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에르 63

by 아인 posted Feb 27, 20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
이미 이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루에르

- 망각의 덫 - 

10




  “ 그게 정말 사실이야? ”

  “ 물론, 사실이고 말고. 내가 여기에 있는걸 보면 모르겠어? ”

  “ 하지만 그건 너무 …. ”

  “ 그리 쉽게 믿을 순 없겠지, 하지만 사실이야. 그 어느 때보다 나는 너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것 뿐이라고, 그리고 이 편을 믿는게 너한테는 더 도움이 되지 않아? 뭐, 믿고 안 믿고는 네 생각이지만, 믿는 편이 정신건강에는 더 이로울거라고. 그리고 그 책에도 적혀 있듯이, 메달에는 각각의 능력이 주어져 있어, 그 중에서도 마키 족이 갖고 있는 쿠피디타스는 시공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그 때문에 나와 여러 수색꾼들이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거고. 왜? 이래도 내 말을 못 믿겠어? ”

  조금은 황당하고도 신비로운 이야기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게 전체의 90%라곤 하지만, 이건 너무 공상적이며 해괴한 이야기들 뿐이다. 물론 믿지 않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믿기에는 조금은 의심이 가는 정도랄까? 그렇지만 라셀의 말대로 이 녀석이 이곳에 있는 것과 그곳에 있던 것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이 녀석의 말대로라면 시공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메달로 인해 그간 있었던 이상한 일들과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다 설명이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너무 믿기에는 조금 미심쩍은 부분도 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라셀을 쳐다보며 슬쩍 그의 표정을 확인 했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나의 모습에 그 역시 기분이 좀 찝찝한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쳐다본다.

  “ 내가 기껏 진지하게 말해줬더니, 아예 믿지 않는 표정이네? 약간이라도 좋으니까 조금이라도 믿어주지? 말해준 내가 다 쑥쓰럽다. ”

  “ 네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건 알아, 하지만 그 말을 믿기에도 나한텐 조금 무리가 가서 그렇지. ”

  “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말을 믿지 않으면 피곤해지는건 네 쪽이라고? 이왕 믿는거 끝까지 믿어보라고. 어처피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 네가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이 몇개나 있겠어? 다 과학적으론 설명 못할 일들이면서도, 우리들 눈 앞에 펼쳐지는 괴상한 현상들이니까. 그리고 내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 사진을 갖고 있겠어? 더군다나, 그 사진들은 모두 어떻게 찍었겠어? 그 시대에는 사진기가 없었을 뿐더러, 전기가 발명되지도 않던 그 이전의 세계라고. 만약 내 말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수색꾼들이 그들에 대한 자료를 얻을 수 있겠어? 여러 사람들이 마키 족의 뒤를 밟는다? 그것도 어지간히 해야지, 내가 그때 말했잖아, 그 때문에 사지를 잃고 며칠 후에 죽은 동료가 있다고. 그렇게까지나 잔인한 놈들한테 우리가 어찌해서 그들의 뒷조사를 할 수 있겠어? 다 이곳 세계에서 가져온 물품들로 얻은거라고. ”

  나를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내게 말하는 라셀의 말을 들으니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 녀석 말대로 그 당시에는 전기는 없었을 뿐더러, 모든게 수작업으로 이뤄진 마을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때 이 녀석은 수색꾼으로써의 책임을 다하면서 나를 도와주고 있었지. 마키 족의 선조인 마우린들에 관한 자료들이라던가, 정보들 그리고 그들의 행동방침과 그들의 발자취까지도 모조리 다 아는 눈치였어. 그 때문에 나와 란에게도 그런 도움을 줄 수 있었던거고. 이 녀석의 말을 토대로 한다면 그 녀석이 그런 일들을 아는건 식은 죽 먹기일 뿐더러, 더 위험한 일들이라도 손쉽게 해결 할 수 있겠지. 

  ‘ ! ’

  그렇다는건, 이 녀석들은 이 세계가 멸망하기 이전부터 그 일들을 파헤쳤다는건가? 
  나는 이런 저런 생각 속에 파고드는 의문에 서둘러 라셀에게 그 사실들을 물었고, 라셀은 나의 물음에 약간 당황한 듯한 얼굴을 짓더니 이내 웃으며 정답이라는 말과 함께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진다.

  “ 역시나 대단한 관찰력이군, 그 정도까지 눈치 챌 줄은 몰랐는걸? ”

  “ 언제부터지? 언제부터 너는 그 일들에 대해 연구 한거냔 말야. ”

  “ 그 일들을 얘기하려면 길지만, 그래도 한 배를 탄 동료한테까지 덮을 필요는 없지. ”

  “ 난 널 동료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 ”

  “ 농담도 심하네, 좋아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얘기는 두 귀 활짝 펴고 듣도록! ”

  이윽고 라셀의 입에서 지난 수년간 자신이 쿠피디타스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해왔다는 사실을 내게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나는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봤다.
  이 세상이 멸망하기 이전, 그러니까 1년하고 5년 뒤에 이야기다. 어릴 적부터 라셀은 책을 읽는걸 좋아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5살 때부터 시작된 그의 독서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도 방해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책장에서 발견한 책 한권의 그의 손길이 닿았고, 그 책을 본 순간 라셀의 정신세계는 오직 그 책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 찼다고 했다. 그때 당시 라셀의 나이는 7살, 그날 그가 고른 책은 오래 전에 존재 했던 전사들의 모습을 담은 책이였다고 한다.
  그 후로 라셀은 오랜 시간동안 그 책을 품 안에서 떼어낸 적이 없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책을 좋아하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역사에 관한 내용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고, 그가 12살이 되던 해, 그가 그렇게도 찾아 헤맸던 전사들의 보물, 즉 쿠피디타스에 관한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몇년 후, 큰 파장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의 얼굴엔 순수한 미소만이 가득 했다고 그 녀석 말로는 그랬다고 한다.
  라셀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더욱 더 멍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무슨 놈의 책을 얼마나 좋아 했길래, 그런 정도였는지 정말 궁금할 따름이다. 서재에 들어올 때부터 책을 끼고 있던건, 연출이 아니라 실제 모습이였다는건가. 뭐, 별로 이상할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 그래서 너는, 그 때문에 그날부터 쿠피디타스에 관해 정보를 수집했다 이거냐? ”

  “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며, 너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는거지. 어때, 나의 본 모습을 보니 존경심이 드냐? ”

  아니, 전혀.

  “ 그렇다는 말은, 이미 오래 전부터 너는 메달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했고, 그 결과 몇년 후에 벌어진 일들을 예측했다 이거냐? ”

  “ 아니, 그건 아니지. 내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그런걸 어떻게 알겠어? ”

  라셀은 웃으며 말도 안된다는 말을 하며 나를 쳐다본다. 하긴 그런 능력이 있으면 이 녀석이 이런 곳에서 이런 험한 일들을 하고 있을 리가 없지. 그 전에 세상의 멸망을 막도, 어디 도시 근처에서 점집이라도 하고 있었겠지. 나는 이 상황과는 별 상관 없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자, 옆에서 나를 쳐다보던 라셀이 뭐가 웃기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 아무튼간에, 네가 말하고 싶은건 뭐야? 메달의 능력을 잘 사용하라는거냐? ”

  “ 무슨 소리! 그저 메달의 능력을 과용하지 말라는거지.” 

  그게 그거잖아.

  “ 하지만 한가지 더 알려 줄게 있지. 이번에 내가 말할거는 정말 정말 정말 정말로 위험하면서도 경악스러운 말이니까, 이번에는 조금 눈을 감아도 좋아. ”

  그럴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대단한 얘기라도 꺼내려는지, 라셀의 뜸뜰임이 갈수록 길어진다. 참다 참다 조용히 자리에 퍼질러 앉아 있던 나는 라셀에게 빨리 말하라고 소리쳤고, 라셀은 알았다며 살짝 노려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흘깃 쳐다본다.

  “ 너, 쿠피디타스가 한개가 아닌 여러개라는걸 전에도 알고 있었어? ”

  “ 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

  “ 묻는 말에 대답해. 알았어 몰랐어? ”

  라셀이 의심쩍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번이 처음은 아니였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과거에서 이쪽으로 돌아온지 얼마 안되서 사로이가 나를 부른 적이 있었다. 그때 분명 사로이가 내게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던데 ….



  “ … 너는 몰랐겠지만, 아니, 나 말고는 그 누구도 몰랐겠지만. 사실, 전사들의 영혼은 하나가 아니다. ”



  ! 그래, 분명 그때 사로이는 내게 그런 말을 했었어. 쿠피디타스는 하나가 아니라고 했다. 

  “ 표정을 보아하니, 전에 들어본 적이 있던 것 같군. ”

  “ 지금에야 생각 났는데, 며칠 전에 사로이가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

  “ 아니, 그냥 한번 물어 봤어. 이 말을 하기 전에는 그 대답이 꼭 듣고 싶었거든. ”

  나를 보는 라셀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헤헤거리며 방글방글 웃던 녀석이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한 뒤부터 표정이 어둡다. 무슨 말을 하려는진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이는 라셀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 전에 마우리스 마을에 있을 때, 그거 본 적 있지? 그 뭐냐, 신사나 사당 같은거. ”

  “ 응, 당연하지. 마을을 돌아 다닐 때마다 본 적이 있지. 그런데 그건 왜? ”

  “ 그 중에 사당이 왜 마을에 있는 것 같아? ”

  “ 뭐? 그야, 돌아가신 선조들을 기리는 의미해서 세운거잖아. ”

  별 같잖지 않는 물음에 나는 한심하다는 말투로 그에게 말하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런게 아니라며 나를 타이르 듯 말한다. 

  “ 물론 그런 의미도 있지만, 사당이 세워진 이유는 따로 있어. ”

  “ 뭐? ”

  라셀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말에 살짝 당황한 나는 그를 쳐다봤다. 그는 그 마을에 사당이 세워진 이유가 다른 것에 있다는 말에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그는 조용히 숨을 내쉬며 사당이 세워진 진짜 이유를 내게 말해줬다.

  “ … 뭐? ”

  “ 별로 믿기지 않을테지만, 그래도 사실이야. ”

  나는 예상치도 못한 말에 멍한 얼굴로 굳어 버렸다. 

  “ 사당이 세워진 이유가, 모두 메달 때문이라는거야? 그게 말이 되?! ”

  무슨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지 모르겠다. 사당이 세워진 이유가 단지 메달 때문이라니? 이게 무슨 토종닭, 병아리랑 교미하는 소릴까? 물론, 사당이 지어지는 이유는 각기 다르겠지만, 대두분 중대한 이유 때문에 사당이 지어진다. 그런데 그 메달이 뭐길래 사당까지 지어지면서 그런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거지? 나도 꿈꿔보지 못한 그런 생활을 말야!
  메달보다 못한 삶에 잔뜩 성이 난 나를 보며 라셀이 워워거리며 나를 진정시키려 노력한다. 잠시 이성을 잃고 해선 안될 말들을 지껄인 후에야 나는 흥분을 가라 앉힐 수 있었다.

  “ 너무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그들만의 규율이라고 생각해. 그들은 메달은 단지 고철 덩어리가 아닌, 자신들의 신격으로 모시고 있어. 옛날엔 다 그랬잖아? 나무라든가, 산이라든가, 돌이라던가. 그들만의 역사가 있고, 규칙이 있듯이, 그때는 메달이 그런 칭송을 받고 있었어. 그건 너도 봐서 알잖아? ”

  “ 물론 그렇긴 그렇지만 …. ”

  라셀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이렇게 화를 낼 필요는 없지 않나? 그때 분명 나는 그들이 메달을 신처럼 여긴다는걸 알고 있었고, 나 역시 그 메달에 대한 성스러움에 대해 눈여겨 보고 있었다. 갑자기 지금 와서 이렇게 팔짝팔짝 뛰는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깟 메달 한 조각 때문에 사당까지 짓다니, 옛날 사람들의 생각은 도통 이해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 사당이 지어진게 그런 이유도 있지만, 그 정도로 하여금 사당이 지어질리는 없단 말이지. ”

  “ 그렇지? 그런거지? 그렇다면 왜 …. ”

  “ 사당이 지어진 진짜 이유는 따로 있어. 그 사실을 알게 된건 그 일이 발생한 수십년 후의 일이지만 말야. ”

  라셀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그가 무슨 말을 내뱉을지는 상상도 가진 않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입에서는 꽤나 무거운 형태를 지닌 무언가가 나올 기세였다. 라셀의 이야기를 듣던 나도, 어느센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이제부터 내게 들려줄 그의 말에 나는 잔뜩 눈을 번뜩이며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P.s : 즐감하세요.

Who's 아인

profile

시간을 탓하지마라.

시간을 흘려보낸건 나 자신이다.

시간은 주어진게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연히 나라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그 시간의 흐름에 어떻게 따라가느냐의 내가 증명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증명해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