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이야기

|  나는 작가가 될 테야! 글을 창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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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얼음 바닥에 발을 딛고 서 있는 두 사람과 두 공룡이, 눈 앞의 어마무시해 보이는 이 공간의 주인과 마주하고 있다.
공룡의 뒷편에 선 두 사람의 정체는 대강 짐작이 가능했다.
한 사람은 온 몸 주변으로 차가운 바람의 기운이 풍겼으며, 한 사람은 온 몸 주변에 타닥, 타닥, 자그마한 불꽃이 튀어오른다.
헤티아는 영웅과 네메시스에게 한껏 폼을 잡으며, 마치 멋드러진 대사를 읊듯 말했다.

 

"이제 너의 몸은 움직일 수 없게 얼음으로 조여올 것이다."

 

이에 이 한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손을 잡은 영웅과 네메시스는 각자 자신의 양손을 꼬옥 모아쥐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 모든 건, 두 명의 신 헤메라와 타니토스가 맡긴 막중한 임무!
그 노래는….

 

***

 


헤메라는 자신의 동생이 꽤 귀엽다고 생각했었다.
헤티아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기질이 있었는데, 어릴 적에는 그 모습이 꽤나 독특해 귀여워 보인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서술형이 과거형이란 사실을 인지해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어디까지나 모두 다 과거의 일인 것을….

 

-똑똑똑

 

누군가 살며시 헤메라의 방문을 두드린다.
이전 같으면 단순히 누가 볼 일이 있어서 왔겠구나, 생각하고는 들어오라 말라 얘기를 해주었겠지만, 집무를 보고 있던 헤메라와 옆의 보좌관은 어쩐 일인지 불안한 초점으로 문고리를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나~랑 같이 눈~사람 만들~래?"

 

착각하지 마라.
말을 거는 게 아니라 그것은 음악의 곡조를 띄우고 있다.

 

"제발 좀 나와봐~"

 

범인이 누구인지는 따로 추리할 필요도 없다.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헤티아 말고도 없고 이 목소리도 헤티아의 것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보좌관과 헤메라의 이런 생각은 한치의 틀림도 없이, 문고리에 입을 대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헤티아였다.
헤메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헤티아… 언니가 나갔다 들어온 지 이제 겨우 10분 밖에 안 지났어."

 

성의껏 대답해주는 언니의 말은 아랑곳없이 헤티아는 제 할 말만… 아니지, 노래를 부른다.

 

"언니를 만날 수 없어, 같이~ 놀자 나혼자 심심해애~~"

 

"너, 나랑 본 지 지금 한 시간도 안 지났어…."

 

황당하다 못해 울상으로 대답하는 헤메라.

 

"그렇게 친했는데~ 이젠… 아냐 그 이유를 알~고~파~~"

 

절정으로 치닫는 그 순간 헤메라가 양손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일어난다.
그리고 외친다.

 

"너 때문이야!!!"

 

 

 

***

 


 

"난 사실 얼음의 여왕이야. 그래서 그 누구하고도 어울릴 수가 없는 거지."

 

한껏 슬픈 표정을 얼굴 가득 내보이며, 헤티아는 자신에게 주의를 주러 온 보좌관에게 말했다.

 

"헤티아 님, 이젠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고 성인이시니 조금은 의젓하게…."

 

"철이라면 너무 이른 나이에 들었어. 가혹한 환경이 날 그렇게 만들었지…. 너무 슬퍼… 나도 언니와 친해지고 싶고 친구를 사귀고 싶지만, 소중한 사람이 내 곁에 있다가는,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이 얼음의 악마가 언제 깨어날지 알 수가 없어! 큭큭큭!"

 

"……."

 

이쯤되면 황당함을 넘어서 무서울 지경이었다.
혹시 이건… 정신병이 아닐까?
보좌관은 진심으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예전 인간들이 만들어 낸 어떤 작품을 보고 나더니 증세가 더 심해지지 않았는가!
저 노래를 여기에 있으면서 몇 천번을 들어봤는지 모른다.

 

"레뤼꼬우~!! 레뤼꼬우!! 이젠 더 이상 참지 않아아아아~~"

 

"아, 안, 안 돼애애애애!! 참으십시요 헤티아 님~~!!!"

 

그녀의 돌발행동에 보좌관의 절규가 울려퍼졌다.
하이하모의 대륙 일부분이 순식간에 초록빛에서 새파란 물빛으로 바뀌었으며, 주변에 있던 애꿎은 그린고르 일족들의 몸 표면에 얼음들이 뒤덮였다.
이들은 훗날 그램고르라고 불렸다.

 

 

 

***

 

 

 

"아우 골치야…."

 

하이하모의 공룡들을 보호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잠시 이 천공의 대륙에서 동생을 쫓아낸 헤메라가 의자에 걸터앉으며 머리를 감싸쥔다.
요 근래엔 다른 게 아니라 온 신경을 동생에게만 쏟고 있는 듯한데, 착각일까?

 

"헤메라 님, 괜찮을까요?"

 

"뭐가?"

 

늘 곁을 지키는 보좌관이 헤메라에게 자신이 우려하고 있는 바를 설명한다.

 

"이곳에서 이렇게까지 말썽을 피우셨던 분입니다, 괜히 다른 곳에서도 혹여 큰 사고를 치지는 않을까 하는…."

 

"그건 걱정하지 마, 보좌관. 아무리 그래도 내 동생이 그 정도 생각까지는 없지 않을 거야. 지상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들이 가진 힘은 너무도 크다는 걸

동생도 모르지는 않아…."

 

하지만 헤메라의 생각은 너무도 오만불손했다.
그 일은 금방 눈 앞에 증명되기 시작한다.

 

-콰앙

 

번개처럼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검은 형체.

 

"으앗 깜짝이야?!"

 

느닷없는 방문에 의자에 몸을 기대앉아 있던 헤메라가 반사적으로 튀어오른다.
검은형체의 방문자 타니토스.
그의 얼굴이 심상치 않은 게 무언가 근심이 가득해 보인다.

 

"뭐, 뭐야! 우리 지금 싸우는 중 아니었어? 여긴 대체 뭐 하러 온 거야? 타니토스!!"

 

뭔가 불길하다는 생각은 들긴 했지만, 그 감을 애써 떨쳐내려 괜히 그에게 신경질을 부려댄다.
제발 아니기를, 제발 아니기를, 하지만 역시 헤메라는 오만했던 걸까?

 

"야, 헤메라! 너 대체 뭐 하는 짓거리야?"

 

"왜, 뭐, 뭐, 뭐, 뭐가?…."

 

"헤티아 말이다! 동생 관리 좀 잘 하란 말이다아!!"

 

"……."

 

새파랗게 질린 타니토스의 얼굴.
그와 한쌍의 세트가 되어 마찬가지로 파랗게 질려가는 헤메라의 얼굴.
곁을 지키던 보좌관이 몇초 전 그녀가 한 말을 상기해본다.

'

내 동생이 그 정도 생각까지는 없지 않을 거야.'

 

그 정도 생각까지 없는 동생이었다.
훗날 타니토스와 헤메라는 헤티아가 지상에 창조하려 했던 새하얀 대륙에 포우렌이란 이름을 붙이고 안정화 시키는데 온 힘을 쏟았다.
처음 그 대륙이 하얗게 뒤덮였던 날의 헤티아의 모습또한 두 신의 노력으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버리는데에 성공했다.

 

'후후후후후, 난 얼음왕국의 여왕이 될 것이다! 아, 내 몸 안에 잠들어 있는 이 악마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안 돼!'


 

 

***


 

 

"헤메라, 너… 동생 좀 내쫓지 말아라."

 

"야, 너 또 뭔데, 뭔데!!"

 

상황이 어쩐지 이전과 비슷한 것 같은 건 착각일까?
흡사 데자뷰 현상을 느끼는 헤메라와 보좌관은 매우 매우 불안한 눈빛으로 타니토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이전보다 더 하얗게 질려 마치 백지장처럼 보였다.
검은 형체가 하얀 형체가 되기 일보 직전이다.

 

"네가…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 나 좀 도와줘야겠다."

 

"무… 무슨 일인지는 말해줘야지?…"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목소리도 덩달아 떨렸다.

그의 표정이 힘 있게 역설하고 있다.

이것은 절대로 심상치 않은 일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그의 얼굴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다.

제발, 이건 제발 가벼운 농담이라고, 별 일이 아니기를 빌고 싶었다.

 

"내, 내 영역에서 말이다! 네 동생 헤티아가 말이다아! 렛잇고인지 뭔지를 부르면서!! 더 이상 참지 않을 거라며 화산섬을 얼음으로 뒤덮고 있단 말이다아아!!"

 

"……."

 

"화산에 사는 공룡들을 생각해서라도 넌 지금 당장 나를 도와야 해! 야무리가 지금 날 찾아와선 추워서 살지 못하겠다고 엉엉 울면서 드러눕고 있어! 스톤크랩이 제 몸

에 열기가 다 빠져나갔다며…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등 뒤의 불이 꺼졌대!"

 

"잠깐,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 타니토스… 협조할게."

 

이번에도 역시 새하얀 백지장 한 장 더 추가요! 두 장 한쌍이 되어 세트가 된다.


 

 

 

***


 

 

"헤티아 선물이 있어."

 

헤티아를 향한 헤메라의 다정한 말.
갑작스러운 그녀의 '선물' 이란 말에 헤티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한다.

 

"응? 웬 선물?"

 

"평소 네가 그토록 바라던 거야."

 

"내가 바라던 거?"

 

평소와는 뭔가 다른 모습인 듯한, 진중해 보이는 언니의 모습에 헤티아는 어리둥절… 근래 자신이 갖고 싶었던 게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본다.
결과적으로 언니가 준비했다는 게 뭔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겠다.

 

"헤메라만이 아니야, 나도 같이 준비했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타니토스가 헤메라 곁에 함께 서며 얘기한다.
아니, 이 사람들이 무슨 바람이 불어 내게?
헤티아는 얼떨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입에선 평소 배어있는 흡사 배우의 대사와 같은 말이 튀어나온다.

 

"후… 후훗, 그, 그래…? 그 선물이란 걸 한 번 봐 보도록 하지. 나는 물론이거니와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이 얼음의 여왕 또한 마음에 들어할지 모르겠어. 큭큭…!"

 

"응, 마음에 들 거야."

 

마지막 말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헤메라와 타니토스가 하나 된 마음으로 함께 얘기했다.
헤메라는 아직도 당시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너를 위해 준비한 얼음왕국.
그토록 얼음의 여왕이라고 떠들어대던 널 위해서 준비했던 선물!
동생이 차원의 틈 안으로 들어간 그 순간 매몰차게 문을 닫던 헤메라 자신과 타니토스.
그때 말했었지….

 

"평생 이러지는 않을 거야~! 중2병이 나을 때까지 만이야~! 중2병이 나으면 꼭 꺼내줄게!"

 

하지만 그녀와 타니토스는 알지 못했지.
그 말이 곧 평생을 의미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