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
이미 이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루에르
- 망각의 덫 -
5
이라 말했지만, 사실상으로 거길 가는 거리와 이쪽으로 돌아오는 시간만 해도 2주 이상은 잡아 먹을테고, 그곳에 간다고 하루만에 다시 이쪽으로 돌아올 수도 없는 법. 그리고 갔어도 그 녀석이 병을 고칠 수 있다는건 내 추측일 뿐, 나는 지금 무모한 시도를 하려 했다. 그리고 내가 그곳으로 간다 해도 나와 같이 움직일 수 없는 로빈을 여기에 두고 혼자 가야 한다. 그렇다면 그동안에 로빈은 나를 기다리며 이곳에 머물러 있겠지, 그 말은 즉, 로빈의 병을 치료하려다 더 증상을 악화 할 수 있을 뿐더러, 자칫하면 로빈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함부로 움직이면 나는 두 마리의 토끼 중, 한 마리의 토끼도 잡지 못하고 말테지. 하지만 이렇게 내가 이곳에 있는다고 뭔가가 바뀌거나 하진 않는다. 누군가가 움직이지 않는 한, 이 상황은 결코 뒤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 대신 누가 그 녀석한테 다녀올 수는 없는 법, 대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 하아 …. "
한숨만이 절로 나온다. 침대에 누운 로빈은 새근 새근 잠들어있는데, 나는 대체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걸까. 이도 저도 안된다면 그 틀을 깨고 다른걸 집어 넣을 수 밖에 없는데, 나는 그 틀조차 건들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내가 고민하며 시간을 지체한다면, 결국엔 모든게 끝이 나겠지. 나는 조금 도 이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도저히 지금으로써는 답이 나오질 않는다. 계속 생각해봤자 혼란만 올 뿐, 나아지는건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도 말이 안된다. 한번이라도 더 생각해서 이 일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하는지 생각을 해야 한다. 로빈과 라이제르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그 녀석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기 위해선 최소 2주에서 최대 3주 동안은 로빈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때 사로이는 내게 로빈을 잘 간수하라는 당부의 말을 했다. 한치라도 로빈이 나와 떨어진다면,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즉, 로빈이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말과 일치하지. 그래서 안되는거다. 그런 로빈을 두고 갈 수는 없다. 내가 그녀에게 가까이 있지 않으면 그녀는 죽는다. 하지만 이렇게 로빈의 곁에만 있어도 그녀는 결국엔 죽는다. 과정이 어찌 되든 결과는 똑같다. 죽는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말이다.
" …. "
결국엔 나는 로빈을 잃고 마는 건가. 아무 것도 못해본 채, 멍청히 그녀의 죽음을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건가? 그건 말도 안돼! 어떻게 내가 그 꼴을 두 눈을 뜨고 볼 수가 있겠어. 지금껏 나와 함께 하던 시간이 얼만데, 그 시간 동안 로빈과의 추억이 얼마나 많이 깃들어 있는데. 그걸 한순간에 부숴 버리라고? 내 손으로 직접? 아니, 불가능해. 난 절대로 그럴 수 없어. 무슨 일이 생겨도 내 손으로 직접 그럴 수는 없다고 …. 그럼 나보고 이제 어쩌라는거지? 난 도대체 무엇을 선택 해야 하냔 말이야. 결국엔 내가 이런 고뇌에 빠진 것도, 페이던트라는 병 때문에 생긴거다. 하지만 내가 그 병에 대해 이렇게 머리 아파하는 것도 로빈 때문이다. 그런데 로빈 역시 그 병에 걸려 있고, 나는 그 병에 대해 사로이에게 가야 한다. 하지만 내가 사로이에게 가는 동안 로빈이 무사한다는 보장은 없다. 이건 마치, 페니던트라는 병과 페니던트에 걸린 환자를 저울질 하는 것 같다. 결국엔 그 두 가지 모두 똑같은건데!
" 로빈 …. "
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거냐 … 난 도대체 무엇을 선택 해야 하냔 말이야. 안다면 내게 말해줘, 내게 알려줘, 로빈 ….
「 끼 이 이 익 -… 」
결국엔 아무 것도 하질 못하는건가. 나는 그 시간 동안 헛고생을 했단 말인가. 나아지는 것도, 변한 것도 없는 그곳을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단건가? 나는 무가치하다. 이런 선택도 못하는 나를 내 스스로가 경멸한다.
" 젠장 …. 결국 나는, 로빈의 목숨과 그 병을 똑같이 취급하게 된건가 …. 아무 손도 못 쓰고 이런 행동 밖에 할 수 없는 내 자신을 증오 할 수 밖에 없나 …. "
복도 바닥에 주저 앉은 나는 탄식을 하며 나의 무력감에 자괴감에 빠진다. 왜 나는 이런 고민을 하며, 그 고민을 끝내지 못하는걸까. 나는 그렇게도 이 문제가 어려웠던건가? 하지만 선택은 하난데, 그것 밖에 없음에도 나는 왜 쉽사리 선택을 하지 못하는걸까. 그저 앞만 보면 그건데, 뒤를 보자니 이거인 셈인가.
차디찬 기운이 나의 몸을 스쳐 지나간다. 곧 겨울이 올련지,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게 느껴진다. 숨을 내쉬면 하얀 김이 서려 공중에 퍼지듯, 나의 고민 또한 훌훌 털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금방이라도 해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나와는 달리,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초췌했다. 쿠피디타스만 찾는다면 모든게 끝날 줄 알았는데, 끝은 커녕, 그 끝을 향한 단서만이 수두룩하니 내 머리만 아플 뿐이다.
한참을 멍하니 벽에 기대 앉아 있던 나는, 그 남자에게 받은 메달을 이리 저리 훑어 봤고, 이내 나는 왼쪽 바지주머니에 들어 있는 메달을 꺼내 양손에 들고 두 메달을 비교해 보았다. 역시나 똑같은 메달임에도, 약간의 차이가 존재했다. 내가 가진 메달엔 푸른색 달모양이 각인되어 있다면, 이 메달에는 붉은빛을 띄는 태양의 모양이 새겨져 있는건가. 그렇다면 이 메달의 능력은 ….
한가로히 로빈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내게로 사로이가 찾아 왔다. 사로이는 나를 보며 잠시 사로이가 부른다며 따라오라고 했고,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사로이가 있는 고목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사로이는 내가 노로이를 따라 오는 것을 발견하곤, 이내 몸을 돌려 내 쪽을 향해 바라봤다.
“ 무슨 일이지? 아직도 내게 묻고 싶은게 있는건가? ”
“ 노로이, 너는 이만 물러가도록. ”
내 물음에 사로이는 가볍게 무시해주며, 내 옆에 서있던 노로이를 퇴장시킨다. 사로이에게 무시 당한 나는 반쯤 짜증나는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다시 한번 물었고, 그는 이번에도 내 말을 사뿐히 즈려 밟고는 내 앞으로 다가온다.
“ 잠시 할 얘기가 있으니, 내 뒤를 따라오도록. ”
사로이는 짧고 굵은 말을 하곤 발걸음을 돌린다. 그 녀석에게 두번이나 무시 당한 나는 그의 뒷통수를 노려보며 천천히 그의 뒤를 따랐다.
“ 나한테 또 말할게 있는건가? 그렇다면 이렇게 불러내지 않아도 되잖아? 굳이, 이런 산 속에 들어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
그러나 그는 또 다시 내 말을 무시한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전혀 들리지 않는 듯한 태도로 묵묵히 앞을 향해 걸었고, 나는 그의 모습에 기가 차 말이 나오지 않는다. 지 말만 할거면 처음부터 지가 올 것이지. 괜히 여러 사람 오라 가라 민폐야?
“ 남 흉을 볼 때는,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보도록. ”
자기 욕을 하는걸 용케도 알아차린 사로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며 말했고, 나는 그의 시선을 조심스레 피했다. 저 녀석, 독심술이라도 하는건가? 꽤나 섬뜩한 재능이군.
그렇게 말없이 사로이의 뒤를 따르던 어느 순간, 사방에 빽빽하게 둘러 쌓인 나무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사방이 뻥 뚫린 맑은 하늘이 나타났다. 나는 휘둥그레 해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내뱉으며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발걸음을 멈춘 사로이는 나와는 다른 반응으로 쓰윽 주위를 둘러보며 이내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본다.
“ 대체 여기는 어디지? 이런 곳이 있었다는걸 왜 알려주지 않았어? 이야, 이곳에 로빈이랑 같이 오면 좋아하겠는걸. ”
신나하는 나와는 달리 사뭇 진지한 표정의 사로이. 그는 나를 보며, 왜 자신을 이곳에 데려왔는지 알려 주겠다며, 그 전에 한 가지 할 말이 있다며 들고 있던 무언가를 내게 건넨다.
“ 이게 뭐지? 이걸 왜 나한테 주는거야? ”
“ 일단은 받아라, 받고나서 말해주마. ”
얼떨결에 사로이가 건넨 물건을 받아든 나는 슬쩍 손가락으로 그 물체를 굴려 보았다. 동글동글한 촉감이 꼭, 돌멩이 같았다. 나는 그 물체를 가리키며 이게 대체 뭐냐고 묻자, 사로이는 영험한 돌이라고 대답했다.
“ 영험한 돌? 그런데 이걸 왜 주는거지? ”
“ 내가 너에게 그 돌을 왜 준 것 같지? "
“ 그걸 모르니까 묻는거 아냐! ”
사로이는 눈을 가늘게 뜨며 하찮다는 듯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 그걸 모른다면, 넌 절대로 그것을 사용할 수 없어. 네가 그 돌을 사용 했을 때는, 네가 왜 나한테 그 돌을 받았는지에 대해 알 때겠지. 그 전까지는 나는 절대로 네게 그 이유를 말하지 않겠어. ”
그는 더 이상 나와 할 말이 없다며 이만 돌아가라며 말했고, 자신은 잠깐 어딜 다녀올 생각이니, 노로이한테는 먼저 저녁을 먹으라며 대신 얘기 해달라며 수풀 사이로 모습을 감춘다. 그가 사라지고 덩그러니 혼자 남은 나는 사로이가 나한테 한 말을 다시금 되새기며 그의 말 뜻을 알아보려 했다. 하지만 도통 그가 한 말은 대부분 내가 알아 들을 수 없도록 꼬아서 한 말이라 쉽사리 내가 알아 차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한 것도 분명 언젠가 내가 자신이 한 말 뜻을 알아 차릴거라 믿고 한 말이겠지. 뭐, 그렇게 보면 그리 중요한 말을 아니였던가 보군.
나는 잠시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지금까지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 나에게는 알맞는 휴식의 공간이였다. 사로이가 나를 이곳까지 데려온 이유도, 그 이후로 제대로 쉬어 보지도 못한 나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한 행동인가 싶다. 겉은 차갑고 사나운 녀석이지만, 그 내면만은 누구보다도 따뜻한 녀석이라고 알고 있는 나는 만족스러운 미스를 지으며 한동안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 몸으로 느꼈다.
하늘이 붉게 물든 뒤에야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간 나는 사로이가 한 말대로 먼저 저녁을 먹자며 노로이에게 알렸고, 노로이는 자신과 같이 식사를 준비하는 몇몇 부족원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향한다. 로빈은 내게 어디 갔다 왔냐며 궁금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고, 나는 그런 로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다음에 한번 데리고 가준다는 약속을 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 어디 가시게요? 곧 있으면 저녁 먹을텐데. ”
“ 잠시 서재에 볼일이 있어서, 금방 다녀올게. ”
나는 웃으며 자리를 떴고, 서둘러 유적지 근처에 있는 서재로 향했다.
“ 어라 … ? ”
유적지를 지나가려는 순간, 고목나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보통 이 시간대면 반짝반짝 빛을 내야하는 돌이 오늘은 이상하게도 오늘은 빛을 뿜지 않는다.나는 서재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조심스레 고목나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 어? ”
고목나무의 틈에 있던 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어제까지만해도 이 자리에서 빛을 내고 있던 돌이 갑작스레 모습을 감춘거였다.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고, 행여나 다른 부족원들이 이 사실을 알까, 황급히 그 고목나무을 등에 지고 조심스럽게 다시 한번 고목나무를 살펴 보았다.
“ …. ”
돌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대체 왜 갑자기 돌이 사라진 이유는 몰랐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건, 돌의 행방이 묘연 해진 덕분에 일어날 파장에 대한 불안감이 눈 앞을 가렸다. 우리한테는 그저 흔하디 흔한 돌멩이일지 몰라도, 그들에겐 이곳을 수호하는 수호신의 역할이기 때문에. 그 수호신을 맡고 있는 돌이 사라졌다면 그들이 어떤 행동을 보일지 뻔하디 뻔하다. 더군다나, 그들은 돌이 사라진 것을 보고 나와 로빈이 이를 훔쳤다며 지명을 할게 분명하다. 범인이 누구든지간에 무조건 우리를 지목할게 확실했다. 누가 왜 어떤 사람이 이걸 훔쳤는간에, 아니 그 전에 이게 정말 누군가가 훔쳐간걸까하는 의심이 들지만서도 지금은 급히 이 사실을 다른 부족원들이 모르게 숨기는게 먼저다. 다행히도 밤이 되면 사로이는 물론이고 다른 부족원들조차 이 근처로 오지 않기 때문에 오늘만 다른 돌로 속이고, 내일 아침 일찍 이 근처를 수색해보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처음부터 이런 산 속에 그런 돌멩이 하나를 훔친다고 그들이 눈치채기 전에 다른 돌이라도 옮겨 놓던지 해야 한다.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그 돌을 대신할 돌이 있나 없나 훑어 보았지만, 그 돌과 비슷한 돌을 없을 뿐더러, 이곳은 이상하게도 돌이 없었다. 조금 있으면 저녁 식사를 알릴 징이 울릴게 분명하다. 그 전에 빨리 다른 돌을 찾지 않으면.
‘ ! ’
그래, 맞아. 아까 전에 사로이에게 받은 돌이 있었어! 나는 다급히 돌멩이가 든 주머니를 뒤적거려 돌멩이를 손에 집었고, 황급히 그 돌을 고목나무로 옮겨 넣었다. 놀랍게도 그 돌은 이곳에 있던 돌멩이와 크기도 비슷했고 색깔도 비슷해서 다른 부족원들이 와도 모를 만큼 똑같은 싱크로율을 보인다. 가까스로 사건을 종결 지은 나는 식은 땀을 닦으며 서둘러 시작될 저녁 식사를 하러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내 머릿 속을 스치는 무언가가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고목나무로 고개를 돌렸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돌멩이를 다시 한번 살펴 보았다. 다시 한 번 봐도 엄청나게 비슷한 돌의 모습에 반쯤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돌멩이를 훑어 보던 나는 이내 당황스러운 눈으로 고목나무에 고요히 놓여져 있던 돌멩이를 살펴봤다.
“ … 서, 설마 이 돌이 …. ”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나는 그 돌을 보며 경악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서둘러 그 돌멩이를 들고 황급히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 이게 … 이게 대체 무슨 꿍꿍이냐고!! ”
내가 그곳에서 얼떨결에 건네 받은 돌은, 그들이 신성시 여기는 수호신의 돌이였다.
P.s : 즐감하세요.
P.s2 : 브금은 그냥, 제가 들으면서 쓴거라서 그냥 올려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