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하루도 나의 아침이었다. 밤새 잠들어있던 나의 의식이 깨어나고 서서히 아침이라는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하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늘상 그래왔듯이 이제는 적응도 아닌 내 삶의 일부가 되버린 이 생활이 너무나도 단조롭고도 따분할진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이런 내 삶을 그리워하며 추억하는 날이 오게지. 나는 그런 삶의 이야기를 적어내고 싶다. 그저 다른 이들과 똑같은 방식의 것을 그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는 것도 중요하다는걸.
처음에 나는 어떠한 모습이었을지 상상해본다. 새하얀 백지 위에 멀뚱히 서 있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키도 작고 빈약하고 눈물도 많은 그런 아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지독하게 평범한 아이. 그 아이는 백지에 서 있었다. 왜 서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않는 이곳에 자기 혼자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두려웠다. 처음 몇 분간은 별 말 없이 주위를 둘러봤다. 내가 살던 집, 내가 다니던 학교, 방과 후 꼭 들린 근처 구멍가게, 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 혼자만 존재했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나에게 장난치던 코흘리개 친구도,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신나게 그네를 타던 여자아이도 없었다. 왜일까, 왜 나는 이곳에 혼자 있는걸까? 아직 어리고 미숙한 꼬마아이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건 이곳에는 자신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 뿐.
한동안은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우습게도 하늘 또한 무채색의 구름만이 떠다닐 뿐, 평소와 같은 하늘빛을 띄지않는 하늘을 보고 꼬마아이는 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게 꿈이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꿈이 아니라 진짜라는걸 깨닫고나서야 체념하게 되었다. 어떡하지, 어떡할까, 뭘 어떻게하겠어 이미 벌어질 일은 되돌리긴 힘들지.
하루를 그리워했다. 항상 맞이하는 그 아침이 그리웠다. 지금이 밤인지 아침인지도 모르겠고 그저 똑같은 배경이 24시간 반복된다. 심지어 나조차도 서서히 색을 잃어갔다. 곧 나의 존재도 다른 이들처럼 사라질거란 생각에 무척이나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고 그 시간이 오지않기만을 바랬다. 그렇게 그렇게 서서히 천천히 조금씩 어느덧 시간이 흘렀을까.
" "
잔디마냥 뾰족하게 무언가가 소년의 앞에 나타났다.
" "
그 잔디는 소녀 근처에 하나씩 생겨가기 시작했다.
" "
그리고 무언가를 소년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 안녕. "
안녕.
" 넌 이름이 뭐니? "
나도 잘 모르겠어.
" 내 이름은 ' ' 이야. "
' ' 이라고?
" 아니, ' ' 이라니까. "
' ' ?
" 아니, 잘 들어봐 나는 ' ' 이야. "
….
세상은 과연 언제부터 존재했던걸까,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한 이곳의 태초는 언제부터였을까. 태초의 세상엔 누가 있었으며 누가 이 세상을 끌어왔을까. 꼬마는 생각했다. 아무 것도 존재하지않는 이곳을 자신의 힘으로 새롭게 탄생시키겠다고.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는 법은 없다. 한다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면 무너지게되는, 그러나 소년은 달랐다.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다른 이의 말을 들을 수도 없었다. 오직 자신만의 생각만으로 자신만의 낙원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처음은 "사람" 을 만들었다. 신이 아담과 이브를 만든 것처럼 그 꼬마 또한 그들을 대신할 인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과는 다른 개체, 또 다른 세상의 것들을 소년은 원했다.
두 번째는 "마을" 을 만들었다. 자신이 만든 인간들과 새로운 마을을 만들었다. 뚝딱뚝딱 금세 만들지는 못했지만 얼추 시간이 지나니 조금은 멋있는 마을이 만들어졌다. 졸졸졸 흐르는 수도꼭지로 이루어진 호수, 입에서 금은보화를 토해내는 닭순이. 모든 것이 그의 작품이었다.
세 번째는 "사랑" 이었다.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아껴준다. 내가 살아가던 세상의 모습이다. 완전한 사랑은 아니었고, 완전한 삶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살고싶은 세상이었다. 근심 걱정이 없고 누구의 불만과 불평도 없는, 사람들만의 세상. 나만의 세상을.
' '
" "
' 생각을 담아요. '
" 나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어요. "
' 나를 귀족으로 만들 수도 있고. '
" 배부르고 따뜻한 집을 지울 수도 있고. "
' 사랑하는 연인과의 행복을. '
" 죽는 순간마저도 아름다운. "
' ' 의 의미.
" "의 뜻.
난 그래서 소설을 씁니다. 10년 전, 어릴 적 나의 행복을 담았던 그때의 기억을 새로히 적어보고 싶어요. 지금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고 현실을 알기에 부족해진 것 같아요. 답답하고 촉박한 이 삶이 힘들만큼요.
지금의 나는, 모든 것이 새하얀 백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은 다르게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