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꽃 - 2]
그의 얼굴은 퀭한 체 책상 의자에 몸을 뉘이고 있었다. 어제 자신이 공주에게 했던 말 때문이다. 레인은 아직도 그 말을 떠올리곤 머리를 쥐어 뜯었다.
"으아아아아아악!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한거야!"
언젠가 그가 처음 공주의 호위를 맡았을 때는 하루 몇일은 자신이 이 미녀를 호위한다는 데에 엄청난 자부심과 기쁨ㅡ모든 남자들의 질투와 시기를 받는ㅡ을 누릴 수 있어서 밤잠을 설쳐댔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로 이쁜 공주 때문에 자신이 혹시라도 작은 실수를 하게 된다면 그를 바라보고 있던 남자들이 금방이라도 그를 찢어죽일 듯이 노려보았고 심지어는 몽둥이를 들고서 걸어오는 남자도 있었다ㅡ다행히 자신의 뒤에 걸어오는 몇몇의 부하들 덕분에 맞는 것은 모면할 수 있었다.
레인은 그 생각에 우울한 기분을 느꼈고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렇게 몇번을 더 두드린 끝에 레인은 그 소리를 들었고 우울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
"예. 들어오세요."
곧이어 끼이익거리는 문소리와 함께 한 여인이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목례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라네스님?"
"레인경. 당신이 우리 공주님을 그렇게 끔직히 여긴다는 사실은 어제 들었어요."
레인은 이 대사의 말에 화들짝 놀랐고 라네스는 그의 모습에 싱긋 웃었다. 그녀는 레인의 맞은 편 의자에 앉았고 그녀가 앉자 그도 자리에 앉았다.그녀는 웃는 얼굴로 레인에게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공주님에 대해 말할 것이 있어서요."
"네, 네? 루미너스 공주님이요?"
"그래요. 경도 알다시피 공주님은 어릴적 상처로 괴로워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없는 편이죠. 그때 충격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제가 공주님을 호위한지도 5년이 되가니까요."
"루미너스 공주님도 이젠 성인이에요. 이제는 혼기에 이른 나이라고 할 수 있죠."
"네. 벌써 공주님이 숙녀가 되셨네요."
"이젠 공주님도 한나라의 공주가 아닌 왕비가 될테니까요."
"그렇다면-"
"네."
레인은 무릎 위에 올린 두손을 부들부들 떨었고 고개는 아래를 떨구었다. 그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라네스는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지만 모른체하며 말을 이었다.
"이제 더이상 공주님의 호위는 그만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레인은 무릎에 얹은 손으로 바짓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떨리는 손. 그의 입이 몇번 벙긋거리다가 떨림을 애써 참아내는 목소리가 나왔다.
"아, 하하. 언젠간 이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전 그저 공주님을 위한 일개 종일뿐. 이름만 기사일뿐. 완벽한 종. 종은 필요가 없어질 때 팔리거나 죽이겠죠. 지난 세월동안 숫한 종들을 보면서 동정심을 느껴야 했지만 이젠 동정의 대상이 제가 되어버렸군요."
"레인 경."
"네. 괜찮습니다. 개라는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미안해요."
"공주님은……언제쯤 이곳을 떠나죠?"
아침의 햇살은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바다는 그 빛이 그렇게 싫지는 않은 듯 이리저리 계속 몸을 움직였고 햇살은 끊임없이 그 바다를 쬐어주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맑았고 바람은 선선히 불어와 한 여인의 어깨로 내려온 머릿칼을 흔들었다. 바람은 장난이라도 치고 싶은 듯 그녀의 머릿칼을 계속 날려보냈고 그녀는 날리는 머릿칼을 손으로 잡아 대충 고정한 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
하늘을 바라본 그녀는 맑은 하늘에 작은 탄성을 질렀고 곧이어 빙긋 웃으며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발코니에 기대어 바다를 보고 있던 그녀는 문 두두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들어오라는 말을 한 체 다시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루미너스 공주님. 레인 경이라고 합니다."
"네. 어서오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루미너스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어두운 그의 표정에 다시 한번 갸웃했다. 그녀는 발코니에서 걸어나와 문을 닫고는 자리에 앉았다. 레인도 그녀가 앉자마자 자리에 앉아 탁자만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답답했던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저……무슨 일이에요?"
그는 그녀를 흘끔흘끔 쳐다보다가 다시 탁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한참 후 어렵게 그가 말했다.
"이제 공주님 호위는 제가 아닌 다른 분이 하게 될 것 입니다."
"네?"
"전 이제 공주님의 호위가 아닙니다."
그녀는 깜짝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고 두 눈은 휘둥그레 변했다. 그녀가 그와 5년동안 같이 지내면서 그녀는 레인이 자신의 친구가 될 수 있진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호위를 그만둔다니 황당할 노릇이였다. 그녀는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호위를 그만둔다니요?"
"말 그대로입니다. 전 이제 공주님의 호위가 아닙니다. 이제 그만 나가보겠습니다. 부디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루미너스 공주님."
"자, 잠깐-"
"무슨 일이죠?"
"갑자기 왜?"
"상부의 지시입니다."
"내, 내가! 내가 허락하지 않겠어!"
"이젠 그만 고집 부릴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그 고집이 통할 것 같습니까?!"
"레, 레인 경."
그는 일어나 몸을 돌렸다. 그리고 저벅저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싫지만 어쩔 수 없는 이 선택의 강요에 그와 그녀는 슬퍼했다.
쾅.
"자네 그거 들었나?"
"무슨 일인가?"
"글쎄 루미너스 공주님이 시집이 간다고 하지 않는가?"
"뭐? 그 미녀 공주님이 시집을 간다고?"
"그러게 말이야. 대체 어느 왕국 사람인지 참 운도 좋아. 그런 미녀가 신부라니."
"이봐, 이봐. 꿈깨라고. 우리한테 그런 미녀가 모습을 드러낼-"
말을 하던 사내가 놀란 눈으로 앞에 있는 사내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그는 너무 놀라 딸꾹질까지 하면서 더듬거렸다. 앞에 있는 사내는 걱정이 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어깨를 붙잡고 세차게 흔들어댔다.
"이봐. 자네 무슨 일인겐가?"
"뒤, 뒤!"
"뒤가 뭐 어쨌단-"
곧이어 연쇄적인 반응으로 그 남자또한 방금전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놀란 눈이 되고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얼굴까지 심하게 빨개졌다는 것이다.
"저, 정말 나타났다!"
두번째 반응을 보이던 사내는 들고 있던 맥주까지 떨구면서 심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맥주 애호가들이 봤다면 화들짝 놀랐을 장면이였고 그 미녀를 봤다면 맥주를 봐야할까 그 미녀를 봐야할까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 딱 좋은 장면이였을 것이다. 그녀는 사뿐사뿐 걸어와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잠시 사내들은 혹시 자신들이 잘못한 일을 한것이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고 혹은 무슨 행운이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잠시 후 그녀가 그들에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저기 시장쪽이 어떻게 되죠?"
"저, 저저저저저, 저쪽이, 이라우."
"저, 저저저저저, 저쪽이라면 대체 몇번을 돌아가야하죠?"
"딸국."
"네?"
사내는 침을 힘겹게 삼켰고 떨려오는 심장과 입술을 진정시켰다. 그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지만 그만의 생각이였다. 그는 힘겹게 손을 들어올렸고 한 모퉁이를 겨우 가리킬 수 있었다. 그녀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고마워요. 어머. 맥주가 쏟아져버렸네요?"
"괘, 괜찮습니다. 하하."
"그럼."
"아, 안녕히 가시오."
그녀는 사뿐사뿐 걸어가기 시작했고 그녀의 치맛자락이 살랑살랑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내들은 자신의 바지로 쏟아지고 있는 맥주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죽어서라도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야 말겠다는 일념의 주점의 모든 사내들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진 이후 주점은 잠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의 일에 전념하듯 오늘 죽어도 좋다는 식의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p.s 다음엔 얀데레 시리즈 4탄을 준비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