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
이미 이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루에르
- 고동치는 보물 -
4
어르신은 나와 로빈을 데리고 어디론가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우리와 협력을 하겠다고 약속한 그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걷는 우리들은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것 같은 사당 앞으로 향했다. 그때 마을에서 봤던 사당을, 어르신은 이곳으로 옮겼다고 하였다. 옛날에 사라진 쿠피디타스를 뒤로 하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사당을 옮긴걸 보면 무슨 의미가 있을거라 생각되지만,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어르신의 얼굴에는 아무런 비밀도 캐낼 수 없었다. 단지, 그는 무언가에 대한 고민과 씁쓸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 이곳에 온 이유가 뭐죠? 이미, 쿠피디타스는 이 사당에 없다고 들었는데. "
의심스러운 나의 말투에도 어르신은 아무 말 없이 금세라도 부서질 듯한 문고리를 잡아 당기며 사당의 문을 연다.
「 끼 이 이 익 」
꽤나 섬뜩한 소리와 함께, 시뿌연 먼지 같은게 사방으로 흩어지며 나의 시야를 가로 막는다.
" 들어오게. "
손사래를 치며 먼지를 쫓아내던 나와 로빈을 보며 어르신은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했고, 나와 로빈은 조심스럽게 사당 안으로 발을 디뎠다.
사당 안은 바깥에서 본 모습보단 꽤나 청결했다. 오랜 시간동안 아무도 이 사당에 들어서지 않았을거라 생각했지만, 원래부터 사당이 이곳에 세워진건 아니였으니까, 옮기던 도중에 사당 안을 깨끗하게 청소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무엇 때문에 이 커다란 사당을 옮기면서까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걸까? 대체, 이 사당 안엔 무슨 비밀이 잠재워져있는거지?
" 저기, 어르신. 실례지만 이곳은 보통 사당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 "
이상한 낌새와 더불어 풍겨오는 수상한 기분이 든 나는 어르신을 향해 물었고, 우리들의 앞을 지지하던 어르신은 발걸음을 멈춰서고 그대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며 나를 쳐다본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며 몸을 돌렸고, 그런 어르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던 나는 약간 고개를 기웃거리며 그의 눈동자를 쳐다봤다. 어르신은 그런 나의 행동을 보며 피식 웃으며 말한다.
" 눈치 챘나보군. 사실, 이곳은 예로부터 신을 모셨던 신사라고 알고 있네. "
신사?
" 신사 … 말입니까? "
" 그렇네, 언제부터인진 모르겠지만. 아마, 이 마을이 세워진 후부터 이곳엔 신이 산다고 했지. 물론, 직접 보지는 못했어도 그들에겐 신이 있다고 믿는게 마음의 평안을 줬을지도 모르지만. "
그의 끝말은 뭔가 의문을 남기는 목소리였다. 진지한 얼굴로 그의 말을 듣던 나는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 그렇다면, 이곳은 사실 신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
나의 말에 어르신은 살짝 놀란 듯한 미소를 자아내며 슬쩍 내 옆에 서있던 로빈을 쳐다본다.
" 뭐,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아니라고는 못하지만. "
역시나 무언가가 있는건가 ….
" 대체, 그게 무슨…. "
이상하다 못해 궁금해 미칠 지경에 다달은 나는 나 자신을 억누르며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고, 그는 또 다시 내게 궁금증을 유발시킬 말투로 말한다.
" 아마도, 이곳은 사실 신을 모시는 곳이 아니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네. "
이건 또 무슨 말이지 …. 아까부터 이해 못할 말들로 나를 조롱이라도 하는 듯한 그의 말투에 약간 기분이 상하려던 찰나, 그의 입은 또 다시 움직였다.
" 그들은 자신들이 신을 모신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그건 신이 아니라 신의 모습을 한 악마였을지도 모르지. 그들은 겉으로 본 신의 모습으로만 악마를 본 것이야. 그렇기 때문에 악마가 들어산다는 것을 신이 산다고 믿을 수 밖에 없는거지. 물론, 그 비밀은 그리 오래 가진 못했지만 …. "
어르신의 말 속엔 뭔가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방금 전, 나와 나눴던 어르신과의 대화 중에서 느낀 또 하나의 목소리랄까. 아무튼, 그의 표정엔 쓸쓸함과 고독함이 묻어나온다.
"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죠? 아까부터 어르신이 하시는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
" 이해가 간다면, 그것 역시 문제일테지. 그런 면에선 자네나 친구나 다행인 것 같군. "
"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거냐고요? "
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있던 나는 도무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으며, 이해조차 가지않는다. 분명, 무슨 관련이 있는게 분명하지만, 지금 그가 내게 하는 말은 도저히 연관이 있다고 느끼지 못하겠다.
" 글쎄 … 왤까. 단지, 얘기를 해주고 싶었던거랄까. "
" 예? "
역시나 내가 이해 못할 말들만 늘어놓는다.
" 너무, 그렇게 못마땅한 표정은 짓지 말게. 나는 그저 자네들에게 진실을 말해주려는 것 뿐이니까. "
" 도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어났던거죠? 무슨 일이 있었기에 계속 말을 빙빙 돌려서 말씀하시는거냐고요. 그럴 필요 없으니 직설적으로 말씀해주세요. "
어르신의 표정의 아무런 감정조차 느껴지지않았다. 고립됨으로도 부족한 그의 모습엔 한 점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칠흑 같이 어두운 밤 하늘, 대지를 위해 빛을 내리는 달에 비해 초췌한 모습의 어르신에겐 그저 성가신 존재임이 틀림 없겠지. 한동안 그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나에게 할 얘기라도 남아있지않은 듯, 그의 입은 서서히 말라만 간다.
" … 수십년 전, 그러니까 내가 살아있을 때에 이야기라네. "
“ 청초하고 맑은 햇빛만으로도 연명할 수 있을 것 같던 소유 마을에는 오늘도 아침 해가 여김 없이 산 중턱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침을 비추는 태양의 미소와 그의 곁을 맴도는 순수한 구름들. 그리고 그런 마을사람들에게 불어오는 따뜻한 숨결의 바람까지도 그들은 여느 때와 똑같은 아침을 맞이했다.
" 여아, 아르스. 오늘도 아침 일찍 신사에 가는건가? 뭔 사람이 하루도 빠짐없이 부지런하구만. "
" 뭐, 만날 아침에 일어나서 할 것도 없는데.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무슨 재미로 살겠나? "
" 하하, 그렇긴 그렇구만. 그럼 수고하라고. "
환한 빛을 내뿜는 하늘에서의 기대라도 부흥이라도 하는지. 마을은 매일 활기찬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듯이 그들에겐 오늘 같은 하루가 매일 반복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명씩을 할 것이니. 그 중에서도 아르스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신사에 가서 신을 향해 기도를 드리고 있었고, 오늘도 여김없이 그의 발걸음은 신사 쪽으로 향하였다.
" 안녕하세요, 아르시 씨 "
" 오늘도 기도를 드리시러 오셨나봐요? "
매일 아침 기도를 드리러 신사에 들른 아르스를 보며 신사를 향해 기도를 빌던 사람들은 하나 둘 아르스에게 인사를 하며 그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했다. 그런 아르스는 부끄러운 듯, 멋쩍은 웃음을 지어내며 오늘도 신사를 향해 기도를 한다.
" 오늘 하루도 별 탈 없이 지나가기를 …. "
그의 기도는 늘 같았지만, 그의 마음은 한번도 바뀌지않았다. 오로지, 마을의 행복과 기쁨을 나누고 싶은 아르스에겐 그 기도마저도 부족할 뿐이였다.
" 어이, 아르스. 기도는 끝마친거야? "
" 이 시간에 신사엔 무슨 일이야? 넌, 원래 신사에 오지 않잖아? "
" 그렇지. 신을 모신다는 말을 즉 귀신을 모신다는거 아냐? 그래서 왠지 꺼림직해서 별로 신사엔 오고 싶지 않네. "
" 그런 녀석이 여긴 웬일이야? "
" 촌장 님이 널 부르셔. "
" 날? 무슨 일로? "
" 그걸, 내가 어찌아니. 아무튼 빨리 가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 얼굴이더라. "
촌장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의논할 얘기가 있다는 친구의 말에 아르스는 허둥지둥 신사를 벗어나 촌장댁으로 달려갔다. ”
P.s : 오늘은 뭔가 소설의 짜임새는 물론이고, 망한 것 같네요. 기존에 썼던 겜게가 아니라서 낯선 감이 있는걸까요. 하긴, 7년동안 소설을 써왔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에서 쓰니 감정이입이 안되는 것 같네요. 하지만, 참아내야죠. 이겨내야죠. 이제 저에겐 이곳이 제게 소설을 쓰게될 장소니까요. 오늘이 지나면 그동안 제가 썼던 모든 소설이 한 줌의 추억이 되어 사라지겠죠. 그 속에서 만난 분들과 함께 말이죠. 조금은, 힘들겠지만. 익숙해져가야죠. 그렇지않으면 더 좋은 소설을 쓰는건 불가능할테니까요. 즐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