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이야기

|  나는 작가가 될 테야! 글을 창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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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가 내 고리를 끊어버린 듯 했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누나를 윤간한 그 사람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그 생각. 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젠장! 망할!"

 

  문득 고개를 돌려 주방을 바라보았다. 식…… 칼? 나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것을 잡아 조심스럽게 신문지로 쌌다. 그리고는 뒷 바지에 걸쳤다. 왠지 안될 짓을 하는 것 같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논리와 사고 따위는 이미 그 문자를 받은 이후론 진행되지 않았다. 내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무섭지만 할 수 있을까? 누나를 위해서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 이건 정당한거야. 나는 사람을 죽여도 책임이 없는거야. 그래. 바로 그거야. 나에게 잘못은 없어. 이건 정당하게 죽이는거야. 그런거라고."

 

  자기합리화를 시도했다. 성공해버렸다. 이제는 돌아 올 수 없는 길을 떠나버린걸까? 이젠 정말로 되돌아 올 수 없는 것일까?

 

  "……과연 될까?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이?"

 

 

 

  빠르게 나는 뛰어가고 있었다. 누나를 향해. 애타는 마음으로.

 

  "하아. 하아."

 

  드디어 그곳에 도착했다.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알 수 없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흐느끼는 목소리도 함께. 그리고 내가 아는 목소리도 함께.

 

  "제발. 제발 그만둬."

 

  정말일까?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닐까? 이건 꿈이 아닐까? 이건, 절대 아닐꺼야. 아니라고 믿어. 절대로 아닐꺼야. 미친 듯이 되내어본다. 아니야. 절대로.

  그리고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신……우야?"

 

  "누……나."

 

  "안녕? 귀여운 동생. 난 신애 친구라고 해. 친구가 친구를 즐겁게 해주는 중이지. 어때? 너도 함께 할래?"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현실부정. 현실회피. 부정. 부정. 부정. 부정. 부정. 부정. 아닐꺼야. 아닐꺼야. 아닐꺼야. 이건 꿈이야. 아니야. 절대로 아니야. 아닐꺼야. 아니야. 이건 꿈이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이건 누나가 아니야. 이건 절대로 아니야. 절대로 아닐꺼야. 아니야. 이건 아니야.

 

  "아니야."

 

  "뭐?"

 

  "이건 절대로 아니야."

 

  "뭐라고?"

 

  "이건 있을 수 없어."

 

  "뭐?"

 

  "왜 누나를 강간했지?"

 

  "서로 원해서."

 

  "그럴리가 없잖아."

 

  "정말이야."

 

  "죽고 싶어?"

 

  "뭐?"

 

  "죽고 싶냐고."

 

  "뭐라고?"

 

  "죽고 싶냐고. 이 새끼야……."

 

  나는 서슬 퍼런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나를 보며 키득거렸다. 무엇일까? 저 눈빛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그 눈빛. 역겹다.

 

  "뭐라고 했냐? 꼬맹아?"

 

  "죽고 싶냐고 했다."

 

  "뭐 좋아. 오늘은 이쯤에서 해두지. 네 동생도 꽤나 무섭고 말이야. 신애. 일어나."

 

  "……."

 

  "……계속 이렇게 할꺼냐?"

 

  "당현하지. 서로 원하니까."

 

 누나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으켜세워 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배신감. 다 알고 있었지만 날 속였다는 느낌. 불쌍한 느낌. 나에 대한 불쌍함. 누나에 대한 불쌍함.
  그가 자리를 떠나고 한참이나 지나서야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집에 가자."

 

 

 

  오늘도 나는 그녀에게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오늘도 넘어졌다는 핑계로서.

 

  "왜 말 안한거야?"

 

  그녀의 어깨가 잠시 움찔했다. 그러다가 다시 잠잠해졌다.

 

  "괜찮은거야?"

 

  "괜찮아."

 

  "괜찮은거냐고?"

 

  "괜찮아."

 

  "괜찮냐고 묻잖아!"

 

  "……괜찮아."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왜, 왜, 왜! 도대체 왜! 왜 우리 누나인데?

 

  "바보 같은 소리하지마. 강간을 당하고도 괜찮지 않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강간같은거 아니야. 내가 좋아서 하는거야."

 

  "그런 웃기지도 않는 소리 작작해! 뭐? 좋아서하는거라고? 원해서 하는거라고!?"

 

  "……응."

 

  그녀의 어깨가 들썩이는게 눈에 보였다. 지금 가장 아픈게 누구일까? 나일까? 아닐 것이다. 누나일 것이다. 내가 아파봤자 얼마나 아플까?

 

  "이제 그만 들어가 잘께."

 

  "……잘자."

 

 

 

  아마도 그 날은 우리 둘에게 너무 힘든 날이였나보다. 나에게 치명적 모습을 보여버린 누나. 그리고 오열하는 나. 그런 우리들을 비웃는 한 남자.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일상은 계속되어갔다. 나는 매일 누나에게 약을 발라주었고 상처의 이유는 언제나 넘어져서 다친 것이었다. 알고 있지만 알고 싶지 않았고 묻고 싶었지만 묻고 싶지않았다.

 

  "야앗. 살살해."

 

  "아, 미안해."

 

  슥슥. 이젠 익숙해져버린걸까? 매일 강간당하고 오며 나에게 아무일도 없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이며 집에 돌아오는 누나. 그리고 그런 그녀를 모른 척하며 바라보는 나. 내가 바보인걸까?

 

  "미안한데, 또 나가봐야할 것 같아."

 

  "또 그 자식이야?"

 

  "……아니야. 그냥 친구한테."

 

  "갔다와."

 

  "응."

 

 


  그 일이 점점 내 마음 속에서 잊혀가려할 때 나에게 또 무언가가 떠올랐다.

  [또 할꺼야. 어때? 이번에도 해볼래? 아, 내 친구들도 불렀어. 2명만 불렀으니까 안심해. 네 차례는 돌아올테니까. 어서 와 봐.]

  나는 다시 학교를 향해 뛰어갔다. 제발. 그만 둬. 우리 누나를 그만 괴롭혀. 나에겐 하나 뿐인 사랑인데. 이 사랑이 깨져버리면 난 이제 더이상 살 수 없는데. 날 그만 내버려 둬.

 

 

 

  "하아, 하아."

 

  나는 굳게 마음 먹었다. 이제 더이상 누나를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 악연을 끊어버릴 것이다.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
  주위를 둘러보니 공사 폐자제로 쇠몽둥이가 몇개 널부러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들었다. 이젠 제발 그만해 줘.

  저벅저벅. 그때와 같은 소리. 음성. 절망감. 문을 열어젖혔다. 처음보는 또 다른 두명의 사내. 그리고 그 남자.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몽둥이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달려갔다.

 

  "이야야야야!"

 

  퍽. 둔중한 음성이 지나고 내 몽둥이에 맞는 한 사내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 옆에 사내는 기겁하고는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버려. 죽어버려!

 

  "죽어!"

 

  퍽. 아직 멀었어. 계속 머리를 때린다. 계속 때리고 때렸다. 머리에서 피가 치솟고 뇌수가 흘러내렸다. 사람을 죽였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 정당성을 부여해서 사람을 죽였다. 정당하다. 이것은 정당한 것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정당성이 이렇게도 좋은 것이였나?

 

  "너 이새끼야."

 

  "그, 그만둬. 무슨 짓이야!"

 

  "싫어."

 

  "너, 넌 살인자야! 살인자라고!"

 

  "그렇게 따지면 피차일반아닌가. 넌 우리 누나를 죽을 지경까지 만들어놨잖아."

 

  "그, 그건 아니야! 미안해! 미안하다고!"

 

  "웃기는 소리하지마."

 

  나는 마지막 그 남자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몇번의 몽둥이질 끝에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했다. 정당성의 부여가 사람을 미치게하는 것이다.

 

  "누나?"

 

  "……."

 

  "일어나 봐."

 

  "으응."

 

  낮은 신음소리가 흐르고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신우야……?"

 

  "응. 누나."

 

  "어떻게……."

 

  "이제 집에 가."

 

  나는 그녀를 일으켜 세워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포근함. 여자로서가 아닌 누나의 감각. 그녀가 내 목을 둘러메었다.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나의 사랑.

 

  "누나가 미안해."

 

  "괜찮아. 난 동생이니까 누나를 지켜야지."

 

  그녀는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직은 눈가에 남은 물기. 터진 입술. 싸늘한 몸.

 

  "그래도 미안해."

 

  나도 맞아 웃어 주었다.

 

  "미안해 하지마. 이제 다 끝이야."

 

  그녀의 얼굴이 문득 어두워졌다.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난 네가 자수 했으면 좋겠어."

 

  "자수라고?"

 

  "응. 이건 엄연한 살인이야."

 

  "……이건 정당한거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죽인건 나쁜거야."

 

  "하지만……."

 

  나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살며시 눈을 감고 내 입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멍한 눈으로 한참 동안 그녀의 닫힌 눈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입에서 입을 뗀 그녀가 말했다.

 

  "잘 할 수 있지? 넌 내 동생이니까. 잘할꺼야."

 

  "……."


  다음 날 그녀의 말대로 경찰서를 찾아갔다. 사람을 죽였다고. 세명을 죽였다고. 나의 사정을 설명했다. 우리 누나를 강간한 사람들을 죽여버렸다고. 그러나 그들은 뒤에 말은 듣지 않았다. 오직 내가 살인자라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끝내버렸다. 살인의 정당성을 부여할 순 없다. 이미 죽은 사람의 죄를 물을 순 없고 산 자에 대해 죄를 물으니 그것이 올바른 행동이라고 믿어 왔던 내 믿음은 무너졌다. 결국 난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살인에도 정당성을 부여할 순 없을까?


 

p.s 세상엔 억울한 사람도 많고 불쌍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아이씨. 오글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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