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에르 57

by 아인 posted Feb 2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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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
이미 이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루에르

- 망각의 덫 - 

4




  처음부터 그 녀석은 내게 쿠피디타스에 대해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자기 딸을 구할 수 있다는 달콤한 말에 넘어간 척하면서, 그저 나를 장난감 놀이하듯 놀아난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느껴졌다. 내가 책을 읽기 전에 했던 말도 괜히 내 골치나 아파라하고 내뱉은 말이 아닌, 자신이 진정으로 내게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였다. 난 단순히 책 안에 뭔가가 있을 줄 알아서 지금껏 읽었는데. 그저 나를 갖고 논거잖아?!

  「 벌컥 - ! 」

  난 황급히 방문을 열어 제꼈고, 그 안에는 침대에 누워있는 로빈을 안쓰러운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헥헥거리며 안으로 들어온 나를 보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걸어온다. 그리곤 희안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 책은 벌써 다 읽은건가? 예상 외로 빠른 속도로 읽었군. "

  " 너 이 자식, 처음부터 나한테 알려줄 생각이 없던거냐?! "

  " 뭐가 말인가? "

  " 다 알고 있으니까, 시치미 떼지마! 너, 네가 가지고 있는거지? 처음부터 네가 갖고 있던거지!! "

  " … 눈치챈건가. "

  " 뭐? "

  그는 나를 바라보며 살짝 놀랍다는 듯한 액션을 취하며 슬쩍 나의 어깨를 손으로 꾸욱 누르며 내 옆을 지나쳤다. 나는 그를 돌아보며 왜 내게 그 사실을 숨긴거냐고 물었지만, 그는 대꾸도 없이 설렁설렁 방 안을 걷는다. 그 모습에 살짝 화가 나려는 나는 그를 노려보며 다시 한번 그에게 소리쳤고, 그는 이내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돌아본다.
  
  " 그걸 내가 네한테 알려줘야하는 이유가 뭐지? 굳이 내가 힘들게 너한테 설명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를 제시해봐라. "

  " 너 … 라이제르를 구할 생각이 없는거냐? 그런거야?! "

  " 더 이상, 내 딸을 가지고 협박 한들, 나는 절대 너를 도와줄 생각이 없어. 하물며, 라이제르가 죽는다해도 내 생각은 변하지않아. "

  " 뭐. 뭐라고?! "

  나는 그가 내지른 발언에 할 말을 잃고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 너, 그게 정말이냐? 정말 라이제르가 죽어도 괜찮다는거냐!! "

  " 그 녀석이 죽던 말던 나와 무슨 상관이라는거냐? 그 녀석은 더 이상 내 딸이 아니야!! "

  " 너 … 지금 뭐라고 …. "

  그때, 소리 없이 흐느끼는 문소리와 함께 라이제르의 모습이 보였다. 

  " 라. 라이제르 … ? "

  문 틈 사이로 보이는 라이제르를 본 그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으로 라이제르를 바라봤고, 방금 전 그가 내뱉은 말을 들은 라이제르를 심한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로 황급히 어디론가 달려간다.

  " 라이제르!! "

  뛰쳐나간 라이제르를 따라 가려는 그를 나는 막아서며 그에게 다시 한번 그에게 방금 한 말을 되물으며, 정말 후회할 자신이 없냐고 물었지만, 이미 그는 내 말은 귓등에도 닿지않는 듯, 그의 애처로운 손짓만이 라이제르가 서있던 자리를 가리켰다.

  " 지금 내가 … 무슨 짓을 한거지 … ? 내가, 내가 지금 라이제르에게 무슨 …. 내가 지금 라이제르에게 무슨 짓을 한거냔 말이야!!  "

  " 너 …. "

  그는 바닥으로 주저 앉으며 방금 자신이 라이제르에게 한 말을 떠올리며 심한 후회에 휩싸인 듯한 모습으로 괴로워한다. 그는 바닥으로 쓰러지며 도저히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건지, 다짜고짜 자신의 목을 손으로 짓누르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나는 그의 손을 붙잡았지만, 도저히 내 힘으로는 전혀 그의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1초 2초가 지날 수록 더욱 더 그의 목은 짓눌렸고, 괴로운 듯 기침을 하는 그를 보며 나는 다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 ! "

  그 순간, 내 눈에 집힌 의자 하나가 보였고, 나는 급히 의자를 집어 들어 그대로 그를 향해 내리쳤다. 

  「 콰직 - ! 」

  의자로 내리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은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부서진 의자를 들어 그를 향해 내리쳤지만, 그럼에도 멈출 줄을 모르는 그의 행동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대로 그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계속 저 지경으로 냅두면 몇분 안에 죽을지도 모르지만, 저걸 막을 방법도 마땅히 떠오르지않으니, 내 속만 까맣게 타들어갈 뿐이다. 갑자기 왜 저 남자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 남자의 행동을 멈추는게 먼저다.

  " 제발 정신 좀 차려! 갑자기 왜 이러는거야?! "

  부족하다는 것을 앎에도 그 모습을 멀뚱히 쳐다볼 수는 없던 나는 죽을 힘을 다해 그의 손을 잡아 당겼지만, 전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불어 내 팔만 아플 뿐이다. 결국 나는 최후의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고, 나는 그대로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냅다 꽂았다.



  " 하아 … 하아 …. "

  가까스로 그를 기절시킨 나는 피로 범벅된 손을 옷에 닦으며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옆에 쓰러진 그의 얼굴은 도저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졌다. 그 소동에도 로빈은 곤히 잠들어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 그나저나 이 녀석, 갑자기 왜 그런 짓을 한거지? 아까 서재에 있던 것과는 완전 딴판이잖아? 자신의 딸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건다는 사람이 갑자기 그런 행동을 보일 뿐더러, 그런 말까지 하다니 …. 도저히 제정신으로 했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모습과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히 그의 행동을 저지했지만서도 라이제르가 받은 정신적 충격을 어쩔 수 없는건가 …. 이 자식, 왜 하필이면 그런 말을 라이제르가 있는 자리에서 말하다니, 넌 부모 자격 실격이야.

  " …. "

  하지만 정말로 이 녀석이 왜 그런 행동을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건 그 뒤에 일이다. 어쩌다가 홧김에 내뱉은 말일 수도 있는데 그걸로 갑자기 자신의 목을 조르다니, 그것도 있는 힘껏 말이야. 더군다나 그 정도로 괴로우면 보통 멈추는게 정상인데 그는 전혀 멈출 낌새가 아니였어. 정말로 내가 말리지 않았다면 이 녀석은 정말로 죽었을지도 …. 

  ' ! '

  자신의 목을 조른다 …? 설마, 이 녀석 ….



 “ 그 병은 아주 무서운 병이자, 끔찍한 상황에까지 몰고 가는 병이지. 그 병에 걸리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가 없다네. 아니, 살고 싶은 생각도 못하게 되지. 그저, 자신을 비관하고 증오하며 자신의 손으로 자기의 목숨을 빼앗는,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가 우리 인간에게 준 병으로 전해지고 있지. ”
  


  페니턴트에 걸린건 … 가?



  그 후, 한 2시간 후에 그가 눈을 떴다. 나는 그가 눈을 뜨기 전, 약간의 치료와 함께 그의 코뼈를 맞추는 작업을 시행했고, 가까스로 그의 코를 살릴 수 있었다. 뭐, 이렇게 말해도 살짝 금만 간 것 뿐이지만 …. 그래도 가벼운 상처라도 몇주면 낫게 될거니 그리 신경은 쓰지 않아도 된다. 아, 물론 내가 ….

  "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 ? 내가 깜빡 졸았던 모양이군. "

  그는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으로 내려왔고, 눈을 비비면서 슬쩍 건드린 코에서 통증이 느껴졌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거울 쪽으로 걸아간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몰골을 보곤 깜짝 놀라며 왜 자기가 이렇게 됬는지 모모르는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에게 잠시 기억 못할 일이 있었다며 그를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고, 그는 내 쪽을 돌아보며 화들짝 놀란다.

  " 네가 왜 내 방에 있는거지? 그리고 내 얼굴을 왜 이렇게 된거지? "

  " 그 일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

  " 네가 날 이렇게 만든건가?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

  " 뭐 … 그렇다고 볼 수도, 아니 그렇지. "

  순간적으로 내 얼굴로 날아온 고의적인 주먹에 나는 뺨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 미처 피할 생각도, 의사도 없던 나는 그대로 주먹을 받아 들이며 제자리에 멈춰섰다.

  " 뭐가 어떻게 됬든, 내가 널 그렇게 만든건 맞으니까 그냥 맞기는 할텐데, 그 전에 너에게 묻고 싶은게 있다. "

  " 닥쳐! "

  나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연타로 날아오는 주먹을 가볍게 피하며 그대로 그를 벽으로 밀어 붙였다.

  " 때릴 시간은 나중에 줄테니까, 일단은 내 말부터 들어. "

  " 닥쳐! "

  " 나 참 …. 어쩔 수 없는건가. "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으려는 그를 보며 나는 일단은 용서를 구하고 그대로 그의 배를 무릎으로 찍고는 그를 조심스럽게 바닥으로 앉혔다. 그는 밀려오는 고통에 말이 안 나오는지, 꺽꺽거리며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그와의 눈높이를 맞추며 방금 그에게 하려던 말을 꺼내 그에게 물었다.

  " 쿠피디타스는 어딨지? 네가 갖고 있는거 맞지? "

  " 끄 … 끄윽 …. "

  역시나 그는 아무 말도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직접 그의 몸을 더듬거렸고, 가까스로 바지주머니에 들어 있는 메달을 발견했다.

  " 역시나 네가 갖고 있던거냐 …. 왜지? 왜 이걸 갖고있음에도 내게 알려주지않은거지? 라이제르의 병을 고치고 싶지 않은건가? "

  " 우 … 웃기지마. 난 누구보다 더 라이제르의 병이 낫기를 기도하는 사람이다. "

  " 그렇다면 왜 내게 숨긴거지? "

  " 네 녀석이 그 병을 낫게할 수는 없을테니까, 그저 쿠피디타스를 얻기 위한 도구로 내 딸을 사용한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 녀석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줄 알았다는건가? "

  그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어떤 말도 반박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이 백번 옳았고, 그의 말대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더군다나 치료법도 모르는 이 시점에서 고칠 수 있다는 말을 한 나를 의심하는건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그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어떻게서든 쿠피디타스만 있으면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이걸로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저 들고만 있으면 뭔가 일어날 줄만 아는 공상에 빠진 것 밖에 …. 

  " 네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것을 가졌으니, 이제 이 마을에서 떠날거겠지? 더 이상 이곳에 볼 일이 없을테니까. 나도 더 이상 네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썩, 이 마을에서 나가라 …. "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고, 말 없이 바닥만을 주시하는 나의 옆을 지나쳐갔다.

  " 아니, 아직 이 마을을 떠날 수 없다. "

  " 라이제르가 죽는걸 보고 나서 떠날 셈인가? "

  " 라이제르는 죽지 않는다. "

  " 뭐? "

  나는 이내 비장한 얼굴로 그를 향해 말했다.

  " 나는 그 병을 고칠거다. 그러기 전까진 이 마을을 떠나지 않겠다. "

  " 무슨 수작이냐, 아직도 우리 마을에서 빼먹을게 남았다, 이건가? "

  " 그런게 아니야. 단지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한 것 뿐이다. 아무런 욕심도 욕망도 없어. 그저 그 병을 고치기 위해 이곳에 머무를거다. "

  "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네 혼자서 뭘 어떻게 한다는 말이지? 더군다나 너는 그 병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잖아! 그런데 그딴 말로 나를 현혹할 생각인가? 그렇다면 헛수고니, 당장 꺼져버려!! "

  그는 더 이상 나와의 대화는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가 떠난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나를 믿을 수 없는거겠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이곳에 대뜸 나타나 쿠피디타스에 대해 묻고, 반 강제적으로 메달을 가로 챘으니까, 그렇게 본다면 나는 이제 이 마을을 떠나는게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죽을걸 알면서도 그걸 지켜볼 수 밖에 없는 한 남자와 그 병에 걸린 소녀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을 뿐더러, 로빈까지 그 병에 걸린 채로 다음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다는 법도 없다. 로빈을 위해서라도, 또한 앞으로 있을 미래를 위해 나는 이곳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분명 힘들거다. 그 전과는 달리 혼자서 이 일들을 모두 처리해야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로빈의 그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고통에 휩싸여 하루하루가 힘들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 그 남자 또한 그 병에 걸렸으니 …. 더 이상 나를 도와줄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해낼거다. 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어떤 험한 일이라도 꿋꿋히 헤쳐 나갈 자신이 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라도 라이제르와 로빈, 그리고 그 남자 또한 몸 건강히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제부터 어떡하면 좋은거지? 지금 내가 아는거라곤, 전에 어르신에게 들은 말들과 이곳에 있는 잡다한 책들 뿐, 그 이외에는 어떠한 정보도 제공되지 않는 이곳에서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누군가, 누군가가 나를 도와준다면, 이 일이 조금은 수월 해질 수 있을텐데 ….

  ' . '

  내 일을 도와줄 조력자 … ?

  ' ! '

  그래, 그 녀석 밖에 없어! 그 녀석이라면, 이 일을 신속하게 해결 해줄 수 있을지도 몰라! 좋아, 그 녀석이다. 그 녀석을 만나러 가야겠어. 지금 당장!


 

  P.s : 뭔가 명랑해진 기분이랄까, 아무튼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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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탓하지마라.

시간을 흘려보낸건 나 자신이다.

시간은 주어진게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연히 나라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그 시간의 흐름에 어떻게 따라가느냐의 내가 증명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증명해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