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이야기

|  나는 작가가 될 테야! 글을 창작해요

2012.02.23 03:21

크로니클 어비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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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ist in the dark ocean of life the faint 

[ 어둠 속 존재하는 희미한 생명의 바다 ]

- 태풍과 폭풍의 경계선 -

No.13



 " 웨엑 -  "

  바르는 약을 마시는 약으로 착각하다니, 이 사람도 꽤나 보통사람은 아닌 것 같다. 아까부터 헛구역질만 하고 내용물은 뱉어내지 않는게 이미 소화시킨 것 같다. 변기통을 잡고 구역질을 하는 그 사람에 등을 두들겨주던 나는, 한심한 표정으로 그 사람을 보며 괜찮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괜찮다며 싱긋 웃지만 웃는게 웃는게 아니였다. 

  " 우에에엑 -  "

  헛구역질을 일삼던 그 사람의 입에서 내용물이 쏟아지고, 악취가 그 사람의 입에서 뿜어져나온다. 본능적으로 한 쪽 손으로 코를 막으며 그 사람의 등을 사정없이 두들겨 주었다. 두들면 두들길 수록 그 사람 입에서는 내용물들이 쏟아져나와 변기통으로 떨어진다. 어떻해보면 변기통이 내용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저나, 나도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는게 다음 타자는 나다.

  " 흐으.  "

  위에 담긴 모든 내용물을 쏟아내린 그 사람이 입을 닦으며 휘청거리는 다리로 세면대로 향한다. 세면대로 향한 그 사람을 대신해서 변기통에 물을 내리니, 그 안에 담겨있던 각종 내용물들이 변기통에 빨려들어가 자취를 감춘다. 뭘 먹었길래 저딴게 나올 수가 있는걸까. 어이없는 표정으로 변기통을 쳐다보던 나는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푸하.  "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고 있던 그 사람이 머리를 휘날리며 휴지로 얼굴을 닦는다. 휴지로 얼굴을 닦아서 그런지 닦아낸 후에는 얼굴 곳곳에 휴지조각이 묻어있는데, 그걸 모르는 듯 밖으로 나가는걸 가까스로 막아 내가 손수 뜯어주는 아량을 베풀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 아,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그 쪽 성함을 아직 못 물었네요. 제 이름은 ' 샤를 드 라펠루스 ' 입니다. 그냥 편하게 라펠루스라고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이름을 알고 싶다고 한 적이 없는데 솔선수범으로 알려준다. 남의 이름을 알고 내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그것도 폐니 어쩔 수 없이 내 이름을 알려줬다. 내 이름을 들은 그 사람은 좋은 이름이라며 나의 어깨를 툭툭치며 웃는다. 이 사람 왠지 정신상태가 저기에 누워있는 새끼랑 비슷한 것 같다. 

  " 그나저나, 저 사람이랑 아는 사인가요?  "

  내 물음에 호탕하게 웃던 그 사람의 얼굴을 굳는다. 저 자식을 보면 이 사람은 정신상태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 같다. 뚫어지게 쓰러져있는 그 새끼를 보던 그 사람이 그쪽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차분한 표정으로 그 새끼에 표정을 보더니 이내 한 숨을 푹 내쉰다.

  " 비만 오면 이러니, 도통 같이 있을래야 같이 있을 수가 없다니깐.  "

  조잘거리며 그 사람이 말한다. 도통 뭔 말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뭐, 내가 알 바는 아니니깐 말이다. 쓰러져있는 그 새끼 옆에 있던 그 사람을 보던 나는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괜히 엮여봤자 좋을 것 없다고 판단되서다. 저 새끼나 저 사람이나 보통사람은 아니라는 직감이 내 뇌리를 스쳤다.

  " 아무튼, 이 녀석을 대신에 민폐를 끼친거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그럼.  "

  살금 살금 소리없이 움직이던 나를 향해 그 사람이 말했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그 사람이 쓰러져있는 그 자식을 일으키고 어깨에 팔 한 쪽을 올리고 부축해 어디론가 향한다. 간호사들한테 가는걸까. 뭐, 이정도면 해피엔딩인가. 나도 빨리 엄마와 피유가 있는 곳으로 가봐야겠다. 벌써 20분이나 지났으니 이정도면 깨어났겠지? 그 사람과 걸어온 길을 반대로 돌아가 엄마와 피유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 얼래?  "

  엄마와 피유가 누워있던 벤치로 향하니, 있어야할 엄마와 피유는 없고 연인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서로를 보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저놈년들이 누구 앞에서 염장을. 그놈년들을 쳐다보던 나는 바닥에 침을 뱉고는 그놈년들을 다시 한 번 쳐다보고 발걸음을 돌렸다. 도대체 엄마와 피유는 어디로 간거야?

  " 우오오오 - !  "

  발걸음을 돌리던 내 귓가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투기장 한 구석에서 사람들이 우글우글 뭔가에 홀린 듯 웅성거리고 있었다. 엄마와 피유를 찾겠다는 생각이 잠깐 사라지고, 무슨 일인가 구경이나 할까하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과 가까워질수록 그 웅성거림은 더욱 커진다.

  " 도대체, 저 사람들에 한계는 어디야? 무슨, 먹으면 먹을 수록 더 들어가!  "

  " 벌써 10만st 정도는 먹은 것 같은데?  "

  " 무슨 소리! 30만st는 더 먹은거 같은데!  "

  " 야야, 조용히들 해라, 임마.  "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먹기 대회인가? 먹기 대회를 왜 이런 구석진 곳에서 하는거지. 그나저나 얼마나 잘 먹길래 10만 30만st라는 말이 나오는거지. 사람들에게 가려진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두 손으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틈을 만들었고, 가까스로 시야확보에 성공한 나는 그 틈새로 빼꼼히 시선을 돌렸다.

  " 우아아아아!!  "

  아, 시발. 갑자기 사람들이 움직이더니, 내가 확보한 자리가 다시 봉쇄된다. 화가 뻗친 나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사람들 사이를 미친 듯이 뚫어제쳤지만,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비명을 지르며 휘파람까지 부는 개념 없는 꼽등이같은 짓거리를 반복한다. 시발년들. 평생 하수구에서 썩어나라!
  씩씩 거리며 가까운 벤치에 앉아 한 숨을 돌리려는데, 저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있는 두 남녀가 나를 흘깃 흘깃 쳐다본다. 안 그래도 성질 나 죽겠는데, 나를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쳐다보는거지. 그것도 흘깃!!

  " 저한테 무슨 불만 있어요? 왜 자꾸 쳐다보세요?  "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두 남녀가 깜짝 놀라며 그런 적 없다며 억지웃음을 짓고 자리를 피한다. 시발놈년들. 벤치에 앉아 화를 삭히려고 했건만, 그것조차 제어가 되지 않는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약이나 하나 사 먹을까하고 간호사들이 있는 곳을 찾아 걸어갔다.


  " 니미. 이놈의 간호사들은 자꾸 어디로 사라지는거야? 찾을때마다 없어, 시발.  "

  투기장을 돌아다녀도 간호사들의 뒷꽁무니도 보이지 않는다. 이년들이 나를 피해서 계속 빙글빙글 돌아다는건가? 왜 내가 찾을때만 안 보이는건데? 에이 썅, 찾다보니 공복이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한다. 그러고보니 아침도 안 먹고, 점심도 안 먹고. 아직 저녁 먹을때는 아니지만, 브런치 정도는 먹어줘야 저녁까지 버틸텐데. 대체 엄마와 피유는 어디로 사라진거야? 

  " 여기서 또 뵙네요.  "

  이 낯익은 목소리 톤은 설마.

  " 누굴 찾으시는건가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

  아주 상냥한 얼굴로 나를 보며 방긋 웃는 그 사람을 또 발견한 나는 사색에 잠겼다. 그닥, 나에게 별 타격감은 주진 않는데 괜히 곁에만 있어도 힘이 쫙 빠지고 몸이 이상한게 꼭 꼽등이와 연가시 풀템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나저나, 저 새끼는 아직도 기절해있나보네.

  " 그 사람은 아직 안 깨어난건가요? 아직까지 그러고 있는걸 보니.  "

  내 물음에 그 사람이 정색을 하며, 이내 옆에서 졸도해있는 녀석을 슬며시 쳐다보며 한 숨을 내쉰다. 이 사람은 왜 저 새끼만 보면 정색 + 한 숨을 내쉬는지 모르겠다. 분명 저 새끼와 무슨 사이같긴한데. 왠지 물어보기 싫다. 알고싶지도 않지만.

  " 형!  "

  어디선가 또 다른 낯익은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그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는 내가 그렇게도 찾던 엄마와 피유가 입가에 뭔가를 잔뜩 묻히고 내 앞에 나타났다. 엄마와 피유를 본 나는 왠지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기분에 빠졌고, 이 상황에서 나를 구출해줄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 같아 왠지 모를 든든함까지 더해진다.

  " 아는 분이신가봐요?  "

  나의 환희에 찬 얼굴을 보던 그 사람이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와 피유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달려간 나를 쳐다보던 그 사람은 피식 웃으며 조용히 자리를 떠난다. 왠지, 저 떠나는 뒷모습이 꽤나 쓸쓸해보인다.

  " 어디에 있었던거야, 형? 우리가 한 참 찾았잖아.  "

  "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건만, 도대체 엄마와 피유는 어디에 있던거에요? 제가 한 참을 찾았는대도 보이지도 않고, 투기장 밖으로 나갔다 오신거에요? 그리고 뭘 드셨길래 입에는 뭔가 덕지 덕지 묻어있고. 빨리 닦기나해요.  "

  주머니에서 꺼낸 휴지를 피유와 엄마에게 건네줬다. 엄마와 피유는 내게서 건네받은 휴지로 더러운 입가를 톡톡 쳐내면서 닦았고, 그 모습을 보던 나는 답답함을 못 이기고 내가 손수 닦아주는 아량을 베풀었다. 도대체 어떻해 먹었으면 이딴게 묻어나올까하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 그나저나, 아까 전부터 사람들이 꽤 줄어들었네. 비가 그쳤나?  "

  " 그러게요, 아까부터 사람들이 계속 밖으로 나가는게 보이고. 비가 그쳤나봐요.  "

  엄마와 피유가 서로 주고 받으며 말한다. 이 두 사람 찾느냐,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깐 엄마외 피유 말대로 한 눈에 보기에도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는걸 알 수 있었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이자, 엄마는 이제 나가도 괜찮다며 피유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게이트로 향한다. 날 안 챙기고 피유를 챙기는 엄마의 모습에 조금의 배신감을 느꼈지만. 그러려니하며 게이트로 향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 모두 멈춰주십시요! 지금 나가는건 자살행위입니다!  "

  밖으로 향하는 게이트에 모이는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가 소리를 치며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앞길을 막아선다. 밖으로 나가려고 줄 서있던 사람들은 앞을 가로막은 자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무슨 짓거리냐며 따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 남자 마이크를 주머니에서 꺼내 뭔가를 말하려는지 입 주위를 들썩거린다.

  " 현재 태풍과 폭풍이 불과 10m 가까이 왔습니다. 밖은 폭풍우가 불어와 자칫하면 날아갈 위험도 있습니다. 그 전에 나가신 분들은 우리들이 다시 데려오고 있으니, 모두들 괜한 모험 마시고 안전한 이곳에서 태풍과 폭풍이 멎을때까지 기달려주십시요. 지금 나가는건 자살행위인걸 명심하세요!  "

  간단명료하면서도 소름 끼치는 그 말 한마디에 모두들 끽소리도 하지않고 투기장 밖으로 나가려는 발걸음을 돌린다. 태풍과 폭풍이 10m 전방까지 왔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곧 태풍과 폭풍의 경계선이 풀린다는 말이 되는건가? 도대체 밖이 어떻해 될지 궁금해진다. 흥미롭게 느낄거리는 아닌데 왜 이렇게 흥분이 되는건지. 밖으로 나가는건 자살행위라곤 했지만, 우리가 있는 이 투기장도 안전한 곳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태풍에도 끄덕거리는 투기장을 태풍 + 폭풍이 한꺼번에 몰아친다면 이 투기장도….

  " 무슨 생각해, 형? 여자친구?  "

  " 헐.  "

  " 아무 것도 생각 안해요. 엄마는 반응이 또 왜 그래요.  "

  아무튼 눈치 없는건 피유를 못 따라가겠다. 여자친구는 무슨. 근데 엄마 반응은 또 왜 저러는지. 기분 나쁘다. 아무튼 일단은 투기장이 밖보단 안전할 것 같지만서도 만약의 대비를 위해서 투기장 주변에 안전한 곳을 찾아헤매야겠다. 그나저나, 이 두 사람은 멍하니 벤치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미치겠다. 뭐, 나 혼자 둘러보는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80%는 들지만, 그래도 만약에 내가 찾는도중 투기장이 날아간다면 이 두 사람에게 미안할지도.
  벤치에 앉아있는 두 사람에게 타일르 듯 말하지만, 그 두 사람을 알아들을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피유는 그렇다치고 엄마까지 모른다며 징징거리며 벤치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미치겠다. 역시, 이 두 사람을 두고 나 혼자라도 찾는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 나는 그 두 사람에게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한 후 안전한 곳을 찾아 발걸음을 돌렸다. 혹시나 같이 갈 생각이 있는지 뒤를 돌아봤지만, 역시나 그 두 사람은 수다를 떨며 따라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아, 외로운 외길 인생도 아니고 혼자서 이 넓은 투기장을 혼자 횡단해야하다니. 나도 그냥 저 옆에서 멍이나 때리고 있을까. 그래도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지. 안 그러면 저 두 사람을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그나저나 아빠는 도대체 어디에 계신걸까. 태풍과 폭풍이 몰려온다는데 안전한 곳에서 잘 계실지..

  ' 우직 '

  ?

  " 이 소린.  "

  투기장을 돌아던 중, 어디선가 스티로폼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을 멈추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하나, 그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는다. 기분 탓인가하고 걸음을 재촉하는 순간에 또 다시 우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 내 뇌리를 스치는며, 설마하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투기장 천장을 쳐다보았다.

  " . "

  다행히 아직은 때가 아니였다. 안도의 한 숨을 내쉰 후 다시 발걸음을 내딛었다. 한 참동안 투기장 구석 구석에 안전해보이는 곳을 찾아 헤맸지만, 이 넓은 투기장 안에는 안전해보이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벽 뒤에 기대어 숨어볼까하지만, 투기장이 날아갈 정도의 태풍과 폭풍이면 벽에서 기대는건 그대로 파전이 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긴 하나, 그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단점이 존재한다. 몇 십분을 돌아다닌 결과, 투기장 안에는 안전한 곳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전체적으로 봤을땐 이 투기장이 안전함의 근본이라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전체적인 안전함은 투기장이 킹왕짱. 그러나, 하나 하나 안전을 따질때는 안전감이 1%도 못 미친다는 결론이 나온 나는 좌절에 빠졌다. 설마 이 투기장이 날아가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태풍과 폭풍에 휩쓸려 날아가버린다는건가. 그건 너무 잔인한데.
  끙끙거리며 노심초사한 결과. 그저 이 투기장이 날아가지않기만을 바랄 수 밖에 없다. 설마하는 생각은 가지면 안된다. 그러다간 정말 큰일이 날 수 있다. 설마, 쿠링이 그때 말한 재앙이 이런걸 말한건가? 젠장, 존'나게 무섭군. 

  〃? 〃

  " 왜 그러시죠, 르?  "

  〃기분 나쁜 놈이 나를 부른 것 같아. 기분 탓인가. 그만 자고 일어나, 임마. 〃

  일단은 엄마와 피유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게 현명할 것 같아, 서둘러 두 사람이 있는 벤치로 향했다. 아까는 그닥 먼거리는 아닌 것 같았는데, 상황이 심각하다보니깐 더럽게 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땡깡을 부려도 데려오는거였는데. 나만 생고생 한다.

  " 여러분들 나가시면 큰일납니다! 지금 밖에는 태풍과 폭풍이 불과 4m 안으로 접근 중입니다! 지금 나가시면 저승행 버스를 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요!!  "

  가까스로 두 사람이 있는 벤치로 돌아갔을땐, 수 많은 사람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밖으로 나가려고 애를 쓴다. 덩달아 나가는 사람들을 막는 투기장 관계자들은 죽을 힘을 다해 막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사람들은 막는 투기장 관계자들에게 욕을 하더니, 심지어 주먹질까지 휘둘러 관계자들을 다치게한다. 그 상황을 지켜보고있던 엄마와 피유가 삶의 의욕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 미쳤어, 다들 미쳤어. ' 라는 말만 되뇌인다. 그러나 두 사람의 표정은 아주 평온하며 온화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니, 그냥 이 상황을 즐기는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뭐, 이 상황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저 사람들보다는 이 두 사람이 더 나은건가. 하아, 어쨋든 난리가 아니다. 관계자들은 사람을 막으려고 난리를 부리고. 사람들을 나갈려고 안절부절 못하며 애꿎은 주먹만 날린다. 주먹이 뭔 죄길래.

  " 비키지 않으면 죽여버리겠어! 당장 비켜!!  "

  한 중년의 아저씨가 맛이 가버린 듯, 검은 눈동자가 뒤로 넘어가 흰자 밖에 보이지 않는 눈으로 앞을 가로막는 관계자들을 향해 욕설을 퍼붇는다. 관계자들은 그 아저씨를 보며 진정하라고 말하지만. 이미 맛간 사람한테 ' 왜 맛갔어요? ' 질문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려나? 

  " 이.. 시발!!  "

  아저씨가 폭주했다. 다가오는 관계자에게 주먹을 날리더니 옆에 있던 물건들을 무차별로 집어,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사람들에게도 던지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토마토 축제도 아니고. 물건을 왜 던져 물건을. 폭풍우보다 무서운 물건쓰나미에 모든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밖으로 나가려던 사람들은 그 아저씨의 횡포로 나갈 엄두도 못내고 그 물건을 피하려고 저 멀리 달아난다. 투기장 관계자들은 폭주한 아저씨를 막으러 가지만, 이내 물건에 얻어맞고 멍든 얼굴로 돌아온다. 

  " 이, 개새끼들아!! 네들만 살려고 그러지? 난 죽어도 상관 없다는거지? 이 새끼들, 오늘 너 죽고 나도 죽고 한번 죽어보자 이것들아!!  "

  물건을 던지는 속도가 가속으로 붙더니, 이젠 눈에 뵈는게 없는지 뾰족한 칼 같은 것도 사방으로 던진다. 던져진 물건들은 나와 엄마, 피유가 있는 곳까지 날아왔고. 졸지에 물건을 맞게 생긴 우리 세 사람은 물건을 피해 요리 조리 도망다녔고, 투기장 관계자들은 폭주한 아저씨는 도저히 말로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속닥거리며 휘파람을 분다. 그러더니 한 몇 분 뒤에 육덕진 몸을 소유하신 보디빌러 두 분께서 폭주한 아저씨를 연행해갔다. 폭주한 아저씨가 육덕진 두 분에게 끌려간 뒤, 주변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아저씨가 물건을 던진 곳 주위에 수북히 쌓인 물건들을 관계자분들이 직접 정리를 하시곤 이젠 나간다는 사람들이 없는걸로 판단. 조용히 어디론가 향하신다.

  〃시끄러워 못 자겠네, 뭔 놈의 투기장이 네놈들 안방이냐? 〃

  벤치에 앉아 한 숨을 돌리던 도중, 어디선가 낯익은 실루엣과 목소리가 내 시야에 포착됬다. 뚫어지게 쳐다보던 나와 눈이 마주친 쿠링이 이내 나를 보며 달려오더니, 깊은 싸대기를 나의 뺨에 선사해주신다. 

  〃뭘 야려, 임마. 〃

  쿨한 한마디에 나는 뭐라고 반박할 기운까지 사라진다. 뒤에서는 남자가 슬그머니 기운 빠진 발걸음으로 쿠링을 따라온다. 아까 전에 잠깐 기절직전이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괜찮은걸까. 잠시동안 얼굴이 홀쭉해진게. 분명 대리인들과 무슨 관계가 있긴 있는가보다. 그런데 이 자식은 왜 갑자기 와서 때리고 지'랄이야. 쳐다본게 죄야? 어이 없네.

  〃뭘 궁시렁 거려, 임마. 너 여기서 뭐해? 〃 

  " 나가면 죽는다고 저 사람들이 말했잖아. 근데 너 왜 때린거냐?  "

  〃이 새끼가. 〃

  또 다시 때리려고 치켜세운 쿠링의 팔에 움찔거린 나를 보며 리린이 피식 웃는다. 

  " 그때 너가 편지로 보낸 재앙이란게 바로 이거야?  "

  화제를 전환해, 전에 편지를 받았을때 쓰여져있던 ' 크로니클 어비스의 재앙 ' 에 대해 물어봤다. 쿠링은 쓰윽 나를 보며 아니꼬운 듯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끼며 나의 두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내 눈을 쳐다본다.

  〃아니. 〃

  짧고 경건하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크로니클 어비스가 나타난 뒤, 그 일주일 동안은 하루 하루 재앙에 시달릴거다. 물론, 그 ' 음식 ' 을 먹었을때에 말이지. 〃

  쿠링은 섬뜩한 말투로 내게 말했고, 두 어깨에 올린 손을 내린 후, 남자를 흘깃 보며 어디론가 걸어간다. 남자는 쿠링의 뒤를 따라간다. 멀뚱히 서 있던 나는 쿠링과 남자를 쳐다보던 중. 남자가 고개를 돌리며 나를 쳐다본다. 무슨 할 말이 있는건가하고 입을 열려는 순간, 남자가 검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왜 저러는건가 쳐다보던 나를 보는 남자는 계속 손가락만 까딱거릴 뿐이다.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남자를 한 참동안 쳐다보던 나는, 혹시 따라오라는 신호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자. 그 남자가 입을 연다.

  " 진실을 알고 싶다면 따라오도록 해라, 숨겨놓은 진실도 언젠가는 밝혀지는거다. 다만, 진실이란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게되면 진실도 모르는게 약인 것처럼 독이 될 수 있는거지.  " 

  라는 말을 남긴 후, 남자가 고개를 돌린다. 진실을 알려준다는 남자의 말에 조금은 흔들린 마음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사람이 많으면 알아야 할 진실도 독이 된다는 말은, 나 혼자 오라는 말인가? 하긴, 혼자 따라가는게 나한테도 속 편하고, 저 두 사람한테도 속이 편할지도.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한 눈을 판 사이에 나는 서둘러 남자의 꽁무니를 쫓아 달려갔다.
  어디론가 향하던 발걸음이 한 참동안 어딜 향해 걸어가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춘다. 쿠링이 멈추자 남자도 멈췄고, 남자가 멈추자 나도 자동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이곳인가? 하는 호기심에 슬쩍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보니, 쿠링과 남자가 넘춘 곳은 밖으로 나가는 게이트. 설마 밖으로 나갈 생각인가? 조마조마하게 쿠링과 남자를 쳐다보던 중, 쿠링이 뭔가를 생각하는 듯 지그시 눈을 감고 다시 뜨며, 뭔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투기장을 나선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설마 나갈 줄이야.

  " 지금 뭐하시는겁니까! 밖에 나가시면 위험하ㅂ….  "

  게이트를 통과하는 쿠링을 발견한 투기장 관계자 두 분이 서둘러 이쪽으로 달려온다. 쿠링이 먼저 나간 뒤, 뒤를 따라 나가려던 남자가 달려오던 관계자들을 보던 남자가 쓰윽 고개를 돌리더니, ' 먼저 나가거라, 이쪽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 며 나를 먼저 게이트 밖으로 민다. 그리곤 달려오는 두 사람을 향해 두 손을 펴더니 이내 뭔가를 전해준 듯한 모션을 취하자. 달려오던 두 사람이 움직임을 멈추고, 뭔가를 받아들인 듯한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본다. 그리곤 뭔가를 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고 인사를 하며 되돌아간다. 그 모습에 할 말을 잃은 나는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남자는 아무렇지 않는 듯 몸을 돌리고 게이트를 통과한다.

  " 저기, 혹시. "

  " 이 능력으로 사람은 죽일 수 없다. 필시, 날 낳아주신 부모님들께도 쓰지 않았고.. "

  조금은 머뭇거리던 남자가 씁쓸한 표정으로 게이트를 통과한다. 내가 하려는 말까지 알아차린 모양인가. 라고고 대리인이 한 말은 그냥 헛소문일까, 아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일단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되어, 잠시동안은 잊고 밖으로 나가려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게이트를 통과해 투기장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이 자츰 느려지며 호흡히 가빠지는 현상을 겪게됬다. 투기장 밖은 태풍과 폭풍이 불과 4m도 남지 않은 열약한 환경. 투기장 관계자들이 말했 듯이 나가는 순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잠깐의 갈등에 빠졌다. 내가 움직임을 멈추고 밖으로 나오지 않자, 투기장 밖으로 나가던 남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진실을 알고 싶다면 따라와라, 하지만 그 진실을 알기 위해선 어떤 위험도 감수해야한다. 그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면, 진실을 알기 싫다는 뜻으로 알겠다. 그러나, 진실은 알아야 할때도 있고, 알아선 안되는 순간도 있다. 너는 지금 알아야 할 순간인가. 아님, 알아선 안되는 순간인가?  "

  남자의 그 한마디를 들은 나는 더욱 더 깊은 갈등에 빠졌지만, 그 갈등은 그리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나의 결정은 ' 진실을 알아야 한다. ' 로 결정났다. 솔직히,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개죽음 당하는 것보단. 그 진실을 알고 예방해서 목숨이라도 구하자는 심정이다. 나는 떨리는 두 다리를 진정시키고, 조금씩 조금씩 게이트를 통과해 투기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 우왁 - !  "

  생각보다 바람이 꽤 매섭다. 투기장 안에서는 느낄 수 없던 바람의 세기가 이정도일 줄이야.. 태풍과 폭풍이 서로 맞닿는 지점과 별로 멀지 않아서 그런지 그대로 내 몸에 그 바람이 흡수되는 것 같아. 기분이 더럽다. 그나저나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그런지. 꼭두각시 인형이 된 것처럼 바람이 나를 제어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나저나 이곳에서 진실은 개뿔이고, 잘못하면 진짜 승천할 것 같은 예감이다. 그런데 저 쿠링과 남자는 뭘 그렇게 찾는지 주위를 서성거린다. 

  " 아직인가요, 르.  "

  〃아니, 냄새가 난다. 수 백년이 흘렀지만, 그 익숙한 냄새가 나고 있어. 분명 이 냄새는. 〃

  ' 쿠쿠쿠쿠쿠쿠쿠쿠 '

  하늘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주변을 수색하던 쿠링과 남자는 하늘에서 울리는 소리에 흠칫 놀란 듯 하늘을 쳐다본다. 한 편 뒤에서 하늘을 쳐다보는 그들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쳐다보니, 가관이 아닐 수 없다. 태어나서 이런 하늘은 처음보는 것같다. 태풍과 폭풍이 만나면 이런 하늘이 나타나는건가?

  " 욱.  "

  갈라진 하늘에서 따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자칫하면 살을 베어내고 지나갈 바람에 놀란 나는 남자에게 빨리 안으로 들어가자고 소리치지만, 쿠링과 남자는 아까부터 하늘만 쳐다본다. 도대체 저 하늘을 언제까지 쳐다볼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에 있으면 분명 무슨 일이 날게 분명하다고 느낀 나는 그 둘을 냅두고 투기장 안으로 들어가리라고 생각을 먹는 순간 남자가 나를 불러세운다.

  " 왜 불러요? 여기 있으면 죽어요, 빨리 들어와요!!  "

  " 저기를 봐라,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봐라!!  "

  남자가 휘날리는 옷을 부여잡으며 어디론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나는 신경질적인 말투로 남자에게 뭘 보냐며 소리치면 칠수록, 남자는 묵묵부담이였고 애꿎은 손가락으로 어디를 향하고 있을 뿐이다. 

  " 우욱!  "

  그때 커다란 돌풍이 나를 향해 불었고, 바람에 의해 고개가 남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돌아갔다. 눈 뜨기도 어렵게 불어오는 바람을 피해 가까스로 눈을 뜬 그곳에는 두 개의 회오리가 서로를 어루만지며 남동쪽 해안가에서 요동친다. 설마, 저게 태풍과 폭풍?! 우악!

  〃젠장, 바람이 아까부터 더 불어와. 이젠 틀렸어. 빨리 안으로 들어가지않으면 우린!! 〃
  
  쿠링이 눈살을 찌푸리며 남자에게 말하자, 남자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거센 바람에는 남자도 속수무책이였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는 크나, 바람은 그걸 용서치않은 듯. 더욱 더 거센 바람이 뭉쳐져 불어왔다. 순간적인 돌풍으로 인해 대지에 있던 우리 세 사람은 바람에 휩쓸려 떠올랐고, 하늘에선 커다락 벼락이 투기장으로 떨어진다. 벼락에 맞은 투기장은 불에 타올랐지만, 그 불도 바람 앞에선 제 활약을 못한 듯 사그라들지만, 강력한 벼락에 투기장 일부가 파손되어, 그 안에 있던 사람들마저 바람에 휩쓸려 떠오른다.

  " 꾸아아악 - !! "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올수록, 태풍과 폭풍은 서로를 향해 돌진할 뿐이였다. 나 역시, 제대로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였고, 내 몸은 내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바람에 휩쓸려 어디론가 날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마리너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람에 인해 정신을 못차릴 동안. 태풍과 폭풍은 그대로 마리너스 남동쪽 해안에서 충돌하고 만다. 그 후, 우리들이 어떻해 될지에 대해선 나 역시 모른다. 다만, 산다면. 과연 크로니클 어비스가 어딘지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자츰 세상은 빨간 피처럼 물들었고, 세상에 모든 천둥번개가 마리너스 전역에 떨어졌다. 중간 중간에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와 함께, 타들어가는 시체의 냄새가 고약하게 날 뿐이였다.

  
   " 세상이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거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게 자연이자, 세상이니까. 하지만, 이 세상을 만든 한 사람. 모두 불가능할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남들의 비난해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이끌었다. 그를 비웃던 사람들도 그를 찬양하게 되고 받들게 된다. 하지만, 그는 겸손을 늦추지않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을 쓰며 사람들을 위해 살자. 사람들은 그를 ' 신 ' 이라고 일컫게된다. 물론, 그 신도 생명의 한계란 있었고. 어느 날 신은 죽는다. "

  어디에선가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간신히 의식만 차렸고, 애써 눈을 뜨려하지만 눈을 떠지지않았다. 의식을 차릴땐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고, 그 인기척은 나를 안심이라도 시킬려는 듯 뭔가를 말해주면서 내 곁을 지켰다. 낯 선 목소리라 조금은 경계심을 가졌지만, 자츰 이 목소리가 익어지자 내 경계심도 풀어지는 듯 싶다. 평온한 마음으로 숨을 내쉬고 있을때. ' 바스락 ' 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고, 내 눈은 자동적으로 떠졌다. 

  " 끄응. "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린 나에게 차가운 기운이 맴돈다. 의식 속에서 헤매다가 겨우 탈출한 듯한 기분이다. 그나저나, 이곳은 대체 어딜까. 낯 선 기운이 사방에서 느껴진다. 

  " 이제야 깨어난 것 같군, 다행이다. 안 깨어나면 어쩌나 싶었거든. 은근히 너도 생명력은 끝내주는구나. "

  바위 위에 앉아 물 속에 발을 집어넣고있는 한 남자를 발견한 나는, 방금 전까지 내 곁에서 이야기를 해준 목소리가 이 자라는걸 알게됬다. 목소리만 듣다가 모습을 보니 낮췄던 경계심이 다시 올라오는 듯한 기분이다. 눈을 찌푸리며 자신을 쳐다보는걸 안 듯. 바위에 앉아 있던 그 남자가 물 속에 담갔던 발을 빼내고 옆에 놓여진 신발을 신고 나를 슬쩍보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다가오는 그를 보며 무의식적으로 비명을 지를 뻔 했으나, 비명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느덧 그가 바로 내 코 앞까지 걸어왔고, 그는 쓰윽 나를 훑어본다.

  " 아직 제대로 정신을 못차린 것 같군, 정신 차려라. 이곳에선 잠시만 정신을 놓으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으니.. 하지만 걱정마라, 내가 있으니 그럴 일을 없을거다. "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에 나를 보며 그 남자가 피식 웃는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며 한 참을 찾다가 종이 한 장과 깃털 하나를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 앞으로 어려운 일 있으면, 이쪽 연락처로 연락해라. 내가 도와줄테니. 그리고 이건 뭔지 알지? 리린이 그때 사용법을 알려줬으니. 그럼 나는 이만. "

  그 남자는 다른 한 손에 있던 깃털을 바닥에 던지곤, 소리소문 없이 뿅하고 사라진다. 사라진 그 자리에는 뭔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동물의 살점으로 보이는 물체가 썩은 냄새를 풍기며 떨어져있었다. 나는 그 남자에게 건네 받은 종이를 유심히 쳐다보며 그 안에 있는 글자를 발견했다.

  ' 하늘은 높고, 바다는 깊다. 하늘의 끝은 없지만, 바다의 끝은 있다. 허나, 바다에는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생명체가 존재한다. 과연 너는 그 생명체를 발견할 수 있을까? 고로 이 글은 낚시. 낄낄낄 재밌다 재밌어. 정말로 도움을 받고 싶다면 대리인을 찾아가서 도움을 받아라, 그럼. '

  라고 종이에 선명한 굵은 글씨로 쓰어져있었다.

  " 이런 미친…. " 

  종이를 구겨 바닥에 팽게치려하던 손을 거두고, 종이를 다시 펴서 곱게 접은 후 주머니 한 쪽에 넣어놨다. 뭔 놈의 내 주변사람들은 정상은 하나도 없더만. 모르는 사람도 정상이 아니라니.. 왠지 모를 후회감이 온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둘러봤는데 이곳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내 생각엔 이곳엔 나 밖에 없는 것 같다. 도대체 이곳은 어디길래 이런 적막감이 있을까. 

  " 후아. "

  일단은 이곳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찾아봐야겠다. 낯 선 땅에서는 사람 한 명이라도 들러리로 세워야지 좀 안심이 되는 느낌이랄까. 제발 사람만 나타나라. 혼자 이러니깐 좀 불안하다.

  ' 부스럭 '

  ' 부스럭 '

  ' 부스럭 '

  ' 부스럭 '

  부스럭 x 4번. 이곳은 분명 풀숲은 아닌데 부스럭만 4번 소리가 났다. 분명 이곳 어딘가에 뭔가가 움직인다는 말인데.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경계심 최고조에 다달은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사방을 훑으며 시야 확보에 나섰다. 아, 무섭다.

  " 꾸아아악 - !! "

  " ! "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사방을 둘러보던 나는 비명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 것도 없이 괴로운 비명소리만 들리자.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더욱 고조되어 손 발이 부들 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분명 이곳 어딘가에 사람이 사는건 맞는 것 같은데. 도대체 사람들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 . "

  뭔가가 이상하다. 분명 이곳엔 나 외에 누군가는 있는게 분명하지만, 그 목소리만 커질뿐. 사람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걸으면 걸을 수록 새로운 세상이 보이는게 아닌, 똑같은 풍경만 계속 지나갈 뿐이였다. 한 참을 걷던 나는 이상함을 느끼고 이번엔 뒤로 걸어가기 시작했지만, 보이는건 똑같은 풍경 뿐. 그리고 걷다보면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커질때도 있고, 적게 들려 아예 안들릴때도 있었다. 허나, 그 순간은 잠시 뿐. 사람들의 비명은 더욱더 변질되어 이젠 고통에서 몸부림치는 애원의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외칠 뿐이였다. 

  " 이건. "

  걷던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가벼워지고 있다. 땅을 밟는게 꼭 구름을 밟고 가는 듯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더군다나 선명하게 보이던 시야까지 조금씩 흐릿하게 변하더니. 이젠 하얀바탕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건….

  〃... . . .. ..   ... . .  .〃

  어디선가 낯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웅얼거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귀를 기울여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려고하나, 이내 그 목소리는 무언가로 묻혀버린다.

  ' 뽝 - '

  허공에서 낯 익은 펀치력의 손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머리가 흔들리자 희미해진 의식이 팍 - 하고 세상을 향해 눈이 떠진다. 방금 전까지 하얀 세상에서 하얗게 물들여지고 있던 나는 초록색 배경의 세상에 조금은 낯 선 느낌을 가지지만, 곧 안심을 하고 평온함을 되찾는다.

  " 정신이 조금 드나? "

  이 목소린 그 남자군. 부르르 떨리는 눈을 조금씩 뜨고, 고개를 돌려보니 내 옆에는 걸레짝이 된 그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이게 어떻해 된.. "

  남자의 생전 처음보는 모습에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보자, 옆에서 배를 깔고 바위 위에 누워있던 쿠링이 고개를 들어 아니꼬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본다.

  〃잘했다, 리린. 그 자식은 꼭 때려야 일어난다니깐. 누굴 쳐 닮아서 저렇게 무사태평한거야? 뭐, 지 부모를 닮아서 무사태평한거겠지. 그나저나, 여긴 어디야?〃

  " 강물 주위로 나무가 분포한걸로 봐선, 다행히 쟈루섬인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이런 나무들은 처음보는걸. 여기가 그 말로만 듣던 ' 독도 ' 라는 곳인가. 젠장, 독도라고 하니깐 왠지 가슴이 뭉클한걸. 죽을때가 다 되서 그런가.〃

  쿠링이 찡그리며 말한다. 나무에 기대어 쓰러져 있던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지만. 왠지 모르게 무거워진 몸 때문에 움직이기가 어렵다.

  " 움직이지마라, 지금 네몸 구석 구석은 자그만한 골절상이 수두룩하다. 그 몸으로 움직였다간 이쑤시개처럼 부서져버릴걸. 내가 그럴 줄 알고 네 몸을 밧줄로 묶어놨으니 망정이지. "

  남자가 다행스럽다는 얼굴로 말하는 모습에 토가 쏠린 판이다. 내가 무슨 죄를 지은 사람도 아니고 멀쩡한 사람을 왜 밧줄로 묶어놓는거야? 이 남자도 은근히 사람 골 때리게 한다. 그나저나, 대체 어떻해된걸까. 태풍과 폭풍의 경계선을 봤을땐 이미 투기장이며, 건물이며 다 부서져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돌풍에 휩쓸려가는 모습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얼떨떨한 표정인 나를 보며 남자가 이상한 듯,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살며시 다가온다.

  " 그 남자는 누구지? 너가 꾼 꿈에 나타난 그 남자와 아는 사인가? "

  남자가 조금은 차가워진 말투로 내게 물었다. 남자의 물음에 뭔가를 말하려했으나. 사실적으론 그 남자를 어디에서 본 기억도 없는 나는 처음보는 사람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러자 남자는 조금은 못 믿겠다는 눈초리로 쳐다보다 이내 알았다며 고개를 돌린다. 고개를 돌린 남자를 쳐다봤지만, 그 남자는 왠지 모를 걱정에 빠진 듯한 표정으로 그저 먼 숲만 바라볼 뿐이다.

  〃뭘 멀뚱히 앉어있어? 집에 안 갈거냐? 지금쯤이면 태풍과 폭풍도 저 멀리로 사라졌을거다. 빨랑 빨랑 움직이지않으면 해가 질 수도 있으니, 빨리 움직이라고. 리린, 밧줄이나 풀어줘.〃

  피곤한 듯 길게 하품을 하던 쿠링이 눈을 비비며 말했고, 남자는 쿠링의 말을 듣고 밧줄에 묶인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밧줄을 풀어준다. 밧줄이 풀리자, 사그라들었던 고통이 내 목구멍을 타고 뿜어졌다.

  " 크아아아악!!! "

  고통을 잊으려 비명을 내질르지만,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않자.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목청껏 소리쳤다. 바위에 누워있던 쿠링이 신경질적인 눈초리로 시끄럽다고 욕을 퍼붇지만, 고통에 억눌린 나는 쿠링의 말은 귓등으로도 들리지않았다. 고통에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보던 남자가 풀어놓은 밧줄을 다시 내게로 가져오더니, 이내 내 몸을 둘둘 밧줄로 감아 꽉 밧줄을 묶고나서 나를 쳐다본다.

  " 하아… 하아. "

  밧줄을 묶고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제길, 저 남자말대로 지금 내 몸에 군데 군데 금이 가서 그런가. 겁나게 아프다. 이 상태로는 절대로 한 발자국도 못 걸을 것 같은 생각에 왠지 모를 좌절에 빠졌다. 이 모습을 보던 쿠링을 혀를 끌끌차며 그 남자에게 나를 들고가라고 말한 뒤 쿠링은 어디론가 향한다. 

  " 잠시만 아파도 참아라, 곧 치료해줄테니. "

  밧줄이 묶인 매듭을 한 손으로 잡던 남자가 이내 나를 들고 쿠링의 뒤를 쫓아간다. 밧줄에 묶인 나는 대롱대롱 그 남자 손에 이끌려서 어디론가 향하게되었다. 뭐, 거기까진 괜찮다. 하지만, 밧줄에 묶인 몸이 남자로 인해 더욱 더 조여져서 고통이 조금씩 찾아온다는 점 빼고는 괜찮다. 하루 빨리 마을을 찾아야할텐데. 해가 조금씩 붉은 노을을 남기고 사라지기 시작한다.



  P.s : 2번째 수정.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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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탓하지마라.

시간을 흘려보낸건 나 자신이다.

시간은 주어진게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연히 나라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그 시간의 흐름에 어떻게 따라가느냐의 내가 증명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증명해보려한다.

  • ?
    그르르친구 와르르 2012.02.23 03:21
    포인트가 와르르, 포인트 팡팡! 이벤트~

    축하합니다. 아인님 깜짝 이벤트, 포인트 팡팡! 포인트 10를 선물해드립니다~ 다음에 만나요 뿅

  • profile
    아인 2012.02.23 03:22

    헐.. 잘못 올렸는데 당첨 됬엌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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