐데, 그는 마치 차를 마시듯 목젖을 움직이며 찻잔을 비워낸다. 그런 행동을 보이면서까지 나와의 대화를 끊을 필요는 없음에도 그는 아까부터 그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차를 마시고 싶었으면 차를 꺼내 찻잔에 담으면 될텐데도 그는 계속 같은 행동을 보이며 무언가를 내게 갈망하는 눈빛을 보내며 찻잔을 또 한번 입술에 갖다댄다.
" 처음부터 이런 목적으로 우리를 안으로 들인건가요? 우리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려고요. "
" …. "
" 대체 뭐죠? 뭣 때문에 우릴 이런 곳에 데려온거냔 말이에요. 죽은 자신의 모습을 보이면서까지 우리에게 대체 뭘 원하는거냐고요! "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그를 향해 화를 내는 나의 모습을, 그는 아무 소리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 그의 행동에 답답함과 짜증을 느낀 나는 그의 옆을 지나치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할 때, 내 등 뒤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가 나의 발목을 붙잡는다.
" 자네, 혹시 ' 페니턴트 ' 라는 병을 아나? "
페니 … 턴트?
" 그 병은 아주 무서운 병이자, 끔찍한 상황에까지 몰고 가는 병이지. 그 병에 걸리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가 없다네. 아니, 살고 싶은 생각도 못하게 되지. 그저, 자신을 비관하고 증오하며 자신의 손으로 자기의 목숨을 빼앗는,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가 우리 인간에게 준 병으로 전해지고 있지. "
" 그런데, 그걸 저한테 말하는 이유가 뭐죠? "
" 나 역시, 그 병으로 인해 몇십년 전에 죽었으니까. "
" ! "
" 너무나도 괴로웠어, 그리고 외로웠어. 이 세상엔 나 혼자 밖에 없다는 고립감과 고독에 휩싸여 살아남고싶지 않았어. 이 세상에 내가 혼자라면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죽음을 맞는게 좋을거라 생각했지. 그래서 결국 이듬해 여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나의 원한을 풀어줄 상대를 찾아 헤맸지. 하지만, 내가 이곳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이곳은 내가 알던 마을이 아니였어. 지옥, 그 자체였지. 아니, 어쩌면 지옥보다 더 심했을지도 몰라. 그나마 지옥은 상대를 죽이지는 않으니까 …. "
어르신의 눈가엔 어느세 눈물이 맺혔고, 어르신의 얘기를 듣던 나는 자리로 돌아와 어르신을 마주보며 자리에 앉아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 그 얘기를 제게 하시는 이유가 뭐죠? 설마, 저한테 그 원한을 풀어달란 말씀이신가요? "
" 아. 아니, 그런건 아니네. 단지,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하고 자네를 내 집으로 들인걸세. 내가 무슨 염치로 자네에게 그런 말을 하겠는가? "
" 그렇다면 대체 저와 로빈을 이곳에 부른 이유가 뭐죠? "
" 자네, 혹시 쿠피디타스를 알고 있는가? "
" ! "
" 역시나 알고 있는건가 …. 그렇다면 이곳에 온 목적도 그것 때문이겠군. "
" 어르신은 알고 계신겁니까? 쿠피디타스의 행적을? "
" 물론, 몇년 전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쿠피디타스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네. 이미, 내가 이곳에 돌아왔을 때는 쿠피디타스는 물론이고 이 마을은 폐허로 변해있었거든. "
" …. "
너무 늦어버린건가. 아니, 빨랐다고해도 이미 여기에 왔을 때는 이미 마을엔 쿠피디타스는 없었겠지. 아쉽게도 이곳에선 쿠피디타스를 찾지 못했지만, 확실히 안건 이곳엔 분명 쿠피디타스가 있었다는 말이고. 다른 마을 역시 그럴 확률이 높다는거다. 역시, 나의 짐작을 틀리지 않았던건가 ….
" 그런데, 자네는 무엇 때문에 쿠피디타스를 찾고 있는거지? 자네는 이 마을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 혹시, 다른 마을에서 온건가? 그런거야? "
"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만, 딱히 어떤 마을에서 왔다고는 말씀 드리기가 좀 … 하지만, 한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건, 저와 로빈은 1년 전, 그러니까 세상이 멸망하기 이전에 도시에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
" !! 그. 그 폭발에서 살아남았다는 말인가?! "
나의 말을 듣던 어르신은 깜짝 놀라며 뒤로 나자빠지는 행동을 취한다. 덩달아 놀란 나는 어르신에게 다가가 괜찮냐는 말을 하며 어르신의 손을 잡아주었다.
" 이거, 대단하군. 그 폭발에서 살아남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 대체, 자네들은 어떻게 살아남은거지? "
" 어르신, 그 날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
" 물론이지, 당연하고 말고. 어떻게 그때의 모습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
" 그럼, 저에게 그때의 상황을 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쿠피디타스를 찾는 이유도 세상이 멸망한 이유를 알고 싶어서입니다. 어
르신께서 그때의 상황을 알려주신다면 저희들에겐 큰 도움이 될겁니다. "
" 그야, 말해주는건 어렵지않겠지만서도. 대체 왜 자네는 그 끔찍했던 날의 모습을 알고 싶어하는거지? 단순히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 "
" 그건 …. "
「 드르륵 」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차를 들고 들어오는 로빈을 본 나는 황급히 제자리로 돌아가앉았고, 안으로 들어오던 로빈은 의아한 표정으로 찻상 위에 차를 내려놓는다. 그리곤 어색한 나의 모습을 보곤 궁금한 듯 물어본다.
" 무슨 일 있어요? "
" 아.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
" 그런데 왜 제가 들어오니까 깜짝 놀란거에요? 저 모르는 비밀 얘기라도 한거에요? "
" 그런거 아니야. 다만, 어르신이 1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알고 계신 것 같아서 그거에 대해 물어보던 중이야. "
" 네? "
" 어르신, 말씀해주시죠. 세상이 멸망하기 전, 그곳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왜 이 세상이 하루 아침에 저승과 이승이 뒤바꼈냐는 말이에요! "
" …. "
" 어르신!! "
사실에 대해 알고픈 나의 재촉에 어르신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나와 로빈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침묵의 시간을 보내던 중, 말 없이 우리를 바라보던 어르신이 고개를 숙이며 끝끝내 말문을 열었다.
" 그때는 아주 평화롭고도 평소와 같은 하루였다네 …. 누구의 참견도 방해도 받지 않는 여느 때와 같은 날이였지. "
“ 새벽 하늘, 산 중턱에 반쯤 걸린 보름달은 저 멀리 도심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네온사인에 둘러쌓여 달빛이 제대로 세상을 비추지 못하던 그때. 도심지에서 꽤 멀리 떨어진 한 마을에서 여느 때와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던 아르스는 마을 주변을 거닐며 부서진 건물 잔해를 치우고 있었다. 만날 같은 행동의 반복이였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여기던 그에겐 그만의 기쁨으로 여겨졌다. 비록, 마을에는 아르스 혼자 뿐이였지만, 그 옛날, 자신과 함께 이 마을에서 한솥밥을 먹고 지내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는 오늘도 쓸쓸한 밤을 지세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새벽 하늘을 바라보던 아르스의 눈에 이상한 빛이 포착된다.
" 저게 뭐지? 불꽃놀인가? "
어릴 적에도 불꽃놀이를 심히 좋아하던 아르스는 늦은 밤, 하늘을 비추는 불꽃놀이라도 시작된지 알고 조금은 떨리는 발걸음으로 도시 쪽으로 한발씩 다가갔다. 그리고 그때, 하늘에서 떨어진 무수히 많은 빛들이 도심지 주변으로 낙하하며 이리 저리 도시를 뒤흔들었고, 도시 뿐만이 아닌 다른 곳으로까지 빛들은 일제히 하늘에서 대지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한바탕 소동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아르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이 세상은 멸망한 뒤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르스는 자기 눈 앞에 일어난 일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눈으로 급히 자리를 떠났다.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린 자신의 신체를 뒤로하고 오로지 자신의 혼만을 가지고 마을에서 머물던 아르스는 어느센가 다시 샘솟기 시작하는 눈물을 감추며 저 멀리 달빛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근 1년동안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않고 마을 주변을 어슬렁 그의 곁으로 루에르와 로빈이 나타났다. 세상이 사라지고 1년만에 만나는 사람이라 반가운 마음도 들었지만, 그때에 충격으로 머리가 약간 이상해진 그는 그들에게 모습을 감추고 그들을 공격하려했으나, 그는 루에르에게 느껴진 무언가로 인해 공격을 멈추고 자신의 모습을 그들에게 보였다. 아마, 아르스는 루에르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을 …. ”
" 그 때문에 나는 자네들에게 내 모습을 보이면서까지 자네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네. 더군다나, 방금 전에 자네가 한 말 때문에 더욱 자극을 받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한가지 묻고 싶은게 있다네. 자네는 무엇 때문에 그 사실을 알고 싶어하는거지? 단지, 세상이 멸망한 이유가 정말로 궁금해서가 아닌 것 같네. 자네에겐 뭔가가 느껴져.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애절함이. 대체 누군가? 자네는 누구를 그토록 그리워하는거지? "
아까부터 내 얼굴에서 느껴지는 연민의 기운이 신경 쓰였는지, 어르신은 나를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나는 어르신의 물음에 뭐라 할 말을 잃고는 묵묵부답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 말하기가 조금 힘든 모양이군. 이해할 수 있네. 만나지 못하면 그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질 뿐.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네가 그에 대한걸 알고 싶어하는 걸수도 있지. 혹시나, 자네가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의 행적이라도 알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 때문에. 하지만, 그 희망 때문에 되려 좌절하고 말지. 그렇게되면 자네도 나와 같은 모습이 되겠지 …. 나 또한 그랬으니까. "
자신도 나와 똑같은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나와의 공통점을 맞추려는 그의 모습에 조금은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는 나를 걱정하는걸까? 만약, 내가 자신과 같은 모습이 될까 두려워서일까, 그는 계속해서 나에 대해 충고의 말을 하며 나의 정신을 바로 잡는다.
"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네는 더더욱 힘을 내야하는거네. 이 모진 시련을 극복해야만 자네는 한걸음 더 진보할 수 있게 된다네. 나는 너무나도 늦게나마 이 사실을 알게 됬지만, 자네는 이제부터 극복해나가면 된다네. 남을 그리워하는 그 감정, 조금은 억누르며 지금 곁에 있는 친구와 함께 조금 더 편안한 생활을 기약하면 안되는건가? 이미, 이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섰어. 아무리, 자네가 그 사실을 안들, 세상은 바뀌지않아. 앞으로의 시간만이 주체 없이 흐를 뿐. 그렇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 세상은 또 다른 아침을 맞게 될거야. 그러면 자츰 그때의 기억들은 사르르 녹아버리겠지. 그런데도 자네는 그런 편한 길을 냅두고, 굳이 건너지 말아야할 징검다리를 건너려는건가? 그렇다면, 그 길을 걸을려는 이유는 뭐지? 자네가 그런 일을 해야만 하는 가치가 있는 일인가? "
가치가 있는 일이라 …. 그 생각은 옛날에 잊어버렸다. 처음부터 무슨 가치 때문에 행한 행동이 아닌, 순전히 나를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왔기에 그가 내뱉은 말에 대한 고민은 잠시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말을 듣자하니 멈춰버린 내 기억 속에 무언가 꿈틀대는 기분이 든다고 해야할까나, 아무튼 이상한 기분이 자꾸만 내 머릿 속을 휘젓기 시작한다.
" 말을 못하는거보니 그렇지는 않나보군.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자네는. "
" …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로 제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리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단지, 제 본능입니다. 그렇지않으면 더 이상 이 세상을 살아남을 자신이 없거든요. 그녀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1%의 가능성을 믿고 하루를 버팁니다. 몇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그녀가 살아있다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요. 하지만, 그러다보면 어느 날 저는 너무나도 피폐해져있습니다. 더 이상 이 세계의 미련이 남지 않았다는걸 알고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제 옆에 있는 로빈을 봅니다. 지금까지 나는 로빈이 없었으면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고요. 지금껏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우연찮게 만난 로빈은 지금까지도 제게 많은 힘을 주고 있습니다. 만약, 그때 로빈이 제 앞에 나타나지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그만큼, 로빈은 제게 소중한 동료이자, 하나 뿐인 파트너입니다. "
순간, 나는 내 진심을 다해 말한 것 같았다. 지금껏 로빈한테도 한번도 표현해본 적 없던 말까지 사용하며 나는 어르신에 대해 나의 생각을 말하며 어르신이 한 말에 대해 이해는 한다는 표현도 섞어가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 옆에서 나를 바라보던 로빈 역시 살짝 고개를 숙이며 움찔거렸고, 어르신 또한 나의 말에 희미한 웃음을 짓고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궁금한 듯 물어본다.
" 그래서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뭔가? 그런 말을 하면서까지 내게 말하고 싶은게 뭐지? "
" … 저를 도와주세요. 어르신의 도움이 없으면, 저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어요. 그 때문에 저와 로빈이 이 마을에 왔고요. 이 마을에만
가면 조금은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거라는 친구의 말도 있었고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어르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이 마을의 온 목적,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내뱉은 말에 어르신의 미간이 약간 찌푸려진 듯 살짝 나의 몸을 움츠리게 한다. 잠시동안 나의 말에 쉽게 대답을 못하던 그는 이내 조용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한다.
" … 그렇군. 알겠네, 내가 자네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내가 알고있는 모든 것을 자네들에게 알려주겠네. 그런데, 친구라니? 혹시, 자네들 말고도 다른 사람이 있는건가? "
그는 내게 물었다. 이 세상에 살아 남은 사람은 우리 둘로 밖에 생각하지않았던 모양인지, 꽤나 놀랍다는 얼굴을 하며 나와 로빈을 쳐다봤다. 나는 놀란 얼굴을 하며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굵직한 목소리를 내며 그에게 말했다.
" 그들은 이 세상의 비밀을 풀 열쇠를 저희에게 건네줬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진실을 파헤치기 전까지는 저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아직 저에겐 지키지 못한 약속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희에게 어르신이 알고 계시는 모든 것을 알려주세요. "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나와 로빈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사로이의 말대로 어르신은 우리에게 협력을 할 것을 약속했고, 이제 남은건 어르신에게서 정보를 캐내는 것 뿐. 그것만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우리들은 세계멸망에 대한 진실에 대해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거다. 그렇게 된다면, 이 모든 악순환을 끝낼 수 있겠지. 하지만, 아직까지 방심을 해선 안된다. 아직, 우리가 모르는 흑백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니 ….
어르신은 나와 로빈을 데리고 어디론가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우리와 협력을 하겠다고 약속한 그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걷는 우리들은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것 같은 사당 앞으로 향했다. 그때 마을에서 봤던 사당을, 어르신은 이곳으로 옮겼다고 하였다. 옛날에 사라진 쿠피디타스를 뒤로 하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사당을 옮긴걸 보면 무슨 의미가 있을거라 생각되지만,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어르신의 얼굴에는 아무런 비밀도 캐낼 수 없었다. 단지, 그는 무언가에 대한 고민과 씁쓸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 이곳에 온 이유가 뭐죠? 이미, 쿠피디타스는 이 사당에 없다고 들었는데. "
의심스러운 나의 말투에도 어르신은 아무 말 없이 금세라도 부서질 듯한 문고리를 잡아 당기며 사당의 문을 연다.
「 끼 이 이 익 」
꽤나 섬뜩한 소리와 함께, 시뿌연 먼지 같은게 사방으로 흩어지며 나의 시야를 가로 막는다.
" 들어오게. "
손사래를 치며 먼지를 쫓아내던 나와 로빈을 보며 어르신은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했고, 나와 로빈은 조심스럽게 사당 안으로 발을 디뎠다.
사당 안은 바깥에서 본 모습보단 꽤나 청결했다. 오랜 시간동안 아무도 이 사당에 들어서지 않았을거라 생각했지만, 원래부터 사당이 이곳에 세워진건 아니였으니까, 옮기던 도중에 사당 안을 깨끗하게 청소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무엇 때문에 이 커다란 사당을 옮기면서까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걸까? 대체, 이 사당 안엔 무슨 비밀이 잠재워져있는거지?
" 저기, 어르신. 실례지만 이곳은 보통 사당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 "
이상한 낌새와 더불어 풍겨오는 수상한 기분이 든 나는 어르신을 향해 물었고, 우리들의 앞을 지지하던 어르신은 발걸음을 멈춰서고 그대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며 나를 쳐다본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며 몸을 돌렸고, 그런 어르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던 나는 약간 고개를 기웃거리며 그의 눈동자를 쳐다봤다. 어르신은 그런 나의 행동을 보며 피식 웃으며 말한다.
" 눈치 챘나보군. 사실, 이곳은 예로부터 신을 모셨던 신사라고 알고 있네. "
신사?
" 신사 … 말입니까? "
" 그렇네, 언제부터인진 모르겠지만. 아마, 이 마을이 세워진 후부터 이곳엔 신이 산다고 했지. 물론, 직접 보지는 못했어도 그들에겐 신이 있다고 믿는게 마음의 평안을 줬을지도 모르지만. "
그의 끝말은 뭔가 의문을 남기는 목소리였다. 진지한 얼굴로 그의 말을 듣던 나는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 그렇다면, 이곳은 사실 신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
나의 말에 어르신은 살짝 놀란 듯한 미소를 자아내며 슬쩍 내 옆에 서있던 로빈을 쳐다본다.
" 뭐,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아니라고는 못하지만. "
역시나 무언가가 있는건가 ….
" 대체, 그게 무슨…. "
이상하다 못해 궁금해 미칠 지경에 다달은 나는 나 자신을 억누르며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고, 그는 또 다시 내게 궁금증을 유발시킬 말투로 말한다.
" 아마도, 이곳은 사실 신을 모시는 곳이 아니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네. "
이건 또 무슨 말이지 …. 아까부터 이해 못할 말들로 나를 조롱이라도 하는 듯한 그의 말투에 약간 기분이 상하려던 찰나, 그의 입은 또 다시 움직였다.
" 그들은 자신들이 신을 모신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그건 신이 아니라 신의 모습을 한 악마였을지도 모르지. 그들은 겉으로 본 신의 모습으로만 악마를 본 것이야. 그렇기 때문에 악마가 들어산다는 것을 신이 산다고 믿을 수 밖에 없는거지. 물론, 그 비밀은 그리 오래 가진 못했지만 …. "
어르신의 말 속엔 뭔가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방금 전, 나와 나눴던 어르신과의 대화 중에서 느낀 또 하나의 목소리랄까. 아무튼, 그의 표정엔 쓸쓸함과 고독함이 묻어나온다.
"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죠? 아까부터 어르신이 하시는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
" 이해가 간다면, 그것 역시 문제일테지. 그런 면에선 자네나 친구나 다행인 것 같군. "
"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거냐고요? "
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있던 나는 도무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으며, 이해조차 가지않는다. 분명, 무슨 관련이 있는게 분명하지만, 지금 그가 내게 하는 말은 도저히 연관이 있다고 느끼지 못하겠다.
" 글쎄 … 왤까. 단지, 얘기를 해주고 싶었던거랄까. "
" 예? "
역시나 내가 이해 못할 말들만 늘어놓는다.
" 너무, 그렇게 못마땅한 표정은 짓지 말게. 나는 그저 자네들에게 진실을 말해주려는 것 뿐이니까. "
" 도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어났던거죠? 무슨 일이 있었기에 계속 말을 빙빙 돌려서 말씀하시는거냐고요. 그럴 필요 없으니 직설적으로 말씀해주세요. "
어르신의 표정의 아무런 감정조차 느껴지지않았다. 고립됨으로도 부족한 그의 모습엔 한 점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칠흑 같이 어두운 밤 하늘, 대지를 위해 빛을 내리는 달에 비해 초췌한 모습의 어르신에겐 그저 성가신 존재임이 틀림 없겠지. 한동안 그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나에게 할 얘기라도 남아있지않은 듯, 그의 입은 서서히 말라만 간다.
" … 수십년 전, 그러니까 내가 살아있을 때에 이야기라네. "
“ 청초하고 맑은 햇빛만으로도 연명할 수 있을 것 같던 소유 마을에는 오늘도 아침 해가 여김 없이 산 중턱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침을 비추는 태양의 미소와 그의 곁을 맴도는 순수한 구름들. 그리고 그런 마을사람들에게 불어오는 따뜻한 숨결의 바람까지도 그들은 여느 때와 똑같은 아침을 맞이했다.
" 여아, 아르스. 오늘도 아침 일찍 신사에 가는건가? 뭔 사람이 하루도 빠짐없이 부지런하구만. "
" 뭐, 만날 아침에 일어나서 할 것도 없는데.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무슨 재미로 살겠나? "
" 하하, 그렇긴 그렇구만. 그럼 수고하라고. "
환한 빛을 내뿜는 하늘에서의 기대라도 부흥이라도 하는지. 마을은 매일 활기찬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듯이 그들에겐 오늘 같은 하루가 매일 반복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명씩을 할 것이니. 그 중에서도 아르스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신사에 가서 신을 향해 기도를 드리고 있었고, 오늘도 여김없이 그의 발걸음은 신사 쪽으로 향하였다.
" 안녕하세요, 아르시 씨 "
" 오늘도 기도를 드리시러 오셨나봐요? "
매일 아침 기도를 드리러 신사에 들른 아르스를 보며 신사를 향해 기도를 빌던 사람들은 하나 둘 아르스에게 인사를 하며 그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했다. 그런 아르스는 부끄러운 듯, 멋쩍은 웃음을 지어내며 오늘도 신사를 향해 기도를 한다.
" 오늘 하루도 별 탈 없이 지나가기를 …. "
그의 기도는 늘 같았지만, 그의 마음은 한번도 바뀌지않았다. 오로지, 마을의 행복과 기쁨을 나누고 싶은 아르스에겐 그 기도마저도 부족할 뿐이였다.
" 어이, 아르스. 기도는 끝마친거야? "
" 이 시간에 신사엔 무슨 일이야? 넌, 원래 신사에 오지 않잖아? "
" 그렇지. 신을 모신다는 말을 즉 귀신을 모신다는거 아냐? 그래서 왠지 꺼림직해서 별로 신사엔 오고 싶지 않네. "
" 그런 녀석이 여긴 웬일이야? "
" 촌장 님이 널 부르셔. "
" 날? 무슨 일로? "
" 그걸, 내가 어찌아니. 아무튼 빨리 가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 얼굴이더라. "
촌장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의논할 얘기가 있다는 친구의 말에 아르스는 허둥지둥 신사를 벗어나 촌장댁으로 달려갔다. ”
그립고도 쓸쓸했던 과거의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는 듯한 표정을 짓던 어르신이 도중에 말을 끊어버린다. 조용히 그의 얘기를 경청하던 나와 로빈은 살짝 당황한 눈치로 그의 얼굴을 쳐다봤을 땐, 이미 그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차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마냥, 그의 얼굴에 가득했던 핏기가 하나 둘 새하얗게 변하며 그의 두 손을 덜덜 떨리게 만든다. 도저히 안되겠는지, 옆에 앉아있던 로빈이 황급히 어르신의 옆으로 달려갔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 그의 얼굴을 응시할 수 밖에 없었다.
" 괜찮네, 걱정하지말게. 어처피 죽은 몸, 또 죽을 필요는 없을테니 …. "
라는 그의 말은 꽤나 자기 자신을 아프게 만드는 것 같다.
로빈이 들고온 차를 조심스레 목구멍을 넘기던 그의 이마에서 주르륵 땀 한 방울이 흐르며 그의 무릎으로 떨어진다. 어르신을 걱정하던 로빈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욱 사색에 잠긴 듯 보였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 역시 한치도 방심할 수 없어, 마음 속으로만 걱정할 뿐이다. 어렵게 차를 입 안으로 들이던 어르신의 손이 멈추고, 들고있던 찻잔이 천천히 찻상 위로 올려진다.
" 미안하네, 내가 잠시 옛 생각에 빠져서 그만 …. "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날씨가 추워서가 아닌, 무언가에 잔뜩 겁을 집어 먹은 모습이였다. 위축된 그의 어깨와 그의 정신 없는 눈동자가 주변을 계속 훑어내려가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던 나는, 이 이상 이 대화를 계속 진행해봤자, 진실되어 나온 얘기는 없을 뿐더러, 어르신의 정신까지 이상해질 것 같은 생각에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슬그머니 밖으로 빠져나갔다.
" 루에르 씨? "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로빈을 향해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씨익 웃어주곤, 황급히 그 자리를 떴다. 더 이상 그곳에 남아있어봤자 시간 낭비며, 그에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도 방금 전에 끝났음을 알았으니. 잠시 머리나 식힐 겸 밖으로 나왔다. 그리 많은 정보는 캐내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곳에 쿠피디타스가 있었다는 것만은 알게됬으니 그 정도도 충분하다. 그 말은 즉, 내가 세웠던 가설과 함께 다른 마을 또한 쿠피디타스의 존재 유무를 알게 되었으니까.
" …. "
만약, 그때. 내가 그 말을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평소와 똑같이 로빈과 함께 남아있는 인류를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났을까. 아니, 그때의 나는 마음 편하게 여행을 할 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미래로 돌아온 나에겐 크나큰 데미지가 성립 됬을 터. 내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판단했을 때는, 이미 한달이란 시간이 걸렸으니까 …. 만약, 그거라도 내게 남아있지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죄책감에 사로 잡혀 아무 것도 못한 잉여인간이 됬을테지. 하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 내게 남겨준 그 녀석의 말이 그렇게나 내게 힘이 되고, 목표를 세울 수 있었는지. 지금 와서도 그 사실은 너무나도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그 사실 또한 내가 눈치채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테지만 말이다.
방바닥에서 느껴지던 온기는 어디 가고, 갑작스런 한기가 내 몸을 감싼다. 몽롱한 의식 속 조금씩 시야가 확장되던 나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주위배경에 살짝 긴장을 하던 나는 조심스레 주변을 돌아보며 정신을 가다듬기로 하였다.
" 여긴, 숲 속인가 …. 그런데 왜 내가 이런 곳에 있는거지? "
천천히 정신이 말짱해지고, 주위에 있는 모습에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몇시간 전까진 라셀과 얘기를 나누고, 잠자리에 든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왜 내가 이런 숲 속에 있는지 모르겠다. 평소에 몽유병은 커녕, 잠꼬대도 없는 편인데. 그런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숲 속에서 잠을 잤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 누두도 나를 못 봤다는 말인가? 그렇지만, 그때의 마을은 ….
" 젠장 …. "
뭐가 어찌된건진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깨어나서 다행이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을걸 보니 이곳에 온지도 얼마 되지않은 것 같은데. 다른 누군가가 날 찾기 전에 내가 먼저 마을로 가야겠다.
' . '
그런데, 이 숲. 왠지 낯설지가 앉다. 언젠가 한번 이 숲 속에 온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그건 당연한건가. 나무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는걸 보면 산인 것 같은데. 그러면 이곳은 마우리스 산이겠군. 별 시답지않은 직감으로 꽤 멋진 척 연기나 하고 말이야. 그 정도로 나한테도 여유가 생긴걸까. 아무튼, 서둘러 내려가자.
' …. '
이런 곳에 길이 있었나. 분명, 아까까지만해도 이곳엔 길이 없던 것 같은데.
' ! '
이 길 뿐만이 아니라, 저기에도 길이 늘여져있다. 대체, 뭐가 어떻게된건지? 어떻게 한시간 사이에 하나도 아닌 두개씩이나 길이 생길 수 있는거지? 뭔가 이상하다. 여기는 내가 알던 곳이 아닌 것 같다. 분명, 지형으로 보나 산 아래에 마을이 보이는걸 보나, 이곳은 분명 마우리스 산이 맞을텐데. 마우리스 산이 맞다면 이곳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마우린의 본거지가 나올텐데. 그런데 왜 이렇게 변한거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거냔 말이야.
" 뭐가, 뭐가 어떻게 된거지? "
왜 저런 곳에 그 녀석들이 있는거지? 왜, 이곳에 그들이 있냔 말이야.
" 말도 안돼 … 지금, 뭐가, 뭐가 어떻게 일어나는거야!! "
설마했다. 이곳은 분명 내가 알던 수십년 전의 과거로 돌아온 마우린과 마우 마을이 공존했던 시대일텐데, 왜 저 녀석들이 이곳에 있는지에 대해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지금도 이 세계가 그때의 세계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는 어느 틈에선가 과거가 아닌, 내가 있었던 원래의 세계로 돌아와있었다. 더군다나, 이 세상이 멸망했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의 세상으로 말이다. 내 생각과는 달리, 이 세계는 그 모습 그대로 멈춰있었다. 평화롭던 시대의 모습이 아닌, 세상의 몰락 그리고 인류의 파멸을 일으킨 그때의 악몽 속으로 또 다시 나는 빠져들고만 것이였다.
" 이럴 수가 … 어떻게 이런 일이 …. "
땅바닥에 주저 앉은 나는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다리의 힘이 쫙 풀리고 허탈한 웃음만이 새어 나왔다. 말도 안되는 상황이며, 웃을 수 밖에 없는 기분이였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다니. 더군다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래로 워프되다니 …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거야? 란과 했던 약속을 지키지도 못하고 이곳에 돌아온거야? 이 세상의 파멸을 막지 못하고, 친구의 약속조차 지켜주지 못한, 이 무능한 녀석을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대체, 왜 나는 지금 미래로 돌아온거야!!!
' ! '
하늘에 걸린 달빛의 기운을 받던 나의 눈가에 정체 모를 액체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잠시 바람이나 쐬며 정신 좀 온전하게 할 생각이였는데. 나도 모르게 옛 생각에 잠겨버린 것 같다. 그래, 그땐 분명 정말 절망적이였으니까, 세상을 구하고, 그들은 감당할 수 없는 짐을 덜어줬다고 생각했던 나에겐 비참한 현실이였다. 그로 인해 이 세상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거라 생각했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세상은 한결 같이 흘러갔다. 그래, 이게 현실이다. 이게 진짜고, 이게 정말 내가 있어야 했던 세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가슴이 아려오는건 뭣 때문일까, 이젠 후회도 미련도 남지않았음에도 나는 아직도 그곳에 대해 떠올려보기도 한다. 만약, 내가 이곳에 돌아오지않고 그곳에 있었다면, 과연 내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란의 부탁대로 나는 그의 아이인 로라를 곁에서 지켜줬을까, 아님 그의 바람과 마을사람들에 부탁으로 마을에서 지내고 있었을까. 하지만, 이것도 내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할 뿐. 정말로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그 후에 일어날 일은 짐작하지도 못하겠지. 미래는 앞세워볼 수 없는 것이니까. 그러니, 괜히 누구도 바라지않는데 나서다간 큰 일이 생기겠지. 그러니, 나는 그대로 멈추면 되. 누군가가 먼저 솔선수범을 하기 전까지는 그저, 나는 내가 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면 되. 그것으로 인해 내가 조금의 가책을 덜 느낄 수만 있다면 말이야.
" 저, 루에르 씨. "
울타리에 걸터앉은 내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로빈이 내 옆에 앉으며 내가 쳐다보면 하늘을 그대로 응시한다. 그리곤, 달빛에 그을려 하얗게 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 무슨 일 있어요? 얼굴빛이 별로 안 좋은데 …. "
" 아니, 아무 일도 없어. 그냥, 옛 생각 좀 하고 있었어. "
" 옛 생각이요? "
" 응, 옛 생각 …. "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며 달을 바라보던 나는 울타리에서 내려와 조금 앞으로 걸어갔다. 하늘에 떠있는 달과 일직선으로 서있는건 무리였지만, 그 날은 이상하게도 달은 내 위에서 나를 향해 빛을 뿜어주는 것 같이, 그와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다. 로빈은 아무 말 없이 울타리에 앉아선 슬쩍 하늘을 쳐다보며 피식 웃음을 짓는다.
" 오늘따라 달빛이 예쁘네요. 보름달이라서 그런걸까요? "
로빈이 내게 물어본다. 그녀에 말대로 오늘 달은 그 어느 때보다 동그랗고 예쁜 색을 띄고 있었다.
" 글쎄 …. 아마도 그래서일까. "
" 네? "
" 오늘 같은 날이면, 그들도 꽤나 바쁘게 움직이겠군 …. "
" …? "
보름달, 그리고 마우린. 그 뒤를 이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 마키 족과 루에르 마을. 수십 년 전, 자신들의 선조의 뒤를 따르지만, 각기 다른 성향으로 하나로 뭉친 그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얽히고 설킨 그들의 과보는 어찌할 수 없었던건가 …. 그렇다해도 그들에게 그런 불행한 일이 겹친건, 우연이 아닌 무언가에 대한 도움이였을까, 아님. 그저,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저주였을까.
" 루에르 씨? "
" 이만, 들어가볼까. 날씨도 꽤나 쌀쌀해진 것 같으니까. "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마을 안으로 들어선 나를 멀뚱히 쳐다보던 로빈을 바라보며 나는 씨익 웃어주었다. 그러자, 로빈은 덩달아 웃음을 지으며 나의 뒤를 따른다. 지금은 아직 알아낸 것보단, 알아야할 진실들이 더 많다. 그것들을 모조리 앎고나야 이 세상의 관한 슬픈 과거에 대해 알게 되겠지. 하지만, 만약 그때가 온다해도, 이 세상과 그들에게 나아질 점이 있을까? 그저, 우리들은 궁금증만 해소할 뿐, 그들에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걸까? 그렇지만, 그렇다고해도 아무런 행동도 없이 그저, 자연의 순리에 맞춰사는 것보단. 그런 행동을 보이며, 하나 둘 알아나가는게 더 좋다고 생각된다.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역겹고 고립된 세상에서 옛날의 세상을 꿈꾸며 지내는 것보단, 백배 천배는 나을테니.
" . "
그러니, 이번만큼은 한번 내 뜻대로 움직여보자. 이젠, 그 누구 때문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먼저 집으로 가있겠다는 어르신의 말을 뒤로 하고, 다시금 마을을 거닐던 우리들은 어느 틈에선가 불어오는 차디찬 바람에 우리들은 어르신이 계신 곳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밖으로 나가있는 동안, 방 안에 놓여진 찻상은 이미 치워진 이후였고, 어르신은 온데간데 없이 집 안은 고요했다. 잠시 어딜 나간거라고 생각하고 자리에 앉는데, 왠지 모르게 찜찜함 기분이 느껴지며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안간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나를 보며, 로빈은 무슨 일이냐며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잠깐 어르신을 찾으러 가보겠다며 급히 자리를 떴다.「 드르륵 」아까와는 달라진 집 안 공기에 신경이 곤두 섰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이다. 아까 전과는 달리 급격하게 건조해진 공기며, 텁텁할 정도로 숨이 막히는 먼지가 주변에 흩날리는 것처럼 주위가 뿌옇게 흐리다.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뭔가가 틀어진건 분명한 것 같다. 그렇지않으면 몇분 사이에 이럴 일은 일어날 수 없으니까.' . '건물 곳곳을 걸어가던 도중, 바닥에 뭔가가 쏟아진 이물감이 느껴지며, 이내 발바닥이 차가워진다. 바닥에는 뭔가 물 같은게 뿌려져있었고, 실수가 아닌, 고의적으로 바닥에 쏟아진 것처럼 보일만큼, 물의 모습은 그리 자연스럽지가 않다. 흡사, 무언가에 끌려 지나간 듯한 움직임 또한 보이니. 대체, 이게 무슨 징조를 뜻하는지 심히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한 10분 동안을 건물 안을 뒤지며 돌아다녔지만, 어르신의 모습은 커녕, 나와 로빈 말고는 아무도 없는 듯한 섬뜩한 기운만이 집 안 곳곳에 자리 잡는다.「 끼 긱 」그리고 아까부터 기둥이 부러질 것 같은 기분 나쁜 소리마저 들려오니, 뭔가 심상치가 않다. 적어도 몇분 안에는 이 집이 무너질 것 같은 재수 없는 생각까지 하게 되니, 이곳에 더 이상 남아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 나는 서둘러 로빈이 있는 방으로 달려갔고, 언제나 그랬 듯이 로빈은 잠자코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로빈은 헉헉거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나를 보며 의아한 듯 쳐다보며 내게 다가왔고, 나는 그런 로빈의 손을 붙잡고 황급히 건물 밖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왜. "" 뭔가 심상치가 않아. 좀 있으면 뭔가가 벌어질 기분이야. "" 네? "상황판단이 더딘 로빈은 벙찐 표정을 지으며 내 손에 이끌려 따라왔고, 가까스로 건물 밖으로 뛰쳐 나온 나는 물끄러미 건물 쪽을 뒤돌아보며 자리에서 멈췄다.「 우 지 직 」마치, 우리가 이 집에서 빠져나가는 걸 기다린 마냥, 그 건물은 우리가 무사히 밖으로 나온 것을 확인하고 소리 없이 땅으로 꺼졌다. 천천히 진행된 오랜 가옥의 형상은 어느덧, 대지와 하나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갔으며. 그 안에 가득했던 그림들도 땅 속으로 빨려들어간 듯, 잠잠한 분위기가 풍겨온다. 갑작스레 이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무슨 일이 시작되는걸 알리는거라는 정도만 느껴진다. 이 틈에 나는 로빈을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갔고, 그 건물의 무너짐과 함께 하나 둘 마을에 자리 잡았던 건물들도 그의 뒤를 따라 무너져내린다. 마치, 자연의 순리를 지키려는 것처럼 그들은 하나가 되어 바람과 함께 사라졌고, 방금 전까지 로빈과 함께 달빛을 바라보던 마을은 눈 깜짝할 세에 마을의 형상을 잃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죠? 별안간, 마을이 함락하다니. "" 하지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 "" 당연 … 한 일이요? "" …. "오랫동안 세월에 짖눌려 살아온 시간도 어연 몇십년을 지났을 이 마을에는, 이 마을을 지탱할 사람들은 없었다. 옛 말에, 사람이 살지않는 집은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닌, 귀신이 사는 곳으라고 말할 정도로 집과 사람의 무게는 별 차이가 없다. 사람이 살기 위해선 집이 필요하고, 집이 버틸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게하는 원동력도 사람에서 나오는 것. 그 둘 중 하나의 균열이라고 어긋나면 그들은 파멸할 뿐. 그런 상황에서 그 사람은 이곳을 택한거였나 …." … 결국엔, 무너지고 말았군. 꽤, 고된 세월이였어 ….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기운과 함깨 어르신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눈가에 가득 눈물을 고인 채로 미소를 지으며, 사라진 마을이 있던 자리를 둘러보며 조용히 눈물을 닦아낸다." 용케 … 지금까지 잘 버텨줬어. 내 예상대로라면 진작에 무너져내려도 이상할 것 없는 곳이였는데 … 이렇게까지 버틴 것도 용한 일이야 …. "무너져내린 잔해 속, 어르신의 손길이 닿은 잔해들은 하나 같이 모래로 되어 바닥으로 스며들며 모습을 감췄고, 그의 눈물은 더욱 더 흘러내리며 슬픈 눈망울로 그들을 바라보며 쇠약한 한숨을 내보낸다." 하지만, 이제 나는 여한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어 …. 오늘까지 오는데도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후회는 없어. 그저, 오늘이 된 것에 대한 감사 뿐이지. 그러니, 더 이상의 후회도 미련도 없어. 이제, 나는 그 무거운 짐을 덜어낼 수 있게 됬으니 …. "' … '그래, 그게 그렇게 된건가 …. 그가 그리던 그리움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었다. 살아생전, 자신과 함께한 사람들이 살던 이 마을이 그에겐 그리움의 대상이였겠지. 불의의 사고로 인해 한 순간에 행복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그에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였겠지. 그에겐 이 마을이 남아있는 것 또한 고역이자, 고통이었을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르신이 이 마을에 남아있던 이유는. 단지, 그때의 모습이 그리워서가 아닐까? 비록, 이 세상은 그 전과는 아주 많이 달라졌지만. 그의 기억으로는 언제까지나 이곳은 자기가 살아생전에 모습 그대로를 띄고 있던게 아니였을까 ….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한시도 마음이 편치못한 그에게는 눈에 보이지않는 속죄에 불과했겠지. 하지만, 이것으로 인해 그의 속죄는 풀림과 동시에, 아무런 생각 없이 편히 돌아갈 수 있겠지. 그래서 그때.“ 자네에겐 뭔가가 느껴져.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애절함이. 대체 누군가? 자네는 누구를 그토록 그리워하는거지? ”그는 직감으로 내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걸 알아서가 아니였다. 그가 본 내 모습이 흡사 자기 자신과 똑같음을 느낀거겠지. 그래서 그때 내게 그런 말들을 함으로써 나와 속박의 거리를 멀게하려는 속셈이였겠지. 하지만, 그때 그의 얼굴엔 쓸쓸함이 느껴졌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정도에서 나타나는게 아니였다. 그것보다 더욱 강한 무언가가 그를 죄어오는 것이였겠지. 그럼에도 내게 그런 말을 한건, 자신이 겪던 아픔을 또 다른 누군가가 겪는걸 두 눈으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 그것도, 바로 가까운 곳에 있는 나한테서 말이야.' …. '하지만, 이젠 그에겐 미련도 후회도 남아있지않다. 그에게 남은건 평온한 미소 뿐, 그는 달빛 속에서 고요히 모습을 감춘다.다음날 아침, 낡이 밝기가 무섭게 우리들은 또 다시 마을로 되돌아갔다. 이미, 이곳은 마을이라 보기는 힘들 정도로 마을의 모습을 잃었지만, 언제까지나 이곳에서 사람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그들은 아직 이곳에 남아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곳에 없겠지만, 저 멀리 어느 곳에서도 이곳을 기억하는 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다신 이곳에 올 수 없겠죠? 잠깐이였지만, 그래도 정이 든 곳이였는데 ….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않는지, 로빈의 얼굴엔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그녀의 말대로 잠깐이였지만, 이곳에서 알게된 것은 일주일의 고난에 비하면 썩 좋지않은 성적이지만, 후회는 없다. 이미, 이 세상은 우리들을 기다려주지않으니까." 또 한번, 올 수 있을거야. 이곳에 우리들이 찾는 진실이 존재한다면. "" 정말, 그럴까요? "" 응, 그럴꺼야. "어느세 로빈의 얼굴엔 바알간 미소가 번졌다. 이제 더 이상의 미련은 없겠지." 그럼, 가볼까? 다음 우리의 목적지인 ' 아련 마을 ' 로! "그렇게 우리들은 다음 목적지인 아련 마을로 향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아쉽게도 두번째 마을인 이곳에선 별 다른 수확을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내가 찾던 쿠피디타스의 존재를 알게되었고, 아련 마을 역시, 쿠피디타스를 가지고 있을거란 확실이 선다. 비록, 이곳에선 쿠피디타스를 찾진 못했지만, 우리들의 목적은 쿠피디타스를 손에 넣는게 아닌, 쿠피디타스의 기원이니까." …. "다만, 그것으로 인해 사로이와 한 약속이 자꾸만 내 옆구리를 찔러오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해낼 수 있을거다. 정말로 내가 하는 일에 악이 없다면, 분명히 해낼 수 있을거다. 그러니, 포기하지말자.“ 과거를 본 소감은 어떻지? 지금껏 알 수 없었던 사실을 알게되어 기쁜가? ”“ … 아니, 그런 감정이 있을리가 없잖아. ”“ 그렇담, 네가 느낀 소감을 말해주겠나? ”“ …. ”난, 그저 내 자신을 원망할 뿐이다. 절대로 꾸어서는 안될 악몽으로 돌아온 것이 나에 큰 업보다.이때는 아마도 한달 전의 이야기, 아니 정확히는 길을 떠나려던 보름 전의 일이다." 저, 루에르 씨. 혹시, 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거에요? "" 갑자기 그런건 왜 물어봐? "평소와는 달리 무언가를 궁금해하는 로빈의 물음에 살짝 당황한 나는 어색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고, 나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에 더욱 의심의 눈초리가 깊어진 듯한 로빈이 다시금 내게 묻는다." 역시나, 무슨 일이 있었군요. 근데 왜 저한테 그 사실을 숨기시는거죠? 전에 저와 약속하지않으셨나요? "전에 했던 약속까지 들먹이며,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는지 로빈의 눈은 날카롭게 변하며 금방이라도 나를 꿰뚫을 기세로 노려본다. 그런 모습의 로빈을 보며 머리를 긁적거리던 나는 한 숨을 내쉬곤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다지, 숨기려했던건 아니야. 단지, 말하고 싶지 않아서 말을 안한 것 뿐이야. 로빈이 왜 그렇게 궁금해하는지 알겠어. 로빈한테는 그리 긴 시간은 아니였지만, 나에게는 그 수배에 이르는 시간을 걸어다녔지.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겪은 일들을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니 궁금한 것도 당연해. 하지만, 지금은 별로 그 사실에 대해 말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 그러니까, 로빈. 조금만이라도 내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 좀 줄 수 있을까?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간 있었던 사정을 나중으로 밀어달라는 말을 로빈에게 하며 슬쩍 로빈을 쳐다봤다. 내 얘기를 듣던 로빈은 그저 한숨을 내쉬며 덩달아 내 옆에 주저 앉으며 나를 슬그머니 쳐다본다." 알았어요. 그렇게 말하기가 어렵다면, 조금은 기다릴게요. 하지만, 꼭 저한테 말씀해주셔야해요? "" 응, 알았어. 미안해. "다행이 로빈은 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줬다. 금세 나를 보며 눈웃음을 짓는 로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밖으로 나갈까? 날도 어느 정도 밝은 것 같은데. "" 그리고보니 사로이 씨가 잠시 루에르 씨를 뵙고 싶다고, 커다란 고목이 있는 곳으로 와달라고하던데 …. "사로이가 나를 부르다니, 이거 의외인걸. 하지만, 나를 부른다는건 분명 무언가를 알고 싶기 때문에겠지. 그렇지만 그 녀석이 내게 무엇을 물어볼지는 예측이 안 가는군." 그럼, 잠시 사로이한테 갖다올게. "로빈에게 인사를 하며, 사로이가 있는 고목으로 걸어갔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마키 족과, 그 틈 속에서도 무럭 무럭 자라는 아이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도 벌써 이렇게 나이가 먹은건가, 전에는 애들을 봐도 입꼬리는 커녕, 별 감흥도 없던데. 그런데, 아직 나는 아이를 가질 나이는 아니잖아? 뭐, 예전 같으면 이미 있어도 이상하진 않지만.' …. '내가 갑자기 무슨 헛소리람.고목으로 다가온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사로이의 시선이 느껴진다. 평소 때와 같이 잘려나간 나무 위에 앉아있던 사로이가 내가 왔음을 알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곤, 옆에 꽂혀있던 창 하나를 집어 들어 내게 던진다. 발 밑으로 내동댕이 쳐진 창을 별 의심 없이 집어든 나에게 사로이가 다가온다." 잠을 잘 잤나? 얼굴을 보니, 그리 깊은 잠은 못 잔 것 같지만. "" 그런 인사를 하려고 아침부터 나를 부른건 아닌 것 같은데. "" 역시, 눈치는 빠르군. 내가 네 녀석 낯짝을 볼 이유는 이미 알고 있지 않나? "" ….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는건가. 자신이 모르는 진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알고 있다는걸 그리 탐탁치않게 생각하는거군. 물론, 나 또한 그 기억이 남아있는 한에는 편히 잠을 못 이룰 것 같지만." 전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아직 그 일에 대해 말하고 싶은 마음도, 그 일에 대해 생각도 하기 싫다. 그런데도 나에게 그 기억을 끄집어낼 생각인가? "매섭게 나를 쳐다보는 사로이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사로이는 깊은 한 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창을 바닥으로 내팽개치며 자리에서 물러났고, 나 역시 들고 있던 창을 바닥에 내려놓고 사로이에게 다가갔다." 물론, 네가 나에게 그 일들을 말해줄지는 네 선택이다. 내가 강요해봤자, 나오는건 너의 불만과 불평 뿐이겠지. 더군다나, 내가 그 사실을 알아야할 필요는 없다. 그저, 한 시대를 그었던 선조의 모습을 알고 싶었던거다. 그러나, 네 녀석이 말을 꺼내지 않는 이유는, 뭔가 그 시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얘기겠지. 그렇지않다면, 네가 나한테까지 입을 꾹 다물 이유는 없지. "" 어떻게 그걸 장담할 수 있는거지? 너는 물론이며, 나 역시 네 녀석을 신뢰하지않는다는걸 잘 알텐데. "" 네 말대로 나는 네 녀석을 신뢰하지도, 네 따위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 한들, 내 마음은 흔들리지않아. "역시, 이 녀석은 아직도 나를 의심하는 모양이군.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단, 너와 나는 친구이므로, 꺼내기 힘든 말이 있어도, 서로 공유할 수 있을까해서 물은 것 뿐이다. 그것 말고는 너에게 바라는건 없다. "' . '훗 … 역시, 그런건가? 자기 말로는 나를 도와준 적도, 나타난 적도 없다곤 했지만, 한편으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때 내가 본 환상들도 다 거짓이 아니였다는 말이겠군. 그렇다는 말은 나한테 있었던 일은 모두 알고 있음에도 내 입으로 그때의 상황들을 스스로 말할 기회를 주는건가? 나에게 짊어진 무거운 짐을 덜어낼 수 있도록 말이야.' …. '전혀, 이 녀석 답지 않는 행동을 하는군 …. 그다지, 감동적이진 않네." 왜 그러지? 갑자기 무슨 좋은 일이라도 떠오른건가? "" 아니, 그다지 요근래 좋은 기억은 없으니, 그저 실 없다고 생각해. "" 아무튼, 이제 어떡할 생각이지? 네가 알고 싶었던 과거의 일을 보여줌으로써, 너의 목적은 달성했다. 그렇다면, 목적을 달성한 너에겐 이제 남은게 무엇이지? "' ! '그리고보니, 요근래에 기분이 착잡했던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란과 했던 약속 때문에 일방적으로 기분이 씁쓸했던게 아니야. 더 이상 내가 할 일이 없기 때문이지. 내가 알고 싶었던 세상의 진위도, 과거에 일어났던 참혹한 비극 또한 나는 사로이의 도움으로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무엇을 알아낼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 하지만, 아직 너는 모든 진실을 알아낸건 아니다. 너는, 네 녀석이 알아야할 진실들 중 1/3 밖에 오지 않았어. "' . '… 1/3 밖에 오지 않았다고?' ! '그래, 그래 맞아. 나는 아직 모든 진실을 안게 아니야. 내가 알아낸 진실은 그것 중 아주 소수의 이야기일 뿐. 아직 끝난게 아니야. 아직 나에겐 파헤쳐야할 진실이 무수히 남아있어!" 그런데, 어떻게하면 그 진실을 알 수 있는거지? 더 이상, 너는 나를 도와줄 수 없는 것 같은데. "" … 너는 몰랐겠지만, 아니, 나 말고는 그 누구도 몰랐겠지만. 사실, 전사들의 영혼은 하나가 아니다. "… 뭐? 쿠피디타스가, 하나가 아니라고 … ?' ! '그래, 맞아. 그때, 라셀과 얘기했던 대화들 중에.“ 오오, 이게 미래에서 루에르가 가져왔다는 메달인가? 정말, 똑같이 생겼네. ”“ 너는 어디서 이 메달을 봤던거야? 마을사람들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메달의 존재도 모르던데. ”“ 뭐? 아하하, 당연히 봤지. 이래뵈도 난 수색꾼이라고. 마을 곳곳을 수색하다가 우연히 봤지. ”라는 말을 했다. 그때는 그리 깊게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사로이의 말을 들으니 확신이 선다. 그때, 분명히 라셀이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때 라셀은 우연히 마을 주변을 수색하다 발견했다는 말에 의심을 하지 않았지만, 그 전에도 분명.“ 쿠피디타스라면 그 조각의 원본체는 말하는건가? ”“ 그렇다. ”“ 그렇다면 그리 이상한건 아닌데? 다른 마을에서도 그 쿠피디 뭐시기 같은걸 아는 사람이 많다고. ”라는 말을 했다. 그래, 분명히 그때 라셀은 ' 다른 마을에도 쿠피디타스를 아는 사람이 있다. ' 라고 말했다. 그 말로 인해, 나는 마우 마을 말고 또 다른 마을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고, 그 사람들 또한 쿠피디타스의 존재를 안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마우 마을에 있는 쿠피디타스를 말하는 줄 알았는데 …. 라셀이 말한건, ' 다른 마을에도 쿠피디타스가 있다. ' 라는 말이였던건가? 그렇다는건, 다른 곳에도 마키 족이 갖고있는 쿠피디타스가 있다는 말이 되는건가? 그렇다는건, 아직 나에겐 남아있는 진실들이 있다는거지." 전사들의 영혼에서 ' 들 ' 이라는 단어를 보면, 내가 한 말을 믿게 되겠지. 그 역시, 다른 곳에도 전사들의 영혼이 있다. 물론, 그들은 쿠피디타스라고 하지만 말이다. "" 그런데, 그 말을 굳이 내게 하는 이유가 뭐지? 다른 부족원들에게도 알리지 않는 사실을, 왜 나 같은 외부인한테 하냔 말이다! "다른 부족원들에게 숨긴걸 보면, 무지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 말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나한테 말한 의도가 뭐지? 왜, 하필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그런 말을 한거냔 말이야. 나는 사로이를 노려보며 자리에 멈춰섰고, 조용히 나의 시선을 마주치던 사로이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쓸쓸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돌린다." … 글쎄. 나는 단지, 너한테라도 위로를 받고 싶었던걸지도 …."" 뭐 … ? "사로이는 이해 할 수 없는 말을 하며 천천히 산 아래로 내려갔다. 처음 보는 사로이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 나는 멍하니 그 자리에 멈춰서서 물끄러미 하늘을 쳐다봤다." … 후우. "네 녀석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나한테 너무 그런 짐을 주지 마라. 지금도 여차 여차해서 마음을 좀 가라앉히려하는 녀석한테 그런 말까지 하면, 내가 미안해서 어떡하냐 …. 네 녀석이 그런 모습을 보일 정도로 내가 너에게 그만큼의 신뢰가 있는거냐?" …. "겉으로는 표현하지않지만, 네 녀석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싶었던거냐. 하지만, 마키 족이란 족장의 자리에 있는 너에겐 그런 약한 모습은 보일 수 없는거겠지. 이해는 한다만, 그렇다고해서 나한테 그런 짐을 덜지말아라. 네가 생각하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무게의 차이가 다르니까 ….한달이란 시간은 길고도, 나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상의 나날이였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기억을 가슴에 안고 지내기는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고 싶지만, 뻗을 상대는 이미 이곳에 존재하지않는다. 이곳에 남아있는건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 뿐. 심지어, 로빈 역시 내 곁에 머물지 않았다.「 쾅 - !」미쳐버리겠다. 머릿 속이 복잡해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잊고 싶다. 잊을 수만 있으면 금방이라도 그 사실을 잊을 수만 있다면, 내가 이토록 밤잠을 설쳐가며 악몽에 시달릴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머리가 나쁘다면, 그 기억 또한 잊혀지고 또 다시 평소와 같은 날로 돌아갈 수 있는걸까? 모르겠다. 심지어, 이 세상으로 돌아온 나는 그럴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잊으려해도 다시 내 기억 속으로 찾아와, 나에게 죄책감을 물려주고 가는 그의 뒷모습을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부디,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 ”젠장 … 젠장, 젠장, 젠장 ― !! 왜, 나는 그 시간에 올 수 밖에 없었는가. 아직, 내가 해야할 일이 남아있음에도 왜 내 생각은 물어보지도않고 마음대로 이곳으로 데려놓느냔 말이다. 마음대로 나를 그곳에 보냈으면, 갈때라도 내 의사를 물어보지. 왜, 왜, 그런 시간 때에 나에게 이런 비참한 기억을 안게 하냔 말이야 ….' …. '후회해도 소용 없다. 그걸 잘 아는데도 그리 쉽게 포기가 되지 않는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음에 나는 지금도 절망에 빠져있다. 나 자신을 원망해도 소용 없는 그 날의 기억은 영원히 내 곁에 머물고, 또한 나 역시 하루가 다르게 초췌해져가겠지 ….' . '내가 죽기 전까지는 …." 늦은 시간에 이곳에 오다니,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건가? 루에르. "잿빛산 정상에서 멍하니 달을 바라보는 내 뒤로 사로이가 다가오며 말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멀뚱히 하늘을 바라보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사로이는 묵묵히 내 옆으로 걸어오며 말한다." 이곳에서 보는 달빛은 아름답다. 태양보다 빛나고, 태양보다 많은 기쁨을 주지. 이 또한, 이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경이다. 어때, 볼만한가? "내심 미소를 짓는 듯하면서도, 조금은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그의 말에도 나는 아무 말 없이 긴 한숨을 끄집어내며 자리를 피했다." 만약,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를 보여줄 수 있겠나? "' ! '" 만약, 너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 그. 그게 대체 무슨 …. "발걸음을 멈추고 황급히 뒤를 돌아보며 사로이를 쳐다보자, 사로이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조용히 달빛의 몸을 담근다. 밤 하늘에 무수히 담긴 별들이 달빛에 가려져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그 자리에 있 듯이. 사로이 또한 그들의 모습을 띄며 내 앞에 있다. 그의 얼굴에는 수많은 갈등과 오해 담겨있는 미소를 지으며 슬쩍 내 쪽을 돌아본다." 나는 너에게만은 그런 슬픔을 주고 싶지 않군. 내가 느꼈던 그때의 업적을, 너 또한 느끼는걸 원치않아. 분명, 우리들은 아무런 관계도 상관은 없다. 그러나, 그 표정만은, 그 표정만은 너한테서 보고싶진 않다. "이해 못할 말을 하며 사로이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고, 그가 사라진 벼랑 끝에 다가선 나는 가슴에서 타오르는 연기를 뱉으며 하늘을 바라보던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움직이며 서서히 그곳을 벗어났다.아련 마을로 향하던 우리들은 늦은 밤을 지세기위해 가까운 풀숲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깊은 밤일수록 쌀쌀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모닥불마저 꺼지는 날씨는 꽤나 우리들을 성가시게한다. 추위에 약한 로빈의 떨림이 나한테까지 느껴지니, 나는 조용히 로빈을 꼬옥 안아주며 모진 바람을 피하기에 급했다. 빼곡히 자리 잡은 나무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인정머리 없는 바람들은 나무 속을 비집고 들어와 우리를 헤치며 사라졌고, 그럴 수록 커지는 피로가 조금씩 나의 눈꺼풀을 감기게 한다. 이 날씨에 그대로 잠들면, 다음에 일어날땐 이 세상이 아닐텐데, 그 점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건 어찌해야할까 …." 루. 루에르 씨 …. "부들 부들 떨며 내 품에 안겨있던 로빈이 떨리는 손으로 무언가를 건네주며 슬그머니 내 품에서 나온다. 이 추위에 어디론가 가려는 모양인 듯, 그녀는 바닥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런 로빈을 바라보던 나는 어딜 가려는 생각이냐며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그녀의 표정이 보였다." … 로빈. "후우, 내 기분만을 생각하여 로빈의 마음도 심란하게 만들고 말았군. 이제는 하지 말아야지 했었음에도 계속 반복되는 이 패턴에 인해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져만 가는 세상에 비례한 듯, 나의 마음의 무게조차 그녀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미안하다 사과를 해도, 그것은 내 마음 속의 사과일 뿐, 그녀를 대면할 때에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소리 없는 죄책감에 빠질 뿐이다. 이제는 이러지 말아야지 해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나 또한 하루가 달리 지쳐만 간다. 로빈은 자리에서 멈춰섰다. 홧김에 일어난건지, 아님 나의 모습은 맨정신으로 볼 수는 없었는지, 그녀의 다리를 부들 부들 떨리고 있었다. 나는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차갑고도 떨리는 손을 차마 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로빈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녀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녀를 꼬옥 안았다." … 이제 다신, 후회 따위 하지않아 …. 이미, 내겐 지나간 기억일 뿐이니까 …. "깨어진 달빛 속, 불어닥치는 바람과 함께 나의 몸 또한 휘날린다. 펄럭이는 머리카락 뒤로 보이는 수 많은 잡념의 생각들이 모래알처럼 부스러지며 저멀리 사라진다. 잊으려곤 했다. 그러나 잊을 순 없었다. 그 날의 기억은 평생토록 내게 짐을 짊어지게 할테니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다시 한번 그곳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으니까. 지금 내가 해야할 일도 바쁜 이 시기에 나는 또 다른 누군가의 부탁을 받으며 하루하루 고달프게 지난다. 펑펑 울어서 그 일들을 모조리 다 재끼고 싶어도, 나의 마음은 그러한걸 원치않는 듯, 파고드는 가시처럼 따끔거리는 나의 심장이 하루가 달리 두근거릴 뿐이다. 로빈의 목소리도, 그의 한이 담긴 외침에도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는 내 자신이 미워지며, 원망스럽게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뭔가가 나아질 리는 없다. 이미. 그 일들은 되돌릴 수 없는 기억이며, 영원히 기억될 그 날의 참혹한 현실이니까. 더 이상, 내 자신이 증오를 일삼아봤자, 전혀 나아질 일은 없다.“ 부디,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 ”… 전혀, 개운치가않아 ….“ 이 세계에는 여러 종류의 전사들의 영혼이 존재한다. 더군다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들을 각기 다른 성질 뿐이라, 그들이 어떤 특정한 장소에 하나되어 모이면, 이 세상이 뒤틀리고, 이내 세상을 파멸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마, 1년 전에 있었던 그것들도 아마, 그들이 하나로 모였기에 일어난 일이겠지. 하지만, 내가 정상에 올라가 전사들의 영혼을 확인했을 때는, 이미 그곳엔 전사들의 영혼이 놓여져있었지만. 그러나, 전사들의 영혼은 온전한 모습이 아니였지 …. 지금에 반쪽으로 갈라진 조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을 뿐. 우리들은 결국, 전사들의 영혼에 나머지 부분을 찾지 못했다. “현실로 돌아온 쿠피디타스의 모습은 내가 과거로 떠나기 이전의 모습 그대로 잿빛산 정상에 고이 놓여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의 흐름이 바뀐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사로이가 조각을 들던 순간부터였을거다. 그때부터 나와 로빈은 허겁지겁 잿빛산을 내려와 루에르 마을로 향했고, 그곳에서 메달의 나머지 조각을 발견했지. 그런데 그게 현실이 아닌 가상에 일이였다니 …. 너무나도 생생해서 그런 생각은 한번도 못했는데, 이미 우리들은 메달에게서 농락을 당하고 있던건가.“ 반이 잘려나갔다해도 그 본질을 달라지지않지. 네가 알다시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사들의 영혼의 능력은 ' 시간이동 ' 이다. 뭐, 도시인들에겐 ' 타임머신 ' 식으로 이해하면 좋겠지. 네가 알고 싶던 과거보다 그 이전의 과거로 떨어진건 아마도 반쪽으로 나눠진 메달의 불균형으로 인해 오작동을 일으켜 그러한 일이 벌어진 것 같다. 하지만, 그 덕분에 더 좋은 사실들을 얻게 되었지만. ”“ 그렇다는건, 메달의 나머지 조각을 찾아 하나로 만들면, 시간조각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 그렇다. 시간조각은 물론이며, 네가 알고 싶어한 진실들을 모조리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렇기위해서는 나머지 부분을 찾아야하지만 말이다. 지금껏 우리 마키 족이 발견하지 못한 나머지 조각의 행방을 알 수 있나? ”사로이가 슬쩍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그는 내가 쿠피디타스의 나머지 조각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을거라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고, 나는 그런 사로이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물론, 알 수 있다. 메달의 나머지 부분은 그곳에 있을테지. 만약, 내가 그것을 가져온다면, 나를 다시 과거로 보내줄 수 있어? ”“ 그렇다. ”“ 마키 족이란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 ”“ 맹세한다. 네가 나에게 그 조각을 갖다준다면, 나는 너를 도와줄 것이며. 하물며, 너에게 도움을 줄 것을 약속한다. 이거면, 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한달이란 시간은 길고도, 나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상의 나날이였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기억을 가슴에 안고 지내기는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고 싶지만, 뻗을 상대는 이미 이곳에 존재하지않는다. 이곳에 남아있는건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 뿐. 심지어, 로빈 역시 내 곁에 머물지 않았다.「 쾅 - !」미쳐버리겠다. 머릿 속이 복잡해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잊고 싶다. 잊을 수만 있으면 금방이라도 그 사실을 잊을 수만 있다면, 내가 이토록 밤잠을 설쳐가며 악몽에 시달릴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머리가 나쁘다면, 그 기억 또한 잊혀지고 또 다시 평소와 같은 날로 돌아갈 수 있는걸까? 모르겠다. 심지어, 이 세상으로 돌아온 나는 그럴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잊으려해도 다시 내 기억 속으로 찾아와, 나에게 죄책감을 물려주고 가는 그의 뒷모습을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부디,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 ”젠장 … 젠장, 젠장, 젠장 ― !! 왜, 나는 그 시간에 올 수 밖에 없었는가. 아직, 내가 해야할 일이 남아있음에도 왜 내 생각은 물어보지도않고 마음대로 이곳으로 데려놓느냔 말이다. 마음대로 나를 그곳에 보냈으면, 갈때라도 내 의사를 물어보지. 왜, 왜, 그런 시간 때에 나에게 이런 비참한 기억을 안게 하냔 말이야 ….' …. '후회해도 소용 없다. 그걸 잘 아는데도 그리 쉽게 포기가 되지 않는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음에 나는 지금도 절망에 빠져있다. 나 자신을 원망해도 소용 없는 그 날의 기억은 영원히 내 곁에 머물고, 또한 나 역시 하루가 다르게 초췌해져가겠지 ….' . '내가 죽기 전까지는 …." 늦은 시간에 이곳에 오다니,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건가? 루에르. "잿빛산 정상에서 멍하니 달을 바라보는 내 뒤로 사로이가 다가오며 말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멀뚱히 하늘을 바라보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사로이는 묵묵히 내 옆으로 걸어오며 말한다." 이곳에서 보는 달빛은 아름답다. 태양보다 빛나고, 태양보다 많은 기쁨을 주지. 이 또한, 이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경이다. 어때, 볼만한가? "내심 미소를 짓는 듯하면서도, 조금은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그의 말에도 나는 아무 말 없이 긴 한숨을 끄집어내며 자리를 피했다." 만약,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를 보여줄 수 있겠나? "' ! '" 만약, 너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 그. 그게 대체 무슨 …. "발걸음을 멈추고 황급히 뒤를 돌아보며 사로이를 쳐다보자, 사로이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조용히 달빛의 몸을 담근다. 밤 하늘에 무수히 담긴 별들이 달빛에 가려져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그 자리에 있 듯이. 사로이 또한 그들의 모습을 띄며 내 앞에 있다. 그의 얼굴에는 수많은 갈등과 오해 담겨있는 미소를 지으며 슬쩍 내 쪽을 돌아본다." 나는 너에게만은 그런 슬픔을 주고 싶지 않군. 내가 느꼈던 그때의 업적을, 너 또한 느끼는걸 원치않아. 분명, 우리들은 아무런 관계도 상관은 없다. 그러나, 그 표정만은, 그 표정만은 너한테서 보고싶진 않다. "이해 못할 말을 하며 사로이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고, 그가 사라진 벼랑 끝에 다가선 나는 가슴에서 타오르는 연기를 뱉으며 하늘을 바라보던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움직이며 서서히 그곳을 벗어났다.아련 마을로 향하던 우리들은 늦은 밤을 지세기위해 가까운 풀숲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깊은 밤일수록 쌀쌀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모닥불마저 꺼지는 날씨는 꽤나 우리들을 성가시게한다. 추위에 약한 로빈의 떨림이 나한테까지 느껴지니, 나는 조용히 로빈을 꼬옥 안아주며 모진 바람을 피하기에 급했다. 빼곡히 자리 잡은 나무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인정머리 없는 바람들은 나무 속을 비집고 들어와 우리를 헤치며 사라졌고, 그럴 수록 커지는 피로가 조금씩 나의 눈꺼풀을 감기게 한다. 이 날씨에 그대로 잠들면, 다음에 일어날땐 이 세상이 아닐텐데, 그 점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건 어찌해야할까 …." 루. 루에르 씨 …. "부들 부들 떨며 내 품에 안겨있던 로빈이 떨리는 손으로 무언가를 건네주며 슬그머니 내 품에서 나온다. 이 추위에 어디론가 가려는 모양인 듯, 그녀는 바닥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런 로빈을 바라보던 나는 어딜 가려는 생각이냐며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그녀의 표정이 보였다." … 로빈. "어느 틈엔가 나는 로빈에게 큰 폐를 끼치고 있었던건가, 바보 같이 나 혼자면 됬을텐데 왜 나는 그녀까지 이끌어오면서까지 그렇게 아파해도 되는거였나? 그럴 수록 힘든건 내가 아닌 로빈이란걸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나일텐데도, 아직까진 나도 철부지 어린애란건가. 세상은 변해도, 변하지않는게 딱 하나 있다는데 그게 바로 나를 뜻하는거였나." 미안해, 로빈. 더 이상 너를 힘들게하지 않겠어.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그러나, 이내 따스한 온기가 감도는 그녀의 손 끝에 나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닫아본다. 지금 내가 해야하는건, 란과의 약속이 아닌. 쿠피디타스에 대한 것 뿐. 모든건 다 그것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란의 일도, 그 이후에 생긴 암흑의 비극 또한 그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한낱, 그런 감정 하나로 사로잡혀 이런 행동을 보였다면, 분명 란은 나에게 실망하겠지. 그때 란이 내게 말한건 자기 자식을 부탁한 말이 아니야. 그 속 뜻을 지금에야 밝힌 나도 우습지만, 그때 란이 내게 했던 말은 바로 이거야.“ 부디, 비밀을 밝혀주게, ”이 말이 맞을진 모르겠지만, 란이 내게 그런 말을 한 이유는 이거 밖에 없겠지. 이 또한 로라를 지킬 방법으로 알고 있었을테니까. 내가 생각했던 란은 이미, 내 위에 웃돌았고 그가 생각하는 생각은 모든건 통달했을테니까. 그러니, 더 이상 내 안에 어둠에 갇혀있지말자. 나는 짧은 시간이나마 이런 행동을 하며 시간을 제치하는 것조차 우습다. 바보 같이 굴지 말자. 아직, 모든게 끝난게 아니니. 그저, 란의 죽음은 시작에 불과했을테니까.그 이후, 짧지만 긴 시간이 흘러 도착한 아련 마을. 아련 마을에 외관은 다른 마을과 별 다른 점을 못찾을 평범한 마을이였다. 다만, 지난번 마을과는 달리 몇몇의 사람들이 그 마을에 살고 있다는 점 밖에 차이는 없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온통 근심과 슬픔 뿐, 웃음을 짓는 사람도, 미소를 띄는 사람도 없는. 말 그대로 산 지옥인 마을. 하지만, 그곳엔 우리가 찾는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을 찾기 위해 우린 여기까지 왔고, 그 비밀을 깨닫기위해 지금껏 걸어왔다. 잿빛산을 떠나기 전, 사로이가 내게 남긴 그 한마디는 과연 무엇이였을까. 그가 결코 내게 하고 싶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 말을 기억하기 위해선 여기에 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니, 더 이상 바보 같은 생각에 좌지우지하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가자. 그래야만, 이 악몽 또한 떨쳐낼 수 있을테니까.“ 결코, 너는 그 진실을 파헤칠 수 없다. 파헤치기 위해선, 자신의 뭔가를 바치지않으면 안돼. 그 무언가를 바칠 때 쯤 너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을테지. 무운을 빈다. 루에르. ”아련 마을 안으로 들어선 우리를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듯이,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외부인들을 그리 달갑게 맞이할 사람들은 없을테니까. 잔뜩 움추러든 몸뚱이를 이끌며 서서히 우리들의 눈 앞으로 다가오는 마을사람들. 그들의 눈에는 한이 맺혀있는 듯 싶었다." 너희는 누구지? 누군데 감히 이 땅에 발을 디디는 것이냐!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나타난 한 남자의 눈은 매서웠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잔뜩 힘이 들어간 그의 모습에, 옆에 있던 로빈이 살짝 놀란 듯 내 옆에 찰싹 달라붙는다." 이 마을의 용건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 우린 너희들에게 용건 없어. 그러니 당장 사라져! "우리의 말을 들어보지도않으려는 사내가 등을 돌리자, 주위에 서성거리던 마을사람들 역시 자리를 피한다." 쿠피디타스에 관한 얘기를 듣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덩달아 주변에 있던 마을사람들의 얼굴엔 가득 놀라움이 묻어나있었다. 역시나 이들도 쿠피디타스에 알고 있는거다. 그 어르신에 말씀은 틀리지않았어. 역시나 이곳엔 쿠피디타스가 존재했던거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거지? 그건 우리 마을에 있는 것인데, 어찌하여 너희들이 알고 있냔 말이다! "그의 호통소리에 마을사람들이 잔뜩 겁을 먹은 모습으로 살짝 뒤로 물러난다. 나는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며 당당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쿠피디타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 어떻게 본거지? 그것은 너희들 같은 녀석들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물건인데. "그는 의아스러운 말투로 물어봤다. 그들은 우리에 말을 믿지 못하는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한껏 경계했고, 그들의 눈초리에 로빈은 움추러든 몸을 뒤쪽으로 숨기며 숨을 죽인다." 다른 곳에 있는 쿠피디타스를 손에 쥐어본 적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것으로 저는 과거까지 다녀왔었고요. 저희들은 단지 이 마을에서 알고 싶은게 있어서 여기까지 온겁니다. 그러니, 부디 저희들에게 자그마한 정보라도 알려주십시오. "그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의 표정은 아까보다 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와 로빈을 한바퀴 돌며 훑어본다. 마을사람들의 표정도 그리 좋지만은 않다. 잔뜩 경계를 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관례에 지나지않다. 이것만 버티면 우린 여기서 쿠피디타스에 대해 들을 수 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참자. 아직 이들은 우리를 믿지않는 것 같으니." 절대 안돼. "" 네? "" 너희들 말을 믿을 것 같으냐? 아니, 절대로 믿지않아. 하물며, 너희 같은 외부인 따위한테 그런걸 알려줄 생각은 없어! "그의 말은 단호했다. 간결하면서도 묵직한 그의 말에 나는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를 노려보며 자리를 떠났고, 가만히 이 모습을 지켜보던 마을사람들 역시 각자 하던 일을 마저 시작한다. 로빈과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있었고, 나는 떨리는 주먹을 살포시 짖누르며 마을 밖으로 걸음을 돌렸다." 저기, 잠깐만요! "어디선가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며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봤고, 그곳에는 분홍색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있는 한 소녀가 숨을 헐떡이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늘면서도 고운 음색에 자칫 이성을 잃을 뻔했던 나를 로빈이 흔들며 유혹에서 헤어나왔다." 우리한테 할 말이라도? "나는 소녀에게 물었고, 소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힘겹게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우리 앞으로 걸어온다. 소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긴 생머리에 밝은 색의 갈색빛을 띈 소녀의 머리카락에선 좋은 향기나 나는 듯 했다." 쿠피디타스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 하셨죠? "" 아, 그렇긴한데 그건 갑자기 왜 … ? "궁금한 듯이 물어보는 나의 얼굴이 웃긴지, 소녀가 새침한 웃음을 지으며 나의 손을 이끌었다." 그거라면 제가 알려드릴게요. 이쪽으로 오세요. "남의 의사를 물어보지않는건 이 마을사람들과 꼭 닮았지만, 소녀는 왠지 모르게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싸늘하면서도 음침한 분위기까지 감돌았던 마을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며 흡사 재래시장에 온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소녀는 가벼우면서도 촐싹대는 것처럼 보이는 발걸음을 하며 나와 로빈을 한바퀴 둘러보며 미소를 짓는다." 아까 전엔 많이 놀라셨죠? "" 뭐, 그런 인사는 이곳 저곳에서 많이 당해봐서 익숙해지긴 했는데 …. "멋쩍으면서도 쑥스러운 듯 웃는 나를 보며 소녀 또한 덩달아 웃는다. 내 옆에 달라붙은 로빈의 얼굴은 한층 굳어간다." 행색을 보아하니, 여행객이신가봐요. 아님, 모험가? 하하, 요즘 시대에 모험가라니, 낭만 있네요.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는 소녀를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을 보고나서부터 한층 내가 이상해지는걸 느꼈다. 내가 이런 생각에 빠질 수록 로빈의 심기는 불편해지는 듯 보였다.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면서도, 그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마을 안에 들어서기 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조금은 불편한 듯, 어색한 느낌이다. 어디론가 우리를 데려가던 소녀가 갑작스레 발걸음을 멈추고 슬그머니 나와 로빈을 돌아보더니 싱긋 웃으며 내게 묻는다." 그런데 … 정말, 과거에 가보신 적이 있어요? "' ! '소녀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여느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않는 명랑한 목소리로 말을 걸던 소녀와는 달리, 소녀의 목소리에는 잔뜩 날이 서있는 듯 싶었다. 갑자기 상황이 변하고 주위에 공기가 스산해지자, 로빈 역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황급히 나의 팔을 붙잡으며 뒤로 물러선다. 소녀는 이내 입꼬리를 귀까지 찢으며 나와 로빈 앞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난, 널 알아. 그런데 넌 날 몰라 … ? "소녀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다가왔고, 어느 틈에선가 소녀의 눈가에는 검붉은 눈물이 흘러내리며 흙투성이에 바닥을 붉게 물들이며 번져갔다. 나와 로빈은 소녀가 다가올 수록 뒤로 물러서며 소녀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물러나면 물러날 수록 소녀는 더욱 더 우리와 가까워져갔고, 아까 전까지는 분명히 존재했던 마을사람들의 모습 또한 보이지않는다. 이상함과 의문 속에 점점 마을 막다른 곳으로 빨려가는 듯이 다다른 길에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소녀는 방긋 웃으며 질척한 발을 이끌고 점점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로빈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나의 팔을 붙잡는다. 비이상적으로 움직이는 팔다리와 끔찍한 몰골로 뒤바낀 소녀의 모습은 차마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모습이였다. 금세라도 팔이 뜯어져나가고, 피가 분출한다해도 이상할게 없는 소녀가 바로 코 앞에서 움직임을 멈춘다.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와 적막감에 분위기는 한층 무거워져만 가던 때, 소녀의 미소 뒤로 번지는 공포가 나를 심히 자극한다." … 나는 분명 너에게 경고했어. 더 이상 내 일을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 갑자기 왜 이러는거야? 정신 차려! "이상행동을 보이는 소녀의 어깨를 흔들며 소리쳐보지만, 소녀는 귀찮다는 듯, 나의 손을 뿌리치며 나의 눈을 쳐다본다. 한치의 미동도 없이 뚫어지게 나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소녀가 씨익 웃으며 내게 말한다." 날 … 잊은거야? 이거, 실망인데 … 이래뵈도 너를 친구로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 "" 뭐 … ? "소녀가 피식 웃으며 내게 말했고, 나는 소녀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 아이를 쳐다봤다. 아까와는 달리 조금은 굵직하면서도, 들어본 적이 있는 듯한 목소리가 소녀의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온다. 분명 나는 저 목소리를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윤곽을 들어내는 목소리에 조금씩 잊혀졌던 나의 기억 속에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 '서. 설마 ….「 콰직 - ! 」소녀의 머리 위로 묵직한 각목을 내리쳤고, 각목이 부러짐과 동시에 방금 전 우리를 마을 밖으로 쫓아내려하던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소녀를 바닥으로 쓰러트리며 황급히 나와 로빈을 막아선다." 당장 여기서 떠나. 다신, 이 마을에 얼씬도 하지 마!! "거칠게 호흡을 하는 그의 말에 나는 아무 대꾸도 없이 로빈의 손을 붙잡고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다. 우리가 그곳에서 빠져나가자 그 남자는 헉헉거리며 아니꼬운 듯한 표정을 짓곤, 바닥에 쓰러진 소녀를 등에 업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갑작스레 돌변한 소녀의 모습에 말문이 막히고 아직까지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더군다나, 그 목소리.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다. 그리우면서도 아픈 듯이 찌르는 통증이 동반되는 소녀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에 빠진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적잖이 놀란 듯한 로빈이 나를 돌아보며 괜찮냐 물었고, 나는 그런 로빈을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마을엔 분명 뭔가가 있어 …. 마을사람들은 그것을 숨기기위해 낯선 이의 출입을 꺼려했던거라고. "직감이다. 나의 뇌리가 이 마을을 스치며 지나간다. 우리에 등장을 그리 달갑게 맞이하지않은 마을사람들. 그들은 무언가에 위협을 받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그 남자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입장이겠지. 하지만,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내 심장은 이 마을에 무언가가 있음을 알리는데, 그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그러나, 아까 그 남자의 행동, 그것은 분명 이 마을을 떠나라는 일침이었다. 하지만, 그 말엔 무언가 속 뜻이 담긴 듯 보였다. 이 마을을 떠나지않으면 안된다는 듯한 그런 속 뜻이." 이제 어떡하면 좋죠? "로빈의 눈동자가 떨리며 내게 더욱 다가왔다. 지금 당장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우열곡적 끝에 이 아련 마을까지 왔다해도 마을사람들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한 상황. 어떻게든 그들의 마음을 열어 우리에게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만, 그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마을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고목나무 밑에 잠시 움직임을 멈춘 나는 조심스레 건너편에 위치한 마을을 다시금 돌아봤다. 우리가 없는 마을은 여간 평화로운게 아니였다. 그들은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는 대신, 무언가에 억압을 당하는게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일 뿐. 그게 진실인지 가짜인지 알기 위해선 그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더군다나, 이 마을에서도 쿠피디타스에 대한 정보를 캐내지 못한다면, 우리들이 지금껏 여기까지 걸어온 보람이 없다.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라고해도 몇가지 되지 않으니까." 하아 …. "나도 모르게 내쉰 한숨은 뿌옇게 공기를 흐리고 이내 바람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갈 수록 날씨는 추워지고, 우리들의 거동조차 불편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 전, 하루 빨리 몸을 움직여서 정보를 얻어야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 어쩔 수 없이 부딪쳐볼 수 밖에 없는건가.' …. '차디찬 땅바닥에 앉아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있다보니, 괜시리 마을 안에서 소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소녀는 분명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이의 목소리로 바뀌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흡사 남자의 목소리로 들릴 수도 있는 낮은 톤에 낯익음은 아직까지도 긴가민가하다. 언젠가 틀림없이 들어본 적은 있는 목소리임에도 왠지 떠올릴 수도, 떠올리기도 꺼려지는 것 같았다. 대체 나는 언제 저 목소리를 들어본거지?' . '순간,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남자의 형상이 갑작스레 내 머릿 속을 지나친다. 하지만, 아직도 뚜렷하지않은 모습에 나는 갈팔질팡하며 조금 더 그 형상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 '아까보다는 더욱 짙어진 모습에 조금씩 나타나는 얼굴의 윤곽이 뚜렷해지며 조금씩 내 가슴을 후벼파는 고통과 함께 나는 그대로 생각을 멈췄다. 부들 부들 떨리는 손과 함께, 고목나무에 맞닿은 등에서부터 차디찬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며 나의 몸은 심히 떨리게 한다. 이 모습을 보던 로빈은 화들짝 놀라며 나를 쳐다봤고,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잊을 수 없던 그날의 악몽을 다시금 일깨운다.“ 더 이상 내 일을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 목소리는 … 리키의 목소리였다." 정말 … 다시 들어가볼 생각이세요? 그 사람이 다시는 마을에 오지 말라고. "" 그렇다고 순순히 돌아갈 수는 없어. 이 마을에서 무언가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지금껏 우리가 했던 일은 모두 헛수고가 되. "날이 저물고 우린 다시 아련 마을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렇게 돌아가기에는 너무 이 마을에는 의심스러운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뭣 때문에 낯선 자의 방문을 꺼리는건지, 왜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말문을 꾹 다물고 있는건지. 그리고 … 그 소녀가 갑자기 왜 그렇게 변했는지. 분명, 이 마을엔 뭔가가 있다. 무언가에 얽혀있기에 이들은 그런 행동을 하며,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는거다. 그들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되면, 우리 또한 이 마을에서 쿠피디타스의 행방을 알게 된다. 그렇게되면 우린 세상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게 되니까.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발걸음은 멈춰선 안돼." 내가 오지 말라 했을텐데.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들을 정도로 멍청한건가? "마을로 들어서려는 순간, 저 멀리서 그 남자가 인상을 한껏 구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아까 전과는 달리 많이 지친 기색이 보이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나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우린 이곳에 볼일이 있어서 온거다. 그 발을 네가 막을 권리는 없지않나? "나의 대차고 당당한 말투에 그 남자는 적잖이 놀란 듯한 미소를 짓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얇게 뜬 눈을 치켜뜨며 나를 쳐다본다." 아까는 존댓말이더니, 이제는 반말인가? 뭐, 그건 상관없다. 그런데 내가 막을 권리가 없다고? 후훗, 어리숙한 녀석 ….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던 남자는 정색을 하며 내게 말했다." 내가 너 같은 녀석한테 그딴 말을 들을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 이유가 있을 필요도 없어. 이 마을은 사람들이 사는 사람이다. 개인의 한 사람이 마음대로 할 권리는 없다고. "" 내가 이 마을의 촌장이라도? "" 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남자는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고, 그 남자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적잖이 당황한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얼굴만을 쳐다보던 나와 그 남자간에 짧은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금 입을 열 수 있었다." 네가 이 마을의 촌장이라고? "" 그렇다면, 어쩔건가? 순순히 물러가기라도 할건가? "" 그건 …. "그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나와 로빈을 쳐다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 어디론가 걸어간다. 나는 아무 것도 해보지도 못한 채, 부동자세를 유지하며 그 위에 설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내게 도움을 준건 모두 다 각 마을의 촌장들 뿐. 그 대부분은 쿠피디타스의 정체조차 모른다. 더군다나, 한 마을에서 촌장의 자리를 지키는 자일 수록 캐물을 거리가 더 많아진다. 하지만, 이번 아련 마을은 그게 조금은 힘들 것 같다. 처음부터 외부인의 출입은 거의 금하다시피하고, 더군다나 마을의 촌장이란 자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극성이니. 이번 아련 마을은 포기할 수 밖에 없는건가 …. 그러나, 이대로 물러서기엔 지금까지 거쳐갔던 일들이 자꾸만 내 등을 떠밀고 있다." 따라오지않을 생각인가? "" 뭐? "그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따라오지않을거냐고 물었다. 내가 촌장이라는 사실을 알고나니 더 이상 내게 반박을 할 생각이 들지 않았나보군. 나는 그런 녀석들을 별로 좋아하지않지. 신분따위 무시하고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너를 잠시동안은 그런 녀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 착각이였나보군. "" 자. 잠깐! "가던 길을 되돌아가던 그를 부르며 나는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었다. 그는 아직도 할 말이 남았냐며 슬며시 나를 쳐다보며 물었고,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게 너의 대답인가? 정말이지 무례하기 짝이 없군. 뭐, 그런 점으로 보면 조금은 더 가까워졌다고는 볼 수 있지만. "" 부탁합니다. 부디, 저흴 도와주세요. "나는 고개를 조아리며 그에게 부탁했고, 그는 나의 모습을 보곤 씨익 웃으며 내 쪽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그는 내 코 앞에서 멈춰서서 나를 쳐다봤고, 나는 그런 그의 시선을 마주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그런 식의 인사는 싫어한다. 벌써 까먹은건가? "그가 내게 물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그에게 말했다." 네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알려줬으면 한다. 만약, 그게 결코 세상 밖으로 나와서는 안될 말이라해도. "나에 굳하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모습을 보며 소리 없는 웃음을 짓는다." 좋다. 너희에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려주도록 하지. "그는 고개를 돌려 앞으로 걸어갔고, 나와 로빈은 그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선진 모르겠지만, 간신히 그를 설득한 듯 싶었다. 이렇게되면 우리가 행하여야할 일들 중 절반에 다가설 수 있을테지. 하지만, 왜 갑자기 그는 우리에게 마음을 연거지? 불과, 몇분 전까지만해도 우리를 마을 밖으로 쫓아내려 안달하던 놈이였는데. 왜 갑자기 이런 호의를 …." 너희에게 내가 가진 정보를 나눠주기 전, 한가지 당부할 것이 있다. "" 그게 뭐지? "" 방금 전에 봤던 일들은 모조리 잊을 것. 그것 하나다. "그는 나와 로빈을 노려보며 그 사실만은 잊으라했고, 나와 로빈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와의 약속을 맹세했다. 방금 전의 일이라면 아까 그 소녀와 관한 일을 말하는건가? 분명, 그때의 소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금방이라도 사람 하나를 죽일 듯한 눈동자로 우릴 쳐다봤지. 그 중에서도 나에게 무슨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어. 더군다나, 그 목소리는." 루에르 씨? "젠장, 또 다시 심장이 두근거리고 몸이 떨린다. 역시나 기억해서는 안될 기억을 되살린게 분명하다. 하지만, 대체 왤까. 왜 나는 그 기억을 되살릴 수록 왜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거지? 아직까진 불분명한 기억임에도 왜 나는 이토록 고통을 받고 있는거지? 왜지? 대체,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거냔 말야.걷던 도중, 자리에서 멈춰선 나는 간신히 내 몸을 지탱하는 다리를 구부리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갑자기 피로가 몰린 것도 아니고, 육체적으로 고통이 온 것도 아니다. 갑자기 전신에 힘이 빠지고 기력을 잃은 듯한 노곤함과 함께 피곤이 몰려온다. 어디론가 우릴 데려가던 그는 나의 상태를 보곤 왜 그러냐며 다가왔고, 로빈은 그에게 잠시 여기서 쉬어갈 수 있냐고 물어본다. 그는 슬쩍 나를 쳐다보곤, 알겠다며 잠시 어디 좀 다녀온다며 급히 어디론가 향한다. 갑작스레 일어난 상황에 로빈도 불안한 듯 내 옆으로 다가왔고, 나는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조금씩 안정을 취해갔다." 루에르 씨, 괜찮으세요? "로빈이 걱정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어, 별거 아니야. 잠시 빈혈이 온 것 뿐이니, 걱정하지마. "로빈을 안심시키려 한 말이였지만, 그게 더 로빈을 불안하게 만들었는지 로빈은 안절부절 못하고 내 곁에만 맴돌 뿐이였다. 그나저나, 방금 전까지 여기 있던 그 남자는 대체 어디로 간건지 아직까지 돌아오질 않는다. 더군다나, 아직 밤이 깊지도 않았음에도 주위에 있는 집들은 온통 불이 꺼진 채, 무거운 공기만을 남겨두고 주변은 공허했다. 이 마을에 처음 올 때부터 느낀거지만, 정말 이 마을엔 무슨 일이 있는걸까? 이상해도 보통 이상한게 아니다. 아무 말 없이 초췌한 몰골로 우리를 쳐다보던 마을사람들,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던 한 소녀가 갑자기 정신이상을 일으킨 것, 더군다나 이 마을에선 사람의 인기척을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다. 사람은 있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질 않고. 마을 안을 가득 채운 집들만이 사람들이 산다는걸 증명할 뿐. 이 마을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질 않는다. 이것들을 나열해서 생각해보면 이런 의문 또한 들게된다." …. "정말 이곳엔 사람이 사는걸까?여간 힘든게 아니다. 회상하냐, 기억하냐에 따른 정신적 피로가 쌓이고 쌓여 이젠 아무런 의욕조차 들지않는다. 추억에 잠기는 것도 이제 그만해도 될텐데. 나는 왜 이리 미련스럽게 구는걸까. 나를 보며 혹시나 건강에 무리라도 갈까 노심초사하는 로빈을 보면서까지 나는 이래야만 하는가.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리고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슬쩍 주위를 둘러봤다. 역시나, 사람의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않는 무(無)의 공간이다. 정말 이곳에 사람이 살기라도 하는걸까? 간간히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 같은게 귀에 들어오지만, 그게 정말로 사람의 목소리라 할 수는 있는걸까. 왠지 계속 이 마을에 머물수록 의문만 커질 뿐이다.얼마 지나지않아 그가 돌아왔다. 그는 한손에 비닐봉지를 든 채로 나타났고, 그 안에서 무슨 약초 같은걸 내게 들이밀며 먹으라고 권유한다. 딱 봐도 씁쓸해보이고 써보이는 모습에 별로 내키지않은 나는 사양을 했지만, 그의 강압적인 표정에 어쩔 수 없이 반 강제적으로 약초를 입에 쑤셔 넣었다." 우욱. "약초가 식도를 타고 위 안으로 떨어지자, 위액이 들끓는 기분이다. 금방이라도 목을 타고 올라온 약초가 위액과 함께 튀쳐나올 것 같은 아찔한 생각까지 든다. 옆에서 쳐다보는 로빈도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가까스로 약초를 삼킨 나를 보며 그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만 자기가 사는 곳으로 돌아가자며 나와 로빈의 발걸음을 이끈다. 어느 틈엔가 구름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달과 함께 촘촘히 박힌 새하얀 별들이 세상을 밝히며 검은 어둠 안에 빼꼭히 몰려있다. 그가 지낸다는 곳으로 가던 와중에도 단 하나의 집도 불을 켜지않은 채, 칠흑 같이 어둑어둑한 방 안에 고요히 멈춰있었다. 대체 이 마을은 왜 이렇게 고요한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은 별로 길진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마을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이다. 대체 무엇이 이 마을을 이토록 조용하고 쓸쓸하게 만들었는지 가면 갈수록 궁금해져만 간다." 저기. "" 뭐지? "" 아까부터 느낀건데, 이 마을은 왜 한 집도 불을 켜지 않는거지? 그렇게 마을 주변이 환한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앞뒤 구분이 안 가는데, 왜 이곳은 단 한 점의 빛조차 켜지않은거냔 말야. "" 단지, 그 뿐인가? "" 뭐? "그가 의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정말로 내게 물어보고 싶은건 그것 뿐인가? "내가 한 말의 모순이 있다는 듯한 말투로 내게 묻던 남자는 고개를 돌려 가던 발걸음을 옮기며 앞으로 걸어간다. 그의 말에 자칫 멍을 때릴 뻔한 나를 로빈은 살포시 손을 잡아 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 말 뜻에 뭔가 담긴 것 같은데. "" 정말 네가 나한테 묻고 싶은게 그거였다면 뭐, 별 다른 뜻은 없다. "" 그러니까, 나한테 무슨 말을 듣고 싶은거냐고!! "그 남자의 앞을 막아서며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의 눈을 주시하며 왼손으로 나의 멱살을 붙잡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큰 소리로 떠들지마. 한번만 더 그랬다간 죽여버릴테니까. "그는 손을 놓으며 나에게 한눈 팔지 말고 똑바로 따라오라며 선두를 서며 앞으로 걸어간다. 잠시 그의 포스에 눌린 나는 벙찐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고, 내 옆에 바짝 달라붙은 로빈은 괜찮냐며 내 걱정을 한다. 방금 저 녀석의 말에는 날이 서있었다. 금방이라도 베어버릴 듯한 날카롭고도 싸늘한.한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간신히 그 위기를 떨쳐낸 후에 도착한 곳엔 다른 집들과는 별반 차이 없는 한 집이 위치해있었고, 그는 자기 키만한 문에서 뭔가를 찾는 듯, 주섬 주섬 문 전체를 훑으며 뭔가를 집었고, 이내 달빛에 비춰 광이라도 난 듯한 열쇠로 문고리를 돌리며 안으로 들어간다. 나와 로빈은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조금은 머뭇거렸지만, 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그의 손짓에 나와 로빈은 그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끼 이 이 익 -… 」그냥 커다란 나무 문인줄 알았으나, 사실은 철문이였는지 오랫동안 방치된 탓인지 녹슨 부분이 접히는 부분이 여간 소란스러운게 아니였다. 방금 전에는 나한테 큰 소리로 떠들면 죽여버린다고 협박하던 녀석에 집은 나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며 닫히고 있었다. 불편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선 내 눈 앞에는 작디 작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저 건물은 뭐지? "" 저 건물에 눈 돌리지마라. "그 남자가 싸늘한 눈빛을 보내며 나의 시선을 거둔다." 너희들이 향할 곳은 여기다. "그 건물에서 조금은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건물이 세워져있었고, 그 건물은 조금 낡은 듯 보였다.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외관과는 달리 꽤나 널찍하다. 그는 나와 로빈은 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고, 그 방 안에는 각종 책들이 놓여져있는 서재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오랫시간동안 서재로 쓰여진 것 같은 곳으로 우릴 데려온 그는 평소에 즐겨찾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책장에서 낡은 책 한권을 꺼내 들고는 나와 로빈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받아라. "" 왜 내게 주는거지? "" 그 책에 네가 알고 싶어하는 자료가 들어있다. "" 뭐? "그가 건넨 책은 족히 100년은 넘어보이는 고서였다. 그는 내게 그 책을 넘기며 그 안에 적힌 내용은 내가 찾는 정보와 관련이 있다며 말했고, 나는 그의 말에 황급히 책을 건네 받고는, 재빨리 책장을 넘겨 그 안에 기록되있는 정보들은 하나하나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 "시간의 세월이 그대로 노출된 책이라서 그런지, 대부분의 기록은 한자로 되있어서 읽기가 조금은 불편했다. 하지만, 학창시절에 억지로 배워둔 한자들 중 몇개는 알아 볼 수는 있어서 그나마는 읽을 수 있었지만. 역시나 그것도 몇천 자의 한자 중에 소수 부분을 차지할 뿐. 그리 깊숙하게는 파고 들진 못했다. 간간히 보이는 한글만이 나의 이해를 도왔고 그렇게 한참을 책에 적힌 내용을 보던 중, 눈에 띄는 사진 한장을 발견했다." 이. 이건 …. "고서 중 154쪽에 기재된 내용들 중, 내 눈에 띄는 사진 한장을 보자마자 나는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오래된 책이다보니 책 안에 기록된 사진 역시 흑백사진이였지만, 흑백사진만이라도 형체를 알아볼 수 있기에 나는 도저히 그 사진을 넘겨볼 수 없었다. 내가 손을 멈추고 한동안 그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이유는. 그 사진에 쿠피디타스가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게 …. "말문이 막히고 황당하기 그지 없는 상황에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손에 들고있던 책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로빈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떨어진 책을 주워 내가 봤던 페이지를 쳐다봤고, 이내 로빈 역시 적잖이 당황한 듯 보인다." 너희들이 이 마을에 찾아온 것도 그것 때문이겠지? 그 책에는 쿠피디타스에 관한 이야기로 수두룩하다. 아마, 쿠피디타스에 모든게 담겼다고 보면 될거다, 단지, 읽기가 조금 어려울 뿐이지만. 그건 너희들이 노력하면 될 일. 이제 모든걸 알았으니 이만 마을에서 나가라. "" 자. 잠깐. "" 아직도 할 말이 있는건가? 난 너희들과의 약속을 지킨 것 같은데. 너희들은 나와 한 약속을 지키지않을 셈인가? "그는 매서운 눈초리로 쳐다보며 묻는다." 약속은 지키겠다. 하지만 그 전에 물어볼게 있어. "" 그게 뭐지? "" 아까 전에 우리 앞에 나타난 소녀에 관한건데 ….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커지며 지금이라도 날 죽여버릴 듯한 기세로 나를 노려보며 내 앞으로 걸어온다. 그는 나에게 한번 더 그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또 한번 내게 으름장을 놓고는, 더 이상 너희들과는 할 말이 없으니 재빨리 마을 밖으로 나가라며 우리들을 재촉한다.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있던 나는 알겠다며 이제 이 마을에 올 일은 없을거란 말과 함께 로빈을 데리고 서재 밖을 빠져나왔다." ! "서재 문을 염과 동시에 그 앞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작고 왜소한 몸집과 더불어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음이 물씬 풍긴다." 너는 …. "문 앞에 서있던 사람은 다름아닌 소녀였다. 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뽐내며 처음 우리를 봤을 때의 미소를 지으며 소녀는 이곳에 무슨 일이냐며 우리에게 물었고, 우린 그 소녀의 말에 할말을 잃고 멍하니 그 자리에 멈춰섰다." 라, 라이제르!! "그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나와 로빈의 옆을 제치고 그 소녀한테로 달려간다. 그는 예상치못한 상황에 심히 당황한 듯한 모습으로 나와 로빈을 연신 쳐다보며 빨리 이 집에서 나가라며 소리친다." 아빠, 무슨 일이야? 왜, 이 오빠랑 누나한테 소리질러? "아빠?" 아무 것도 아니란다. 그런데 라이제르, 네가 이 시간에 여기엔 웬일이니? 또, 그 여자가 나타난거니? "그의 물음에 소녀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 나타나지않았어. "" 그럼, 무슨 일이길래 이곳에 온거니? "" 그냥 아빠가 보고싶어서 …. "" 오, 라이제르 …. "소녀에 대한 안쓰러움이 묻어나는 손길로 그 아이의 머릿결을 쓰다듬는다." 라이제르, 잠깐만 아빠 방에 가있겠니? 잠시 이 두 사람과 할말이 있어서 그래. "" 응, 아빠. 빨리 와야해! "소녀는 방긋 웃으며 그에게 손인사를 하며 어디론가 달려갔고, 그 소녀의 뒷모습은 슬프게 바라보던 그는 나와 로빈을 돌아보며 일단 서재로 들어가자며 나와 로빈의 등을 떠민다.「 쿵 -… 」다시 닫힌 문 틈 사이로 뿌연 먼지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의 표정은 아까와는 달리 심히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였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왜 그 소녀가 이곳에 있으며, 왜 자길 아빠라고 부르는지에 대해 묻자,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답한다." 그 아이의 이름은 라이제르. 아까 봤던대로 그 애는 내 딸이다. "낮에 자신의 손으로 소녀의 머리를 각목으로 내리친 사람이 다름아닌 아빠라니, 더군다나 그 소녀는 이 건물에 같이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어. 그렇다면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봤던 또 다른 건물 쪽에 그 소녀가 있던건가? 하지만, 그곳엔 사람의 인기척을 전혀 느낄 수 없었어. 하지만, 다른 집들 역시 인기척이 없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얼굴은 보니 내게 물어볼게 많은 것 같은데. "" 별로, 알고 싶지도 않지만 …. "" 그런가. "그는 피식 웃으며 수백권의 책이 진열되어있는 책장 쪽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그리곤 그 수많은 책들 중 몇권을 뽑아들곤 나와 로빈이 있는 쪽으로 걸어온다." 내 입으론 말해줄 순 없지만. 그 책이라면 너의 궁금증은 풀어줄 수 있겠지. 걱정은 하지마, 그 책은 읽을 수 있을테니까. "그에게 건네받은 책은 그의 말대로 모두 다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한글로 쓰여있었고, 그 책들의 제목 또한 읽을 수 있었다. 나와 로빈은 각각 2권의 책을 나눠 읽으며 그가 우리에게 말하고싶은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천천히 책의 내용을 훑어 내려갔다. 우리가 책을 다 읽는 동안, 그는 잠시 딸과 함께 있겠다며 조용히 서재 밖으로 몸을 숨겼다.그가 서재 밖으로 나간 후, 20분이란 시간이 흘렀을까, 도무지 그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내용이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죄다, 이 마을의 기원과 마을의 촌장들에 관한 이야기들 뿐. 아마, 지금 내가 읽는 책은 이것들 밖에 없겠지. 그렇지만, 이 책도 어느 정도 내가 알고 싶던 정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금은 더 읽어두도록 하자.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책의 끝 부분까지 도달했다. 아쉽게도 이 책엔 사진은 없고, 글씨만 빼곡히 적혀있어서 읽기가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몇가지 건진 자료는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나와 함께 책을 읽어가던 로빈 역시 뭔가를 알아낸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페이지에 끝 부분까지 읽어내려갔을까. 이 책을 쓴 저자들의 이름이 쭈욱 한명씩 적혀있었다. 아마도 이 이름들은 아련 마을의 촌장을 맡았던 사람들의 이름이겠지. 왼쪽부터 아인, 크리스, 라쿤, 로이즈, 미트, 호수 ….' ! '순간, 나의 시선이 마지막 이름에서 머뭇거렸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이 책을 쓴 사람은 분명 이 마을의 촌장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그렇다면 더더욱 이 이름이 이런 곳에 쓰여있을리가 없어. 이 책은 분명이 아련 마을에 관한 내용들 뿐, 다른 마을의 이름조차 거론되지않은 순전히 마을 관련 책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 이름이 이곳에 적혀있냔 말이야. 대체 왜 이 이름이 ….' …. '마지막, 이 책을 쓴 저자의 이름을 보았다. 그 사람의 이름은 로라. 내 기억이 맞다면 그녀는 루에르 마을의 촌장이였다.뭔가 이상해. 왜 그녀의 이름이 이 책 맨 끝자락에 적혀있는거지? 내 기억이 맞다면 그녀는 이곳이 아닌 다른 책에 적혀 있어야할 이름이였어. 왜 그녀의 이름이 여기에 적혀있냔 말이야." 루에르 씨? "옆에서 책을 보던 로빈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책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걸 본 로빈은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보내왔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 그런데 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는거에요? "" 약간 놀랬을 뿐이야. 걱정하지않아도 되. "대충 로빈에게 말을 얼버무리며 대답했지만, 역시나 손의 떨림은 멈출 수 없었다. 또 하나의 기억을 잠재우고 조금이나마 휴식을 취할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시련이 여기에 나타난건가. 하지만, 내가 너무 과잉반응을 하는 걸 수도 있어. 만약 이 책이,각 마을의 촌장들이 만든 책이라면 그녀의 이름은 당연한 것이며, 이 책은 오직 이 아련 마을에 대해서만 쓰여졌기 때문에 다른 마을의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은걸 수도 있다.“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제길, 다시 한번 머릿 속에 맴도는건가. 잠시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이름을 보자마자 다시금 속이 울렁거리는군." 루에르 씨, 괜찮아요?! "휘청거리며 바닥에 주저 앉은 나를 다급한 목소리로 달려온 로빈이 괜찮냐며 나를 부축해 자리에서 일으킨다." 정말 괜찮은거 맞아요? 아까부터 얼굴색이 별로 안 좋아요. "" 내 걱정은 하지마. 잠시 피곤한거 뿐이야. "" 하지만 …. "그녀의 걱정스러움은 배로 늘어난 듯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런 로빈을 볼 때마다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것을 느낀다.「 끼이익 ―… 」잠시 딸과 시간을 갖겠다던 그 남자가 문을 열고 서재로 돌아왔다. 그는 바닥에 주저 앉아있는 나를 보며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와 로빈이 있는 곳으로 걸어온다. 그리고는 우리 옆에 차곡히 쌓인 책들을 보며 뭔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쳐다본다." 아직도 책을 다 보지 못한건가? 책 읽는 속도가 영 별로군. "" 처음부터 이 책들을 다 읽는 것부터 말이 안되잖아? 쪽수가 적은 것도 아니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투덜거리는 나를 보며 그는 어이가 없는 얼굴로 나의 옆을 지나친다. 그리고 그는 다른 책장 앞으로 걸어가 그곳에서 몇권의 책을 또 꺼내 나한테 건네준다." 이건 또 뭐야? 설마 이것도 읽으라는거야? "아직 읽은 책도 저만큼이나 남았는데, 저 책들로도 모잘라 또 이 책을 읽으라는 말에 황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나는 질색을 하며 그가 건네주는 책을 거절했고, 그는 눈을 부릅뜨며 손에 든 책을 내게 다시 건네주며 말한다." 그 책들 중, 제일 중요한 내용들을 걸러낸 요약본이다. 아마 이걸 본다면 그 책 전부를 읽은거라고 할 수 있지. "" 뭐? 근데 그걸 왜 지금에서야 내놓는거야?! "" 그 정도로 인내심이 없는 녀석인줄은 몰랐으니까. "그의 말에 발끈한 나는 그가 건네주는 책을 냅다 집어 던지고 싶었지만, 차마 그 책을 마다하고 저렇게 쌓인 책을 다 볼 용기가 없는 나머지 결국 그가 건네준 책을 건네 받으며 천천히 그 책 안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 남자의 말대로 그 책은 지금까지 봐왔던 자료들이 몇몇 눈에 들어왔고, 주제와는 다른 자료들은 일절 실려있지않았다. 그 덕분에 빠른 시간 내에 그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때, 볼만한가? 분량이 작으면 그만큼 부담도 덜어지는 법. 하지만, 자세한 내용까지 알기 위해서는 저 책들도 봐야하지만. 뭐, 너라면 그 책으로도 충분할 것 같군. "마치 날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그의 말에 잠시 발끈하기도 했지만, 지금 내가 저 녀석의 멱살을 붙잡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다. 빨리 이 책 안에 적힌 글귀들을 머릿 속에 기억해서 서둘러 다른 마을로 가야한다. 그래도 다행히 이번 마을은 하루만에 떠날 수 있을 것 같다.신나게 책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옆에서 이 모습은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가 잠시 발걸음을 돌려 어디론가 걸어간다. 그는 다른 책장들과는 거의 멀리 떨어진 곳에 놓여진 책다발들 속에 무언가를 뒤적거리며 찾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우린 그곳에 시선을 둘 시간이 없기에 그냥 가볍게 무시하며 책을 읽어내려갔다. 언제부턴가 내 옆에서 내가 펼친 책을 따라 읽은 로빈의 얼굴이 내 볼 옆에 찰싹 달라 붙는게 느껴진다.그리고나서 약 몇분의 시간이 지났을까, 책다발들 속에서 뭔가를 찾던 그가 먼지가 수북히 쌓인 책을 들고는 나와 로빈 앞으로 걸어왔다. 책을 읽던 로빈은 그가 다가오자 그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한시라도 빨리 책의 내용을 모두 보기위해 아등바등 책 속에 눈을 박고 열심히 읽어내려갔다.그는 옆에서 책읽기에 열중하는 나를 보며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서있다가 이내 제정신을 차린 듯, 로빈 쪽으로 시선을 거두고는 그녀에게 들고있던 책을 건넨다. 영문을 모르는 로빈은 일단 그 남자가 책을 건네니 그 책을 받아들었고, 그는 로빈이 책을 받아들고 멍하니 있는 모습에 긴 한숨을 내쉬며 그녀가 들고있는 책을 펴보라며 그녀에게 손짓한다. 로빈은 그의 손짓에 일단은 책을 폈고, 그리고나서 그 남자가 입을 연다." 혹시, 페니턴트라는 병을 아나? "그때 그 남자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잠시 내 몸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로빈은 생전 처음 들어본 단어에 어리둥절한 듯, 그를 쳐다보며 우물쭈물 말한다." 페 … 니턴트요? "" 역시 모르는건가 …. 뭐, 그렇다면 상관없어. 잠시 물어보고 싶었던 뿐이니까. 별 신경 쓰지마. "그 남자는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별 신경 쓰지말라며 로빈을 보고 말한다. 그 말에 로빈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해를 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곤 다시금 시선을 책 쪽으로 돌린다. 한편, 책을 읽던 나는 그가 내뱉은 말을 듣고 잠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 별 다른 뜻은 담겨있지않은 단어였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였다.' ! '혹시, 그때 ….“ 자네, 혹시 ' 페니턴트 ' 라는 병을 아나? ”페니 … 턴트?“ 그 병은 아주 무서운 병이자, 끔찍한 상황에까지 몰고 가는 병이지. 그 병에 걸리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가 없다네. 아니, 살고 싶은 생각도 못하게 되지. 그저, 자신을 비관하고 증오하며 자신의 손으로 자기의 목숨을 빼앗는,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가 우리 인간에게 준 병으로 전해지고 있지. ”분명히 그때 어르신이 했던 말 중에 페니턴트라는 말이 섞여있는걸 들었다. 그때는 별 다른 생각 없이 그냥 그런 병이구나하고 넘겼는데, 왜 갑자기 그 병이 저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거지? 이 남자가 그 어르신과의 친분이 있는건가? 하지만, 그럴리는 없어. 이 남자의 나이는 아무리 높게 봐도 30대도 안되고, 내가 어르신을 만났을 때는 이미 그 노인은 수십년 전에 죽었다고 들었어. 그렇다는 말은 어르신이 죽었을 무렵에 이 남자가 태어났다는 말이지. 시기상이나 거리상이나 이 남자가 그 어르신을 아는건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그 병에 대해선 어르신도 금시초문이였다는 말 뿐이였어. 그 병의 성질도 최근에 들었다고 들었고. 그런데 어떻게 이 남자가 …." 어이, 잠깐만. "" 무슨 일이지? 책이라도 다 읽은건가? "" 어떻게 네가 그 병의 이름을 알고 있지? "나의 말에 그가 당황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움직이던 손을 멈춘다. 나는 들고있던 책을 로빈에게 건네주곤 그 남자에게로 다가가 그의 눈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그에게 그 병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있냐며 연신 물어보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 움찔거리는 입술을 가까스로 벌리며 내게 말한다." 그 병을 알고 있는건가? 어떻게 그 병에 대해 알고 있는거지? "" 내 질문에 대답해! 어떻게 네가 그 병을 알고 있는거냐고!!그 남자를 향해 소리치는 나를 본 로빈이 당황한 듯 왜 그러냐며 나의 팔을 잡아 당겼고, 그 남자는 나의 반응이 이상하지않다는 눈으로 미소를 짓곤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난다. 나는 그 남자에게 당장 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고, 로빈은 그런 나를 뜯어 말리며 갑자기 왜 그러냐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남자는 내 말에 가득 담긴 탄식을 내뱉으며 쓰윽 나를 쳐다보곤 채 떨어지지않는 입술을 가까스로 떼어내며 내게 말한다." 난 그 병의 이름도, 증상도 모른다. 그저 최근에 그 책을 보고서 알게 되었지. 그 병에 걸리면 무조건 죽는다는 것, 그 병에 걸려 죽어도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 자신은 증오하고 경멸할 수 밖에 없는 최악 중에 최악인 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그 병을, 내 딸 라이제르가 앓고 있다는 사실도 …. "" 뭐. 뭐?! "그의 웃음엔 슬픔이 담겨있었다. 어느세 그의 눈가엔 투명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고, 그는 이내 기운이 빠진 듯 바닥에 주저 앉으며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서재 안을 웃음으로 가득 메웠다." 하하하하하하하!! "그의 입술을 떨렸고, 그의 붉은 눈에선 담아낼 수 없는 붉은 원한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나와 로빈은 아무런 말도 못 꺼낸 채, 조용히 그의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나는 그런 모습으로 모든걸 포기한 듯한 그의 얼굴에 가득 인상을 구겨갔다." 하루가 멀다하고 내 딸 아이의 모습은 변해간다. 의사들에게 알려봤자 그들은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이라며 진료를 거부한다. 더군다나, 이 병의 정체를 아는 몇몇 사람들의 눈초리는 날이 갈수록 사나워진다. 이 마을의 촌장이란 자는 자신의 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것을 감수한다는 소문이 들고, 결국엔 우리 마을은 어둠에 가려지고 말았다. 너희는 내 마음을 아는가? 내 딸을 지키기위해 딸 아이의 몸에 심한 상처를 남기면서까지 딸을 곁에 두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을 아냔 말이다. 그 누구도 내 딸 아이가 앓고 있는 병이 전염병이라는 것도 모르는데, 마치 라이제르를 병자로 취급해 가까이 가는 것도 꺼려한다. 한창 마을에서 아이들과 뛰놀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야하는 나의 딸 아이는, 고작 그 병 하나로 모든 자유와 행복을 박탈 당하고 오직 이 어두침침하고 고요한 집에서 혼자 지내며 애써 외로움을 이겨내려한다. 너흰 그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는 소리쳤다. 가슴 안에 가득 흘러넘친 한을 표출하듯 우리에게 말했다. 그간 겪었던 모든 한과 설움을 한번에 쓸어내리려는 그의 모습에 나와 로빈은 그저 묵묵히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기어코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얼굴을 묵고 슬픔을 흘러 보냈다. 지금까지 한 마을의 촌장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딸의 행복을 빌 수조차 없던 그의 아픔은 더욱 커져만 간 듯 싶었다. 나는 조용히 그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려 그의 아픈 기억을 토닥거렸다.그리고나서 한 몇분 후에 그의 눈물은 멎었고, 아까보다는 훨씬 후련한 듯한 그의 모습에 나와 로빈은 안도를 하며 그를 바라봤다. 그는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은 라이제르와 마을사람들에게 비밀이라며 당부의 말을 건넸고, 나와 로빈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그 후, 나와 로빈은 마저 다 읽지 못한 책을 표기해두고 내일을 기약하도록 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 밤이 지나더라도 모든 내용을 읽고 서둘러 다른 마을로 향할 생각이였지만, 아직 이 마을엔 밝혀낼 사실이 또 한가지 있는 듯 싶었다. 더군다나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그 병은 무언가 관련되어있지 않을까한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건 내게 너무 앞선걸까, 일단은 한숨 자고 내일 생각해보도록 하자." 그게 정말인가? 그곳에도 라이제르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게. "" 그래 맞아, 비록 살아있는 몸은 아니였지만 그가 그렇게 말했어. 그 때문에 페니턴트라는 병을 알고 있는거고. "" 그런가 …. "아침 일찍 그가 있는 서재로 간 나는 그에게 지난 일들에 대해 하나 둘 알려주었고, 그의 딸인 라이제르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어르신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딸조차 구천을 떠돌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한걸까, 그의 한숨에는 짙은 비애가 담겨있었다." 그 사람 역시 그 병을 고치는 방법을 모르는건가? "" 만약 알고 있었다면 그 사람은 살아있었겠지. 아쉽게도 그가 병의 이름을 알았을 때는 이미 그는 죽은 뒤라고 했어. "" … 그럼, 우리 라이제르도. "그는 사색에 잠긴 얼굴로 또 한번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의 모습을 보고 있는 나도 그리 마음이 편한건 아니다. 내가 도울 수만 있다면 그를 도와 라이제르를 살려주고 싶지만, 지금 내가 아는건 병의 이름과 증상 뿐. 그 병을 고칠 방법도, 그 병을 아는 자도 별로 없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와 이 남자 뿐. 우연찮게 병의 이름과 증상을 들은 로빈도 듣기만 했을 뿐, 이 병의 심각성을 모른다. 그때 로빈이 잠시 주방으로 가고 나서 어르신과 단 둘이 나눈 대화 속에서도 그 정도의 정보 뿐이였다.그 남자는 책장 쪽으로 걸어가 낡디 낡은 책들 중 몇권의 책을 꺼내들곤 제자리로 돌아와 내게 책 한권을 건넨다. 어제와 똑같은 방식으로 내게 책을 통해 정보를 나눠주려는 것일까. 하지만 그 책은 내가 알려는 자료와는 달리 거리가 먼 내용을 다룬 책이였다. 나는 그에게 건네받은 책을 조심히 펼쳐내어 책의 내용을 읽어보았고, 역시나 내가 짐작했던대로 내가 알고 싶은 내용과는 상관이 없었다." 이걸 갑자기 내게 왜 주는거지? 이 책은 나랑 아무 관련이 없는 것 같은데. "나의 말에 그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자신이 들고 있는 책을 읽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다시 되물으려하던 나는 그냥 책을 덮고는 옆에 있는 책장에 책을 꽂아두고 조용히 서재 밖을 나섰다.「 끼 이 익 ―… 」서재 문을 열자 그 앞에는 라이제르가 서있었고, 여느 아이들과 같이 명랑하고 쾌활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라이제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홀연히 자리를 피했다." 후우 …. "저런 어린 아이가 머지않아 죽게 되다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이런 끔찍한 짓을 … 아니, 이미 세상은 우릴 버렸다. 1년 전 그날 이후로 이 세상은 인류를 버린거야. 더 이상의 자신의 몸에 기대지말라는 지구의 외침일까? 아님, 순전히 자연재해로 일어난 비극일까. 그게 어찌됬던 상관은 없다. 이미 세상은 멸망했고, 더 이상 남아있는 인류가 몇이 될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단지, 1명의 사람이라도 찾고 싶은 나의 욕망일 뿐이다. 그러나 이 생각도 불연히 떠오른 것, 지금 나의 목표는 다른 곳에 꽂혀있었다." 루에르 씨? "바닥을 주시하며 걷던 중, 로빈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온다. 고개를 돌리니 그곳엔 방금 잠이 깬 로빈이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며 서있었고, 나는 그런 로빈을 바라보며 싱긋 웃음을 지었다." 벌써 일어난거야? 조금 더 자두지 않고. "" 충분히 잤어요. 그런데 루에르 씨는 이른 아침부터 어딜 다녀오신거에요? "" 잠시 서재에 들렀어. "" 서재요? "" 응, 그 자와 라이제르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하는 생각에 한번 가봤는데, 역시나 그도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것 같아. "" 그런가요 …. "로빈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인다. 나는 로빈에게 잠시 마을 한바퀴 좀 돌고 오겠다며 집 밖을 나섰고, 로빈은 그런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슬며시 발걸음을 돌린다.집 밖으로 나서니 여느 마을과 같이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어제와는 달리 나에 대한 경계가 수그러들었는지 그들이 나를 보는 눈초리가 조금은 무뎌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게, 어제처럼 그런 모습으로 나를 봤다면 나는 여기에서 오래 머물 수 없었을지도 … 뭐, 원래는 이곳에 하루만 지내고 떠날 생각이였지만, 지금은 그 일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남겨있다는걸 알기에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그 소녀를 구할 방법을 연구하는 수 밖에.사람들의 움직임이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 바빠지며, 휑했던 마을 안의 거리도 어느 정도 사람의 발걸음으로 가득했다. 그 남자의 말대로 이들의 행동과 태도는 모두 그 소녀와 관계 있는 일이였나, 만약 그렇다면 그 아이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 이해가 가겠군. 더군다나 그 소녀를 두 눈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그 남자의 애환도 말이야. 단지, 그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그 아이를 멸시하고 박대하다니, 이미 이 마을은 오래 전부터 황폐해진게 아니였을까 ….「 쿵 」어디선가 묵직한 물건이 떨어진 듯한 소리와 함께 근처에서 울려퍼지는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마을 주위를 걷던 나는 그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황급히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고,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짐들이 우수수 떨어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 커다란 짐들 사이에는 사람이 깔려 있는 것 같았고, 주변에서 그걸 본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방황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일체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괜찮으세요? 조금만 기달려요, 금방 꺼내줄게요! "나는 황급히 그 사람 위에 쓰러진 짐들을 하나 하나 옆으로 집어 던졌고, 주위에 벌벌 떨고 있던 사람들이 나의 모습을 보고 하나 둘 내 주변으로 몰려든다. 예상보다 짐의 무게가 커서 조금씩 팔과 어깨에 무리가 오는 듯 싶었지만, 도저히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더 옅어가는 그 사람의 숨소리와 목소리에 나는 더욱 다급히 짐을 옮겼고, 내 주위에서 이 모습을 멀뚱히 쳐다보는 그들에게 얼른 도와주지않고 뭐하는 짓들이냐며 소리쳤지만, 그들은 내 말을 사뿐히 무시하고 멍하니 바라볼 뿐이였다. 이곳은 이상하다. 같은 사람임에도 구하려는 자와 방관하는 자가 있다는거에 놀라고 웃길 뿐이다. 더군다나 이 짐에 깔린 사람은 이 마을사람, 그런데도 이들은 한 핏줄과 같은 사람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인가? 손이 떨리고, 그들에 대한 무서움이 커질 때 쯤, 서서히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그 많은 짐에 깔려 있던 사람은 다름아닌 여자아이였고, 그 아이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낯 익은 모습이였다. 나는 황급히 그 소녀를 짐들 사이에서 꺼내었다." 괜찮니? 어디 다친데는 없는거야? "나의 안쓰러운 목소리에 소녀가 정신을 차린 듯, 몽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가녀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둘러 그 소녀를 바닥에 눕혀놓았다.' ! '흥분이 가라앉고 조금의 여유가 생기니 그 소녀의 얼굴이 햇빛에 비춰 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소녀의 얼굴을 보자 벙찐 얼굴을 하며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화난 표정을 지으며 그들에게 소리쳤다." 대체 이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해주지 않은겁니까? 고작, 이름도 낯선 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순간에 죽음으로 몰아갈 뻔한 소녀를 구하지 않은겁니까? 당신들이 그래도 사람이야!!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 하나면 될텐데도 그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런 감정도 못 느끼는 듯한 표정들로 나와 소녀를 연신 쳐다본다. 그리곤 이내 발걸음을 돌리며 자리를 피했고, 나는 그런 그들에 대한 원망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며 황급히 소녀를 등에 업었다.그저 인류에게 낯설고, 이 병의 치료조차 불가피한 상황에 그들은 그런 행동 밖에 취할 수 없었다. 단지 이 소녀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않는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멸시 받고, 도리어 도움조차도 받지 못하는 무능한 인간이 되었다. 왜지? 왜 그것 하나로 이렇게 사람이 비참해질 수 있는거지? 그저 남들과 똑같은 삶을 누리고 싶은 뿐인데, 왜 이들은 그런 눈으로 이 소녀를 바라보는 것일까. 그들은 이 소녀가 죽음으로써 모든게 끝이 날거라는 생각을 했던걸까? 하지만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자, 모자란 사고방식이 이끌어간 세상의 변화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의 손에 일구어지고, 사람의 말로써 표현될 수 밖에 없는, 나는 이런 세상을 위해 지금껏 걸어온건가? 내가 꿈꾸던 세상이 이런 세상이였단 말인가? 만약, 내가 원하던 세상이 이런 세상이라면, 나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사람이 사람으로 인해 변하고, 사람으로 인해 비참해질 수 있는, 그런 세상은 나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세계관이다. 정말 찾으려던 세상이 이런 세상이라면, 난 더 이상 이 모험을 하지 않겠다.마을에서 좀 벗어난 한 우물가에 멈춰선 나는 등에 업힌 소녀를 조심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소녀는 거친 호흡을 내쉬며 힘겨워보였고, 나는 그 소녀를 보며 가슴 아플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모습으로 그 남자에게 데려간다면 그 남자 역시 나와 같은 고통을 느끼겠지, 아니면 나보다 더욱 그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하겠지만 말이다. 이 마을에서 이 소녀를 치료 해줄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의사도 이 마을사람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 그저 이 소녀만 사라지면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을거란 망상에 빠진 채로 이 소녀가 죽기를 간절히 원하겠지. 직접적으로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1년간 로빈과 모험을 떠나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내가 할 수 있는건 이것 뿐이겠지.「 쪼로록 」나도 참 바보 같다. 지난 시간동안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던걸까. 로빈과 달리 내가 해줄 수 있는건 이마 위에 차가운 수건을 올려주는 것 밖에 없는건가. 더군다나 이 소녀는 감기가 아닌, 일시적인 후유증일텐데 이런게 도움이 될리 없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조금 불편하니 어쩔 수 없이 했지만.' …. '어느 틈에선가 새근 새근 잠을 자는 소녀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지금껏 누릴 수 없던 행복과 편안함을 꿈 속에서나마 느낄 수 있다는게 다행일 뿐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이 소녀가 원하는건 꿈 속에서의 자유가 아닌, 현실에 대한 그리움일텐데 … 나로서는 도저히 이 소녀의 아픔을 나눌 순 없을 것 같군.해가 반쯤 기웃거릴 쯤에 소녀가 눈을 떴다. 아까보다는 혈색이 좋아보이는 얼굴을 하며 눈을 껌뻑거린다. 주변환경이 아까와는 달라서일까, 적응이 뎌딘 듯한 소녀가 멀뚱히 나의 얼굴을 주시한다." 정신이 드니? 다행이다. 난 네가 심하게 다친 줄 알았거든. 그만해서 정말 다행이야, 라이제르. "" … 절, 아세요? "" 응?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꺼낸 그 소녀가 경계를 하는 눈초리로 나를 쓰윽 훑어본다. 이 녀석, 날 기억 못하는건가? 하지만 아까 전에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줬을텐데, 나를 모른다면 그렇게 해맑은 표정을 지을 수 있는건가? 아님, 아까 전의 충격으로 인해 단기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건가? 하지만, 그 정도 충격으로 그런 병에 걸릴리가 ….' . '어라, 그리고보니 아까 전에 봤을 때에 옷차림과는 영 다른 옷인데? 내가 건물 밖으로 나와서 이 녀석을 발견하기까지는 채 5분도 안걸렸을텐데. 더군다나, 이 소녀는 내가 발견하기 이전부터 상자에 깔려 있던 것 같던데 …. 뭐지? 뭐가 어떻게 된거야?!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할 말을 잃은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괜시리 이 상황을 웃어 넘기려 했지만,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 소녀를 보자 웃음이 싹 사라진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다." 저기, 라이제르. 혹시 머리라도 다친거야? "" 제 이름은 라이제르가 아닌데 …. "" 에? 아, 그래?? 그렇구나 …. "이 소녀는 라이제르가 아닌건가 … ? 하지만, 아니라고해도 너무 라이제르랑 비슷하다 못해 똑같은데, 정말 이 소녀가 라이제르가 아니라고? 그렇담, 이 소녀는 대체 누구야?나는 황당한 웃음을 지으며 대충 이 상황을 얼버무리려 했지만, 이 소녀와 라이제르가 매치가 너무 잘되서 이 웃음이 황당해서 웃는건지 아님, 어이가 없어서 웃는거지 모르겠다. 그 소녀는 내 모습에 더욱 의심스러운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나를 경계한다. 나는 그 소녀를 안정시키기 위해 다가갔지만, 그럴수록 소녀는 나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뒤로 물러난다. 난 벌써부터 꼬마아이한테 미움을 받는건가 … 뭐, 어쨌거나 무사해서 다행이니 불행 중 다행이랄까? 그런데 이 아이가 정말로 라이제르가 아니라면, 왜 그들은 이 아이를 보고도 못 본 채로 지나간거지? 혹시 이 아이를 라이제르로 착각한게 아닐까? 마을사람들은 그 소녀를 피하다못해 무서워하니까, 하루 빨리 마을에서 사라졌으면 했던거야. 그렇기 때문에 이 소녀는 라이제르와 똑같이 생겼다는 이유 하나로 그런 위험에까지 몰고 갔으니.' …. "어떻게 보면 이 소녀 역시 피해자인건가 ….가까스로 소녀를 달랜 나는 그 소녀의 이마에 달라 붙은 수건을 떼어내어 바지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 소녀는 나에 대한 오해를 알고는 미안하든 사과의 말과 함께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나는 그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앞으로 조심하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저기 …. "소녀가 할 말이 있는 듯, 나를 불러세웠다. 나는 소녀에게 무슨 할 말이 있냐며 물었고, 그 소녀는 빨갛게 변한 수줍은 얼굴로 내게 이름을 물어본다. 내 이름을 알고 싶다며 쑥쓰러운 듯 머리를 목을 긁적거리는 소녀를 보며 나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 소녀에게 말했다." 루에르, 루에르라고 불러. "내 이름을 안 소녀는 부끄러운 듯, 입을 열까 말까 망설이더니 이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자신의 이름을 말해줬다. 그 소녀의 이름은 ' 라이젤 '. 라이제르의 쌍둥이 언니였다.그 소녀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러했다. 언제부턴가 갑자기 이상행동을 보이는 라이제르와, 그 아이를 바라보는 마을사람들에 시선이 따가웠다했다. 그의 아버지 루연은 그런 라이제르의 머리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쓰다듬을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턴가 자신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오직 아버지인 루연은 라이제르에게만 관심을 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라이젤은 그런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동생인 라이제르를 싫어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매일 밤, 자신이 모르는 내면의 라이제르를 통제할 수 없음에 괴로워하는 라이제르의 모습과 그런 라이제르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모습에 그러할 마음도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 뿐이 아니였다. 라이제르와 똑같이 생겼다는 이유로 라이젤 역시 마을에 미움을 받고 있었고, 방금 전에 상황도 그리 이상할 것 없다며 쓸쓸한 웃음을 짓는 라이젤을 보니 나의 가슴이 아려온다. 그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고 여느 아이처럼 평범한 생활을 꿈꾸는 라이젤에겐 너무나도 가혹한 시련이였다. 더군다나, 하나 밖에 없는 아버지조차 자신보단 라이제르를 더욱 아끼니, 이 소녀에게 한이 없다면 이상하겠지. 나는 라이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간 겪었던 고생과 슬픔을 어루만져우었지만, 그 하나로 모든게 날아갔다고는 할 수 없다. 그 병을 고치기 전까지는.나는 라이젤과 함께 라이제르와 그의 아버지 루연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아침을 훨씬 넘긴 시간이였지만, 로빈은 그런 나를 기다리며 문 밖에서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그간 힘들었음에 그걸 표현하지않고 꿋꿋이 나의 곁을 지키는 로빈에게 고마운 마음 뿐이다. 나는 벽에 기대어 잠들어있던 로빈의 어깨를 살포시 두드렸고, 나의 손길에 로빈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나를 보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곤 입에 흐르는 투명한 자국을 잽싸게 닦으며 베시시 나를 보고 웃는다." 지금 오신거에요? 그런데 그 아이는 누구죠? "내 뒤에 찰싹 달라 붙어 쫓아오는 라이젤을 본 로빈이 궁금한 듯 물었고, 나는 로빈에게 아까 있었던 이야기를 알려주며 라이젤을 소개했다. 로빈은 라이제르와 꼭 닮은 라이젤을 보곤 놀란 듯, 믿기지않는 눈으로 라이젤의 이곳 저곳을 훑어보곤, 이내 라이젤의 볼을 잡아 당기며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라이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라이젤은 그런 로빈의 행동에 살짝 놀란 기색으로 황급히 내 뒤로 숨는다. 나는 수줍어하며 내 뒤에 철썩 달라 붙은 라이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찰싹 」서재 안에 울려퍼지는 기분 나쁜 소리에 어느센가 라이젤의 눈가엔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는 화난 듯 씩씩거리며 라이젤을 무섭게 노려봤고, 뒤에서 이 광경을 본 라이제르도 당황한 듯한 눈으로 라이젤을 바라본다." 너, 내가 말했지? 절대 마을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그런데 내 말을 무시하고 함부로 마을로 나가? 너, 아버지를 깔보는거냐!! "이유불문, 다짜고짜 라이젤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다그치며 라이젤의 의사는 전혀 묻지 않았다. 라이젤은 훌쩍거리며 아무 말 없이 자신을 혼내는 아버지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였다. 나는 울고있는 라이젤을 감싸며 대체 무슨 짓을 하는거냐고 소리치며 그의 행동을 저지했고, 그는 그런 나를 보며 남의 가족사에 신경 쓰지말라며 당장 비키라며, 금방이라도 일을 저지를 듯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말에 아랑곳하지않고 굳건히 그의 행동을 막아서며 라이젤과의 거리를 유지 시켰다. 그러자 그는 약간 이성이 나간 듯한 눈으로 나를 보며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과 함께 나를 향해 소리친다." 함부로 마을에 들어온 것도 모잘라, 이제 내 딸까지 마음대로 하는거냐? 내 앞에서 비켜라, 그렇지않으면 네놈도 가만두지않겠다! "" 무작정 라이젤을 혼내는 것보단, 이 아이가 왜 마을에 나갔으며 무슨 이유로 혼자서 마을을 떠돌았는지에 대해 물어보는게 먼저 아닌가? 다짜고짜 애를 때리면 너한텐 뭐가 남지? 그저 자신의 딸에게 상처를 주는 것 밖에 더 되? "이미 그는 반쯤 이성이 나간 듯, 내 목소리가 들리지않는지 당장 눈 앞에서 꺼지라며 내게 소리친다. 나는 그럼에도 꿋꿋이 라이젤을 지키며 서있었고, 그럴수록 그의 눈동자는 반쯤 뒤집히며 금방이라도 내게 달려들 기세로 노려보며 내게 말한다."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설치는거지? 네가 라이제르의 고통을 아는가? 지금까지 라이제르가 겪어온 고통과 슬픔을 아냔 말이다!!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우습다는 듯한 말투로 내게 말하던 그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웃는다. 그의 터무니 없는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그의 멱살을 붙잡으며 그에게 소리쳤다." 그럼 너는 딸 하나를 지키기 위해 다른 딸 하나를 버릴거냐? 라이제르의 행복을 위해서, 라이젤의 행복은 무참히 밟아버린 생각이냐고!! ""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 네가 뭘 안다고, 네가 뭘 안다고 그딴 소리를 지껄여!! "「 우당탕 - ! 」이성을 잃고 나에게 달려드는 그를, 나는 그의 몸을 들어올려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그가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자, 이 상황을 지켜보던 라이젤과 라이제르가 깜짝 놀라며 그들의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황급히 달려간다. 로빈은 생전 처음보는 나의 행동에 적잖이 놀란 듯이 나를 쳐다봤고, 나는 그를 노려보며 도저히 그가 내뱉은 말에 대한 흥분이 가라않지않아 애꿎은 책장을 걷어찼고, 이내 바닥에 쓰러져있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정말로 네 딸의 행복을 원한다면, 먼저 네 곁을 맴도는 라이젤을 신경 써라. 너는 아버지의 자격이 없어. 라이제르에 눈이 멀어 너만을 바라보고 사는 라이젤의 가슴에 못을 박았으니까. 더군다나 너는 그런 라이젤에게 손찌검까지 했으니 말야. 그것만으로도 너는 라이젤과 라이제르의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어. "" 네가 뭘 안다고 아까부터 계속 지껄이는거지? 네가 라이제르의 아픔을 알아? 내 딸 라이제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네가 잘 아냔 말이야! "" 똑같은 말 계속 반복하지마라. 너는 계속해서 내게 그런 말을 하지. 그런데 너야말로 라이제르에 대해 모르는거 아닌가? ""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나는 지금껏 라이제르를 위해 모든 것을 해왔다. 그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단 말이다! "" 그렇다면 넌 왜 처음부터 이 마을사람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지? 너가 정말로 라이제르를 아낀다면 제일 먼저 그들에게 라이제르의 병명을 알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구하는게 맞지않나? 그런 도움도 못 구할만큼, 너는 마을사람들에게조차 신뢰를 받지 못하는건가? ""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냐 … 그들이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일리 없지 않는가!! 그들은 이미 우리 라이제르를 기피하고 있어,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 그건 당연한거 아닌가? 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는 병이 주위에 머문다면, 그 누구가 그 사람을 꺼려하지않냔거냐? 사람이라면 당연히 보이는 행동과 태도며,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기방어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가 그 병에 대해 알리고, 그 병에 걸리지 않는 도움의 손길을 준다면 그들 역시 그 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이 수그러들 듯, 너 역시도 라이제르를 위해 그런 말쯤은 할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지금 너의 모습은 뭐지? 오직 딸 하나를 위해 다른 딸에게 관심이 없을 뿐더러, 그 아이를 지켜준다는 명분만 내세우고 그 딸을 위해 하는 일이 없지 않냔 말이야! "순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왜 맺혔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선가 들끓는 나의 기억의 조각이 흩어져 나온 듯, 나의 눈물이 따갑게만 느껴졌다. 그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곁에 있는 딸들을 돌아보며,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라이젤과 라이제르의 얼굴을 어루만질 뿐이였다." 내가 아는 촌장은 너 같은 녀석이 아니였어. 자신의 마을과 자신의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몸을 절벽 끝에 떨어트리는 녀석이였다고. 그런데 너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거지? 도대체 네가 원하는 삶은 무엇이였길래 그런 무거운 자리에 함부로 올라가있냔 말이야 …. "나는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서재 밖으로 뛰쳐나갔다. 괜시리 코 끝이 찡하고 시야가 불투명하니 걷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한숨이 절로 나오고 어쩐지 모르게 기운이 쏙 빠지니 나도 모르게 복도에 주저 앉아버렸다.「 끼 이 이 익 ―… 」서재 밖으로 나온 내가 걱정스러웠는지 로빈이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온다. 벽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은 나를 보며 쓸쓸한 눈빛을 보내던 로빈이 덩달아 내 옆에 앉아 슬쩍 나를 바라본다." 우셨어요? "" 아니, 안 울었어. "" 그런데 왜 …. "" 단지 조금 답답했을 뿐이야.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울분을 토해낸 것 뿐이야. "자연스레 탄식이 새어나왔다. 지금까지 꾹꾹 참아냈던 감정들을 갑작스레 뛰쳐나와서인지 여간 당황스러운게 아니다. 여태껏 참아낸 기억들을 왜 갑자기 나는 밖으로 표출했을까, 단지 그 남자의 행동이 바보 같고 어리석어서? 아님, 그에게서 란의 모습이 보여서? 익숙해질 때도 됬는제, 아직까지도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 내 모습이 바보 같게만 느껴진다.“ 부디,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 ”“ 너흰 그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더 이상 그 악몽과도 같은 기억에 휩쓸려 지내기도 버겁다. 잊으려해도 잊혀지지않는 그 날의 기억을 꽁꽁 숨겨놓는 것도 불가능하다.나 혼자의 힘으로써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언제까지나 이 기억을 나 혼자서 이끌어가는 것조차 나는 너무나도 힘이 든다. 만약 그 누군가가 내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면, 나는 그 손을 붙잡을 것이다." …. "나의 사지를 뒤트는 이 속박은, 이미 나에겐 무의미하다.
P.s : 고동치는 보물 → 요동치는 쿠피디타스, 복선 혹은 굴곡.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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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1 22:36
루에르 4화 : 고동치는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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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 [BGM]너를 지키는 내가 있어 2 | 밥하몬 | 2012.03.16 | 1132 |
195 | [BGM]먼지가 사라지다. 4 | 밥하몬 | 2012.03.13 | 848 |
194 | 루에르 69 | 아인 | 2012.03.12 | 1020 |
193 | 루에르 5화 : 망각의 덫 | 아인 | 2012.03.11 | 1008 |
» | 루에르 4화 : 고동치는 보물 | 아인 | 2012.03.11 | 865 |
191 | 루에르 68 | 아인 | 2012.03.11 | 761 |
190 | [BGM]전 살고 싶지 않아요. 2 | 밥하몬 | 2012.03.08 | 908 |
189 | 이유불문 | 아인 | 2012.03.08 | 826 |
188 | 크로니클 어비스 42 | 아인 | 2012.03.08 | 871 |
187 | 크로니클 어비스 41 | 아인 | 2012.03.08 | 804 |
186 | Noble Princess - 5 | 밥하몬 | 2012.03.07 | 703 |
185 | 크로니클 어비스 40 4 | 아인 | 2012.03.07 | 9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