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띵 · 띵 · 띵 굿모닝 띵 · 띵 · 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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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대 위에서 울리는 핸드폰을 들어 귀에 갖다대었다.
' 많이 기다리셨죠. 꽤 일이 복잡해서 말이죠. '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대꾸도 없이 그가 말하는걸 계속 들으며 올라오는 분노를 씹어삼키며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한 5분 정도 자기 혼자 웃으며 떠들던 그 남자가 말을 멈춘다. 그리곤 긴 한 숨을 내쉬더니 이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묻는다.
' 지금 뭐하세요? 혹시 시간 있으시면 저녁이나 같이 하실래요? 아침에 얻어 먹은거 지금 갚고 싶은데.. 어떠세요? '
그의 말에 나는 할 말을 멈추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한 편으로는 어이가 없고, 이 사람은 도대체 머릿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겠다. 이 사람이 진짜로 머리 수집가가 맞는걸까? 어쩜, 살인자라는 사람이 이렇게 자유분방 할 수 있는거지? 귀에서 느껴지는 핸드폰의 열기가 달궈질 수록 나의 입 안에 고인 침들만 꿀꺽 삼켰다. 아무 말이 없는 나에게 그는 다시 한 번 저녁 같이 하는게 어떠냐고 물었고.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일단 만나야 내 핸드백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에게 어디서 만날까하고 묻자. 그는 아침에 먹었던 삼겹살 집 옆에 물 좋은 바(Bar)가 있다며 8시 20분까지 만나자고 했다. 나는 알았다며 핸드폰을 끄고 조용히 화장대 위에 핸드폰을 내려 놓았다. 그리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아 미간을 찌푸리며 그가 하는 행동에 대해 의문을 느꼈다. 그동안 그 사람을 조사하면서 왠만한건 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실제로 만나는 것과 글에 적힌 그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는걸 느꼈다. 약속 시간까지는 앞으로 약 2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화장대 옆에 있는 옷장을 열어 긴 검정색 코트를 걸치고 방을 빠져 나왔다.
" 또 어디 가? "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남동생이 과자를 집어 먹던 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 약속이 있어서 나가봐야 해. 반찬은 냉장고 안에 있으니깐 남기지말고 다 먹어. "
" 얼씨구. 들어온지 얼마나 됬다고 또 나가? 혹시, 누나 남자친구 생겼어? "
남동생이 하는 말을 들은 나는 말도 안되는 소리 말라며 불같이 화를 냈고, 남동생은 아니면 아닌거지 뭘 그렇게 화를 내냐며 소리를 지른다. 나는 잠시동안 잃었던 이성을 찾아 동생에게 사과한 뒤. 소파 앞에 놓여진 탁자 위에 키를 코트 주머니에 넣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후읍. "
오늘 밤에 바람은 꽤나 매섭다. 낮까지만 해도 바람 한 점 안 불었는데. 밤이 되니깐 더럽게 춥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목도리도 두르고 올 걸 잘 못했다. 다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돌리고 곧장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20분 남짓 걸린다. 도심에서 그닥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지만. 집이 아파트가 아닌 전원주택이라 그런지 주변에는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트나, PC방 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다. 그저 집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보이는 구멍가게가 전부. 구멍가게라서 그런지 파는 것도 옛날 구닥다리 시절에나 뜯어 먹었던 쫀득이나 그런 종류의 기타 등등에 제품들. 흔히 요즘 먹는 햄이나 그런 것들은 집에서 20분 정도 걸어와야 사올 수 있어, 매일 일이 끝나고 집으로 올때 다음 날 먹을 음식들을 사가지곤 간다. 요즘 들어서는 성장기인 남동생이 반찬 투정을 부리긴하지만, 그럭저럭 잘 먹는 편이라서 일주일에 2번 정도는 남동생이 좋아하는 반찬을 사오기도한다. 그럴 때마다 남동생은 사랑한다며 입 싹 닦고 먹는게 전부. 뭐, 남동생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나에겐 제일 기쁘긴 하지만. 10년 전에 갑작스러운 해외 출장으로 인해 부모님은 현재 알래스카에 계신다. 뭐, 남극에 가면 세종기지라는 것도 있겠지만, 알래스카에는 개 썰매 말고 뭐가 있겠나? 부모님은 알래스카에만 벌써 3년 째 계시고 있다. 일 주일에 한 번씩 전화는 꼭꼭 하시고, 한 달에 한 번씩 생활유지비도 보내주셔서 그럭저럭 살만하지만. 너무 어릴 적에 떨어져서 그런지 남동생은 부모님의 얼굴을 사진으로 밖에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적부터 자신을 길러 온 내게는 다정다감하나. 부모님에게는 조금은 어려움이 있어보인다. 부모님께서는 적어도 2년은 더 계셔야 다음 예정지인 일본으로 가신다고한다. 운이 좋으면 한 번 동생과 함께 일본으로 가서 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부푼 기대감을 안고 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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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정류장이 코 앞에 있다. 역시, 지루한 일은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면 금방 지나가니 편하다. 정류장에 도착한 나는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아까보다 더 날카로운 바람이 얼굴 구석 구석을 스치고 지나간다. 씨, 그냥 목도리 두르고 나올 걸. 괜한 후회만 늘어가던 그때. 저 멀리서 버스 한 대가 오고 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렸고, 버스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카드단말기에 카드를 찍고 빈 자리가 있나 수색했다. 사람들이 빽빽한 버스 안에서 자리를 찾는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어쩌다보면 황금자리를 찾을 수 있다. 오, 빙고. 저 맨 뒷자리 창가에 자리가 하나 남아있다. 아직 그 곳에 도착하려면 1시간 정도 있어야하니 앉아 있는게 편하겠지? 나는 비좁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맨 뒷자리에 가까스로 착석했다. 휴우, 앉으니깐 세상 참 좋네. 창 밖을 내다보니 오 색의 빛깔이 도시에서 반짝거린다. 매일 오는 곳이지만 오늘은 꽤 아름다워보인다. 시간은 흘러 나이를 먹는다더니. 나도 역시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별 것도 아닌 것에 감정이 흔들린다. 에휴, 이렇게 순수한 소녀가 있는데 나의 백마 탄 왕자는 어디에 있을려나? 하아, 한 숨만 나온다. 그런 나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는 묵묵히 파란 불을 향해 달리고 있다.
잠깐 눈만 감았을 뿐인데 벌써 내가 내릴 정거장이 바로 다음이다. 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단말기에 카드를 대니, 계속 다시 대달라고 아우성이다. 카드를 다시 대는 동안 느껴지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어쩔 수 없이 찍히지않는 단말기를 뒤로 한 채 버스에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씨, 다음에 타면 돈 더 나오는데..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약속 시간까지는 앞으로 40분 정도 남아있다. 내가 너무 일찍 나온 것 같지만, 뭐 기다리면서 간단한 요기거리 좀 하면 되지 뭐. 아, 그리고보니 약속 장소가 바였지..
" 어서오세요. "
보랏 빛깔을 풍기는 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종업원 한 명이 가식웃음을 띠고 내 앞에 나타났다.
" 몇 분이세요? "
그녀의 물음에 나는 두 사람이라고 말했고, 한 사람은 곧 있으면 올거라고 말하자 종업원은 그럼 저 자리면 되겠네요라며 나를 이끌고 바 안 쪽에 구석진 곳에 자리 잡힌 한 테이블에 나를 데리고 왔다. 그녀는 내게 주문판을 건네며 그 전에 드실거라도 있냐며 물었고. 나는 커피 한 잔만 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알았다며 바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사라지고 난 후. 나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곤 한 숨을 내쉬고 등을 기대고 앉았다. 아직 약속 시간까지는 35분. 쯥, 괜히 일찍 나왔나보네.
" 커피 나왔습니다~ "
그녀가 고운 커피 잔에 담긴 커피를 들고 걸어왔다. 테이블 위에 커피를 내려놓고 그녀는 다시 돌아갔다. 나는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고,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에 나도 모르게 심취한 듯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지금까지 마셔왔던 바의 커피들 중에는 제일 감미로운 맛인 것 같다. 그 사람이 이런 곳까지 알다니. 꽤 의외인걸.. 뭐, 아침에 삼겹살 집에 나오고 우연히 본거겠지만. 커피와 함께 나온 비스킷을 먹으며 조용히 그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P.s : 가온 님이 잘 읽으시길래 2편 더 올립니다. 즐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