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으으으으윽! 한없이 떨어진다. 그녀는 방금 옥상에서 떨어졌다. 그녀를 바라보는 한 남자아이의 시선. 빠각! 아무래도 그녀의 몸이 땅에 붙이친 것 같다. 남자아이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그녀에게 생생하게 들렸다. 그녀는 살며시 웃으며 울부짖고 있는 그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바람이 됬어."
몇 달의 소년원 생활은 끝낸 그는 쏟아지는 햇빛과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그의 아픈 추억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첫사랑의 추억. 악몽이었다. 그녀는 마음도 이쁘고 착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는 이제와서 생각해봤자 뭐하겠냐는 듯 머리를 휘휘저었다.
"오랜만이네. 바람."
저벅저벅 걸어오는데 그의 어머니가 두부 한 모를 손에 쥔채 아들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그 두부 한 모를 손에 쥐어 크게 한입 물고는 다시 씨익 웃어보였다. 어머니의 두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미안하구나. 성은아."
"괜찮아요. 제 잘못인걸요."
"미안하구나."
"저 잠깐 어디좀 갔다가 갈께요. 먼저 가 있으세요."
"천천히 오렴."
"예."
성은이라고 불리는 그는 어머니를 뒤로한 체 걸음을 걸었다. 쉴새없이 부르는 그 바람이 그를 기분 좋게 했고 그리고 또 다시 그 추억이 떠올라 그를 괴롭게 했다. 성은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잠시 그의 눈을 흐리게 했지만 곧 익숙해져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구름한 점 있지 않은 맑은 하늘이였다. 슬픔에 찬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성은이 말했다.
"바람이 된 기분이 어때, 예은아?"
'아주 좋아.'
성은은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성은은 아쉬운듯 씁쓸하게 웃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환청까지 들리잖아?"
'아니야.'
다시 놀라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역시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고개를 꺄웃하고는 성은은 자신이 그녀와 있던 한강으로 가보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강물과 노을빛에 괜시리 마음이 포근해졌다. 그의 눈앞에 옛날 그녀와 자신이 놀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난 바람이 좋아.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갈 수 있는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바람이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자나. 바람도 그 무엇도 아닌 하찮은 인간.'
'역시, 우리는 안되는걸까?'
성은의 눈에 그때 그녀가 슬퍼하던 눈빛이 생생하게 비쳐보였다. 그때 옆에 있던 소년이 말했다.
'아니. 우린 뭐든지 될 수 있어. 우리에겐 아직 꿈이 있잖아?'
'꿈?'
'꿈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지 우린 다 될 수 있어. 그것이 차마 형용할 수 없는 것이라도 말이야.'
'정말 그럴까?'
'나만 믿어.'
'그럼 바람도 될 수 있을까?'
'바람?'
'응. 난 바람이 좋거든.'
'넌 왜 그렇게 바람을 좋아하는 건데?'
'바람으로서 돌아다니다 엄마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바람이 제일 자유롭잖아.'
'넌 반드시 바람이 될꺼야.'
소년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손으로는 엄지를 펴며 쫙 내밀었다. 그녀는 씁쓸한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널…….'
그때 그 둘에게서 세차게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세찬 바람에 묻혔고 소년은 바람이 다 지나간 후에 갸웃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다시 말하지 않고 싱긋 웃기만 했다. 그때 성은이 흐릿한 그 둘의 모습 속에서 그녀의 입모양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좋아해도 되는 걸까?'
성은은 왠지 허탈한 느낌이 들었고 울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때 그녀에게 대답했다면. 나도 너를 좋아해. 이렇게 한마디라도 했다면. 성은은 주먹을 쥔 채 자신의 가슴을 터질듯이 때렸다.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좋아해. 좋아해. 좋아…….'
"해. 좋아한다고. 내가 널. 젠장!"
두 손으로 이마를 쥔 채 성은은 흐릿해져가는 옛 추억을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흐릿한 추억의 그녀가 현재의 자신에게 무엇인가 말했다.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뺨을 타고 내리는 눈물을 황급히 닦아내고 흐릿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초점을 현재의 자신에게 맞쳐져 있지 않았다. 과거의 자신에게만 초점이 맞혀있었다. 오직 과거에 그에게만.
"젠장. 이건 아니잖아. 이렇게 추억으로 남겨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그렇게 추억의 눈물이 다 마를 때 쯤에 성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변쪽에서 조금 멀리 떨어졌을 때 성은은 뒤를 돌아보았다. 추억 속의 그녀가 자신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또 봐.'
난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손을 흔들지는 않았다.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다시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걸어 성은은 자신이 다니던 학교로 돌아왔다. 일요일이라 사람은 없었지만 학교는 열려있어서 쉽게 학교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성은은 학교로 들어서자마자 생각없이 옥상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성은은 놀라서 옥상으로 뛰어갔다. 달렸고 또 달렸다. 그녀가 살아있다. 나의 첫사랑이. 아픔으로 남았을 그 첫사랑이.
"제발. 살아있어줘."
드디어 옥상에 도착했다. 또 다시 흐릿한 그녀의 모습이 위태롭게 자리잡은 난간에서 보였다. 성은은 그녀를 잡기 위해 재빨리 난간으로 향했으나 현재와 과거의 경계에선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 듯 성은은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그때 흐릿한 그녀의 모습이 현재의 성은을 돌아보았고 그녀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닥쳐."
'뭐?'
"그딴 추억의 파편따위 기억하지 싶지 않아. 넌 예은이가 아니야."
'난 네가 사랑하는, 그리고 사랑했던 예은이야. 날 봐. 이렇게 멀쩡한 걸?'
"그 입 다물어. 그딴 어긋난 기억의 파편으로 나를 기만하지마."
'하지만 부정할 수 없잖아. 이미 네 손이 나를 잡고 있으니까 말이야.'
성은은 그녀의 말에 놀라 자신의 손의 위치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은 그녀의 손목을 힘있게 쥐고 있었고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아 꽤 아프게 쥐는 것 같았다. 성은이 당황하여 말했다.
"넌 과거의 예은이야. 현재인 나, 그니까 현재의 성은과는 만날 수 없어."
'하지만 이렇게 만나고 있잖아. 받아들여. 너도 날 좋아하고 있잖아.'
"내가 좋아하던 예은의 모습은 너같이 썩어문들어진 사람이 아니였어.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아이였다고."
'순수? 아름다움? 그건 다 아픔을 감추기 위한 가림막에 지나지 않아. 나도 그랬어. 그것들이 나의 아픔들을 모두 가려주었지.'
"미안하지만 너는 내 기억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 너는 나고 나는 너야. 최소한 이렇게 추억에 젖어있는 시간에는 말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부모 하나 없이 자라온 날 처음 넌 나에게 손을 내밀었어. 난 그게 기뻤어. 처음이고. 그리고 앞으로도 처음일테니까.'
"그래. 난 그런 너를 누구보다도 좋아했어. 그런데? 그런데 네가 어느 날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해버렸어. 난 너무나도 허무했고 죽을 만큼 아팠어. 나도 네가 처음이었으니까."
'처음이라고?'
"그래. 넌 내 첫사랑이였어."
추억 속의 그녀는 다시 말하지 않았다. 그 또한 그녀가 이젠 할 말이 없음을 알고는 더이상 말을 하진 않았다. 그녀는 머쓱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미안해.'
"미안…… 하다고?"
'나도 처음이였어. 네가 처음.'
"그럼 너도……."
'미안해. 이젠 그만 가야겠어.'
"어디를 가겠다는 거야?"
'바람은 어디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지만 한 곳에는 머물 수 없어. 그게 바람이니까.'
"바람…… 꽤 마음에 들었나봐?"
'그때. 너도 바람이 됬을 때 진정으로 널 사랑할께. 그때까지만 기다려줄래?'
"기다릴께. 나도 바람이 됬을 때 널 사랑할께."
흐릿한 그녀의 두 손이 성은의 두 뺨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입술이 성은의 입술에 닿았다. 성은은 씁쓸한 표정으로 그 행위를 허락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서있었을 때 그녀의 두 손과 그녀의 모습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성은은 그녀가 사라진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 보자. 바람이 되어."
"바람에게 부탁해."
그저 첫사랑의 추억을 아픔으로 간직한 체 다시는 볼 수 없는 그녀를 그리워하는 그의 모습으로. 그녀가 사라져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려는 무의미한 손짓의 한 순수한 소년의 모습으로.
p.s 오글거려서 못보겠네. 내가 썻지만 심하군.
수정을 정지합니다.
앙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