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26

by 아인 posted Dec 0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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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각> - 1 -


 여기에 오기까지, 수많은 아픔과 슬픔이 내 안을 가득 메웠다. 더 이상은 채워질 수 없을만큼 차오른 내 고통의 웃음은 칼날에 서려 무섭도록 매서운 눈물을 흘리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가느다란 운율이 허공을 가르며 붉은 빛을 머금은 한을 뿜으며 녀석을 향해 날아갔다.

 미약하지만 그렇다고 충격이 가해지지않은건 아니다. 단지 조금은 더 오래 걸릴 뿐이였다. 그러나 지금껏 걸어온 내 길은 이것보다 더 날카롭고 차디찬 시련이었음을, 그렇기에 이정도에 꺾일 수 없다는걸 스스로도 알기에 한 번 휘둘렀던 것은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듯, 조금씩 천천히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 끔찍하고도 추악스러운 이 상황을 나는 아무런 내색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끄윽…."

 "이 아픔을…. 그 상처로 다 담을 수 있는가?"

 "아인 경…."

 "그동안에 모든 고통을, 단지 그것만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냐는거다."

 "아인 경…?"

 "…그 붉은 선으로, 나의 슬픔을 덜어낼 수 있나."

 흘러내릴 듯 말 듯, 미련이 남은 듯 흘러내리지않는 그의 눈망울에서 깊은 분노를 느꼈다. 휘몰아치는 바람마저도 쉽사리 이 불을 꺼트릴 수 없는지, 그저 그 장소를 계속 맴돌 뿐이었다. 

 시간을 원했다. 그와 마주보며 설 수 있는 시간을, 보통 평범하게 마주 보는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원했다. 그런데 내 바람대로 이루어졌건만, 왜 나는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일까? 아직 미련이 남아있는건가, 아니 내게도 아직까지 '미련' 이란게 남아있던건가? 이미 모든걸 잃었다해도 할 말이 없다. 사실이니까,내 곁에 있던 모든 이들이 내 곁을 떠나갔어. 마치 아무 것도 없었던 그때처럼, 아무런 거리낌도 느껴지지않아. 당연하게 여기는건가? 마치 내가 혼자인 것을 오래오래 기다린 것처럼…. 

 "아…아인 경, 내 말 좀 들어보게."

 "오래 전부터 나는 듣고 있었다. 네 녀석이 스스로 기회를 버린 것일 뿐이지."

 "일단은 그 검부터 내려놓게, 자네 그 검 때문에 내가 이렇게 상처를 입고 말지않았나? 그러니 일단 그 검부터 거두게, 내가 이리 부탁하네."

 "…상처?"


 「 빠각―! 」


 "커헉."

 "네 녀석은, 고작 이 정도의 것을 상처라 부르는건가?" 

 "아…아인 경…."

 "네놈 때문에 찢겨질대로 찢겨진 나는, 대체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은거지? 넌 그걸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나?"

 "아인 경…. 제발…."

 "너는, 한 번이라도 우리를, 이 나라의 백성을 위해 살아왔냐고 묻고 있는거다!!!"

 

 「 촤좍 ― 」


 "…어억."

 "…고작, 그만한 상처 하나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저 너에게는 살짝 베인 정도의 상처겠지만,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절실하고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않을 정도의 공포다. 그런데도 네 녀석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였지? 그냥 놀고 먹지않았는가…?"

 부들부들 떨려오는 손 끝으로 녀석의 갈 길 잃은 눈동자가 검 끝을 멍하니 바라보며 천천히 허리를 숙이며 바닥으로 내려갔다. 온기가 느껴지는 그의 피가 바닥과 그의 옷에 스며들어 잠시나마 녀석을 감싸지만, 금세 식어버리고 말겠지….

 "…더 이상 이 나라엔 왕은 필요없어. 이젠 이 나라를 찾는 이도, 찾을 이도 모두 "


 「 ― 털썩 」


 "…."

 매서운 바람이, 마치 그들의 눈처럼 살기 어린 미소로 나를 바라보는 것마냥 따가웠다. 금방이라도 살갗이 찢겨져 나갈 것처럼 거세게 불어오고 있어.

 "고작…. 그만한 상처 하나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저 너에게는 살짝 베인 정도의 상처겠지만,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절실하고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않을 정도의 공포다. 그런데도 네 녀석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였지? 그냥 놀고 먹지않았는가…?"

 나의 말에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그 말이 사실이란걸 자신도 인정하니 그런 태도를 보일 수 밖에 없던거겠지. 하지만 약한 자일수록, 그리고 어리석은 지능을 가진 상대일 수록 그 방법은 더욱 더 치밀해져 허를 찌르기도 한다. 이 나라의 왕이자, 현재 많은 용병들을 이끌고 '국가' 라는 이름 뒤에 숨은 '힘' 을 손에 넣기 위해 이 자 역시 별거 없는 머리까지 써가면서 이 자리에 오른 것이겠지. 하지만 그 방법은 옳지않아. 수 많은 사람들 눈에선 원망 어린 눈물만이 흐를 뿐이고 그 피해자는 한 명도 아닌 누군가에겐 몇 백명의 눈물을 흘릴 정도의 충격을 주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대표해 이 자리에 섰고, 한 땐 '용병' 이란 그림자 안에 갇혀 있었지만 이제는 그 그림자에 빛이 들어 세상이 환해지니 나의 숨겨졌던 모습 또한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되었다. 그 흔적으로, 나는 이 자에게 자그마한 '자취' 를 남긴 것 뿐이다.

 묻고 싶은 말이 있다. 그 말을 묻기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어, 지금이라도 묻는다면 그리고 지금이라도 뉘우친다면, 난 이 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묻고 싶은게 있어. 두 번은 묻지않을거야, 단 한 번만이라도 진실을 원할 뿐이지. 이 한 번이 너에겐 기회가 될 수 있고 네가 지금껏 저지른 행동에 대해 용서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 그렇다면 너는 어떠한 대답을 해줄거지?"

 물었다.

 그리고 긴 침묵이 흘렀다.

 

 「 척 」


 "…왜 이 나라의 왕이 된거지?"


 「 척 」


 "단지…권력 때문인가?"

  

 「 척 」


 "그게 아니라면, 네 녀석이 원했던건 대체 뭐지?"

  

 「 철컥 」

 

 "왜 네 녀석으로 인해, 내가 눈물을 흘려야하는지 묻는 것이다."

 "그 대답은 바로 이곳에 있다. 이로써 너의 죄는 증명되었고, 너의 마지막 기회 또한 날아가고 말았어."

 많고 많은 칼날 뒤에 숨은 병사들의 매서운 눈빛이 애꿎은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렇다고해서 무섭거나 불안하다는 식의 떨림은 아닌 것 같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무언가를 찾게된 듯이 긴장되면서도 한 쪽으로는 이런 식의 전개를 원했던 것처럼, 마치 이 모든 상황이 내가 이루고팠던 일들의 시발점이자 말로라는걸 내게 보여주는 것만 같아. 하지만 끝은 내가 원했던대로는 가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워.

 "나는 대체 무엇 때문에 이 나라를 위해 싸운거지?"

 "그런 질문부터 너는 용병의 자격을 박탈 당할 이유가 된다."

 "내가 용병이기 이전에,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말로 들어도 되는거지?"

 "이 나라에 속한 모든 이들은 백성 혹은 용병에 속한다. 그러나 그 둘 중 아무 것도 해당되는 사항이 없다면, 네 녀석이 이 나라의 있을 곳은 없다."

 "그런…건가?"


 「 척 」


 "이 자식! 지금 뭐하는 짓이야?!"

 "검을 거두지 못해?!"

 방금 전까지만해도 나를 향해 날카로운 칼을 들이 밀던 녀석들이다. 남을 향해 휘두를 때는 마치 5살 아이가 잠자리를 잡아 장난을 치듯 해맑은 표정이었는데, 입장이 바뀌어 도리어 자신들이 잠자리 입장이 되니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가관이다. 이처럼 인간들은 비약적이며 간사스럽다. 자신들이 마치 신이라도 되는 듯, 그에 해당되는 막대한 힘을 가지면 그런 착각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벽이 세워지고 그 벽을 뚫을 수 없다는걸 알고난 뒤엔 다시 힘이 없던 그때로 돌아가고 만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고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의 근본이다. 자라온 환경으로 인해 성격은 바뀔 수 있지만, 본능은 바뀌지않는다. 벼랑 끝에 놓여진 사람처럼, 뜨거운 불길 속에 갇힌 사람처럼, 살기 위해선 아둥바둥 우리들이 평소엔 가질 수 없던 무한한 사고방식으로 그 자리를 빠져나갈 궁리를 할 것이며 그 결과가 참혹하거나 혹은 새 생명을 얻은 것마냥 황홀하거나 둘 중 하나일거다. 대개 그 상황에서 벗어난 자들은 개과천선한다는게 일방적이지만, 그건 첫 번째의 경우에 일이고, 만약 그런 일이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벌어진다면 그 자는 매 번 새로운 삶을 살게 될까? 내 대답은 NO다. 사람에겐 어느 수치에 해당되는 정도란게 있는데 그 정도가 지나치면 지나칠 수록 우리의 머리는 익숙해진다. 익숙해진다는건 정확히 말하면 뭐? 바로 아무렇지않게 된다는거다. 당연하게 여기는 바람에 원래엔 피할 일들이 이제는 별로 와닿지않는다는 얘기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를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정작 이 말을 하는 나는, 너무나도 그 길을 많이 걸어오고 말았다. 이제는 더 이상 그 기억들로 인해 상처 받기엔 너무나도 많이 닳고 말았어. 이제는 이 검 또한 내 일부가 된 듯 너무나도 자유로우니까, 함부로 움직였다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야.

 "백성 또는 용병이 아니면 적이라는 말, 나 또한 공감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런데 이미 이 나라엔 백성이나 용병 따윈 존재하지않아. 힘에 굶주린 하이에나들만이 들끓을 뿐이지, 대체 이 쓰러져가는 이 나라가 뭐가 좋다고 이렇게 얽히고 설키는거지? 그렇게 힘이 좋다면 그 잘난 전쟁 또한 한 번도 일으키지않고, 이 작은 나라 안에서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고, 이 나라의 왕이라는 작자가 그 '왕' 이라는 칭호만을 앞둘 뿐이며 정작 자신의 위치에 서서 제 할 일을 해내지 못한 자를 네 녀석들은 '왕' 이라고 부르는 것이냐!"

 "…그게 뭐가 잘못된거지? 그 또한 평화의 증거가 아닌가? 하루에도 몇 번씩 전쟁이 일어나 수 많은 백성들이 피해를 입거나 용병들이 목숨을 잃는게 네 녀석은 평화라고 생각하는가? 이렇게 아무 일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주군께서 이루신 결과물이다. 네 말대로 주군께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면 가능키나한 일인가?"

 "너희들이 어떻게서든 이 자가 한 행동들에 대해 크게 부풀려봤자 결과는 '무관심' 에서 비롯된 일들이다. 정말로 이 자가 이 나라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면 왜 다른 나라들과의 만남을 꺼려했지?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웃기는 소리, 아무리 우리들의 입에서 전쟁 전쟁 노래를 부른다지만 전쟁이란 그렇게 쉽게 일어나는게 아니란걸 네 녀석들이 모르는건 아니겠지. 만약 네놈들 말처럼 전쟁이 일어날 것을 꺼려해 만남을 피했다? 그렇다면 왜 용병들의 수를 늘리지않는거지? 전쟁에서 이겨 그 나라를 재패한다면 그 또한 평화가 아닌가? 수를 늘리기 싫다면 훈련을, 그것도 싫다면 강한 무기를! 하지만 대체 무엇 하나라도 우리들에게 돌아온 것이 있는가? 없어. 그저 용병들은 쳇바퀴 속 햄스터에 불과해. 돌리고 돌려봤자 앞으로 나아가진 않고 제자리를 계속 맴돌 뿐이니까. 이 나라에는 힘이 없다. 백성을 지킬 힘도, 용병들을 이끌 힘도 존재하지않아. 마치 더 이상은 이 나라에 애정을 쏟아부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거지. 마치 전에는 이 나라가 무지하게 갖고 싶었던 사람처…."

 …이 나라를 손에 얻고 싶었다?

 설마, 그런 이유 때문에….

 "…너, 설마."

 떨리는 두 눈으로 바라본 녀석의 입가가 조금씩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순간에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익숙해지면…어쩔 땐 까먹더라고."

 "그게…네 녀석의 진짜 목적이었나?"

 "이젠 필요없어, 이깟 나라…필요하면 네가 가져."

 "…너."

 "그런데 말이야, 내가 한 번 이 나라의 왕이 되어보니까 알게된건데…. 대체 이 나라에 뭐가 있다고 잘난 듯이 뻐겼는지 모르겠어. 보잘 것 없는 이 자리에서 뭐가 그리 잘났다고…. 개나 소나 오를 수 있는 이 자리에 앉아, 마치 자기 자신이 신이라도 된 듯이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그 얼굴이, 그 눈동자가…난 너무 싫었어. 그런데 그거 알아? 그놈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날 쳐다보는 네놈이 더 역겨웠다는거…. 사실은 말야, 내 진짜 목적은…."


 「 철컥 」

 

 "네가 죽는거."


 「 빠각 - ! 」


 "그게 내 진짜 목적이야."



 P.s : 제 목적은 소설가가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은 미루지 않겠습니다.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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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탓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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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주어진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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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증명해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