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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3 03:36

소설

조회 수 764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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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멍울이 맺힌 그의 얼굴에서 시뻘건 흔적만이 남았다. 나도 모르게 뻗어버린 주먹을 서둘러 제자리로 이끌자, 교실 안 시끌벅적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 둘 나와 가림이를 쳐다봤다. 아무 말 없이 숨만 거칠게 내쉬는 나완 달리 가림이는 코에서 흐르는 끈적끈적한 액체를 바닥에 흘리며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가림이가 방금 전 내뱉은 그 언행에 대해 책임을 물어줬으면 싶어서 내지른 행동에 조금은 가책을 느낀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용식이가 가림이를 때린 것 같은데?"

"용식이 저 자식, 언제 한번 사고 칠 줄 알았다니까."

친구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며 나에 대한 눈빛으로 가득 찼다.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눈빛은 순전히 나 혼자만 잘못했다는 듯, 날카롭고도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 일은 순전히 나 혼자서 저지른 일이 아니었고. 나한테 맞은 가림이 또한 나에게 잘못을 저질러 일어난 사단이건만,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들 나를 마치 짐승 쳐다보듯 바라본다.

"하아."

친구들에게 이 상황에 대해 해명을 할 생각은 없다. 더군다나 해명을 한다 해봤자 그들은 내 말을 믿지 않을 테니. 그냥 나는 나쁜 놈이기에 가림이를 때린 것이며, 가림이가 맞은 이유는 묻지 않는다. 그게 그들의 해결 방식이었다.

나는 그 길로 가방을 챙겨 서둘러 쫓기듯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곳에 가만히 앉아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림이에게 사과를 하고 내가 수업을 받는다 해도 그들은 계속해서 나를 그렇게 쳐다볼 것이다. 10분 전, 내가 내뱉은 한 단어로 인해 가림이가 나를 쳐다본 그 눈으로 말이다.

학교 앞은 공허했다. 마치, 나를 제외한 모든 시간이 멈춘 마냥 세상은 고요했다. 늘 걷던 이 길이 오늘은 왜 이리 힘든 걸까. 질척거린 듯, 바닥엔 그저 단단하게 굳은 아스팔트뿐인데. 왜 나는 진흙 위에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게 힘든 걸까? 왤까? 도대체 왜 나는 이런 감정에 휩싸여야 하는걸. 까. 나는 분명 아무 잘못 없는데. 설사, 잘못이 있다해도 그 말이 그렇게도 잘못한 걸까? 나는 단지 미래에 뭘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아무 것도 생각한 게 없다고 했을 뿐인데. 왜 가림이를 나에게 그런 행동을 보였을까? 왜, 왜 내 친구였던 가림이마저 나를 그런 눈빛으로 봤던 걸까? 왜, 왜, 왜…….

'툭'

혼령이 빠져나간 듯, 휘청거리는 내 몸에 누군가가 부딪히며 바닥으로 나동그라진다. 살짝 닿았을 뿐인데 할리우드 액션배우라도 되는 듯 한 바퀴 허공에서 돌던 남자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진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웬만한 사람이 나에게 살짝 부딪혔단 이유로 저렇게 공중제비돌기를 할 수 있던 건가? 나는 희미한 의식 속에 자그마한 창을 두드려본다.

"괜찮으세요?"

내게 손을 내민 건 다름 아닌 바닥에 쓰러진 남자. 분명 내가 자신을 밀쳤음에도 내게 먼저 손을 내민다. 나는 얼떨결에 사과할 타이밍을 잊어버리고 그에 손을 잡아 그를 자리에서 일으켰다. 어찌 보면 내가 도와준 것 같아도 이번에는 왠지 이 남자가 나를 도와준 것 같다.

"죄송해요. 제가 한 눈을 파느냐."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내 사과를 흔쾌히 받은 남자는 싱긋 웃으며 바닥에 떨어진 통조림을 하나씩 주워 봉지에 담는다. 방금 전 나와 부딪힌 것 때문인지 봉지는 반쯤 찢어진 채 남자의 손에 붙들려있었다. 그 모습에 미안함을 느낀 나는 그 남자의 통조림을 손수 주워 남자에게 건네줬고, 남자는 내게 건네받은 통조림을 고맙게 받으며 찢어진 봉투 안으로 넣는다.

'통'

그러나 깨진 물병에 다시 물을 담을 수 없는 것처럼 그가 들고 있던 봉지에서 통조림이 하나 둘 다시 밖으로 일탈을 하며 바닥으로 나동그라진다. 남자는 당황스러운 듯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또 다시 통조림을 주워 담았고, 마치 남자를 갖고 노는 것 마냥 통조림들은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다. 몇 차례 반복을 하던 남자를 보고 있던 나는 가방을 뒤적거려 봉지가 있나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봉지 같은 게 … 있었다.

"여기요."

"아, 고맙습니다."

왜, 봉지가 내 가방 안에 들어있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봉지가 있어서 다행이다. 내게 건네받은 검은색 봉지에 통조림을 담던 남자는 다시 한 번 내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자리를 떠난다. 나도 왠지 모를 흡족 감을 느끼고 발걸음을 돌릴 때. 남자가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나를 불러 세운다.

"너, 혹시 용식이? 유용식이 맞지?"

"형?"

그 남자는 나와 이웃에 살던 백수 형이었다. 3년 전, 개인적인 일로 인해 이사를 가야만 했던 백수 형은 그 이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나는 우연히 백수 형을 만나게 되었다. 백수 형은 3년 전과는 다르게 꾀죄죄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고, 나는 조금은 당황스럽지만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백수 형에게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물으며 차나 한잔 할검 집으로 향하고 있다. 백수 형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재미난 입담을 뽐내며 이사를 간 뒤에 있었던 일들을 우스갯소리로 내게 말해주었고. 잠시나마 꿀꿀했던 기분이 풀어지는 듯싶었다. 백수 형과 얘기를 주고받던 나는 어느덧 집 앞까지 다다랐다.

"실례합니다."

집 안에 들어선 나는 현관문을 잠그며 복도로 들어섰고, 내 뒤를 따라 들어오던 백수 형은 그간 달라진 집 안을 둘러보며 나와의 추억이 생각나는 듯, 그리운 미소를 짓는다.

탁자에 앉아 조용히 집을 구경하는 백수 형에게 따뜻한 허브티를 건네며 나 역시 자리에 앉아 허브티를 내 앞에 놓았다. 시원하면서도 상쾌한 허브티의 맛에 백수 형은 입맛에 맞는지 이내 홀짝거리며 허브티를 마신다.

"예전에 너랑 나랑 많이 놀았는데 …. 하아, 이 집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구나."

허브티를 마시던 백수 형이 옛날이야기를 꺼내며 내게 말한다. 나는 피식 웃으며 아무 말 없이 허브티를 마셨다.

"이 동네엔 어쩐 일이야? 집도 여기서 꽤 멀 텐데."

"그냥. 오랜 간만에 들렸지 뭐."

백수 형은 푸근한 미소로 내게 말한다.

"회사 일은 어때? 형 회사 일 때문에 이사 간 거였잖아. 지금 직급이 어떻게 돼? 그때 형 신입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끝내줬잖아. 지금쯤이면 대리? 과장?"

"나, 회사 관뒀어."

백수 형은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내게 말했다.

"어, 어? 회사를 관뒀다고? 아니 왜?"

"왜는 왜야. 적성에 안 맞아서 그렇지."

백수 형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간 있었던 이야기들을 해준다. 백수 형의 얘길 들으면서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백수 형의 생활과는 정반대로 지냈던 백수 형을 보자 측은한 느낌이 든다. 그때만 해도 매사 의욕이 불타오르는 정열적인 남자였는데. 왜 갑자기 형이 회사를 관둔 걸까.

"지난 3년 전, 이 동네에서 이사를 떠난 뒤부터 늘 하루하루가 고달팠어. 늘어나는 업무량에 잦은 야근. 더군다나 야근이 없는 날에는 새벽까지 회식. 덕분에 생활리듬이 깨지고 사람이 반쯤 망가지니까,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지더라. 처음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너도 알다시피 내가 아주 일을 끝내주게 처리했잖아? 그때만 해도 내가 못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 그런데 왜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힘들어하는 이유를 알겠더라. 나도 느꼈어. 그때의 기분을 말이야."

씁쓸하게 흘러나오는 백수 형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딱히 위로해줄 말은 떠오르지 않을 뿐더러 나의 롤모델로 우상을 삼던 백수 형의 저런 모습을 믿을 수 없었기에 나는 그저 침묵만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매일 매일이 고달프게 살아가던 어느 날. 일이 터져버린거지. 내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가 엉망진창으로 얶히는 바람에 그 길로 회사에 떠났지. 뭐, 솔직히 말하면 내가 스스로 회사를 관둔 게 아니라, 잘리기 싫어서 내가 자진으로 퇴사했다고 생각하면 돼. 뭐, 그 길로 회사와는 정반대에 생활을 지냈지만 …."

어느새 소주잔으로 둔갑한 허브티를 연신 들이키던 백수 형은 얼굴을 찌그러트리며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는다. 나는 조용히 백수 형의 잔에 허브티를 따라주었다.

"말 그대로 엉망진창 이였어.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까 살 가망을 못 느낀 거야. 다른 일자리를 찾아볼 생각도 못했어. 또 그런 일이 반복될까봐. 두려웠지. 먹고는 살아야하는데 그러질 못한 거야. 다시 그 고통과 고난들을 되풀이할 용기가 없었거든.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이 세상은 말 그대로 약육강식의 세계니까. 내가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내가 나락으로 떨어질 동안 나를 밞아 올라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하는걸 내가 보고싶지않았거든. 그래서 다시 한 번 용기를 내고 취직자리를 알아봤지만. 하아, 맘대로 그게 안 되더라. 한번 회사에 잘리고 나니까, 도통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거야. 면접관들이 나한테 ' 이 회사에 지원하게 된 동기가 뭡니까? ' 라고 물으면 나는 아무 말도 못했어. ' 먹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어 이 회사에 지원했습니다. ' 라고 말할 순 없잖아? 당연히 나는 면접에서 떨어졌고, 또 다시 암흑 길로 들어서고 말았지 …."

'탁'

"하아, 다시 생각하면 정말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다시 일어나면 되는데 그걸 일어나질 못한 거야. 마치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이가 겁을 먹은 것처럼. 하지만 걔들은 그 무서움을 딛고 자리에서 일어나 걷잖아? 나는 그것마저도 못한 거야. 왜냐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싶지않으니까 …."

"그러면 회사는 아니더라도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얻어서 해보지 그랬어."

"내가 안 했겠냐? 다 했지.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가 느낀 게.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거야. 나이 31살이나 처먹고 기껏 하는 일이 숯불 나르는 일과 서빙 하는 일. 편의점에서 바코드를 일일이 찍어 삑삑 소리만 귓가에 울리는, 나는 그런 일을 하려고 내가 악착같이 살아온 것 같아? 너도 알잖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지 그럼. 비록 내가 어렸을 때 일이였지만."

"그때는 대학만 좋은 곳에 나오면 일생이 편하다는 어른들의 말에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 공부만 해왔는데 결국엔 아르바이트나 하고 앉았다 내가. 어느 날 서빙을 하다 보니 생각난 거야. 내가 여기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나. 나는 분명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텐데. 내가 이런 곳에서 시간을 허비해야만하고. 그래서 그간 다녔던 아르바이트를 모두 끝내고 또 다시 취직을 하기 위해 동네방네 안 뛰어 다닌 곳이 없어. 발에 물집이 잡히고 그 물집이 터져 또 다른 물집이 생길 때까지 뛰어 다녔지만. 결국엔 아무 것도 없었어. 내가 향한 곳엔 나를 기다려주는 회사가 없더라고. 한마디로 그거지. ' 전에 다녔던 회사도 힘들다고 관둔 주제에 다른 회사에 취직해서 또 그만둘라고? '. 결국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자신 이였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그 일이 일어난 후론 며칠 방에 틀어박혀서 밖에 나오질 않았어. 밖으로 나가봤자 나를 반길 사람은 없으니까. 갈 데가 있나 아는 사람이 있나. 그냥 나 혼자 있으니까. 집에 있던 거야. 아무데도 갈 곳 없는. 나의 집 밖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를.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눈물을 참아가며 살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도 이 상황이네. 하아, 정말 한숨 밖에 안 나온다."

백수 형은 그간 담아놨던 응어리를 풀어헤친 듯, 약간은 평온한 얼굴로 허브티를 마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려고? "

"화장실."

"아, 화장실이라면 왼쪽으로 가면 있어."

"나도 알아 인마."

백수 형이 웃으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난 또 드라마처럼 울며 밖으로 뛰어나가는 줄 알았지만, 역시 현실과 드라마는 다른 거였나. 후우, 뭐 다행일까. 백수 형은 그래도 그렇게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10분여간에 시간이 흐른 후 백수 형이 돌아와 자리에 앉는다. 나는 백수 형이 없는 동안 잠깐에 요깃거리를 만들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고, 탁자 위에 올려져있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보며 백수 형이 기쁜 듯 미소를 짓는다.

"이걸 네가 직접 만든 거냐?"

"엉, 많이 먹어."

비록 차린 것 없었지만. 이 음식으로 인해 백수 형이 그간 겪었던 고난과 슬픔들이 조금은 씻겨 내려갔으면 하는 소망이다. 다는 아니겠지만, 쓸쓸했던 백수 형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줄 사람이 한 사람은 필요했을 테니까.

"근데 너."

"응?"

"아까 전에 봤을 때 뭔가 고민하는 것 같던데. 뭐야?"

"아, 그거?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뭐야? 뭔데 그래?"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 라면이나 먹어."

라면 먹다 말고 내게 뭐가 궁금한지 백수 형이 계속해서 나의 고민을 물어본다. 참다 참다 몇 차례 계속된 백수 형의 질문에 보다 못한 나는 이내 말문을 열었다.

"가림이라면, 예전에 네가 데려왔던 그 애? 그 애가 왜? 너랑 친한 거 아니었어?"

"친하긴 친하지. 다만, 오늘 있었던 그 일 때문에 살짝 기분이 상한 것뿐이야."

"뭔데 그래? 나한테 얘기해봐."

더 이상 회피해봤자 계속 물어볼걸 안 나는 학교에서 가림이와 있었던 일들을 백수 형에게 말해줬고, 백수 형은 내 말을 들으며 피식 미소를 짓는다.

"그러니까 가림이란 놈이 문득 너에게 장래에 뭘 하고 싶냐라고 물었는데, 너는 딱히 장래에 정한 것이 없다고 해서 싸웠다? 하하, 아무리 컸다 고해도 애는 앤가. 뭘 그런 것 가지고 싸우냐. 쪽팔리게."

"나도 그렇게 까진 안 할라고 하는데. 아니, 그 자식이 사람 짜증나게 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필이면 죽빵이냐."

"아, 몰라. 밥이나 먹어."

학교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다시 짜증이 밀려온다. 백수 형은 낄낄대며 재밌는 눈치로 나를 쳐다본다.

"야."

"아, 왜?"

"너, 뭐가 하고 싶냐?"

"엉?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정말 장래에 뭔가 하고 싶은 거 없어? 선생님이라던가 대통령 같은 거."

"선생님이 되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더군다나 대통령? 누구 말아 먹은 작정인가."

"정말 하고 싶은 거 없어? 아니면 은 취업을 할지 진학을 할지에 대해서라도. 너 지금 고2잖아 안 그래?"

"얼씨구, 내 나이는 어떻게 알아서."

"네 나이 때라면 진학과 취업 사이에 결정을 할 나인데. 그것에 대해선 고민 같은 것 없어?"

"형."

"응?"

"나는 취업과 진학의 사이 같은 건 별 상관없어. 나는 그런 시시한 게 아니라 정말로 내가 앞으로 뭘 하고 지내면 좋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을 뿐이라고. 취업이든 진학이든 둘 중에 그만둘 수도 있고. 형 얘기처럼 후회도 하고 절망도 할 수 있는데. 그것들을 다 뿌리쳐내서라도 내가 정말 후회 없이 할 수 있는걸 원한다고. 그걸 형이 알기나 해? 시끄럽고 밥이나 먹어!"

나도 모르게 감정이 욱했던 탓인지, 괜히 백수 형에게 대뜸 화를 내며 얘기를 중단했다. 백수 형은 그런 나의 행동에 잠시 당황했는지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본다. 그리곤 뭔가 떠올랐는지 밥을 먹던 내게 말을 건다.

"너, 예전에 그 공원 기억해?"

"아, 또 무슨 소리하게? 무슨 공원!"

"그 있잖아. 나 이사 가기 전에 철거 된 쓰레기 공원."

"근데 그게 왜?"

"지금부터 내가 너에게 미래에 뭘 하면 좋을지 알려줄게. 그러니까 잘 들어."

"밥 먹다 말고 무슨 소리야?"

"잘 들어봐. 지금 너는 정말 단순한 문제로 머리를 끙끙 싸매고 있는 것뿐이야. 내 문제에 비해서 네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너는 바로 네 코앞에서 그 해답을 찾는 것뿐이라고."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예시를 몇 개 둘게 잘 들어봐. 내가 방금 말한 쓰레기 공원을 잘 생각해봐. 우리가 예전에 철거되기 전 당시에 세상을 잠시 떠올려봐. 사람이 한명도 오지 않는 그 공원을 말이야. 공원 안에 가득 차있어야하는걸 사람일 텐데, 그 안에는 쓰레기 밖에 없었어. 그 쓰레기들도 순전히 사람들이 버린 건데 말이야. 원래는 그 공원도 사람들이 즐겨 찾고 아이들이 뛰놀던 그런 공원이었어. 사람들이 쉬고 싶으면 벤치에 앉아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를 눈으로 보며, 아침 운동을 하면서 주위를 거닐며 다니던 사람들과 정답게 인사를 할 수 있던 그런 공간을 말이야. 하지만, 그것 때문인지 하루가 다르게 쌓여져가는 쓰레기들 앞에 매일 공원을 청소하시던 청소부 아저씨들도 혀를 내두르며 그 공원을 방치하자 결국엔 그 공원이 일종의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거지. 분명 그곳은 우리가 놀던 공원 이였는데 어느 날 가보니 쓰레기로 가득찬 곳이 되었으니까. 사람들은 말했지. ' 공원이 빨리 사라져야 할 텐데. ' , ' 왜 청소부들은 청소를 하지않는거야? ' 라고. 그런데 그렇게 만든 건 바로 자기 자신들인데 그건 인지 못한다는 거지. 결국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공원이 철거되었지만 말이야. 그런데 너 그거 아냐? 그 쓰레기 공원에 있던 것들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게 뭔 줄 알아? 공원 안 벤치? 공원 안 분수대? 공원 안 정원? 아니, 삐쩍 마른 나무 한 그루였어. 그것도 내 머리 위까지 밖에 안 오는 작고도 가냘픈 나무. 왜 하필이면 값 비싼 분수대도 아니고 고작 나무 한 그루만 남기고 철거했을까? 뭐, 그런 거야. 몇몇 사람들이 말하자나. 지구가 망하더라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고. 왜겠어? 내일이 될지 오늘이 될지 지금 당장이 될지 모르는 시점에서 그들은 왜 지구에 나무를 심으려 했을까? 그건 바로 한치 앞을 모르기 때문이야. 혹시 몰라 인류는 멸망해도 사과나무는 살아남을지. 결국엔 그 나무 역시 사람들이 심은 사과나무랑 같은 이치인거야."

"근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당연히 너랑은 아무 상관없지."

"아, 지금 나랑 장난해?"

"단지, 네가 이 얘기를 듣고 나서 생각나는 게 있을까싶어서."

"전혀 떠오르는 게 없는데?"

"후우. 뭐, 그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하지만 있잖아."

"또 뭐?"

"쓰레기 공원이 철거된 이유도 사람들 때문이고, 지구가 멸망하게 되면 그 또한 사람들 때문이야. 왜 그러냐고? 자기들의 이익을 찾기 위해 남은 생각치도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하늘이 천벌을 내리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의 사회도 그렇잖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밑에서 죽어라 일하는 사람들을 부려먹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무차별로 해고 시키고.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를 할 수 있는 것 가지고 단칼에 그 사람의 인격을 정해버리고. 어쩔 수 없는 거야.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건. 다 우리들 잘못이지. 사회에서 살아나가려면 어쩔 수 없이 공동체를 이룰 수 없어.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들거든. 그래서 하나 둘 모여서 하나의 집단을 만들고, 그 집단들이 또 다시 다른 집단과 섞여 또 하나의 집단을 만들어 사는 게 우리들의 사회고 지금에 현실이야. 하지만, 그 공동체 속에서 내가 발견한 게 뭔지 알아? 바로 ' 나 ' 란 존재야. 남들과 섞이다보면 점차 나라는 존재는 잊혀지고 그 집단에 속해있는 구성원에 불과해. 일일이 그 사람의 이름을 알 필요 없고, 그 사람이 무슨 취미를 갖고 있으며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는 아무 상관 없는 거야. 굳이 알 필요도 없고. 왜냐고? 그게 그 회사에 도움 될 일은 없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개개인의 사생활은 무참히 짓밟아버리고 그저 이 사회에 헌신하라는 식이지. 나는 그래서 견딜 수 없던 거야. 사회라는 세상에서 말이야."

백수 형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뭐, 내 말에 모순이 있긴 있겠지. 100% 정답은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말이야. 이렇게 생각해. 사회에 살아가기 위해서 남들에게 묻혀살지말고 나란 존재를 부각시켜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게 좋다고. 그게 잘 안된다고 실망하지 말고 계속해서 나아가다보면 결국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테니까. 내가 하고자하고 싶은 일을 드디어 할 수 있으니까. 후회? 그런 건 없어.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다르니까. 꼭 내가 하고 싶은 그 일. 그 일을 한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좋을 것 같아."

"…."

"뭐, 너한텐 아직 이른 감이 있겠지. 나도 이것을 깨우치기 위해 8년이란 시간을 보냈으니까. 하지만, 너는 나란 달리 어리니까. 해낼 수 있을 거야. 네가 진심으로 원하는 삶을 말이야."

백수 형은 그 말을 끝으로 집을 나섰다. 어느덧 시계바늘이 6자를 가리켰고, 하늘에 콕 박혀있던 태양 역시 지평선을 향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아, 너한테 하나 빼먹은 말이 있는데."

"뭔데?"

"내 어릴 적 꿈은 만화가였어. 웬 줄 알아? 어릴 때 내가 그렸던 그림들을 보며 웃는 친구들이 너무 좋았어. 나의 재능에 부러워하는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의 즐거워하는 얼굴이 좋았어. 그래서 나는 생각했지. 내가 크면 꼭 만화가가 되겠다고. "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에서 보는 눈도 점차 없어지고, 부모님들은 나의 행동에 서서히 참견이 많아졌지. 어쩔 수 없었어, 결국엔 만화가란 꿈도 저 멀리 허망된 꿈처럼 사라졌지만."

"그래서 다시 한 번 해보려고?"

"응. 해보려고. 솔직히 지금 와서 다시 만화를 그리는 게 우습겠지만 이번에는 해보려고. 학원도 다녀보고 공부도 열심히 해보려고. 그래서 내가 후회하지 않은 멋진 직업을 꿈꾸려고. 내가 나중에 만화가가 되면 책 한권 보내줄게."

"그래, 알았어."

"아, 그리고."

"응?"

"아직도 미래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한번 부딪혀봐. 사회라는 세상 안에 한번 부딪혀보고 생각해. 아무리 네가 나보다 총명하고 똑똑할 진 몰라도 네 나이 때는 아직 사회에 대해 모르거든. 아르바이트는 사회에 속한 일부분에 부족해. 정말 한번 네가 사회에 제대로 부딪히고나 서 너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면 그때 연락해. 그럼 내가 도와줄 테니까."

"…."

"그럼 이만 돌아간다. 잘 지내라."

백수 형은 내게 마지막 인사를 한 후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조용히 백수 형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몇 시간 전에 봤던 백수 형과는 달리 유난이 행복해보인 모습으로 돌아가니 내 마음 또한 편하다. 내가 정말 하고자픈 일이라 …. 백수 형의 말대로 아직은 무리인가.

"쩝."

뭐, 그래도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봤으니 다행이지. 그동안 많이 수척해졌던데. 이번에는 꼭 성공하길 ….

"응?"

집 안에 들어서니 낯익은 봉지 하나가 눈에 띈다.

"이 형, 통조림도 안 가지고 갔네. 그냥 내버려둘까 … 아니지, 안 그래도 백수라는데 갖다 줘야겠다."

봉지를 한 손에 들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 사이 많이도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참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형이다.

"어?"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은 꽤나 반짝거렸다. 구름에 가려 매연에 가려 보이지 않던 별들이 오늘따라 형광물질을 처발랐는지 유독 반짝거린다.

"."

사과나무라 ….

"아 참, 통조림. 백수 형!!"

아직은 모르겠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내 머릿속에선 계속해서 맴도는데 쉽사리 밖으로 표출되지 않는다. 내가 원한다면 남들의 눈이 아닌 나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건 정말 내 삶이 될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지만, 때가 되면 백수 형 말대로 내가 원하는 직업을 찾을 수 있을까? 그때가 된다면 백수 형이 찾은 진정한 삶의 목표를 찾을 수 있는 걸까? 왠지 모르게 두근거리는 가슴이 점점 타오르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별거 없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단순히 취업과 진학에 갈등이 아닌 그 이상의 사회에 관한 것이 저에겐 아직 무리가 오지 않았나 싶네요. 비록 아직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못 찾았지만, 옛말에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이 흐르면 언젠간 ' 그것 ' 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비록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진 모르겠지만 말이죠. 저 역시 가만히 있진 않을 겁니다. 계속해서 찾아내고 찾아내다보면 언젠가 그 꿈을 이룰지 모르니까요. 오늘의 밤하늘 역시 깨끗하게만 느껴지네요. 감사합니다.

 

+ 작년에 문학시간에 쓴 소설. 포팡이 자꾸 당첨되서 계속 옛날걸 들먹이게 되네.

Who's 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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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탓하지마라.

시간을 흘려보낸건 나 자신이다.

시간은 주어진게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연히 나라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그 시간의 흐름에 어떻게 따라가느냐의 내가 증명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증명해보려한다.

  • ?
    그르르친구 와르르 2012.02.23 03:36
    포인트가 와르르, 포인트 팡팡! 이벤트~

    축하합니다. 아인님 깜짝 이벤트, 포인트 팡팡! 포인트 10를 선물해드립니다~ 다음에 만나요 뿅

  • profile
    아인 2012.02.23 03:37

    진짜 이게 미쳤나. [ 이걸로 그만 올림, 계속 올리면 정신이 나가버릴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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