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에르 [ 40 ~ 41 ]

by 아인 posted Feb 1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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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
이미 이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루에르

- 고동치는 보물 - 

1 ~ 2




  " 이곳이, 사로이가 말한 그 마을이란 말인가. 꽤나 고요한게 사람은 한명도 살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 "

  " 그래도 이런 곳에 아직도 마을이 남아있다는건, 누군가 한명쯤은 이 마을에 살고 있을거라 생각되지않나요? "

  " 뭐, 그렇게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뭐, 그건 직접 확인해야 알 수 있겠지. 그럼, 가볼까? "

  로빈과 나는 인적이 드문 한 작은 마을에 들어섰다. 그 마을은 루에르 마을과는 달리 외관상도 그렇고 낡고 허름한 건물들이 즐비하고, 사람의 인기척 또한 느껴지지않는 그런 마을이였다. 눈에 보이는건 낡아빠진 건물 속 흐르는 작은 놋물, 놋물과 함께 우물로 흘러들어가는 그들의 썩은 물 또한 악취가 심하게 풍겼다. 사로이의 말대로라면 이 마을엔 또 하나의 비밀이 숨겨져있겠지. 나와 로빈은 그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뜬 눈으로 밤을 센지 어언 일주일이 넘은 것 같다. 머리는 부시시하고, 얼굴은 푸석 푸석한게 그닥 기분이 좋진 않다. 하지만, 그런 고생쯤이야, 내가 전에 느꼈던 느낌과는 정 다르지. 지금은 이렇게 마음 한켠이라도 편하겠지만, 그때의 나는 마음을 편히 쉴만큼의 여유를 못 느꼈으니까. 그러니, 조금은 지금 이 상황이 그나마 낫다는 정도? 하지만, 그때까지 이 평온함이 남아있었으면 좋겠군. 

  ' …. '

  그나저나, 아까부터 로빈이 말이 없는게 조금 이상하다. 평소 때 같았으면 이런 침묵은 찾아 볼 수 없을텐데. 오늘은 유난리 말 수가 적다. 무슨 이상한 낌새라도 느낀걸까, 아까부터 뭔가를 경계를 하는 눈치가 꽤나 신경 쓰인다.

  " 로빈, 무슨 문제있어? 아까부터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던데. "

  " 에? 아. 아뇨, 문제라뇨. 그런거 없어요. "

  " 그런데 왜 그렇게 긴장을 하고 있는거야?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

  "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냥, 아까부터 기분이 이상해서 …. "

  기분이 이상하다는 말과 함께 로빈은 어색한 미소를 띄며 내 옆에 슬쩍 달라붙으며 걷는다. 역시나, 로빈의 행동은 전과는 달리 수상하다. 말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렸지만, 이런 행동을 보일 때마다 우리한텐 무슨 일이 일어났다. 그러니, 만약 내가 짐작했던대로라면 조만간 우리들 앞에 무언가가 닥치겠지. 그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로빈은 지금 무언가를 의식하고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낯선 곳에 엄마와 같이 와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않으면 마음이 놓이지않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나는 조금이나마 로빈이 평온함을 찾아주기위해 살짝 로빈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한동안 마을을 거닐던 그때 어디선가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한 사당을 발견했다. 그 사당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않은 채, 수많은 시간을 견딘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듯, 꽤 많이 낡아 있었다. 그 전에도 나는 한번 이런 모양을 한 사당을 본 적이 있다. 아마, 본 적이 있었다면 과거의 루에르 마을에서였을테지만. 사당을 보자마자 아까부터 뭔가를 의식하던 로빈의 떨림이 증가했고, 나는 그런 로빈을 안심시키기위해 서둘러 사당 주위를 벗어났다. 역시, 로빈은 무언가가 자신을 덮칠거라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 말은 우리들이 이곳에 많이 머물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말이겠지. 마음 같아선 서둘러 이 마을을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찾지도 못했으며, 로빈의 말대로 이곳에 사람이 사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었기에. 단 1분이라도 이곳에 남아 그들의 지난 행적을 밟는게 내가 해야할 일이다. 

  ' …. '

  그렇다고는 해도, 로빈이 이런 상태에서 계속 이 마을에 머물면 무슨 문제라도 발견하겠지. 로빈이 다시 안정을 찾을 때까지는 이 마을은 당분간 출입을 금해야겠다. 나는 로빈을 데리고 서둘러 마을 밖으로 벗어났다. 그리고 그제서야 마을에서 나온 로빈은 안정을 차린 듯, 금세 새하얗던 얼굴이 붉게 물든다.

  "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

  " 그런 소리하지마. 우린 동료라고, 누구 한 사람이 아파서야 되겠어? 괜히 억지부리고 움직여봐야 상황만 악화될 뿐이야. 무슨 이윤지는 모르겠지만, 로빈은 저 마을에 들어가는걸 별로 원치 않는 것 같으니 일단은 돌아갈까? "

  로빈은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로빈과 함께 그곳을 빠져나왔다. 로빈도 내가 한 말의 의의를 알고 있는지 순순히 내 말에 응해주었다. 안타깝게도 마을에서 중요한 단서를 찾지는 못했지만, 그 단서는 나중에 찾아도 괜찮을거다. 다만, 그곳에 사람이 있다면 내 예상과는 빗나가겠지만. 

  " 그런데 로빈, 아까 전부터 물어보고 싶은게 있었는데 물어봐도 될까? 왜, 그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그렇게 뭔가에 쫓기는 듯이 벌벌 떨고 있던거야? 무슨 이상한 낌새라도 느낀거야? "

  " 그건 … 후,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왠지 모르게 저한테는 그런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

  " 능력 … 이라고? "

  " 네, 저도 얼마 전에 안건데. 저는 특정한 장소에 들어가면 방금 전과 같은 떨림증상이 일어나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해요. 그리고, 천천히 뭔가에 감시를 당하는 마냥, 안심할 수 없게 되고요. 더군다나 아까 전에 갔던 마을에도 똑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아마, 그 장소도 무언가가 관련되 있는게 분명하겠죠. "

  어떤 특정장소에 들어서면 그러한 증상들이 일어난다라 …. 

  " 그런건가 … 하지만, 왜 하필이면 그런 증상이 일어나는거지? 혹시 전에도 그러한 증상이 있었어? "

  " 아뇨, 그런 증상은 없었지만서도. 제가 워낙 그렇게 사건을 일으키는 성격은 아니였으니까요. 아마도 제 생각으론 ' 그 일 ' 이 발생한 이후 였던 것 같아요. 그렇지않다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적이 한번도 없다는건 이상하니까요. "

  하긴, 만약 그렇다면 로빈은 지금쯤 탐정이 됬을지도 모르지. 로빈의 말대로라면 그 증상은 그 일로부터 야기된건가. 뭐, 그렇다고해도 그리 이상하진 않지만. 그리고 이런 증상은 전에도 볼 수 있었다. 그때, 로빈과 함께 잿빛산을 향하려할 때도 로빈은 이런 행동을 보이며 잿빛산에 가는 것을 꺼려했지. 하지만, 그때 나는 로빈의 행동을 가볍게 여기고 그곳에 간 결과. 꽤나 불편한 접대를 받았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그 결과, 나는 이 세상과 관련된 일들 중 하나를 알게됬고, 그 사실 하나말고도 수 많은 진실과 거짓이 혼돈한다는 사실에 발 벗고 이러한 상황에 뛰어들게된 계기니까. 어떻게보면 로빈의 능력은 나한테는 최적의 힘 아닌가싶다. 그리고 그때, 잿빛산을 떠나려던 나한테 했던 사로이의 말도 그때서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이해가 간다. 

  “ 세상을 혼자서 짊어지는건 힘들지라도, 둘이라면 조금은 힘이 덜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여자의 힘이 절실하다. 그러니, 너는 어떻게하면 그녀의 힘을 의롭게 사용할지에 대해 조금은 공부해놓는게 좋겠군. ”

  그냥, 간단히 ' 로빈의 힘을 빌려! ' 라고 말하면 될 것 가지고, 괜히 말만 번지르르하게 한다. 하지만, 그런 점이 사로이의 매력이라고 해야할까나? 아무튼, 사로이를 포함한 마키 족이란 부족은 꽤나 재밌는 집단이다. 겉으로는 조금 냉정하고 차가울지는 몰라도, 그 속은 그 누구보다도 따뜻하다는걸 약간은 알게된 나한테는 그들은 이 세상에서 만난 두번째 사람이자, 동료들이니.

  " 오늘은 이만하고, 이 근처에서 쉬도록 하자. 날도 저물었고, 우리 둘 다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는 것 같으니까. 오랜만에 푹 자고, 내일부터 다시 움직이자. "

  나의 말에 로빈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와 함께 마을 근처에 적당한 누울 곳이 있을지 살펴보았다. 다행히, 새벽녘에 흐르는 이슬 정도는 막아줄 것 같은 나무 근처에서 쉬기로 했다. 그리고 밤새 우리들을 한기에 몰아넣을 쌀쌀한 바람을 막기위한 모닥불을 피워, 조금이나마 따뜻함을 유지하기로 했다. 더군다나, 슬슬 겨울이 되려는지. 아침공기는 꽤 차갑다. 그 때문에 자칫하면 감가라도 걸릴지 모르니, 모닥불은 필시 중요하겠지.

  ' …. '

  잠깐 나무에 기댄 것 뿐인데, 로빈은 이미 잠들어있었다. 하긴, 피곤했을거다. 그동안 하루도 쉴 틈 없이 계속 걸어왔으니까. 그나저나, 오늘은 밤하늘에 보름달이 떴다. 아마도 지금 쯤 마키 족도 움직이기 시작했겠지. 왠지, 그 일이 일어난 후로 보름달을 볼 때마다 조금씩 심장이 요동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왜일까, 뭣 때문에 내 심장이 이렇게 뛰는지는 모르겠다. 이미, 오래된 시간 속에 묻힐 과거의 추억일텐데도, 오늘은 꽤나 쓸쓸한 기분이다.

  " 하아 …. "

  언제까지나 이런 기분으로 밤을 맞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가는 그 날의 기억을 잃고, 평소와 같은 행동을 하며 하루를 보내겠지. 그 어느 때처럼 말이야.

  “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 ”

  란 … 애석하게도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아. 이미, 당신의 딸 로라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당신 딸은 이미 당신과 함께 있을테니까. 내가 당신 딸을 볼 수 있는건 과거로 돌아가는 것 밖에 없으니까. 당신이 내게 부탁했던 것처럼, 내가 당신의 말을 들어줄 수 있다면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 하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일이겠지. 당신이 이룬 그 꿈을 내가 못 이뤘으니 말이야. 당신이 부탁한 그 소원 역시 나는 지킬 수 없을지도 ….



  " 루에르 씨, 이만 일어나세요. "

  어느덧 잠에 든 듯,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하늘은 밝아졌다. 밤새 이런 저런 고민에 휩싸여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할거라 생각했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그리 쉽게만은 되지않는 것 같다. 그래도 오랜만에 취한 잠자리라서 그런지 몸이 조금 개운해진 기분이다.

  " 어때, 로빈. 오늘은 갈 수 있겠어? "

  마음의 안정을 위해 잠시 취한 그간의 휴식을 통해 로빈도 조금은 안심이 되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 그럼, 가볼까? 어제는 미처 발견하진 못한 보물, 누군가가 먼저 와서 가져갈라. "

  실 없는 농담까지 할 수 있는걸 보면, 어느 정도 안정이 된 것 같다. 바닥까지 긁어모아서라도 끌어오르던 인내심은 이제 오늘부로 사용하지않아도 되는건가. 이제, 나만의 스테미나로 다시 한번 새로운 진실을 향해 도약하게 되는거겠지. 밤부터 아침까지 우리의 체온을 대신한 모닥불을 근처에 모래를 주워 뿌리곤 마을로 향했다. 비록, 괜찮다는 말은 했지만 정말로 로빈이 괜찮을지는 잘 모르겠다. 로빈의 말로 의하면 특정 장소에 무언가가 얽힌 기억이 남아있으면 그런 증상은 매번 발생한다고는 했는데. 과연, 하루 정도 쉬었다고 그 증상이 나아질까? 괜시리 마음 한쪽은 로빈을 향해 기울어있었다.
  얼마 걷지않아 눈 앞에 나타난 마을은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초췌한 모습을 나타냈다. 사람이 산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그럴 가능성은 없어보이는 마을이다. 하지만, 이 마을 어느 한 곳에는 내가 찾는 무언가가 잠재워져있겠지. 그것을 확인하는게 나와 로빈의 의무. 그리고 그것을 파악해야만 다음 장소로 갈 수 있다. 제일 첫번째 코스인 이 마을에서 사로이의 부탁을 이루기만 한다면 말이다.

  " 로빈, 괜찮아? "

  " 네, 아예 증상이 나타나지않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제보단 조금은 나은 것 같아요. "

  로빈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어제보단 괜찮다곤 했지만, 여전히 떨리는 로빈의 몸과 또 다시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긴박한 그녀의 얼굴을 보니 또 한번 의욕이 꺾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로빈도 저렇게 나를 위해 괴롭지만 참아가는데 내가 참지 못하면 되겠느냐 싶어. 그런 로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금 더 마을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보기로 했다.
  밖에서 본 마을의 모습과는 달리 꽤나 깨끗하고 고풍스러움이 물씬 느껴진다. 어제는 지친 몸과 더불어 우리의 몸을 짖누르던 피로 때문에 제대로 이곳을 탐방하지 못해서일까, 오늘은 왠지 다른 곳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이 마을은 너무나도 위엄이 느껴졌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알 수 없는 분위기와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선다. 내 옆을 따라 걸어오던 로빈조차 이 모습에 감탄한 듯, 할 말을 잃고 주위를 둘러본다.

  " 여기가 정말, 어제 우리가 왔던 마을이 맞는걸까요? 어떻게 하루 사이에 이런 모습으로. "

  " 아마도, 미처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거겠지. 어제는 이런 저런 일 때문에 경황이 없었잖아. 하지만, 덕분에 이젠 확신이 섰어. 분명, 이곳엔 우리가 찾는 ' 보물 ' 이 있을거라고. 더군다나, 로빈의 증상 역시 특정한 장소에만 일어나는 케이스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보물은 이곳에 있을거야. 아니, 있어. "

  나의 말에 로빈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웃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보물이 있다고 확신한건 아니다. 약간의 의심도 들지만, 그렇지않다고도 말 못하겠다. 왠지, 로빈만이 아닌 나한테도 이 마을엔 무언가가 있다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알기 위해선 아직도 우리한테 남은 일이 많으니까, 그 일을 차차 헤쳐나가기 전까진 그 보물의 모습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더군다나, 예상과는 달리 그리 황폐한 모습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리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과 이것의 차이가 조금은 난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이 마을엔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

  " 그런데 루에르 씨, 어제 분명히 이 근방에 사당 같은게 있지 않았나요? "

  " 응? 아, 그래. 분명 이곳에 사당이 있었지. "

  " 그런데 왜 오늘은 그 사당이 없는거죠? 어제까지만해도 저쪽에 있어야할 사당이 오늘은 없어요. "

  " 뭐 … ? "

  사당이 있어야할 자리에 사당이 없다며 이상한 낌새를 느낀 로빈이 내게 말했다. 나는 로빈의 말에 황급히 고개를 돌려 사당이 있던 곳을 돌아봤고, 로빈의 말대로 그곳에 있어야할 사당은 쓸쓸한 바람만을 남기고 사라져있었다. 

  " 분명, 어제까지는 저곳에 있었는데 …. "

  당황스럽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분명, 이곳엔 아무도 없고 온 것도 우리 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루 밤 사이에 사당이 흔적도 남기지않은 채 완전히 소멸될 수 있는거지? 이건 자연의 힘이 아니라, 완전한 사람의 손길이 닿은거다. 그렇지않으면 이렇게 깔끔하게 사라질 수는 없겠지. 

  ' ! '

  그렇다는 말은 이곳에 사람이 산다는건가? 

  " 루. 루에르 씨, 저. 저기 …. "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른 로빈을 보며 나는 재빨리 로빈이 가리키는 건물 쪽으로 달려갔다. 로빈이 가리킨 곳에는 무언가가 꿈틀대는 모습이 보였고, 그 근처에 놓여진 건물 잔해들을 하나 하나씩 주워담으며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간다. 설마, 로빈이 말한 사람이란게 바로 저 사람이였나? 젠장, 그렇다면 놓칠 수 없다!

  " 이봐요! 잠깐, 잠깐 저희랑 얘기 좀 나눌 수. "

  그때, 순간적으로 내 눈 앞에 수많은 잔해들이 나를 위협함과 동시에 오래되어 낡아빠진 두건을 쓴 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 너희는 누구지? 누구길래, 감히 내 마을에 함부로 발을 디딘 것이냐? 너 또한, 나를 죽이기 위해 온 것이야? 하지만, 그렇게는 안되지. 내가 죽기 전에 내가 먼저 널 죽여버리겠다!! "

  그는 이내 이성을 잃은 듯, 들고있던 나무막대를 나를 향해 내리쳤고, 나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사람은 바닥에 쓰러진 나를 향해 들고 있던 자재들로 나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했고, 그것으로 인해 나를 기절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그게 정상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라면 이미 나는 오래 전에 정신을 잃었을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이 들고 있는건 이 마을을 지을때 사용된 오래된 자재들 뿐. 세월의 무게를 감당할 정도로 그가 나에게 던지는 자재들은 그리 튼튼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 자재들은 나와 부서지면 그 동시에 산산조각이 나기 때문에 내게 타격을 주긴 주지만, 그리 큰 충격을 주진 못한다. 그렇게 그 사람에게 공격을 당한 나는 그가 더 이상 내게 던질게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이. 이 자식, 아직도 살아있는거냐?! "

  " 죄송한 얘기지만, 저는 당신을 살해하려 온게 아닙니다. 다만, 알고 싶은게 있어서요. "

  " 뭐? 그게 무슨 말이냐? 알고 싶은 일이라니? 내가 그걸 네 녀석한테 알려줄 것 같으냐?! "

  " 하지만, 그렇지않으면 저도 이곳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일주일동안 이곳을 찾기위해 제 친구와 함께 지금껏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저희에게 돌아가라하면 저희들도 쉽게는 못간다는 말입니다. "

  " 그래서, 나를 협박이라도 할 생각이냐? 택도 없는 소리하지 말아라! 나는 절대 너희들한테 한마디도 해주지 않을테니까! "

  " … 부디, 부탁드립니다. 제발, 저희들을 도와주세요. "

  " 너.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는거냐? 당장 일어나지 못해! "

  " 이렇게까지 하지않으면 당신은 우리들에게 협력을 하지 않을거 아닙니까? 그러니, 이정도 행동은 사치일 뿐이죠. 그러니,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부디, 저희를 도와주세요. "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간청한 나의 부탁에 그 남자는 한참동안 말을 잃고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만약, 우리가 찾는 사람이 이 사람이 맞다면 이 사람은 ' 그것 ' 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게 있겠지. 그가 우리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기만 한다면, 사건의 진실은 조금씩 파헤쳐나가는 단계에 들어서게 되겠지. 하지만, 의외다. 정말로 이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게 말이다. 물론, 이 마을을 찾아 떠나기 전 사로이가 내게 말했던 말이 있었지만, 잠시 잊고 있었는데 … 역시, 그랬던건가.

  " 제발, 부탁드립니다. 부디 저희를, 이 세상을 위한 한 걸음을 내딛도록 도와주세요. "

  " … 이거 참, 난처하게 됬군. 생판 모르는 남에게 무릎까지 꿇게하고 말이야. 하지만, 아는것 많은 것들 중에 극히 소수일 뿐인데. "

  " 그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부디, 제게 그때의 그 사실을 말씀해주세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 이거, 이거 원. 알았네 알았어. 그러니까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게. 계속 그러고 있으니까 내가 미안하지 않는가? 이만 일어나네. "

  " 정말, 도와주시는겁니까? "

  " 그래, 그래. 도와주겠네. 그러니까 그만 일어나게. 늙은 노인네 힘들게하지 말고. "

  가까스로 그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내 값 싼 무릎이 그 빛을 발한게 됬다. 이제 남은건 이분이 하는 말씀 뿐, 그것만 듣는다면 우리는 조금 더 이 세상의 멸망에 대한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되는 셈이 되겠지.

  " 그쪽 처자도 젊은이랑 같이 온거겠지? 이제 괜찮으니까 이쪽으로 오게. 더 이상, 자네들은 침입자가 아니니 말이네. "

  그 사람의 말에 로빈도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 듯, 이쪽으로 성큼 성큼 다가온다. 

  " 이곳에서 얘기하기는 뭐하니까, 내 집으로 가지. 그곳이라면 조금은 쉴 수 있을게야. "

  그는 아까와는 달리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로빈을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마을은 꽤나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밖에서 봤을때는 몰랐는데, 이 마을은 아마 강이 있었던 자리까지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강은 이미 말라서 큰 구덩이만 만들었지만. 그 근처 한 낡은 건물 앞에서 그는 발걸음을 멈췄고, 뒤를 따르던 나와 로빈 역시 자리에서 멈추곤 슬쩍 그 건물을 바라봤다.

  " 꽤 오래된 건물 같네요. 줄곧 이곳에서 지내신건가요? "

  로빈의 물음에 그는 이내 그윽한 눈으로 건물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그렇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곳에서 지냈지. 그때의 마을은 이렇지 않았는데 …. "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나와 로빈을 안으로 들였다. 그가 오랫동안 지낸다는 건물 안을 들어서자마자, 깊은 향의 냄새가 코를 찌르며 우리 앞을 지나갔다. 그리고 현관을 지나자 보이는 벽에 걸린 수많은 그림들. 그 그림은 항상 이 마을의 모습이 담긴 그림들로 빼곡했다. 아마, 이 그림들은 모두 저 어르신이 그린거겠지. 그렇지않으면 이 그림들을 무엇으로 말하겠는가. 굳이, 이런 모습으로 그려도 됬을까싶을 정도로 어르신은 마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잠깐동안 느낀거지만, 어르신은 원하고 있다. 그때의 모습을.

  " 복도에서 뭘하고 있는건가? 얼른 방으로 들어가지않고. "

  " 이 그림들, 모두 어르신께서 그리신건가요? "

  나는 벽에 걸린 그림들을 가리키며 어르신에게 물었고, 어르신은 한참을 그림들을 쳐다보며 향수에 빠진 듯, 평온해보이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 뭐, 그리 대단한건 아니네. 그냥, 머릿 속에서 떠오르는걸 그대로 그린 것 뿐이니까. 물론, 지금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그림들이지만 말이야. "

  " 그럼, 이것들은 모두 머릿 속에 담긴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그리신 그림들이란 말인가요? "

  " 그렇지, 그렇지않으면 이 그림들을 어떻게 그렸겠는가? 자네들도 알다시피 이 마을은 오래 전에 끝났어. 더 이상 이 마을엔 아무도 살지않지. 나를 제외하곤 말이야. "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어르신은 차를 갖고 오겠다며 주방으로 향했고, 나와 로빈은 어르신이 알려준 방으로 들어가 잠시나마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어르신의 방 안에도 그가 그린 그림들로 가득했다. 어르신은 그때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그리워하는거라면 아마 저게 아닌가 싶다, 벽을 가득 메운 그림들 속에서도 딱 한 그림만은 마을을 그린게 아닌 자신의 가족들을 그린 것 같은 사람들로 그려진 그림이 눈에 보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 드르륵 」

  문을 열고 어르신이 안으로 들어왔다. 로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르신이 들고있는 찻상을 대신 받아들고는 조심히 바닥에 내려놓는다. 어르신은 내게 향긋한 허브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찻잔을 건네시면서 조금이나마 언 몸을 따뜻하게 해줄거라는 말을 하며 자신도 찻잔을 든다. 

  ' . '

  허브티의 따듯하고도 산뜻한 맛이 몸을 가득 채우는 듯한 느낌이 들며 조금은 한기가 돌던 몸에 따스함이 찾아왔다. 로빈 역시 허브티를 마시며 몸을 녹이는 듯 싶었고, 그런 모습을 보며 어르신은 흡족한 미소를 띄며 찻잔을 비워낸다.

  " 이렇게 쌀쌀한 날에는 허브티가 최고지. 옛날 내 어머니께서도 허브티를 즐기셨다네. 그 때문인지, 옛날부터 어머니를 따라 마시던 허브티를 지금까지도 마시고 있는걸 보면 참 재밌는 현상이지. 그 때는 죽어라 먹기 싫던 허브티가 늙어서 제 빛을 내는지 죽어라 먹고 싶으니까. 자네들에게는 허브티가 조금은 맞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

  " 아니에요. 맛있어요. 이렇게 맛있는 허브티를 마시는건 처음이에요. "

  " 그런가? 하하, 그렇게 말해준다니 나는 고마울 따름이지. "

  어르신은 웃으며 주방에서 마저 차를 갖고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려하자, 옆에 앉아있던 로빈이 대신 갖다오겠다며 어르신을 자리에 앉히고 자기가 주방으로 향한다. 로빈이 주방으로 가고 어르신 방에 단둘이 남은 나는 슬쩍 어르신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 왜 그런가? 자네한텐 허브티가 맞지 않는건가? 이거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냉큼 다른 차로 준비해오겠네. "

  " 아뇨, 허브티는 충분히 즐겼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어르신에게 묻고 싶은게 있어서요. "

  " 나한테? 아, 그랬지 참. 그래, 맞아. 방금 전에 내게 무언가를 물어본다고 했었지. 그런데 그렇게 성급히 해도 되는건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몸을 좀 녹이는게. "

  " 로빈이 오기 전에 묻고 싶은 말이 있어서입니다. 로빈이 오면 차마 물어보지 못할 것 같으니까요. "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찻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며 얘기를 이어가던 나는 말을 멈추고 찻상에 놓여진 찻잔을 들어 안에 남아있는 허브티를 입에 털어넣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어르신은 내가 보이는 이상한 행동에 무언가를 느낀 듯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며 이내 얼굴색을 바꾸곤, 아까와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 대체 뭘 알고 싶은겐가? "

  " 어르신. 아니, 당신 … 이 마을에 살고 있지 않지? "

  "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이 마을에 살고 있지 않다니? 보다시피 나는 이 마을에. "

  " 내가 묻는건 그게 아니야. 당신의 육체를 묻는거지. "

  " ! "

  역시나, 내 짐작이 맞는건가 …. 어르신은 나의 말에 살짝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내 나와의 시선을 회피한다. 그리곤 숨을 몇번 고르곤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곤 입을 연다.

  " 그게 무슨 말인가? 육체라니. "

  " 당신, 오래 전에 죽었지? "

  " ! "

  아까와는 달리 확연히 드러나는 모습에 나는 확신을 서게 됬다. 지금 나와 대화를 하는건 사람이 아닌 영혼, 즉 유령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이곳에 남아 나와 이야기를 건네는 그도 이미 자신이 유령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 하지만, 왜 그가 살아있는 사람에게 모습을 보이면서까지 이곳에 머무른건 대체 무엇 때문이였을까? 그저, 무언가를 갈구하는 영혼의 한을 풀기 위해서일까? 그렇다면 대체 이 자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

  ' ! '
  
  역시, 그것 뿐인가 …. 



  P.s : 뭐 좀 확인하다가 겜게에 루에르 40편, 41편이 없는걸 보고 뒤늦게 올립니다.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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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탓하지마라.

시간을 흘려보낸건 나 자신이다.

시간은 주어진게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연히 나라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그 시간의 흐름에 어떻게 따라가느냐의 내가 증명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증명해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