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거울> - 5 -
하늘의 색이 옅어진다. 색의 흐름이 흐르는 동시에 구름의 모습 또한 형용할 수 없는 형태로 흘러갔다. 철창 안을 감도는 한기, 그리고 내 입에서 뿜어져나오는 하얀 연기만이 시간의 흐름을 증명하듯 퍼져 흘렀다.
그 누구도 나를 찾아오지않았다. 녀석의 졸개들이던가, 카르카테론의 등장이라던지. 그 무엇 하나도 나를 반기지않고 적막한 고요만이 자꾸만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언젠가는 밝혀질 일이였으며, 내 딴에는 누군가가 대신 이 일을 밝혀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않았고, 결국엔 이러한 일을 자초하게 만들었지만. 그럼에 나는 다른 면으로는 감사하게 여긴다. 어떻게보면 짧지만 긴 이 악연을 내 손으로 끝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얀 입김이 맥 없이 공중으로 퍼져흐른다. 부들부들 떨리는 두 다리와 팔, 그리고 시야를 가늠할 수 없는 내 풀린 두 동공이 부르르 내게 닥친 이 상황을 부정하고싶은 듯, 내가 원치않는 방향으로 시선이 돌아갔고, 그 시선에는 놈들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금방이라도 나를 끌고 처형대로 연행해갈 듯한 모습이지만, 그들은 아무런 행동없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나 내가 지금에서라도 잘못을 빌었으면 하는 녀석들의 소망일까? 나를 전우라 여기며 내 목숨을 구하고픈 저 녀석의 심정을 내가 알아줬음하는걸까, 하지만 그 또한 그건 자신이 꿈꾸는 망상이라는걸 알고 있을테다. 그것이 우리 용병들이니.
시간이 점차 흐르고, 분주히 움직이던 구름들이 서서히 움직임이 더뎌질 때쯤, 굳게 닫혀 열리지만 않을 것 같던 철창의 문이 열리며, 길고 뾰쪽한 창을 들고 있는 용병들이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나의 두 팔을 잡아당기며 강제로 나를 일으켰다. 오랫동안 아무런 움직임조차 허용하지않았던 내 몸은 굳게 굳은 나무 같았고, 몸을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내 몸에선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며 서서히 굳었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창 밖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그가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시선을 두었고, 두 용병에게 끌려 철창 밖을 나서는 나를 향해 그는 매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에서도 늦지않았어. 당장 주군께 가서 용서를 구하게!"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군을 모함한 이 놈에게 자비를 베풀다뇨? 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하십시오!"
그의 말에 같이 있던 용병들은 당황한 듯한 모습으로 그에게 소리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않고 나를 설득시켰지만, 나는 그런 그에게 아무런 대답조차하지않았다. 그저 말 없이 그의 눈동자를 응시할 뿐이였다.
"백성을 잃은 나라에겐 왕은 필요없다."
"아인!"
"하물며, 한 나라의 왕을 해하여 그 왕위를 빼앗으려는 자가 있다면 너는 어떠한 행동을 보일건가?"
"너…."
"나는 그 자를 잡아 족칠 것이다. 그게 누구든, 설령 이 나라의 왕일지라도…."
그 말은 끝으로 나는 다시금 말문을 닫았다. 두 번 다시는 열리지않은 입이란걸 그는 알았는지 더 이상 나를 향해 말을 건네지않았다. 이것으로 우리들은 더 이상 엮이지않겠지. 이 일은 나 혼자 벌인 것, 다른 누가 얽혀있다면 내가 편히 눈을 감지 못할거야.
"…."
솔직히 말하자면, 고마웠다. 내 편이 하나라도 더 있다는 사실에 난 감사한다. 하지만 더 이상은 나서지마, 너는 이미 충분히 너의 몫을 해줬으니까. 그 뒤는 이제 내가 감당하겠다. 너는 네 자리를 지키며 내일을 위해 살아남아라.
습기 가득 찬 철창 안을 빠져나오니 태양의 햇살이 나를 비추며 내려왔다. 어찌보면 이 햇살이 오늘로써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괜시리 마음이 차분해진다. 나는 이걸 위해 지금껏 살아왔던걸까, 이 일을 밝힘으로써 그들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내 머릿 속에 나타나 내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 그러나 번복할 생각은 없다. 그때 이후로 나는 사람답지않은 삶을 살아왔어, 이제서야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데 그걸 마다할 리가 없잖아? 내 행복을, 내 행운을, 그날 이후로 불행했던 내 삶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로써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뛰어 넘은거야. 그리고 내 마지막 보루는 안전할테니까….
「 찰그락 」
감옥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내 두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어처피 도망갈 생각도, 이 일을 번복할 생각도 없었지만, 막상 이렇게 죄인 취급을 하니 뒤늦게야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고 위험한 일인지를 지금에서야 자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치 흔들림 없는 감정으로 나를 이끄는 용병들을 따라 앞으로 걸아가던 중, 웬 용병 한 명이 내 옆을 걷더니 이내 베시시 웃으며 내게 말을 건다.
"아인 님이시죠?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용병들 중에서도 상위 클래스에 속하는 분이셨다고요."
그 용병은 다른 용병들과는 달리 꽤나 앳 되보이는 얼굴이였고, 많이 쳐봐야 17~18살 나이 밖에 되보이지않았다. 그는 마치 유명인이라도 본 듯 꽤나 들떠보였고, 소년은 지금까지 쌓아놓았던 말들을 모두 풀어놓는 마냥 내게 이런 저러한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에 반해 나는 아무런 대꾸도 반응도 없이 소년은 무시한 채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그런 나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않고 하던 이야기를 마저 이어가며 자기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고, 쉴 세 없이 울려퍼지는 소년의 목소리에 살짝 신경이 곤두선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소년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게 왜 이러는거지? 내게 바라는거라도 있는건가?"
소년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마냥 잠시 멍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동안 말문을 닫았다. 조금은 시끌거리던 소년의 목소리가 사리지니 이내 내 주변 공간엔 고요함만이 감돌았다. 그리고 소년은 아까와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아인 님을…구해드리고 싶습니다."
소년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린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네가 한 그 말이 무슨 뜻인줄은 알고 하는 말인가?"
"아인 님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그건 네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아인 님은, 아인 님은…."
「 탁 」
나는 소년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린 뒤, 천천히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녀석의 부탁을 받고 온건가?"
소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에게는 조금 좋지않은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더 이상 아인 님이라고 부르지마라."
"…네?"
"나는 용병이 아니다. 그러니 용병인 네가 나를 높혀 부를 필요 없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저 네놈들이 부르기 쉽게 하기 위해 용병이란 칭호를 잠시 빌렸던 것 뿐, 이젠 더 이상 그 칭호는 필요 없어."
"아인 님…?"
나는 소년의 머리에서 손을 뗀 뒤, 소년이 건네준 열쇠로 빠르게 수갑을 푼 뒤 내 좌우에 서 있는 용병들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내 주변 반경을 넓혔고,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잠시 혼동을 한 듯 멈춰있는 그들을 향해 나는 품 안에 숨겨두었던 단도를 꺼내 눈 깜짝할 세에 그들의 동맥을 끊어버린 뒤 붉은 비명소리 뒤로 모습을 숨겼다.
"아인 님!!"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오나, 이 이상 함께하는건 무리다.
"너는 그 녀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라."
나는 그 말은 남긴 채,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
무너져가던 이 나라에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해이해진 사람들에게 의지를 불어넣었고, 갈곳을 잃고 방랑하던 용병들에겐 의욕을 불어넣어주었다. 그들에게 새로운 왕은 그들에게 새 미래를 여는 출입구였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왕은 이 나라에 있던 용병들이란 용병들은 죄다 모집해와 한 자리에 모아놓았고, 그는 우리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에 내가 있는 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도록 강인한 나라로 만들거라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자네들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네. 날 위해, 이 나라를 위해 날 도와주겠는가?"
그 말에, 나를 제외한 그 자리에 모인 용병들을 하나 같이 큰 소리로 대답했고, 그는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용병 한 명 한 명 불러 그들에게 새 장비들을 부여하며 더욱 더 열심히 이 나라를 위해 힘써달라는 그의 말에 용병들은 고개를 연신 떨구며 그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모습에 나는 말 없이 그를 쳐다봤다.
그러던 중, 그가 슬쩍 나를 바라보다 갑자기 나에게 손짓을 하더니, 이내 괴기스러운 웃음소리를 내며 내게 말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아인, 주군께 인사드립니다."
"언제 우리 만난 적 있던가?"
"…아닙니다."
"그래? 그런데 왜 이렇게 낯이 익는 얼굴이지…."
"…."
"뭐,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 없지. 아무쪼록 부탁하네."
나는 장비를 건네받고 제자리로 돌아가 들고있던 장비로 갈아입은 뒤 조용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빠져나오는 동안에도 용병들의 환호성이 끈임없이 들려왔다.
"갔다오는거야?"
밖에서 기다리던 카르카테론이 지루하다는 하품을 내쉬며 나를 반겼다. 나는 들고있던 갑옷을 바닥에 내팽개쳐버린 후, 긴 한숨과 함께 녀석을 노려보며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 토론을 하려했지만 녀석은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내 입을 틀어막으며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직은 노코멘트. 나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해 서로 곰곰히 생각해보는게 어때? 아니 어쩌면 네가 나보다 먼저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는 의미 심장한 말을 남긴 채 또 보자는 말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나는 녀석이 사라진 빈 자리를 말 없이 바라보며 한참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조금은 허탈하면서도 찝찝한 이 감정 때문에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않았다. 이렇게 끝내도 되는 것일까? 이 쓰러져가는 나라에 새로운 왕이 나타난 것으로 나의 임무는 끝난 것인가? 아리아의 복수는? 주군을 죽게 만든 녀석들에 대한 나의 분노는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진짜 이것으로 모든게 끝인건가? 녀석은 정말 이것을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던걸까? 의문이 의문이 되어 또 다른 문장을 낳아 또 다시 내게 되물었다. 하지만 나아지지않는 답답함, 누군가 내 주위에서 나를 조여오는 듯한 갑갑함. 정말 이것으로 모든 것이 나아질까?
모든 것은 물음표가 되어 주위를 맴돌았다. 하늘에 구름마저도 조금씩 흐트러지며 그 녀석처럼 사라진 후, 그 후에는 달이 떠올랐다. 붉게 물든 노을 뒤 흩날리듯이 사라져가는 구름들이 자꾸만 달을 강조하여 붉게 번져가는 노을로 달을 끌여들이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들은 반복되었다. 후련해지지않는 가슴만이 텁텁한 내 입가에 모래알이 되어 남을 뿐, 후련함 또한 내가 알던 후련함과는 다른 또 다른 심정, 갑작스레 나타난 녀석과 그 뒤에 벌어진 알 수 없는 일들, 모든 것을 감당하고 모든 것을 이루겠다는 전념 하에 일어난 또 하나의 개척. 하지만 내가 원한 결과는 오지 않았어. 자꾸만 시간은 흘러가고 그때의 기억들은 가물가물해지기만 해. 분명 방금 전까지만해도 내 옆에서 꽃을 들며 웃고 있는 그녀가 서 있었는데, 지금은 그 아무 것도 존재하지않아. 마치 이 세상에 피바람이 분 마냥….
바작 바닥 내 길이 닿는 곳마냥 부서지는 그날의 잔해들이 자꾸만 내 발에 박혀 욱씬거린다. 끈임없이 불어오던 비릿한 피의 냄새와 그 뒤로 몰려드는 탁한 모래바람에 가려진 녀석들이 금방이라도 다시 내 앞에 나타날 것마냥 싸늘하게 느껴져. 아무 것도 들지않은 내 오른 손엔 무언가가 묵직한 느낌이 들고, 내 발자국 밖에 남겨지지않은 땅 위에는 무언가가 질질 끌려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 나의 환청일까, 아님 내가 느끼지않고 있는 또 다른 공간인가. 매캐한 향과 묵직한 뭔가가 자꾸만 나를 짖눌러와, 분명 내 어깨 위엔 아무 것도 없는데, 달에 비친 내 그림자엔 또 다른 무언가가 비친다. 나를 억누르는 이것이 무언인지는 나도 잘 몰라, 단지 보이지않기 때문에 앞으로 걸어가는 것 뿐이야. 그것 뿐이야, 내가 걷는 이 순간에도 나는 아무런 이유 없이 걷고 있어. 내가 굳이 이 길을 걷지 않더라도, 내가 가만히 있더라도 내 존재를 알아주는 이는 그 어디에도 없는데, 나는 뭐 때문에 이 험난한 길을 걷고, 또 걸으며 나의 존재를 남기려는걸까? 또 다시는 나는 이 고된 길을 혼자서 걸어야하는 것일까하고 남몰래 웃으며 혹은 괴로워해. 잠시라도 쉬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무거웠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져 다시금 걷게 만들어. 그러다가 또 다시 멈추게되면 그 일들은 반복되어 나를 멈출 수 없게 만들어. 그런거야, 내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계속 걷는 이유는 그것 하나일거야. 날 걷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나는 걷고 있다는걸. 멈추려고 하면 할 수록 그 거리를 왠지 모르게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반복해. 그리곤 그 목적지만을 향해 걸어갈 뿐이야. 내가 찾는 이유가 저곳에 있을거라는 믿음으로. 그러다 문득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봐, 그러면 그곳에는 또 다른 내가 비춰져 내 앞에 나타나, 마치 내 앞에 거울이 있는 마냥 내 모습이 보여. 그리고 한동안 거울에 비춰진 나를 보며 나는 생각해. 이건 내가 아니라고, 이건 그저 또 다른 공간 속에 비춰진 허구의 인물이라고, 이곳에 있는 내가 진짜 나라고, 저곳에 있는 나는 내가 아니야. 너는 그저 나를 따라 움직이는 광대에 지나지않아. 나는 너와는 달라, 나는 너처럼 광대놀음을 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게 아니라고.
「 빠직 」
또 다른 세상에 금이 간다. 마치 누군가가 허공에 줄이라도 그은 듯, 일정치않은 균열들이 하나 둘 늘어나 내 몸 전체를 감싼다.
「 콰창창 ― !! 」
그리고 이내 거울은 산산조각이 되어 허공에 흩어지며 날카로운 조각만이 바닥에 남았다. 검게 그을린 듯 캄캄한 공간 속에 비춰진 나는 어디론가 사라진 후, 그 자리에는 반짝이는 거울 조각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내 그 조각이 빛나기 시작하며 칠흑 같이 어둡던 길이 점차 환해지며 겉잡을 수 없는 돌풍과 함께 사라져갔다.
「」
"네…네가 어떻게 여길…?"
당황스러움이 역력한 녀석이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지만 녀석의 주위에는 선혈이 낭자한 죽은 병사들의 시체들만이 갈 곳을 잃고 이승에 떠돌고 있을 뿐. 아직까지도 그 따스함을 잊지 못하고 주위를 훝어보던 나의 검이 이내 녀석을 바라보며 시선을 멈추었다. 금방이라도 놈의 목을 앗아갈 것만 같은 모습으로 바닥에 검붉을 피를 쏟아내며 놈을 향해 달려갔다.
P.s : 6화 ' 깨진 거울 ' 종료. 슬슬 결말이 다가오네요. 즐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