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이야기

|  나는 작가가 될 테야! 글을 창작해요

2015.05.27 22:22

어둠의 기사 (2011)

조회 수 667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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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뭔가 굉장히 추상적인 조각인데."


 "그래도 확실해."


 온갖 도형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인 석판들의 집합. 언뜻 보면 아무 의미도 없는 무늬로 지나치기 쉽지만, 조금만 관찰해봐도 쉽게 답이 나온다. 용을 다루는 갑옷 입은 사람을 새긴 조각이다.


 "어둠의 기사."


 정말 이런 곳에 어둠의 기사가 잠들어 있을까. 본연의 의도는 아닌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선을 낳았다는 기사. 그는 싸울 상대가 없어지자 스스로를 봉인해버리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싸우질 못하니 심심해서.


 바니유는 경건한 자세로 섰다.


 "자, 빛의 기사의 힘을 발현하자."


 "그래."


 바니유는 여전히 블랑은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블랑은 모험소설에 단골소재로 등장하는 고대언어 따위, 익혀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살아가는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은 싸우기만 하면 된다.


 이윽고 바니유의 몸에서 옅은 빛이 발하기 시작했다. 블랑의 손에 들린 기름이 떨어져가는 등잔불과 비슷한 밝기였다. 그 빛은 점점 기세가 오르더니 곧 석판실 전체를 비출 정도로 밝아졌다. 눈을 뜨고 있기에 지나치게 밝아질 즈음 빛에서 촉수 같은─언제 봐도 기분 나쁜─것이 뿜어져 나와 이리저리 구부러졌다. 빛들은 글자 모양을 이루어 블랑의 몸의 각 부분으로 날아가 각 부분에 해당하는 갑옷으로 변했다. 블랑이 짧게 투덜댔다.


 "언제 해도 민망하고 길단 말이야. 좀 짧게 해주면 안 돼?"


 "난 좋을 것 같아? 얼른 어둠의 기사나 깨워. 노닥거릴 때는 아니니까."


 "쳇."


 블랑이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순간 석판이 검게 빛난 것 같기도 했다. 검게 빛나다니.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 같지는 않지만…….
 

 손이 석판에 닿았다.
 

 "……."


 심장의 두근거림만 커져가는 가운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긴장감이 정점을 찍자 블랑은 입술을 깨물며 한숨을 내쉬었다.


 "휘유."
 

 그 때, 위에서도 비슷한 바람소리가 났다. 쓸데없이 높다고 생각한 천장이었다. 그러나 쓸데없는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바람소리는 계속해서 나고 있었다. 이윽고 굉음과 함께 바닥이 쪼개지고,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두 사람의 뒤로 무언가가 떨어진 것이었다.


 "뭐야, 무너지는 건가?"
 

 "아니야!"
 

 자욱한 먼지가 일렁였다. 거센 바람결에 등잔이 결국 명을 다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블랑은 황급히 팔을 쳐들었다. 빛의 기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갑옷에는 어째서인지 발광기능이 있었다. 그러고보면 어떤 의미에서 바니유나 블랑이나 빛날 수 있으니 등잔은 굳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희미한 그림자가 보였다.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커다란 봉 같은 것, 갑옷, 뒤로 올려묶은 머리. 그림자가 말했다. 소녀의 목소리였다.
 

 "님 누구셈?"



(2)

 

 "으윽!"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어둠의 기사는 막대기를 붕붕 돌렸다. 어둠의 기사가 용을 다룬다는 것은 심각한 와전이었다. 그저 용머리 모양의 날이 달린 막대기를 쓸 뿐이었다. 뭐라 칭하기 애매한 그것은 결국 끝에 달린 용머리는 생략당하고 막대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창, 도끼, 낫, 지팡이. 어느 쪽으로든 분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아마 역사의 기록자들도 이 애매함을 극복하기 위한 호칭을 찾다가 전설적인 용사답게 용이라는 다소의 거짓말을 섞은 것이 분명했다.
 

 "님 나 스트레칭 안 끝남. 빨리 덤비셈."
 

 "아……."
 

 블랑은 영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알아듣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데다, 알아들었다 쳐도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어둠의 기사는 너무 강했다. 블랑의 남자로서의 자존심은 이미 벅벅 긁혀나간지 오래였다. 어둠의 기사가 고작 스물도 안 된 여자애─물론 이것은 외형에 한정된 것이다─라니!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라고 변명하기는 너무 구차했다. 상대는 몇백 년을 잠들어있다가 갓 깨어난 상태지 않은가. 어둠의 기사는 스트레칭─이것이 몸풀기라는 단어로 해석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을 한다더니 블랑을 상대로 덤벼들어 순식간에 몰아붙이고 말았다. 빛의 갑옷이 아니었더라면 벌써 팔다리 하나쯤은 잘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진작 멀찍이 피해있던 바니유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준비운동하다 사람 잡겠네."
 

 "응? 님 뭐라 그랬음?"
 

 "네?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귀까지 밝았다.
 

 블랑이 여전히 자세를 바로잡지 못하자 어둠의 기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존나 빡치네. 빛의 기사가 왜 이리 개허접이삼?"
 

 "크읏……."
 

 짜증이 나기는 블랑도 마찬가지였다. 블랑은 악을 써서 일어났다. 원군을 얻으러 왔는데 이게 웬 재앙인지. 공용어인지조차 의심이 가는 언어 사용에, 말도 안 되는 괴력에도 불구하고 보통 소녀들과 다를 바 없는 가녀린 몸매를 한 여자아이한테 죽을 듯이 맞고 있자니 미치기 직전이었다. 블랑은 빛의 기사의 얼마 남지 않은 자존심을 긁어모아 힘으로 삼았다.
 

 "덤벼!"
 

 "감사."
 

 잠시 후, 바니유는 위령제를 준비할 것인지 말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3)



 블랑은 검을 다잡았다. 베어질 리 없는 검은 안개를 베었다. 흩어질듯 하던 안개는 금세 다시 뭉쳐졌다. 화가 치솟아서 절로 이가 부드득 갈렸다.
 

 "안습."


  "무슨 뜻이야?"


 

 대답은 기대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설명은 들려오지 않았다. 설명하기 싫다기보다는 설명할 줄 모르는 것이다. 이제 블랑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다굴하면 됨."
 

 해결책을 제시한 걸까. 이빌리엔은 막대기를 휘두르며 달려나갔다. 안개로 이루어진 검은 인형들을 베었다. 안개도 검고 인형도 검었으나 인형쪽이 약간 더 짙어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 어찌 분간이 되었다. 용머리에 베인 인형들이 천 찢기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러나 곧 다시 뭉쳐들어 일어섰다.
 

 "뻘짓 쩌네."



-----


예전에 모 세계관에 쓰려고 만들었던 설정으로 짤막하게 썼던 글.


문단이 짧은 이유는 문자로 써서 보낸 걸 타이핑한 거라서.


저만을 위한 글이라 당연하게 배경지식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습니다. 하하


어둠의 기사는 현재는 폐기한 설정입니다만..  현대신조어를 남발하는 게 중요한 친구. 재밌는 캐릭터라 어디다 재활용할지..

  • ?
    또하나의꾸엑 2015.05.28 07:24
    으음... 새롭게 글을 쓰실 거라면 귀여운 여성들로 이루어진 기사단은 어떠신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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