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이야기

|  나는 작가가 될 테야! 글을 창작해요

2013.12.05 08:54

망각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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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각> - 3 -

 아리온의 말에 나는 잠시 당황을 금치 못했다. 느닷없이 나타난 것도 모잘라 갑작스레 누구를 가리키며 '저 놈이 범인이야!' 라고 외치는 그의 모습이 마치 명탐정으로 빙의한 듯 보였고, 나는 그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리아를 죽인 놈이라고…?"
 내 말에 아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아를 죽인 놈은 그 자리에서 죽었어."
 "맞아, 네가 죽였지. 하지만 '뒤' 에서 조종한 자는 살아있지."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카르카테론. 이 이름을 잊은건 아니겠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네 녀석이 카르카테론이잖아."
 살짝 언성이 높아졌다. 평소에도 능글맞는 말투와 행동 때문에 만날 때마다 욕을 먹이긴 했어도 눈치가 없는 녀석은 아니었기에, 지금 이 상황에서 녀석이 하는 말을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 자가 카르카테론이야. 기억안나? 내가 전에 다 설명해줬잖아."
 "무슨 말을 해줬다는거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나의 말에 녀석 또한 답답한지 긴 한 숨을 푹 내쉬며 주변에 있는 병사들을 하나 둘 훑어보더니 이내 쓰러진 병사 한 명을 강제로 일으킨 후 녀석이 그 병사를 앞에 세우며 말했다.
 "네놈들 또한 이런 꼴이 되고 싶지않으면 당장 무기를 버리고 퇴각해. 이건 명령이야. 당장 퇴각해!!"
 "네 녀석은 또 뭐지? 너 또한 이 자의 동료인가?"
 그 남자가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리온에게 걸어갔다.
 "네 말대로라면 우리가 이곳에서 사라지지않으면 네 손으로 우리를 쫓아내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그게 가능키나 한 일인가?"
 "가능하다면?"
 아리온 특유의 비꼬는 듯한 말투와 표정으로 그 남자를 자극했다. 그 말에 그 남자는 아까 전보다 더 험상궂은 표정을 짓더니 한 손에 든 검을 아리온에게 휘둘렀다.
 
 「 턱 」
 
 "용병이 백성을 상대로 이렇게 함부로 검을 휘둘러도 되는거야?"
 "너희들이야말로 반역자인 것도 모잘라 주군께 반기를 드는건가?"
 "내가 말했잖아, 우린 혁명을 일으키러 온거라고. 반역과 혁명은 다른거야."
 "네들에겐 혁명일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그저 더러운 반역자일 뿐이다."
 "말이 통하지않는 친구일세."
 "난 너희 같은 놈들을 친구로 둔 적 없다."

 「 빠각 」
 
 아리온을 향해 내려친 몽둥이가 그의 목덜미를 내려치며 사라졌다. 아리온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잠시 주춤했지만 다시금 중심을 잡고 들고 있던 막대기로 그들 중 한 명에게 휘둘러 정확히 관자놀이를 맞춰 병사들을 쓰러트렸다.
 "아리온!"
 나는 그를 급하게 불렀지만 내 목소리가 들리지않은 탓인지 그는 자기에게 달려드는 수 많은 병사들을 향해 계속해서 휘두를 뿐, 메아리는 돌아오지않았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부들거리는 두 다리를 지탱해 아리온에게 달려가려했지만 또 다시 내 앞을 막아서며 검을 겨누는 그 남자를 보며 말했다.
 "비켜."
 "이미 늦었어. 저항하지말고 순순히 물러서. 더 맞서면 너희만 불리하니."
 마지막 경고라는 듯한 그의 말에 나는 조용히 그를 쳐다봤다. 원래 계획했던 일이 조금 차질이 일어났지만 그렇다고해서 결과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조금 더 뒤틀어서 해결하는 수 밖에 없어. 예상 외에 인물이 등장해서 변수가 생겼지만 그렇다고해서 더 나아지는 것도 없지만 말이야.
 "아인, 너에게 마지막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모든 죄를 밝히고 용서를 구해. 그러면 너와 네 동료들의 목숨은 보장해주겠다." 
 상대에게 검을 겨눈 자의 말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박혀있어 쉽게 다가서질 못한다. 만약 그 경계를 눈치채지못하고 다가섰다간 가시에 찔리고 말테니까. 하지만 다행이게도 내 앞에 있는 이 자에겐 가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자는 정말 순수히 내게 '용서' 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을 알 수 있는건 이 자의 검에는 억울한 눈물이 맺혀있지않기 때문이다.
 "거절한다."
 "…진심인가? 너와 네 동료의 목숨이 아깝지도 않아?"
 "내겐 이 순간이 내게 있을 마지막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을 후회하게 될거야."
 "…아마 이 순간을 너는 영원히 후회할 것이다."
 미동 없던 그의 칼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해 빠르게 허공을 가르며 달려왔다. 피할 생각은 없었지만 막상 저 날카로운 것에 베인다는 생각에 잠시 아찔한 것은 빼고 멀쩡하다. 남들을 벨 때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않던 내가 누군가에게 베인다는 생각에 한 편으로는 멍청한 웃음이 새어나올 뿐이었고, 이 순간마저도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기에 알 수 있었다.
 이 자는 절대로 나를 벨 수 없다란 것을….
 
 「 촤자작 - ! 」

 거칠게 나의 어깨를 베고 지나간 자리엔 검게 그을린 핏자국만이 낭자했다. 그 뒤로 느껴지는 뜨거운 감촉과 쓰라린 고통이 왼쪽 어깨를 잠식했고, 갈 곳을 잃은 두 눈동자는 한동안 자신을 베고 지나간 검을 따라 움직이다 점차 중심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저항도 못한 채 공격을 당한 나는 붉게 타오르는 어깨를 부여잡고 안간힘을 내며 비명을 참고 있었다. 이 아픔을 인정했다간 돌이킬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참는건가?"
 그가 물었다. 도저히 자신의 칼에 누군가의 피를 묻힌다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않을 것만 같던 자에게 공격을 당하니 정신이 혼미하다. 이런 일이 일어날거라는건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일이 벌어지니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지금까지 내게 베어진 상대 모두가 이러한 기분이었을까, 아픈데도 그 아픔을 치유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그리고 그런 자기를 공격한 상대를 보며 얼마나 많은 증오가 서렸을지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런 최후를 맞게되는건지도 모르겠다.
 "참는다고해서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버티는 이유가 뭐지?"
 나의 태도에 불만스러운 듯이 말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말 없이 그를 쳐다봤다. 지금도 그의 말에는 이 모든 상황이 궁금한 듯 계속해서 내게 질문을 던진다. 언제쯤 자기 자신이 바라는 답변이 나올지 기다리는 것처럼 그의 얼굴에서는 약간의 초조함 또한 느껴졌다. 하지만 그 초조함이 내가 생각하는 초조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그에 얼굴에서는 조금씩 다급함이 묻어나오는걸 알 수 있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하면…네가 직접 찾아."
 "…무슨 뜻이지?"
 "이제는 누군가의 도움도, 자기 자신의 믿음도 아무 소용이 없어. 이미 걷잡을 수도 없이 멀리와버렸으니, 다시 되돌아간다한들 똑바로 찾아갈 수 있어?"
 "…너는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말들만 지껄이는군. 이 이상 너와 말을 섞을 필요를 못 느끼겠다."
 "너, 그거 알아? 이미 그 말도 두 번째야. 넌 되돌아갈 수 없어. 잘못된 길을 진실로 믿고 계속해서 걷다가 결국엔 나락에 빠지게 되겠지. 그게 네놈의 말로이자, 이 나라에 참혹한 결말이다."
 "…끝이다."
 그의 참을성이 바닥이 난 듯 아까와는 전혀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그의 검을 보며 나는 재빠르게 그의 검을 피해 잡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나 쉴 틈 없이 그는 내 쪽으로 방향을 틀어 검을 휘둘렀고, 자세를 바꿀 틈 시간조차 없던 나는 그대로 달려드는 검날에 스쳐 또 다시 붉은 피를 쏟아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쓰러지지않았다. 가까스로 중심을 바로 잡고는 그대로 그에게 돌진하였다.
 "…크윽."
 그에게 부딪친 어깨에서 울컥울컥 피가 뿜어져나와 나를 자극하였다. 하지만 멈추지않고 나는 계속해서 그를 밀어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약간의 틈이라도 존재한다면 이 상황을 역전시킬 방법이 있다. 지금으로써는 검을 든다해봤자 자유자재로 휘두르기는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를 공격하기보다는 내 자신을 방어함과 동시에 상대에게 데미지를 누적하는게 중요하다.
 "…힘조차 남지않는 그 몸으로 무엇을 하겠다는건가. 네놈이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확률은 0다."
 그는 한쪽 손으로 나의 어깨를 짖누르며 말했다. 어깨에서 뿜어져나오는 피가 그의 손에 물들었지만 나는 그에게 아무런 소리도 내지않았다. 그저 조용한 눈동자로 그를 주시할 뿐, 아무 말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않은 채, 말 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빠져나갈 수는 있다는 말이군…."
 "네 녀석이 빠져나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나?"
 "그렇다면 어쩔거지?"
 "이번에는 불가능할거다. 지금껏 네녀석이 상대했던 것들이나 상황이 모두 다르니까."
 "어떠한 상황이 들이닥쳐도 결과는 똑같해. 이곳에서도 나는 네 녀석들을 해치운다."
 "그렇게 자신하는 이유가 뭐지? 이미 너에겐 아무 것도 없어. 그런데 뭘 믿고 그렇게 자만하는건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 손에 쥐어진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평소에는 잘 기억나지않았던 것들이 갑작스레 내게서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난 뒤부터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가슴이 답답하다. 나한테 있는 것을 당연히 생각했었기에 사라진다는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음에 그런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넋을 잃고 있을 때가 많다. 아주 오래 전에는 정말로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점점 내 기억상에서 잊혀지고나니 그 존재 또한 무색해지고 만다. 그러다가 가끔씩 그 존재를 눈치챘을 때는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며 그땐 그런 적이 있었지하며 웃어 넘기며 또 다시 잊고 만다. 그러나 그 잊음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 아니기를 알기에 안심하고 있었던 적이 많다. 하지만 지금은 내게 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건 고통, 슬픔 그리고 웃음 뿐이다. 그 웃음 또한 너무나도 안쓰럽기에 차마 떠올리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런 나에게 그보다 큰 아픔이 존재할까? 이미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롭고 아픈 고통을 겪었기에 이제는 무덤덤해질 수 밖에 없어. 더 이상 잃을 것도, 잃고 싶은 것도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벗어날 수 있어. 내가 짊어지는 이 무게 때문에라도 주저 앉을 수 없어."
 "그것이 네 녀석에 마지막 유언이라 들어도 되는건가?"
 "죽이든 살리든 그건 내 알 바 아니야. 단지 나는 내 목적만 달성하면 되니까."
 "이 나라를 무너뜨리는걸 말하는건가?"
 "아니, 나도 썩어빠진 나라엔 관심 없어. 내가 진정 원하는건 따로 있으니."
 "굳이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군."
 "나 또한 네 녀석에게 말하고 싶지않다. 대신 보여주겠다. 네들이 생각했던 진실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에 모습을…."
 "아니, 그럴 일은 없을거다."

 「 털썩 」

 "네 녀석도 곧 이렇게 될테니까."
 내 뒤로 누군가의 모습이 비췄고, 그들의 손에 들린 아리온이 맥 없이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지며 내 앞에 나타났다. 미약하게나마 그의 숨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오래 전에 의식을 잃은 듯한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한동안 눈동자를 떼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두들겨 맞았는지, 그의 몸 구석구석에서 피가 흐르고 새파랗게 부어오른 멍자국들이 자꾸만 내 시선을 붙잡고 있었고, 그 와중에서도 그는 쓰러진 아리온을 향해 검을 겨누며 금방이라도 녀석의 목을 베어버릴 듯한 기세로 노려보았다.
 "…이 나라에 반기를 든 것에 대해 후회하는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한들, 이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말은 없어. 이제는 결과만이 남았을 뿐이야.
 "아인, 너를 이 자리에서 처형한다."
 그 순간,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누군가가 그의 앞을 가로 막으며 내 앞에 나타났다.
 "더 이상은 눈 뜨고 봐줄 수 없군. 아인, 괜찮아?"
 "…자네, 이게 무슨 짓이지? 저들과 똑같은 반역자가 되겠다는건가?"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네 편은 아니란건 확실해."
 "내 편이 아니라면 대체 넌 누구의 편이라는건가? 이상한 소리할거면 당장 물러서."
 딘은 살짝 웃으며 내 쪽을 바라봤다.
 "아인."
 "…너, 무슨 생각이야."
 "네 녀석이 옳았다."
 "…물러나, 나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이 일은 내가 끝매듭 지어야해."
 "그렇기 때문에 도와주는거다."
 "더 이상…이 무게조차 버틸 힘도 남아있지않아. 곧 있으면 붕괘되고 말거야. 네 녀석까지 말려들게 할 생각 없어."
 "그 무게, 나 또한 짊어지면 되. 더 이상 네 혼자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마라. 이 나라를 위해서라도 넌 혼자여선 안돼."
 지금껏 잘 버텨왔다. 조금만 더 전진하면 고지가 보여. 많이 지치고 힘들지만 여기까지 잘 도착했기에 나는 움직일 수 있어. 그런데 생각 외로 고지가 쉽게 보이지않아, 그렇다고해서 좌절하지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지만 그럼에도 내가 걷는 이곳이 그 길인지 잘 모르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야. 올바른 길을 인도하다해도 쉽게 탈선하고 되고, 그렇다고해서 그 탈선의 길 또한 오래 지속되지못해. 모든 것엔 한계가 있다는거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마지막엔 도착할 수 있어. 내가 바라던 그곳에 도달할 수 있어. 그렇게 된다면 내 어깨를 짖누르고 있던 무게를 조금을 덜 수 있을거란 기대감, 그 기대감이 너무나도 두근거려 쉽게 그만둘 수 없는거야. 그만두게 되면 두 번 다시 도전할 수 없을테니까."
 "…내가 같이 짊어지겠다."
 그리고 이내 허리춤에 꽂혀있던 검을 뽑아들며 놈에게 달려드는 딘에게서 낯 익으면서도 두려운 향이 남과 동시에 그에게서 붉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P.s : 앞으로 2편 남았습니다. 즐감하세요.

Who's 아인

profile

시간을 탓하지마라.

시간을 흘려보낸건 나 자신이다.

시간은 주어진게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연히 나라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그 시간의 흐름에 어떻게 따라가느냐의 내가 증명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증명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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