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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9 03:12

루에르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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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
이미 이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루에르

- 망각의 덫 - 

11



  “ 쿠피디타스의 의식? 그게 뭐야. ”

  “ 말 그대로 쿠피디타스를 부르는 의식이지.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게 바로 사당이라는거야. ”

  사당을 세운 이유가 쿠피디타스를 부르기 위해서란 말인가? 라셀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으로 라셀을 쳐다봤다. 라셀은 또 이해를 못한 나를 보곤 답답한지 한숨을 내쉰다.

  “ 왜 이렇게 이해력이 딸린거야? 내가 말을 못하는거야, 아님 네가 내 말을 못 알아 듣는거야? ”

  “ 아마도 후자라고 생각한다만. ”

  “ 으이구 … 관찰력은 뛰어나지만, 눈치는 더럽게 없네. 다시 한번 설명 해줄테니까 이번에는 똑똑히 들어! ”

  라셀은 다시 한번 내 이해를 돕기 위해 방금 한 말을 또 다시 되풀이 했고, 라셀의 말을 곰곰히 듣던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봤다.

  “ 꼭 사당이 있어야만 의식을 치룰 수 있는거야? 사당이 없으면 안돼? ”

  “ 아이고 답답아, 너는 사당이 없는 곳에서 의식이 될 것 같냐? 의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제단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그 제단을 어디다 모셔? 당연히 사당이지! ”

  “ 보통 제단은 바위나 나무 같은데에 있지 않냐? ”

  “ 으이구, 의식을 치루려면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아닌, 밀폐된 곳에서 치뤄야 한다는거 모르냐? 그렇기 위해서는 사당 안에 제단을 모셔야 한다고. 그래야만이 쿠피디타스를 부를 의식이 진행되는거고! ”

  복장이 터지려는지 라셀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내게 말했다. 까칠하고도 조금 심기를 건들이는 라셀의 말에 잠시 화가 나는 듯 싶었지만, 이해를 못하는 내 잘못이니 이번만은 내가 넘어 가야겠다.

  “ 내가 아까 전에도 말했다시피, 의식을 치루려면 공개된 장소가 아닌, 몰래 몰래 비밀리에 진행 되어야 한다고. 그래야만이 그 의식이 성공 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벌써 내 말을 까먹은거냐? ”

  “ 네가 언제 나한테 그런 말을 했어? 난 지금 처음 듣는 말인데? ”

  “ 뭐? ”

  내 말에 잠시 말을 멈춘 라셀이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한 모습으로 한참을 그 자세로 멈춰 있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내게 말한다.

  “ 그러네, 내가 너한테 설명을 해주지 않았구나. 하핫, 그럴 수도 있지. ”

  아니, 이놈이?

  “ 아무튼 간에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됬어, 그럼 이제부터 쿠피디타스의 의식을 치루는 방법부터 알려줄게. ”

  “ 갑자기 그걸 알려주는 의도가 뭔데? ”

  “ 그래야 쿠피디타스를 봉인 할 수 있으니까. ”

  보, 봉인?
  쿠피디타스를 봉인 한다는 라셀의 말에 깜짝 놀란 나는 그의 표정을 멍하니 쳐다봤다.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지? 왜 별안간 쿠피디타스를 봉인 한다는 말이 튀어 나온거야? 지금 내가 이 녀석과 대화를 하는 이유도, 모두 쿠피디타스에 관한 정보나 자료들을 얻으려는 생각으로 한거였는데. 문득 봉인이라니?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 느닷없이 봉인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

  “ 그럼 너는 그대로 쿠피디타스를 내비둘 생각이였냐? ”

  “ 그건 아니지만, 갑작스레 그런 말을 꺼내는건 조금 이르지 않아? 아직 나는 쿠피디타스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고. 먼저 그것부터 알아야 하는게 순서 아냐? ”

  “ 네 말대로라면 제일 먼저 알아야 하는건, 쿠피디타스의 실체가 아닌, 쿠피디타스를 어떻게하면 봉인을 하느냐야. 언제 다시 그런 참혹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 그걸 그렇게 간과해서는 되겠어? 네가 원하는건 그런거였어? ”

  라셀이 다소 거칠어진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나는 그런 라셀의 말에 뭐라 반박을 하지도 못하겠다. 조금 괘씸하지만, 라셀이 하는 말은 하나도 틀린게 없으며, 그저 지금 내가 그에게 따지는건 지금 상황과는 동 떨어진 주제다. 그의 말대로, 이대로 쿠피디타스가 얌전히 있을거라는 장담은 못한다. 언제 다시 그놈들이 활개를 치며 세상을 다시 한번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다. 하지만 그 일보단, 내가 먼저 그것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는게 아닌, 그것들은 어찌하면 다신 그런 비극을 불어 일으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먼저여야 한다. 그의 말대로 내가 원한건 이 세상이 다시 그런 암흑 속으로 빠지는게 아닌, 그 암흑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을 파내어 다시 한번 그날로 돌아가는 것. 그걸 위해 지금껏 나는 모진 고생에도 묵묵히 달려 올 수 있었다.
  한동안 작은 침묵이 흘렀다. 답답하면서도 애절한 나의 모습은 그저 "딱딱하게 굳어 버린 듯 싶었고, 라셀은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며 땅바닥에 주저 앉는다.

  “ 지금 우리가 이렇게 다툴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시간이 많진 않잖아? 서로 마음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우리들은 내일을 위해 모든 결정을 지어야 해. 지금 우리가 이러저러한 걸로 다툴게 아니라. ”

  처음 보는 라셀의 진지하고도 차분한 모습의 나는 덩달아 침묵을 지켰다. 그의 말대로 우리가 이럴 시간은 없을 뿐더러, 이렇게 시간을 허비 할 때가 아니다. 하루 빨리 쿠피디타스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해서 이 모든 사건의 실마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다.

  “ 그렇담 말해줘, 어떻게 하면 쿠피디타스를 봉인 시킬 수 있는지. 봉인만 시킨다면 다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건지. ”

  나는 라셀의 눈을 보며 물었다.

  “ 봉인을 시킨다면,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거야. 하지만 봉인을 시키는건 그리 만만한게 아냐. ”

  “ 그건 또 무슨 말이야? ”

  “ 봉인이란게 워낙 절차가 까다로울 뿐더러, 성공 될 확률도 반이 안될 만큼 실패율이 큰 의식이야. 그렇기 때문에 설령 봉인하는 법을 안다 해도 성공하기는 어려울거야. ”

  “ 그렇다고해서 가만 두고 볼 수는 없는거잖아? 되든 안되든 무조건 해보고 봐야지. ”

  라셀의 얼굴이 조금 굳은 듯 싶다. 봉인을 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정작 본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봉인을 알아야만이 추후에 일어 날 사건을 대비하는 기반이라고 했으면서, 그의 얼굴색은 조금씩 옅어 갔다. 그러다 문득, 뭔가 의아스러운 생각이 든 나는 라셀을 쳐다보며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 라셀, 너한테 묻고 싶은게 있는데. ”

  고개를 떨군 채 바닥을 응시하던 라셀이 나의 물음에 고개를 든다.

  “ 너, 분명 쿠피디타스로 시간이동이 가능하다고 했지? ”

  “ 응, 그런데? ”

  “ 그렇다면 네가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는거지? ”

  “ 에? 그게 무슨 말이야.”

  “ 분명, 나는 그때 란의 부탁으로 메달을 깨트렸어. 그렇기 때문에 그 메달을 소멸 했다고, 그런데 어떻게 네가 이곳에 있는거야? ”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고 라셀을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 날카롭게 변했다. 내 말을 듣고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있던 라셀은 이내 귀가 입에 걸릴 정도로 크게 웃어버린다.

  “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소멸? 그게 무슨 소리야. ”

  “ 뭐? ”

  “ 분명 네 손으로 쿠피디타스를 깬건 사실이야. 하지만 쿠피디타스는 소멸하지 않았어. 도리어 전보다 더 반짝거렸다고. ”

  “ 그게 … 무슨 말이야? ”

  쿠피디타스가 소멸이 되지 않았다고?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지? 라셀의 말을 듣고 잠시동안 나는 멍하니 그의 표정을 쳐다봤다. 그날은 달빛마저도 붉게 물든 밤이였고, 이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낭떠러지로 내던진 한 송이의 꽃을 보기도 했다. 나는 그때 란의 부탁으로 메달을 깨부쉈고, 그날 새벽, 나는 이 세계로 돌아왔다. 내가 이곳에 되돌아 왔을 땐, 모든 것이 뒤바뀌어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날 이후로 메달이 소멸된 줄로만 알고 있었다. 내 생각대로라면, 쿠피디타스가 소멸된 이후, 이 세상은 우리가 살던 모습으로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이 세계는 내가 떠난 그때의 모습과 똑같은 형상을 띄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과거와 현재의 혼란으로 2~3일을 끙끙 앓았던 걸로 기억된다. 이윽고 나는 증명되진 않았지만, 내 스스로의 위안을 삼기 위해 이런 생각을 했다.

  ‘ 그 세계와 내가 사는 세계는 다르다. ’

  라고, 그곳이 내가 살던 세계의 과거라 해도. 우리가 사는 지금과 그들이 사는 현실은 다르니까, 비록 같은 곳, 같은 생활을 했을지 몰라도, 그들과 우리들은 다르니 말이다. 
  어느 날은 이런 생각도 해봤다. 메달이 보여준 모습은 그저 나의 가상 속의 모습이였고, 나는 메달이 만든 가상 속으로 뛰어 들어간거라고, 그렇게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나의 미련을 버릴 수 있을까하고. 단순히 그 메달은 그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라셀의 말을 들은 나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 쿠피디타스는 그런 물리적인 힘으로는 절대로 봉인 시킬 수 없어, 더군다나 소멸은 더더욱. 쿠피디타스를 소멸 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과 힘이 필요해. 하지만 지금에 너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

  라셀은 나를 보며 말했다. 지금에 나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왜일까, 그 말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오래 전에 들어본 듯한 낯 익은 목소리와 낯 익은 풍경들. 나는 지금 무엇을 보는걸까?

  “ 대체 … 내가 없던 시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그에게 물었다. 대체 내가 없던 시간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을 라셀은 알고 있는걸까? 대체, 대체 나는 지난 시간동안 무얼 하고 있는걸까.
  라셀은 내가 떠난 그 시점부터에 일들을 모조리 나에게 알려줬다. 부서진 쿠피디타스가 다시금 재생성 되서 세상의 모습을 보인 일들, 마우린 족이 뿔뿔이 흩어진 일, 그리고 … 란의 딸, 로라가 태어난 것까지 말이다.

  “ …. ”

  로라라는 이름이 들리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시금 나를 짓누르는 그때의 악몽이 다시 샘솟는 듯한 고통과 함께 슬그머니 그때의 기억이 내 뒤로 소리 없이 다가왔다.

  “ 부디,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 ”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한번도 그 기억을 잊은 적이 없다. 밤이 되면 여김없이 나타나 나를 들쑤시는 그날의 기억이 자꾸만 나를 구석으로 몰아 넣었다. 꼭, 지키고 싶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싶었는데 …. 나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 그날, 네가 사라지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했어.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바람처럼 또 다시 모습을 감췄다고. 물론, 나는 눈치 챘었지만 내색은 할 수가 없더군. 그들은 쿠피디타스란 존재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

  “ 로라는 … 어땠지? ”

  “ 예뻤어, 나중에 한 미모할 정도였어. ”

  “ 몸 상태 말이야. 건강해? ”

  “ 응, 아픈데 하나도 없고, 아주 건강한 아이였어. ”

  라셀의 말에 나는 안심을 할 수가 잇었다. 다행히 그 아이는 아픈데 하나 없이 건강한 모양이였다. 다행이다. 건강해서 다행이야. 란의 약속도 지켜주지 못한 것도 미안한데, 더불어 아이까지 건강이 안 좋았다면 무슨 면목으로 그를 볼 수 있었을까,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



  두 메달의 교류가 조금씩 더 크게 번져갔다. 금방이라도 사당을 뒤덮을 만한 규모를 자랑하며 여기 저기로 뻗어 나가는 파동에 나는 잠시 몸을 멈칫했다. 

  " 라셀이 말한게, 바로 이거였나? "

  나는 두 메달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용히 의식이 끝날 때를 기다렸다. 잿빛산을 떠나기 전, 라셀이 나에게 당부한 말이 떠오른다.

  “ 메달을 봉인시키기 위해서는 두 개의 메달이 필요해, 그러므로 하나의 메달을 봉인시키려면 또 다른 메달이 필요한 셈이지. 하지만, 100% 그 메달이 봉인되는건 아냐. 의식 중에 불가피하게 봉인되는 상대가 서로 뒤바뀔 수도 있으니, 의식을 치루기 전에 꼭 명심해 둬. ”

 꼭 이 말만은 명심하라며, 떠나기 전 몇번이고 계속 말한 그의 말 때문에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자칫하면 봉인시키려던 메달과 다른 메달이 서로 바뀔 수도 있다는 말에 나는 한치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제단 위에 올려진 메달 두 개를 연달아 쳐다보며, 조용히 그 자리를 지켰다.
  


  P.s :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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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탓하지마라.

시간을 흘려보낸건 나 자신이다.

시간은 주어진게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연히 나라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그 시간의 흐름에 어떻게 따라가느냐의 내가 증명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증명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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