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정성이 포함된 글입니다.
우리들은 가끔 생각한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가장 난해하면서도 가장 가까이 있으며 그 자체인데도 말이다. 몇가지로서 분류를 해보자면 인간에겐 정신과 육체가 있다. 또 이곳에서 분류를 하자면 정신에선 기본적으로 감정과 생각으로 나뉘고 육체는 생리적 활동과 비생리적 활동이 존재할 수 있겠다. 또 감정에선 기쁨과 슬픔, 아픔, 절망, 분노, 충동 등이 있을 수 있으며 생각으론 계획, 이해 이정도가 있을 수 있겠다.
우리들은 이렇게 생각해보면 끝도 없을 인간이란 자신 혹은 타인에 대해 연구해본다. 매일매일을 생각하며 누군가는 이러할 것이다. 아니면 누군가는 저러할 것이다. 생각해볼 것이다.
극단적으로 누군가를 미치도록 증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찰칵! 찰칵!
어디선가 카메라가 찍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간혹 여자의 신음소리와 남자들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애원하는 여자의 목소리. 울부짖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은 소리.
한 명의 남자가 화를 버럭내며 그녀를 땅으로 내팽개쳤다. 그들의 복장은 교복으로 봐서 아직 학생인 듯 했다. 그리고 땅에 넘어져 울고 있는 여성 또한 학생인 듯 했다.
"너 사진 찍어뒀으니까 헛튼 수작 부릴 생각하지마. 오늘은 이정도로 관둘테니까 다음 번에도 잘하라고."
"……."
"뭐야? 왜 대답이 없어?"
남자의 험악한 인상에 흠칫 놀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들려오는 그의 웃음 소리.
"유신애. 똑바로 하고 다녀라. 다음 번에 이걸로 안끝난다. 알겠냐?"
"으, 응."
"똑바로 대답해. 이년아!"
남자가 그녀에게 저벅저벅 걸어가 그녀를 걷어찼다. 그녀는 놀라서 사레들린 듯 켁켁거리며 몸을 웅크렸다. 그런 그 모습을 보며 또 킥킥대며 그는 그 곳을 빠져나갔다.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그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구석에 버려진 교복과 속옷들을 집어들었다. 주섬주섬 눈물을 꾹꾹 참으면서 옷을 입었다. 그녀는 일어서려다가 발목이 찌릿한 것을 느끼고는 다시 주저앉았다. 아마도 발목을 접질린 듯 하다. 무엇때문일까?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더럽히고 있는 것일까?
집에 돌아온 그녀는 가만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냥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녀의 남동생인 신우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그녀의 모습에 기겁하면서 소리질렀다.
"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누나 요즘 왜 이렇게 있는 건데!"
"아무 것도 아니야. 넘어졌을 뿐이야."
넘어졌을리가 없다. 넘어진다고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될리가 없다. 그리고 몸에서 약간 이상한 냄새도 났다. 무언가 익숙하진않지만 역겹고 더럽고 이상한 느낌의 그 냄새.
"누나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길래 그 냄새가 나는 건데? 나도 바보는 아니라고. 어서 말해. 아니면 내가 누나를 어떻게 해서든지 말하게 해버릴테니까!"
동생의 화난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숙이면서 다시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상관하지 않아도 돼. 넌 아무 것도 알지 않아도 돼."
문득 생각했다. 그녀의 그 젖은 음성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도와줘. 제발 도와줘, 신우야. 나 죽어버릴 것 같아.
그러나 도와줄 순 없었다. 나는 그저 동생이고 그녀에게 난 약한 사람일뿐이니까.
"……알았어. 이리와. 약발라줄테니까."
"응."
나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약상자를 들고 왔다.
"약 바를꺼니까 윗 교복 블라우스 벗어."
"시, 싫어. 나 속옷밖에 안 입었단 말이야."
"벗어. 내가 미치지 않은 이상 누나하고는 키스조차 안해."
"뭐, 뭐라고!"
"그러니까 순순히 벗어. 온 몸이 멍투성이로 남기 싫으면."
그녀는 분한 얼굴이지만 부끄럽고 당황한 눈치였다. 그래도 딱히 난 정말 그럴 마음이 없었기에 그녀가 교복을 벗기를 천천히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당황해버렸다. 생각보다 많은 멍자국들과 상처들. 그러나 그것들을 보며 묻지는 않았다. 물어도 그녀는 황당한 대답으로 넘어졌다고 말해버릴테니까.
나는 그녀를 돌아앉게 하고는 천천히 상처 부위에 약들을 발라주었다. 알 수 없는 분노와 증오. 누군가에게 보낼지 모를 이 분노와 증오들은 내 손을 부들부들 떨리게 만들었다. 하나 뿐인 가족이 이렇게 아프다고, 그것도 누군가에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짓을 당했다는 데에 대한 분노. 문득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녀가 볼세라 황급히 눈물을 지웠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상처 부위엔 약을 다 발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앞으로 돌아 앉아."
"뭐? 미쳤어!"
"맹세하고 난 아니라니까."
"이번만은 싫어! 내가 바를꺼야!"
"마음대로 해."
나는 그녀에게 싱긋 웃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알고 있을까? 하나 뿐인 남동생이 얼마나 분노하고 아파하고 있는 지를.
"야, 좋은 말로 할 때 옷 벗어라. 유신애. 확 밟아버리기 전에."
"제, 제발 봐줘. 한번만. 제발."
"이 사진이 퍼지기를 원해?"
남자가 자신의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그녀에게 보여줬다. 그녀는 사색이 되어있었다. 그곳엔 그녀가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체 울고 있는 사진이 찍혀 있었다.
"이제 나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단 걸 알겠지?"
낄낄거림. 울먹이는 소리. 누군가를 때리는 소리.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 젖은 신음소리. 남자의 더욱 커지는 비웃음 소리.
나는 교실에 앉아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거지?
갑자기 교실이 시끌벅적해졌다. 누군가가 흔히 말하는 빨간 책, 즉 그렇고 그런 책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환심을 끌고 있었다. 나는 시큰둥하며 그 쪽을 바라보았다. 문득 움찔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 책을 뺏어 들었다.
"이리 줘 봐!"
"뭐? 너도 남자구나."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나는 책 안 쪽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무언가 속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치솟았다. 왠지 이 사진 속 모습이 우리 누나와 닮아 있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알 수 있는 그 모습. 무엇이 우리 남매를 이렇게도 슬프게도 만드는 것인가?
"야! 나 아파서 집에 먼저 간다고 말해줘!"
"야! 유신우! 어디가! 야!"
난 황급히 집을 향해 뛰어갔다. 뭔지 모를 불안감과 절망. 그것이 나를 이끌고 있었다. 나는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집을 향해.
"누나! 누나! 어디있어! 누나! 대답 좀 해봐!"
나는 숨이 차서 헐떡거렸다. 집 문을 부술 듯이 열어젖히고는 그녀를 찾았다. 찾아야 해. 반드시. 찾아야 해. 내 눈 앞에 있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
그때 핸드폰이 울리며 문자 한 통이 나에게 전해져 왔다.
"뭐, 뭐야 이게?"
누군지도 모를 사람이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그 문자 내용을 보고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우리 누나가 누군가에게 강간을 당하고 있다. 그 사진이 지금 나에게 보내져왔다. 그리고 그 내용 또한 절망감에 젖기에 충분했다.
[귀여운 동생. 자기 누나가 윤간을 당하는 모습을 보니 어때? 흥분되나? 역시 너도 남자라 이 소리구나. 그래. 보고 싶겠지. 누나가 윤간을 당하는 그 짜릿한 순간을 말이야. 보고 싶다면 네 누나 학교 창고로 와라. 그곳에 나랑 네 누나가 있을테니까. 원한다면 좋은 것도 해줄 수 있겠지. 그럼 이따 봐.]
무엇일까? 이 황당한 문자는? 그리고 이 사진은 또 뭐야? 정말? 정말? 우리 누나일까? 아닐꺼야. 절대로 아니야. 우리 누나는 넘어져서 다친거야. 그리고 이 사진 속 사람은 그저 우리 누나랑 비슷한 사람일 뿐일꺼야.
아무리 자기합리화를 하려해도 잘 되지 않았다. 결국 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흐으으."
주저앉아 절망감에 흐느꼈다.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맞아버렸다.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 그렇게 되어버린게 아닐까? 혹은 누나가 나를 원망하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바보일까? 내가 나쁜걸까? 모두 내 잘못일까? 그냥……, 그냥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내가 잘못일까?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절망감에 울었다.
p.s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에 대해 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