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
이미 이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루에르
- 환란의 꽃 -
24 ~ 39
여긴 어딜까. 낯선 풀냄새가 사방에서 진동한다. 정말로 여긴 5년 전의 루에르 마을이 맞는걸까? 하지만, 그건 내 추측에 불과할 뿐. 정말로 이곳이 루에르 마을이라고 한다 해도 5년 전일지 아닐지는 당사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 느낌은 정말 오래된 가옥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즐비할 수록 나의 긴장감도 배로 늘어난다. 가까스로 산기슭을 내려와 마을 입구로 보이는 곳을 지나 마을 안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방금 전까지 있던 마을과는 달리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시끌벅적한게 꼭 재래시장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마을은 큰 발전을 거두고 있었다. 어르신의 말씀처럼 그때는 정말 이런 발전을 하고 있었던걸까? 그나저나 나 말고 그 누구도 이곳엔 없는건가? 왠지 혼자라는 생각이 좀 씁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으시시한 기분까지 느껴진다. 물론, 방금까지는 내가 묵고 있던 마을이라해도 상관은 없지만. 과거에 나는 그저 저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도시인에 불과하니 가까이 가기도 좀 꺼려진다.
「 툭 」
밍그적거리며 주위를 서성거리던 내 어깨를 누군가가 툭 치고 지나간다.
" 아, 어떤 새끼야? "
잠자코 마을 기둥에 몸을 묻고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에게로 누군가의 폭언이 들려온다.
" 너지? 이 자식이 뭘 잘했다고. "
앞뒤 사정 없이 무작정 내 멱살을 붙잡은 남자가 인상이란 인상을 다 구기며 내 앞에서 욕설을 퍼붇으며 나의 심기를 건든다. 가만히 그의 손에 붙들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의 기분도 조금씩 언짢아진다.
"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해야지. 멀뚱히 쳐다보고 있어? "
" 사람은 친걸로는 당신이 제게 사과를 해야하는거 아닌가요? 내가 아니라 그쪽이 먼저 날 치고 지나간 것 같던데. "
" 뭐 이 새끼야?! "
내 멱살을 붙들고 서있던 남자가 나를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나를 쳐박는다. 흙바닥이라서 그런지 내가 내려치자 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리며 자욱한 흙먼지가 사방을 감싼다. 켁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를 또 다시 땅바닥으로 집어 던지던 남자는 그대로 나의 배를 걷어차며 나에 대한 폭설을 내뱉는다. 나는 그 남자의 다리를 붙잡아 그에게 반항을 하려 했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나에겐 속수무책이였다. 다리를 빼내고 또 다시 내게 발길질을 하며 나를 죽여버릴 기세인 그를 희미해진 의식 속에서 바라보자 그는 흡사 살인귀처럼 섬뜩한 오오라를 풍긴다.
" 이 새끼가 내가 누군 줄 알고 건방을 떨어? 너 같은 놈은 죽어야 해! "
지가 뭐라도 되는 듯, 남의 목숨을 지 마음대로 결정한다.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오르고 이성까지 반쯤 날아간 상태인 나는 날아오는 다리를 붙잡고 그대로 양쪽 송곳니로 그의 종아리를 물었다.
" 아악!! "
그의 비명소리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나와 이 남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깊숙히 그의 종아리에 박힌 송곳니에서 피가 흐르고 그의 비명소리가 점차 커진다. 주위에서 이 광경을 쳐다보던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였다. 조금만 더 이 시간이 길어지면 그대로 나는 이 남자의 종아리를 뜯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 으흑 으흐흐 …. "
그의 목소리가 점점 수그러지면서 그가 잡고 있던 내 멱살이 조금씩 풀어진다. 웬만하면 이쯤에서 누군가가 말릴 때가 됬건만. 그들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우리를 지켜볼 뿐이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게 있긴 있던 모양이군.
" 지금 여기서 뭐하는건가?! "
우리를 에워싼 사람들 틈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멀뚱히 주위를 서성거리던 사람들은 일제히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두었고, 종아리를 물고 있던 나 또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가 내쪽으로 다가왔고, 그 사람이 걸어오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길을 터주며 뒤로 물러난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잠시 멈춰서는 그 사람을 쳐다봤다.
" 이게 무슨 난리통이지? 어린애들도 아니고 어른씩이나 된 사람들이 … 이만 물러가게! "
내 모습을 보던 남자는 혀를 끌끌차며 주위에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에게 호통을 치며 그들을 강제로 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다. 사람들은 그 남자의 말에 뒤도 돌아보지않고 주위로 흩어졌고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나는 조용히 입에 물고 있던 종아리를 뱉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 안에 고인 피가 입술 사이로 흘러내리고 그 남자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한다.
" 자넨, 누구지? 행색을 보아하니 우리 마을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
남자는 내 옷차림을 훑어보더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본다.
" 끄으으 …. "
뭐라 대답하기 난감한 시점에서 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한쪽 다리에서 솟구치는 피가 바닥을 적시며 주위로 퍼지자 남자는 나를 제치고 서둘러 그를 등에 업는다.
" 자네가 누군지에 대해선 나중에 묻도록 하지. 일단은 이 녀석부터 치료하는게 급선무야. 서둘러! "
왜 나까지 데려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 남자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그 남자에 말대로 얼마 지나지않아 건물들 사이로 십자가모양의 팻말이 박혀 있는 한 건물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슬쩍 주위를 둘러보며 안으로 들어간다.
그 남자가 들어간지 약 10분 정도가 흘렀을까,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오는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등 뒤에 업혀져 들어간 남자는 병원 안에 있는 듯 보이지 않는다. 건물 밖으로 나온 남자는 한쪽에서 서성거리는 나를 발견하곤 내게 다가오며 묻는다.
" 아직도 여기에 있었나? 나는 간줄 알았는데. "
" 뭐, 마땅히 갈 곳도 없어서 …. "
" 갈 곳이 없다? 자네, 정말 이 마을사람이 아니였단 말인가? 허 참, 신기하군. "
이 남자는 처음부터 내가 타지 사람인줄 몰랐나보다. 아까 전에 내 정체를 물었을 땐 그 점에 대해 눈치채고 물어본게 아니였던 모양이다.
" 이거, 정말 오랜만에 외부인이 마을에 찾아왔군. 한 20년만인가? "
" 에? 20년? "
" 응? 뭘 그렇게 놀라는건가? "
" 아, 아니 아무 것도. "
외부인이 마을에 찾아온지 20년만에 처음이란 말에 잠시 나는 당황했다. 어르신의 말씀대로라면 이미 이들은 마키 족과 자매결연을 맺었을텐데. 아니면 이미 이 마을사람들은 마키 족은 외부인이 아닌 한 마을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건가? 뭐, 그렇다고해도 이상하다 볼 수는 없으니 ….
" 왜 그런가? 자네도 어딜 다친건가? "
" 아, 아니. 다친데는 없어. "
" 그래? 그거 다행이군. 그런데 자네, 갈데가 없다면 나랑 같이 가는게 어떤가? "
" 뭐? "
" 오랜만에 찾아온 외부인이라서 물어볼 것도 많고, 어처피 자네도 갈데가 없는 듯하니. 어때, 괜찮은가? "
의외로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다. 타지에서 온 사람이라 꺼려할 줄 알았는데, 이 시대에는 그리 외부인을 경계하지않았던건가? 마키 족도 그렇고, 나한테도 이러는 걸 보면.
" 그런데 아까 전에 마을에서 저 녀석과 싸운 이유가 뭔가? 왠만해선 사람을 해할 것 같진 않던데. "
나란히 걷던 남자는 슬쩍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그의 물음에 잠시 말을 뜸들이던 나를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나의 어깨를 툭툭 내려친다.
" 뭐,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군. 저 녀석이 먼저 시비를 건거지? "
" 그걸 어떡해? "
" 저 녀석이 이 마을 골목대장이거든. 툭하면 싸움질이니 나도 골치가 좀 아프던 와중에 자네에게 혼쭐이 났나보군. 의사 말로는 당분간은 병원신세를 져야한다니 그동안은 마을이 좀 조용하겠어. "
그 남자는 씨익 웃으며 내게 말하지만 나는 왠지 좀 떨떠름하다. 방금 전까지 입에 물고 있던 그 남자의 피가 아직도 입에 남아있는 것 같아 찝찝한 기분이 영 가시질 않는다. 모조리 뱉어 냈어도 아직 피비린내가 나는 듯 싶다.
" 다 왔네. 여기가 내가 묵고 있는 곳이라네. "
남자와 함께 걸어간 그곳은 꽤나 웅장해보이는 건물이였다. 다른 건물과는 달리 거대하고 견고할 것처럼 보이는 건물의 위세에 조금은 긴장이 되는 듯 싶다. 남자는 커다란 문 앞에 서 뭔가를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꽤 오래된 금속막대를 문 어딘가에 뚫린 구멍에 넣고 문을 연다. 한마디로 저 금속막대는 열쇠인 모양이다.
「 끼익 」
문이 열리고 그 속에서 고풍스러운 바람이 새어나온다. 남자는 문을 열고는 나를 쳐다보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손짓 했고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 쿵 」
문이 닫히자 바깥에서 흘러오던 공기의 흐름이 막히고 온전히 이 건물 안에서만 불어오는 바람만이 나의 뒤를 뒤따를 뿐이였다. 바깥에서 본 것과 같이 건물은 꽤나 넓었으며 복도 주변에 놓여진 호롱불만이 나와 남자의 길을 밝힐 뿐이였다.
" 여긴 어디지? 행색을 보아하니 당신이 사는 곳 같진 않은데. "
" 미안하지만, 내가 사는 집이라네. "
" 에? "
" 하하, 보기와는 달리 내가 이 마을에서 맡는 책임이 많아서 말이야. 어쩌다보니 이런 집에서 살게됬네. "
그 남자는 웃으며 말했고 나는 슬쩍 그를 쳐다보며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 그나저나 자네는 어디에서 온건가? 행색을 보아하니 이 근처에서 온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만. "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복도에서 그 남자는 궁금한 듯 내게 물었고, 그의 물음에 나는 가볍게 웃으며 아까와는 달리 조금은 편한 얼굴로 ' 여기서 꽤 먼 어느 마을에서 ' 라는 말을 그에게 건네며 더 이상 묻지 말라는 식의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갖다댔다. 그 남자는 내 모습에 피식 웃으며 더 이상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을 묵묵히 걷던 중, 무언가를 발견하곤 발걸음을 멈췄다.
" 이건 …. "
발 끝에 걸린 무언가를 손에 집어 든 나는 주위에 놓여진 호롱불에 살짝 불빛을 비춰보았다. 누군가의 사진으로 보이는 한장의 종이에는 활짝 웃고 있는 한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 왜 그러나? 무슨 일 있는건가?"
" 아니, 별거 아니야. 여기에 사진 같은게 떨어져 있어서. "
" 사진? "
" 응, 여자아이가 웃는 얼굴이 찍힌 사진 같은데. 왜 이런 곳에 …. "
" 전에 손님들이 왔을 때, 누군가가 떨어트리고 간 모양이네. 나중에 와서 찾을지도 모르니 내가 갖고 있겠네. "
남자는 손을 내게 내밀며 내게 사진을 건네 달라하였고, 나는 갖고 있던 사진을 그에게 건네며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 그나저나 꽤 긴 복도네. 한 100m는 간 것 같은 기분인데. "
" 조금만 더 가면 거실이 나올걸세. 그러니 조금만 참게. "
무슨 집을 이렇게 넓게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건물과는 비교해도 엄청나게 큰 집에 이 남자가 산다는데 약간 어이가 없기도 하다. 이 마을의 촌장이면 모를까, 마을에서 많은 일을 한다해도 다른 건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이 집에서 살게 되다니. 전에 봤던 촌장댁도 규모가 크긴 했지만 이정도까진 크지 않았는데 ….
" 그런데 자네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
장시간 걷던 와중 조금씩 다리가 저려올 때쯤 남자가 나에게 물었다.
" 갑자기 이름은 왜 물어보는거지? "
" 남한테 말하면 안되는 이름인가? "
" 아니, 안되는건 아니고. 갑작스럽게 물어봐서 …. "
" 그런가? 하하. 그렇다면 물어보지않겠네. 뭐, 천천히 알아가면 되니 말이네. "
멋쩍은 듯 어색한 웃음을 짓던 남자는 입을 다물고 묵묵히 앞으로 걸어간다. 뒤에서 쫄쫄 따라오던 나는 주위를 살피며 그의 뒤를 따랐다. 내 앞을 가로 막으며 걷던 남자는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나를 쳐다봤고. 그는 나를 쳐다보며 내게 말한다.
" 내 이름은 란, 란이라고 부르게. "
뜻하지않게 과거로 오게 된 나는 우연히 마을에서 ' 란 ' 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됬다. 그는 호탕한 웃음으로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그는 갈 곳 없는 나를 자기가 지내는 집으로 데려와 날 묵게 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 남자는 외부인의 출입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왠지 나를 보면서 그런 꺼림직한 기분이 좀 덜했다고 했을까? 가까이 가도 별 해를 입지 않을 것 같아 나를 이 집으로 데려오긴 했지만, 왠지 알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 끼익 」
그를 따라 안으로 걸어온 복도는 내 생각과는 달리 그렇게 넓지도 길지도 않은 평범한 복도라고 이 집에 살던 한 사람이 말해줬다. 단지, 그 길지도 넓지도 않은 복도를 빙글빙글 돌아가며 나에 대해 물어본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역시나 말은 믿는다곤 했지만 반은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이 얘기를 해준 남자는 딱히 그 남자와 가족이라고 볼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그는 아마도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마을사람들 중 한명으로 보인다. 왜 이 집에서 그 남자와 함께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넓은 집에 혼자 적막하게 사는 것보단 사람 몇명 더 같이 사는게 조금은 공허한 공간을 흐트리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 1시간 후에 저녁식사가 마련되니 그때까지 여기서 휴식을 취하고 있어요. "
" 아, 고맙습니다. "
" 그럼 이만 …. "
나를 이 방까지 안내해준 남자는 조용히 문을 닫고 어디론가 걸어갔고, 그 남자가 사라짐을 동시에 나는 바닥에 주저 앉고 긴 숨을 내쉬었다. 어찌됬던간에 이 시대는 내가 살던 시대의 과거니. 이곳에서라면 무언가 발견할 수 있겠지. 방 안은 꽤나 깨끗했다. 집이 넓어서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데, 사실은 꽤나 청결하나보다. 커다란 집이라서 그런지 방도 큼지막한게 혼자 묵기에는 꽤나 쓸쓸한 기운이 감돈다. 그나저나, 이제부터 나는 뭘 해야하는거지?
「 똑 똑」
바닥에 퍼질러앉은 내 옆으로 누군가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다.
" 방은 좀 괜찮은가? 매일 청소는 하는데, 사람이 온건 처음이라. "
그 남자는 조금 창피하다는 목소리로 방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온다. 방바닥에 앉아있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아, 일어날 필요 없네. 곧 나갈테니. "
" 이 집에 사람들이 꽤 사나봐. 여간 시끄러운게 아닌걸. "
" 아, 그런가? 하하,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
" 뭐, 상관 없어. 나도 그런 말할 처지는 아니니까. 방이라도 내준게 어디야, 그것도 처음보는 외부인한테 말이야. "
" 뭔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 얼굴이군. 궁금한거라도 있나? "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스산하게 나와 란 주위로 몰려든다. 나는 약간 미소를 지으며 그런거 없다며 손사레를 치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란은 뭔가 껄끄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그런게 아니라면 됬다며 밖으로 나간다.
" 그런데, 란. "
" 뭔가? "
"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 사람이 이런 궁궐 같은 곳에서 혼자 지낸다는게 조금 믿겨지지않아서 그러는데.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야? 정체가 뭐길래, 처음 본 나한테 친절을 베푸는 것도 모잘라, 나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가 뭐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거냐고. "
"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지? "
고개를 돌린 란은 방금 과는 달리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차분했던 방 안의 공기가 약간의 흐름을 바꾼 듯, 거칠어진 느낌이 내 주위를 맴돈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그의 눈을 바라봤고. 조금만 더 건들면 뭔가 험한 말이 나올 것 같은 그의 얼굴엔 웃음기가 사라졌다. 심각한 상황이 연출되는 와중에도 건너편 사람들의 말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 말해보게, 도대체 내게 무슨 말을 듣고 싶은건가? "
" 그건 본인이 더 잘 알 것 같은데? "
" … 뭐? "
란의 입이 부르르 떨리며 순간 말을 멈춘다. 여기서 한마디만 더 하면 무언가가 터질 것 같은 예감을 한 나는 피식 웃으며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과 함께 방에서 나가달라는 말을 그에게 건넸고, 그 남자는 지그시 눈을 감고는 알겠다며 이 얘기는 나중으로 미루겠다며 아무 말 없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간다. 그 남자가 밖으로 나간 후 나는 한숨을 돌리며 그대로 방바닥에 쓰러졌다. 대체, 내가 왜 그런 언행을 벌인건지 지금에서야 후회가 된다. 갑자기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도 모잘라, 아무 조건 없이 갈데 없는 나를 이곳에 머물게 해줬는데. 고마워해야하는 것도 모잘라 그의 심기를 건드는 짓을 하다니 …. 과거로 돌아와서 그런지 내 정신연령도 바닥을 치는건가?
' 후우. '
조금만 쉬고나면 괜찮아지겠지. 지금 몸과 마음이 피로해서 괜히 짜증지수가 올라간 것일 수도 있어. 조금만 자고 일어나면 몸도 마음도 다시 개운해질테니 그때 가서 사과를 하는거야. 그리고 그 남자에게 이곳이 어디며, 5년 전 죽임을 당했던 루에르라는 아이의 부모인 리오크와 로라에 대해 묻는거야. 그리고 그 사건의 비극을 낳게 된 마키 족에 속한 한 남자를 찾아서 왜 그랬는지 밝혀야하고. 만약, 이 일이 잘되면 과거. 아니, 이 시점에선 미래라고 말해야 맞는건가? 하여튼, 그 날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찬스니. 허나, 그것을 막는다해도 미래에 그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다만, 나의 소망이니 꼭 그랬으면 좋겠지만 ….
“ 리오크 …. 이제, 저는 어쩌면 좋죠? 더 이상 살아갈 용기가 없어요 …. ”
“ 로라,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 그것보다 이쪽으로 와 로라, 그쪽은 위험해! ”
“ 리오크 …. 미안해요. ”
“ 로라, 안돼. 로라!! ”
기분 나쁜 꿈이였다. 내 눈 앞에서 한 여자가 벼랑 끝으로 떨어졌다. 그것도 겉잡을 수 없이 커진 불구덩이 속으로 말이다. 그녀를 막지 못한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절규를 하고 있다. 마지막이였던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없던 자기 자신을 저주하며 벼랑에 머리를 묻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눈물을 흘리며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 그녀가 서있던 벼랑에 머리를 박고 울부짖던 남자의 뒷모습이 점점 검은색 장막에 가려 서서히 시야에서 멀어져만 갔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 하아 … 하아 …. "
어느세 두 손엔 땀이 차있고, 내가 누워있던 이불도 누군가가 물을 뿌려놓은 듯 축축히 젖어있었다. 그냥 꿈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섬뜩했고, 악몽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슬펐다. 뭣 때문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어찌할 줄 모르고 죽음으로써 달랜 것처럼 그들의 모습은 처량했다.
“ 리오크 …. ”
“ 로라! ”
더군다나, 그 이름. 분명, 그들의 이름이 맞았다. 리오크, 로라.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루에르. 그리고 아마 그 장면은 그들의 아이가 마키 족에 속해 있던 한 남자에 죽임을 당한 뒤에 모습이였던 것 같다. 아이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로라는 그대로 벼랑 끝에 몸을 던졌고, 그런 로라를 막지 못한 리오크의 절망 가득한 비명소리가 다시금 가슴을 아프게 한다. 왜 하필이면 그 아이였을까, 아직 세상도 보지 못한 그 아이를 죽여야할 이유가 뭐였을까? 그리고 왜 죽이지 않았으면 안됬던걸까. 다른 방법은 없던건가? 아니면 방법조차 찾을 생각 없이 그 아이를 죽여야만 했던걸까? 아님, 그게 최선이였던건가 ….
' …. '
차마, 기억 속에 파묻을 수 없었다. 그저, 단순히 꾸게 된 꿈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원통한 죽음이였다. 지금도 계속 흐르는 내 눈물이 이불을 적시고 붉게 충혈된 내 눈으로 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전까지는. 아마도 그때까지는 이 기억은 평생토록 내 머릿 속에 남아돌거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악몽보다는 그들의 저주에 가까운 그런 기억을 말이다.
「 끼익 」
차분히 자리에 앉아 눈을 비비던 내 방으로 아까 그 남자가 안으로 들어오며 저녁식사라며 함께 가자며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혹시 내가 운게 들킬까 재빨리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피곤하셨나봐요. 눈이 퉁퉁 부은걸 보니. "
" 아, 아하하하 …. 그런 것 같네요. "
내가 운게 들킬까 어색한 웃음이 내 마음은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남자를 따라 어디론가 향하는 도중에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 집에 사는 듯 보였다. 워낙 집이 크긴 하지만 이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지낸다는걸 생각하니 흡사, 민박 또는 하숙을 하는 듯한 느낌이다. 뭐, 그거에 비하면 여긴 초호화 펜션 정도일까나.
" 그런데 루에르는 란 님과 무슨 사이세요? 보니까 친구인 것 같던데 …. "
조용히 복도를 따라 걷던 나에게 남자는 궁금한 듯 물어본다.
" 그냥 우연히 만났어요. "
" 에? 우연히 만났는데 여길 오셨다고요? 그것도 외부인이? 우와, 신기하네요. "
의아한 대답이였는지 남자는 나를 쳐다보며 신기한 듯 감탄한다.
" 그런데 제 이름을 어떻게 아셨죠? 전, 아무한테도 제 이름을 얘기하지 않았는데. "
" 아, 아. 그게 말이죠 …. "
남자는 당황한 듯 말을 더듬으며 수상한 냄새를 폴폴 풍긴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나는 그를 한쪽 벽으로 몰아넣으며 행여나 다른 사람들의 귀에 들릴까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 당신, 정체가 뭐지?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거야? "
" 아, 아니. 정체가 뭐냐뇨. 전, 그냥 …. "
" 말 돌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
" 흐익! 아니, 그. 그냥 저는 그. 그걸 보고 …. "
" 뭐? "
남자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내 팔을 가리키며 말했고, 그를 붙잡고있던 나는 내 팔에 무언가가 쓰여있는걸 발견하곤 황급히 그를 붙들고있던 멱살을 놓아주고 팔에 적힌 글자를 확인했다.
' 루에르 '
내 팔에는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것도 정확하게 말이다. 도대체 왜 내 이름이 이런 곳에 … ?
" 이봐요. 왜 이런 곳에 내 이름이 적혀있는거죠? "
" 켁켁,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 저는 그저 읽은 죄 밖에 없는데. "
남자는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고, 나는 그런 남자에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며 그의 손을 잡고 그를 자리에서 일으켰다.
" 그런데 정말 이상하네. 왜 그런 곳에 이름이 적혔을까 …. 루에르 씨 말대로 누구한테도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면 도대체 이걸 누가? "
" …. "
혹시나 내가 무의식 중에 쓴걸까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살짝 침을 묻혀 닦아 보았으나 닦이질 않는다. 이건 분명 무언가에 의해 새겨진 글자가 분명하다. 그런데 왜 이런게 하필이면 내 팔에.
" 루에르 씨, 왜 그래요? 이상한 점이라도? "
" 아뇨,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이만 가요. "
나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앞으로 걸어갔고, 남자는 급하게 앞으로 걸어가는 내 뒤를 쫓아 허겁지겁 따라온다.
' …. '
대체, 왜 하필 그곳에 ….
아마도 이 상처는 이 세계에 오기 전. 그러니까, 세상이 멸망하기 이전에 생긴 상처다. 우연히 친구들과 놀다가 미끄럼틀에서 떨어져 생긴 상처였다. 하지만, 그땐 내가 너무 어릴 때라 상처는 금방 나았지만 왜 지금에서 그 상처가 변질되어 내 이름이 새겨져 있는걸까. 무슨 연관이 있길래 갑자기 없던 상처가 생겨나 왜 자꾸 이상한 생각이 머릿 속을 맴돈다.
「 덜그럭 」
저녁식사가 차려진 이곳은 먹기에 바쁜 사람들이 내 그릇 남 그릇 상관치않고 오직 자기 배를 부르게 하기 위해 분주하다. 내 옆에 앉아있는 남자는 그런 사람들에게 밥 그릇을 빼앗길까, 노심초사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밥 그릇을 들고 먹고 있다. 이 집에 모두 산다길래 어느 정도 양보와 타협이 있을 줄 알았는데. 양보는 개뿔, 이기적인 인간들 밖에 없다. 죄다 늙어빠진 노인들에 간간히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되려 노인들에게 음식을 빼앗기며 꼬르륵거리는 자신의 배를 움켜지고 한쪽 구석에 쳐박혀 앉아있다. 무슨 마을이 이렇게 질서가 어질러져있는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그들을 욕할 처지는 안되는 모양이다.
" 루에르 씨, 왜 그러세요? "
" 아무 것도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말고 드세요. "
아까부터 오른팔의 상처가 시큰거린다. 내 이름이란걸 확인하기 이전에는 괜찮았는데 그 이후로 계속 이런다. 그리고 그 통증이 서서히 내 팔을 조여오기 시작한다. 잠시 떨리는게 전부였던 내 팔이 지금은 부들부들 떨리다 못해 숟가락까지 들 힘까지 사라졌는지 꽤나 밥 먹는게 힘이 든다. 딱히 배가 고픈건 아니였지만, 이 상황이 계속 진행되다보면 내 밥은 저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겠지. 그러면 지금은 배가 고프지않지만 나중에는 저 사람들처럼 제대로 먹지 못해 살만 쭉쭉 빠지게 될거다. 그러니, 조금이나마 스테미나가 남아있을 때 먹어두는게 좋을 거 같다.
「 드르륵 」
어거지로 밥을 입에 쑤셔넣던 내 뒤로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미처 제 시간에 못 온 사람들 중 한명일꺼라 생각하고 밥을 먹고 있는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숟가락을 멈추고 가부좌를 틀더니 이내 아무도 앉지 않은 식탁을 향해 모두가 눈을 감고 앉는다. 옆에 있던 남자 역시 다른 이와 같은 자세로 앞을 보고 앉는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나는 얼떨결에 사람들이 하는 자세를 취하며 앞을 바라보았고, 내 뒤에 서있던 사람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다. 나는 살짝 눈을 뜨며 그 사람의 뒷모습을 쳐다봤고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란이였다. 란은 제법 무게가 잡힌 모습으로 식탁 앞에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곤 주위에 사람들을 하나씩 쳐다보며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 시간에 때맞춰 오지 못해 미안하네. 다음번엔 늦지 않게 조심하도록 하지. "
꽤나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로 들린다. 란은 자기 앞에 놓여진 숟가락을 들며 식사를 시작하자고 말하자. 아까와는 달리 경건한 모습으로 하나 둘 식사에 임한다. 그리곤 아까 전까지만해도 구석에 쳐박혀 밥을 굶던 젊은 사람들도 노인들 틈에 껴서 그제서야 밥 그릇을 잡고 식사를 한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란이라는 남자는 꽤나 이 집에서 권력을 지고 있다는걸 새삼 느끼게 된다. 나는 슬쩍 옆에서 밥을 먹던 남자의 옆구리를 툭 치며 물었다.
" 대체 저 남자의 정체는 뭐죠? 뭐길래 이 많은 사람들이 저 남자의 말을 듣고 행동하냔 말입니다. "
" 에? 루에르 씨는 몰랐어요? 란 님이 우리 마을 촌장이세요. "
" 네? "
" 란 님의 조상님으로 하여금 대대손손 촌장의 집안에서 태어난 란 님이 몇년 전부터 이 마을 촌장을 하고 계세요. 다만, 옛날 촌장과는 달리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걸 좋아하신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래서 갈 곳 없고 힘 없는 노인들을 모아 이 집에서 지내게 하죠.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몇몇 젊은 사람들은 그런 노인들을 보살피기 위해 선택 받은 사람들이고요. 루에르 씨도 그런게 아니였나요? "
" 아뇨, 전 그냥 우연히 가다가 만난 것 뿐입니다. 그런 사실은 몰랐고요. "
" 그래요? 하하, 그래도 운이 좋으시네요. 하필 만난 상대가 촌장님이라니. 아무튼, 만나서 반가워요. 제 이름은 리키에요. 물어볼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봐요. "
그 남자는 실실 웃으며 말했고, 나는 한편으로는 의아한 표정으로 란을 쳐다봤다. 어르신의 말씀대로라면 현재 이 마을 촌장으로 있어야 할 사람은 로라라는 한 여성이다. 그런데 란은 어떻게봐도 남자며 이름 또한 로라와는 전혀 다른 이름이다. 혹시 이곳은 루에르 마을이 아닌건가?
" 그런데 리키. "
" 네? "
" 실례지만 이곳 촌명이 어떻게 되죠? "
" 촌명이요? 갑자기 그건 왜 …. "
" 말해주세요. 여긴 대체 어디죠? "
" 음, 여기는 마우 마을이라고 마우리스 산에 둘러쌓여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던데 …. "
어르신의 얘기에 들리면 내가 있었던 현재의 세계에서의 잿빛산은 그 이전에는 마우리스 산이라고 불리었던걸로 기억된다. 그렇다는 얘기는 분명 루에르 마을일텐데. 왜 그들은 루에르 마을이 아닌 마우 마을이라고 하는걸까?
"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요? "
" 저기, 혹시 마키 족이란걸 알고 있나요? "
" 네? 마키 족이요? 그게 뭐죠? "
이 남자. 마키 족에 대해 모르는건가? 하지만, 분명 이곳이 루에르 마을이고 마우리스 산이 둘러 있다면 마키 족을 알텐데 ….
" 루에르 씨, 설마 마우린을 말씀하시는건가요? "
그 남자는 내가 물어본 마키 족이라는 이름 대신 마우린이라는 이름을 말했다. 마우린은 또 어떤 놈들이지? 왜 이곳은 내가 아는 것과는 달리 이상한 이름만 들리냔 말이야. 대체, 나는 어느 정도에 과거로 와있는거지?
" 마우린에 대해서라면 아는건 없지만 …. 주위에서 듣기론 아주 흉악하고 잔인한 놈들이라고 …. "
" 흉악하고 잔인한 … ? "
" 네, 예전부터 마우 마을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고 했어요. 그렇기때문에 과거 선조들도 꽤나 애를 먹었다고 …. 가까스로 싸움을 멈추고 지금까지 휴전을 하고 있지만 그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
" … 그런가요. "
" 아무튼, 루에르 씨.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설마 마우린에게 가는거라면 절대로 그곳에 발을 내딛지 말아요. 그곳은 우리가 절대로 가면 안되는 금단의 영역이니 말이에요. 전에도 몇명의 사람들이 그곳에 우연히 갔다가 사지가 절단되고 숨만 겨우 내쉬는 반시체로 돌아왔으니 말이에요. 그러니 절대로 그곳에 가지마세요. 갈 생각도 하지 말고요! "
리키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살짝 고개를 끄덕거렸다. 리키의 말은 한치에 거짓도 없는 오직 진실만을 내게 얘기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지금 아는 마키 족과는 달리 마우린이란 사람들은 매우 잔혹하다는 사실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왜 지금에 마우린과 마우 마을은 서로 휴전을 하면서까지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건가? 그 일에도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나를 이쪽 세계로 보낸 것처럼 사로이는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게 분명하다. 다만,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꽤나 고단한 일상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지만 ….
" 저기, 리키. 한가지만 더 물어볼게요. 혹시, 로라라는 사람을 아나요? "
" 로라요? 그게 누구죠? "
역시, 이곳엔 로라가 없는건가. 그렇다는 말은 리오크 역시 마우리스 산엔 없다는 말이 되는군.
" 그럼 혹시 란에겐 딸이 없나요? "
" 딸이요? 에이, 설마요. 혼인한지 1년도 안된 사람들이 애가 있을리가 …. 아, 그리고보니 촌장의 부인이 애를 가졌다는 얘기는 간간히 들리던데. 딸인지 아들인지는 낳아봐야 알겠죠? "
그런가, 역시 그 아이가 태어나야 이 일의 실마리가 조금은 풀리려나. 내가 지금 몇년 전의 과거로 돌아왔는지에 대해 알 방도는 없지만. 만약, 리오크와 로라가 태어나기 이전에 시대에 온거라면 그들의 과거를 볼 수 있다는 말이 되겠지. 다만, 그게 몇년이 걸릴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이곳에 남아 그 일들을 지켜보는 수 밖에.
" 란 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동쪽에서 마우린들이 마을로 침입했습니다! "
평화로이 저녁식사를 하던 중 누군가가 성급한 목소리로 뛰어 들어왔다.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몸 구석 구석 누군가의 피로 보이는 액체가 사방으로 묻어 있었고. 반 실성이 된 남자는 란에게 도움을 구하기 위해 온듯 보였다. 숟가락을 들어 조금씩 밥을 씹어 넘기던 란은 당황한 얼굴로 숟가락을 식탁 위에 내려놓는다.
" 뭐? 그게 사실인가? "
" 네, 지금 마을사람들이 그들의 손에 …. "
식사를 하던 란은 심각한 얼굴로 서둘러 그 남자를 따라 밖으로 나갔고. 마을의 긴급한 상황이 일어났다고하자 조용히 밥을 먹던 사람들까지 화들짝 놀라며 먹던 밥 그릇을 팽개치며 밖으로 성급히 나간다. 내 옆에서 밥을 먹고 있던 리키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나의 팔을 붙잡으며 빨리 이곳을 나가자며 나를 이끌고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약간 어눌해진 상황 탓에 긴장감이 떨어지고 있다. 긴박한 상황이 연출될거라 생각했던 나의 생각과는 달리 지금 마을의 모습은 그저 평화롭기 그지 없다. 긴급한 목소리로 뛰쳐 들어온 그 남자는 과연 무엇을 보고 그리도 놀란 것이었을까? 그저 평화로운 마을 탓에 약간의 장난을 치고 싶었던걸까?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그 남자는 그리 허술한 남자가 아닌 것 같았다. 내 느낌이지만, 그 남자는 정말로 무언가를 보고 그런 행동을 벌인게 맞을거다. 다만, 그 상황이 너무 빠르게 지나쳐간 탓에 그 남자의 말대로 상황이 진행되지 않은 것뿐이니.
" 순전히 장난이였을까요? "
" 그렇게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인건 맞지만,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한 것 같지는 않아요. "
" 그러면 어떻게 된거죠? "
" 아마, 그 남자가 우리한테 왔을 때는 이미 그들은 철수한 모양이에요. "
" 하지만, 그들이 습격했다면 이렇게 마을이 고요할 리는 없지않나요? 적어도 어느 한 곳은 함락이 되있을텐데. "
리키의 말이 옳았다. 적어도 그 누구보다 더 잔혹하고 비열한 그들이라면 이렇게 조용히 지나쳐 갔을 리는 없다. 하지만 왜 그들은 이 마을에 내려왔고,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은 채 조용히 자신들의 본거지로 돌아간 것일까? 무언가 목적이 있기에 온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행동.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 그래도 아무 피해도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에요. 만약 그들이 조용히 물러서지 않았다면 큰 싸움이 벌어질게 분명하니까요. "
" 아마도 그렇겠죠. 불행 중 다행이네요. "
" 이만 돌아갈까요? 밤도 많이 깊었는데. "
리키와 나는 어느 정도 마을을 둘러보고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리키의 말대로 큰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쯤으로 물러간게 조금 꺼림직한 부분이 있다. 내 예감이지만, 아마 그들은 또 한번 이곳에 올거다. 분명 그때는 자신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갖고 가기 위해 말이다. 허나, 그들이 원하는걸 모르는 지금. 한편으로는 꽤나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지만.
" 날씨가 쌀쌀한게 곧 겨울이 오려나봐요. 그렇게 푹푹 찌더니. "
리키는 몸을 부둥켜 안고는 희미하게 보이는 입김이 그의 말은 대신했다. 그의 말대로 주변 공기가 낮과는 달리 한기가 맴돈다. 조금씩 떨려오는 몸과 함께 찌뿌둥한 몸상태로 인해 약간의 피로가 밀려온다.
" 루에르 씨, 괜찮아요? 피곤해보이는데. "
리키가 걱정되는 얼굴로 내게 묻는다.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괜찮은 듯 웃어보지만, 아까부터 밀려오는 피곤 때문에 앞이 흐릿하다. 눈꺼풀이 무거워짐과 동시에 후들거리는 두 다리가 맥없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 루에르 씨, 괜찮아요?! "
힘 없이 쓰러지는 나의 팔을 잡아 당기던 리키는 한참을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도저히 안되겠다는 얼굴로 나를 자기 등에 업힌다. 나는 희미해진 의식 속에서 괜찮다며 그의 등에서 내려오려했지만 그는 무슨 소리냐며 대뜸 내게 화를 내며 자기 등에 업힌 나를 꽉 잡고는 서둘러 건물로 향한다. 그의 움직임이 등을 통해 전해지고, 반쯤 감긴 눈으로 슬며시 리키를 쳐다보던 나는 이내 스르르 눈을 감았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맨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피로감이 내 몸을 덮치니 꽤나 고역스럽기 그지 없다. 이렇게 리키의 등에 업혀 잠시 눈을 감으면 조금은 상쾌해질 것 같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그의 등에 업혀 조용히 나의 몸을 맡긴다.
“ 깊은 밤이였다. 그들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우릴 보며 ' 소울 ' 을 달라 말하지만, 우리들은 그들이 원하는 소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우리들의 말을 믿지 않고 순전히 우리가 자신들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 마우린들은 서서히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한다. 되도록이면 싸움을 피하고 싶었기에 우리들은 우리가 아는 것까지 그들에게 설명해야만 했고, 그들은 그런 우리의 말을 들으며 조금씩 경계를 늦춘다. 여러 차례에 대화 끝에 나는 마우린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만약, 내가 마우린들이 원하는 소울을 다음 보름달이 뜰 때까지 가져오지 않는다면 내 목숨을 빼앗아도 좋다는 제안이였다. 그들은 내 예상과는 달리 순순히 응했고 다음 보름달을 기약하며 마우리스 산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나서 나는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들이 원하는 소울이란건 대체 어떤거며, 왜 하필 우리 마을에 그게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한 결과, 한가지 집히는게 떠올랐다. 만약에 그들이 원하는 소울이, 이미 내 손 안에 있는거라면, 나는 주저 없이 그들을 죽여버릴거다. 혹시나 정말로 그 물건이 맞다면 …. 나는 돌이킬 수 없게 되겠지만 말이다. 부디, 그 물건이 아니기를 빌 수 밖에 없다. ”
또 나는 꿈을 꾸고 만건가 …. 지울 수 없는 과거의 비극이 다시금 나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가는건가. 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 이미 나는 방 안에 누워있었다. 지난 밤, 리키가 나를 업고 달린 것은 기억되지만 그 이후부터는 의식이 끊겼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이렇게 얌전히 누워있는걸 보면 별 탈 없이 잘 왔다는 얘기겠지.
「 드르륵 」
낡은 문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문 사이로 리키가 들어온다.
" 루에르 씨, 몸은 괜찮아요? 어제 보니깐 기운이 없으시던데. "
걱정스러운 그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으며 괜찮다는 말을 건네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도 어제의 피로가 오늘은 말끔히 풀렸는지 몸이 가뿐하다. 도대체 어제 그 알 수 없는 기분은 뭐였을까. 단지 가벼운 신경과민이였을까, 아님 무언가를 직감하는 내 몸의 상태이상이였을까. 아마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 아침식사는 언제쯤 하죠? "
" 앞으로 한 1시간 정도 남은 것 같은데. 배 고프세요? "
" 아뇨, 아침운동 삼아 마을 주변 좀 걸으려고요. "
" 아직 몸도 성치 않으신데, 너무 무리 하시는건 …. "
" 푹 자고 일어나서 괜찮은 것 같아요. "
" 그래도 …. "
나를 걱정하는 리키의 말에도 아랑 곳하지않고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아침이라 그런지 깨어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듯, 건물 안은 차가운 적막감만이 흘렀다.
" 아침식사 전까지는 꼭 돌아오세요. "
건물 밖까지 따라 나온 리키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듯, 내가 밖으로 무사히 나가는걸 보고나서야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런 리키를 보며 지금은 같이 없지만 왠지 로빈을 보는 것 같아 왠지 모를 그리움이 느껴진다.
' …. '
로빈은 잘 지내려나. 나 없는 동안에도 몸 건강히 무사했으면 좋을텐데 …. 여기서는 알 방법이 없으니 조금 답답한 느낌이 있다. 어서 빨리 이 일을 끝마치고 로빈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야 할텐데 ….
「 데엥 - ! 데엥 - ! 」
순조롭게 마을을 거닐던 내 귀로 종소리가 들려온다. 소리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확인하니 내가 지내고 있던 건물 방향으로 소리가 흘러온다. 종이 울리는 용도는 모르겠으나, 내 생각대로라면 저 종은 시계대용인 것 같다. 아까 문득 벽에 걸린 시계를 봤는데 6시 57분이였나? 만약, 그게 맞다면 저 종이 다시 한번 칠때까지 나는 건물로 돌아가면 된다. 꽤 편리하게 만들어진 것 같다.
다시 마을을 걷던 중, 다른 건물과는 달리 조금 특이하게 생긴 건축물 하나가 눈에 띈다. 정처 없이 걷던 나는 그 사당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다가가니, 나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기도를 하며 무언가를 비는 듯이 보였고, 그 주변에는 누군가가 인위로 만들어놓은 돌탑 같은게 보인다. 아마도 이 건물은 사당 같은 것일까나?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기도를 끝마치고 돌아가려는 한 아주머니에게 이 건물에 대해 물었고, 내 예상과는 달리 그 건물은 신사라고 말했다.
" 이 마을의 신을 모시는 곳이에요. 아침이 되면 몇몇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기도를 드리곤 하죠. "
" 신이요? "
" 네. "
" 어떤 신을 모시는 곳이죠? "
" 글쎄요. 이 마을에서 오래 살기는 했지만, 딱히 무슨 신을 섬기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란 님도 이 신사가 무엇을 위해 지어졌는지 모르시니 우리가 알 도리가 있나요. "
" 그런가요 …. "
" 그런데, 마을에서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 "
" 아, 사실 어제 이 마을에 와서 오늘 아침 일찍 마을구경을 좀 하고 있던 중이였어요. "
" 그래요? 외부에서 오셨단 말씀이죠 …. "
조금 미심쩍은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아주머니는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향했다. 나는 아주머니가 말한 신사를 천천히 바라보며 슬쩍 신사 앞으로 다가갔다. 뭔가 오묘하면서도 신기한 분위기에 신사를 보니 왠지 모르게 자동으로 기도를 하고 싶은 기분이다. 나는 주위를 소리 없이 둘러보곤 차분한 모습으로 천천히 두 손을 모아 신사를 향해 기도를 했다. 주위 분위기가 경건하고 진지해서인지 나 또한 묵직함이 절로 느껴진다. 어쩌다보니 분위기 때문에 기도를 드리긴 했지만 딱히 뭔가 빌만한게 기억나지 않아서 금방 눈을 떴다. 이런 상황이 조금은 낯설은 나와 달리 내 주위에 있던 마을사람들은 오랫동안 해본 솜씨답게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곱게 마주본 두 손바닥만이 신사를 가리킨다.
한동안 신사 앞에 머물던 나는 이제 그만 건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걷기도 좀 걸었고, 겸사 겸사 마을구경도 했으니 이제 가서 아침이나 먹을까하고 돌아가려는 순간, 무언가가 등 뒤에서 반짝하고 빛을 낸다. 무언가 느낀 나는 황급히 등을 돌려 신사 쪽을 바라봤고, 방금 전까지는 몰랐지만 조그만한 신사 안에는 무언가가 들어있는걸 발견했다.
' …. '
이건 뭐지? 어디선가 많이 본 물건 같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물건에 손을 갖다대었고 점차 내 손에 닿은 물건은 환한 빛을 내며 내 눈 앞에 모습을 나타낸다.
" 이. 이건 …. "
신사 안에 들어있던건 다름 아닌, 반으로 두동강 난 메달의 일부분이였다.
왜 이 물건이 이 신사에 고이 모셔져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더군다나, 그것도 원상태로 놓아진게 아닌, 반쯤 잘려나간 상태의 조각으로 남겨져있었다. 나는 문득 잊고 있었던 메달의 존재를 알아채고 서둘러 내 바지주머니를 뒤적거렸다.
" ! "
없다. 분명히 내 주머니 안에 들어있어야할 메달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한 나는 허겁지겁 반대쪽 주머니도 뒤졌지만 메달은 찾을 수 없었다. 설마, 모르고 떨어트린걸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메달이 떨어지는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할 만큼 긴급한 상황이 있기는 있었나? 만약, 있었다고해도 바지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이물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난 둔하지않다. 무조건 내 주머니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메달이 없다는건 크나큰 충격이었고, 그 뜻은 나는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과 같은 이치였다. 순간적으로 눈이 아롱거리고 몸의 중심이 뒤틀린다. 가까스로 휘청거리는 두 다리를 지지하고 신사 앞에 세워진 울타리를 붙잡고 가쁜 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는 어떻게해야하는지 생각해보지만 쉽사리 떠오르지않는다. 설령, 떠오른다해도 메달이 없는 시점에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 …. '
한가지 방법이 있다면. 지금 내 앞에 보이는 저 신사 안에 놓여진 메달을 꺼내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하지만, 저 반쪽으로 조각난 메달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좌절감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숨소리마저 거칠어지던 때에 순간 내 뇌리를 스쳐가며 지금 벌어진 이 심각한 상황을 무마하려 하는 듯, 갑작스럽게 무언가가 떠오른다. 그게 무엇이냐하면 메달 한 조각이 이곳에 있다는건 필시 어디에도 나머지 조각이 있다는 뜻이 성립되고 그 조각을 찾기만하면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나는 지금 이 신사 안에 놓여진 조각과 나머지 어디엔가 분명히 존재할 조각을 찾아 서로 합쳐야한다. 그러나, 그 나머지 조각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알아내는게 더 큰 일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조각을 어떻게든 찾아내는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곳엔 목적도, 이유도 모두 무의미할테니까. 일단은 건물로 돌아가 이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고나서 천천히 실행에 옮기도록 해야겠다.
정신을 바로 잡은 나는 서둘러 란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어떻게든 지금 상황에서는 어찌할 수 없으니 내가 가릴래야 가릴 수 없다. 그 나머지 조각을 찾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각오는 해야겠지만 말이다. 하나 소망하는게 있다면, 되도록이면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부질 없는 생각을 안고 있다. 하지만, 내 예상으로는 조각을 찾는게 그리 순탄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알 수 없는 떨림이 어느 순간부터 지속됬다. 부디, 빠른 시일 내에 그 조각의 행방을 알아냈으면 ….
「 끼익 」
문이 열리는 소리도 꽤나 나를 거슬리게한다. 정신이 사나워서 그런지 왠지 속이 느글거리고 현기증까지 동반한다. 리키 말대로 누워있었다면 지금 이 상황까지 가지 않았을텐데 …. 또 나의 오만함으로 내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건가.
" 루에르 씨? "
비틀거리며 복도를 거닐던 나를 발견한건 리키였다. 리키는 내 상태가 이상함을 느끼곤 서둘러 나한테 달려왔고, 나는 그런 리키에게 기대어 그대로 푹 쓰러졌다.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 한번도 아닌 두번씩이나 낯선 사람한테 기대어 쓰러진건. 심지어 로빈한테도 이런 적이 없는데 왜 나는 계속 이 리키라는 남자한테 이런 행동을 보이는걸까?
" 조금만 기달리세요. 금방, 방으로 갈테니까요. "
또 한번 리키의 등에 업힌 나는 축 처진 두 팔로 간신히 그의 어깨를 붙잡고는 그대로 그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텁텁하게 말라가는 입 안에는 시원찮은 입김만이 밖으로 새어나왔고, 새하얗게 변한 세상이 눈 앞에 아른거리며 내 앞을 지나간다. 곧 정신마저 잃어버릴 것처럼 맥을 못추며 길게 늘어트린 두 다리가 잠깐이라도 바닥에 끌릴 만큼, 내 모습은 나태해져만 간다.
「 드르륵 」
리키는 서둘러 나를 이불 위에 눕혔고, 힘 없이 흔들거리던 나는 슬쩍 리키를 쳐다보곤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에 이야기는 아마도 이 이후에 발생한 사건의 발단이 될 것이다. 지금에 나로서는 무슨 말이라도 해줄 순 없었지만, 다음에 내가 일어나면 서서히 알게될,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진실을 알게 될거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시간이 길지만 말이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엔 그 시간은 길다기보단 너무나도 짧았고. 그 시간에 비해 너무나도 잔혹한 현실에 불과했다. 조금만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면, 1시간이라도. 아니, 10분만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런 결말을 낳지 않았을텐데 …. 나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나약했던걸까. 후회해도 소용 없는데도 난 지금도 후회를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젠, 돌이킬 수 없고. 돌이킬래야 이미 늦어버린, 현재의 나는 이미 많이 쇠약해져있다 ….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는 산 중턱에 걸려 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대체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던걸까. 포근한 이불 위로 차갑게 식어 있는 죽그릇만이 내 몸상태를 짐작이라도 하는 듯 놓여있었다. 그 옆에는 꾸벅 꾸벅 머리를 흔들며 졸고 있는 리키를 볼 수 있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나를 간호라도 한 모양인지 꽤나 지쳐보이는 모습에 나는 살짝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나는 행여나 리키가 깰까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리키는 그 자세 그대로 잠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런 리키를 뒤로하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 드르륵 」
어떻게하든 문소리는 크게 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리키는 깨지 않았다. 복도로 나온 나는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걸어다녔다. 아직 저녁 때가 되지 않은 모양인지 사람들의 목소리는 각기 다른 방 안에서만 간간히 들려온다. 아님, 이미 저녁식사가 끝났을지도.
' . '
복도를 거닐던 중, 나는 어느 방에서 나오는 란을 발견했다. 란은 본 나는 발걸음을 멈췄고, 그런 란 역시 나를 봤는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 몸은 이제 괜찮나? "
" 그걸 당신이 어떻게? "
" 리키한테 들었네, 두번씩이나 쓰러졌다고. "
" 그런건가 …. "
" 걷는걸 보아하니 몸은 괜찮아진 것 같군. 그럼, 잠시 내 방에서 이야기 좀 하지 않겠나? 자네에게 궁금한 것도 있고하니 말이야. "
란은 포근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고, 그런 란의 말에 나는 순순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나 역시 란에게 물어볼 것이 많았기에 마침 잘된 기회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란도 뭔가 집히는게 있어서 나를 데려가는거겠지. 어처피 이판사판, 어찌됬던간에 끝을 내보겠어.
「 드르륵 」
" 들어오게. "
복도 끝에 위치한 하나의 방이 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져 지내는 모양인지, 그 방 주위에는 사람의 인기척 또한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고립 되어 있었다. 이런 곳에서 궁핍하게 지내는 듯한 란은 나를 쳐다보며 얼른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한다. 란을 따라 들어간 방은 악취가 진동했다. 흡사 향불 냄새와 엇비슷한 냄새가 풍겨오자 자동적으로 코를 막게 된다. 란은 이런 상황이 익숙해졌는지 노련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는다.
" 뭐하나? 앉지 않고. "
나는 주섬 주섬 어질러진 주변을 치우고 조심스럽게 바닥에 앉았다. 온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한기가 도는 이 방에서 대체 이 남자는 무엇을 하며 지내는걸까하는 의문이 제일 먼저 든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슬쩍 란의 방을 훑어봤다. 온갖 잡동사니란 잡동사니는 모두 모여있는 듯, 그의 방은 엄청나게 지저분했다. 이래뵈도 결혼한 몸이라던데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아내랑 같이 지내는거지? 그것도 임신한 아내와 함께. 도대체 이 남자의 정신상태가 궁금하다.
" 이곳에서 지내는건가? "
"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말이네. 하루 온종일을 잠자는 시간 제외하곤 이곳에 쳐 박혀 있으니 말이네. "
" 그래? 그런데 왜 날 보자고 했지? "
" 자네에게 몇가지 물어볼 얘기가 있어서 부른걸세. "
" 마침 잘됬군, 나도 당신과 몇가지 이야기 좀 주고 받을까 생각하고 있었거든. "
" 그런가 … ? "
방 안은 왠지 모를 기운이 나와 란 주위를 둘러 싼다. 란은 금세라도 잡아 먹을 기세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란의 눈을 한치도 피하지않고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 얘기를 하자더니, 눈싸움이라도 하자는건가? "
" 너는 대체 어디에서 왔지? "
' ! '
란의 첫 질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매서웠다. 역시나 나의 정체부터 파헤쳐볼 생각인건가?
" 전에도 말했지만, 여기서 꽤 먼 곳에서 왔다고 말했는데. "
" 그곳이 어디지? "
" 그게 왜 궁금하지? "
" 말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
" 그렇긴 그렇지만, 왜 갑자기 그게 궁금해진거지? 무슨 계기라도 있던건가? "
" …. "
" 역시 뭔가 있는 모양이군. 뭐지? 뭣 때문에 갑자기 남의 신상정보에 대해 그토록 궁금해하는지 알고 싶군. "
" 너, 마우린과 무슨 사이냐? "
" 뭐? "
" 마우린과 무슨 사이길래. 네가 이런 걸 갖고 있냔 말이다! "
" 그게 무슨 말. "
' ! '
란이 내게 보여준건 다름 아닌 내가 그 전까지 지니고 있던 메달이였다. 그는 이 메달을 내게 보여주며 도대체 너의 정체가 뭐냐며 나의 대해 물음과 동시에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들고 있던 메달이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고 나 역시 그의 손에 붙잡혀 바닥에 파묻히기 일보 직전이다.
" 말해라. 넌, 도대체 누구냐? "
" 이 손 못 놔? "
" 당장 말해, 넌 도대체 누구냔 말이다!! "
그의 손이 조금씩 부들거리며 나의 어깨를 짖누른다. 어떻게해서든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 루에르다. "
" 뭐? "
" 미래에서 너희들을 구원하러 온 루에르다. "
" 미래? 구원? 그걸 지금 나한테 믿으라는거냐!! "
" 믿지 않아도 상관 없다. 나조차도 믿겨지지않을 정도니. 하지만, 너가 나의 말은 믿냐 안 믿냐에 따라 후에 생길 일들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마라. 나는 단지 너희들에게 그 끔찍한 비극을 막는 도움을 줄 뿐이니 말이다. "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그에게 말했지만, 역시나 그는 믿지 못하는 눈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거지. 이 상황을 믿을 수 있다는건 말이 안되니까. 하지만, 내가 한 말은 진실이다.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곳에 보내진 이유도 그 일을 막기 위해서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다만, 왜 그때가 아닌 그 이전에 세계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믿기 어렵나보지? 하지만, 내가 한 말은 사실이다. 언제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빠른 시일 내에 일어날거라 생각된다. 다만, 너가 나에게 도움을 준다면 그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 "
마음을 차분히하고 한쪽에서 나를 쳐다보는 란에게 천천히 이 말을 전했지만, 그는 역시 믿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말해도 믿지 못한다면 나 혼자서라도 움직일 수 밖에 없지만, 메달의 나머지 조각을 찾기 위해서는 이 남자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저 메달을 보고 놀란 것을 보면 분명히 메달에 대해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기때문에 더더욱 이 남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 … 좋다. "
" 도와주는건가? "
" 네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우리 마을사람들이 위험해 처하는 일이라면 두고 볼 수는 없으니 말이야. 따라와라, 너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 "
“ 널 100% 신용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네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나는 조금은 널 믿어볼 생각이다. 그 증거로는 이 메달이 대신하겠지. 지금부터 나는 너에게 도움을 주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너 또한 내게 약속해라. 무슨 일이 있어도 그 파멸을 막겠다는 것. 만약, 네가 약속을 어길 때는 너는 내 손으로 죽여버리겠다. 약속하겠나? ”
그 약속의 댓가가 이거란 말인가 …. 왜 이런 곳에 란이 오라고 한 점에 대해선 조금 미심쩍지만, 그래도 나머지 조각을 찾는 일에 연관이 된거라니까 어쩔 수 없지만. 벌써 저녁식사 시간은 시작되었고, 내 배에선 꼬르륵소리가 요동치며 나의 허기짐을 달래달라는 식으로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지금 밥 따윌 먹을 때가 아니다. 란이 내게 도움을 준다는걸 약속한 이상, 하루 빨리 나머지 조각을 찾아야한다.
“ 그 신사 안에 모셔진건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신의 가호다. 그것이 있기에 우리 마을은 지금까지 아무 재해와 피해 없이 순조로히 지낼 수 있던게지.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메달은 반으로 두동강 나 마을 밖으로 버려져 있었고, 그 일로 인해 우리 마을엔 조금씩 재앙이 찾아오고 있었다. 해마다 풍년이던 마을 밭은 비가 내리지않아 곡식이 말라 비틀어졌다던가, 별 탈 없이 쑥쑥 자라던 마을아이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는가. 그런 불길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 나머지 조각의 행방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한 끝에 이 사건은 마우린과 연류되있다고 파악했다. 아마, 그 나머지 조각 역시 마우린들이 가지고 있는게 분명하지. ”
“ 그래서 나를 부른거였나? 그 메달의 출처를 알기 위해 말이야. ”
“ 그렇다. 우연히 너의 옷에서 이 메달을 발견하고나서 네 녀석이 마우린과 한 통속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사 안에 놓여진 조각을 보곤 너의 말은 조금은 더 믿기로 한거다. ”
“ 그래서 나를 여기로 데려온거군. ”
“ 여기에 와본건가? ”
“ 아침에 우연히 산책을 하다 발견했다. 나 또한 이곳에 메달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지만. ”
“ 그런가 …. ”
“ 그래서 내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란게 뭐야? 그걸 말하려고 여기까지 온거 아닌가? ”
“ 물론,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게 있다. 이것은 우리 마을 뿐만 아니라, 너한테도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
“ 그래서. 부탁할 일이란게 뭐지? ”
“ 네가 우리 마을을 대신해 마우리스 산에 올라가 나머지 조각을 찾아와줬으면 싶다. ”
“ 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야? 그 녀석은 내가 아는 녀석들보다 더욱 잔인하고 자비를 모르는 놈들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그런 곳에 갈 것 같아? ”
“ 그래서 너에게 부탁하는거다. ”
“ 뭐? ”
“ 네가 그 녀석을 대해 두려움을 갖는건 이상한게 아니다. 나 역시 그들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조각을 빼앗아오지않으면 안돼. 그렇기때문에 너에게 부탁하는거다. ”
“ 그럼 당신이 가면 되잖아? 왜 하필 내가. ”
“ 안타깝게도 내가 이 마을에 없으면 안돼. 그들은 이상하게도 눈치가 빨라, 내가 마을에서 사라진걸 알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을로 들이 닥쳐올거다. 그렇다면 아무 죄 없는 마을사람들이 다치게 되. 그렇기때문에 내가 갈 수 없다는거야. 갈 수만 있다면 예전에 나는 조각을 빼앗아 왔을거야. "
“ 그래서 네 대신해서 내가 가라는 말인가? 하하, 이거 좀 어이가 없으려하네. 그건 핑계 아니야? 정말로 그 조각이 필요하다면 당신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을 시켜서 그 조각을 탈환할 수 있는건 아닌가? 아무리 그들이 사악하고 무차별적이라지만 조각 정도는 빼앗아 올 수 있는건 아닌가? 그 말은 꼭 당신이 아니면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다고 확정 짓는 듯한 말투로 들리는데 나는? ”
“ 그렇기때문에 무엇보다 자네의 힘이 필요한걸세. ”
“ 뭐? ”
“ 우리 마을 신사에 놓여진 조각과 마우리스 산에 있는 조각. 즉, 그들의 원본체인 ' 쿠피디타스 ' 는 누군가의 염원이 담기지 않으면 절대로 손에 넣을 수 없는 물체이네. 자네에 말대로 몇번씩이나 마을사람들 속에 몇몇 정예인원을 뽑아서 마우리스 산으로 올려보내지만, 돌아오는건 그들에 처참하게 찢겨져 제대로 숨쉬기고 버거운 상태의 빈사였네. 그 누구도 그 조각을 찾아오지 못했어. 그래도 그들 사이에서 운 좋게 살아온 마을사람에게 물었더니, 나머지 조각은 찾았으나 손에 넣을 순 없다는 말이였네. 난, 이해하지 못했어. 왜 그 조각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조각을 갖고오지 못했는가에 대해서 말이야. 그래서 나는 그 이후에 딱 한번 몰래 그 산에 가기로 마음 먹었지. 한마디로 모 아니면 도인 상황에서 나는 무모한 짓을 저지른거였어. 하지만, 내가 아니면 이 마을은 끝이라는 생각 때문에 간신히 참아가며 산을 올랐지. 그리고 끝내 그 조각을 발견했네. 그 조각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고, 그 주위에는 마우린은 커녕, 아무도 없는 고요한 산 속이였네. 나는 그들이 없는 틈을 타 메달에 손을 뻗었지만, 사람들 말처럼 나는 메달을 손에 넣지 못했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사실이였던거야. 몇번이고 몇번이고 그 메달을 잡으려해도 마치 메달이 나를 뿌리치는 듯이 내 손에서 멀어졌지. 끝끝내 메달은 손에 넣지 못하고 마을로 돌아왔지. 그런데 일이 벌어진거야. 내가 마을에 없다는걸 마우린이 눈치를 챈 모양인지 그들이 마을을 습격해온거지. 하지만, 이미 나는 그때 마을에 돌아와있었고. 다행히 급한 불을 끌 수 있었지. 그들은 사시사철 나를 감시하고 있는거야. 이 마을을 자기들의 손에 넣기 위해. ”
“ 잠깐. 그렇다는 말은 …. 요전번에 마우린이 마을을 습격 했던 그 날, 당신은 조각을 찾기 위해 마우리스 산을 올랐다는 말인가? ”
“ 그래, 우리가 저녁을 먹고 있던 날, 그들이 습격한건 맞아. 하지만, 그땐 이미 내가 마을에 있어서 그들은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고 다시 산으로 돌아간거지. ”
“ 그럼, 조각을 빼앗긴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라는 말이군. ”
“ 그래, 조각을 빼앗긴건 1년 전이고 마우린들이 조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수한건 그리 오래되지않았으니까. 자네라면 충분히 그 조각을 가지고 올 수 있을거야. 그러니 부디 꼭 조각을 가져와주게. ”
수많은 대화 끝에 내가 이곳에 있는 것도 다 란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곳은 왠지 범상치않은 기운이 흐르고 있다. 왜 뭐 때문에 란이 나를 이곳으로 보냈는지는 몰라도, 분명 무슨 뜻이 있기에 나를 이곳으로 오라고 했겠지. 그래도 저녁식사 정도는 하고 보낼 수는 있었잖아. 하필, 밥 먹을 시간에 이런 곳에 나 홀로 보내다니 …. 아무튼, 이 사당은 왠지 모르게 음침한 기운이 있어서 그런지 왠지 안으로 들어가기 꺼려진다. 하지만, 이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조각을 찾을 수 없다는 란의 말이 있었으니 조금은 용기를 내서 안으로 들어가보는게 좋겠다.
「 끼익 」
조심스럽게 사당의 문을 여니 그 안에서 뿌연 먼지 같은게 밖으로 새어나온다. 오랜시간동안 이 사당 안에 발을 디딘 사람들이 없는 모양인지, 심히 낡아빠진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문이 닫히고 컴컴해진 사당 안을 가져온 촛불로 불을 키니 조금은 주변이 보일 정도는 된다. 그치만, 도대체 이곳에서 무엇을 찾으라는 말인지 ….
“ 우리 마을엔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당이 하나 있다. 그 사당 안에는 우리의 선조 님들께서 작성하신 문서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문서 안에는 쿠피디타스에 대한 내용도 적혀 있을거다. 그러니, 너는 그 문서를 찾아 쿠피디타스의 정보를 알아내면 된다. ”
“ 그거 하나면 되는거야? 그런데 왜 조각을 직접 찾지 않고 그 문서를 찾으려고 하는거지? ”
“ 마우린이 그 조각을 가져갔다는건 분명 무슨 일을 저지르려는 것,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어떤 일로 인해 조각을 잃어버린 것 같다. 아마도 최근에 발생한 일이겠지. 그러니 그 틈을 노려 우리들은 그들보다 조각을 빨리 찾아내야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어느 정도 쿠피디타스의 정보 정도는 알아야겠지. 그 무엇 때문에 그들이 쿠피디타스를 가져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야. ”
그 궁금증으로 사당까지 겨우 찾아 왔긴 왔는데. 이 넓은 사당을 언제 뒤져 찾으란 말이야? 그것도 한밤 중에 말이야. 쳇, 누구는 밥도 굶어가며 찾고 있는데 누구는 밥을 먹어가며 천천히 나를 기다리다니 … 왠지 내가 속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 '
불투명한 불빛 속에서 천천히 주변을 살피던 그때 눈 앞에 커다란 제단 같은 걸 발견했다. 오랜기간 방치된 모양인지 그 주변에는 거미줄로 보이는 하얀 먼지들이 제단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제단 아래로 놓여진 음식물들은 이 제단에 사람의 발길이 오래 전에 끊겼다는걸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썩어문들어진 음식물들 위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악취를 풍긴다. 순간적으로 코를 막은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 주위를 촛불로 밝히며 서둘러 문서를 찾았다.
" 저. 저건가? "
불빛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누런 봉투 같은게 제단 옆에 떨어져있다. 나는 황급히 그 종이를 주워 들곤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왔다.
「 끼이이익 」
오래되 낡아빠진 문을 가까스로 열고 나온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짧은 시간이였지만, 냄새를 맡는다는게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이야 ….
「 바스락 」
잠시 숨을 고른 나는 들고 나온 봉투 안에 든 종이를 꺼냈다. 오래 전에 작성된걸로 보이는 종이 안에는 내가 알아 볼 수 없는 필기체로 쓰여져 있었다. 한자인가? 하지만, 한자로 보기에는 너무 …. 일단은 이 종이를 란에게 가져가야겠다. 이 종이가 맞는지 안 맞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당 안에 발견된거라곤 낡은 제단과 이 봉투 밖에 없었으니. 아무튼, 빨리 돌아가자.
" 에? 란이 없다고요? "
" 네, 한시간 전에 어딘가 가신다고 하시고 아직까지 안 오셨는데. "
건물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란은 어디론가 가버린 후였다. 리키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곤 무슨 일 있냐며 내게 물었고, 나는 별거 아니라며 밖으로 나갔다.
" 루에르 씨! "
한시간 전이라면 내가 사당을 찾아간 시간이랑 일치한다. 그렇다는 말은 란은 내가 없는 사이를 틈 타 어디론가 급히 갔다는 말인데 …. 설마, 자기 혼자 마우리스 산으로 간건가? 나한테는 사당 안에서 이 누런 종이를 찾으라고만 하고 자기는 조각을 찾으러 갔다니. 하지만, 마을에 란이 없으면 그걸 눈치챈 마우린들이 마을에 쳐들어온다고 ….
" 루에르 씨! "
내 뒤를 따라 나온 리키는 숨을 헐떡이며 내 뒤에서 멈춰섰고, 나는 리키를 돌아보며 그를 쳐다봤다.
" 지금 이곳에서 이러면 안돼요. 지금 마을에 큰일이 벌어졌다고요. "
큰일이라면, 설마 ….
" 마우린들이 쳐들어왔어요. 그들은 지금 서쪽에 위치한 신사 쪽으로 향하고 있단 말이에요! "
! 크, 큰일이다. 그 신사 안에는 메달의 일부분이 놓여져있는데 …. 젠장, 이미 그들은 눈치챈건가?!
" 빨리 그곳에 가지 않으면 우리 마을이, 세상이 위험해요!! "
" 젠장 …. 리키, 서둘러요! "
미처 그들이 메달을 노린다는 사실을 망각한 나는 서둘러 리키와 함께 신사를 향해 달려갔다. 지금쯤이면 그들이 도착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가져가기 전에. 아니, 그들이 집기 전에 달려가 그들의 손에서 메달을 빼앗아야한다. 그 메달 마저 뺏긴다면 더 이상 어찌할 줄을 모르겠으니까. 무조건, 그들에게서 메달을 빼앗는다!
" 앗, 저기. "
급히 앞을 향해 달리던 리키가 손가락으로 신사 쪽을 가리키며 놀란다. 우리가 그 사실을 입수하고 여기까지 달려오는 동안, 이미 그들은 신사 주변에 진을 친 듯, 수 많은 사람들이 신사 주위를 서성거린다. 아직, 메달을 손에 못 넣은 모양인지 그들의 분주한 움직임에 우리 역시 그들의 눈을 피해 신사 뒷쪽 언덕으로 방향을 바꿨다. 아직, 이들은 언덕까지는 오르지 못한 듯, 휑한 모습의 언덕 위를 천천히 기어 오르며 그들의 모습을 살폈다. 그들은 아직 신사 안에 메달이 있다는 사실까진 모르는 것 같았다. 이때가 기회다. 저들이 신사 안에 메달이 있다는걸 알기 전에 우리들이 먼저 메달을 빼돌려야한다. 하지만, 이미 그 주위에는 1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눈에 불을 키며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고 있었다. 섣불리 움직이다간 도리어 우리들이 저들의 손에 잡힐지도 모르니 침착하게 행동하자.
" 이제 어떡하죠? 사람 수가 너무 많은데 …. "
" 무슨 수가 있을겁니다. 다행히 아직 저들은 신사 쪽에 메달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요. 그러니 기회라면 우리한테 있습니다. 저들이 눈치채기 전에 서둘러 메달을 찾도록 하죠. "
몸을 떨며 긴장을 하는 리키를 애써 달래며 조용히 그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분명, 저들은 신사 쪽에 메달의 나머지 조각이 있다는걸 알기 때문에 사람들이 있는 마을 쪽이 아닌 신사로 온게 그 때문이겠지. 아무튼, 이렇게 가다간 결국엔 메달을 저들에게 뺏길게 분명,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해야 저들의 눈을 피해 메달을 빼돌릴 수 있을까. 아무리 몸을 날쌔게 움직여도 20여개의 눈을 피하기란 불가능한데 ….
" 저기, 루에르 씨. "
" 왜 그래요? "
잠자코 내 뒤를 따르던 리키가 뭔가 비장한 얼굴을 하며 나를 불렀다.
" 제가 할게요. "
" 네? 하다뇨, 무엇을. "
순간,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쳐다봤고, 그 말 뜻을 알게 되었다.
" 제가 미끼가 될테니, 루에르 씨는 저들이 한눈을 판 사이에 신사 안에 든 조각을 들고 달아나세요. "
" 리키는 어떡하려고요? "
" 어떻게든 되겠죠. 뭐. "
리키의 웃음을 보며 당황한 나는 슬쩍 언덕 아래를 쳐다봤다. 리키의 말대로 이렇게 가다간 분명 저들은 메달을 찾을게 분명하다. 누군가 저들의 눈을 돌릴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방법은 너무나 위험하다. 메달을 찾는건 둘째 치고, 만약에 저들의 손에 잡히면 무슨 꼴을 당할지 ….
" 루에르 씨? "
" 아뇨, 제가 미끼가 될게요. 리키는 제가 저들의 시선을 끄는 동안 조각을 갖고 안전한 곳으로 피하세요. 저들이 마을을 습격했다는건 곧 그 사실을 안 란이 올겁니다. 그때까지 리키는 누구한테도 그 조각을 뺏기지않고 무사히 란에게 건네주세요. "
리키에게 당부의 말을 남긴 나는 몸을 돌려 언덕 아래로 뛰어 내렸다.
" 루에르 씨!! "
「 쿵 」
신사 안을 가득 메운 마우린이 언덕 위에서 내려온 나를 발견하곤 일제히 내 쪽으로 창을 겨누며 내 쪽으로 접근한다. 나는 언덕 위 리키를 슬쩍 바라보곤 씨익 웃음을 짓곤 그대로 마우린들 사이를 비집고는 그대로 달려갔다. 도망가는 나를 보던 마우린들은 그대로 내 뒤를 쫓으며 나를 따라왔고, 몇몇의 마우린은 신사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메달찾기에 매진한다. 뜻 밖의 상황에 놀란 나는 황급히 리키를 바라봤고, 리키 역시 예상 외의 전개에 놀란 듯 멍하니 그 자세 그대로 멈춰있었다. 이렇게 가다간 내가 도망간 것은 물거품이 되는데 ….
" 흐억! "
미처 앞을 보지 못한 나는 벽에 부딪혀 쓰러졌고, 내 뒤를 쫓아오던 마우린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마우린들은 하나 둘 나의 목에 창을 겨누며 나를 자리에서 일으켰고. 그들의 눈을 쳐다보며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할지 생각하던 내 뒤에 누군가가 우뚝 선다.
" 뭐. 뭐야?! "
내 뒤에 서있던 누군가가 나를 옆으로 밀치곤 앞에 있던 마우린들을 한 손에 들어 올리며 그들을 땅바닥으로 내팽개치기 시작한다. 창으로 위협하던 몇명의 마우린들은 움츠러든 동작으로 창을 휘둘러보지만 그대로 창은 손에 잡혀 두동강이 난다. 제대로 힘을 못 쓰던 마우린들은 급히 어디론가 달려갔고, 내 앞에 서있던 남자가 숨을 거칠게 쉬며 내 쪽을 돌아본다.
" 괜찮은건가? 내가 너무 늦은 것 같군. "
" 란? "
"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자네가 도망갈 정도면 꽤나 큰 소동이라는 말인데. 어떻게 된건가? 내가 없는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 "
란은 이 상황에 당황한 듯 내게 물었고, 나는 그런 란을 보며 서둘러 신사로 향해야한다며 마우린이 메달을 노리고 있다는 말을 하며 그를 이끌고 황급히 신사로 달려갔다.
뒤늦게 란과 합류해 신사로 돌아온 내 앞에는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있는 리키를 발견하고 만다. 리키는 무언가를 강렬하게 빼앗으려했는지 그의 손은 온통 피범벅이였다. 나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리키에게 달려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거냐고 묻자, 리키는 부르르 떨리는 입술로 메달을 마우린에게 빼앗겼다했다. 내가 없어진 직후, 신사 안에서 메달을 발견한 마우린들에게 메달을 빼앗으려다 뒤에 달려온 마우린에게 공격을 당했다고 말했다. 리키는 희미해져가는 숨소리를 내며 쓰러졌고, 나는 서둘러 리키를 데리고 건물로 돌아갔다.
" 리키, 정신 차려. 곧, 의사가 올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
이미 반쯤 의식이 끊긴 리키를 보며 나는 말했다.
" 의사는 아마 좀 있으면 올걸세.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않아도 되네. "
" 그것보다. 이제 어떻게 할거지? 마지막 조각까지 빼앗긴 지금 시점에서 어쩔 셈이야? 왜 당신은 그 시간에 마우리스 산에 갔던거야? 당신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잖아! "
" … 미안하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네. 우연히 그들이 신사에 조각이 있다는걸 알아채서 나 또한 몹시 급했다네. 그런데 그 성급함이 이런 일을 낳게 될 줄은 …. "
" 젠장 …. "
리키를 이불 위에 눕히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어딜 가려고 그러는건가? "
" 그 놈들 만나러. "
" 무슨 말인가? 그곳에 가면 안되네. 그곳은 금단의 영역이란 말일세. 그곳에 함부로 가면. "
" 닥쳐! 더 이상 내 일에 참견하지마. 어떤 이유에서 당신과 동맹을 맺었고, 우리의 결말은 서로가 행복하게 끝나야 해. 그런데 지금 이게 뭐야? 당신은 당신의 필요로 나를 이용한거였나? 나는 당신의 말대로 이 문서를 찾아서 왔는데. 당신은 그 시간에 조각을 찾는답시고 마을을 비워? 그게 얼마나 이 마을의 위험이 따르는지 몰라서 한 일이야? 당신도 알았잖아! 당신이 내게 직접 말한거였잖아! 나는 그 조건을 다 받아들였어. 어찌됬던 나도 이 마을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게 싫은 뿐더러, 그 일이 발생하고 몇년 후에 또 다시 그 일이 발생하고 매번 반복되는 그 비극을 막기 위해 이곳에 와서 당신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당신 역시 내 말의 동의하고 나와의 정보 교환을 하겠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이게 뭐야. 결국엔 나만 호구가 된거잖아!! "
주머니에 꼬깃하게 들어있던 종이를 바닥으로 내팽개치며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지금 내 머리엔 마우린에 대한 분노와 증오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그저, 리키는 이 세계에서 로빈을 대신하는 존재였고, 나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북돋아주는 유일한 친구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리키를 생각해서 내가 미끼가 된다고 했는데 그 결과는 다를게 없다. 내 생각과 달리 도움을 받은건 나였고, 내가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 리키는 내가 당해야만 하는 상황을 내 대신 당했다. 그다지 란에게 화가 난게 아니였다. 조금은 란과 관련되긴 했지만, 제일 내게 화를 끼친 인물은 다름 아닌 나였다. 이 세상을 구한다고 말을 꺼낸 사람은 나였는데, 지금 나는 대체 뭘 하는거지? 메달을 찾기는 커녕, 오히려 남은 조각까지 그들에게 빼앗겼다. 메달이 그 신사 안에 있다는걸 알면서도 나는 왜 그 메달을 지키질 않았지? 그 조각을 뺏기면 끝이라는걸 알면서도 나는 대체 뭘 한걸까? 더군다나 나머지 조각을 찾기 위해 힘을 쓰지도 않았어. 그저, 란의 도움으로만 조각을 찾으려고 했지. 분명한건, 난 지금 너무나도 화가 나 정신이 나갈 것 같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 …. '
모르겠다. 전혀 감을 못 잡겠어 …. 누가 … 날 좀 … 도와줘 ….
후우, 아니지 아니야. 이렇게 좌절할 틈이 없어. 지금 이 시간에도 그들은 메달을 가지고 마우리스 산에 올라 갔을거야. 내가 이렇게 나 자신을 비난하고 욕해도 달라질건 없단거지. 지금 가장 중요한건 누군가를 욕하는게 아닌, 메달을 회수하는 것. 그게 지금 나를 포함한 마우 마을사람들 그리고 이 세상에서도 제일 중요시 여기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멈춰서 이러면 안돼.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메달을 돌려 받아야한다. 물론, 그들이 순순히 내게 줄 리는 없을테지만, 만약에 그들이 내게 메달을 넘기지 않는다면 나도 역시 그들과 맞대응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않으면 그들 역시 언젠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테니 말이다.
두 손으로 내 두 뺨을 두들긴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마우리스 산으로 뛰어 올라갔다. 1분 1초가 시급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건 이 일 밖에 없다.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의지를 하는건 잘못된 행동이였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보단, 나 자신이 스스로 헤쳐 나가야한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달은 때는 너무 늦고 말았다. 이미 한 친구는 병상에 누워 끙끙 앓고 있고, 란마저 근심 가득한 얼굴로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지금 움직일 수 있는건 나 혼자 뿐, 그러니 나는 그들을 등에 지고 그들을 대신해 가는거다. 그러니 흔들리지 말자. 나까지 흔들리면 나는 이곳에 온 목적도 이유도 잃게 되니 말이다.
마우리스 산은 내가 알던 것과는 달리 산길이 고르지 못하고 사람이 자주 다니지 않을 것만 같은, 한마디로 말하면 비포장 도로 같은 느낌이였다. 물론, 여기는 내가 알던 세계의 과거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혹시나 발에 무리가 갈까 조심스럽게 걸어보지만 역시나 산을 오르기는 그리 쉽지만은 않다. 산길도 그렇고 과거의 마우리스 산 주변은 힘 없이 늘어진 나뭇가지처럼 왠지 음침한 기분이 느껴진다.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달조차도 제대로 보이지않을 만큼, 나무들은 곳곳에 분포 되어 내 앞길을 막았다. 제대로 걸을 수 없을 만큼 험난한 산길과 그들의 길막 아니, 그들의 벽이 나를 조금씩 힘들게 만든다.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나의 다리도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산기슭을 오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역시나 산길의 중요함을 깨닫는건 조금 시간이 걸린 것 같다. 하지만, 멈춰서는 안된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설령, 내 다리가 잘리고 내 팔이 뜯어지고 머리가 반으로 쪼개진다한들, 절대로 이 걸음을 멈춰서는 안된다. 내 한 몸 바쳐서라도 꼭 이 세상을 암흑으로 내팽개치지는 않을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이다.
라고는 말했지만, 역시나 힘든건 똑같다. 위안을 삼아 몇마디 내 자신에게 건넸지만, 그것 또한 힘이 든다. 잠깐 멈춰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래서는 절대 안된다. 정말로 내가 쉬고 싶다면 나는 그 메달을 갖고 와서 맘껏 쉬겠다. 그 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조각만은 꼭 내 손 안에 넣고 말거다.
「 부스럭 」
힘껏 산을 오르던 내 주변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한 인기척이 들리며 모습을 감춘다. 산을 오르던 나는 원인 모를 인기척에 발걸음을 멈춰서곤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혹시라도 내 뒤를 밟는 사람이라도 있는건지 왠지 모를 두근거림이 가시질 않는다. 나는 조심스럽게 가던 길을 걸으며 혹시나 내 뒤에 누군가가 따라오는지 보기 위해 한번씩 뒤를 돌아보며 걷고 있었다. 누군가가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인기척을 뒤로 하고 또 다시 나는 산을 올랐다. 무슨 산이 이렇게 높은지는 모르지만, 그렇다는 얘기는 마우린들도 자기들을 누군가가 쫓는걸 아는게 어렵다는 말이 되니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달빛에 의존하며 채 몇 줄기 보이지않는 빛을 기대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나 이곳에 떨어진 메달의 조각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그 조각을 찾지 못했다면 이 산 어딘가에 메달의 나머지 조각이 있을게 분명하니 두 눈 똑바로 뜨고 다녀야겠다.
「 부스럭 」
또 다시 들려온 인기척에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역시 그곳엔 쓸쓸한 바람만이 불어올 뿐, 아무도 없었다. 가뜩이나 예민해진 터라 기분 탓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역시나 기분 탓이 아니다. 누군가가 내 뒤를 쫓는게 분명하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누군가 나를 노리고 내 뒤를 살금살금 쫓아오는게 분명하다. 한가지 집히는게 있다면 내 뒤를 밟는 사람이 마우린이라는 것이라는거다. 나를 노리고 내 숨통을 끊기 위해 내게 접근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쉽게 바로 날 죽이지도 않고 힘들게 내 뒤를 조심스럽게 쫓아오는걸까? 이곳은 마우 마을도 아닌, 자신들의 은거지인데 말이다. 자신들의 은거지에서 누군가가 죽는다고해도 달려오는건 마우린 뿐일텐데 말이다.
신경 쓰이는 와중에도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이것 저것 신경 쓸 동안에도 조각은 그들의 손에 서서히 다가가고 있겠지. 그러니 나도 한눈 팔지 말고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 가야 된다. 만약, 내 기억과 미래의 모습이 같다면, 분명 마키 족이 있던 곳에 마우린의 본거지가 나타나겠지. 그때 마키 족들이 내게 한 말이 맞다면 말이다.
“ 이곳은 오랜 옛날부터 우리 선조께서 지냈던 성지다. 우리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곳에서 생활했지. 그 때문이서 모르겠지만, 왠지 이 산에서 벗어나는게 조금 두렵지만 말이야. ”
“ 그럼, 너희들은 이 산에서 한번도 내려오지 않았다는건가? ”
“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너희들이 보는 것처럼 이 성지 주변에는 갖가지 유물과 유적들이 남아 있다고. 이것들을 누군가에게 도둑 맞지 않기 위해서는 이곳에 머무는게 제일 좋겠지. 물론, 이곳에 발을 딛기 전에 모두 죽었지만 말이야. ”
잠시 노로이와 했던 대화를 생각했다. 만약, 정말로 마우린이 후세에 마키 족으로 변질됬다면 그들이 머물었던 곳은 분명 마키 족이 머무는 곳. 즉, 전사들의 성지겠지. 그러니 분명 그곳에 그들이 있을거다. 그곳에 가면 메달을 찾을 수 있을거다. 그러니 이대로 멈추지않고 계속해서 걷는거다.
「 휘익 - ! 」
그때 어디선가 휘파람소리가 들리며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묵묵히 앞을 향해 걷던 나는 발걸음을 멈추며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고, 그런 내 앞에 누군가가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 내게로 다가오는 누군가를 쳐다보며 그와의 시선을 맞췄고, 그 사람 또한 나의 눈을 쳐다보며 천천히 내 코 앞까지 다가온다. 그 사람은 매서운 눈매로 나를 쳐다보곤 이내 허리춤에 매단 단도를 꺼내 내 목을 겨누며 내게 묻는다.
" 넌, 누구지? 누군데 이런 곳에 함부로 발을 딛는거냐. "
난 그런 그 사람의 행동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그대로 그의 손을 쳐내 단도를 빼앗아들곤 그대로 그에게 겨눴다. 그는 잠깐 당황한 듯, 웃으며 다른 쪽에 메달려있던 단도를 집어 들며 나를 쳐다본다. 잠시 대치상황에 놓여진 나는 조심히 그를 바라보며 살짝 뒤로 물러났고, 그 남자는 그때를 노려 내게로 달려든다.
" 이런! "
다급한 나의 단도가 그의 단도에 맞닿아 간신히 공격을 피했지만, 그는 공격을 멈추지않고 나와 맞댄 단도의 방향을 살짝 바꿔 그대로 나의 단도를 팅겨낸다. 그리고 단도가 팅겨나간걸 채 보기도 전에 그 남자는 그대로 단도를 나를 향해 뻗는다.
" 크억! "
살이 꿰뚫린 듯한 통증이 느껴지며 나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울 만큼 찾아든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에 쓰러진 나는 인상을 구기며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는 나를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며 그 자리에 서있었고, 땅바닥에 떨어진 단도를 집어 들곤 슬쩍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 마우린은 아닌 것 같군. 마우린이였다면 누워있는건 도리어 나일테지만 말이야. "
그는 허리춤에 단도를 매달며 슬그머니 내 쪽으로 다가온다.
" 마우 마을에서 온건가? 본 적 없는 얼굴이군. 혹시, 다른 곳에서 온건가? "
그는 내게 꼬치꼬치 캐물었고, 나는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며 ' 씨 …. ' 발하고 욕하려다가 말았다.
" 걱정은 하지마. 손잡이부분으로 때렸으니까. 곧 있으면 괜찮아질거야. "
그는 씨익 웃으며 나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한다. 그 모습에 살짝 이성이 끊긴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 이런 우라질!! "
" 오, 이제 괜찮아진건가? 회복력 빠른걸? "
" 갑자기 나타나선 이게 뭔 개짓이야? 하마터면 뒤질 뻔 했잖아!! "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나는 그 남자에게 소리쳤고, 그 남자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 워워, 그렇게 화내지 마, 나도 몰랐다고. 산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앞에 걷고 있길래 마우린이 아닐까해서 공격한 것뿐이니까. 휴우, 마우린이 아니리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
" 아니, 이런 씨! "
꽤나 사람의 성질을 긁는데에 소질이 있는 녀석이다.
" 그것보다, 너는 왜 이런 곳에 있던거야? 단도를 휘두르는 솜씨를 보아하니 그리 검을 잘 다루는 것 같진 않던데. 산책하러 온거야? 하필 왜 이런 위험한 곳에서 산책을 …. "
" 산책 좋아하시네! 누가 미쳤다고 이런 위험한 곳에 산책을 하러 와!! "
" 하하, 그건 그렇지. 그렇다면 왜 이곳에 온거야? 아무 장비도 갖추지않고 맨몸으로 술렁 술렁 올라가던 폼이 꼭 옆집 아저씨가 하루에 한번씩 산 정상에 올라가 약숫물 떠오는 모습이였는데. "
대화를 하면 할수록 화가 나게 하는 놈이다.
" 그럼 너는, 너는 왜 이런 곳에 있던거야! "
" 나? 나는 당연히 … 음, 왜 온거지. "
아니, 저런 씨앗과 물의 혼합으로 만들어진 꽃 같은 놈이.
" 아, 기억 났다. 나 사실 뭔가를 찾으러 왔어. "
" 뭔가? 뭔가가 뭔데? "
" 글쎄, 그것도 잘 기억이 … 아, 그래. 그거다. 음, 그러니까. "
아, 계속 이 녀석과 대화하니까 나 또한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 아, 그래. 조각을 찾으러 왔어. 신사 안에 고이 모셔져있던 조각을 말이야. "
" 뭐? "
" 그게, 원래는 그곳에 있어야하는데 마우린들이 그걸 또 한번 가져갔거든. 아, 그리고보니까 왜 또 가져갔냐고? 그게 그 조각은 원래 다른 한 조각이랑 붙어 있던 하나의 물건이였거든? 근데 어느 날, 마우린들이 와서 그 물건을 반으로 조각내서 한 조각을 가져갔지 뭐야. 사실, 그 물건이 뭐였냐면. "
" 잠깐, 기다려 "
" 응? 왜 갑자기? "
혹시, 이 남자도 마우 마을에 살던 사람인가? 메달의 존재도 아는걸 보면 분명 그렇겠지. 하지만, 왜 이 남자가 직접 이 산에 올라 메달을 가져가려는거지? 짧은 시간이였긴해도 마을사람 대부분의 얼굴을 아는 나는 오늘 이 남자와 처음 만나는데 말이야. 내가 살던 건물 안에도 이런 남자는 없었다. 심지어 메달이 빼앗겼다는 사실은 나를 포함한 란과 리키 밖에 모르는 사실인데 어떻게 이 남자가.
" 어이, 왜 그래? 갑자기 남의 말을 멈추게 하곤. "
" 한가지만 묻자. "
" 뭐? 어, 그래. 뭔데 그래? "
" 혹시, 마우 마을 말고도 또 다른 마을이 있는거냐? 마우 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도 어딘가에 있냔 말이야. "
" 당연한거 아니야? 세상은 넓다고, 이 넓은 세상에 마을 하나 밖에 없다는게 말이 되? "
역시나, 그런거였나. 이 세계는 마우 마을 뿐만 아닌 다른 마을도 함께 공존했다는 말인가. 그럼 마우 마을과 함께 다른 마을 역시 메달의 힘으로 살아간거겠군. 그러니 메달이 도둑 맞았다는 사실을 듣곤 이 녀석이 이 산까지 오른거고.
' ! '
그렇다는 말은 이 녀석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이 마우리스 산에 왔다는 말인가?
" 어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아직, 그곳이 낫지 않은거야? "
그렇다면 내가 오르지않아도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 내 대신 메달을 빼앗아올테니, 내가 괜히 힘들여가며 이 산을 오를 필요도 없겠지.
' . '
아니야. 그런 생각하지말자. 방금 전에 말했잖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나 혼자서 해내겠다고. 내가 여기에 온 이유도 그것 뿐이잖아. 세상이 멸망하기 이전의 세상에 가서 그 비극을 막아달라고 이곳에 온거잖아. 그러니까, 이 비극은 내 손으로 막아야 해. 그 누구의 손이 아닌 내 손으로 직접 말이야. 그러니 이곳에서 한가로이 이렇게 있을 시간이 없어. 다른 사람들이 먼저 메달을 찾기 전에 내가 먼저 가서 메달을 손에 넣어야한다.
" 어, 이제 괜찮은거냐? "
" … 가야한다. "
" 뭐? "
" 내가 직접 찾는다. "
나는 다시 다리의 힘을 주고 땅바닥을 힘껏 도약하고 달려갔다.
" 어, 야 잠깐만!! "
그 누구의 도움은 필요 없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다. 단지, 메달 하나만 가져오면 된다. 다만, 그렇게 하기가 조금 힘들 뿐이지만. 하지만, 할 수 있다. 내게 남겨진 사명을 이루기 위해!
그 누군가가 오기 전에 내가 먼저 메달을 발견해야한다. 설령, 누군가가 먼저 그들이 있는 곳에 당도했다하여도 그들보다 내가 먼저 마우린들에게 조각을 뺏을거다. 그것이 나의 신념이자, 내가 누구의 도움 없이 태어나서 처음 이루는 소망일테니까. 이젠, 더 이상 남에게 의지하긴 싫다. 난 지금까지 다른 이에게 의지했으니까, 그러니 이번만큼은 내 손으로 끝내겠다.
" 어이, 잠깐만 기다려! 도대체 혼자 어딜 가려는거야? 너, 거기 혼자 가면 위험하다고! "
허겁지겁 내 뒤를 따라오던 남자는 숨을 헥헥거리며 나를 말려보지만, 이미 내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않는다. 오직, 메달만을 눈에 불을 켜고 찾을 뿐, 그러니 이제 그만 날 냅뒀으면 좋겠다.
" 마우린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나다고! 나조차도 해내지 못한단 말이야! 그런데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녀석이 무슨 수로 그놈들에게서 조각을 뺏냔 말이야? 괜한 억지 부리지 말고 이리 와! "
괜한 억지라고? 그래,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억지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그 억지로 인해 조금이나마 이 세상의 도움을 준다면야. 언제든지 나는 이런 자세로 임할 수 있다.
" 젠장,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질 않는군. 좋아, 알았다고. 지금에 너는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 같으니 갈거면 나와 같이 가. 그게 한편으로는 더 너에게 도움 되는 일이라고. 어처피, 너 그들이 있는 곳이 어딘지 모르잖아? 뭐, 조금만 가면 나오긴 해도 … 그래도 이왕 갈거면 나와 함께. "
" 시끄러워! 더 이상 쫑알거릴거면 그냥 꺼져버리라고! "
" 어이, 뭘 그리 열을 내는거야? 내가 뭘 했다고? 그저, 나는 네가 위험할까봐. "
" 누가 내 걱정을 하라 했어? 그냥 날 그대로 냅두란 말이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그 누구의 도움도 원치 않는다고!! "
" 어, 이봐! "
젠장, 더 이상 내 뒤를 따라오지 말라고. 따라오려거든 내 눈에 띄지 말란 말이야. 더 이상 누군가 나와 관련이 된건 싫단 말이야. 그러니까, 더 이상 날 귀찮게 굴지마!!
" 허 참, 뭔 놈의 사람이 저리 고집이 세냐. 그래, 알았다고. 더 이상 귀찮게 않을테니 네 알아서 해! 나 참, 어이가 없어서. "
그 남자는 투덜거리며 내 앞에서 사라진다. 나는 그가 없어짐과 동시에 다시 산길을 따라 달려갔다. 더 이상 나를 막을 방해꾼도 없을 뿐더러, 조금만 더 가면 그들의 본거지가 나올거다. 그들이 눈치를 못 챈 틈을 타 그 안에 잠입해 조각을 찾아 나오는게 내 목적이다. 물론, 그리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게 최소한의 나의 소망이다. 그러니, 제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세상의 걸림돌이 되지 말아줬으면 ….
" 라곤, 말했지만 역시나 마음에 걸리는걸.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사정이란게 있는 것 같으니 같이 가주마. 아아, 걱정은 하지마. 네 눈엔 안 띌테니까. 그러니까, 더 이상 고집 부리지 마. "
어느센가 나와 합류한 그는 씨익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저 얼굴에 주먹을 꽂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이런 짓도 괜한 시간낭비다. 더 이상 이 녀석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은 없다. 잠시 이 자를 무시하고 내 갈 길만 향하면 된다. 이 자식이 날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 그나저나, 길은 알고 있는거야? 무턱대고 걷는 것 같은데. "
아니나 다를까, 조용히 찌그러져 가겠다는 말은 어디 가고 또 다시 쫑알거리며 내게 묻는다. 입에서 욕이 나올 것 같은 충동이 이르지만 참도록 하고 계속해서 달려갔다.
" 그래도 방향을 보면 이쪽이 맞는 것 같은데. 너, 혹시 마우린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거야? 이야, 보기와는 다르게 정보통이 좋은걸? 너도 나와 같은 수색꾼이냐? 그렇지않으면 왠만한 민간인이 마우린이 있는 곳을 찾기란 어려운 법인데. "
" 아, 진짜. 그만 좀 쫑알거리지? 너 때문에 발걸음이 늦어지잖아! "
참다 참다 더 이상 못 참게 판단한 나는 그 녀석을 향해 불평을 늘어뜨렸고, 그 남자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피식 웃는다. 두 주먹이 불끈 솟구치지만 참도록 한다. 이것마저 날아가면 내가 지금껏 참은 이유가 없어지니까.
' . '
계속해서 달리던 나는 방금 전 그 녀석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거슬린다. 분명, 저 녀석이 ' 나와 같은 수색꾼 ' 이냐고 물은 것 같은데. 대체, 그 수색꾼이라는게 뭐지? 혹시, 메달을 찾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기도 한건가? 하지만, 이들이 마우린이 있는 곳을 안다는건 분명 뭔가가 있다는 얘긴데.
" 이봐, 방금 말한 수색꾼이라는게 뭐지? 그게 지금 나와 무슨 상관이기에 그런 말을 했냔 말이야. "
" 갑자기 그게 궁금해진거냐? 지금껏 내가 물어봐도 대답도 하지 않은 주제에. "
" 빨리 말해!! "
" 어이구,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질러 임마. 그러다가 마우린들에게 걸리면 어쩌려고! 알았어, 임마. 수색꾼이 뭔지 설명해줄테니까 제발 소리 좀 지르지마. 나 보기보단 심장이 약하단 말이야. 잘못하면 심장마비로 죽. "
"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말해!! "
듣자 못한 나는 녀석의 말을 끊고 수색꾼에 대해 설명하라 재촉했다. 그는 살짝 뻘쭘한 듯한 표정으로 곰곰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척을 하며 떠오른 듯 내게 설명한다.
" 뭐? 그게 사실이야? "
" 그래, 우리 수색꾼들은 마우 마을을 포함한 총 5곳의 마을관할을 맡고 있지. 그 중 제일 신경 쓰는 곳이 마우 마을이고. 나는 마우 마을에 배치된 수색꾼의 일원이고. 그러다가 우연히 마우 마을의 메달을 도둑 맞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내가 나타난거야. "
" 그럼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진 다른 곳에 있었다는거냐? "
" 응, 근처에 볼일 좀 보러 갔는데 아뿔사, 마우린들이 나타나 메달을 가져갔다는거지. 하하, 이거 정말 타이밍도 죽인다니까. "
" 넌, 이게 웃을 일이냐?! "
" 물론, 웃을 일은 아니지만 어떻게보면 어이 없잖아? 그들이 어떻게 내가 있는걸 알고 내가 없는 틈을 타 습격할 줄은 몰랐지. 나는 그놈들이 개인적으로 란이 아닌 나를 감시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니까. 어떻게 내가 마을에 없는 시간을 틈 타 쳐들어오다니. 정말 놀랍다니까. "
이 자는 마우린들이 자기를 감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란의 말로는 그들은 언제나 란을 감시했고, 란이 마을에 없는 날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을에 쳐들어왔다고 했다. 그런데 이 남자의 말을 듣고나니 뭔가 의문점이 생긴다. 며칠 전, 그러니까 내가 이곳에 처음오고 란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을 때 마우린이 쳐들어왔고, 그 이후에 란과의 대화 중 란은 그 날 마우리스 산에 홀로 올랐다고 했다. 그 결과, 란이 잠시 마을은 떠난 사이에 마우린들은 쳐들어왔지만 이미 그때는 란이 마을에 들어와 우리와 저녁을 먹고 있던 중이였다. 그때는 별로 이상한 점을 못 찾고 그냥 넘겼지만, 지금 듣고나니 뭔가 이상하다. 분명, 마우린이 란을 하루도 빼놓지않고 란을 감시했다면 그때 마을에 습격하기 이전에 마우린들 중 누군가가 란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다른 마우린들에게 알렸을테고. 그들이 괜히 헛걸음질을 할 필요는 없었을테지. 하지만, 그때 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쳐들어왔다. 그리고 쳐들어옴과 동시에 이상함을 느낀 그들은 다시 산으로 철수를 했다는건 란을 제외한 누군가가 마을에 돌아왔다는걸 감지한 마우린이 그들에게 알렸을 터. 그러니 처음부터 마우린들은 란을 감시한게 아닌, 란이 아닌 그 누군가를 감시 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는건 지금껏 란은 자신이 마을을 나가면 마우린들이 자기가 없는 틈을 타 마을에 쳐들어온다는 사실은 그저 과잉반응이였단건가? 사실은 그들은 이 남자를 노렸고, 우연히 란이 마을을 나설 때엔 이 남자도 마을 밖으로 나갔다는 말이겠지.
" 어이, 왜 그래? "
" 그렇다는건, 네가 마을에 없으면 마우린이 쳐들어온다는거지? "
" 아마 그럴걸. 늘 그랬으니까. "
" 그럼 지금 네가 이곳에 있으면 안되잖아!! "
" 응? 그게 무슨 말이야? "
" 네가 없다는걸 마우린들 중 누군가가 알아차렸다면 곧바로 마을에 쳐들어올거 아니야!! "
" 오, 그렇게 되는건가? "
아니, 이런 멍청한 새끼를 봤나.
" 지금 우리가 이러고 갈게 아니라, 서둘러 마을로 가야할거 아니야? "
" 그게 그렇게 되는건가. "
" 그렇게 되는게 아니라! 아오, 아무튼 지금 이럴게 아니라 빨리 마을로 가야 되. "
" 메달은 어쩌고? "
" 아니, 이런 시급한 때에 메달이 중요해? 마을사람들이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잖아!! "
" 그거라면 걱정마. 나와 같은 수색꾼들이 마을 주변에 잠복하고 있으니까. "
" 마을에 남아있는 수색꾼들은 총 몇명인데? "
" 음, 한 3~4명? "
맙소사.
" 아니, 너 지금 나랑 장난해? 그런 소수인원으로 마우린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 막기는 커녕, 죽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
" 그렇다고해도 그 마을엔 란이 있으니까, 그 남자라면 마을을 충분히 구할 수 있을거야. 그리고 마을에 마우린들이 쳐들어온걸 알게되면 수색꾼들이 모두 마우 마을에 모일테니까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 그러니까 우리들은 메달을 찾으러 가면 된다고. "
오, 하느님 …. 어찌하여 이런 천하태평한 녀석을 태어나게 하실 수 있었던겁니까. 이 자의 말을 듣고자하니 내 분통이 터질 것 같다. 더 이상 이 자와 대화해봤자 나까지 휘말릴 것 같아 대화를 중간에 멈춘 나는 발걸음을 돌려 곧장 마을 쪽으로 돌려 산 아래로 후다닥 내려갔다.
" 그렇게 가면 후회할텐데. 네 목적은 메달을 찾는 것 아니였나? 마을은 그 뒷전이라고. "
" 아무리 그렇다고 아는걸 모르는 척 넘어갈 순 없잖아? 아무리 메달이 중요해도 애꿎은 마을사람들이 죽는걸 지켜 볼 순 없다고! "
" 이미 늦었을 수도 있어. "
"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
" 이미 우리가 갔을 땐 늦었을지도 몰라. 그러면 우리는 헛고생을 한거지. "
"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아직 보지도 않고 멋대로 정하려고 하지마! "
' ! '
이 말, 전에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던 것 같다.
“ 이미, 늦었어. ”
“ 그걸 너가 어떻게 알아? 아직 살았을 수도 있잖아. ”
“ 하지만, 차에 치였는걸. 아마 그 상태라면 병원에 가도 살 순 없을거야. ”
“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시도도 해보지도 않고 못대로 말하지마! ”
분명, 그 말은 내게 미즈오가 했던 말과 같았다. 그때는 아마도 미즈오와 함께 놀이터를 가던 도중 차에 치인 고양이를 보고 난 이후의 대화였을거다. 그때엔 나는 포기도 남들과 빨랐고, 안될걸 알면 그대로 멈춰버리는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미즈오는 달랐다. 안되는걸 알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도 않고 끝을 보는 성격. 즉, 나와는 상반대는 성격이였다. 그렇다보니 남들보단 소극적인 내 성격 때문에 남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나를 미즈오만이 내게 손을 건넸던 것이 기억난다. 그 덕분에 미즈오와 어울리면서 내 성격도 조금씩 활발해져갔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예전처럼 포기하는 것보단 끈기 있게 그 일을 헤쳐나가게 됬지. 아마, 그때 미즈오가 아니였다면 지금에 나는 이렇지 않았겠지. 남들과 어울리는게 무서워 방구석에 쳐박혀있던 나를 미즈오가 구제해준거다. 그리고 나는 그런 미즈오를 동경했다. 언젠간 나도 저 아이처럼 되겠다고. 옛날의 나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겠다고. 나는 줄곧 지금까지 그렇게 되고 싶었다.
" 어이, 왜 그래? 갑자기 말을 멈추고는. "
… 그러니까, 더더욱 그럴 수 없다. 작지만 그 작은 가능성을 믿는거다. 누군가에겐 하찮게 보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그 누구보다 절실할테니까. 그러니, 이렇게 멈춰서있을 시간이 없다.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그렇지않으면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행한 행동들이 다 물거품으로 돌아갈테니 말이다. 그러니, 더 이상의 머뭇거림은 없다.
" 이봐, 어딜 가려는거야? 정말로 마을에 돌아가려는건 아니겠지? "
" 아니, 난 돌아간다. 너에겐 그리 가망 없는 일이겠지만, 나한테는 아니. 그들에게는 작은 희망일테니까. 그러니 메달을 찾고 싶으면 너 혼자 가. 나는 마을로 돌아간다. "
나는 그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곤 등을 돌려 산 아래로 내려갔다.
" 후우,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그 작은 희망에 한번 도전해보겠다는거냐? "
" 도전이 아니다. 그저, 나는 그들을 구하고 싶은거다. "
" 좋아, 어찌됬던간에 구하러 간다는 말 아니야? 그렇다면 나도 기꺼이 같이 가줄게. "
" 아니, 너는 메달을 찾아라. "
" 에엑? 갑자기 왜? 방금 전까진 마을에 같이 가자고 했잖아? "
" 방금 냉정하게 생각한 결과. 네 말대로 그들이 마을로 갔다면 지금 쯤 그들의 본거지는 텅 비었을거다. 그렇다는건 지금이 메달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거지. 그렇다는건 지금이 아니면 더 쉽게는 못 찾는다는 말이다. "
" 여, 너무 간과하게 생각하는걸. 그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치밀하고 아주 지독한 놈들이다. 네 말대로 마우린 전부가 마을에 내려가면 그 틈을 타 누군가가 자신들의 메달을 노릴거라는걸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놈들이 모두 다 함께 손을 잡고 랄랄라하면서 갔겠어? 분명, 몇명의 마우린들이 남아 메달을 지킬 … 아, 그런 말이군. 이거, 생각보다 잔머리가 좋은걸? 좋아, 메달은 나에게 맡기고 너는 마을로 돌아가라. 메달을 찾는 동시에 서둘러 뒤를 따라갈테니. "
" 그럼 부탁한다. "
그 남자와 나는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신들이 향할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아, 그리고보니 서로 이름도 안 말해줬네. 내 이름은 라셀, 네 이름은 뭐냐? "
" 루에르라고 불러라. "
" 루에르라. 후후, 꽤나 좋은 이름이군. 그럼 루에르, 조금 이따 보자고~! "
라셀은 내게 윙크를 날리며 저 멀리 산 속으로 사라졌고. 나도 헤어짐과 동시에 서둘러 산 아래로 내려갔다. 지금 쯤 그들이 마을을 습격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 아직 그들이 마을에 왔다고는 장담 못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아직 본거지에 남아 있을테지. 그렇게되면 라셀은 위험에 빠지겠지만, 그 녀석의 성격을 봐서는 그리 쉽사리 그들에게 잡힐 것 같진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긴 이르다. 이겐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 라셀의 말대로 내가 마을에 간다해도 이미 그들이 사라진 후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내가 내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미즈오가 말했 듯이, 해보지도 않고 함부로 결정 짓지 않을게. 그러니, 이번만큼은 미즈오. 널, 믿는다.
가까스로 빠른 시간 안에 산 아래까지 내려왔다. 허겁지겁 내려온 터라 숨이 가쁘고 힘이 들지만, 지금 내가 이곳에서 느긋하게 쉴 틈이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마우린들은 마을 안에서 활보를 칠게 분명하고, 그렇게되면 죄 없는 마을사람들이 다치기만 할 뿐이니까. 그러니 서둘러 가야한다.
마우리스 산과 마우 마을은 느낌상으론 가까워보이지만 꽤 거리가 있다. 마우 마을이 마우리스 산에 둘러쌓여서 만들어진 이름이였지만, 그 이름과는 달리 그들은 그리 친숙함이 느낄 수 없었다. 사실상으로도 마우린과 마을사람들의 사이가 그닥 좋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런 거리를 단숨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내 몸은 그리 그걸 탐탁치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참아서 나를 위해 한번만 움직여줘라.
잠시 후, 눈에 보이지않던 마을의 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아까 마을은 떠나기 전과 달리 이곳 저곳이 훼손된 마을 주변에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든다. 나는 황급히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수수하기 짝이 없던 마을 안은 누군가가 휘젓고 지나간 자리가 눈에 들어올 정도로 많이 망가져있었다. 마을 한쪽에 자라던 꽃들은 물론, 집들까지 모조리 파손되어 있었다. 나는 이 광경에 숨이 턱 막히는 듯한 통증과 함께 마을사람들을 찾아 헤맸다. 혹시나, 다친 사람들이 있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하며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마우린을 용서할 수 없겠지. 오직, 자기들의 목적만으로 애꿎은 마을사람들을 공격하다니. 비열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라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
' ! '
마을 안은 조심스럽게 걷던 중, 무너져 내린 집들 사이에 누군가가 깔려 있는 것을 본 나는 다급히 그 쪽을 향해 달려갔다. 어린 꼬마애로 보이는 아이는 정신을 잃은 듯 보였고, 그 주변으론 사람들의 피로 보이는 붉은 빛깔의 액체가 곳곳에 뿌려져 있었다. 나는 서둘러 아이 주위에 내려 앉은 파편들을 바깥으로 빼내며 아이를 구하려했지만, 의외로 무거워 나 혼자서는 아이를 도와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간다면 이 아이는 조만간 죽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절대로 포기하면 안된다.
「 부스럭 」
아이를 구하기에 매진하던 내 쪽으로 누군가가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꼈다. 부서진 건물 자재들을 차례 차례로 치우던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봤다.
" 여기서 대체 뭐하는겁니까? 지금 이런 곳에 있으면 안된다고요. "
라셀과 똑같은 차림에 남자가 내게 손을 내밀며 이곳을 빠져나가자며 내게 말한다. 라셀이 말한대로 이 마을엔 이미 수색꾼들이 왔다는 말인가.
" 뭐하는거에요? 빨리 가자니까요. "
" 하지만, 여기 꼬마애가. "
" 네? 꼬마애요? "
머뭇거리는 내 뒤로 보이는 꼬마애를 발견한 남자는 화들짝 놀란 모습으로 나와 함께 부서진 잔해를 치우며 서둘러 꼬마애를 부서진 건물에서 빼내기를 성공했다. 그 남자는 꼬마애를 등에 업고는 빨리 이곳을 벗어나자며 내게 재촉했고, 나는 그 남자를 따라 재빨리 마을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남자를 따라 달리던 나는 마을에서 꽤 벗어난 곳에 위치한 한 작은 민가에 도착했고, 그 남자는 내게 이 아이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남기곤 마을이 있는 곳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나는 영문을 몰랐지만 이렇게 있다간 그들에게 걸릴까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민가 안으로 들어갔다.
' ! '
안으로 들어간 나는 순간 멈칫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민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민가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차분히 머리를 식히고 주위를 슬쩍 훑어봤다. 민가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마을사람들. 다행히도 그들은 마우린들에게 당하지 않았는지 하나 같이 멀쩡한 모습이였다. 그렇다는 얘긴 이 꼬마, 혼자서 운도 없이 그 마을에 남겨진건가.
" 자넨가? 무사했구만. "
한쪽 벽에 앉아 있던 란이 나를 발견하곤 내 쪽으로 다가온다.
" 어떻게 된건가? 대체 어딜 갔던건가? "
그는 내가 사라진게 걱정 됬는지, 내가 어딜 갔는지에 대해 궁금한 듯 물어본다. 나는 대충 말을 얼버무리며 대화를 끝냈고, 나는 손을 잡고 있던 아이를 마을에서 발견했다며 란에게 말했고, 란은 깜짝 놀라며 내 손을 잡고 있던 아이를 품에 안고 어디론가 걸어간다. 아마, 부모에게 데려다주는 걸거다. 부모에게 무사히 아이를 부모에게 보낸 란은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표한다.
" 고맙네, 하마터면 여린 생명을 잃을 뻔 했네. 다시 한번 마을을 대표해서 감사하네. "
" 그렇게 감사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니까.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왜 다들 이런 곳에 있는거지? "
내 물음에 란은 내가 마을을 떠난 뒤 있었던 이야기를 차근차근 내게 설명했다.
" 갑자기 마우린들이 쳐들어왔다고? "
" 그렇다네. 분명 그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원하는게 없을텐데도 자네가 사라진 이후 갑자기 들이닥쳤다네. 그 때문에 가만히 있던 우리들은 마을에 큰 피해를 입고 뒤늦게 나타난 수색꾼들에게 도움을 받아 이 민가에 오게 된거지. 자칫하면 모두가 큰일날 뻔 했다네. 분명, 이번에는 마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쳐들어오다니. 더 이상 내게 원하는게 없으니 이제 아쉬울게 없다는건가? "
란의 말을 들은 나는 라셀이 한 말을 생각하며 그의 말이 어느정도 맞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나 마우린과 란의 관계는 우연이 만든 가설이였다는건가. 내가 떠난 뒤에 마우린이 쳐들어왔다는건. 그때 라셀과 내가 그들의 본거지를 향해 가던 시간이랑 엇비슷하니까. 하지만, 왜지? 란의 말대로면 그들이 더 이상 마을에 원하는게 없을텐데. 메달을 만들기위해 필요한 나머지 조각 역시 그들이 가져갔고 그들은 이제 마을의 볼일이 없을텐데. 왜 그들은 마을에 쳐들어온거지?
" 아무튼, 자네라도 무사해서 다행이네. 하마터면 나 또한 이곳에 머무르진 못했을거야. 이미 한 사람이 그들에게 잡혀갔으니까. "
" 그게 무슨 말이지? 잡혀가다니? 대체 누가. "
! 서, 설마.
" 리키가 그들에게 잡혀갔다네. 그들이 쳐들어오고 마을은 금세 혼란에 휩쓸렸다네. 나는 서둘러 마을사람들은 마을 밖으로 피신시켰고, 그 틈을 타 리키와 함께 마을 밖으로 나가려했다네. 그런데 내가 리키가 있는 방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리키는 그들에게 포위 당했고, 그들은 한꺼번에 내게 달려들어 나를 기절시키곤 리키를 데리고 돌아간 모양이야. 내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는 이미 없었으니까. 아마도 그들은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해 리키를 인질로 데려간게 분명해. 만약, 내가 자신들과의 협상의 차질이 있을 때 리키를 죽이려고 하겠지. "
" 뭐. 뭐라고? "
" 하지만, 이미 그들은 자신들이 이루려던 일은 모두 성공했고. 이제 우리 마을에는 필요한게 없을텐데. 대체 그들의 꿍꿍이가 뭔지. "
란은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한편, 그 얘기를 들은 나는 뭔가에 머리를 쿵 부딪친 듯이 머리가 울리며 이내 눈 앞이 캄캄해진다.
" 그게 말이 되? 어떻게 리키가 잡혀가게 가만 둘 수 있어? 아무리 여럿이서 한명에게 달려든다고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
" 미안하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
" 어쩔 수 없다는게 말이 되? 당신, 촌장이라메. 마을에 딱 하나 있는 촌장이잖아! 어떻게 마을사람이 그놈들에게 잡혀가게 순순히 냅둘 수가 있어? 빨리 가서 리키 데려와. 지금 당장! "
나는 란의 멱살을 붙잡으며 그게 소리쳤고, 그는 말 없이 고개만 숙일 뿐이다. 젠장, 이게다 그 자식 때문이다. 그 자식만 마을에 남아있었다면 이런 상황까진 오지 않았을텐데 …. 그 자식, 돌아오면 절대 가만 안둬!!
" 여어 루에르, 무슨 일이야? 왜 란의 멱살을 잡고 있어? 혹시 춤이라도 추려는거야? 그런데 너무 과격한걸? "
민가 안으로 들어오던 라셀이 나와 란을 보며 의아한 듯 물어본다, 나는 굳게 잡고있던 손을 풀어헤치고 곧장 라셀을 향해 달려들었다.
" 어어, 갑자기 왜 이래? "
"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리키가 잡혀갔다고!! "
" 리키? 리키가 누군데? 아야, 이것 좀 놓고 말해. "
라셀을 죽여버릴 기세로 그의 목을 짖누르던 나를 가까스로 주변에 있던 마을사람과 란이 합세하여 나를 말렸다. 하마터면 젊은 나이에 황천길로 보내질 뻔한 라셀이 켁켁거리며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난다. 그리곤 란에게 다가가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해 물었고, 거기에 내가 왜 저러는지에 대해 천천히 알고 나서야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 아항, 그거였구만. 그래서 나에게 심통이 난거구만? "
" 네놈만 마을에 있었어도, 마우린들을 물론이고 리키까지 잡혀가지않았을 것 아냐! 이 사단을 어떻게 할 셈이냐! "
" 워워, 너무 나한테 그러지 말라고. 그리고 순전히 내가 마을에 없었다는걸로 마우린이 쳐들어온게 아니란 말씀. 더군다나 그놈들이 내가 있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어처피 힘은 그 쪽이 더 우세한데 말이야. "
" 하지만, 네가 네 입으로 그랬잖아! "
" 물론, 내가 그렇게 말했긴 했어도 그놈들이 나를 의식하고 있었다고는 보기 힘들지. 더군다나 그놈들은 어느 특정한 시간 때만 마을에 쳐들어온다는걸 알게됬지. "
" 그게 무슨 말이지? "
"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차근차근 잘 들으라고. 괜히 엄한데가서 화풀지 말고. "
라셀은 우리를 보며 잠시 바깥에서 얘기하자며 밖으로 나갔고, 나 또한 그 남자의 뒤를 따라나갔다. 라셀은 주위를 샅샅이 훑어보고는 이내 다른 누군가가 지켜보지않는다는걸 확인한 후에야 밖으로 나온 나와 란에게 지금까지 수색꾼들이 파악한 마우린의 정보에 대해 하나씩 우리에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들의 세력과 그들과 관계된 모든 집단에 대해서도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파악한 듯이 아주 세세하게 우리에게 알려줬다. 그 밖에 그들과 관련된 일은 물론이고 최근에 나타난 그들의 정보까지도 라셀은 식은 죽 먹기라는 식으로 말해줬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제일 핫한 정보를 알려주겠다며 뭔가 잔뜩 뜸을 들이고는 나와 란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 보름달? "
" 그래, 보름달. 그들은 규칙적으로 보름달이 뜨는 저녁밤에 움직이기 시작해. 그리고 그 보름달이 초승달로 바뀌기 전까지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지. "
" 그렇다면, 그들이 우리 마을에 쳐들어온 것도 다 그 기간 안에서 이뤄진 일이라는건가? "
" 그렇게 볼 수 있지. "
" 그런데 보름달과 마우린간은 무슨 관계길래 그때만 움직이는거지? 다른 때도 움직일 수 있는거 아닌가? "
" 그 점에 대해서도 우리 수색꾼들이 아직까지 갈피를 못 잡고 있어. 최근에 한 수색꾼이 마우리스 산에 잠입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탐색했는데. 우연히 마우린들에게 발각되서 두 다리를 잃었다지? 뭐, 다행히 목숨은 건져서 돌아왔지만 꽤나 충격이 크나봐. 하지만, 덕분에 월척 하나 건졌지만 말이야. "
" 월척? "
" 그게, 그러니까 …. 아, 그래. 그 수색꾼이 일주일을 잠복해 그들을 지켜본 결과, 그들은 아주 오래 전에 마우 마을과의 약속을 한 모양이야. 아마, 그 때문에 그 기간을 맞춰 움직이는걸거야. "
" 우리 선조께서 그들과 약속을 했다는 말인가? 하지만, 대체 무엇을. "
" 그게, 다름 아니라 그 조각에 관련된 일이라고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자세히는 나도 잘 몰라. "
조각과 관련된 일? 라셀의 말을 듣던 나와 란은 깜짝 놀란 얼굴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오랜 옛날에 마우 마을과 마우린이 한 약속이 다름 아닌 메달과 관련된 약속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왜 무엇 때문에 그들이 마우린과 그런 약속을 한거지? 대체, 그 메달이란게 뭐길래.
" 그래서 그 사람이 알아낸건 그것 뿐이야? "
" 응, 그것 밖에 없어. 하지만, 분명히 그 조각과 무슨 관계가 있는게 분명해. 그렇지 않으면 지금껏 마우린이 한 행동에 대해서 밝힐 방법은 없으니까. "
" 그럼, 그 사람 이후로 또 다른 누군가가 마우리스 산에 잠입한 적은 없는건가? "
" 아마, 없을걸. 그 얘기를 하고 난 며칠 뒤에 죽어버렸으니까. 아마, 다리를 다치고 제대로 치료를 못해서 그렇다고 하던데. 그런 얘기가 들리니까 누가 마우리스 산에 자진해서 가겠어? 나 또한 그때는 겁을 먹었는데. "
"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정보라곤. "
" 그래, 그것 뿐이야. 하지만, 그 정도라도 왠지 이 사건이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어. 하지만, 어떻게 그 사건을 풀지에 대해선 아직 미정이지만 말이야. "
" 그거라면 내가 알려줄 수 있다. "
곰곰히 무언가를 생각하던 나와 라셀에게 란은 무언가 아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했다. 란의 말에 놀란 듯 라셀은 란에게 다가가며 말한다.
" 에? 그게 정말이야? 정말, 란이 말해줄 수 있어? "
" 그렇다. "
" 아니, 어떻게? "
" 내 선조께서는 대대로 후세들에게 무언가를 남기는 버릇이 있었다. 아마, 그 전에 있었던 일들을 적어 놓은 메모와 같은거겠지.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우리 마을의 촌장이 대를 잇고 있는거라고 믿고 있다. 나 또한 우리 아버지께 많은 도움을 받았지. 라셀, 당신의 말대로 옛날에 선조께서 마우린과 그런 약속을 했다면 분명히 메모를 남겼을 터. 나도 그 사실을 알기 위해 여러군데에 놓여있던 문서들을 꺼내 확인해봤지만 그 조각에 대해 적혀있는건 없었지.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내려오던 사당 안을 뒤지기로 했다. 오랜 옛날부터 그 주변으로 나와 마을사람들은 물론이고 우리 선조께서도 그 사당 가까이는 다가가지않으셨다.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 사당은 아주 오래 전에 지어진 것으로 악령을 봉인시켰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지. 그렇기때문에 그곳에 가까이 하는 사람은 없을 뿐더러 오랜시간이 지날 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지.
어쩐지 꽤나 음침한 기분이 들더니만 …. 란의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란의 말을 마저 들었다.
" 그 덕분에 지금까지도 그 사당은 우리 마을 한 곳에 세워져있지. 그래서 나는 그 사당 안에 조각에 대한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아침 일찍 그 사당으로 찾아가 조심스럽게 사당의 문을 열었고, 천천히 그 안을 살펴봤다. 오랜 세월을 견더낸 만큼, 군데 군데에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기분에 안으로 들어가기가 꺼려졌지. 더군다나,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조금 두려움을 느낀 나는 쉽사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분명, 저 안에는 선조께서 남긴 무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당 안에 들어가는걸 그만뒀다네. 다른 누군가에게 대신 부탁을 하려했지만 역시나 나와 함께 이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에 사당 안으로 들어가는건 커녕, 다가가는 것조차도 꺼려했다네. 그래서 결국 나는 그 문서를 손에 넣지 못했지.
그래서 나를 세워 그 사당에 가게 했다는거군. 란도 어떻게 보면 얌체기질이 있군 그래. 자기가 들어가기 싫다고 남을 밀어넣다니 … 왠지 짜증이 나는 것 같다. 나는 란을 노려보며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 그런데 어느 날, 나와 마을사람을 대신해 그 문서를 꺼낼 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네. 그건 바로 저기에 있는 루에르지. "
" 에? "
천천히 말을 이어가던 란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고,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라셀이 놀란 듯이 나를 쳐다본다.
" 뭘, 그렇게 쳐다봐. "
" 아니, 그다지 … 하하, 좀 놀라운 일이라서 말이지. "
라셀이 어색한 웃음을 하며 시선을 회피한다. 왠지 뭔가가 찜찜한 이 기분은 뭐지.
" 나는 루에르에게 내 대신 그 사당으로 가 문서를 찾아달라 부탁했고, 나는 루에르가 사당으로 가고 나서 마우리스 산에 오르기 위해 마을 밖으로 나섰지. 그런데 그 틈을 노려 마우린이 마을에 쳐들어와 신사에 놓여진 마지막 조각까지 가져가고 말았다네. 하지만, 도대체 그들은 왜 쿠피디타스를 노리는걸까 …. 그저, 그건 이 세상에 모든 만물들에게 자신들의 기운을 주는 용도 뿐일텐데 말이야. "
" 아니, 그것만이 아니야. 그 메달은 과거로 보내는 힘이 있어. "
" 에? 그게 무슨 말이야? "
" 그런건가 ….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걸로 인해 무엇을 할 생각이지? 고작 힘이라봤자 자네가 말한 시간이동 밖에 없을텐데 …. "
" 시간이동 이외에도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건 분명해. 내가 있던 세계에서 마키 족이 그 메달을 신성시 여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
" 마키 족? "
" 그래, 내가 있던 세계에선 마우린이 마키 족으로 불리우고 있지. 나도 처음에 이곳에 와서 마우린을 듣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들은 그 자리 그대로 머물고 있더군. 그래서 내가 그들의 본거지로 가서 메달을 빼앗아오려고 했는데, 마을이 습격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달려온거야. 하지만, 이미 내가 돌아왔을 땐 모든게 휩쓸려 지나간 후였지만 말이야. "
" 아항, 그래서 네가 마우린이 있는 곳을 알았던거군. 그런데 시간이동이라니? 그게 대체 뭐야? "
뒤늦게 이야기에 동참한 라셀이 뒷북을 치며 내게 묻는다.
" 여기에 있는 루에르는 사실 미래에서 온 사람이다. "
" 에엑? "
라셀은 도무지 못 믿겠다는 얼굴로 나를 쓰윽 쳐다보곤 말도 안된다며 란을 보며 웃는다. 하지만, 란의 진지하고도 담담한 태도에 라셀은 란이 거짓말한게 아니라는 사실에 대뜸 한숨을 내쉬며 나를 쳐다본다.
" 무슨 말도 안되는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란이 거짓말을 하는게 아닌 것 같으니 조금은 믿어주지. "
" 별로 너한테 믿음 같은거 받고 싶지는 않다만. "
" 나도 100% 믿는건 아니다. 하지만, 루에르의 행동과 루에르가 쿠피디타스에 대해서 아는 걸 보아 그렇게 생각한거다. "
" 쿠피디타스라면 그 조각의 원본체는 말하는건가? "
" 그렇다. "
" 그렇다면 그리 이상한건 아닌데? 다른 마을에서도 그 쿠피디 뭐시기 같은걸 아는 사람이 많다고. "
" 뭐라고? "
라셀 말에 란은 깜짝 놀란 듯 라셀에게 그 말이 무슨 말이냐며 묻는다. 라셀은 순간 아차! 하는 표정을 짓고는 이내 란을 돌아보며 하하 웃는다.
" 농담이야, 농담. 나도 쿠피디 뭐시기에 대해선 여기 와서 알았어. 아마도 내가 모르는걸 루에르가 먼저 알고 있었다면 미래에서 온게 맞겠지.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어. 자, 그래서 그 문서는 어떻게 됬어? 란의 말대로라면 문서는 찾았겠지? "
" 물론이다. 지금 내 주머니 속에. "
' . '
없다.
" 응?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
" 문서가 … 없어졌다. "
" 에엑?! "
" 지금 그게 무슨 말인가? 문서를 잃어버리다니! "
" 아마, 그 건물에 떨어트린 것 같아. "
" 뭐라고?! "
" 이럴 때가 아니라 서둘러 마을로 가야한다. 만약, 그들이 그 문서를 발견하면 곱게 내버려두진 않을테니까. "
우리들은 서둘러 마우 마을로 향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고이 내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문서가 왜 사라진건진 모르겠다. 대충 그 건물 안에 떨어트렸다고 말했지만 정말 그곳에 있을지는 장담 못한다. 하지만, 그곳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에 있을지 …. 아무튼 일단은 마을로 가보자.
마을에 들어선 우리들은 서둘러 건물을 향해 뛰어갔다. 주변에 혹시나 모를 잠복군이 우리를 발견하고 뒤쫓아올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그 전에 빨리 문서를 찾아 이곳을 빠져나가는게 중요하다. 허겁지겁 방 안으로 들어온 우리들은 어딘가에 떨어져있을 지도 모르는 문서를 찾아 헤맸다. 방바닥, 옷장 속, 이불, 서랍장 등. 있을만한 곳이란 모두 찾아 뒤졌지만 문서는 커녕, 누런 종이조차도 발견되지 않았다. 역시나 내 짐작대로 이곳에 떨어트린게 아니란 말인가.
" 어떻게 된거야? 분명히 너가 여기서 문서를 떨어트렸다면서? "
라셀이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분명 이곳에 오기 전에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황을 마무리하려고 내가 꾸민 거짓일 뿐. 사실, 나는 문서를 이곳에 떨어트리긴 커녕, 어디에 두고 온 기억이 없다. 그리고 그때 내가 문서를 가지고 이 방에 들어왔을 땐 이미 란이 마우리스 산에 가고 없을 때니까. 그리고 그때 마우린들이 쳐들어왔다는 얘길 듣고 리키와 함께 재빨리 건물 밖으로 나간 기억 밖엔.
" 아직 뒤지지 못한 곳이 있을지도 모르니 샅샅이 뒤지도록 하지. "
" 하지만, 이렇게 헤집어나도 발견된건 없잖아? 루에르, 도대체 문서를 어떻게 한거야? "
" 아직 사당에 가질 않은건가? 그렇다면 사당에 있을지도 모르지. "
" 아니, 사당은 이미 갔다왔고 문서 또한 내가 가지고 돌아왔다. "
" 그런데 왜 너한테 문서가 없는건데? 설마, 너 잃어버린거냐?! "
라셀의 추궁에 나는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분명히 나는 문서를 주머니 속에 넣었고, 그걸 흘리는 커녕 주머니에서 꺼낸 적도 없다. 하지만, 나한테 문서가 없다는 얘긴 어딘가에 문서를 떨어트렸다는 말이 되겠지. 내가 의도한건 아니지만 사실상 내가 잃어버린 것과 다름 없으니까.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 미안해. "
" 아니, 이게 미안하다고 될 일이야? 문서를 맡았으면 책임을 지고 갖고 있어야 할거 아니야? 그놈들이 만약에 그 문서를 발견하고 찢어버렸으면 어떡할거야? 아직 우리들은 메달의 정보를 알지도 못했잖아! "
" 정말, 미안하다. "
이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사과 밖에 남아 있지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문서가 떨어졌을지도 모르고 내가 그걸 미처 발견하지 못해 어디론가 갔다면, 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문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뒤져도 나오지 않는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떨어트렸을지도 모른다는건데 …. 대체, 내가 문서를 어디다 두고 온거지?
" 그만들 두게, 이러고 있어봤자 문서는 이미 없지 않는가? "
" 젠장, 굴러온 복을 차내다니 …. 그것만 있었어도 모든게 밝혀졌을텐데. "
" 미안하다. "
" 이미 후회해도 늦었네. 이곳에 문서가 없다는건 필시 마우린이 가져갔다는게 되겠지. "
" 하지만, 그건 추측일 뿐이잖아? 정말 그놈들이 가져갔다는 증거도. "
" 그렇게 보지 않는다면 문서를 찾을 방법은 없지 않은가? 그러니 그들이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편이 조금은 낫겠지. "
" 그런가 …. 뭐, 정말로 그놈들이 가져갔다면 확실히 편해지긴 했지. 하지만, 우리가 갔을 땐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잖아? 그럼 문서를 찾으나 마나 말짱 도루묵일텐데. "
란은 조금 의심스럽다는 말투로 란에게 말했고, 란은 그런 라셀을 쳐다보며 안심하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 아마, 그들은 쿠피디타스를 사용하는 법을 모를걸세. "
" 에? 그게 무슨 말이야? "
" 그들은 이미 모든 조각을 손에 넣었다. 이제 쿠피디타스를 복원시켜 사용하기만 하면 되지. 하지만, 그들은 조각을 빼앗은 다음날에 또 다시 마을에 쳐들어왔다. 그 말은 즉슨, 나에게 볼일이 있다던가, 무언가를 찾기 위해 왔다고 볼 수 있지. 그들이 마을을 구경 삼아 산 아래로 헛고생을 하며 올 리는 없으니까. "
" 그렇군, 그렇다면 그들이 찾는게 혹시 문서일지도 모른다는 말인가? "
" 그렇다. 옛날 나의 선조와 그들의 선조와의 약속을 그들도 안다면 분명 그 문서를 찾을거라 생각했지. 그리고 지금 루에르한테 있어야 할 문서가 없는걸 보면 분명 그들이 문서를 가져간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문서의 적힌 내용을 보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을테지. 그러니 우리들은 그들이 먼저 문서를 보기 전에 빼앗아 조각과 함께 마을로 내려가야한다. "
" 하지만, 이미 우리가 갔을 때는 그놈들이 그 문서를 봤을지도 모르잖아? "
" 아니, 그럴 수는 없을거다. "
" 에? "
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럴 일은 없다고 말하자, 라셀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
" 그들이 조각을 가져간건 맞지만, 아마도 조각을 하나로 만들기는 불가능할거다. "
" 그게 무슨 말이야? 불가능하다니? 혹시 그 조각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당신의 힘이 필요한거야? 그런거야? "
" 아니, 애석하게도 그런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쿠피디타스를 만들 순 없다. "
" 그게 무슨 말이냐니깐? 왜 만들 수 없는건데? "
" 그들이 조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지. "
" 에?! "
" 그들은 우리 마을에 놓여진 마지막 조각을 찾기 전, 누군가의 불찰로 인해 조각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들은 그 조각을 찾지 못한걸로 안다. "
" 그럼, 다행이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그 조각을 찾으면 되는거 아니야? "
기대에 부푼 얼굴의 라셀은 란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란은 근심으로 변한 얼굴로 라셀을 쳐다보며 말한다.
" 아니, 그건 불가능하다. "
" 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 루에르는 전에 들어서 알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은 그 조각을 만질 수 없을 뿐더러, 그 근처에도 접근하기 어렵다. 그 조각은 누군가의 염원이 담긴 목소리가 아니면 절대로 움직이지않는다. 아무리 우리가 애를 써도 조각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
" 그렇다면 어쩌라는거야? 그냥 두 눈을 뜨고 그 조각을 보란 말이야? 아니, 그러기 전에.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그 조각을 가져간거지? 네 말이라면 그들은 그 조각에 손도 대지 못하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놈들이 조각을. "
" 아마, 그들 중 누군가로 인해 가져간게 분명하지. 하지만, 그런 불순한 생각으로 조각을 만지리는 불가능하지. 그래서 생각한건데, 아마 그 조각을 가져간 사람은 마우린이 아닐걸세. "
' ! '
" 뭐,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마우린이 아니라니? 그러면 누가 대체. "
" 아마, 누군가가 마우린에게 협력을 하고 있다는 걸로 볼 수 밖에 없지. 하지만, 그자가 왜 마우린을 돕는지는 모르겠지만. "
란의 말을 들은 나와 라셀은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조각을 가져간게 마우린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그들을 도와주는거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들을 돕는거냔 말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도 그 조각을 가져가 나쁜 생각을 꾸미고 있는거라면 절대 나는 가만두지 않겠다. 설령, 그 사람이 나와 관계된 사람이라도 말이야.
"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너무 그리 깊게 생각하진 말게. "
" 아니, 란의 말도 어느정도 일리가 있어. 조각을 가져간게 마우린이 아닌, 마우린을 도와주는 어느 협력자란 말이잖아? 그렇다면 그 협력자를 찾아가 조각을 우리들한테 돌려달라고 하는게 어떨까? 그 사람도 어떻게보면 그놈들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는걸지도 모르잖아. "
" 하지만, 어떻게 그 사람이 있는 곳을 갈거지? 그 주변에는 온통 마우린들이 가득할거다. 더군다나, 마을을 이렇게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을걸 보면 잠자코 있을 녀석들이 아닌데 말이야. "
" 어처피 이렇게 있어도 나아질건 없잖아? 그놈들이 안오면 우리들이 먼저 가야지. 더군다나, 그놈들이 나머지 조각을 찾는다면 말이야. 안 그래, 루에르? "
라셀의 말이 맞다. 이렇게 잠자코 앉아만 있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먼저 그들의 뒷통수를 노려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빼앗겨진 조각을 회수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 하지만 말이야, 만약 그 사람이 우리에게 협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하지? 그 사람이 아니면 조각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없는거 아니야? "
" 아니, 한 사람 있다. "
" 어, 정말? 그게 누군데? "
" 바로, 루에르다. "
" 뭐?! "
라셀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도 안된다는 얼굴로 란을 쳐다보지만, 란의 웃음기 없는 얼굴을 보고는 이내 생각을 정리한 듯 한숨을 내쉰다.
" 뭐, 좋아. 이런 때에 거짓말을 할 리는 없고. 더군다나, 미래에서 오셨다니 메달을 만질 수 있다는 말이겠지.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떡하지? 그놈들이 나머지 조각을 칮기 전에 우리가 먼저 가서 선수를 칠까? 아니면, 그들이 문서를 보기 전에 문서를 빼앗아올까? "
" 너와 루에르는 나머지 조각을 찾아라. 나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자를 설득해보겠다. "
" 에?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해! 설령, 운 좋게 그놈들의 눈을 피해 들어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사람이 우리에게 협력 해줄지 않을지 모르잖아. "
" 하지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되든 안되는 시도는 해봐야지. 만약, 그자가 우리들에게 협력을 하지 않으면 나는 가차 없이 죽여버리겠다. 그럼 그들은 조각을 하나로 만들지도, 건들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겠지. 그럼 우리들은 그 틈에 조각과 문서를 챙겨 그 민가로 돌아가면 된다. "
" 워, 말은 쉽게 하네. 뭐, 그렇게 말한다면 뭐라 대꾸는 못하겠네. 좋아, 그럼 빨리 출발해보자고. "
" 아니, 잠깐 기다려. 마우리스 산에 가기 전에 가져갈게 있다. "
" 에? "
" 루에르, 따라와라. "
란은 떠나기 전, 챙겨야 할 것이 있다며 나와 라셀을 데리고 방을 빠져나왔다. 란은 나에게 조각을 찾기 전, 내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며 그것을 꼭 가져가라는 말과 함께 전에 란과 대화를 했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란은 혹시나 몰라 그때 내게서 빼앗은 메달을 어딘가에 숨겨놓았다고 했다. 만약, 이 메달과 그 메달간의 교류가 있다면 조각을 훨씬 수월하게 찾는데에 도움이 있을거라며 옷장을 치워 그 아래 바닥에 파묻힌 메달을 꺼내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 오오, 이게 미래에서 루에르가 가져왔다는 메달인가? 정말, 똑같이 생겼네. "
" 너는 어디서 이 메달을 봤던거야? 마을사람들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메달의 존재도 모르던데. "
" 뭐? 아하하, 당연히 봤지. 이래뵈도 난 수색꾼이라고. 마을 곳곳을 수색하다가 우연히 봤지. "
" 그래? "
역시나, 어딘가가 수상쩍은 느낌이 든다. 나는 란에게 메달을 건네받으며 정말 이게 효과가 있을까하며 란에게 물었지만, 란도 그 사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며 메달을 믿을 수 밖에 없다는 말 밖에 하지 않는다. 그때 옆에서 조용히 이 모습을 지켜보던 라셀은 뭔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란을 바라보며 묻는다.
" 그런데 말이야, 조금 이상한게. 란이 말한 것과는 달리 그 메달은 누구나 다 만질 수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된거야? 어떻게 란이 그걸 만질 수 있어? "
그리고보니 하나 간과한 사실이 있다. 란의 말대로라면 메달을 만지기 위해선 어떤 인물의 갸륵한 염원이 담기지 않으면 절대로 그 메달을 만지거나 가까이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란은 이 메달을 내 옷에서 빼내고 심지어 만질 수 있는거지?
" 아마, 미래의 메달은 오직 시간이동 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렇기때문에 내가 메달을 만질 수 있게 된거겠지. "
" 그런건가? 우와, 그렇게 말하니까 점점 루에르의 정체에 대해 더더욱 확신이 서는걸. 루에르, 너 정말 미래에서 왔구나? 야야, 신기한걸 …. 역시,옷차림을 보나 하는 행동을 보나 여간 수상스러운게 아니였는데 말이야. "
의심스러운건 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내 행동이 뭐 어때서?
" 그럼 이제 출발준비는 다 된거지? "
" 그렇다. "
" 그럼 더 이상 지체하지말고 서두르도록 하자. "
" 그래, 우리가 이러는 동안 그들이 우리보다 먼저 조각을 찾아냈을지도 모르니까. "
" 좋아, 그럼 출발하자. "
우리들은 건물 밖을 빠져나가 서둘러 마우리스 산으로 향했다. 이제 남은건 조각과 문서 뿐인가? 과연, 정말로 이 메달이 다른 조각이 있는 곳을 향해 내게 알려줄까? 만약, 그렇다고해도 대체 그들은 무엇을 위해 메달을 가져간걸까. 내 생각으로는 이 일 모두가 세상의 멸망과 연관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잠시 잊고 있었는데, 내가 이곳에 온 것도 무언가를 막기 위해 보내진게 아닐까? 만약, 내가 이 사건을 제대로 마무리 짓는다면. 우리가 있던 세상도 전처럼 되지 않을까싶다. 그렇다면 더 이상 내가 이런 짓도 하지 않게 되고. 그토록 만나고 싶던 미즈오도 만날 수 있겠지. 좋다, 만약 이게 그에 대한거라면 이 한 몸 바쳐서 꼭 막고 말테다.
' …. '
기다려라, 미즈오.
마우리스 산에 도착한 우리들은 란이 말한대로 나와 라셀이 팀을 이뤄 메달을 이용해 조각을 찾기로 했고, 란은 혼자서 그들의 본거지에 가서 마우린들에게 조각을 건네준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바삐 산 위로 올라갔다. 우린 그런 란을 뒤로 한 채, 산길이 제대로 만들어지긴 커녕,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숲 속으로 들어갔다. 가지고 온 메달을 손에 쥐고 멀리 뻗으며 앞을 향해 걸어갔다. 혹시나, 운이 좋으면 이 주변에서 발견될 수도 있으니까.
한참을 나무 사이를 간신히 피하며 걸었지만, 메달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역시나 란의 말은 그저 추측이였을 뿐이였나. 아니면, 아직 조각이 근처에 없다는걸까? 점점 우리들은 그들과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메달은 신호는 커녕, 감감무모식이다. 조용히 내 옆을 따라 쫓아오던 라셀의 표정도 갈수록 굳어간다.
그렇게 몇분을 걸었을까, 더 이상 걷지 못하겠다는 라셀의 말을 듣고 슬쩍 뒤를 돌아봤다. 라셀은 헥헥거리며 땅바닥에 주저 앉는다. 나는 그런 라셀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 수색꾼이란 사람이 뭐 그리 체력이 없어? 정말, 수색꾼 맞아? "
" 원래 수색꾼은 느긋하다고, 이렇게 뛰어 다니진 않는단 말야. "
" 나 원, 이래 가지곤 어느 틈에 조각을 찾으려고 그래? 빨리 일어나. "
" 하우, 무리라니까. 괜히 여기서 더 움직여봤자 좋을건 없으니 조금만 쉬었다 가자고. 뭔 놈의 인간이 그렇게 빡빡하냐. "
천하태평한 소리 하고 있네. 우리한테 그럴 시간이 어딨다고.
" 5분만 좀 쉬었다 가자. 그 정도 쉰다고 달라질건 없잖아? "
달라지는건 네 수명일거다.
" 너도 조금만 쉬었다가 움직여. 그렇게 움직이면 나중에 탈나. 어여, 앉아. "
명색이 수색꾼이라는 녀석이 수색은 안하고 자빠져 쉬는거 봐라. 이 녀석을 뽑은 상사는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딴 놈을 뽑았는지 …. 아, 이렇게 쉬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는데.
" 그리 심각한 표정 짓지마. 나처럼 웃으라고 스마일~ "
주먹을 부르는 얼굴이다. 라셀은 나를 보며 바보 멍청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난 그런 라셀을 보며 어이가 없다 못해 이젠 포기 단계에 이른다. 처음부터 이런 녀석과 같은 팀으로 움직이는게 아니였는데. 이왕이면 나 혼자가 편했을지도.
「 부스럭 」
약간의 휴식을 취하던 그때, 어디선가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평온히 바닥에 앉아 쉬고있던 라셀은 흠칫 놀라며 내게 바닥에 엎드리라는 말을 함과 동시에 바닥에 찰싹 달라붙는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라셀의 말을 듣고 바닥에 엎드린 나는 조용히 주위의 동태를 살폈다. 라셀은 예리한 눈으로 주위를 한바퀴 쭉 훑어보더니 이제 됬다며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 아까 그건 뭐지? 마우린인가? "
" 아, 아마도 그런거 같아. "
" 왜 그놈들이 이런 곳에 있는거지? "
" 낸들 아냐, 산책하러 온걸지도. "
산책 같은 소리하고 있네.
" 아무튼, 여기에 누군가 있다는건, 분명 가까운 곳에 마우린들이 있다는거지. 그러니까 여기서 더 이상 시간 끌지말고 그만 일어나자. "
가까운 곳에 마우린이 있을거라는 라셀의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되도록이면 마우린의 본거지에서 좀 떨어져가고는 싶었지만, 그 근처에 조각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 속을 혼란시키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주위를 살피고 조심스럽게 메달을 그쪽으로 뻗어봤다. 하지만, 역시나 반응이 없는 메달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정말로 이 메달이 다른 조각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기는 하는걸까? 란의 추측이라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럴 듯 해보여서 그런지 쉽게 손에서 떨어트리기가 좀 그렇다. 정말로 란의 말이 맞다면 이 메달이 조각이 있는 곳을 알려줄텐데. 그런데 지금까지 반응을 보이지 않는걸 보면 역시 추측이였나 ….
「 부스럭 」
주위를 서성거리던 그때 또 다시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고, 라셀은 뒤에서 멀뚱히 쫓아오던 나를 넘어트리며 나의 입을 막는다.
' ?! '
이게 무슨 개짓이지.
" 쉿, 조용히 해. "
라셀의 행동에 당황한 나는 웅얼거렸고, 라셀은 그런 나에게 조용히 하라며 주위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잠시 후, 주위에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는걸 판단한 라셀은 조심스럽게 내 위에서 내려온다. 그리곤 뭔가 짜증스러운 얼굴을 하며 고개를 돌려 내 쪽으로 걸어온다.
" 이쪽으로 가면 안되겠어. 방금 전에 우리가 있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
라셀은 내 옆을 지나치며 서둘러 움직이자고 말했다. 나는 라셀의 태도에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슬쩍 앞으로 걸어가봤다.
" 멈춰! "
라셀의 다급한 목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대로 부동자세를 취했다. 라셀은 황급히 내 쪽으로 다가오며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는 말과 함께 자기도 같이 제자리에 멈춰선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건진 모르겠지만, 아까 전부터 알 수 없는 인기척이 하나 둘 늘어나는걸 느꼈다. 아마, 이들은 마우린이 분명할테지.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이곳에 접근하는걸 알고 ….
" 젠장 …. 우리가 너무 상대를 쉽게 봤어. 이미, 이들은 우리가 이곳에 올 줄 안 모양이야. "
" 그럼, 어떡해? "
" 어떡하긴, 목숨이 붙어 있기를 빌어야지. "
" 뭐라고? "
" 쉿, 나타났다. "
나무로 가득한 숲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나타내는 사람들. 그들은 분명 마우린이였다. 한 4 ~ 5명 정도로 보이는 마우린들은 우리에게 창을 겨누며 서서히 우리와의 거리를 좁혀갔고. 가만히 제자리에 서있던 라셀은 작은 목소리로 ' 메달을 숨겨. ' 라는 말을 한다. 나는 그들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주머니 안에 메달을 집어 넣었다.
" 너희들은 누구지? 혹시, 마우 마을에서 온 침입자인가? "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남자가 인상이란 인상을 다 쓰며 나와 라셀을 쓰윽 훑어본다.
" 행색을 보아하니, 우연히 이곳으로 굴러온건 아닌 것 같고. 너희들, 쿠피디타스를 노리고 온거냐? "
" 아니, 그저 우연히 이곳을 온 것 뿐이다. "
"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
그 남자는 라셀의 배를 발로 차며 그에게 소리쳤고, 한 손으로 라셀의 머리를 붙잡더니 이내 라셀의 얼굴의 주먹을 날린다.
" 감히, 내가 누구라고 허풍을 치는거냐! "
" 하하, 허풍 아닌데. "
" 이 자식이! "
라셀의 얼굴을 사정 없이 후려치던 남자는 한참동안의 매타작을 뒤로 슬쩍 나를 쳐다보며 내 앞으로 다가온다.
" 너도 이 녀석과 똑같이 산책하러 온거냐? "
" … 그. 그게. "
무섭게 노려보는 그 남자를 보며 나는 어물쩡 넘어가보려고 했지만, 그는 한치도 내게 눈을 떼지 않고 나를 쳐다본다. 나는 어처피 이대로 된거 한번 밀어 붙여보자고 생각하는 순간, 옆에서 축 처진 채 쓰러져있던 라셀을 쳐다봤다. 라셀은 나를 보며 절대로 그 사실을 말하면 안된다며, 이곳은 내가 막을테니 너는 서둘러 이 산을 빠져나가라는 말을 한다. 그런 라셀을 보며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끝내 결심을 하고 라셀을 돌아보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
" 여기까지 온거, 물러서면 안되잖아? "
" 뭐라고? "
나는 그대로 내 앞에 서있던 남자의 배를 발로 차며 앞으로 나왔고, 주위에서 나와 라셀을 둘러싸던 마우린들이 일제히 내 쪽으로 창을 겨누며 달려온다.
" 이 멍청이가!! "
바닥에 주저 앉아있던 라셀이 나를 밀치며 달려드는 마우린을 그대로 몸에 부딪혀 바닥으로 쓰러진다. 라셀은 옆에 서있던 나를 보며 빨리 도망가라며 내게 말했지만, 나는 그런 라셀을 보며 씨익 웃고는 그에게 달려든 마우린을 발로 차며 라셀의 위에서 떨어지게 했다. 라셀은 그런 내 행동에 당황했는지 벙찐 얼굴로 나를 쳐다보곤 이내 피식 웃고는 자기 위에 쓰러진 마우린들을 옆으로 치우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 성질만 고약한 녀석인 줄만 알았더니, 화끈한 면도 있군. 마음에 들었다. "
" 너한테 마음에 들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아무튼, 이제 어떻게 할거야? 이 숫자론 제대로 버티지 못할텐데. "
" 에? 그럼, 너 생각도 없이 일을 저질렀단 말이야? "
대책 없이 저지른 내 행동에 깜짝 놀란 듯 라셀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 그럼, 어떡해? 여기까지 와놓고선 되돌아갈 수도 없잖아. 어처피 저놈들에게 잡히면 놔주진 않을테지만. "
" 젠장 …. 화끈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멍청한 놈이였군. "
" 너한테만은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네만. "
라셀은 내가 무슨 방법이 있어서 한 일인 줄 알았나보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기에 별 타격은 없지만. 라셀은 허망한 웃음을 지으며 내 등을 맞대곤, 내 귀에만 간간히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 이곳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곧 이놈들의 본거지가 나올거야. 본거지에 가면 아마 란이 있을거야. 우릴 잡는데 이 정도 인원을 보낸걸 보면, 아마도 본거지엔 마우린들이 별로 없다는거겠지. 그러니 란만 만나면 이 녀석들 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게 되지. "
" 그런데 여길 어떻게 벗어나려고? "
" 걱정마, 너한테 맡기진 않을테니까. 내가 이 녀석을 맡고 있는 동안에 네가 가서 란을 데리고 오면 되. "
" 하지만, 너 혼자서 어떻게 이 숫자를 감당하려고? "
" 이래뵈도 난 수색꾼이라고. 너 같은 일반인과는 비교 되지 않을만큼 강하다고. 그러니까 너는 내 걱정 말고 하루빨리 란이나 데려와. 그때까진 어떻게든 버텨볼테니까. "
란은 웃으며 내게 말하며 자기가 어떻게든 틈을 만들테니, 내가 신호하면 그 틈을 타서 서둘러 란에게 달려가라는 말을 한 후에 슬쩍 우리를 에워싸는 마우린들을 한바퀴 둘러본다. 그리곤 그때 제일 만만해보이는 한 사람에게 달려간 라셀은 그 사람을 쓰러트리며 바닥에 그를 쳐 박았고, 주변에 있던 마우린들은 일제히 라셀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달려갔고, 그때 라셀은 나를 보며 소리쳤다.
" 지금이야, 빨리 도망쳐! "
나는 라셀의 외침과 동시에 그들의 눈을 피해 저멀리 달려갔고, 나를 보낸 뒤 라셀은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저멀리 마우린들 사이로 사라졌다. 나는 그런 라셀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앞을 향해 달리기만 했다. 젠장 … 서둘러 란을 찾지 않으면 라셀이 위험하다. 빨리 란을 데리고 라셀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지 못하면 라셀은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때가 되기 전에 서둘러 란을 찾아야하는데 …. 젠장,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 젠장! "
마우린을 다 떼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다. 미처 제대로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 내 뒤로 마우린 한명이 무서운 속도로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금세라도 따라 잡힐 것만 같았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지금 저 녀석한테 잡히면 나를 위해 몸을 바친 라셀에게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모른다. 라셀의 말대로 내가 란을 찾아 오기만 하면 저 녀석들은 한 주먹거리도 안될텐데 ….
" 앗. "
앞만 보고 미치도록 달려오던 그때, 꽤 낯이 익은 마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 마을은 흡사 과거로 오기 전, 사로이와 마키 족이 있던 전사들의 성지로 보였다. 그렇다면 저곳이 마우린의 본거지란 말인가?
" 멈춰라. "
마을 안에 다다른 나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때, 어디선가 낯선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더 이상 움직이면 너의 그 두 다리를 잘라내겠다. "
싸늘하면서도 무게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내게 말하던 남자가 서서히 내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 남자는 검은 두건과 마스크를 쓰며 모습을 보였고, 그 남자가 나옴과 동시에 주위에 하나 둘 마우린들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지금까지 내 모습을 지켜본건가? 그들은 하나로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나를 둘러싼다.
" 이곳에 온 이유가 뭐지? 혹시, 너 또한 ' 그것 ' 때문에 온건가? 그렇다면 아쉽게도 이미 늦었다. 족장 님께서 방금 전에 쿠피디타스를 완성시켰으니까. "
뭐. 뭐야?!
" 놀란걸 보니 역시 쿠피디타스를 노리고 온거군. 끌고와라. "
검은 두건을 뒤집어쓴 남자는 마우린에게 지시하며 마을 안으로 들어갔고, 그 남자가 지시하는 동시에 주변에 있던 마우린들이 나의 팔을 밧줄로 묶고는 나를 마을 안으로 연행해갔다. 벌써 그놈들이 나머지 조각을 찾은건가? 그놈들이 메달을 완성시켰다는건 란이 그 사람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말인데, 젠장,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지?
" 들어가라. "
마을 안으로 끌려간 나는 마을 깊숙한 곳에 위치한 한 구렁텅이 같은 곳에 밀려 떨어졌다. 지하감옥처럼 보이는 곳에 떨어진 나를 보며 그 남자는 피식 웃으며 모습을 감췄다. 꼼짝도 못하고 이런 곳에 내동댕이 쳐지다니. 이제 어떻게 하지?
" 거기 누군가? 혹시 루에른가? "
한쪽 구석에서 들려오는 낯 익은 목소리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 역시 루에르가 맞군. 그런데 왜 이런 곳에? "
" 란? 란이야? "
" 그렇네, 그런데 어떻게 된건가? 라셀은 어디가고 자네 혼자만. "
" 왜 이런 곳에 있는거야? 분명, 우리한텐 마우린을 도운 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고. "
" 그만 함정에 걸리고 말았네. 그들은 우리가 이렇게 행동할 줄 알았던 모양이야. 그 때문에 나는 그자를 만나기도 전에 이곳으로 끌려왔지만 말이네. "
그렇게 된건가 ….
" 그런데 라셀은? 라셀은 어디에 있는건가? "
" 나 대신 마우린들에게 잡혔어. "
" 뭐라고? "
" 나더러 란을 만나 도움을 요청하길 바랬는데, 이렇게 된 이상 그럴 순 없을 것 같군. 빌어먹을 …. "
나는 한숨을 내쉬며 물끄러미 철창 위를 바라봤다. 역시나 라셀이 말한 보름달이 하늘 위에 떠있었다. 대채 이들은 무엇 때문에 보름달이 뜨고 지는 기간에만 움직이며, 왜 메달을 원하는지에 대해 아직까지 의문이다. 그걸 알기위해 여기까지 왔건만. 결국엔 이렇게 잡히고만 신세라니.이렇게 끝이나는건가?
" 아마, 라셀이라면 무사할걸세? "
" 어? 어째서? "
" 그가 마우린에게 잡혔다면, 자네가 오기도 전에 이곳에 라셀이 있었겠지. 하지만, 자네가 왔음에도 그는 이곳에 오지 않았어. 그것은 분명 그들에게서 벗어났다는거지. "
" 하지만, 이곳에 오는 시간이 좀 늦어진거라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 "
" 아니, 그들은 절대로 적을 데리고 꾸물대지않는다. 그들은 적을 발견하면 딱 두가지의 행동으로 나뉜다. 죽이던가, 죽이려든가. 아마, 내일 쯤이면 우리도 살아남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란이 만약에 그들로부터 벗어났다면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수색꾼을 데리고 이 마을에 쳐들어올걸세. 아마, 그때가 최후의 결전이 벌어지는 날이겠지. 그러니, 아직 시간은 있어. 수색꾼이 오는 즉시 우리는 쿠피디타스를 손에 넣으면 되는걸세.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나? "
나는 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했다. 그리고 란은 그때까지 이곳에 달아날만한 출구가 있는지 살피자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도 그런 란의 모습을 보고 함께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움직였다. 하지만, 역시나 이곳엔 아무 흔적도 잔해도 남아있지않았다. 그저 이곳은 딱 수감자를 위한 지하감옥이였고, 이곳을 빠져나가기위해서는 저 철창이 아니면 나갈 수 없었다. 만약에 저 철창을 부순다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지만, 지금에 란으로는 불가능했다. 둘 다 손이 자유롭지 못할 뿐더러, 장시간 이곳에 방치된 탓인지 란은 기운이 없어보였다. 나 또한 조금씩 기력이 쇠하는 것이 느껴졌다. 발걸음이 느려지고 몸 또한 위축된다.
' …. '
젠장,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는건가 ….
“ 깊은 밤이였다. 그들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우릴 보며 ' 소울 ' 을 달라 말하지만, 우리들은 그들이 원하는 소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우리들의 말을 믿지 않고 순전히 우리가 자신들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 마우린들은 서서히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한다. 되도록이면 싸움을 피하고 싶었기에 우리들은 우리가 아는 것까지 그들에게 설명해야만 했고, 그들은 그런 우리의 말을 들으며 조금씩 경계를 늦춘다. 여러 차례에 대화 끝에 나는 마우린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만약, 내가 마우린들이 원하는 소울을 다음 보름달이 뜰 때까지 가져오지 않는다면 내 목숨을 빼앗아도 좋다는 제안이였다. 그들은 내 예상과는 달리 순순히 응했고 다음 보름달을 기약하며 마우리스 산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나서 나는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들이 원하는 소울이란건 대체 어떤거며, 왜 하필 우리 마을에 그게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한 결과, 한가지 집히는게 떠올랐다. 만약에 그들이 원하는 소울이, 이미 내 손 안에 있는거라면, 나는 주저 없이 그들을 죽여버릴거다. 혹시나 정말로 그 물건이 맞다면 …. 나는 돌이킬 수 없게 되겠지만 말이다. 부디, 그 물건이 아니기를 빌 수 밖에 없다. ”
문득, 잠이 든 내게 다시 한번 그 꿈이 모습을 나타낸다. 그들이 원하는 소울과 자신이 갖고있는 물건이 뭔가 연관성이 있는 듯, 그 남자의 표정은 어두워보였다. 그는 한 작은 사당 앞에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한동안 그 자리를 지킨다. 한참을 그 자리에서 꿋꿋이 무언가를 읊조리던 그는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은 흡사 어디선가 많이 본 느낌이 든다. 그 남자는 한 제단 앞으로 걸어가 그 앞에서 또 다시 무릎을 꿇고 지그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한쪽 주머니에서 꺼낸 종이를 바닥에 펼치고, 그 위에 붓으로 무언가를 적기 시작한다. 무언가 심각한 내용을 담는 듯이 그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해보였다. 한참동안 종이 위에 무언가를 끄적이던 그는 붓을 멈추고는 종이를 반으로 접어 제단 뒷쪽에 살며시 숨겨놓는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사당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쓸쓸히 발걸음을 옮겼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쪽 벽에 기대어 쉬고있던 란은 나를 보며 무슨 일이냐며 덩달아 놀랐고,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이내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역시나, 그 꿈은 무언가 관계가 있는게 분명하다. 더군다나, 그 사당은 마우 마을에 있던 사당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마우 마을에 있는 사당은 낡았지만 그 사당은 낡은 흔적은 볼 수 없다고 하지만.
" 왜 그런가? 무슨 악몽이라도 꾼건가? "
걱정스러운 듯 내게 말하던 란을 바라보며 나는 아무 일 아니라며 슬쩍 철창 밖을 바라봤다. 여전히 하늘 위에 떠있는 달빛은 언제라도 밝은 빛을 내뿜어줄 수 있다는 기세로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아직도 밤인건가 …. 주위에 그놈들의 인기척이 없는걸 보아하니 다들 잠들어있는 것 같은데. "
그들이 잠자고 있는 지금이 절호의 찬스임에도 우리를 꼼짝도 못하고 철창신세라니. 왠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
" 섣불리 움직였다간 그놈들을 깨우는 것 밖에 안될테니, 날이 밝을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네. 그러니, 더 이상 힘 빼지 말고 좀 쉬고 있게나. "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를 듣고자하니 왠지 모르게 기운이 쏙 빠진다. 란의 말대로 괜히 소란을 피웠다간 자고 있던 그놈들을 깨우는 셈이 되니, 날이 밝기 전까진 계속 이 상태로 있어야하는건가. 후우, 한동안 밧줄에 묵여있더니 손이 좀 갑갑한걸, 이왕 철창에 집어넣을거면 이 밧줄 좀 풀어주면 안되는거였나. 뭐, 그랬다면 지금쯤 란과 함께 철창 밖으로 뛰쳐나갔겠지만.
" 그런데, 란. 정말로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한건가? "
" 그렇네, 다가가기는 커녕. 바로 그들의 손에 잡혔으니 말이야. "
" 그렇다면 아주 잠깐이라도 그 사람의 인상착의는 보지 못했어? 무슨 옷을 입고 있다던가 그런거 말야. "
" 글쎄 … 그런거라곤. "
란은 도무지 떠오르지않는지 고개를 가로젓는다.
" 그렇군 …. "
" 하지만, 한가지 들리는 바로는 마우린을 돕는 자가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것 밖에. "
' ! '
여자?
" 여자라니? 그럼, 마우린을 돕고 있는게 여자란 말이야? 하지만 무슨 이유로. "
" 그건 나도 잘 모르겠으나, 내가 듣기론 그렇다고 하네. 하지만, 그것도 사실 추측일지도 모르지. "
란의 말은 들은 나는 잠시 혼란에 휩싸였다. 마우린을 돕고 있는 사람이 남자도 아닌 여자라니. 왜 그 여자는 하필이면 마우린들에게 협력을 하는걸까? 무슨 협박이라도 당한걸까? 아니면 무언가 그들에게 보상을 바라고 …. 하지만, 그들이 보상을 줄리는 없을텐데.
" 그리고보니, 내가 끌려오기 전에 우연히 한 사람을 봤는데 말이야. 그 사람은 다른 마우린과는 달리 외소한 몸에다가 왠지 모르게 마우린들에게 사로 잡혀있더군. 내가 본게 맞다면, 아마 그 사람이 마우린을 돕고 있는 자가 분명할걸세. "
다른 마우린과는 외소한 체격에 그들의 감시를 받고 있다면 분명, 그 사람이 맞을거다.
" 그리고 그자는 다른 마우린과는 달리 갈색빛이 도는 머릿카락을 가지고 있더군. 무언가로 머리를 가리긴 했는데도 긴 머리카락 때문에 살짝 보였다네. 그렇게 긴 머리카락을 가졌다면 분명 그자는 여자가 맞겠지. 하지만, 무슨 이유로 그들에게 잡혀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
' , '
갈색 … 머리카락?
" 왜 그런가? 무슨 일 있는건가? "
순간, 가슴이 턱 막히고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왜지? 왜 갑자기 갈색 머리카락이라는 말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지는거지?
' …. '
왠지. 왠지 모르게 그리움이 느껴진다. 대체, 이 감정은 ….
' ! '
서. 설마 …. 아니야, 그럴리 없어. 절대로 그럴리 없다고. 하물며, 그런 짓을 할리가 없다고. 진정하자, 진정해. 지금 이렇게 우왕좌앙할 시간이 없어. 곧 있으면 그들이 깨어나고 말거야. 그러면 우리들도 이제 끝이겠지. 하지만, 왜 이렇게 진정이 안되는거지?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렇게 흥분되게 한단 말이야.
" 루에르? 자네, 괜찮은가? "
틀림없이 아닐거야. 그럼, 그렇고 말고. 절대 그 아이가 그럴 일을 벌일리가 없어. 그 녀석이 마우린들을 도울리 없다고. 더군다나, 그 아이가 이런 곳에 있을리가 없잖아? 무슨 수로 이런 곳에 있을 수가 있겠어. 하지만, 란의 말. 아직도 머릿 속에 맴돌고 있다. 갈색빛의 머리카락, 갈색빛의 머리카락. 아니야, 절대 그럴리가 ….
" 루에르?! "
아니, 절대로 그럴리 없어.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일을 벌일 녀석이 아니야. 그렇게 된 것에는 무슨 사정이 있을거야. 분명히, 분명히 사정이 ….
“ 깊은 밤이였다. 그들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우릴 보며 ' 소울 ' 을 달라 말하지만, 우리들은 그들이 원하는 소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우리들의 말을 믿지 않고 순전히 우리가 자신들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 마우린들은 서서히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한다. 되도록이면 싸움을 피하고 싶었기에 우리들은 우리가 아는 것까지 그들에게 설명해야만 했고, 그들은 그런 우리의 말을 들으며 조금씩 경계를 늦춘다. 여러 차례에 대화 끝에 나는 마우린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만약, 내가 마우린들이 원하는 소울을 다음 보름달이 뜰 때까지 가져오지 않는다면 내 목숨을 빼앗아도 좋다는 제안이였다. 그들은 내 예상과는 달리 순순히 응했고 다음 보름달을 기약하며 마우리스 산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나서 나는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들이 원하는 소울이란건 대체 어떤거며, 왜 하필 우리 마을에 그게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한 결과, 한가지 집히는게 떠올랐다. 만약에 그들이 원하는 소울이, 이미 내 손 안에 있는거라면, 나는 주저 없이 그들을 죽여버릴거다. 혹시나 정말로 그 물건이 맞다면 …. 나는 돌이킬 수 없게 되겠지만 말이다. 부디, 그 물건이 아니기를 빌 수 밖에 없다. ”
더 이상, 이런 일은 싫어 ….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 내가 이런 곳에 온 것도, 과거로 돌아온 이유도 다 무엇 때문이였는데. 나는 그저 만나고 싶을 뿐이였다. 세계를 구하고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꿈 꿨을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던 나의 의지에는 다 그 녀석이 있었는데. 그런데 그 녀석이 이곳에 있을 수는 … 더군다나, 적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니 …. 더 이상은 싫다. 더 이상 이런 곳에서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다. 더 이상은 버칠 수가 없다 ….
" 포기하는건가? 이렇게 싱겁게 말이야. "
"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 내가 원한건 이게 아니였단 말이야. 나는 단지, 세계의 멸망을 막고 싶었을 뿐이야.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았단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 그런 일이 …. "
" 그럼, 네가 진정으로 원하던건 뭐였나? 세상의 파멸을 막는 것인가 아님, 친구를 만나는 것이였나. "
" …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말해봐! "
" 정말로 네가 원했던게 친구를 만난거였다면, 네가 애써서 이런 곳에 올 필요는 없었다. 정말로 네가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면, 너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친구를 찾아 헤맸을거다. 그런데 여기서의 너는 그런게 아니였다. 오직, 세상을 구하고 친구를 만난다란 식의 생각으로 계속해서 헤쳐나갔던 것 뿐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친구를 만났는데도 그렇게 슬퍼하는 이유가 뭐지? 대체, 너는 무엇을 원했던거냐? "
" 나는, 그저 …. "
말을 할 수 없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지금 이 상황까지 온게 된거지?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앞만 보고 달려왔냔 말이야.
" 말 못할 얼굴이군. 그렇다면 조금의 도움을 주겠다. 정말로 네가 이 세상을 구하고 싶다면, 지금 이 상황을 이겨나가라. 그리고, 그 반대로 네 친구를 만나고 싶다면. 지금 이 상태로도 만족하겠지. 선택은 너의 몫이다. 더 이상 이곳에서 나와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 자. 잠깐만 기다려! "
" 누누히 말했지만, 이 세상은 멸망했다. 삶도 의욕도 잃어버린 이런 곳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에 대한 진실이 필요하겠지. 그걸 알기 위해 너는 이 세계에 왔다. 증오와 슬픔만으로 이 세계를 버텨나갔다면, 너 역시 죽음을 맞이하겠지 … 그에 대한 결과는 네 자신이 선택해라. 죽을 것이냐, 살 것이냐. 헤쳐나갈 것이냐, 못할 것이냐로 말이지. "
" 기다려, 사로이. 사로이!! "
꿈에서 깨어난 나는 악몽이라도 꾼 듯, 흘러내리는 식은 땀을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던 모양인지 한쪽 벽에 기대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란의 얼굴은 근심이 가득했다. 그렇게 잠을 자도 시간은 가지 않았던 모양인지, 철창 사이로 빛나는 달만이 하얗게 우리들의 얼굴을 비추었다.
" 후우 …. "
란의 탄식 섞인 한숨소리가 감옥 가득 퍼져나간다.
" 내가 너무 성급하게 일을 실행한 바람에, 나 뿐만 아니라 자네마저 이런 곳에 갇혀있군. 미안하네, 내가 너무 경솔했던 모양이야. "
씁쓸하면서도 슬픈 그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언제까지나 이런 곳에 갇혀 있는 것도 서서히 지쳐간다. 결과가 어떻게 된다해도 일단은 이 감옥 밖으로 나가는게 최우선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저 철창을 열어야하는데. 지금의 우리로써는 …. 후우, 이래저래 제약 받는게 너무나 많구나.
" 걱정하지말게, 우리는 꼭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걸세. 라셀은 믿지, 그 사람이면 꼭 우리를 구하러 와줄거야. "
" 리키는 무사할까 …. 이곳에 없는걸 보면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은데. "
" …. "
란이 말문을 닫는다. 란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듯 싶다. 나는 방금 전, 란이 내게 했던 말이 하나씩 떠오른다.
“ 그들은 적을 발견하면 딱 두가지의 행동으로 나뉜다. 죽이던가, 죽이려든가. ”
“ 내일 쯤이면 우리도 살아남지는 못하겠지 ”
결국엔 둘 중 아무거나 걸려도, 죽는다는건 변함없는 사실인건가. 이렇게 아무 것도 못해보고 죽다니. 왠지 너무나도 억울하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도,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인데. 막기는 커녕, 오히려 내가 죽을 판이니. 더군다나,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런 일까지 벌어지다니 ….
' 후우. '
대체, 나한테 뭘 어쩌란거냐. 사로이.
「 끼기긱 」
감옥 밖에서 철창을 여는 소리가 시끄럽게 지하감옥 안을 메운다. 사라진 철창 위로 나를 지하감옥에 쳐넣은 그 남자의 얼굴이 보였고, 그 주위로 몇명의 마우린이 철창 안으로 들어와 나와 란을 밖으로 끌고갔다. 가까스로 철창 밖으로 나왔긴 했지만, 어디론가 끌려가는 나와 란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란의 말대로 우린 죽는건가? 하루라도 빨리 침입자를 죽이고픈 마우린들의 결정인건가? 하지만. 하지만, 나는 이렇게 죽을 수 없는데. 아직, 나는 죽으면 안되는데. 지금 내가 죽으면 이 세계는, 이 세상은 ….
한참을 어디론가 끌고가던 마우린들 앞에 낯 익은 풍경이 주위를 이룬다. 유적 사이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나무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아마, 저 남자가 마우린의 족장인가보다. 그 남자 주위로 보이는 수십명의 마우린들이 하나 같이 장비를 착용하고 나와 란의 주위를 둘러싸며 바닥에 무릎을 꿇힌다.
" 이 자들이 오늘 밤에 침입한 침입자들입니다. 부디, 이 자들을 벌하여주소서, "
" 벌하여주소서! "
흡사, 사이비교주들을 보는 듯한 풍경에 살짝 당황한 나는 주변 눈치를 보며 슬쩍 란을 쳐다봤다. 란은 지그시 감은 눈을 뜨며 나무 위에 거만하게 앉아있는 남자를 노려보며 말한다.
" 네가, 마우린의 족장인가? "
" 그렇다면, 어쩔텐가. "
" … 후후, 우후후훗, 우하하하하! "
공포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실성한 듯, 란의 웃음소리는 점차 마우린 마을을 가득 메웠다. 그런 란의 웃음소리에 살짝 어이가 없어졌는지, 하나 같이 란을 보며 점점 언성이 높아진다.
" 하하, 이거 한방 먹었군. 곁에 있는대도 그거 하나 눈치채지 못하다니 …. "
" 그거냐, 너희들이 너무나 멍청해서겠지. 굴러 들어와도 그걸 발로 차는 격이니 말이야. "
그 남자는 란을 비웃으며 옷 속을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꺼내 란 앞에 펼쳐 보여준다.
" 덕분에 이 문서는 잘 봤다. 좋은 정보가 되었지. "
" 역시나, 네가 가져간 것이였나 …. 젠장 …."
그 남자가 갖고있던건 다름아닌 잃어버린 문서. 란의 짐작대로 문서를 가져간건 마우린이였다. 마우린들이 저 문서를 가져갔다는건 분명, 저 문서에 무언가 중요한 말이 적혀있다는 것. 그렇다는 말은 이미 늦었다는건가 ….
" 미안하지만, 이제 이 세상은 나의 것이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날 방해할 순 없어. 방해한들, 이미 늦어버렸으니까. 하물며, 상대가 너라해도 변할건 없단 말이지. "
" 그렇군 …. 그렇다면 우리가 애써 했던 행동들은 다 헛고생이였단 말이겠군. "
" 역시 사태파악 하나는 역시 끝내주는군. 그럼, 이제 슬슬 끝내보실까? "
" 그 전에, 부탁할게 있다. 우리를 끝내기 전에 그 문서 한번 볼 수 있을까? 마지막 가는 길인데, 그 정도는 해주겠지? "
" 좋다. 마지막인데 그 정도도 못해주겠나. 자, 받아라. "
그 남자는 문서를 란 쪽으로 던졌고, 란은 허공에서 펄럭거리며 문서를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순간, 그 남자는 영문 모를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옆에서 들려오는 란의 고통 어린 목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려 란을 바라봤다. 누군가가 란을 공격한 듯, 란의 등을 검에 베인 듯, 사선으로 그어진 상처 속에서 붉게 물든 피가 란의 옷을 적신다. 나는 다급히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자리에서 일어나 달아나려했지만, 수많은 마우린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는건 불가능했다. 나가려는 순간, 나의 뒷통수를 무언가로 후려치며 나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친다. 남자는 그런 나와 란을 보며 피식 웃는 듯, 몸을 들썩거렸고. 몇명의 마우린과 함께 어디론가 가는 듯, 그 남자는 유유히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 남자가 사라지자, 주위를 지키던 마우린들이 하나씩 나와 란을 향해 다가왔고, 서서히 좁혀지는 그들과의 거리에 나는 살며시 고개를 떨궜다.
' …. '
이. 이렇게 끝이 나는건가 ….
" 우아악! "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선 자의 비명소리가 내 귀로 파고 들어온다. 갑작스러운 비명소리에 몇명의 마우린들이 동요한 듯, 주위를 다급히 둘러본다. 그때, 어디선가 사람의 함성소리로 들리는 목소리가 하나 둘 커져가더니. 이내, 수십명. 아니, 수백명의 사람들이 나와 란을 에워싸고있던 마우린들을 향해 공격을 퍼붇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나는 벙찐 얼굴로 그 자리에 멈춰섰고,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한 남자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그 남자는 방금 전,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두건을 쓴 남자였고, 나는 그 남자를 발견함과 동시에 자리에서 벗어나려했지만. 아까 전의 충격으로 인해 쉽사리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허우적거리며 바닥을 밟던 내 앞으로 다가온 남자는 그윽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머리 위에 뒤짚어쓴 두건과 마스크를 벗으며 내 앞의 얼굴을 나타낸다.
" 오래 기달렸지? 하도 안 오길래, 내가 먼저 와서 선두를 잡고 있었어. 어때? 나 굉장하지? "
두건을 뒤짚어쓴 남자는 다름아닌 라셀. 언제, 어느 틈에 변장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감격스럽다.
" 어디 몸은 괜찮은거야? 다친데는 없어? "
" 나는 없지만, 란이 다쳤어.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할거야. "
" 젠장 …. 조금만 빨리 나타났으면 란도 다치진 않았을텐데. "
자신의 잘못으로 란이 다쳤다는 생각에 라셀의 표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 그런데 어떻게 된거야? 언제부터 이곳에 와있던거야? "
" 너가 도망치고나서 한 5분 쯤? 내가 말했잖아, 이래뵈도 수색꾼이라고. 자기 몸은 자기가 챙기는게 우리 수색꾼의 철칙이야. 일반 민간인들과 똑같이 취급하면 실례라고. "
" 그런데, 저 많은 사람들은 누구야? 순전히 수색꾼과 우리 마을만 모인게 아닌 것 같은데 …. "
" 물론, 마우 마을에서 제일 가까운 마을에서 우리를 지원해줄 지원군들이 몇명 있긴하지. 덕분에, 이렇게 대규모 전쟁이 일어났으니까. 그나저나, 문서는 찾은거야? 아니, 그것보다 그 사람은 만났어? "
" 만났다면 란이 이러고 있지는 않지. 그 전에 잡힌 모양이야. 이미, 우리들이 이곳에 올 줄 안 모양이야. "
" 역시 … 얕보면 안되는 놈들이였어. 아무튼, 나와 몇명 수색꾼들은 그 남자를 쫓을 생각이야. 어때. 루에르, 너도 같이 갈래? "
" 당연하지! "
" 좋아, 그럼 지금 당장. "
" 나도 … 나도 데려가게. "
쓰러져있던 란이 가까스로 땅을 짚고 일어서며 말했다. 나와 라셀은 깜짝 놀라며 란에게 괜찮냐고 물었고, 란은 이딴 칼에 쓰러질 정도로 나약한 사람이 아니니 걱정말라며 서둘러 그 남자를 쫓아야한다며,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깊은 상처에 란도 제대로 거동하기가 불편한 듯 보였고, 그 모습에 라셀은 란을 말리며 우리가 그 남자를 쫓겠다며 애써 란을 말려보지만, 이미 마음을 굳게 먹은 듯 보이는 란을 그리 쉽게 꺽을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란과 함께 그 남자를 쫓기로한 나와 라셀은 서둘러 그 남자가 사라진 곳을 향해 황급히 달려갔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님에도 발견되지않는 그 남자의 모습에 라셀과 란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빨리 그 남자를 잡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거란걸 알기 때문인지, 그들의 초조함이 나한테까지 영향을 주는 듯 싶었다. 나는 조바심을 참고, 천천히 흥분을 가라앉히곤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내가 아는 마키 족의 성지라면 이곳엔 분명 어딘가에 길이 있을거다. 그 남자가 갈만한 길이 말이다. 내가 본 마키 족의 성지는 이 장소와 거의 일치하다. 그렇다는 말은 이곳 어딘가에 그 남자가 갈만한 곳이 있다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게 어딘지. 그 남자가 향할만한 곳이 어디에 있을지에 대해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물며, 그들이 있던 곳이라곤, 이 근처에 있는 유적 주변이나 마을 근처. 그리고 잿빛산 정상 밖에는 ….
' ! '
잿빛산, 정상? 분명, 내 기억 속에는 그곳은 마키 족이 신성스럽게 여기는 전사들의 영혼이 있는 곳이자. 내가 처음으로 메달을 발견한 장소이기도 하다. 내가 있던 세상과 몇십년 뒤떨어진 이곳에 아직까지 그 동굴이 남아있다면, 그 남자가 향한 곳은 틀림없이 그 동굴일거다. 메달은, 전사들의 영혼은 그곳에 있을거다.
" 어라? "
" 란 …. "
라셀과 란이 놀란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들의 눈빛이 닿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다름아닌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메달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 어떻게 된거야? 메달이 반응하는거야? "
"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 "
" 역시, 내 추측은 틀리지않았단건가 … 정말로 쿠피디타스는 서로 공존하고 있던거야. "
" 그렇다면, 이 메달로 다른 곳에 있는 메달의 위치를 알 수 있다는거야? 그렇다면 잘됬네, 빨리 이 빛을 따라가자고! "
라셀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서둘러 메달의 빛이 향하는 곳으로 황급히 뛰어갔고, 중상을 입은 란도 기운을 차렸는지 라셀의 뒤를 쫓아간다. 정말로 내 예상대로 메달은 마우리스 산 정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에 가면 메달을 찾을 수 있음과 동시에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 남자보다 빨리 메달을 손에 넣어야한다.
" 잠깐! "
숨 쉴 겨를 없이 뛰어올라가던 라셀이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나와 란을 보곤 서둘러 나무 뒤에 숨으라며 지시한 후, 자기 자신도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며 바깥 상황을 확인한다.
" 역시나, 저곳이었나. 메달이 있는 곳이. "
" 그런데, 저 남자의 주위를 지키는 마우린들 때문에 움직이기 어려울 것 같아. "
" 평소의 나라면 저 정도 쯤은 처리하겠지만, 지금에 나로써는 쉽지만은 않을 것 같군. "
" 그거라면 걱정마. 나와 다른 수색꾼들이 저들의 시선을 끌테니까, 그 틈에 란과 루에르가 메달을 빼앗아오면 되니까. "
" 하지만, 저들은 다른 녀석들보다 몸집도 크고 무기도 다른 것들보다 위협적인 것 같은데 …. "
" 워워, 그건 걱정하지말라고. 내가 말했잖아. 내가 이렇게 보여도 수색꾼이라고. 더군다나, 마우린을 혼자서 4~5명이나 따돌리는 나한텐 저정도는 우습다고. 더군다나, 내 주위엔 나와 같은 수색꾼들도 있으니 말이야. 그러니 내 걱정은 말고 너희들은 메달이나 빼앗아올 것만 생각하라고. "
" 라셀 …. "
" 자, 이렇게 잠자코 있을 시간 없어. 서두르라고! "
라셀은 나와 란에게 메달을 빼앗아오라는 말을 하곤, 다른 수색꾼들과 합류하여 정상 위로 올라갔다. 동굴 주변을 서성거리던 마우린들에게 빠르게 접근하는 수색꾼들은 하나 둘 마우린들의 시선을 돌려 산 아래로 빠르게 내려간다. 나와 란은 동굴 주변에 마우린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서둘러 정상 위를 향해 달려갔다. 드디어 내가 꿈꾸던 현실이 눈 앞에 나타났다. 이제, 이 일만 완벽하게 해내면 이 세상은 암흑의 나락에서 꺼낼 수 있다. 내가 꿈꾸던, 우리들의 세상을 다시 만날 수 있다.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다. 남은건 소리 없는 마지막 전투, 그 끝을 멋지게 장식해주겠어!
" 오래토록 기다렸다 …. 드디어, 오늘에서야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구나 …. 갸륵하고도 거룩하신 우리의 조상이여. 이 오늘 날, 내가 이룰 미래를 위해 작지만 커다란 힘을 내게 나눠주소서 … 그 뜻이 다할 때까지, 나는 멈추지않을 것을 맹세하고자 합니다. "
동굴 앞, 그 남자가 두 손을 모아 동굴을 향해 기도를 하며 무언가를 전하고 있었다. 란과 나는 그의 모습을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그와의 거리를 좁혀나갔고, 동굴 앞,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한 남자는 지그시 눈을 감고는 천천히 동굴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 여기까지 따라온건가. 역시나, 양반은 못되겠군 …. 이미, 다 알고 있으니 쪽팔리게 나무 뒤에 서있는건 그만두지 그래. 안 그런가, 란? "
그 남자는 오래 전부터 우리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는지, 비웃는 듯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본다. 그의 말대로 나무 뒤에 메미마냥 몸을 숨기고 있던 란과 나는 조심히 그에게 모습을 보였다.
" 날 따라온 것은 역시나 그것 때문이겠지? 안타깝게도, 그것은 너희들에게 넘길 수는 없을 것 같구나. "
" 순순히 넘길거란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
" 하하, 그런가? 그렇다면 어떻게 내게 되돌려받을 생각이지? 설마, 한 마을의 촌장이라는 분이 주먹을 휘두르진 않겠지? 하아, 뭐 이미 이 말은 너무 늦은걸지도 모르지만 …. "
" 마지막으로 네게 말한다. 나에게 쿠피디타스를 넘겨줄 생각은 없는건가? 자네만 순순히 내게 그걸 넘겨준다면, 더 이상의 책임을 묻지 않겠네. 하지만, 계속해서 내 부탁을 거절한다면 나 역시 더 이상의 말은 무의미하다는걸로 판단하고 자네를 죽일지도 모르네. 그러니, 부디 내게 쿠피디타스를 넘겨주겠나? "
란은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한 마을의 촌장인 이상, 이 이상의 전투는 의미가 없다는걸 누구보다 잘 안다. 란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지막으로 지옥의 구렁텅이로 빠질지도 모르는 그에게 내미는 손은 달빛에 비춰 새하얀 색을 띈다. 그 남자는 란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약간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살짝 고개를 낮췄다. 포기한 듯이 보이는 그의 모습에 란의 입가엔 자그마한 미소가 나타난다. 그 남자는 잠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생각을 정리하는 듯한 그의 모습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란은 다시금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고, 눈 앞에 나타난 란의 손을 보던 남자는 이내 고개를 들며 란을 바라보며, 흔들거리는 란의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을 바라보며 그의 입은 움직였다.
" 싫어. "
싫다는 대답과 동시에 그 남자는 미리 몸에 지니고 있던 단도를 꺼내 란의 손목을 도려냈고, 갑작스러운 공격에 채 방어를 할 틈을 못 잡은 란은 허공에 날아가는 손목과 함께 바닥에 주저 앉는다. 그 남자는 란의 피가 흐르는 단도를 옷에 쓰윽 닦고는, 그대로 란의 어깨를 발로 차며 바닥에 쓰러트린다. 그리고 그 남자는 비열한 웃음을 짓고는 조용히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 란! "
나는 황급히 란을 향해 달려갔다. 란은 끊어질 듯 말 듯한 신음소리를 내며, 잘려나간 손목을 애써 손으로 감싼다. 나는 다급히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란의 손목에 감아주었고, 란은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쓰며 내 어깨를 붙잡는다. 그리곤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내게 말한다.
" 서. 서둘러 … 이대로 놓치면 끝이다. 그 남자가 쿠피디타스를 손에 넣기 전에, 빨리 …. "
" 조금만 참아, 내가 곧 돌아올테니까! "
정신을 잃기 전, 란이 내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가슴 속에 품은 나는 서둘러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 꼭 … 우리 마을을, 이 세상을 … 크윽. "
어둡고도 습한 기운이 나를 엄습해온다. 나는 그 남자의 뒤를 쫓아 앞으로 달려갔다. 이 동굴 안엔 분명히, 메달이 있다. 그 남자가 나보다 먼저 메달을 손에 넣기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그 남자보다 메달을 손에 넣어야한다. 그러니, 멈춰서는 안된다. 절대로 이 세상은 내가 반드시 구하고 말테다!
「 부스럭 」
그 남자를 찾아 가던 중, 내 발에 무언가가 밟혔다. 나는 천천히 바닥을 더듬거리며 내 발 근처에 떨어진 종이를 집어올리며 어둠 속에 희미하게마나 물체의 형체를 알아보던 나는 그 종이가 내가 잃어버린 문서라는 사실을 알게됬다.
" 이게 왜 이런 곳에 …. "
' ! '
그때, 어둠 속에서 휘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그 남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문서를 미끼로 나를 공격하려는 모양이였는 듯, 공격을 피한 나를 보곤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 앞에 멈춰선다. 그는 슬쩍 나를 흘겨보더니, 이내 웃으며 말한다.
" 란인줄 알았는데, 다른 녀석이었군. 이거 이거, 김 빠지는군. 이왕이면, 멋지게 해치우려했더니 말이야. "
" 이 자식 … 도대체 네 목적은 뭐지? 뭣 때문에 이런 짓을 꾸미냔 말이다! "
" 내가 왜 너 따위한테 그런걸 말해줘야하는거지? 더군다나, 네 녀석은 내 적인데 말이야. 너라면 적에게 자신의 꿈을 말할 수 있겠냐? 말해봤자, 너는 날 방해할 뿐이니, 그런걸 말해서 좋을건 없지. 그럼, 질문을 바꿔서, 네 녀석은 왜 내 일을 방해하는거지? 너는 그 마을과 아무 상관이 없을텐데. 왜 내 일을 방해하냔 말이냐?! "
" 나 또한, 적에게 그런 사실을 말해주고픈 생각은 없다. 다만, 네가 행한 그 일 때문에 미래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너의 그 악행을 저지하고 말거다! "
나는 그에게 달려가며 그의 손에 들려있던 단도를 노리고 다리를 뻗었다. 그러나, 그는 피식 웃으며 가볍게 내 다리를 피함과 동시에 그대로 나를 향해 돌진해온다. 단도를 치켜세우며 나의 심장을 노리던 그의 손을 피해 그를 넘어뜨리며 그가 갖고있던 단도를 발로 차내며 그대로 그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 메달은 어딨지? "
" 그걸 내가 말해줄 것 같으냐? "
" 순순히 말하지는 않는단 말인가 …. "
나는 다시 그의 배를 걷어차며 그를 바닥에 눕혔고, 그 남자는 고통을 호소하며 두 손으로 배를 움켜잡는다.
" 어처피, 네가 가지고 있지 않아도. 나는 메달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다. "
나는 방향을 바꿔, 바닥에 쓰러져있는 남자의 옆을 지나 앞으로 걸어갔다.
" 크윽, 내가 그냥 둘 줄 아는거냐 …. "
신음을 내며 쓰러져있던 남자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아랑 곳하지않고 그대로 앞을 향해 걸어갔다.
" 지금, 그 행동.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
뒤에서 섬뜩한 웃음소리로 웃던 그가 조심스럽게 내 뒤로 다가온다. 그리곤 낄낄 웃던 그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내 눈 앞에 그것을 손에 든다.
" 네가 갖고 있던건가. "
" 넌, 나를 너무 우습게 봤어. 네가 이 동굴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나는 이것을 손에 넣었다고. 그곳에 가도 아무 것도 없다는 말씀이지. "
그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 고맙군, 덕분에 헛걸음하지않아도 되니 말이야. 그럼, 이제 슬슬 내게 그 메달을 돌려주지 그래? "
" 후후 … 그거 좋지. "
들고있던 메달을 나한테 겨누던 순간, 메달에서 빛이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메달 주위에 분산된 빛이 가운데로 응축되더니 한순간에 내 몸을 뚫고 지나간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지자, 갑자기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하며, 한순간에 나는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이 모습을 보며 기쁜 듯 웃어댄다.
" 도. 도대체, 무. 무슨 짓을 …. "
" 아무리 미래에서 왔다고 해도, 조심하지않으면 안되지 …. 그게 너의 오점이야. "
" 내. 내가 미래에서 온걸, 네가 어떻게 …. "
" 덕분에, 아주 쉽게 내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됬어. 그 점에 대해선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그럼, 수고해라. "
그 남자는 메달을 들고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버렸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쓰러진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바닥에 쓰러졌다. 빌어먹을, 조금만 더 내가 방심하지 않았다면, 메달을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 바로 눈 앞에 있던 기회를 놓쳐버리다니. 젠장, 빌어먹을!!
' …. '
한번만, 한번만 더 내게 기회가 있다면 …. 나로 인해 끝날지도 모르는 이 상황을 나로 인해 다시금 일으킬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마지막으로 내게 메달을 빼앗을 수 있는 힘이 … 이 세상을 구해낼 힘이 있다면!
' ! '
잠시 잊고있던 주머니 안의 메달이 빛을 내며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아까 전의 길을 밝혀주던 빛과는 달랐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지 메달은 조금씩 내 주머니 밖으로 모습을 나타낸다. 흔들거리는 메달은 마치, 나를 잡아달라는 듯이 내게 마지막 기회라도 주려는 것처럼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내며 서서히 손을 움직여 메달을 향해 손을 뻗어 메달을 잡자, 한순간 몸이 가뿐해지는 느낌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방금 전, 일어난 상황을 다시 생각할 겨를 없이 서둘러 동굴 밖으로 빠져나갔다.
허둥지둥 밖으로 빠져나온 나는 황급히 그를 찾아 고개를 돌렸고, 절벽 바로 옆에서 메달을 들고 서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목적을 다 이룬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가 내가 동굴 밖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전에 황급히 나무 뒤로 몸을 숨기며 살금살금 그와의 거리를 좁혀갔다. 물론, 이런다고 그가 눈치 못챌건 없지만, 그래도 몇 퍼센트의 가능성을 믿는다. 방금 전에도 그랬으니까.
절벽을 바라보며 강하게 불어오는 돌풍에도 그는 꿈쩍도 하지않고 묵묵히 절벽 아래에 보이는 마우 마을을 말 없이 쳐다본다. 그는 들고있던 메달을 배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긴 한숨을 내쉰다. 도대체 이 남자는 무엇을 원하는걸까, 정작, 메달을 가져갔음에도 이렇게 여유로히 서있다니. 그만큼 자신만만하다는건가? 더 이상 메달을 빼앗길 리 없다고 생각하는건가?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아직까지 내겐 승산이 있다. 저 남자가 들고있는 메달만 뺏는다면, 이 세계는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있을 미래도!
" 이 정도면 충분한가? 꽤 오랜 시간을 준 것 같군. "
' ! '
" 내가 눈치 못챌거라 생각했겠지만, 이미 나는 전부터 내게 접근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 그러니, 이만 밖으로 나오지 그래. 처참하게 죽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
역시나, 이 남자는 내가 동굴 밖을 나올 때부터 알고 있던건가. 그 때문에 이렇게 여유롭게 서있을 수 있었던거군. 하지만, 왜?. 일부로 나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않아도 될텐데, 왜 굳이 그 사실을 말해가며 나와의 대면을 원하는거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건가 ….
나는 더 이상 숨어있어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걸 알고 천천히 나무 뒤로 모습을 나타냈다. 절벽 위에 애처롭게 서있던 남자는 슬그머니 내 쪽을 돌아보며 살짝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 네 녀석이였나? 어떻게 서있을 수가 있는거지? "
이 남자, 설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알고 있던건가? 내가 아닌, 그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노린다는 생각만으로 사람의 인기척을 느낀건가? 그렇다는 말은, 저 남자는 숨어있는 그 사람의 정체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른다는 말이 되는건가?
" 뭐, 상관 없다. 어처피 결과는 똑같으니, 네 녀석이 어떻게 일어설 수 있던건지는 몰라도, 이제 곧 다시 바닥에 쓰러질텐데. 왜 굳이 나와 끝장을 보려는거냐? 그렇게도 목숨이 아깝지않은거냐!! "
" 아니, 누구나 다 자신의 목숨은 귀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 귀하게 여긴 목숨이라도 버릴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나는 이 목숨을 걸고 너에게 말한다. 그 메달을 내게 넘겨라. 그렇지않으면, 더 이상 가만히있지 않겠다. "
" 그렇다면 어쩌겠다는거지? 네 녀석, 혼자만으로 날 막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나?! "
" 나 혼자서라면 무리겠지. 하지만, 둘이라면 가능할지도. "
" 둘이라고? 하지만, 내가 느끼기론 이 근처에 너 말고는 아무도 … 서. 설마!! "
" 그래, 네 생각이 맞다. 라셀, 그 녀석을 끝장내버려!! "
" 이런, 빌어먹을!! "
" 이. 이 자식 … 날 속이다니, 각오는 되있겠지? "
" 젠장 …. 조금만 더 빨랐다면. "
내 예상대로 이 남자는 기분탓으로 사람의 인기척을 파악하는게 맞았다. 그 덕분에 나의 속임수로 그 남자의 시선을 돌리기엔 성공했지만, 아까 전에 당한 공격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지 몸이 무거웠다. 그 때문에 그가 내게 속은걸 눈치채고 고개를 돌릴 때는 이미 그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조금만 더 빨랐다면, 메달을 빼앗을 수 있었는데 ….
" 잠깐 한눈을 팔기는 했지만, 결과는 똑같군. 잘가라. "
그는 또 다시 내게 메달을 겨누며 응축된 빛을 모아 내게 뿜었다. 그 빛에 스쳐지나간 나는 다시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조차 없게된다. 그는 웃었다. 더 이상 자기를 방해할 사람은 없고, 이제 남은건 자신의 야망을 이룰 수 있는 시간 밖에 없으니 말이다. 나는 아까 전과 같이 메달의 힘을 빌리고 싶었지만, 내 손은 움직일 수 없다. 아까 전보다 더욱 더 조여오는 듯한 고통과 함께 자츰 의식이 희미해져만 간다.
" 드디어 나는 선조께서 이루진 못한 꿈을 대신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오늘까지 오기엔 힘들었지만, 그 결과는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하다. 이제 남은건, 쿠피디타스의 봉인을 푸는 것뿐. 내가 봉인을 풀기만하면 이 세계는 나의 것이 된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선조의 바램을 이룰 수 있게된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날이 되겠지 …. "
그는 희열에 찬 웃음을 지으며 슬쩍 나를 돌아봤다.
" 고맙다. 네 덕분에 니와 선조의 야망을 이룰 수 있게 됬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하지. "
감사의 인사 따위 받고 싶지않다. 나는 지금 네놈이 저지를 그 악행을 막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아. 움직이고 싶어도 절대 내 몸은 이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어. 젠장, 어떡하지? 어떻게하면 저 녀석을 막을 수 있을까. 이제 바로 코 앞까지 다가왔음에도 왜 나는 막을 수가 없는거지? 제발, 제발 부탁이니. 이 녀석을, 이 세상을 다시 한번 구해줄 수는 없는건가?
" 그럼, 의식을 시작하지. 잘 봐두라고, 이 세상의 마지막을 말이야. "
개소리 지껄이지마! 마지막이라고? 내가 그걸 지켜보기만 할 것 같아?! 제발 좀 움직여라. 이제 시간이 없어. 제발, 움직이라고. 제발, 제발 … 이런 젠장!!
" 그만 멈추지 그래? 한번만 더 이상한 수작 부리면, 우리도 더 이상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겠다. "
절체절명의 순간, 삽시간에 마우리스 정상에 몰려든 수색꾼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라셀은 절벽 끝에 서있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 호오, 이게 누구야. 잘난 수색꾼들 아닌가? 그런데 이런 곳에 무슨 일로. "
" 긴 말 하지않고 본론만 말하지. 당장, 그 메달을 나에게 넘겨라. 그렇다면, 그동안 네놈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않지. 순전히, 자신의 영토를 지키려던 본능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대충 둘러대주지. "
" 하하, 그거 고마운 말이군.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이미, 이 게임은 끝났으니까. "
자기를 둘러싼 수색꾼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여유로운 듯이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끝냈다. 라셀의 권유에도 그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며 슬쩍 메달을 움직여 라셀을 겨냥한다.
" 이 자식, 움직이지마!! "
" 워워, 그렇게 놀라지들 말라고. 이걸 함부로 사용할만큼, 그리 성급하지않다고. "
" 그걸로 뭘 어찌할 생각이지? 설마, 이 세상을 손에 넣는다는 그런 뻔한 생각을 하는건 아니겠지?"
" 후후, 네 말대로 나는 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하지만, 선조께선 그것보다 훨씬 더 멋진 일을 계획하셨지. 그건 바로 이 세상의 파멸이다. 나를 제외한 온 세상의 인간이란 인간은 모조리 사라지고, 나만의 세계를 만드는거지. "
" 그렇게 된다면 너 역시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텐데? "
" 거기까진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그저, 내 선조가 남기신 유언대로 움직일 뿐이지. "
" 그렇다면 우린 더더욱 너를 막아야할 것 같군. "
" 그럼 나는 너희들이 내 일을 방해하기 전에 없애야겠군! "
라셀과 대화를 하던 그는 라셀을 겨누던 메달의 위치를 바꾸며 주변에 있던 수색꾼들을 향해 빛을 발사한다.
" 모두 피해!! "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방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몇명의 수색꾼들이 나와 같은 모습이 되어 바닥으로 쓰러지며 모습을 감춘다.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으며 낄낄 웃던 그는 주위가 조용해질걸 확인하고 서둘러 두손으로 메달을 잡고는 하늘 높이 띄운다.
" 성스러운 염원의 빛이여, 나의 염원을 담아 이 세상의 모든 빛을 회수하라! "
그 남자의 외침과 함께 메달에서 영롱한 빛이 뿜어져나온다. 메달은 그의 두손에 잡혀 강력한 빛을 내뿜으며 요동쳤고, 그 남자는 메달의 움직임에 미소를 띄며 더욱 더 메달을 향해 소리친다.
" 나의 희망, 소망을 담아 그 빛이 담긴 그릇에 담아, 나의 간절한 소원이 빛과 함께 움직이니. 너의 그 성스러운 영혼으로 이 세계를 암흑으로 잠재워라!! "
더욱 더 빛이 거세졌다. 차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빛은 이 마우리스 정상을 움켜지고 있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이 세상은 끝이다. 더 이상 겉잡을 수 없게 되버려. 저 남자를 누군가가 막지 못한다면, 이젠 모든게 끝이다. 정작, 이럴 때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거지? 이 세계를 구하러 온건 바로 나잖아. 그런데, 그런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냔 말이야! 움직여라 다리야, 움직여라 손아! 제발, 더 이상 나를 가두지마!!
" 정신 차려라, 루에르. 아직 모든게 끝이 난건 아니다. "
" 사. 사로이? "
"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봐라. 아직, 세상은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 "
" 그게 무슨 소리야? 나를 포기하지 않다니? "
" 네 주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는 해낼 수 있다. "
해낼 수 … 있다고, 내가?
" 루에르! "
사로이의 잔상이 사라지고 도리어 정신까지 돌아왔다. 주위는 아까와는 달리 잠잠한 분위기가 흘렀고, 어디에선가 나를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 루에르, 들리나? 정신 차려! "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란이였다.
" 루에르, 지금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바닥에 떨어진 쿠피디타스를 주워! "
내가 정신을 차리고 절벽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그 남자와 란이 서있었다. 란은 그 남자의 팔을 붙잡으며 그가 움직일 수 없게 그를 막고 있었다. 란은 몽롱한 의식 속에 헤롱거리는 나를 보며 서둘러 메달을 주우라 소리쳤고, 나는 란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며 주위를 황급히 둘러봤다. 빛을 내뿜던 메달은 그 남자의 손에서 떨어져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져있었고, 그런 그를 막고 있는 란의 얼굴이 보였다. 더군다나, 방금 전까지 나를 속박의 굴레에서 붙잡고있던 의문의 힘마저도 사라졌다. 나는 홀가분해진 몸상태에 다시 기운을 차렸고, 황급히 바닥에 떨어진 메달을 주웠다.
" 루에르, 이제 그 메달을 부셔버려! 더 이상, 갖고 있어봤자 겉잡을 수 없게 되! "
" 뭐라고? 이걸, 부시란 말이야? "
" 그래, 부셔. 다시는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지 않을만큼 완전히 박살을 내버려! "
뜻 밖에도 내게 뱉은 란의 말에 살짝 놀란 나는 멍하니 메달을 손에 쥐고 멈춰섰다.
" 뭐하고 있는건가? 빨리 쿠피디타스를 부셔! 이 남자가 다시 손에 넣기 전에! "
" 그만두지 못해?! 누구 마음대로 쿠피디타스를 건드려? 이거 놓지 못해! "
" 그만 포기해라! 이젠, 더 이상 널 놓치지않을테니. "
" 그럼 어쩔 셈이지? 이 상태로는 너와 나, 둘 다 무사하지 못할텐데? 너, 나와 함께 죽고 싶은거냐?! "
그 남자는 피식 웃으며 란에게 말했다. 그의 말에도 란은 꼼짝도 하지않고 이내 뭔가를 결심한 눈으로 그에게 말한다.
" 그렇다면, 너와 함께 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수 밖에! "
" 뭐. 뭐라고?! "
" 루에르, 들리나? 나는 이제 이 녀석과 함께 이 절벽 끝으로 떨어질걸세. 그렇게되면 더 이상 그 메달을 노리는 자도 없어지겠지. 하지만, 그 메달이 이 세상에 남아있는 동안에는 몇차례나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될걸세. 그러니 그 메달을 박살내게.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산산조각을 내버리게! "
" 하지만, 란 …. "
나는 그의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이 세상을 구하고 싶어하는 저 남자의 얼굴을 차마 쳐다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란에게 붙잡힌 그는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치지만, 굳게 잡은 그의 손은 절대로 그를 놓치지않았다. 란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 … 부디,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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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제 너와 나만 남았다. 우리들만 사라지면 이제 이 세상은 평화롭겠지. 모든 일은 우리들로부터 시작됬다. 그 끝을, 우리에서 끝내도록 하자. "
" 누구 마음대로? 나는 절대 죽지않아. 살아서, 이 세상을 멸망시킬테다! "
" 미안하군, 나 때문에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됬으니. "
" 빌어먹을! 절대로 용서하지않겠다. 죽어서도 너를 증오하겠어! 너만이 아닌 네 후손까지 말이야! "
" … 잘있게, 루에르. "
" 안돼!! "
이내, 절벽의 한송이 꽃이 되어 떨어진 란은 그렇게 사라졌다. 마지막까지도 내게 이 세상을 부탁하던 그의 얼굴이 눈 앞에서 아른거린다. 란과 함께 떨어진 그 남자의 비명소리가 마우리스 정상까지 들려오며, 얼마 지나지않아 그 목소리마저 사라졌다. 나는 란의 부탁대로 메달을 박살냈다. 그 누구도 발견할 수 없게끔, 산산조각을 내서 말이지. 그리고 부서진 잔해를 절벽 아래로 버렸다. 이렇게 메달과 함께 이 세상과 영영 멀어진 그들에게 보내는 선물이랄까, 아님.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지않기만을 빈 란의 부탁 때문일까. 그게 어찌됬든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그 이후, 정신을 차린 수색꾼들과 함께 나는 마우 마을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마우리스 산에서 잡혀온 마우린들이 하나 같이 밧줄에 묶여 마을 한가운데에 모여 앉아있었고, 그런 그들을 수색꾼들은 어디론가 데려가는 듯, 하나 둘 그들을 데리고 마을 밖을 빠져나갔다. 머지않아 저들도 다시 이 마우리스 산에 모여, 새로운 부족을 만들겠지. 그리고 그 부족이 내가 아는 마키 족이라는 사실도 말이야.
그날 밤, 란이 지내던 건물 안에 들어온 나는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꼈다. 건물 안에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평스러운데, 나는 왜 이렇게 마음 한 구석이 착잡한걸까 …. 더군다나, 마우린의 본거지에선 리키를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디엔가 분명히 리키의 흔적이 남아있을텐데. 그곳엔 마우린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리키는 어디에 있다는 말일까?
「 드르륵 」
라셀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곧장 내게 무언가를 건네주며 말했다.
" 마우린의 거처에서 발견한 그들의 기밀문서 같은거야. 아마도 너한텐 필요할건 같아서. "
나는 라셀이 건네준 문서들을 받고는 한장씩 천천히 문서를 읽어나갔다.
" 그놈들 말대로 이 녀석들의 선조는 이런 일을 꾸미고 있었나봐. 그러다가, 우연히 자신들이 찾는 것과 이 마을의 있는 것이 일치하다는걸 알고 빼앗으려 했겠지. 하지만, 예상대로 그들이 순순히 넘겨주지않자 무력을 행사하면서까지 그 메달을 갖고 싶어했나봐. 그러자, 그들이 더 이상 행패를 부리는걸 두고 볼 수 없었는지, 다음 보름달이 뜨는 날에 메달을 빌려주기로 했나봐. 물론, 그들에게는 주겠다고는 했지만. 그리고, 그들이 되돌아간 날, 그들의 선조들이 남긴 문서를 하나씩 읽어보다가 발견한거지. 이 메달의 정체와 위험도를 말이지. 그래서 다음 보름달이 뜨는 날, 약속을 했던 그들은 약속장소였던 마우리스 산과 마우 마을의 중간지점에서 기다렸지만 그들은 오지 않았어. 생각대로 그들은 메달을 넘겨주지 않으려 했나봐. 그래서 결국, 그들은 메달을 뺏기 위해 마을로 쳐들어갔고. 그 뒤에는 뭐,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그래서 그들은 매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움직이기 시작했나봐, 그들의 선조가 했던 일들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말이야. 그러다가 우연히 그것을 발견하고 지금 이 사단까지 일으켰지만 말야. 하지만, 란과 네 덕분에 그 저주에서 풀려났고, 앞으로도 그런 일을 발생하지 않겠지. 그 점에 대해 마을사람들과 수색꾼들을 대표해 감사를 표한다. "
라셀은 고개를 숙이며, 내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 아, 그리고 네가 찾던 리키라는 사람 말인데. 사실, 그 남자가 바로 마우린의 족장이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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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메달을 손에 넣기 위해 몰래 잠입한걸로 아는데. 이름도 리키로 바꾸고 말이야. 그에 원래 이름은 마키. 이 세상을 멸망으로 인도하려던 장본인이지. "
" … 리키가, 마키였다는건가. "
" 충격이 꽤 클거야. 란의 말로는 너와 리키가 꽤 친한 사이였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그들의 수법이였을거야. 남에게 신뢰를 쌓고, 행동을 실행하면서까지 절대로 의심을 받지 않는. 그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거지. 아마, 그때 문서를 가져간 것도 그 남자였을거야. 그때, 마우린이 마을에 습격해 조각을 빼돌렸을 때 말이야. 그리고, 너가 그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했을 때, 그 남자가 조각을 빼돌렸을 가능성이 있지. "
" 그 점에서 묻는건데, 어떻게 그 남자는 메달을 만질 수 있던거지? 그 메달은, 누군가에 절실한 염원이 담긴 목소리가 아니면 만질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
" 아마도, 그 남자의 염원에 쿠피디타스가 움직인게 아닐까싶어. 분명, 그가 저지르려던 행동은 악이였지만, 염원에는 선과 악도 없으니까. 설령, 그게 세상의 파멸이라고해도 말이야. 그것을 간절히 바라면, 쿠피디타스도 어찌할 수는 없었겠지. 아마, 다른사람들이 만질 수 없었던건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 란 또한 만질 수 없었던건, 그의 바램이 그 남자보다 적어서인게 아닐까해. 란이 쿠피디타스를 원했던 것도 순전히 마을의 행복을 위해서니까. 그것에 비교하면 그 남자의 소원은 너무나도 방대하달까. "
" 그래 …. "
결국, 그 메달은 선과 악의 구별이 없는 순수한 물체였다는건가 …. 그 덕분에 이런 결과를 낳게되다니, 죽은 란이 꽤나 원통하겠어.
" 그리고, 전에 말하던 그 사람 말이야. 마우린을 도와 조각을 건네준 사람. 그 사람이 다름 아니라 전에 사라진 우리 수색꾼이였던 모양이야. 사실, 그때 마우리스 산에 오른 사람이 한명이 아니라 두명이였거든. 살아돌아온 수색꾼은 그 한명이 마우린들에게 잡혀 들어갔다는 것 밖에 못봤다고해서 우리 쪽에서도 포기했었지. 꽤나 안타까웠어. 수색꾼에 몇 없는 여자일 뿐더러, 유일하게 조각을 만질 수 있는 녀석이였거든. 그런데 그녀를 찾게되다니. 너무 기분이 좋다고할까나? 하하 …. 아무튼, 그녀는 그동안 마우린들에게 협력을 했었나봐. 도와주지않으면 사지를 하나 하나 절단하고 고통에 몸부림칠 때까지 고문한다는 말에 하는 수 없이 도와줬겠지. 나라도 그랬겠지만, 물론 나는 그런 능력이 없어서 바로 죽었겠지만 말야. 하하. "
그 사람은 미즈오가 아니였단 말인가 … 후우, 다행이다. 미즈오가 아니라서. 만약, 그 사람이 미즈오였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왜 그들을 도와줬냐고 물었을까? 아니면, 어떻게 이런 곳에 있었냐고 물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안부를 물었을까? 아니, 그 어느 것도 속하지않는다. 나는 그녀를 보면 아무 것도 못할거다. 그저, 내 안의 나를 스스로 가둬 이 세상과의 단절을 요구하겠지 …. 정말, 다행이다. 그녀가 아니라서.
" 아무튼간에 무사해서 다행이야. 너라도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란의 죽음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렇게까지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은 끝났을테니까. 더군다나, 너 또한 그때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였잖아. 무슨 수로 움직였는지는 몰라도 아마 그때, 너의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메달이 네게 도움을 줬던 것 같아. 그렇지않으면 네가 그렇게 생생하게 움직일 수 있었겠어? "
메달이 내게 도움을 줬다라 … 그래, 그때 분명 나를 도와준건 사로이였다. 모든걸 포기하고 순순히 이 세상의 멸망을 지켜보려던 내 앞에 나타나, 절대로 포기하지말라고 말한 것도 사로이였다. 단지, 정말로 그때 사로이가 나타나 내게 그 사실을 말해줬던가에 대한 의문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만약, 그때. 내게 다시금 기운을 북돋아준 사람이 사로이가 아닌 내 자신이였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손이 오글거린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그 덕분에 이 세계를 지킬 수 있었어. 만약, 그때 아무 것도 나타나지않았다면 모든게 끝이 났겠지. 그러나, 이건 나 혼자서 해낸게 아니야. 그때, 란이 그 남자를 막지 않았더라면, 메달을 손에 넣기는 커녕. 나는 그대로 세상이 사라지는걸 볼 수 밖에 없었겠지.
란. 네가 없었으면 해낼 수 없었을거야. 네 덕분에 살았다. 비록, 너는 죽었지만. 그 행동과 마음은 내가 이어가마. 네가 내게 한 말처럼, 더 이상 이 세계는 그때로 돌아가지않을거야. 이 일은 모두 너의 공이다.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 . "
고맙다, 란.
" 아무튼, 오늘은 그만 쉬어. 때 아닌 일에 끼어들어서 진을 다 뺐을테니까. 충분하진 않겠지만, 한 1~2시간이라도 눈 좀 붙여. 그럼, 나는 이만 나가본다. "
라셀이 나가고 방 안에 홀로 남은 나는 그대로 이불 위로 누웠다. 라셀의 말대로 아까부터 몸이 늘어지는게 느껴진다. 이제 더 이상 무언가를 꾸밀 사람도, 막을 사람도 필요 없게 됬으니 이 이상 움직일 필요도 없겠지.
' …. '
조금씩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밀려오는 졸음을 더 이상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해가 뜨려면 고작 2~3시간 정도 남았지만, 이대로 밤을 세는건 불가능할 것 같다. 그렇다면, 조금만 자볼까. 잠깐이라도 잠을 자게된다면 지금보다는 낫겠지 ….
그리고 짧은 수면 뒤에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시 미래로 돌아왔다. 세상이 멸망했던 그때로 말이다.
P.s : 오늘은 저의 18살을 맞이하는 생일이네요. 그리고 내일은 이제 마지막 학생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고3이 될테죠. 2005년부터 2012년까지 많은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만난 사람들, 소설의 필력, 소설의 가지수. 모두가 하나 같이 저에겐 소중한 기억들이 되겠죠. 앞으로는 더욱 더 좋은 소설을 쓸 예정이지만, 그때의 추억들은 잊지 못할 것 같네요. 루에르 3화 ' 환란의 꽃 ' 입니다. 조만간 루에르 48편을 작성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즐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