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이미 이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루에르- 망각의 덫 -54 ~ 66
반쯤은 웃어 넘기고, 또 하나는 인상을 쓰게 만드는 날이다. 조금은 우습고, 조금은 쓸쓸한 그런 날이 달빛에 그을려 지나가고 있었다. 집 안에 돌아오니 라이젤이 아까와는 달리 웃음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달려왔다. 그 소녀는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무언가를 건네주었고, 그 소녀의 가녀린 손에서 건너온 작은 종이조각을 받아든 나는 웃으며 그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어찌됬든, 내가 그 남자에게 따끔한 일침을 한 덕분일까, 그 남자의 얼굴은 몹시 평온해보였다. 그렇지만 나를 대하는 행동을 똑같았다. 뭐, 나한텐 어찌해도 상관은 없다. 그는 이제 두 딸을 품에 안으며 앞으로의 생활을 개척해 나갈테니 말이다. 뒤늦게 돌아온 로빈이 나를 바라보며 뭔가를 물어볼 듯한 시늉을 하며 다가왔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방으로 돌아가버렸다. 분명히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모양이였는데, 애써 입을 굳게 다문 듯이 보였다. 뭐, 그리 중요한 말은 아니였나보다.「 드르륵 」그나저나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 밝혀낼 사실도, 정보도 찾질 못하겠다. 애써 찾는답시고 책들을 뒤져봐도 별 수확을 못 거두니, 어떻게보면 헛고생을 하는 듯 싶으나, 그래도 그 정도의 정보라도 알아냈으니 불행 중 다행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남자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는 뭘까, 내게 한소리 들었다고 쉽게 생각을 바꿀 남자는 아니였는데, 정말로 내가 한 말 때문에 그의 생각이 바뀐걸까? 그게 아니라면, 그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모습으로 라이젤을 품에 안은걸까." …. "뭐, 그리 깊게 생각은 하지 않도록 하자. 어처피 내일이면 이곳을 떠날테니까. 그러나 떠나기 전, 라이제르의 병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아낼 생각이였지만,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 내가 말했던 것처럼 이 병을 아는 자도 극히 드물 뿐더러, 아직도 이 마을사람들은 라이젤과 라이제르를 보는 시선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사고라도 났으면하는 눈초리로 그 소녀들을 바라보는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받는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허 참, 내가 말했음에도 불가능한 일이란걸 알면서 왜 그렇게 나는 그 남자에게 열을 내며 말했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저, 한켠에 담아 있던 나의 목소리를 꺼낸 것일까? 그렇다해도 내가 너무 주제 넘은 짓이 아니였나하는 생각에 오늘 밤자리가 뒤숭숭할 것 같다. 뭐, 그렇다해도 별 이상한 낌새는 없지만 말이다." 후우 …. "그런데 이제 앞으로 정말 어떻게하면 좋단 말인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이 마을을 떠나 다른 마을을 갈 것이냐, 아님 이 모험을 중단하고 우리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냐의 생각이 교차하면서 나의 발목을 서로 잡아 당긴다. 마음 같아서는 이미 시작한 일, 앞으로도 계속 끝을 볼 때까지 나아갈 생각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대로 멈추는게 좋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진 모르겠지만서도, 왠지 모르게 내 자신도 모르게 약간은 이해가 가는 듯, 끄덕거리는 고개를 꼿꼿이 세우며 슬쩍 침대에 누워보았다. 푹신푹신하고 무거운 쇳덩이를 든 듯, 노곤한 몸의 피로를 풀기엔 딱 좋은 촉감이였다." …. "금방이라도 졸음이 쏟아질 듯, 몽롱한 기분이 방 안에 감돈다. 침대에 눕기 전까지만해도 그렇게 피곤하진 않았는데, 역시 눕다보니 쌓아뒀던 피로가 갑작스레 내 몸을 짖누르는건가. 뭐, 오늘 같은 경우에도 육체적은 덜 할진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조금 많이 피로한 날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끝에 가서는 해피엔딩 비스무리하게 끝이 나서 다행이지만. 하지만 아직 끝이 난건 아니기에 아직도 그들에 대한 걱정이 앞을 가린다. 정말로 그 어르신의 말씀대로 라이제르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는게 아닐까하는 의심과, 더불어 몰려오는 수상쩍은 분위기까지 물씬 풍겨온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라이제르의 이상행동은 그리 거친게 아니였어. 그날이 올 때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아있을거야. 그러나 그게 언제일지는 장담을 못하지만.침대에 눕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들고, 조금씩 눈꺼풀이 무거워지는게 느껴진다. 이대로 눈을 감고 조금만 있으면 금새 잠이 들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이대로 자기에는 뭔가 찝찝한 기분이 영 가시질 않는다. 뭔가 떠오른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 닥칠거란 불안감도 아닌데도, 왜 나는 쉽사리 눈을 감을 수 없는걸까? 걱정이 있다면 그건 그 남자의 가족들에게 있겠지.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해도 아직까지는 안심을 할 단계는 아니기에 이렇게 나는 그들을 걱정하는거겠지. 하지만 이렇다한들, 나아지는건 없다. 내가 직접적으로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건 라이제르의 병이 나타났을때 뿐. 하지만 그때가 되더라도 내가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거다. 그저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것 밖에는 ….「 똑 . 똑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내 뒤로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침대 옆에 놓인 서납장 위로 세워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나는 재빨리 머리를 정돈했다. 잠깐 사이에 머리에 정전기가 오를 정도로 계절이 겨울로 향해 간다는걸 직감한 나는 혼자서 피식하고 웃으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문을 열자 그 앞에는 로빈이 서있었고, 로빈의 옆으로 라이젤과 라이제르가 나란히 로빈의 옆을 지키고 서있었다. 별안간 방에 찾아온 그녀들을 바라보며 나는 무슨 일이라며 묻자, 로빈은 슬쩍 옆에 서있는 라이젤과 라이제르에게 잠시 나와 할 얘기가 있다며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줄 수 있니? 라는 물음에 소녀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방긋 웃었다. 그 아이들에게 회답을 얻은 그녀는 웃으며 조용히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할 말이 뭐야? 이런 늦은 시간에 찾아올 정도면 그리 가벼운건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내 물음에도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그런 그녀의 행동에 의아함을 품고 조용히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침대에 앉아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 주변만 빙글빙글 도는 그녀를 보곤, 의아하다못해 수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리 대단한 말을 하러 온 것 같지 않은 모습에 잠깐 마음을 놓긴 했었지만, 계속해서 아무 말 없이 뭔가를 망설이는 모습에 덩달아 나까지 긴장을 하게 만든다. 그녀가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라는 다짐도 무색할 정도로 궁금함이 하늘을 찌른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무슨 일이냐며 되물었고, 그녀는 나의 물음에 발걸음을 멈춘다." … 밖에 없는건가. "" 뭐? "혼잣말이라도 한 듯, 희미할 정도로 작게 들리는 그녀의 음성.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한번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 말을 할 수 밖에 없는건가. "분명,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였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왠지 비장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동자에선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섞여 보였다. 그녀가 나의 방을 찾아오면서까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뭐였는지, 뭣 때문에 로빈이 이렇게까지 뜸을 들이는지에 대해 알고 싶은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문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로빈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로 … 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그녀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며 나의 손을 뿌리친다. 뜻 밖에 상황에 놀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얼떨떨한 표정으로 로빈을 쳐다봤고, 로빈 역시 자신의 행동에 놀란 듯, 미안한 눈빛을 보이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억누르며 지금까지 굳게 다물던 입을 열며 내게 말했다." 미 … 미안해요 …. "" 어? "" 미안해요 … 지금까지 속여와서 …. "" 그게 무슨 말이야? 로빈, 왜 그래? "로빈은 이해 못할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한 나는 로빈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냐며 캐물었지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바닥에 흘릴 뿐이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이며, 로빈이 왜 이런 행동을 보이는지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이 상황이 그저 어이가 없고 웃음이 나올 뿐이였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멀쩡하던 로빈이 그 짧은 시간 안에 이런 모습으로 내 방에서 울고 있으리라 상상조차하지 못했으니, 여간 당황스러운게 아니다. 어찌됬던간에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몰라도, 일단은 울고 있는 로빈을 진정 시키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한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무슨 일이라며 그녀에게 되물었지만, 그녀는 말없이 훌쩍거릴 뿐이였다. 갑자기 어린애라도 된걸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질 못하는 것처럼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한다. 뭔가 대화가 있으면 이렇게까지 안됬을텐데,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을 한 뒤부터 계속 이 모습으로 한 곳에 머문 그녀의 모습이 이상할 뿐이다. 한동안 방 안에서 훌쩍거리는 로빈의 곁에 머물던 나는 이 상태로 로빈을 계속 방치했다간, 결국엔 울다 쓰러지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안하지만 잠시 라이젤과 라이제르에게 로빈을 맡기고 서둘러 서재로 달려갔다.「 끼 이 익 ―…」낡은 문 틈 사이에서 부딪히는 굉음을 내며 서재 안으로 들어간 나는 황급히 그에게로 달려갔다. 책상 앞에 앉아 은은한 커피향이 물씬 풍기는 커피잔을 한 손에 들며 책을 읽던 그가 나의 얼굴을 보며 무슨 일이라며 보던 책을 책상 위에 덮어놓곤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그에게 로빈의 행동이 이상하다며, 아까 전에 서재를 나간 뒤로 로빈이 다시 들렸다 간 적이 있냐며 물었지만, 그는 그 이후로 서재에 오지 않았다며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 있는거지? 그 여자라면, 너랑 같이 있지 않았나? 혹시 그 여자가 어디론가 사라진건가?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로빈은 지금 내 방에서 울고 있다며 그에게 말했고, 그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울다니? 너가 그 여자에게 무슨 심한 말이라도 한건가? "" 내가 그럴리가 없잖아. "" 그런가? 너도 여자한테는 상냥한 모양인가보군. 아까 전에 나한테는 그런 독설을 퍼부었으면서. "그는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커피를 홀짝거리는 그는 반쯤 남은 커피잔을 책상 위에 올려두며, 무슨 일인지 천천히 내게 설명하라며 나에게 말했고, 나는 그에게 방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 하나씩 설명하며 그에게 말하였다. 혼자 방 안에 있던 나한테 할 말이 있다며 찾아온 로빈이 방에 들어오자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방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뭔가 입에 담기조차 힘들 정도로 나와의 대화를 망설이던 중, 끝내 내게 미안하단 말을 남기며 갑자기 눈물을 쏟아내며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나의 말에, 조용히 내 말을 경청하던 그의 얼굴이 갑자기 굳더니, 이내 나의 어깨를 붙들며 나를 벽으로 밀어붙인다." 그 여자, 지금 어디에 있어? "" 너,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야? "" 그 여자, 지금 어디에 있냐고!! "다급해보이는 그의 목소리에 할 말을 잃은 나는 그에게 로빈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고, 그는 내 말을 듣자마자 서둘러 서재 밖으로 뛰쳐나간다. 벽에 밀착된 나는 황당한 얼굴로 그가 사라진 문 쪽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내 말을 가만히 듣던 녀석이 갑자기 로빈이 울고 있다는 말에 저렇게 화를 내며 로빈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걸 보면, 분명히 저 남자와 로빈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모양이다. 자기 말로는 서재에 온 적이 없다고 했는데, 사실은 이 서재에 왔던 모양이지. 감히 라이젤을 울린 것도 모잘라, 이젠 로빈까지 울린 그 녀석에 대한 화가 치밀어 오르던 그때. 어디선가 낯 익은 여성의 비명소리가 찢어질 듯 집 안을 가득 메운다." 이. 이 목소린 …. "비명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로빈의 목소리였다. 방금 뛰쳐나간 그 남자가 로빈에게 무슨 짓이라도 한 것일까?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로빈의 괴로우면서도 고통스러운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서재 문을 걷어차며 재빨리 로빈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문 밖에서 벌벌 떨고 있는 라이젤과 라이제르를 뒤로한 채, 나는 서둘러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내가 방으로 들어갔을 때, 그 남자의 손엔 굵고 기다란 각목이 들려 있었고, 그 각목에는 방금 묻은 빨간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아래로는 로빈이 거친 호흡을 내쉬며 쓰러져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이게 무슨 짓이야!! "분노의 일격이 담긴 주먹에 그 남자의 얼굴이 정통으로 닿았고, 그대로 그는 나가떨어지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나는 쓰러진 그를 향해 멈추지않고 달려가 그의 멱살을 붙잡고는 ' 로빈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 ' 라고 소리치며 그를 벽 쪽으로 밀어 붙였다. 그는 얼굴 군데 군데에 묻은 피를 닦으며 나를 노려봤고, 그 모습에 더욱 화가 들끓은 나는 그의 이마를 향해 박치기를 하며 그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 거의 이성을 잃어버린 나는 쓰러진 그의 멱살을 다시금 붙잡으며 당장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하라며 그에게 소리쳤고, 그는 초점 잃은 눈동자로 나를 쓰윽 쳐다보며 말했다." 너,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이길래. 저 지경이 되도록 눈치를 못 챈거냐!! "" 그게 무슨 말이야 … ? 저 지경이라니, 저렇게 만든건 네 녀석이잖아!! "" 저 여자는 지금, 페니턴트에 걸렸단 말이다!!! "' ! '" … 뭐? 너, 지금 무슨 말을 …. "그 남자는 나를 밀쳐내며 로빈이 지금 무슨 상탠지, 어떠한 상황에 처해져있는지 내게 소리쳤고,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온 엄청난 파동을 불어일으킨 말에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는 씩씩거리며 내게 달려와 나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고, 미처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한 나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지며, 멍청하게 그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앉아있던 나는 그를 쳐다보며 도저히 믿기 어려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로빈이 … 병에 걸렸다고? 그것도 … 페니턴트라는 병에 … ?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그럴리 없어, 그럴리 없다고! 어떻게 로빈이 그 따위 병에 걸렸단 말이야? 방금 전까지 평상시와 똑같이 나와 이야기를 나눈 로빈이 갑자기 그 병에 걸렸다는게 말이 되? 그게 그렇게 쉽게 걸릴 병이냔 말이야!! "믿을 수 없었다. 믿기 어려웠다. 로빈이, 로빈이 그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을 가치도 없었다. 그럴리가 없었다. 로빈이 그런 병에 걸릴리가 없을거라 생각했다. 그 병은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않는 희귀병이잖아? 그런데 왜 그런 병에 로빈이 걸린건지, 왜 그 병에 걸린게 로빈인지 그에게 묻고 싶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않고, 오로지 나의 심장박동만이 크게 울려퍼지고, 내 옆에서 머리에 피를 흘리고 쓰러진 로빈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지독한 눈물이 흐를 동안, 옆에서 아무런 미동 없이 누워 있는 로빈이 보였다. 이 우스운 눈물이 흘러 내리는 동안에도 나의 시선은 오직 로빈을 향해 멈추었다." 말도 안돼 … 말도 안된다고 …. "입 안에서 맴도는건 그런 말들 뿐, 다른 생각도 다른 말조차도 기억나지않았다. 지금껏 나와 모진 수난을 겪어도 꿋꿋이 나의 곁을 지켜주던 로빈이 갑자기 병에 걸리다니? 그것도 세상에 잘 알려지지도 않는 희귀병에 로빈이 걸리다니 ….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상황이냐고!!" 젠장 …. "축축하게 젖은 바닥 위로 드리워지는 나의 그림자가 또 다시 눈물을 토해냈다. 붉게 물든 로빈의 곁으로 스며드는 나의 슬픔이 서로를 향해 섞이여 들어가는 모습만이 보일 뿐, 나는 또 다시 나의 눈물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그 후 두 시간이 지나자 침대에 누워 있던 로빈이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위에 자신을 쳐다보는 나와 루연에게 의아한 눈빛을 보낸다. 로빈은 아까 전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자기가 왜 이곳에 잠들어있냐며 내게 묻지만 나는 그저 슬픈 눈으로 로빈을 바라볼 뿐이였다. 그는 나의 행동에 슬쩍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은 이미 밤이 깊었으니, 오늘은 이쯤하고, 당신은 내일 아침 일찍 나를 찾아오도록. "" … 알았다. "주눅이 든 나를 보며 그는 방을 나섰다. 잠시나마 로빈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전혀 나아지는건 없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그가 이 병을 고칠 치료법을 알았다면, 그의 얼굴은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을테지. 서재에 가득 찬 책들을 뒤져봐도 그 책들 중에는 ' 페니턴트 ' 라는 글자가 적힌 책을 하나도 없었다. 중간 중간에 그와 비슷한 글자의 단어를 봤지만, 그 단어는 페니턴트라는 병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엔 나도 저 남자와 똑같은 길을 걷겠군 …. 아까부터 쭉 기운이 없어보이는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침대에 앉아있던 로빈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게 물었다." 루에르 씨, 왜 그러세요? 어디 편찮으신데라도 있으신건가요? "로빈의 물음에도 나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는 그녀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로빈에게 느끼는건 미안한 감정 뿐이였다. 로빈이 이런 병에 걸린지도 모르고, 이때까지 나만을 위해 달려와준 로빈에 대한 미안함과, 멍청한 나 자신에 대한 원망 뿐이다." …. "더군다나, 이 모든게 나의 업보라는 사실에 더욱 나 자신에 대한 화가 치밀어오를 뿐이였다. 절대 내가 간과해서는 안될 일들 중, 나는 그 안될 사실을 잊고 만 것이였다.“ 그게 무슨 말이지? ““ 내가 한 말 그대로다. ”“ 로빈이, 로빈이 힘들어한다고? 근데 그게 바로 나 때문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별안간 내 귀로 들어온 말도 안되는 말에 버럭 소리를 지르며 사로이를 쳐다봤다.“ 사실, 그 여자는 너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 여자가 한 말을 꼭 전해야겠다고 판단해서 말하는거니, 주의 깊게 듣도록 해라. ”사로이는 내가 잠시 과거로 떠났을 때, 사로이와 단둘이 남은 로빈이 슬쩍 사로이에게 나에 대한 감정을 얘기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사로이는 로빈한테서 느껴지는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을 감지했으며, 그 기운은 언젠간 로빈을 집어 삼킬거라는 황당하면서도 섬뜩한 이야기를 내게 말했다. 사로이가 나를 향해 말하는 말들은 대부분 내게 이로운 얘기들였지만, 이번만은 왠지 모르게 미심쩍은 낌새가 느껴진 나머지 피식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설마, 그럴리가 있겠어? 뭐, 네가 한 말 중에 틀린 말은 없었으니까. 어느 정도 믿기는 하는데 …. ”“ 내 말을 모두 신뢰하기엔 무리가 있다는건가. ”“ 뭐, 어떻게보면 그럴지도 모르지. 솔직히 이번에 하는 말은 조금 믿기가 어렵다고 해야할까, 왠지 이 세상과는 맞지 않는 이야기 같잖아? 혼령들로 인해 빙의를 당한다면 어느 정도는 믿겠지만 …. ”“ … 그런가.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나의 말에 살짝 기분이 언짢아졌는지 사로이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 모습에 조금 당황한 나는 그래도 네 말을 믿는다며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말했고, 그는 그런 나를 보며 싸늘한 눈초리로 쓰윽 날 노려보고는 이내 방향을 바꿔 내 옆을 지나친다. 그리곤 귓가에 희미하게 들릴 정도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하려던 말을 이어간다.“ 이미 이 세계는, 우리가 알았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에 무슨 일이 생긴다한들, 전혀 이상하지않지. 다만,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건 인간이겠지만 말이야. ”“ 그게 무슨 …. "“ 지금은 내 말이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언젠가 네가 이 뜻을 알아차렸을 때의 세상은 지금의 모습과는 눈에 띄게 달라져있을거다. ”영문 모를 말들만 늘여 놓은 채, 사로이는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나는 그가 한 말을 다시금 머릿 속에 되새기며, 언젠가는 있을 그날을 기리며 나는 로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그때, 사로이가 내게 하려던 말이 바로 이거였나. 로빈에게 덮칠 위기란게, 바로 이거였어? 왜 그때 나는 사로이가 한 말을 믿지 않은거지? 그가 한 말엔 거짓이 없다는걸 알면서도 나는 그의 말을 반쯤 귀에 담지 않았다. 만약, 내가 그때 조금만 더 영리했다면 지금 로빈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텐데, 말도 안된다며 웃어 넘길 일이 아니였는데, 그때 나를 바라보는 사로이의 느낌이 바로 이런거였구나. 앞으로 닥칠 위험을 간과한 채, 지금 이 상황까지 온 나를 비웃고 있겠지. 결국엔 로빈이 저렇게 된건 모두 내 책임이다. 이미 이 세상은 1년 전, 그날부로 세상의 판도가 뒤집혔다.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세상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계가 온 것이다. 그렇다는건, 사로이가 말한 것처럼 그 이후로 우리 눈 앞에 나타날 일들은 하나도 이상할게 없고, 정작 일어난다한들, 우리가 할 수 있는건 아무 것도 없어. 그렇게되면 서서히 이곳엔 인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초창기 모습의 지구를 보게 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때의 지구와는 달리 지금의 지구는 확연한 차이를 보일테지만.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로빈의 볼을 어루만지며,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평소와 같은 맑고 투명한 그녀의 눈을 오늘도 볼 수 있었다. 언제나 나의 곁을 머물며, 내가 힘들 때나 괴로울 때나 함께 있어준 그녀의 모습을 오랜 시간 같이 보낼 수 있을까? 그녀의 머리에 차갑게 들러 붙은 병의 증표를 떼어낼 수 있을까? 언제나 이렇게 로빈과 함께 있을 수는 있는건가? 난 … 난 … 난 ….「 끼 이 이 익 ―…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그가 나의 등장에 읽고 있던 책을 책상 위에 덮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서재 문을 닫고 힘없는 발걸음으로 서재 안을 들어선 나를 보며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 여자는 어떻하고 온거지? 함께 있던거 아니였나? "" 로빈은 자고 있다. 아까의 충격이 커서인지 금방 잠들더군. "" 그런가, 그런데 잠도 안자고 이곳에 온거지? 자기 전 독서라도 하려던건가? "" 너한테 부탁이 있어서 왔다. "" 부탁? "그는 부탁이 있다는 내 말에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부탁이지? 어느 정도 짐작은 가나, 표정을 보아하니 그걸로 온건 아닌 것 같군. 부탁이란게 뭐지?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과연 그가 내 부탁을 들어줄지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밀려오는 불안감에 확실히 발걸음이 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발걸음을 떼지 못하면 로빈을 구할 방법이 없어진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이 한몸, 희생 아니 용기를 내야한다." 쿠피디타스가 어디에 있는지 내게 알려줘. "결국엔 저질러 버렸다. 목구멍을 간질거리면서 제발 좀 입 밖으로 내뱉어줬으면 하는 단어가 그 남자의 귓 속으로 냉큼 숨어 들어갔다. 그는 내가 한 말에 약간 당황비스무리한 충격을 입었는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들고 있던 커피잔을 바닥으로 떨어트린다.「 쨍그랑 - !! 」경쾌하다못해 시끄러운 굉음에 그 남자의 움직임이 포착됬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방금 한 말을 다시 한번 해보지않겠냐고 되물었고,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한번 그에게 쿠피디타스가 있는 장소를 향해 묻자, 그는 이내 정색을 하며 내 앞으로 걸어왔다." 개소리 지껄이지마. 네 따위한테 그런걸 보여줄 것 같나?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대로 물러났다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참극에 다다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주시하며 다시 한번 그에게 부탁했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절때 그럴 수 없다며 당장 이 서재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친다.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애처로운 눈빛을 더해 그에게 다시 한번 양해를 구했지만, 그는 또 한번의 정색을 하며 이내 나를 강제로 서재 밖으로 쫓아낸다." 너 따위한테 그 장소를 말해줄 것 같나? 꿈꾸지마라, 잠시 내가 너와 어울려줬다고 너를 완전히 신뢰 한다고 착각하지마! "그는 단호히 나의 부탁을 거절하고 서재 문을 닫아버린다. 밖으로 쫓겨난 나는 잠시동안 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여기서 물러나면 더 이상 내가 물러날 곳은 없다. 내 뒤는 벼랑 끝, 내 앞은 사다리.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할지 알고, 무엇을 피해야하는지 알고 있다. 절대 나는 이런 비참한 최후를 남길 순 없다." 부탁이야, 제발 부탁해! 제발 나한테 그 장소를 알려줘!! "서재 안은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말도 안된다는 헛소리 집어 치우라는 말 또한 들리지 않는다. 이미 그는 나와의 벽을 세워 나와의 대화를 단절시켰고, 아무리 내가 그를 향해 소리쳐도 내게 돌아오는건 소리 없는 메아릴 뿐이다. 그치만, 그치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어. 나는, 나는 꼭 쿠피디타스가 있는 곳을 알아야한단 말이야 …. 그러니까, 그러니까." 네 딸의 목숨이 달려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날 좀 …. "딸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서재 문을 벌컥 열렸고, 그 앞에는 그 남자의 분노 서린 주먹이 나의 볼을 터치하고 한바퀴 나를 돌려버린다. 그는 씩씩거리며 벽으로 밀려난 나의 멱살을 붙잡으며 어디서 감히 내 딸을 들먹이냐며 나의 멱살을 세게 붙잡으며 침이란 침은 다 뱉으며 꽤나 역겨운 소리를 하고 있다. 나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그의 팔을 붙잡으며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절대로 꺼내서는 안될 말을 꺼낸 내가 밉고 증오스러울테지. 하지만 이런 방법 밖에 없어. 이래야만 너가 날 도와줄거라 믿었거든. "" 헛소리 하지마! 난 널 절대 도와줄 생각 없어! 아무리 라이제르를 갖고 협박을 해도 소용 없어! "" 협박이 아니야 부탁이다!! "" 웃기지 마! 그런 놈이, 내 딸을 가지고 협박을 해? 되도 안될 개소리 지껄이지마!! "나의 말은 도통 들으려하질 않는 그의 얼굴을 계속해서 쳐다보기엔 불가능했다. 뭐가 대화가 되야 말을 걸텐데, 이 남자는 절대로 내 말을 곱게 들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그에게 쿠피디타스가 있는 곳을 물었지만, 역시나 돌아오는건 욕설 섞인 외마디 뿐, 그의 눈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며 도저히 그의 신념을 꺾을 수가 없었다. 촌장 자리가 괜히 촌장 자리는 아닌 것 같았다. 이 모습을 보아하면 란과 흡사하지만, 그는 아직 란을 따라가기엔 부족했다. 내가 아는 란은 외부에서온 자를 적대시하지 않고, 자기의 능력이 닿는데까지 도움을 주던 녀석이였다. 더군다나,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절대 한치의 흔들림 없이 냉정함을 유지하며 일을 순조롭게 풀어나가는 현명한 녀석이였다. 하지만, 이 녀석을 보면 그런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다. 그저, 외부인이라면 무조건 나의 적이라는 인식이 사로 잡혀있는 이놈에겐 그딴 말이 통할리 없었다. 단지, 이 녀석은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한 노력에 열중할 뿐, 다른 이의 감정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자의 마음을 여는 것 간단하다. 자신에게 이익이 가는 일이라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거라면 순순히 도와줄거라 믿는다." 네 딸을 구할 수 있는데도? "" 뭐? "" 네 딸을 구할 수 있는데도 가르쳐주지 않을 셈이냐!! "굳게 내 멱살을 붙잡고있던 그의 손에 힘이 빠졌다. 역시나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 넌, 그 병을 치료할 방법을 모른다고 했잖아!! 그런데,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 물론, 나는 그 병의 치료법도, 그 병에 대해서도 잘 몰라! 하지만, 쿠피디타스만 있다면 이 모든 악연을 풀어버릴 수 있다고! "나의 외침에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 앞에서 끝까지 나를 물고 안 놓아줄 기세로 달라 붙던 그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는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며 나와의 거리를 유지했고, 나는 그가 또 다시 달라 붙을까 염려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아까보다 조금은 냉정해진 모습으로 나를 바라봤고, 방금보단 부르르 떨리는 몸으로 믿기지않는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게 정말이냐 … ? 정말로 … 라이제르의 병을 고칠 수 있어? "나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라이제르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했고, 그는 이내 눈물을 흘리며 제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는 주체 없이 흐르는 눈물을 채 닦기도 전에 나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물었고, 나는 다시 한번 그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고칠 수 있다며 선의의 거짓말을 하며 그를 안심시켰다. 확신할 수는 없다. 정말로 그 병을 고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서 쿠피디타스가 있는 장소를 알려면 이런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그 쿠피디타스의 능력으로 인해 이 병을 고칠 수 있다면 좋은거고, 그럴 수 없다면 잠시 주츰한 것 뿐이다. 이 세상의 고칠 수 없는 병은 없다. 단지, 그 병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뎌딜 뿐, 그 병은 고칠 수 있다." 무조건 고칠 수 있다고는 장담 못하지만, 그 병에 대해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거다. 그렇다면 훨씬 더 그 병에 대해 알아갈 수 있어. 그러면 라이제르의 병도, 로빈의 병도 고칠 수 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 "속이 울렁거린다. 감정이 북받쳐서인지, 속이 울렁거리며 머리가 어지럽다. 하지만 이 말만은 해야한다. 이 말로 모든걸 뒤바꿀 수 있다면, 지금의 악몽을 모두 떨처낼 수 있다면 … !!" 부탁할게. 나를 … 도와줘. "나는 그에게 머리를 숙이며 진심으로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나의 모습에 한동안 아무런 말없이 그 자리에서 꼿꼿이 자리를 지켰고, 나는 그가 수락을 할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으리란 다짐으로 묵묵히 그 모습을 유지했다." … 알았다. "그의 승낙이 떨어졌다." 라이제르를 구할 수 있다면 … 그깟, 고철 따위 보여주지. 하지만 약속해라. 꼭, 라이제르의 병을 고쳐주겠다고. "" 약속한다. "비장한 분위기 속, 두 남자의 약속이 성립했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고, 나 또한 그를 보며 소리 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보니 이 광경,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이런 험악한 분위기에서 가까스로 튀어 나온 대화 중에 결탁된 일이였지.“ 그렇다면 너도 내게 한가지 약속을 해라. ”“ 그게 무슨 말이지? ”“ 내가 전사들의 영혼을 가지고 오면 로빈을 살려준다는 약속 외에 한가지 더 약속을 하란 말이다. ”“ 무슨 약속이지? ”“ 루에르 마을에 있었던 일을 나와 로빈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사로이는 의외에 말을 내뱉자 살짝 눈동자가 떨리는걸 확인했다. 주위에서 나와 사로이의 대화를 듣고있던 사람들도 내가 한 말을 듣자 상당히 흥분을 한 듯, 사로이에게 저딴 녀석의 말은 듣지말라며 사로이를 급구 만류한다.“ 약속해라. 내가 전사들의 영혼을 가지고 오는 대신 너는 내게 루에르 마을에 있었던 일을 내게 말하겠다고. ”“ …. ”“ 약속해라! 내가 전사들의 영혼을 가지고 돌아오면 내게 그 사실을 알려주겠다고! ”내 목소리가 잿빛 산을 가득 메우자, 어느덧 마을 안은 정적이 흘렀다.“ …. ”“ 사로이!! ”“ 알았다. ”“ 족장 님!!! ”사로이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내게 약속을 다짐했고,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사로이에게 달려가 그 말을 취소하라며 그에게 매달렸지만. 이미, 사로이는 마음을 굳게 닫은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설마, 마키 족의 족장이신 사로이가 말을 바꾸거나 그렇진 않겠지? ”“ 약속한다. 너가 해가 지기 전까지 전사들의 영혼을 가지고 돌아오면 그 여자의 목숨은 물론이고, 너가 궁금해하는 루에르 마을에 대해서도 말해주겠다고 마키 족의 족장인 이 사로이가 약속한다. ”" …. "나는 이번에도 로빈의 목숨을 걸고 약속을 한건가 ….그에게서 가까스로 승낙을 받긴 했지만, 그는 별로 나를 신뢰하지않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사실 나도 그와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못 갖겠다. 그저 쿠피디타스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 막 내뱉진 말들 중에 제일 구미가 당기는거였는데. 하지만 정말로 그 메달로 로빈과 라이제르가 걸린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다.그와 향한 곳은 마을에서 꽤 멀리 떨어진 한 민가였다. 다른 마을과는 달리 평범한 건물에 모신 듯, 다른 집들과 섞여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무방비 상태였다. 나는 그에게 그런 귀중한 물건을 함부로 방치해서는 되냐며 묻자, 그는 아무 말 없이 민가의 문고리를 잡아 당겼다." 흐훕. "문이 열리자마자 그 안에서 휘날리는 먼지바람에 나도 모르게 소매자락으로 코를 막으며 그의 뒤로 숨었다. 그는 사방으로 흩어지는 먼지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간다. 그의 뒤에서 멀뚱히 서있던 나도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뒤따라 민가 안으로 들어갔고, 그 안에는 구릿한 악취와 함께, 음침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왜 내가 만날 가는 곳마다 이런 곳인지 원, 내 운이 그 정도 안되는건가." 여기다. "투덜거리며 그의 뒤를 따르던 나는 그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멈췄다. 그가 가리킨 곳은 다른 곳과는 별 다른 점이 없는 제단이였고,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민가라고 생각했으나, 안은 사당이였단건가. 그는 제단으로 가까이 다가가 그 제단 주변을 샅샅이 훑어보더니, 이내 뒤에서 멍청히 서있는 내게로 무언가를 건넨다." 이건 뭐지? 무슨 막대기 같은데. "그에게 건네 받은 물건을 손의 감각으로 알아차리려는 나한테 그는 단호히 말했다." 손전등이다. 내가 물건을 찾는 동안 그걸로 제단 쪽을 비춰라. "부탁 같으면서도 명령조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뭐, 원래 그의 말투가 그랬으니 내가 이해하는 수 밖에. 찜찜한 기분으로 제단을 향해 손전등을 비추던 중, 그 빛이 반사되어 주변 모습이 약간이나마 보인다. 할 짓이 없던 나는 손전등을 제단 쪽으로 비추며, 그 빛이 닿는 주변을 돌아보며 조금이나마 이곳이 어떤 곳인지 파악했다. 다른 사당들과는 비슷한 모습이지만, 어디선가 사당과는 거리가 먼 느낌이 든다. 내 괜한 생각이라 생각하며 별 다른 생각 없이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순간적으로 시선을 멈추었다. 제단 쪽에서 별로 멀지 않는 곳에 덩그러니 놓여진 물건을 보며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손전등 좀 제대로 좀 비춰봐. 그렇게 드니깐 잘 안보이잖아? "" 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냐 …. 저것 좀 봐바. "" 뭔데 그렇게 호들갑이지? 뭐가 있길래 그래. "경직된 몸으로 뻣뻣히 손전등을 들고 있는 나의 시선이 머문 곳으로 그의 시선도 따라 움직인다. 그는 별 시덥지않는 눈치로 그 물건을 바라봤고, 한 몇초간의 침묵 후에 그의 비명소리가 사당 안에서 울려 퍼졌다." 저. 저게 뭐야? 왜 저런게 이런 곳에 있는거야!! "그 역시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몰랐는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의 등 뒤에 숨는다. 나는 그런 그에게 이곳이 뭘 하던 곳인지 모르냐며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전혀 모른다며 식겁한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왜 저게 저기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런게 이곳에 돌아다닌다는건 …. "" 이곳이 그냥 사당이 아닌, ' 그런 일 ' 을 하는 곳이기도 했단건가 …. "우리는 아무런 미동 없이 그 자리, 그 모습으로 멍청히 그 사물을 향해 시선을 빼았겼고, 우리의 본래 목적도 잊어버린 채, 말없이 그 사당 안에 머물렀다." … 역시 그곳은 그런 짓을 하기 위한 곳이였군. "우리들은 서재로 돌아와 황급히 책장 안에 책을 꺼내어 한권씩 차례대로 읽어갔다. 그러던 중 무언가를 발견하고 알아챈 듯한 그의 목소리에 나는 다급히 그에게 달려가 그곳이 무슨 장소냐며 물었고, 그는 내게 책에 적힌 사진과 내용이 담긴 페이지를 펼쳐보이며 내게 그 장소가 오래 전에 사용된 고문실이라는 것을 말해줬다. 나는 그가 내뱉은 말에 잠시 충격을 받은 얼굴로 멍하니 그 책에 담긴 정보들을 읽어내려갔고, 역시나 그곳은 옛날에 쓰여진 고문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사실에 놀란건 나 뿐만이 아닌, 그 남자 역시 처음 듣는 얘기인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농담인줄 알았는데, 설마 그게 진담인줄은 미처 몰랐군. "" 뭐야, 그 말투. 그런 넌 원래부터 그곳이 어떤 장소인지 알았다는거야? ""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 뭐야? "그는 심상치않은 표정으로 들고 있던 책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비어있는 책장 속에 지금껏 벌려놓았던 책들을 집어 넣으며 입을 연다." 네가 봤던대로 그곳엔 우리가 봐서는 안될, 앞으로도 봐서는 안될 것을 보고 말았지. 그나마 다행이지, 그 여자나 내 딸들이 그곳에 안간게. 뭐, 나도 얼핏 들은 얘기지만, 그 사당은, 그러니까 그곳은 아마도 100년까지 사용된 고문실이였을거다. "" 그렇다면, 그 이후로 그곳에 출입하는 사람이 없었다는건가? "" 아마 그렇겠지. 무엇 때문에 출입이 불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출입이 가능했던 때라면 하루도 피가 마를 날이 없었겠지. 너도 느꼈겠지만, 그곳은 100년이 지난 이후에도 피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어. 네가 코를 막은 것도 그 냄새 때문에 막은거겠지. 사람이 사람의 피 냄새를 맡는다는게 그리 좋지는 않겠지. 그렇게보면 그곳은 사당으로 보기엔 힘들어, 신을 모신다는 곳에 그런 냄새가 베어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곳은 사당으로써의 가치를 잃은 것 뿐이야. 더 이상 그곳은 사당이 아니라는 말이지. "" 그렇다는건 뭐야. 그곳에 쿠피디타스가 있을리 없다는건가? "" 그나마 눈치는 빨라서 좋군. 네 말 그대로다. "그는 책장에서 손을 떼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 사당은 아니, 그곳에는 쿠피디타스가 없다는 그의 말에 나는 살짝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고, 그는 그런 나를 보며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 쪽으로 걸어온다." 만약, 그런 곳에 쿠피디타스가 있다고 한들, 그건 더 이상 쿠피디타스가 아니야. 피의 찌든 추한 고물덩어리에 불과할거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곳에는 쿠피디타스가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곳엔 쿠피다타스는 없었어. "" 뭐? 그렇다면 쿠피디타스는 대체 어디에 있는건데? "처음부터 그곳엔 쿠피디타스가 없었다는 그의 말에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나의 물음에 대꾸도 하지 않고 조용히 다른 책장으로 걸어가 무언가를 찾는 듯이 책장 속을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여간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던 나는 그에게 뭐하는거냐며 묻자, 그는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책장 속에 진열된 수많은 책들 중 한권을 꺼내 들곤 내 쪽으로 건넨다. 그가 건넨 책을 서슴없이 받아든 나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물었다." 이 책에 열쇠가 담겨있다, 이 말인가? "" 생각하기 나름이겠지. "" 제길 … 또 책을 읽어야하는건가. "또 한번의 독서를 해야하는 처지가 된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놓고 싫은 티를 팍팍 풍기며 그에게 건네 받은 책을 조심스레 펼쳤다. 이번에도 보이는건 빽빽히 수를 놓은 글자들과, 간간히 모습을 나타내는 흑백사진 뿐, 이번에도 나는 그 사실을 알기 위해 또 다시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하는건가 …. 손톱을 깨물며 천천히 책을 읽어내려가려는 내게 그가 잠시 손을 뻗으며 내 행동을 저지한다. 나는 그의 행동에 얼 빠진 표정을 지으며 쳐다봤고, 그는 나를 보며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눈치로 말문을 연다." 책을 읽기 전에 네게 할 말이 있다. "" 뭔데? "" 책에 기재된 내용의 겉면을 볼게 아닌, 그 내면을 보는게 중요하다. "" 에에? 그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 그건, 네가 알아서 선택할 일이지만. "그 남자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서재 밖으로 빠져나갔다. 책을 읽기 전, 심신을 안정시키려던 나에게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고 간거냐. 안 그래도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머리가 아파올 지경인데, 그딴 말까지 하면 나보고 어쩌라는거냐. 나보고 독심술이라도 하라는거냐? 아무튼간에 저 녀석, 엄청 재수 없다. 내가 아는 놈들 중에서 저 녀석이 두번째로 재수 없을거다." …. "그렇다는건 사로이가 첫번째라는건가 …? 이거 이거, 사로이가 알면 노하겠군. 그나저나 이제부터 책을 읽어야 할텐데, 도통 이 책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분명 내게 이 책을 준거는 이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말인텐데, 대체 뭐가 있다는거야?“ 겉면을 볼게 아닌, 그 내면을 보는게 중요하다. ”그런 말을 하면 누가 알아듣냔 말이지 ….“ 그 내면을 보는게 중요하다. ”내면을 본다라 …. 책에 무슨 내면이 있냐, 그냥 그 자체가 그 내용의 전부를 지칭하는거지. 만약에 그 책에 내면이 있다면, 그 책은 대체 왜 써진거야? 원래 책이란게 그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 아닌가? 독자들에게 숨길 의도로 만들어진거라면, 굳이 만들 필요가 있나? 그럴거라면 수수께끼를 내던가.' ! '수 … 수께끼?“ 그 내면을 보는게 중요하다. ”내면 … 이라?' ! '설마, 그 자식 … !!「 쿠당탕탕 - !! 」그 자식 설마, 지금 나를 가지고 논건가? 단순히 나를 시험하는거였냐고!! 그 자식,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표정을 지으며 내게 숨기다니. 역시나 그놈을 처음부터 내게 그 장소를 알려줄 생각이 없던건가? 아니, 그 전에 그 말은 대체 왜!!" …. "젠장, 하나도 모르겠네!!처음부터 그 녀석은 내게 쿠피디타스에 대해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자기 딸을 구할 수 있다는 달콤한 말에 넘어간 척하면서, 그저 나를 장난감 놀이하듯 놀아난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느껴졌다. 내가 책을 읽기 전에 했던 말도 괜히 내 골치나 아파라하고 내뱉은 말이 아닌, 자신이 진정으로 내게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였다. 난 단순히 책 안에 뭔가가 있을 줄 알아서 지금껏 읽었는데. 그저 나를 갖고 논거잖아?!「 벌컥 - ! 」난 황급히 방문을 열어 제꼈고, 그 안에는 침대에 누워있는 로빈을 안쓰러운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헥헥거리며 안으로 들어온 나를 보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걸어온다. 그리곤 희안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책은 벌써 다 읽은건가? 예상 외로 빠른 속도로 읽었군. "" 너 이 자식, 처음부터 나한테 알려줄 생각이 없던거냐?! "" 뭐가 말인가? "" 다 알고 있으니까, 시치미 떼지마! 너, 네가 가지고 있는거지? 처음부터 네가 갖고 있던거지!! "" … 눈치챈건가. "" 뭐? "그는 나를 바라보며 살짝 놀랍다는 듯한 액션을 취하며 슬쩍 나의 어깨를 손으로 꾸욱 누르며 내 옆을 지나쳤다. 나는 그를 돌아보며 왜 내게 그 사실을 숨긴거냐고 물었지만, 그는 대꾸도 없이 설렁설렁 방 안을 걷는다. 그 모습에 살짝 화가 나려는 나는 그를 노려보며 다시 한번 그에게 소리쳤고, 그는 이내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돌아본다." 그걸 내가 네한테 알려줘야하는 이유가 뭐지? 굳이 내가 힘들게 너한테 설명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를 제시해봐라. "" 너 … 라이제르를 구할 생각이 없는거냐? 그런거야?! "" 더 이상, 내 딸을 가지고 협박 한들, 나는 절대 너를 도와줄 생각이 없어. 하물며, 라이제르가 죽는다해도 내 생각은 변하지않아. "" 뭐. 뭐라고?! "나는 그가 내지른 발언에 할 말을 잃고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너, 그게 정말이냐? 정말 라이제르가 죽어도 괜찮다는거냐!! "" 그 녀석이 죽던 말던 나와 무슨 상관이라는거냐? 그 녀석은 더 이상 내 딸이 아니야!! "" 너 … 지금 뭐라고 …. "그때, 소리 없이 흐느끼는 문소리와 함께 라이제르의 모습이 보였다." 라. 라이제르 … ? "문 틈 사이로 보이는 라이제르를 본 그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으로 라이제르를 바라봤고, 방금 전 그가 내뱉은 말을 들은 라이제르를 심한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로 황급히 어디론가 달려간다." 라이제르!! "뛰쳐나간 라이제르를 따라 가려는 그를 나는 막아서며 그에게 다시 한번 그에게 방금 한 말을 되물으며, 정말 후회할 자신이 없냐고 물었지만, 이미 그는 내 말은 귓등에도 닿지않는 듯, 그의 애처로운 손짓만이 라이제르가 서있던 자리를 가리켰다." 지금 내가 … 무슨 짓을 한거지 … ? 내가, 내가 지금 라이제르에게 무슨 …. 내가 지금 라이제르에게 무슨 짓을 한거냔 말이야!! "" 너 …. "그는 바닥으로 주저 앉으며 방금 자신이 라이제르에게 한 말을 떠올리며 심한 후회에 휩싸인 듯한 모습으로 괴로워한다. 그는 바닥으로 쓰러지며 도저히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건지, 다짜고짜 자신의 목을 손으로 짓누르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나는 그의 손을 붙잡았지만, 도저히 내 힘으로는 전혀 그의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1초 2초가 지날 수록 더욱 더 그의 목은 짓눌렸고, 괴로운 듯 기침을 하는 그를 보며 나는 다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 "그 순간, 내 눈에 집힌 의자 하나가 보였고, 나는 급히 의자를 집어 들어 그대로 그를 향해 내리쳤다.「 콰직 - ! 」의자로 내리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은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부서진 의자를 들어 그를 향해 내리쳤지만, 그럼에도 멈출 줄을 모르는 그의 행동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대로 그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계속 저 지경으로 냅두면 몇분 안에 죽을지도 모르지만, 저걸 막을 방법도 마땅히 떠오르지않으니, 내 속만 까맣게 타들어갈 뿐이다. 갑자기 왜 저 남자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 남자의 행동을 멈추는게 먼저다." 제발 정신 좀 차려! 갑자기 왜 이러는거야?! "부족하다는 것을 앎에도 그 모습을 멀뚱히 쳐다볼 수는 없던 나는 죽을 힘을 다해 그의 손을 잡아 당겼지만, 전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불어 내 팔만 아플 뿐이다. 결국 나는 최후의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고, 나는 그대로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냅다 꽂았다." 하아 … 하아 …. "가까스로 그를 기절시킨 나는 피로 범벅된 손을 옷에 닦으며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옆에 쓰러진 그의 얼굴은 도저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졌다. 그 소동에도 로빈은 곤히 잠들어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 그나저나 이 녀석, 갑자기 왜 그런 짓을 한거지? 아까 서재에 있던 것과는 완전 딴판이잖아? 자신의 딸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건다는 사람이 갑자기 그런 행동을 보일 뿐더러, 그런 말까지 하다니 …. 도저히 제정신으로 했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모습과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히 그의 행동을 저지했지만서도 라이제르가 받은 정신적 충격을 어쩔 수 없는건가 …. 이 자식, 왜 하필이면 그런 말을 라이제르가 있는 자리에서 말하다니, 넌 부모 자격 실격이야." …. "하지만 정말로 이 녀석이 왜 그런 행동을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건 그 뒤에 일이다. 어쩌다가 홧김에 내뱉은 말일 수도 있는데 그걸로 갑자기 자신의 목을 조르다니, 그것도 있는 힘껏 말이야. 더군다나 그 정도로 괴로우면 보통 멈추는게 정상인데 그는 전혀 멈출 낌새가 아니였어. 정말로 내가 말리지 않았다면 이 녀석은 정말로 죽었을지도 ….' ! '자신의 목을 조른다 …? 설마, 이 녀석 ….“ 그 병은 아주 무서운 병이자, 끔찍한 상황에까지 몰고 가는 병이지. 그 병에 걸리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가 없다네. 아니, 살고 싶은 생각도 못하게 되지. 그저, 자신을 비관하고 증오하며 자신의 손으로 자기의 목숨을 빼앗는,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가 우리 인간에게 준 병으로 전해지고 있지. ”페니턴트에 걸린건 … 가?그 후, 한 2시간 후에 그가 눈을 떴다. 나는 그가 눈을 뜨기 전, 약간의 치료와 함께 그의 코뼈를 맞추는 작업을 시행했고, 가까스로 그의 코를 살릴 수 있었다. 뭐, 이렇게 말해도 살짝 금만 간 것 뿐이지만 …. 그래도 가벼운 상처라도 몇주면 낫게 될거니 그리 신경은 쓰지 않아도 된다. 아, 물론 내가 …."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 ? 내가 깜빡 졸았던 모양이군. "그는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으로 내려왔고, 눈을 비비면서 슬쩍 건드린 코에서 통증이 느껴졌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거울 쪽으로 걸아간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몰골을 보곤 깜짝 놀라며 왜 자기가 이렇게 됬는지 모모르는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에게 잠시 기억 못할 일이 있었다며 그를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고, 그는 내 쪽을 돌아보며 화들짝 놀란다." 네가 왜 내 방에 있는거지? 그리고 내 얼굴을 왜 이렇게 된거지? "" 그 일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 네가 날 이렇게 만든건가?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 뭐 … 그렇다고 볼 수도, 아니 그렇지. "순간적으로 내 얼굴로 날아온 고의적인 주먹에 나는 뺨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 미처 피할 생각도, 의사도 없던 나는 그대로 주먹을 받아 들이며 제자리에 멈춰섰다." 뭐가 어떻게 됬든, 내가 널 그렇게 만든건 맞으니까 그냥 맞기는 할텐데, 그 전에 너에게 묻고 싶은게 있다. "" 닥쳐! "나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연타로 날아오는 주먹을 가볍게 피하며 그대로 그를 벽으로 밀어 붙였다." 때릴 시간은 나중에 줄테니까, 일단은 내 말부터 들어. "" 닥쳐! "" 나 참 …. 어쩔 수 없는건가.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으려는 그를 보며 나는 일단은 용서를 구하고 그대로 그의 배를 무릎으로 찍고는 그를 조심스럽게 바닥으로 앉혔다. 그는 밀려오는 고통에 말이 안 나오는지, 꺽꺽거리며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그와의 눈높이를 맞추며 방금 그에게 하려던 말을 꺼내 그에게 물었다." 쿠피디타스는 어딨지? 네가 갖고 있는거 맞지? "" 끄 … 끄윽 …. "역시나 그는 아무 말도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직접 그의 몸을 더듬거렸고, 가까스로 바지주머니에 들어 있는 메달을 발견했다." 역시나 네가 갖고 있던거냐 …. 왜지? 왜 이걸 갖고있음에도 내게 알려주지않은거지? 라이제르의 병을 고치고 싶지 않은건가? "" 우 … 웃기지마. 난 누구보다 더 라이제르의 병이 낫기를 기도하는 사람이다. "" 그렇다면 왜 내게 숨긴거지? "" 네 녀석이 그 병을 낫게할 수는 없을테니까, 그저 쿠피디타스를 얻기 위한 도구로 내 딸을 사용한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 녀석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줄 알았다는건가? "그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어떤 말도 반박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이 백번 옳았고, 그의 말대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더군다나 치료법도 모르는 이 시점에서 고칠 수 있다는 말을 한 나를 의심하는건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그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어떻게서든 쿠피디타스만 있으면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이걸로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저 들고만 있으면 뭔가 일어날 줄만 아는 공상에 빠진 것 밖에 …." 네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것을 가졌으니, 이제 이 마을에서 떠날거겠지? 더 이상 이곳에 볼 일이 없을테니까. 나도 더 이상 네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썩, 이 마을에서 나가라 ….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고, 말 없이 바닥만을 주시하는 나의 옆을 지나쳐갔다." 아니, 아직 이 마을을 떠날 수 없다. "" 라이제르가 죽는걸 보고 나서 떠날 셈인가? "" 라이제르는 죽지 않는다. "" 뭐? "나는 이내 비장한 얼굴로 그를 향해 말했다." 나는 그 병을 고칠거다. 그러기 전까진 이 마을을 떠나지 않겠다. "" 무슨 수작이냐, 아직도 우리 마을에서 빼먹을게 남았다, 이건가? "" 그런게 아니야. 단지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한 것 뿐이다. 아무런 욕심도 욕망도 없어. 그저 그 병을 고치기 위해 이곳에 머무를거다. ""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네 혼자서 뭘 어떻게 한다는 말이지? 더군다나 너는 그 병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잖아! 그런데 그딴 말로 나를 현혹할 생각인가? 그렇다면 헛수고니, 당장 꺼져버려!! "그는 더 이상 나와의 대화는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가 떠난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나를 믿을 수 없는거겠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이곳에 대뜸 나타나 쿠피디타스에 대해 묻고, 반 강제적으로 메달을 가로 챘으니까, 그렇게 본다면 나는 이제 이 마을을 떠나는게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죽을걸 알면서도 그걸 지켜볼 수 밖에 없는 한 남자와 그 병에 걸린 소녀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을 뿐더러, 로빈까지 그 병에 걸린 채로 다음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다는 법도 없다. 로빈을 위해서라도, 또한 앞으로 있을 미래를 위해 나는 이곳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분명 힘들거다. 그 전과는 달리 혼자서 이 일들을 모두 처리해야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로빈의 그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고통에 휩싸여 하루하루가 힘들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 그 남자 또한 그 병에 걸렸으니 …. 더 이상 나를 도와줄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해낼거다. 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어떤 험한 일이라도 꿋꿋히 헤쳐 나갈 자신이 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라도 라이제르와 로빈, 그리고 그 남자 또한 몸 건강히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제부터 어떡하면 좋은거지? 지금 내가 아는거라곤, 전에 어르신에게 들은 말들과 이곳에 있는 잡다한 책들 뿐, 그 이외에는 어떠한 정보도 제공되지 않는 이곳에서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누군가, 누군가가 나를 도와준다면, 이 일이 조금은 수월 해질 수 있을텐데 ….' . '내 일을 도와줄 조력자 … ?' ! '그래, 그 녀석 밖에 없어! 그 녀석이라면, 이 일을 신속하게 해결 해줄 수 있을지도 몰라! 좋아, 그 녀석이다. 그 녀석을 만나러 가야겠어. 지금 당장!이라 말했지만, 사실상으로 거길 가는 거리와 이쪽으로 돌아오는 시간만 해도 2주 이상은 잡아 먹을테고, 그곳에 간다고 하루만에 다시 이쪽으로 돌아올 수도 없는 법. 그리고 갔어도 그 녀석이 병을 고칠 수 있다는건 내 추측일 뿐, 나는 지금 무모한 시도를 하려 했다. 그리고 내가 그곳으로 간다 해도 나와 같이 움직일 수 없는 로빈을 여기에 두고 혼자 가야 한다. 그렇다면 그동안에 로빈은 나를 기다리며 이곳에 머물러 있겠지, 그 말은 즉, 로빈의 병을 치료하려다 더 증상을 악화 할 수 있을 뿐더러, 자칫하면 로빈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함부로 움직이면 나는 두 마리의 토끼 중, 한 마리의 토끼도 잡지 못하고 말테지. 하지만 이렇게 내가 이곳에 있는다고 뭔가가 바뀌거나 하진 않는다. 누군가가 움직이지 않는 한, 이 상황은 결코 뒤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 대신 누가 그 녀석한테 다녀올 수는 없는 법, 대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하아 …. "한숨만이 절로 나온다. 침대에 누운 로빈은 새근 새근 잠들어있는데, 나는 대체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걸까. 이도 저도 안된다면 그 틀을 깨고 다른걸 집어 넣을 수 밖에 없는데, 나는 그 틀조차 건들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내가 고민하며 시간을 지체한다면, 결국엔 모든게 끝이 나겠지. 나는 조금 도 이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돼.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도저히 지금으로써는 답이 나오질 않는다. 계속 생각해봤자 혼란만 올 뿐, 나아지는건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도 말이 안된다. 한번이라도 더 생각해서 이 일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하는지 생각을 해야 한다. 로빈과 라이제르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그 녀석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기 위해선 최소 2주에서 최대 3주 동안은 로빈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때 사로이는 내게 로빈을 잘 간수하라는 당부의 말을 했다. 한치라도 로빈이 나와 떨어진다면,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즉, 로빈이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말과 일치하지. 그래서 안되는거다. 그런 로빈을 두고 갈 수는 없다. 내가 그녀에게 가까이 있지 않으면 그녀는 죽는다. 하지만 이렇게 로빈의 곁에만 있어도 그녀는 결국엔 죽는다. 과정이 어찌 되든 결과는 똑같다. 죽는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말이다." …. "결국엔 나는 로빈을 잃고 마는 건가. 아무 것도 못해본 채, 멍청히 그녀의 죽음을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건가? 그건 말도 안돼! 어떻게 내가 그 꼴을 두 눈을 뜨고 볼 수가 있겠어. 지금껏 나와 함께 하던 시간이 얼만데, 그 시간 동안 로빈과의 추억이 얼마나 많이 깃들어 있는데. 그걸 한순간에 부숴 버리라고? 내 손으로 직접? 아니, 불가능해. 난 절대로 그럴 수 없어. 무슨 일이 생겨도 내 손으로 직접 그럴 수는 없다고 …. 그럼 나보고 이제 어쩌라는거지? 난 도대체 무엇을 선택 해야 하냔 말이야. 결국엔 내가 이런 고뇌에 빠진 것도, 페이던트라는 병 때문에 생긴거다. 하지만 내가 그 병에 대해 이렇게 머리 아파하는 것도 로빈 때문이다. 그런데 로빈 역시 그 병에 걸려 있고, 나는 그 병에 대해 사로이에게 가야 한다. 하지만 내가 사로이에게 가는 동안 로빈이 무사한다는 보장은 없다. 이건 마치, 페니던트라는 병과 페니던트에 걸린 환자를 저울질 하는 것 같다. 결국엔 그 두 가지 모두 똑같은건데!" 로빈 …. "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거냐 … 난 도대체 무엇을 선택 해야 하냔 말이야. 안다면 내게 말해줘, 내게 알려줘, 로빈 ….「 끼 이 이 익 -… 」결국엔 아무 것도 하질 못하는건가. 나는 그 시간 동안 헛고생을 했단 말인가. 나아지는 것도, 변한 것도 없는 그곳을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단건가? 나는 무가치하다. 이런 선택도 못하는 나를 내 스스로가 경멸한다." 젠장 …. 결국 나는, 로빈의 목숨과 그 병을 똑같이 취급하게 된건가 …. 아무 손도 못 쓰고 이런 행동 밖에 할 수 없는 내 자신을 증오 할 수 밖에 없나 …. "복도 바닥에 주저 앉은 나는 탄식을 하며 나의 무력감에 자괴감에 빠진다. 왜 나는 이런 고민을 하며, 그 고민을 끝내지 못하는걸까. 나는 그렇게도 이 문제가 어려웠던건가? 하지만 선택은 하난데, 그것 밖에 없음에도 나는 왜 쉽사리 선택을 하지 못하는걸까. 그저 앞만 보면 그건데, 뒤를 보자니 이거인 셈인가.차디찬 기운이 나의 몸을 스쳐 지나간다. 곧 겨울이 올련지,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게 느껴진다. 숨을 내쉬면 하얀 김이 서려 공중에 퍼지듯, 나의 고민 또한 훌훌 털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금방이라도 해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나와는 달리,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초췌했다. 쿠피디타스만 찾는다면 모든게 끝날 줄 알았는데, 끝은 커녕, 그 끝을 향한 단서만이 수두룩하니 내 머리만 아플 뿐이다.한참을 멍하니 벽에 기대 앉아 있던 나는, 그 남자에게 받은 메달을 이리 저리 훑어 봤고, 이내 나는 왼쪽 바지주머니에 들어 있는 메달을 꺼내 양손에 들고 두 메달을 비교해 보았다. 역시나 똑같은 메달임에도, 약간의 차이가 존재했다. 내가 가진 메달엔 푸른색 달모양이 각인되어 있다면, 이 메달에는 붉은빛을 띄는 태양의 모양이 새겨져 있는건가. 그렇다면 이 메달의 능력은 ….한가로히 로빈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내게로 사로이가 찾아 왔다. 사로이는 나를 보며 잠시 사로이가 부른다며 따라오라고 했고,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사로이가 있는 고목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사로이는 내가 노로이를 따라 오는 것을 발견하곤, 이내 몸을 돌려 내 쪽을 향해 바라봤다.“ 무슨 일이지? 아직도 내게 묻고 싶은게 있는건가? ”“ 노로이, 너는 이만 물러가도록. ”내 물음에 사로이는 가볍게 무시해주며, 내 옆에 서있던 노로이를 퇴장시킨다. 사로이에게 무시 당한 나는 반쯤 짜증나는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다시 한번 물었고, 그는 이번에도 내 말을 사뿐히 즈려 밟고는 내 앞으로 다가온다.“ 잠시 할 얘기가 있으니, 내 뒤를 따라오도록. ”사로이는 짧고 굵은 말을 하곤 발걸음을 돌린다. 그 녀석에게 두번이나 무시 당한 나는 그의 뒷통수를 노려보며 천천히 그의 뒤를 따랐다.“ 나한테 또 말할게 있는건가? 그렇다면 이렇게 불러내지 않아도 되잖아? 굳이, 이런 산 속에 들어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러나 그는 또 다시 내 말을 무시한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전혀 들리지 않는 듯한 태도로 묵묵히 앞을 향해 걸었고, 나는 그의 모습에 기가 차 말이 나오지 않는다. 지 말만 할거면 처음부터 지가 올 것이지. 괜히 여러 사람 오라 가라 민폐야?“ 남 흉을 볼 때는,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보도록. ”자기 욕을 하는걸 용케도 알아차린 사로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며 말했고, 나는 그의 시선을 조심스레 피했다. 저 녀석, 독심술이라도 하는건가? 꽤나 섬뜩한 재능이군.그렇게 말없이 사로이의 뒤를 따르던 어느 순간, 사방에 빽빽하게 둘러 쌓인 나무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사방이 뻥 뚫린 맑은 하늘이 나타났다. 나는 휘둥그레 해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내뱉으며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발걸음을 멈춘 사로이는 나와는 다른 반응으로 쓰윽 주위를 둘러보며 이내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본다.“ 대체 여기는 어디지? 이런 곳이 있었다는걸 왜 알려주지 않았어? 이야, 이곳에 로빈이랑 같이 오면 좋아하겠는걸. ”신나하는 나와는 달리 사뭇 진지한 표정의 사로이. 그는 나를 보며, 왜 자신을 이곳에 데려왔는지 알려 주겠다며, 그 전에 한 가지 할 말이 있다며 들고 있던 무언가를 내게 건넨다.“ 이게 뭐지? 이걸 왜 나한테 주는거야? ”“ 일단은 받아라, 받고나서 말해주마. ”얼떨결에 사로이가 건넨 물건을 받아든 나는 슬쩍 손가락으로 그 물체를 굴려 보았다. 동글동글한 촉감이 꼭, 돌멩이 같았다. 나는 그 물체를 가리키며 이게 대체 뭐냐고 묻자, 사로이는 영험한 돌이라고 대답했다.“ 영험한 돌? 그런데 이걸 왜 주는거지? ”“ 내가 너에게 그 돌을 왜 준 것 같지? "“ 그걸 모르니까 묻는거 아냐! ”사로이는 눈을 가늘게 뜨며 하찮다는 듯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그걸 모른다면, 넌 절대로 그것을 사용할 수 없어. 네가 그 돌을 사용 했을 때는, 네가 왜 나한테 그 돌을 받았는지에 대해 알 때겠지. 그 전까지는 나는 절대로 네게 그 이유를 말하지 않겠어. ”그는 더 이상 나와 할 말이 없다며 이만 돌아가라며 말했고, 자신은 잠깐 어딜 다녀올 생각이니, 노로이한테는 먼저 저녁을 먹으라며 대신 얘기 해달라며 수풀 사이로 모습을 감춘다. 그가 사라지고 덩그러니 혼자 남은 나는 사로이가 나한테 한 말을 다시금 되새기며 그의 말 뜻을 알아보려 했다. 하지만 도통 그가 한 말은 대부분 내가 알아 들을 수 없도록 꼬아서 한 말이라 쉽사리 내가 알아 차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한 것도 분명 언젠가 내가 자신이 한 말 뜻을 알아 차릴거라 믿고 한 말이겠지. 뭐, 그렇게 보면 그리 중요한 말을 아니였던가 보군.나는 잠시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지금까지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 나에게는 알맞는 휴식의 공간이였다. 사로이가 나를 이곳까지 데려온 이유도, 그 이후로 제대로 쉬어 보지도 못한 나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한 행동인가 싶다. 겉은 차갑고 사나운 녀석이지만, 그 내면만은 누구보다도 따뜻한 녀석이라고 알고 있는 나는 만족스러운 미스를 지으며 한동안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 몸으로 느꼈다.하늘이 붉게 물든 뒤에야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간 나는 사로이가 한 말대로 먼저 저녁을 먹자며 노로이에게 알렸고, 노로이는 자신과 같이 식사를 준비하는 몇몇 부족원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향한다. 로빈은 내게 어디 갔다 왔냐며 궁금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고, 나는 그런 로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다음에 한번 데리고 가준다는 약속을 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시게요? 곧 있으면 저녁 먹을텐데. ”“ 잠시 서재에 볼일이 있어서, 금방 다녀올게. ”나는 웃으며 자리를 떴고, 서둘러 유적지 근처에 있는 서재로 향했다.“ 어라 … ? ”유적지를 지나가려는 순간, 고목나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보통 이 시간대면 반짝반짝 빛을 내야하는 돌이 오늘은 이상하게도 오늘은 빛을 뿜지 않는다.나는 서재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조심스레 고목나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어? ”고목나무의 틈에 있던 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어제까지만해도 이 자리에서 빛을 내고 있던 돌이 갑작스레 모습을 감춘거였다.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고, 행여나 다른 부족원들이 이 사실을 알까, 황급히 그 고목나무을 등에 지고 조심스럽게 다시 한번 고목나무를 살펴 보았다.“ …. ”돌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대체 왜 갑자기 돌이 사라진 이유는 몰랐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건, 돌의 행방이 묘연 해진 덕분에 일어날 파장에 대한 불안감이 눈 앞을 가렸다. 우리한테는 그저 흔하디 흔한 돌멩이일지 몰라도, 그들에겐 이곳을 수호하는 수호신의 역할이기 때문에. 그 수호신을 맡고 있는 돌이 사라졌다면 그들이 어떤 행동을 보일지 뻔하디 뻔하다. 더군다나, 그들은 돌이 사라진 것을 보고 나와 로빈이 이를 훔쳤다며 지명을 할게 분명하다. 범인이 누구든지간에 무조건 우리를 지목할게 확실했다. 누가 왜 어떤 사람이 이걸 훔쳤는간에, 아니 그 전에 이게 정말 누군가가 훔쳐간걸까하는 의심이 들지만서도 지금은 급히 이 사실을 다른 부족원들이 모르게 숨기는게 먼저다. 다행히도 밤이 되면 사로이는 물론이고 다른 부족원들조차 이 근처로 오지 않기 때문에 오늘만 다른 돌로 속이고, 내일 아침 일찍 이 근처를 수색해보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처음부터 이런 산 속에 그런 돌멩이 하나를 훔친다고 그들이 눈치채기 전에 다른 돌이라도 옮겨 놓던지 해야 한다.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그 돌을 대신할 돌이 있나 없나 훑어 보았지만, 그 돌과 비슷한 돌을 없을 뿐더러, 이곳은 이상하게도 돌이 없었다. 조금 있으면 저녁 식사를 알릴 징이 울릴게 분명하다. 그 전에 빨리 다른 돌을 찾지 않으면.‘ ! ’그래, 맞아. 아까 전에 사로이에게 받은 돌이 있었어! 나는 다급히 돌멩이가 든 주머니를 뒤적거려 돌멩이를 손에 집었고, 황급히 그 돌을 고목나무로 옮겨 넣었다. 놀랍게도 그 돌은 이곳에 있던 돌멩이와 크기도 비슷했고 색깔도 비슷해서 다른 부족원들이 와도 모를 만큼 똑같은 싱크로율을 보인다. 가까스로 사건을 종결 지은 나는 식은 땀을 닦으며 서둘러 시작될 저녁 식사를 하러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내 머릿 속을 스치는 무언가가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고목나무로 고개를 돌렸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돌멩이를 다시 한번 살펴 보았다. 다시 한 번 봐도 엄청나게 비슷한 돌의 모습에 반쯤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돌멩이를 훑어 보던 나는 이내 당황스러운 눈으로 고목나무에 고요히 놓여져 있던 돌멩이를 살펴봤다.“ … 서, 설마 이 돌이 ….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나는 그 돌을 보며 경악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서둘러 그 돌멩이를 들고 황급히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게 … 이게 대체 무슨 꿍꿍이냐고!! ”내가 그곳에서 얼떨결에 건네 받은 돌은, 그들이 신성시 여기는 수호신의 돌이였다.늦은 밤이 되어서야 모습을 나타낸 사로이는 다른 부족원들이 깰까,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고목나무가 있는 쪽을 향해 걸어갔다. 사로이가 올 때까지 잠도 안 자고 기다리던 나는 사로이가 온걸 확인하고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지금까지 안 자고 뭐하는거지? 설마, 날 기다린건 아니겠지? “사로이가 물끄러미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내가 뒤 쪽에서 접근한다는걸 알고 있었다는 사로이의 반응에 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고목나무 밑동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며 용건이 뭐냐 물었고, 나는 그에게 아까 낮에 받은 돌을 꺼내 보여주며 그에게 건넸고, 그는 나의 행동에 의아한 눈빛을 보낸다.“ 이걸 왜 주는거지? 내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건가? ”그의 말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왜 처음부터 이게 그 돌이라고 말하지 않은거야? 아니, 그 전에. 왜 이걸 나한테 준거야? ”나의 물음에 그는 한숨을 내쉬며 건넨 돌을 옆으로 치우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는 한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슬쩍 나의 옆을 지나친다.“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나? 내가 너한테 그걸 넘긴 이유는, 네가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조금은 영리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멍청했던건가? ”사로이는 피식 웃으며 부족원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사로이의 자극적인 말에 나는 잠시 발끈을 했지만, 일단은 냉정해지기로 다짐하고 다시 한번 그에게, 내게 이 돌을 넘긴 이유를 묻지만, 그는 또 한번 그 말을 되뇌이며 내 쪽을 쳐다본다. 그리곤 그는 반쯤 감긴 눈을 하며 다시 내 쪽으로 걸어왔고, 이내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피곤한 듯한 행동을 하며 내게 말한다.“ 오늘은 밤이 깊었으니 내일하는게 어떤가 싶군. 너와는 달리, 나는 내일도 할 일이 많거든. ”“ 그 전에, 왜 이걸 나한테 줬냔 말이야? ”“ 내가 몇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금세 그 말을 잊어 버릴 정도로 네 머리가 나쁜건가? ”사로이가 희번득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의 말에 잠시 움찔한 나는 반박할 타이밍을 놓친다. 그는 더 이상의 대화는 귀찮다는 행동을 보이며 고목나무를 향해 걸어간다.“ 하지만 이 돌은 이 산의 수호신이잖아? 그런데 이걸 내게 주면, 너희들은 어떻게 하려고? ”나는 사로이에게 그 사실을 말하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때 사로이는 고목나무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슬쩍 나를 돌아보며 우습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이미 그 돌은 더 이상 수호신의 능력을 잃었다.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는 돌멩이나 다름 없다. 그러니 그걸 네가 나한테 다시 넘겨 준다 해도, 그 돌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 물론 네 녀석이 준다 해도 받을 생각은 없으니까 …. 이만, 돌아가. 할 말이 남았다면, 내일 다시 찾아와라. ”그 말을 남긴 사로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목나무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나는 그에게 건네려던 손을 파르르 떨며, 그 위에 놓여진 돌멩이를 주머니 안으로 넣었다. 더 이상 이 돌이 수호신이 아니라니, 그렇다면 이 돌의 능력이 사라진거란 말인가? 하지만 왜?멀뚱히 그 자리에 서서 할말을 잃고 머뭇거리던 나는 발걸음을 돌려 서재 쪽으로 향했다. 이대로 자기에는 너무나도 의문점들이 많을 뿐더러, 오늘 중으로 꼭 봐둬야 할 사항들이 몇개 있어서, 오늘 안으로 해결하지않으면 내일 할 일들에 방해가 된다. 일단은 그 일들만 끝내고나서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자. 왜 사로이가 나한테 이 돌을 건넸는지, 그리고 왜 이 돌이 갑작스레 평범한 돌이 됬는지에 말이야. 분명, 이 두개는 큰 관련이 있을 듯 싶다.다음날 아침이 밝자마자 나는 사로이가 머무는 고목나무로 향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어딜 가봐야한다는 사로이의 말이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사로이는 내게 한 말대로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채, 쓸쓸히 그 자리를 지키는 고목나무만이 나를 반길 뿐, 사로이는 그곳에 없었다. 할 말이 있으면 찾아오라면서 이런 이른 시간부터 어딜 간건지 원 …. 텅 빈 고목나무 주위를 서성거리던 중, 고목나무 안에서 무언가가 펄럭이는게 보인다. 하얀 종이로 보이는 물체엔 검은 글자 같은게 쓰여져 있었고, 나는 그 종이를 집어 들어 그 안에 적힌 글자들을 읽어 보았다.‘ 급한 일이 있어서 이 쪽지를 남기고 간다. 내가 왜 너한테 그 돌을 줬는지 궁금할거다. 하지만 내가 말했던대로 너에겐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지만 약간의 힌트를 주마. 그 사실을 알고 싶다면 서재에 있는 콘스탄틴을 찾아가라. 그러면 어느 정도 너에게는 도움이 될거다. ’그 쪽지는 사로이가 남긴 것이였다. 콘스탄틴이라는 남자를 찾아가면 자신이 왜 내게 그 돌을 넘겼는지 알 수 있을거라는 그의 말에 나는 황급히 서재로 향했다.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하는걸 보면 분명 무슨 이유가 있겠지.서재에 다달은 나는 주위를 조심스레 살피며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에는 그저 작은 천막이라고 생각했던 곳을 얼마 전부터 들락날락하는 내 모습을 보면 부족원들이 뭐하냐며 귀찮게 구는 바람에 웬만하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는걸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서재에 들어가기 전 주위를 둘러보는건 첫번째 내가 걸쳐야 할 관문이다. 다행히 시간이 시간인지라, 깨어난 부족원들이 없는지 주위는 한산했다. 나는 안심을 하고 천천히 서재의 문을 옆으로 젖히며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부터 누구지? ”묵은 먼지가 흩날리는 서재 안에는 누군가가 있는 듯한 인기척과 함께, 낯선 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며 서재 안으로 들어섰고, 어둠으로 얼룩진 서재 안은 금세 빛으로 가득 찬다. 좁은 서재 안에는 한 백발의 남자가 나무 밑동 위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오래된 고서라도 읽는 듯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리던 그가 나를 보며 읽던 책을 덮는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끄러미 나를 바라 보았고, 내 몸 구석구석을 훑어보던 그 남자는 이내 입을 열며 나를 반겼다.“ 사로이가 말한 자가 네 녀석인가? 보기보단 조금 용맹한 눈빛을 띄고 있군. 사로이가 네 얘기를 한 이유가 그래서 였구만. ”그 남자는 껄껄 웃으며 재밌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사로이가 나에 대해서 말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랐지만, 이 남자한테는 더 각별하게 대화를 나눴는지 그가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 심상치 않다. 호탕하게 웃던 그는 본론으로 들어가, 이른 아침부터 서재에 방문한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그의 물음에 나는 방금 전에 읽은 쪽지에 써 있던 내용을 그대로 그 남자에게 말해줬고, 이내 그는 씨익 웃으며 내게 말한다.“ 오호, 그 말은 즉, 나를 찾아 왔다는건가? 내가 바로 콘스탄틴이라네. 뭐, 안 물어봐도 느낌상 알아 차렸을테지만 말야. 그나저나 그거 의왼데, 자네한테 그 돌을 넘겼다는 사실이 말이야. ”그 남자는 내가 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미소을 지으며 조용히 들고 있던 책을 책장 안에 집어 넣는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요? 하지만 어떻게. ”그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반응에 적잖이 놀란 나는 그에게 물었고, 그는 책장에 진열된 책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말했다.“ 그저께 밤, 사로이가 나한테 찾아와서 그러더군. 갑자기 돌에서 빛이 나지 않는다고 말이야. 평소와 같은 때라면 밤이 될 때마다 영롱한 빛을 띄어야 할 녀석이 갑자기 아무 색도 띄지 않고 평범한 돌처럼 형편 없는 색을 띄고 있으니 사로이도 여간 당황스러운게 아니였겠지. ”그는 킬킬 웃으며 말을 멈춘다. 먼지가 수북히 쌓인 책장을 손으로 쓸어 내리는 그의 모습을 보던 나는 할말을 잃고 그를 쳐다봤다. 그저께 밤이라면, 아마도 그 날을 말하는건가?“ 오늘은 왠지 평소와는 달리 기운이 없어 보이는걸.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여느 밤보다 왠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사로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사로이는 그런 나를 보며 아무 일 없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말을 한 뒤, 어디론가 휙하고 사라진다. 사로이의 태도에 잠깐 발끈을 했지만, 저게 그 녀석에게는 표현의 방법이라 생각하니 뭐라 할 말도 없다. 평소에도 까칠한건 알았지만,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신경이 날카로운 것 같다. 옆에서 로빈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노로이에게 나는 사로이가 왜 저러는지 알고 있는거 없냐고 물었지만, 노로이도 잘 모르는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아까 고목나무에 간 뒤부터 저랬다며, 다른 사람들 말로는 수호신의 돌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한걸 들은 적이 있다며 내게 말해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슬쩍 방금 전까지 사로이가 있던 곳을 바라보며 측은한 눈빛을 보냈다. 그렇기 때문에 사로이가 저기압이였던거군.“ 하지만 한 두번씩 이런 일이 생기니까, 딱히 이상할건 없어. 그러니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되. ”늘 있던 일이라며 신경 쓰지 말라는 노로이의 말에 나는 안심을 했지만, 노로이의 표정은 왠지 심상치 않았다. 자기 말로는 신경 쓰지 말라면서, 자기는 엄청 신경 쓰는가 보다. 뭐, 별 상관은 없겠지만.그날, 사로이의 얼굴이 어둡던 이유였군. 그래서 노로이도 그런 얼굴을 하고 있던거였어. 평소에 늘 있었던 일이라며 우스며 말하던 노로이도, 사로이의 그런 얼굴을 보니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거였어.“ 하지만 그 일과 나한테 이걸 준 이유는 전혀 상반되는 일 아닌가요? 이게 효능이 있는 돌이든, 평범한 돌이든, 자신들이 그렇게 숭배하던 수호신의 돌이였는데. 이렇게 덥썩 남한테 줄 수 있냔 말이에요? ”나는 그에게 어이가 없다는 식의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그는 그런 나의 말에 물끄러미 내 손에 들린 돌을 보며 책장에 머물던 손을 내 쪽으로 돌린다. 그리곤 내 손에 들려 있는 돌을 잠깐만 내게 달라는 그의 말에 나는 서슴 없이 그에게 돌을 건네줬다. 돌을 건네 받은 그는 신중히 그 돌을 훑어본다. 그리곤 들고 있던 돌을 바닥으로 내팽개치며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너, 사로이한테 속았군. ”그는 실실 웃으며 내게 말한다. 나는 그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나무 밑동 위에 철푸덕 앉은 그는 땅에 떨어진 돌 2개를 주어 들곤 내게 돌 2개를 보여주며 묻는다.“ 이 중에 뭐가 진짜 네가 갖고 있던 돌 같냐? ”“ 지금 뭐하는거에요? ”“ 내 질문에 대답해! 어떤게 네가 가지고 있던 돌이지? ”그의 황당한 질문에 말문이 막힌 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말문은 닫은 나를 보며 낄낄대며 웃었고, 들고 있었던 돌멩이들 중, 왼쪽 손에 들고 있던 돌을 바닥으로 내팽개치며 나머지 오르손에 들고 있던 돌을 내게 건넨다.“ 이게 네가 갖고 있던 돌이야. 표면을 봐서는 뭐가 뭔지 모르겠지?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알아두는게 좋아. 앞으로 너에겐 그 돌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거든. ”그는 미심쩍은 말을 하며 나를 바라본다. 그에게 건네 받은 돌을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은 나는 그의 눈을 마주 바라보며, 사로이가 왜 나를 이곳에 가라고 했는지 이유를 알자며 묻는 나를 보며 그는 뭐가 우스운지 계속 웃으며 내 시선을 마주친다. 그는 책장을 잡고 일어서서 책장 맨 끄트머리에 진열된 책들 중 한권을 꺼내 내게 건네며 말했다.“ 사로이가 네가 오면 주라고 했어. 그걸 읽어보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거라는 말을 하라고 해두더군. 이런저런 잡설이 많았군. 그럼 나는 이만 실례. ”그는 내게 책을 건네주고 할 일이 끝났는지 슬며시 서재 밖으로 나선다. 그때 나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이상한 낌새를 알아 차리고 황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그는 물끄러미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무슨 일이냐며 물었고, 나는 그를 보며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당신 … 나한테 뭐 숨기는거 있지? 그런데 일부로 나한테 숨기고 있는거지?! ”나의 말에 그는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군. 내가 할 일은 그걸로 끝이네만. ”능청스러운 그의 말투에 잠깐 발끈한 나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사로이가 시킨 일 말고, 나한테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잖아? ”그를 향해 소리친 나는 잔뜩 독이 오른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나의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고, 이내 웃음 가득한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역시 … 눈치 하난 빠르군. 그래, 네 말대로 너한테 사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하지. 하지만 사로이는 네 자신이 스스로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일제히 알려주지 않겠다고 한 것 같았는데 …. 나 역시 사로이의 뜻을 따를 생각이니 말이야. ”그는 가소롭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마치 나를 조롱하는 듯한 상황에 잔뜩 분노가 들끓던 나는 그에게 소리쳐 물었다.” 나한테 숨기고픈 말이 뭐지? 당장 나한테 말 못해!! ”마지막으로 경고하다시피 내지른 내 말에 그는 요지부동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내가 지금 내뱉은 말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별로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걸? ”“ 이 자식 … !! ”그 남자의 멱살을 붙들고 책장으로 밀어 붙힌 나는 그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이런 돌발상황에도 당황하지않은 얼굴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이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나? 부질 없는 행동일 뿐야. ”그의 말에 또 한번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나는 그를 이리 저리 흔들며 그를 잡아 당겼고, 힘없이 내 손에 이끌려 움직이던 그가 이내 정신이 혼미스러운지 초점 없는 눈동자로 나를 흘깃 쳐다본다. 나는 다시금 붙잡은 이성을 붙들곤, 마지막 경고라는 심정으로 그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나한테 무엇을 숨기고 있는거지? 대체, 내게 무엇을 숨기고 있냔 말이야!! ”내 고함소리에 이 근처에 있는 부족원들이 깰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지금 내겐 이 남자가 내뱉을 말에 귀를 기울이는게 더 중요하다. 그는 한참을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고, 한치의 망설임 없이 몰아 붙힌 나의 모습을 지켜보며 슬쩍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는 그의 멱살을 붙잡고 있는 나의 손을 따뜻하게 어루 만지며 그가 말했다.“ 알았으니 이만 이 손 좀 놔주겠나? 말하기가 영 불편해서 말이야.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내게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그의 멱살을 붙잡은 손을 풀었다. 그는 컥컥거리며 한손으로 입가를 닦으며 슬쩍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아무리 그래도, 늙은이한테 너무 심한거 아닌가? 이래뵈도 내 몸은 연약하다고. ”딱딱한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한 그의 농담에도 나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그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간신히 숨을 돌리던 그는 나의 얼굴을 보며 허리를 세웠고, 책장을 등진 내 옆을 지나치며 한바탕 소동에 어질러진 책들을 정리하려는지, 쓰러진 책들을 균형 맞게 다시 책장 안에 세워 놓는다.“ 저한테 하려던 말이 뭐였죠? 분명 사로이와 관련된 일이죠? ”“ 글쎄, 어떻게보면 그렇게 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서도 …. ”책들을 정리하던 그의 손이 멈추고, 내 쪽으로 고개를 쓰윽 돌리던 그가 방긋 웃으며 내게 말한다.“ 문제는 사로이와 관련된 일이 맞냐, 아니냐가 아냐. 지금부터 내가 한 말을 네가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하지. ”“ 그게 무슨 말이죠? ”그는 방금 전과는 다른 표정을 지으며 슬쩍 천막의 문을 닫으며 빛을 차단한다. 잠시나마 빛을 받아 환한 서재 안은 다시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한껏 분위기를 잡으려는 듯,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짓고는 곧 내게 무언가를 말할 것 같은 행동을 취하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이 얘기는 사로이가 절대하지 말라고 했지만, 네 녀석의 행동을 보니, 금방 알아 차릴 것 같은 낌새가 안 보여서 내가 미리 말해주는 것이니, 사로이한테는 내가 했다는 말을 비밀로 하도록. 약속할 수 있겠나? ”비밀을 지켜 달라는 그의 부탁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약속을 다짐했다. 그는 나의 대답에 조금은 안심이 되는 듯한 모습으로, 아까와는 조금 편안한 듯한 모습으로 말을 한다.“ 너는 어제부터 왜 사로이가 그 돌을 너한테 줬는지에 대해 궁금하던 터였겠지? 하지만 사실은 사로이는 네게 돌을 준게 아냐. 네게 잠시 맡긴 것 뿐이다. ”“ ! ”사로이가 내게 돌을 준게 아니라, 잠시 내게 맡긴거라고?나는 그가 내뱉을 말에 잠시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한 나를 위해 다시 한번 그 얘기를 번복했고, 나는 잠시 정신이 어질거린다. 나는 다시 정신을 바로 잡고 말짱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이해가 안된다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그렇다면 그 녀석이 나한테 이 돌을 맡긴 이유가 뭐죠? 왜 하필, 저냔 말이에요. ”사로이가 한 행동에 의문이 남아 있는 나는 그에게 물었고, 그는 내 물음에 잠시 고민을 하는 듯 하더니, 이내 내게 그 사실을 말해준다.“ ! 뭐, 뭐라고요? ”그의 말을 들은 나는 경악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치자, 그는 황급히 손으로 내 입을 막으며 조용히 하라며,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며 경고한다.“ 사로이가 … 정말 그런 말을 했다고요? ”” 그렇네, 분명 내 두 귀로 똑똑히 들었어. 물론,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건 바로 나였지만. ”“ 뭐, 뭐라고요?!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화들짝 놀란 나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사로이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나하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이 남자의 속셈이였단 말이야?! 그런데 왜 그런 짓을.“ 그날 밤, 나를 찾아온 사로이의 몰골을 말이 아니였어. 그동안 여러 고비를 넘겼겠지만, 그런 일이 발생한건 사로이한테는 처음 있는 일이였으니까. 더군다나, 자신의 마을을 수호해준다고 믿고 있는 그 돌의 능력이 사라졌으니 그런 행동을 보일 수 밖에 없었겠지. 물론 한번 능력을 잃은 돌은 다시 돌이킬 수가 없어. 이미 그 돌은 평범한 돌로 남을거야. ”” 그렇다면 왜 사로이한테 그런 거짓말을 한거죠? 그 사실을 사로이는 굳게 믿고 있다고요! 만약, 사로이가 그 말이 거짓인걸 안다면, 당신의 목숨은 끝이라고요! ”“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나는 그 녀석한테 거짓말을 한 적도, 하려는 생각도 없었어. 그저 나는 사실을 말해줬고, 그 사실을 들은 사로이는 네게 그 돌을 맡긴 것 뿐야. 아무 이상 없다고. ”“ 아무 이상이 없다고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리에요 지금?! 제가 어떻게 그 돌의 능력을 부활시키냔 말이에요! ”그가 내게 한 말을 그거였다. 사로이가 내게 돌을 준 진짜 이유는, 그 돌을 내게 줌으로써, 그 돌의 능력을 갱생시킬 수 있다는 이 남자의 말을 듣고 난 뒤의 행동이였다. 나는 그 남자에 어처구니 없는 행동과 더불어 당당한 태도에 화가 치솟으며 그 남자의 멱살을 다시금 붙잡으며 그를 책장 쪽으로 밀어 붙혔다. 애써 그 남자가 정리해놓은 책들은 그 충격에 바닥으로 수두둑 떨어진다. 남자는 괴로운지 켁켁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화만 나면 무조건 멱살부터 잡는건 여전하군. 하긴 그 성격 어디 가겠어? ”“ 뭐? ”그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내게 말했고, 나는 그의 말에 인상을 쓰며 더욱 그를 책장 쪽으로 몰아 붙였다.“ 아직 이야기의 전부를 꺼낸게 아니니까, 일단은 이 손부터 놔주겠나? 앞부분만 듣고 뒷부분을 안 들으면 손해 보는건 너 아닌가? 아직 나는 네게 전부를 말한게 아니라고. 내가 이대로 입을 꾹 다물고 있어줬음 좋겠나?! ”그는 아까와는 달리 당당한 목소리로 내게 소리쳤다. 잠시 이성을 잃고 섣불리 행동을 하던 나는 그 남자의 말을 듣고 오히려 이 상황이 악화되면 손해를 보는건 내 쪽이란걸 뒤늦게 깨달은 나는 서둘러 그의 멱살을 붙잡고 있던 손을 거두었다. 그는 언짢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고, 나는 깊이 숨을 몰아 쉬며 안정을 찾았다. 그는 한껏 늘어난 옷을 보며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 주위로 떨어져 있는 책들을 본 그는 조심스레 허리를 숙여 떨어진 책들을 한권 한권 주워서 책장 위에 올려 놓는다. 이래저래 책에 대한 사랑은 분명한 것 같았다.한참동안 책을 정리하던 그는 책장 안에 가지런히 진열된 책들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그는 슬쩍 옆에서 멀뚱히 서있는 내게로 시선을 돌렸고, 나는 묵묵히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책을 정리한 시간이라도 준거냐? 뭐, 그러는 편이 너한테도 이익일테니까. 올바른 선택이였다.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를 쳐다보며 이제 내게 하려던 말을 하라며 그에게 말했고, 그는 나의 재촉에 알았다며 귀찮은 듯한 시늉을 한다. 그는 또 다시 내게 무언가를 알려준답시고 책장을 뒤지기 시작한다. 나에게 할 얘기는 그 책에 담겨 있다며, 내가 괜히 입 아프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거라며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을 하며 분주히 책장 속에 책들을 훑어본다.“ 찾았다. ”몇년간 사용한 적이 없었던 책장들까지 살펴 보았는지, 그 남자의 머리와 어깨에 시커먼 먼지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그는 척 봐도 엄청나게 낡아 보이는 책을 꺼내 걸어왔고, 나는 그 모습에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일주일동안 안 찾아 봤더니, 이렇게 먼지가 쌓였네. 역시 책은 하루에 한권식은 봐줘야 해, 안 그럼 이렇게 고생 한다니까. ”그는 너스레 웃으며 말했다. 그렇담, 그 많은 먼지가 일주일 밖에 안되어 생성된 먼지들이라는건가 …. 그렇다면 저 맨 구석에 있는 책장에 다가가서는 안되겠군. 그러나 그는 늘 있는 일인 듯, 별거 아니라는 듯한 그의 웃음과 행동에 나는 말을 잃고 그가 건넨 책을 받아 들었다.“ …. ”이 책, 한자로 쓰여 있잖아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영문 모를 나의 표정을 보며 무슨 일이라며 책을 건네 받으며 심각한 얼굴로 책의 겉면을 쳐다본다. 그리곤 책장을 펴더니, 페이지를 촤라락 넘기며 무언가를 찾는 듯한 매의 눈을 하며 책장을 넘겼고, 이내 무언가를 찾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책 안에 꽂혀 있던 사진 두장을 꺼낸다.“ 그건 뭐지? ”그 남자의 손에 든 사진을 가리키며 묻자, 그는 싱긋 웃으며 내게 사진을 넘겨준다.“ 그 사진 속 남자, 어디서 본 적이 있는가? ”그에게 건네 받은 사진 중, 듬직한 남자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가리키는 듯한 그의 말에 듣고 나는 사진을 살펴 보았다.“ 이 … 이건. ”나는 사진 속에 보이는 남자의 모습을 보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 집힌 사진마저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나는 급격한 긴장과 당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내 행동을 보며 예상을 했다는 식의 반응을 했고, 이내 내 손에 들려 있는 사진을 빼앗아 들며 내게 말한다.“ 왜, 본 적이 없는 얼굴인가? 아니면, 너무 당혹스러워서 말이 안나오는건가? ”그의 가시적인 웃음에 나는 또 한번 이성을 잃을 뻔 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에게 달려 들지는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어리둥절해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으며, 더군다나 이 남자가 왜 나한테 그 사진을 보여줬는지에 대해 궁금할 뿐이였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 남자에게 물었다.“ 그 사진 … 어디서 난거지? 아니, 그 전에 당신이 어떻게 그 사진을 갖고 있는거야!! ”“ 역시 알고 있는거였군 … 크흐흐. ”나의 당황스러워하는 행동이 웃겼는지 그가 웃음보를 터트리며 웃기 시작한다.“ 뭐가 그렇게 웃긴거지? ”어금니를 꽉 문 나의 물음에 그는 눈물을 닦으며 내게 말했다.“ 웃을 수 밖에, 지금 이 상황이 웃을 수 밖에 없어서 웃는거다. 너 역시 지금 날 의심하고 있겠지? 물론, 처음부터 날 믿는 눈치는 아니였지만 말야. 하지만 걱정마, 너한테는 100% 도움을 줄 생각이니까. ”“ 그게 무슨 뜻이지? ”“ 말 그대로 널 도와준다는 말이다. 왜? 납득이 가질 않나보지? ”나를 시험이라도 하는 걸까? 그의 말 뒤엔 날카로운 날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내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진실만을 말했고, 나는 그의 말에는 약간의 의심이 들었지만, 의외로 이 남자는 내게 조력자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날 어떻게 도와줄 생각이지? ”“ 이제부터 가르쳐 줄테니, 너무 성급히 굴지 말도록. ”그는 그래서 네가 안되는거야라는 눈빛을 보이며 말했고, 나는 그의 말에 발끈했지만 그의 말을 마저 듣도록 하였다. 그는 아까 건네준 두 장의 사진 중, 내 손에 들려 있는 또 하나의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사진까지 본다면 내가 네게 무슨 말을 할지 짐작 정도는 갈거다. 그러니까 천천히 감상하라고. ”수상쩍은 미소를 지으며 웃는 그를 뒤로 하고 나는 내 손에 들려 있는 사진을 살펴 보았다.“ 이건 … 쿠피디타스? 아니, 하지만 이건 …. ”그 사진엔 쿠피디타스의 형태로 보이는 모습이 찍혀져 있었다. 하지만 본래의 형태가 아닌, 산산조각이 난 모습이였다. 나는 이렇게 부서진 쿠피디타스를 본 적이 있다. 심상치 않은 나의 표정에 그 남자는 씨익 웃는다.“ 눈치 챘나 보군. 그래 맞아, 그 사진엔 원체의 모습이 담겨 있지 않아. 네가 들고 있는 그 사진엔 깨진 쿠피디타스의 조각이 찍혀져 있지. 더군다나 그 사진, 어디선가 많이 본 적이 있지 않나? ”실실 웃으며 말하는 그의 얼굴을 보자 또 한번의 리미트가 끊어졌다.“ 너, 정체가 뭐야? 어째서 네가 이런 것까지 알고 있냔 말이야!! ”“ 글쎄, 내가 어떻게 알고 있을까? ”“ 이 자식이!! ”그 남자를 바닥에 눕힌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 남자는 무차별적으로 퍼붇는 내 주먹을 그대로 받는 듯 싶었으나, 맞는 듯하면서도 가뿐히 피하는 듯한 느낌이 느껴졌다. 허공에 내지르는 것 같은 주먹에 나는 그 남자의 멱살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헛소리라도 지껄일 경우에는 그냥 죽여버린다는 눈빛을 보내며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너 … 누구야? ”“ 이거 이거, 함부로 입을 뻥끗 됬다간 큰일 나겠는걸. 알았다, 알았어, 이제 장난 그만치지. ”그는 얼굴에 묻은 화장들을 지우더니, 하얗게 늘여뜨린 머리까지 잡아 당기며 가발을 벗는다. 그리고 이내 밝혀지는 그의 정체에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말끔하게 지워진 화장 뒤로 하얀 얼굴을 보였고, 늙은 머리를 벗어 던지며 새까만 머리카락을 보였다. 그는 나를 보며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내가 누군지 알겠지? ”너는 … 라, 라셀?“ 네가 어떻게 이곳에 …. ”쉽사리 말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지금 내 앞에 닥친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곳에 이 남자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면서도 나는 허탈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천하태평한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고, 나는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어떻게 네가 …. ”입 안에 맴도는건 이 말 뿐이였다. 어떻게 네가 이곳에 있는지, 왜 네가 이런 곳에 있는지. 이 두 물음만이 가득 찰 뿐이였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나와는 상반된 태도로 뭐가 그리 이상하다며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쳐다봤고, 더더욱 황당함을 감출 수 없던 나는 당황한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네가 … 네가 어떻게 이런 곳에 있는거야? 이곳은 … 이곳은 ….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맞닿은 내 입술이 말하기를 거부라도 하는 듯이 꽉 달라 붙어 벌려지지가 않는다. 그를 마주보며 그의 입에서 이 상황을 설명케하기 위해선 나의 말이 필요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내 자신은 그러기를 말리는 듯 싶었다.이상행동을 보이는 나를 보며 라셀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책장 쪽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 바닥에 쓰러진 책 몇권을 책장 위에 조심스레 정리해놓던 그의 손길이 문득 어느 한 책에서 멈춘다. 그리곤 한참을 머뭇거리는 듯한 행동을 취하던 그가 이내 뭔가 굳게 다짐한 표정을 지으며 꺼내든 책을 내 쪽으로 빙그르르 건네준다.책을 건네 받은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사뭇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이번엔 또 뭐지? 또 무엇으로 나를 현혹할 생각이야!! ”바닥으로 책을 집어 던지며 라셀에게 소리쳤다. 라셀은 그런 나의 행동을 봐도 별로 놀랍지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반쯤 숙이고 바닥에 떨어진 책을 집어든다. 그리고는 흙에 얼룩진 책 표면을 손으로 탈탈 털며 내게 말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애꿎은 책에게 화풀이는 아니지 않나? 책은 아무 잘못 없다고, ”살짝 화가 난 듯한 그의 눈초리에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너 … 어떻게 된. ”“ 똑같은 말은 반복하지 말라고, 어처피 다 설명 할테니까. ”책에 묻은 먼지를 말끔하게 털어낸 그가 책장에 책을 올려 놓으며 말했다. 나는 여유로워 보이는 그의 태도에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여기서 내가 화를 낸다 한들, 나아지는 것은 없을 뿐더러, 그에 대한 나의 미스테리만이 남을 뿐이다. 어찌해서 저 남자가 이곳에 있으며, 어떻게 이곳에 멀쩡히 머물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선, 그가 내게 먼저 말을 하기 전까지 나는 두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지금은 다짜고짜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 아닌, 좀 더 냉정하게 이성을 찾고 상대방과의 오해를 차차 풀어 나가야하는 단계인 만큼, 내가 그를 바라 보는 눈초리를 그리 탐탁치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나와는 달리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조금은 답가게 느껴졌지만 말이다.“ 보고 싶었어. 잠시나마 너를 보게 될 수 있어서 기쁘기도 하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라셀이 입이 열었다. 그는 나를 볼 수 있음에 기쁘다며, 갑작스레 두 볼을 붉히며 쑥쓰러운 듯한 미소를 짓는다. 말없이 그를 쳐다보고 있던 나는 예상치 못한 그의 말과 행동에 적잖이 당황한 듯한 행동을 취하며 그에게 버럭 소리쳤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썰렁한 소리 그만하고, 본론이나 얘기하라고! ”“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였으니까,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라고, 옛말에 그런 말이 있잖아? 급히 먹은 떡은 맛있다. ”체한다겠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군. 나는 한심스럽다는 눈으로 라셀을 쳐다봤고, 라셀은 자신의 실수를 모르는지 하핫 웃으며 나의 어깨를 툭툭 친다. 나는 그런 라셀에게 쓸데 없는 소리 말고 어서 빨리 얘기하라며 그를 재촉했고, 그는 알겠다며 일단은 건네준 책에 표시된 부분을 펼쳐 보라며 내게 말했다.“ 이 페이지에 뭔가 담겨져 있는건가? ”“ 뭐, 일단은 펴보면 알겠지? ”라셀은 뭐가 그리 웃긴지 쿡쿡 웃음을 참으며 내게 빨리 책을 펴보라며 권했고, 나는 그런 라셀의 모습을 보며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표시된 페이지를 슬며시 펼쳐 보았다.“ 이건 … 쿠피디타스? ”그가 표시 해둔 페이지엔 떡하니 쿠피디타스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 이게 뭐 어쨌다는거야? 이건 그냥 사진이잖아. ”무슨 대단한걸 보여주나 했더니, 그냥 쿠피디타스 사진이 있었다. 나는 라셀을 바라보며 반쯤 어이상실한 표정으로 그에게 투덜대자, 그가 한심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 사진 말고, 그 밑에 쓰여진 내용을 봐. ”라셀은 손가락으로 책 페이지를 콕 찝으며 말했고, 나는 그가 가리킨 곳에 젃힌 글자들을 읽어 갔다. 그리고 이내, 그 책에 적힌 뜻 밖의 사실에 놀란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라셀을 쳐다봤다. 라셀은 예상 했다는 듯한 제스터를 취하며 내게 말했다.“ 역시나 모르고 있던거네. 뭐, 그 점이 나한테는 더욱 좋을테지만 말야. 그나저나 큰일인걸, 이것도 몰랐다면 지금까지 네가 한 행동들은 다 헛고생일텐데 … 뭐, 이제부터 내가 도와줄거니까 걱정은 말라고. ”엄지 손가락을 번적 들며 씨익 웃는 그의 얼굴에 주먹이 날아갈 뻔 했다.“ 그런데, 정말 저기에 적힌 내용이 사실이야? ”“ 아 물론, 사실이야. 네가 본 그대로라고. ”라셀은 당연하다는 식의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나는 다시 한번 그 페이지에 적힌 내용들을 되새기며 읽어 내려 갔고, 끝내 그 자료가 거짓이 아님을 확인한 후에야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벌써부터 기진맥진하지 말라고, 이제부터 내가 할 말을 들으려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할 걸. 더군다나, 내가 어떻게해서 이곳에 왔는지도 일일이 설명해야하니까 말야. 그런데 너는, 내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에 대해서 궁금하지도 않나보지? ”라셀은 미심적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나는 그런 라셀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럴 일 없다며, 당장 네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털어 놓지 않으면, 널 이대로 마키 족에게 넘겨서 개죽음 시키겠어라는 반 협박적인 언어를 뱉으며 그에게 말했가. 그러자 라셀은 장난스러운 얼굴로 그러지 말라며 호탕한 웃음을 짓는다.“ 진심이야. ”나는 진심이였다.20분 동안 이어진 대화 속에서 나는 그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와, 그가 이곳을 오면서 숨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지난 일들에 대한 의문점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네 녀석이 이곳에 온 이유도 …. ”“ 물론, 이 세계의 멸망과 상관 있는거지. 하지만 아직까지도 의문들이 모두 풀린건 아냐, 단지 그 모순들을 조사하기 위해 나 같은 녀석들이 몇명 있을 뿐이니까. ”“ 그런거냐 …. ”나는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슬픈 눈망울로 땅바닥을 바라봤다. 뭔가 알 수 없는 만감이 교차하며, 무언가가 들끓는 듯한 기분 또한 느껴진다. 라셀은 그런 나의 모습을 보더니, 이내 자신의 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건네준다.“ 그건 뭐지? ”“ 막상, 널 만나면 잊어버릴 것 같아서 오기 전에 미리 할 말을 적어 놓고 왔지. ”“ 풋, 그런거냐. ”라셀이 건넨 쪽지를 받아 들며 살짝 웃어본다.“ 지금에서는 너한테 이런 저런 말들은 못하겠지만,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때는 너도 무언가를 깨닫고 있을테지. 그럼, 그때 가서 보자고. ”라셀은 마지막 인사를 하며 이곳을 떠났다. 분명 그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테지, 나 역시 그 녀석에게 묻고 싶은 말이나 듣고 싶은 말이 많았음에도 참고 이렇게 헤어지는건. 머지 않아, 다시 만날 그날 기약하며 서로 미루는게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서도, 그가 내뱉은 말들은 내겐 너무 충격적이고, 주옥 같은 말이였지. 더군다나 쿠피디타스에 관한 얘기는 더더욱 ….“ ….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한 일들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어느 정도 이 세계에 적응되어 가고 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치든, 그 고비를 뛰어 넘을 만큼의 재량을 가진 나로서는 더 이상 무서울게 없겠지만 ….나도 모르게 옛 생각을 하고 만건가 …. 나도 참 태평한 녀석이군.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 알면서도 이렇게 늦장을 부리다니 …. 나도 아직까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건가? 이 벽 너머로 남 모르게 끙끙거리는 로빈을 두고, 나는 대체 어떠한 선택을 해야하는 것일까 ….“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때는 너도 무언가를 깨닫고 있을테지. 그럼, 그때 가서 보자고. ”너 또한 그런 속 편한 소릴 했다는 것에 나 또한 안심하는 터이다.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두 개의 쿠피디타스가 서로 무슨 성질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진 정확하진 않지만서도, 한가지 확실하게 안다면 지금 내 오른손에 들려 있는 이 메달이겠지. 푸른 달의 모양을 지닌, 아주 고요하면서도 고독한 ….그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은 아직까지도 미궁에 빠져 있지만, 그가 내게 하려던 말을 굳이 알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그때 그와 나눴던 대화들 중 신경이 쓰이는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라셀은.“ 아마도 나완 달리 열심히 하고 있을테니까, 별 걱정은 안되지만 말야. 그래도 그녀가 다쳤다면 조금은 가슴이 아프겠지? ”태연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를 보는 내 시선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 본인 역시나 그녀를 걱정하고 있을테지. 지금에 나는 다른 사람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건 로빈, 그녀 뿐이다. 그녀를 고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한다. 설령, 나의 사지가 뒤틀리고 목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그리고,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는 그녀를 위해서도 나는 도저히 이 발걸음을 멈출 수만은 없다. 그러니, 그러니까 …." . "이 메달이 내 손에 있는 한, 난 절대 멈추지 않을거다. 무슨 일이 내 앞에 닥쳐도, 나는 그것을 무너 뜨려서라도 앞을 나아 갈 생각이며, 언젠간 다시 만나자는 그 녀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지난 과거의 생각을 하니 괜스레 멋쩍은 기분만이 감돈다. 두 손에 들려 있는 메달의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고, 붉게 달아 오른 나의 두 볼엔 조금씩 냉기가 도는 듯 싶었다. 며칠동안 내가 찾아 헤매던 메달이 지금 내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다는 사실이 약간은 믿기지 않을 뿐더러, 이 메달의 능력을 알게 된 뒤부터 내 입가엔 자그마한 미소가 흘렀다.다행히도 이 메달로 인해 모든 사건을 종결 시킬 수 있다는 희열과, 한 발자국 더 이 세계에 관한 진실로 뛰어든 계기가 된게 아닌가 싶어 두근거리는 가슴이 도통 진정되질 않는다. 그 남자와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과, 로빈을 구할 수 있다는 만감이 교차하며 나의 마음은 뒤훈들기 시작한다. 복도 바닥에 앉아 축 처져 있던 나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복도를 빠져 나갔다.「 끼 익 」문 소리가 소름 끼치게 날카롭게 들렸다. 벌써 하늘은 검은 융단이라도 깐 듯이 온통 어두컴컴 했고, 무슨 영문인진 모르겠으나, 평소에는 밤 한 가운데에서 대지를 향해 빛을 비추던 달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중간 중간 보이는 작은 별들만이 달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 주고 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충분히 맑은 날씨였음에도, 어느센가 구름이 낀걸까? 그리고보니 약간 흐릿하면서도 시커먼 듯 보이는 하늘에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 나는, 행여나 비라도 쏟아질까싶어 서둘러 사당 쪽으로 향했다.마을에서 꽤나 먼 곳에 위치한 사당에 또 다시 찾아온 나는 반쯤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다듬고 조심스레 사당의 문을 열었다.「 끼 이 이 익 ―… 」싸늘한 바람이 문틈 사이를 빗겨나가는 소리와 함께, 다시는 보고 싶지 않던 사당의 내부가 흐릿하게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아주 먼 옛날부터 사람을 고문하는 고문실로 사용된 이 사당은 꺼림찍한 기분과 함께 섬뜩한 기분까지 덤으로 따라오니, 이 안에 들어가는 것도 꽤나 고역일 듯 싶다. 하지만 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니 억지라도 발을 디딜 수 밖에 없는 노릇, 나는 조금 용기를 내세워 슬그머니 사당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사당엔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처음 이곳에 들어 왓을 때도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들어가려니 더욱 발걸음이 떼지지 않는다. 하늘에 늘 떠 있던 달이 모습을 감추고, 작디 작은 별들만이 하늘을 대신해서 그런지 사당 안은 온통 컴컴했다. 마음이 급해 손전등을 못 가져온게 큰 잘못이지만, 어느정도 달빛이 커버해줄 줄 알았으나, 오늘은 달이 뜨지 않았음에 나는 다시 한번 나의 무지함에 혀를 내둘렀다. 다시 건물로 돌아가 손전등을 가져 오려 했지만, 왠지 이곳을 빠져 나가면 다시 못 들어 올 것 같은 생각에 쉽게 마음이 바뀌질 않는다. 이미 한 두번 들어옴에 어느정도 익숙해질 때도 됬건만, 마음 한켠에는 아직도 이 사당에 대한 의문이 커져만 가서 그런지 심장소리만이 사당 안에서 쿵쿵 울려 퍼진다.「 달그락 」제단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던 중, 무언가에 부딪친 듯한 소리와 함께 내 콩알만한 심장이 더욱 쪼들어 버릴 뻔 했다.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고 조심스레 다시 제단을 찾기 위한 수색에 빠졌다.그렇게 한동안 사당 안을 걸어던 나는 이내 어둠에 익숙해진 눈 탓인지 주위에 사물이 어느정도 보이는 듯 싶었고, 그 덕분인지 제단의 형태로 보이는 한 목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서둘러 눈의 감각을 믿고 제단 쪽을 향해 다가갔고, 이내 다시 한번 내 앞에 나타난 낡은 제단을 보며 나는 조심스레 주머니에 넣어뒀던 메달 두 개를 꺼냈다.달빛이 없음에도, 빛에 비친 것 마냥 반짝반짝거리는 메달의 모습에 약간 당황스러움도 있었지만 금방 마음을 가라 앉히고 두 손에 들려진 메달을 천천히 제단 위에 놓인 널찍한 돌멩이 위에 올려 놓고는 소리 없이 그곳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메달과 메달간의 교류라도 하는지 붉은 빛과 푸른 빛의 파동이 메달에서 뿜어져 나오며 이내 사당 안을 가득 비추기 시작했다.라셀은 내게 막중한 사실이라도 알려 주려는지, 사뭇 다른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그는 내게 이제부터 자신이 하는 말을 헛으로 듣지 말고, 또박 또박 머릿 속에 새겨 들으라는 당부의 말을 했고, 나는 그의 말에 알겠다는 고갯짓을 하며 그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는 내가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을 알고는 이내 깊은 숨을 들이 쉬며 천천히 숨을 내뱉는 속도로 내게 말하였다.“ 우리가 아는 쿠피디타스는 사실 하나가 아냐. 그 물체는 총 4개로 구성되며, 그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 완전한 본래의 형태를 띄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의 파멸, 즉 우리가 사는 지금의 모습의 결정체가 되지.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나는 잠시 놀란 얼굴로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오랜 전부터 메달로 인해 세상이 파멸 됬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그 메달이 하나가 아닌 여러 개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더군다나 우리가 아는 쿠피디타스는 온전한 상태가 아닌 분리가 된 상태라는 것에 또 한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4개의 메달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 지금 우리 앞에 닥친 모든 시련과 고통들의 시작임을 알린다는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그토록 힘들게 지금까지 달려온 나한테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발언이였다. 그 메달 하나 때문에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희생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 제 모습을 갖춘게 아닌 뿐더러, 그 때문에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란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는 이 세상과 자신의 마을을 위해 죽음을 택했다. 부와 명예 때문이 아닌, 오직 자신들의 세계를 더럽히는 존재를 이 세상에서 없애고 싶을 뿐이였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하나가 아닌 넷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그 때문에 자신의 딸을 보지도 못하고 낭떠러지에 몸을 던진 그 가련한 모습을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나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니 들 수가 없었다. 지금껏 이 세계를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푹 빠져 있던 내겐 너무나도 큰 충격이였다. 이 모든 것의 근원을 뿌리 뽑고, 그 근원의 시작을 억제할 수 있을거라 믿던 내 앞에, 듣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누군가의 등장에 나는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내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아는 사실은 그의 반에 반도 안되는 진실, 그리고 그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의 의문들 뿐이였다.말을 잇지 못하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나를 보며 라셀도 조금은 말이 없어진 듯 싶었다. 하지만 라셀은 이 모든 사실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투와 행동에 나는 잠시 그를 노려봤다. 그는 아직 모든 사실을 내게 말해준게 아니였다. 엄청난 후유증을 앓게 할 말들 중, 일부분만이 입 밖에 나온 것 같은 그의 모습에 나는 다짜고짜 그의 어깨를 붙들고 그에게 물었다.“ 아직. 아직 내게 할 말이 남은거지? 그렇담 말해, 내가 알지 못하는, 네가 아는 모든 사실을 말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하는 나는 차마 뒷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무엇 때문인지 나의 목을 누군가가 막아 놓는 듯한 통증과 함께 내 눈가에 뜨거운 기운이 올라 왔다. 묵묵한 표정으로 서 있던 라셀은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곤 조금은 찡 했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손을 어깨에서 내려 놓는다.“ 지금부터 내가 할 말을 믿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우리들이 알아낸 결과들이니까, 그리 부정적으로 보진 말아줘. ”“ 믿어. 그러니까 내게 말해줘. ”“ 후우 … 알았어. 그럼 지금부터 우리 수색꾼들이 갖고 있는 모든 정보를 네게 알려줄게. ”라셀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또 다시 책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가 가진 정보들과 수색꾼들이 얻어낸 자료들이 모두 책 안에 있는지 그의 손길이 분주해진다. 나는 그가 책들을 살펴보는 동안,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정리하고자 비틀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지탱하며 그가 건넨 책을 들여다보며 쿠피디타스의 관한 자료들을 하나 하나씩 눈에 담기 시작했다.“ … 쿠피디타스는 총 4개의 물체로 이뤄진 존재며, 그 4개의 물체가 하나가 되는 순간 그들의 본래의 모습으로 바뀐다. 우리들은 그 물체를 이렇게 부르기로 하였다. ”디 … 디시 … 디일 … 루? 라고 읽는걸까. 디시디일루, 대체 이 물체는 무슨 힘을 가졌길래 그런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게 되는거지? 나는 천천히 책을 읽어 내려가던 도중, 책에 기재된 ' 쿠피디타스의 능력 ' 이란 머릿말에 시선을 멈추고 말았다.“ 쿠피디타스의 … 능력? ”구미를 당기는 듯 싶으면서도 왠지 모를 찝찝한 기분을 불어내는 내용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 부분을 눈으로 읽어갔다.“ 푸른 달, 붉은 태양, 검은 별, 그리고 …. ”무(無)? 무라니, 이게 무슨 말이지?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글귀가 담겨진 책에 조금 더 가까이 눈길을 주던 내게로 라셀이 다가왔다. 한 가득 책을 두 손에 들고 오던 라셀은 뭘 그리 집중해서 보냐고 물었고, 나는 그런 라셀에게 그 내용이 적힌 페이지를 펼쳐 보여주며 그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메달의 능력이 있다는게. ”“ 거기까지 알아낸거야? 후후, 역시 관찰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단한걸. 안 그래도 말해주려는 참이였으니까, 잠시만 기다려봐. ”한눈에 봐도 무거워보이는 책들을 가까스로 바닥에 내려 놓은 라셀이 식은 땀을 닦으며 자리에 주저 앉는다. 그리고는 내가 들고 있는 책을 슬쩍 쳐다보더니 이내 빼앗아 들고는 옆에 놓여진 책들 위로 살포시 올려 놓는다.“ 왠만하면 책은 보지 않는게 좋아, 아무리 책이 지식의 결정체라 하지만, 그 책들엔 모두 진실이 있는게 아냐, 우리가 모르는 거짓도 진실 비스무리하게 집어 넣는 것도 있다는 말이지. 한마디로 무언가를 얻으려면 책이 아닌 직접 몸으로 부딪쳐봐야 해. 그건 너도 알거 아냐? ”라셀이 눈짓을 하며 내게 말했고, 나는 그런 라셀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오래간만에 책 좀 읽으려고 했더니 이 녀석이 그 마음들을 싹 다 쓸어 내려가는군. 뭐, 이러는 편이 내게는 더 편할테지만 말야.“ 그래서 내게 해준다는 말이 뭐야? 내게 도움은 되는 말이겠지? ”“ 물론, 내가 한 말 중에 너한테 쓸모 없는게 있었냐? ”“ 아주 많이, 하지만 이번만큼은 너도 진정성이 담긴 말을 할거라 믿고 듣는거니까, 왠만하면 짧으면서도 굵게 해달라고. ”“ 훗, 내 말을 듣고 조금 위축된 줄 알았는데, 더 펄펄하군. 좋아, 이제부터 내가 할 말들을 양쪽 귀 활짝 벌리고 듣도록. ”장난 섞인 말들을 하며 긴장을 풀던 라셀이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나 또한 이제부터 그와의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웃음을 잠시 거둬 들었고, 지금부터 라셀의 입 밖으로 나올 모든 진실과 의문들을 샅샅이 훑어볼 준비를 마친 나는 그의 눈을 바라봤고, 그는 나의 고갯짓과 함께 입을 연다.“ 그게 정말 사실이야? ”“ 물론, 사실이고 말고. 내가 여기에 있는걸 보면 모르겠어? ”“ 하지만 그건 너무 …. ”“ 그리 쉽게 믿을 순 없겠지, 하지만 사실이야. 그 어느 때보다 나는 너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것 뿐이라고, 그리고 이 편을 믿는게 너한테는 더 도움이 되지 않아? 뭐, 믿고 안 믿고는 네 생각이지만, 믿는 편이 정신건강에는 더 이로울거라고. 그리고 그 책에도 적혀 있듯이, 메달에는 각각의 능력이 주어져 있어, 그 중에서도 마키 족이 갖고 있는 쿠피디타스는 시공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그 때문에 나와 여러 수색꾼들이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거고. 왜? 이래도 내 말을 못 믿겠어? ”조금은 황당하고도 신비로운 이야기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게 전체의 90%라곤 하지만, 이건 너무 공상적이며 해괴한 이야기들 뿐이다. 물론 믿지 않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믿기에는 조금은 의심이 가는 정도랄까? 그렇지만 라셀의 말대로 이 녀석이 이곳에 있는 것과 그곳에 있던 것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이 녀석의 말대로라면 시공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메달로 인해 그간 있었던 이상한 일들과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다 설명이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너무 믿기에는 조금 미심쩍은 부분도 있다.나는 할 말을 잃고 라셀을 쳐다보며 슬쩍 그의 표정을 확인 했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나의 모습에 그 역시 기분이 좀 찝찝한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쳐다본다.“ 내가 기껏 진지하게 말해줬더니, 아예 믿지 않는 표정이네? 약간이라도 좋으니까 조금이라도 믿어주지? 말해준 내가 다 쑥쓰럽다. ”“ 네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건 알아, 하지만 그 말을 믿기에도 나한텐 조금 무리가 가서 그렇지. ”“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말을 믿지 않으면 피곤해지는건 네 쪽이라고? 이왕 믿는거 끝까지 믿어보라고. 어처피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 네가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이 몇개나 있겠어? 다 과학적으론 설명 못할 일들이면서도, 우리들 눈 앞에 펼쳐지는 괴상한 현상들이니까. 그리고 내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 사진을 갖고 있겠어? 더군다나, 그 사진들은 모두 어떻게 찍었겠어? 그 시대에는 사진기가 없었을 뿐더러, 전기가 발명되지도 않던 그 이전의 세계라고. 만약 내 말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수색꾼들이 그들에 대한 자료를 얻을 수 있겠어? 여러 사람들이 마키 족의 뒤를 밟는다? 그것도 어지간히 해야지, 내가 그때 말했잖아, 그 때문에 사지를 잃고 며칠 후에 죽은 동료가 있다고. 그렇게까지나 잔인한 놈들한테 우리가 어찌해서 그들의 뒷조사를 할 수 있겠어? 다 이곳 세계에서 가져온 물품들로 얻은거라고. ”나를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내게 말하는 라셀의 말을 들으니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 녀석 말대로 그 당시에는 전기는 없었을 뿐더러, 모든게 수작업으로 이뤄진 마을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때 이 녀석은 수색꾼으로써의 책임을 다하면서 나를 도와주고 있었지. 마키 족의 선조인 마우린들에 관한 자료들이라던가, 정보들 그리고 그들의 행동방침과 그들의 발자취까지도 모조리 다 아는 눈치였어. 그 때문에 나와 란에게도 그런 도움을 줄 수 있었던거고. 이 녀석의 말을 토대로 한다면 그 녀석이 그런 일들을 아는건 식은 죽 먹기일 뿐더러, 더 위험한 일들이라도 손쉽게 해결 할 수 있겠지.‘ ! ’그렇다는건, 이 녀석들은 이 세계가 멸망하기 이전부터 그 일들을 파헤쳤다는건가?나는 이런 저런 생각 속에 파고드는 의문에 서둘러 라셀에게 그 사실들을 물었고, 라셀은 나의 물음에 약간 당황한 듯한 얼굴을 짓더니 이내 웃으며 정답이라는 말과 함께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진다.“ 역시나 대단한 관찰력이군, 그 정도까지 눈치 챌 줄은 몰랐는걸? ”“ 언제부터지? 언제부터 너는 그 일들에 대해 연구 한거냔 말야. ”“ 그 일들을 얘기하려면 길지만, 그래도 한 배를 탄 동료한테까지 덮을 필요는 없지. ”“ 난 널 동료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 ”“ 농담도 심하네, 좋아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얘기는 두 귀 활짝 펴고 듣도록! ”이윽고 라셀의 입에서 지난 수년간 자신이 쿠피디타스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해왔다는 사실을 내게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나는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봤다.이 세상이 멸망하기 이전, 그러니까 1년하고 5년 뒤에 이야기다. 어릴 적부터 라셀은 책을 읽는걸 좋아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5살 때부터 시작된 그의 독서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도 방해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책장에서 발견한 책 한권의 그의 손길이 닿았고, 그 책을 본 순간 라셀의 정신세계는 오직 그 책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 찼다고 했다. 그때 당시 라셀의 나이는 7살, 그날 그가 고른 책은 오래 전에 존재 했던 전사들의 모습을 담은 책이였다고 한다.그 후로 라셀은 오랜 시간동안 그 책을 품 안에서 떼어낸 적이 없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책을 좋아하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역사에 관한 내용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고, 그가 12살이 되던 해, 그가 그렇게도 찾아 헤맸던 전사들의 보물, 즉 쿠피디타스에 관한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몇년 후, 큰 파장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의 얼굴엔 순수한 미소만이 가득 했다고 그 녀석 말로는 그랬다고 한다.라셀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더욱 더 멍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무슨 놈의 책을 얼마나 좋아 했길래, 그런 정도였는지 정말 궁금할 따름이다. 서재에 들어올 때부터 책을 끼고 있던건, 연출이 아니라 실제 모습이였다는건가. 뭐, 별로 이상할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서 너는, 그 때문에 그날부터 쿠피디타스에 관해 정보를 수집했다 이거냐? ”“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며, 너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는거지. 어때, 나의 본 모습을 보니 존경심이 드냐? ”아니, 전혀.“ 그렇다는 말은, 이미 오래 전부터 너는 메달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했고, 그 결과 몇년 후에 벌어진 일들을 예측했다 이거냐? ”“ 아니, 그건 아니지. 내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그런걸 어떻게 알겠어? ”라셀은 웃으며 말도 안된다는 말을 하며 나를 쳐다본다. 하긴 그런 능력이 있으면 이 녀석이 이런 곳에서 이런 험한 일들을 하고 있을 리가 없지. 그 전에 세상의 멸망을 막도, 어디 도시 근처에서 점집이라도 하고 있었겠지. 나는 이 상황과는 별 상관 없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자, 옆에서 나를 쳐다보던 라셀이 뭐가 웃기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아무튼간에, 네가 말하고 싶은건 뭐야? 메달의 능력을 잘 사용하라는거냐? ”“ 무슨 소리! 그저 메달의 능력을 과용하지 말라는거지.”그게 그거잖아.“ 하지만 한가지 더 알려 줄게 있지. 이번에 내가 말할거는 정말 정말 정말 정말로 위험하면서도 경악스러운 말이니까, 이번에는 조금 눈을 감아도 좋아. ”그럴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뭔가 대단한 얘기라도 꺼내려는지, 라셀의 뜸뜰임이 갈수록 길어진다. 참다 참다 조용히 자리에 퍼질러 앉아 있던 나는 라셀에게 빨리 말하라고 소리쳤고, 라셀은 알았다며 살짝 노려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흘깃 쳐다본다.“ 너, 쿠피디타스가 한개가 아닌 여러개라는걸 전에도 알고 있었어? ”“ 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 묻는 말에 대답해. 알았어 몰랐어? ”라셀이 의심쩍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번이 처음은 아니였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과거에서 이쪽으로 돌아온지 얼마 안되서 사로이가 나를 부른 적이 있었다. 그때 분명 사로이가 내게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던데 ….“ … 너는 몰랐겠지만, 아니, 나 말고는 그 누구도 몰랐겠지만. 사실, 전사들의 영혼은 하나가 아니다. ”! 그래, 분명 그때 사로이는 내게 그런 말을 했었어. 쿠피디타스는 하나가 아니라고 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전에 들어본 적이 있던 것 같군. ”“ 지금에야 생각 났는데, 며칠 전에 사로이가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 아니, 그냥 한번 물어 봤어. 이 말을 하기 전에는 그 대답이 꼭 듣고 싶었거든. ”나를 보는 라셀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헤헤거리며 방글방글 웃던 녀석이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한 뒤부터 표정이 어둡다. 무슨 말을 하려는진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이는 라셀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전에 마우리스 마을에 있을 때, 그거 본 적 있지? 그 뭐냐, 신사나 사당 같은거. ”“ 응, 당연하지. 마을을 돌아 다닐 때마다 본 적이 있지. 그런데 그건 왜? ”“ 그 중에 사당이 왜 마을에 있는 것 같아? ”“ 뭐? 그야, 돌아가신 선조들을 기리는 의미해서 세운거잖아. ”별 같잖지 않는 물음에 나는 한심하다는 말투로 그에게 말하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런게 아니라며 나를 타이르 듯 말한다.“ 물론 그런 의미도 있지만, 사당이 세워진 이유는 따로 있어. ”“ 뭐? ”라셀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말에 살짝 당황한 나는 그를 쳐다봤다. 그는 그 마을에 사당이 세워진 이유가 다른 것에 있다는 말에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그는 조용히 숨을 내쉬며 사당이 세워진 진짜 이유를 내게 말해줬다.“ … 뭐? ”“ 별로 믿기지 않을테지만, 그래도 사실이야. ”나는 예상치도 못한 말에 멍한 얼굴로 굳어 버렸다.“ 사당이 세워진 이유가, 모두 메달 때문이라는거야? 그게 말이 되?! ”무슨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지 모르겠다. 사당이 세워진 이유가 단지 메달 때문이라니? 이게 무슨 토종닭, 병아리랑 교미하는 소릴까? 물론, 사당이 지어지는 이유는 각기 다르겠지만, 대두분 중대한 이유 때문에 사당이 지어진다. 그런데 그 메달이 뭐길래 사당까지 지어지면서 그런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거지? 나도 꿈꿔보지 못한 그런 생활을 말야!메달보다 못한 삶에 잔뜩 성이 난 나를 보며 라셀이 워워거리며 나를 진정시키려 노력한다. 잠시 이성을 잃고 해선 안될 말들을 지껄인 후에야 나는 흥분을 가라 앉힐 수 있었다.“ 너무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그들만의 규율이라고 생각해. 그들은 메달은 단지 고철 덩어리가 아닌, 자신들의 신격으로 모시고 있어. 옛날엔 다 그랬잖아? 나무라든가, 산이라든가, 돌이라던가. 그들만의 역사가 있고, 규칙이 있듯이, 그때는 메달이 그런 칭송을 받고 있었어. 그건 너도 봐서 알잖아? ”“ 물론 그렇긴 그렇지만 …. ”라셀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이렇게 화를 낼 필요는 없지 않나? 그때 분명 나는 그들이 메달을 신처럼 여긴다는걸 알고 있었고, 나 역시 그 메달에 대한 성스러움에 대해 눈여겨 보고 있었다. 갑자기 지금 와서 이렇게 팔짝팔짝 뛰는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깟 메달 한 조각 때문에 사당까지 짓다니, 옛날 사람들의 생각은 도통 이해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사당이 지어진게 그런 이유도 있지만, 그 정도로 하여금 사당이 지어질리는 없단 말이지. ”“ 그렇지? 그런거지? 그렇다면 왜 …. ”“ 사당이 지어진 진짜 이유는 따로 있어. 그 사실을 알게 된건 그 일이 발생한 수십년 후의 일이지만 말야. ”라셀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그가 무슨 말을 내뱉을지는 상상도 가진 않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입에서는 꽤나 무거운 형태를 지닌 무언가가 나올 기세였다. 라셀의 이야기를 듣던 나도, 어느센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이제부터 내게 들려줄 그의 말에 나는 잔뜩 눈을 번뜩이며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쿠피디타스의 의식? 그게 뭐야. ”“ 말 그대로 쿠피디타스를 부르는 의식이지.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게 바로 사당이라는거야. ”사당을 세운 이유가 쿠피디타스를 부르기 위해서란 말인가? 라셀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으로 라셀을 쳐다봤다. 라셀은 또 이해를 못한 나를 보곤 답답한지 한숨을 내쉰다.“ 왜 이렇게 이해력이 딸린거야? 내가 말을 못하는거야, 아님 네가 내 말을 못 알아 듣는거야? ”“ 아마도 후자라고 생각한다만. ”“ 으이구 … 관찰력은 뛰어나지만, 눈치는 더럽게 없네. 다시 한번 설명 해줄테니까 이번에는 똑똑히 들어! ”라셀은 다시 한번 내 이해를 돕기 위해 방금 한 말을 또 다시 되풀이 했고, 라셀의 말을 곰곰히 듣던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봤다.“ 꼭 사당이 있어야만 의식을 치룰 수 있는거야? 사당이 없으면 안돼? ”“ 아이고 답답아, 너는 사당이 없는 곳에서 의식이 될 것 같냐? 의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제단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그 제단을 어디다 모셔? 당연히 사당이지! ”“ 보통 제단은 바위나 나무 같은데에 있지 않냐? ”“ 으이구, 의식을 치루려면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아닌, 밀폐된 곳에서 치뤄야 한다는거 모르냐? 그렇기 위해서는 사당 안에 제단을 모셔야 한다고. 그래야만이 쿠피디타스를 부를 의식이 진행되는거고! ”복장이 터지려는지 라셀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내게 말했다. 까칠하고도 조금 심기를 건들이는 라셀의 말에 잠시 화가 나는 듯 싶었지만, 이해를 못하는 내 잘못이니 이번만은 내가 넘어 가야겠다.“ 내가 아까 전에도 말했다시피, 의식을 치루려면 공개된 장소가 아닌, 몰래 몰래 비밀리에 진행 되어야 한다고. 그래야만이 그 의식이 성공 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벌써 내 말을 까먹은거냐? ”“ 네가 언제 나한테 그런 말을 했어? 난 지금 처음 듣는 말인데? ”“ 뭐? ”내 말에 잠시 말을 멈춘 라셀이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한 모습으로 한참을 그 자세로 멈춰 있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내게 말한다.“ 그러네, 내가 너한테 설명을 해주지 않았구나. 하핫, 그럴 수도 있지. ”아니, 이놈이?“ 아무튼 간에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됬어, 그럼 이제부터 쿠피디타스의 의식을 치루는 방법부터 알려줄게. ”“ 갑자기 그걸 알려주는 의도가 뭔데? ”“ 그래야 쿠피디타스를 봉인 할 수 있으니까. ”보, 봉인?쿠피디타스를 봉인 한다는 라셀의 말에 깜짝 놀란 나는 그의 표정을 멍하니 쳐다봤다.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지? 왜 별안간 쿠피디타스를 봉인 한다는 말이 튀어 나온거야? 지금 내가 이 녀석과 대화를 하는 이유도, 모두 쿠피디타스에 관한 정보나 자료들을 얻으려는 생각으로 한거였는데. 문득 봉인이라니?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느닷없이 봉인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 그럼 너는 그대로 쿠피디타스를 내비둘 생각이였냐? ”“ 그건 아니지만, 갑작스레 그런 말을 꺼내는건 조금 이르지 않아? 아직 나는 쿠피디타스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고. 먼저 그것부터 알아야 하는게 순서 아냐? ”“ 네 말대로라면 제일 먼저 알아야 하는건, 쿠피디타스의 실체가 아닌, 쿠피디타스를 어떻게하면 봉인을 하느냐야. 언제 다시 그런 참혹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 그걸 그렇게 간과해서는 되겠어? 네가 원하는건 그런거였어? ”라셀이 다소 거칠어진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나는 그런 라셀의 말에 뭐라 반박을 하지도 못하겠다. 조금 괘씸하지만, 라셀이 하는 말은 하나도 틀린게 없으며, 그저 지금 내가 그에게 따지는건 지금 상황과는 동 떨어진 주제다. 그의 말대로, 이대로 쿠피디타스가 얌전히 있을거라는 장담은 못한다. 언제 다시 그놈들이 활개를 치며 세상을 다시 한번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다. 하지만 그 일보단, 내가 먼저 그것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는게 아닌, 그것들은 어찌하면 다신 그런 비극을 불어 일으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먼저여야 한다. 그의 말대로 내가 원한건 이 세상이 다시 그런 암흑 속으로 빠지는게 아닌, 그 암흑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을 파내어 다시 한번 그날로 돌아가는 것. 그걸 위해 지금껏 나는 모진 고생에도 묵묵히 달려 올 수 있었다.한동안 작은 침묵이 흘렀다. 답답하면서도 애절한 나의 모습은 그저 "딱딱하게 굳어 버린 듯 싶었고, 라셀은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며 땅바닥에 주저 앉는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다툴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시간이 많진 않잖아? 서로 마음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우리들은 내일을 위해 모든 결정을 지어야 해. 지금 우리가 이러저러한 걸로 다툴게 아니라. ”처음 보는 라셀의 진지하고도 차분한 모습의 나는 덩달아 침묵을 지켰다. 그의 말대로 우리가 이럴 시간은 없을 뿐더러, 이렇게 시간을 허비 할 때가 아니다. 하루 빨리 쿠피디타스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해서 이 모든 사건의 실마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다.“ 그렇담 말해줘, 어떻게 하면 쿠피디타스를 봉인 시킬 수 있는지. 봉인만 시킨다면 다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건지. ”나는 라셀의 눈을 보며 물었다.“ 봉인을 시킨다면,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거야. 하지만 봉인을 시키는건 그리 만만한게 아냐. ”“ 그건 또 무슨 말이야? ”“ 봉인이란게 워낙 절차가 까다로울 뿐더러, 성공 될 확률도 반이 안될 만큼 실패율이 큰 의식이야. 그렇기 때문에 설령 봉인하는 법을 안다 해도 성공하기는 어려울거야. ”“ 그렇다고해서 가만 두고 볼 수는 없는거잖아? 되든 안되든 무조건 해보고 봐야지. ”라셀의 얼굴이 조금 굳은 듯 싶다. 봉인을 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정작 본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봉인을 알아야만이 추후에 일어 날 사건을 대비하는 기반이라고 했으면서, 그의 얼굴색은 조금씩 옅어 갔다. 그러다 문득, 뭔가 의아스러운 생각이 든 나는 라셀을 쳐다보며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라셀, 너한테 묻고 싶은게 있는데. ”고개를 떨군 채 바닥을 응시하던 라셀이 나의 물음에 고개를 든다.“ 너, 분명 쿠피디타스로 시간이동이 가능하다고 했지? ”“ 응, 그런데? ”“ 그렇다면 네가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는거지? ”“ 에? 그게 무슨 말이야.”“ 분명, 나는 그때 란의 부탁으로 메달을 깨트렸어. 그렇기 때문에 그 메달을 소멸 했다고, 그런데 어떻게 네가 이곳에 있는거야?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고 라셀을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 날카롭게 변했다. 내 말을 듣고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있던 라셀은 이내 귀가 입에 걸릴 정도로 크게 웃어버린다.“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소멸? 그게 무슨 소리야. ”“ 뭐? ”“ 분명 네 손으로 쿠피디타스를 깬건 사실이야. 하지만 쿠피디타스는 소멸하지 않았어. 도리어 전보다 더 반짝거렸다고. ”“ 그게 … 무슨 말이야? ”쿠피디타스가 소멸이 되지 않았다고?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지? 라셀의 말을 듣고 잠시동안 나는 멍하니 그의 표정을 쳐다봤다. 그날은 달빛마저도 붉게 물든 밤이였고, 이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낭떠러지로 내던진 한 송이의 꽃을 보기도 했다. 나는 그때 란의 부탁으로 메달을 깨부쉈고, 그날 새벽, 나는 이 세계로 돌아왔다. 내가 이곳에 되돌아 왔을 땐, 모든 것이 뒤바뀌어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날 이후로 메달이 소멸된 줄로만 알고 있었다. 내 생각대로라면, 쿠피디타스가 소멸된 이후, 이 세상은 우리가 살던 모습으로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이 세계는 내가 떠난 그때의 모습과 똑같은 형상을 띄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과거와 현재의 혼란으로 2~3일을 끙끙 앓았던 걸로 기억된다. 이윽고 나는 증명되진 않았지만, 내 스스로의 위안을 삼기 위해 이런 생각을 했다.‘ 그 세계와 내가 사는 세계는 다르다. ’라고, 그곳이 내가 살던 세계의 과거라 해도. 우리가 사는 지금과 그들이 사는 현실은 다르니까, 비록 같은 곳, 같은 생활을 했을지 몰라도, 그들과 우리들은 다르니 말이다.어느 날은 이런 생각도 해봤다. 메달이 보여준 모습은 그저 나의 가상 속의 모습이였고, 나는 메달이 만든 가상 속으로 뛰어 들어간거라고, 그렇게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나의 미련을 버릴 수 있을까하고. 단순히 그 메달은 그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라셀의 말을 들은 나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쿠피디타스는 그런 물리적인 힘으로는 절대로 봉인 시킬 수 없어, 더군다나 소멸은 더더욱. 쿠피디타스를 소멸 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과 힘이 필요해. 하지만 지금에 너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라셀은 나를 보며 말했다. 지금에 나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왜일까, 그 말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오래 전에 들어본 듯한 낯 익은 목소리와 낯 익은 풍경들. 나는 지금 무엇을 보는걸까?“ 대체 … 내가 없던 시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그에게 물었다. 대체 내가 없던 시간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을 라셀은 알고 있는걸까? 대체, 대체 나는 지난 시간동안 무얼 하고 있는걸까.라셀은 내가 떠난 그 시점부터에 일들을 모조리 나에게 알려줬다. 부서진 쿠피디타스가 다시금 재생성 되서 세상의 모습을 보인 일들, 마우린 족이 뿔뿔이 흩어진 일, 그리고 … 란의 딸, 로라가 태어난 것까지 말이다.“ …. ”로라라는 이름이 들리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시금 나를 짓누르는 그때의 악몽이 다시 샘솟는 듯한 고통과 함께 슬그머니 그때의 기억이 내 뒤로 소리 없이 다가왔다.“ 부디,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한번도 그 기억을 잊은 적이 없다. 밤이 되면 여김없이 나타나 나를 들쑤시는 그날의 기억이 자꾸만 나를 구석으로 몰아 넣었다. 꼭, 지키고 싶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싶었는데 …. 나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그날, 네가 사라지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했어.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바람처럼 또 다시 모습을 감췄다고. 물론, 나는 눈치 챘었지만 내색은 할 수가 없더군. 그들은 쿠피디타스란 존재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 로라는 … 어땠지? ”“ 예뻤어, 나중에 한 미모할 정도였어. ”“ 몸 상태 말이야. 건강해? ”“ 응, 아픈데 하나도 없고, 아주 건강한 아이였어. ”라셀의 말에 나는 안심을 할 수가 잇었다. 다행히 그 아이는 아픈데 하나 없이 건강한 모양이였다. 다행이다. 건강해서 다행이야. 란의 약속도 지켜주지 못한 것도 미안한데, 더불어 아이까지 건강이 안 좋았다면 무슨 면목으로 그를 볼 수 있었을까,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두 메달의 교류가 조금씩 더 크게 번져갔다. 금방이라도 사당을 뒤덮을 만한 규모를 자랑하며 여기 저기로 뻗어 나가는 파동에 나는 잠시 몸을 멈칫했다." 라셀이 말한게, 바로 이거였나? "나는 두 메달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용히 의식이 끝날 때를 기다렸다. 잿빛산을 떠나기 전, 라셀이 나에게 당부한 말이 떠오른다.“ 메달을 봉인시키기 위해서는 두 개의 메달이 필요해, 그러므로 하나의 메달을 봉인시키려면 또 다른 메달이 필요한 셈이지. 하지만, 100% 그 메달이 봉인되는건 아냐. 의식 중에 불가피하게 봉인되는 상대가 서로 뒤바뀔 수도 있으니, 의식을 치루기 전에 꼭 명심해 둬. ”꼭 이 말만은 명심하라며, 떠나기 전 몇번이고 계속 말한 그의 말 때문에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자칫하면 봉인시키려던 메달과 다른 메달이 서로 바뀔 수도 있다는 말에 나는 한치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제단 위에 올려진 메달 두 개를 연달아 쳐다보며, 조용히 그 자리를 지켰다.조금씩 그들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지고, 사방에 놓여진 고문도구들의 떨림까지 느껴졌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들의 교류에 나는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킬 수 밖에 없었고,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 기세를 뻗으며 점점 커져만 갔다.붉은 색의 파동과 푸른 빛의 파동이 서로를 향해 부딪칠 수록, 사당은 점차 흔들림이 가해졌고, 그 속에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몸도 조금씩 그들의 무게에 점차 짖눌리기 시작한다.“ 의식을 치루기 전에는 무조건 마음 단단이 먹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되려 네가 집어 삼켜질 수도 있으니까. ”쿠피디타스의 의식을 치루기 전, 몸가짐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는 라셀의 말이 지금에서야 떠올랐다. 자칫하면 내가 봉인 될 수 있다는 말에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이미 벌어진 일, 나의 운을 믿어보록 하였다. 아직까지는 그다지 큰 데미지는 없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 더 거세지는 그들의 파동에 나는 서서히 의식이 몽롱해지기 시작한다.“ 명심해, 절대로 봉인 중에 의식을 잃어선 안돼. 봉인은 실패함과 동시에 너 또한 산산조각이 날 수 있으니까. ”계속해서 머릿 속을 맴도는 라셀의 말이 자꾸만 나의 불안감을 조성한다. 아까까지만해도 별 걱정 나는 조금씩 두려움이 커져만 갔다. 왜 그런 생각들이 지금에서야 드는지, 이럴 때 보면 참 나도 답이 없다며 괜시리 미소를 흘리며 꿋꿋이 제단 쪽을 바라봤다." ! "그 순간, 알 수 없는 굉음과 함께 사당 안을 가득 메우던 두 개의 파동이 한순간에 모습을 감춘다. 빛들이 사라지자, 제단 위에 가만히 놓여져 있던 메달들이 약간씩 떨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두 개의 메달이 제단 위로 두둥실 떠오른다." ! 봉인에 성공한건가? "잠시동안 사색에 잠겨 있던 나는 이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제단 쪽을 바라봤고, 공중에 뜬 메달들은 제단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허공을 돌던 메달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큰 굉음을 냈고, 그 굉음 뒤로 불어 닥친 폭풍에, 나는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이 … 이런. "봉인에 실패한건가? 아니, 아직 그렇다고는 보기 힘들어. 그렇지만 성공 했다고 보기에도 너무나도 이상해. 라셀의 말대로라면 지금쯤 허공 위로 뜬 메달들이 서로와 융합을 하기 위해 활발히 움직인다 했어. 하지만 갑작스레 바닥으로 떨어진걸로도 모잘라, 알 수 없는 바람까지 불러 닥치다니. 분명, 의식 도중에 뭔가가 잘못된걸 수도 있어. 그렇다고해도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거지?바닥에 주저 앉은 나는 제단 주위에 떨어진 메달을 연달아 쳐다보고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까지도 바람의 여운이 남아 있는 사당은 언제 다시 바람이 불어 닥칠지도 모르는 상황에 나는 한순간도 방심 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방금 그 폭풍으로 인해 제단 주위로 보랏빛 링 같은게 생겼다. 그 말은 즉 봉인의 문제가 생겼다는거겠지. 하지만 어디 부분이 잘못 됬는지 알 도리가 없는 나는 그저 답답할 뿐이였다.“ 의식이 잘못되면 그 순간 봉인도 끝이야. 그러니 한번에 성공해야해. 그렇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이런 생각은 시작하기 전에 떠올랐으면 좀 좋아. 지금 떠올라도 나는 아무 손도 못 쓴다고.“ 만약 봉인이 잘못 됬다면, 서둘러 그 장소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시간을 지체 했다간 큰일 나니까!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란 말야. 이게 정말로 봉인을 실패한건지, 아니면 봉인을 거치기 위한 절차인지. 네 조차도 봉인을 해본 적이 없다면서, 이게 실패인지 성공인지 어떻게 구별하겠다는거냐. 안 그래도 방금 전 불었던 바람 때문에 내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도 모잘라, 손까지 부르르 떨린다. 이래가지곤 도망도 못 칠 것 같은데, 나보고 어쩌라는거야." 젠장 …. "성공이든 실패든, 일단은 내 두 눈으로 지켜보겠어. 그게 만약 목숨을 건 모험이라 해도, 내가 두 눈을 뜨고 있는 한은 그 모습을 똑똑히 봐주겠어. 만약 이 일로 인해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해도, 난 절대로 멈추지 않겠어. 모 아니면 도, 어처피 인생은 새옹지마니까!“ 부디,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 ”….젠장, 어떻게든 되겠지!!“ 만약에 도망을 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꼭 이걸 사용하도록 해. ”“ 그게 뭔데? ”“ 그 상황에서 널 도와줄거다. 꼭, 품에 지니고 있어. ”분명 그때, 라셀이 내게 뭔가를 건네줬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지고 있으란 말에, 품 안에 소중히 지니고 있었지. 잠깐 사이에 정신을 잃었던건지, 자리에서 일어나니 머리가 띵하면서도 몽롱한 기분이 든다.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절대 의식만은 잃지 말라는 라셀의 말이 무색하게도 나는 멀쩡했다. 슬쩍 제단 쪽으로 시선을 돌린 나는, 제단 주위에 널부러져있는 두 개의 메달을 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실패하고 만건가. ”쓸쓸한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제단 쪽으로 다가갔다. 정신을 잃은 사이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는지, 사당 곳곳에는 무언가로 인해 갈라진 곳이 보였고, 사당 구석에 놓여 있던 도구들 마저 산산 조각이 난 채로 사당 안에 맴돌았다. 라셀이 말한 최악의 상황이 바로 저걸 말했는가싶어 왠지 모를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만약, 봉인에 실패 했다고 해도 좌절하지마. 어처피 처음부터 봉인에 성공할 수 있을거란 생각도 없으니까. 봉인은 준비만 된다면 몇번이고 할 수 있으니까, 너무 실망은 하지 말고. 그리고 봉인에 실패 했다면 내가 건네준 그 물건을 꺼내봐. 아마도 네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거야. ”라셀이 한 말치고는 왠지 자신감이 있는 목소리였다. 지금껏 내가 봐온 라셀은 절대로 위급한 상황에는 장난을 치는 그런 녀석은 아니였다. 가벼운 조크라던가, 기분 전환을 위해 한 장난 말고는. 그런 그 녀석이 그런 얼굴로 내게 말했다는건 분명 내게 도움이 되는거겠지. 하지만 자기도 그리 확신이 서지 않는지 왠지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말투였달까. 아무튼 시도를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거겠지.나는 외투 안에 고요히 잠자고 있는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떠나기 전, 라셀이 꼭 필요하다며 건네준 작은 주머니 안엔 대체 뭐가 들었을까 심이 궁금하다. 분명 도움이 된다고 했으니, 무슨 대단한거라도 들어 있는걸까? 두근거리는 가슴 뒤로 나는 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 넣었다." 이건 …. "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물체를 조심스럽게 꺼내본 나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 위에 놓여진 물체에 시선을 멈췄다." 돌 … 멩이? "라셀이 건네준 주머니 안에 든건 다름아닌 평범한 돌멩이. 봉인이 실패할시 사용하면 큰 도움을 준다는게 바로 이 듈멩이. 내가 좌절을 하고 힘들어할 때 사용하면 내게 기운을 준다는게 이 평범한 돌멩이. 내 손 위에 놓여진 이 돌멩이를 당장 라셀의 인중에 꽂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지금 이런 긴급한 상황에 그딴 장난을 해버린 라셀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교차를 이룰 때, 문득 내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또 다른 돌멩이를 꺼내 두 돌멩이를 서로 비교해봤다." …. "분명 이 두 돌멩이는 그때.“ 너, 사로이한테 속았군. ”그는 실실 웃으며 내게 말한다. 나는 그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나무 밑동 위에 철푸덕 앉은 그는 땅에 떨어진 돌 2개를 주어 들곤 내게 돌 2개를 보여주며 묻는다.“ 이 중에 뭐가 진짜 네가 갖고 있던 돌 같냐? ”“ 지금 뭐하는거에요? ”“ 내 질문에 대답해! 어떤게 네가 가지고 있던 돌이지? ”그의 황당한 질문에 말문이 막힌 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말문은 닫은 나를 보며 낄낄대며 웃었고, 들고 있었던 돌멩이들 중, 왼쪽 손에 들고 있던 돌을 바닥으로 내팽개치며 나머지 오르손에 들고 있던 돌을 내게 건넨다.“ 이게 네가 갖고 있던 돌이야. 표면을 봐서는 뭐가 뭔지 모르겠지?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알아두는게 좋아. 앞으로 너에겐 그 돌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거든. ”그 짓할 때 보여 줬던 돌멩이다. 그때 분명 그 녀석은 내게 이 돌멩이가 진짜라며 건네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실은 그때 그 녀석도 이 돌멩이가 저 돌멩인지 구분이 안간게 아닐까? 그래서 나중을 위해 그때 사용한 돌멩이를 하나 더 챙겨준거고." …. "참, 그 녀석다운 행동이다.허탈한 웃음을 짓던 나는 두 돌멩이를 바닥에 내려 놓고 곰곰히 생각했다. 도대체 라셀이 내게 이 돌멩이를 건네준 이유를 말이다. 분명 그때 라셀은 내게 도움을 준다며 건네준 것 같은데, 보니까 둘 다 같은 돌멩이 아닌가? 그렇다는 말은 라셀은 이 돌멩이들 중 하나가 날 도와준다는 말인데 …." …. "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그 녀석. 이런 돌로 뭘 어떻게 하라고. 이 둘 중에 하나는 수호신의 돌이겠지만, 하나는 평범한 일반 돌. 그런데 그 수호신의 돌마저 지금은 능력을 잃고 평범한 돌인텐데. 나더러 뭘 어쩌라는거야?" ! "설마 그 녀석 …. 지금은 평범한 돌이 된 돌을 준 이유가 그거였나?“ 나는 사로이에게 그 돌을 너한테 준다면 그 녀석이 이 돌의 능력을 되찾을 수 있을거라고 했지. 그러더니 하룻밤 사이에 네 손 안에 그 돌이 들어있군. 하지만 틀린 말은 아냐. 너라면 틀림없이 그 돌의 능력을 갱생 시킬 수 있어.”콘스탄틴으로 위장한 라셀이 그때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사로이가 내게 이 돌을 넘긴 것도, 다 라셀이 꾸민 짓이라고. 그땐 그냥 라셀이 장난 삼아 한 얘기로 흘려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였단 말야?! 하지만 나는 이 돌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내가 그럴 수 있단거야? 더군다나, 이 돌은 지금 아무 짝에도 소용 없는 돌멩이에 불과한데!“ 너는 할 수 있어, 너에겐 그럴만한 힘이 있거든. ”젠장 … 처음부터 그 녀석이 하는 말은 곧이 곧대로 듣는게 아니였는데. 중요한 순간엔 헛소리를 안할 놈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 생각한건가? 그렇지만 장난이라고 보기엔 그 녀석은 너무나도 진지했다. 분명 내가 해낼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이 가득찬 얼굴이였어. 하지만 정작 나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런데 어찌 내가 이 돌의 능력을 부활 시킬 수 있냔 말야.“ 널 도와줄거다. ”날 … 도와준다는 그 말, 왠지 지금은 장난이 아니였으면 좋겠군. 어찌 됬던간에 일을 저질러졌고, 이미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내가 그런 힘이 있든 없든, 나는 지금 이 상황을 해결 해야만 한다. 한 번 봉인을 실패한 이상, 두 번의 도전마저 실패로 끝낼 수는 없어. 이번에는 기필코 봉인에 성공 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버리고 말아.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이번에는 꼭 성공 해야 한다.바닥에 놓여진 두 개의 돌멩이를 집어 든 나는 조심스럽게 제단 위로 그 두 돌멩이를 올려 놓았다.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선 라셀은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 돌을 사용하는건 오로지 이 제단 위에서겠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나, 그런 생각은 잠시 잊도록 했다.「 꽈작 」제단에 올려 놓기를 몇분 후, 두 개의 돌멩이 중 하나의 돌멩이가 큰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멍하니 돌멩이를 보고 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두 개의 돌멩이 중 부서진 돌멩이가 가짜인건가? 아니면 진짜인건가? 알 수는 없었다. 부서진 돌멩이 옆에 놓여진 돌멩이도 방금 전 돌멩이처럼 부서질 듯한 움직임으로 부들 부들 떨리고 있었으니까." ! "그러던 순간, 조금씩 그 돌멩이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 빛은 내가 처음 잿빛산에 올랐을 때 봤던 그 빛과 아주 유사했다. 그렇다는 말은 이 돌멩이가 진짜인건가? 바들 바들 떨리기 시작했던 돌멩이의 움직임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자츰 뿜어져 나오던 빛 또한 사당을 가득 채울 정도로 점점 빛이 나기 시작했다. 빛에 가려 검은 실루엣만은 남긴 제단의 벽면은 진정 수호신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이게 … 그들이 말하던 수호신인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 말문이 닫힌건지, 아니면 이러한 상황이 믿기지 않아서 그런건지. 하지만 분명한건, 그들이 모신건 신을 모방한게 아닌, 진짜 신을 모셨다는걸 말이다.제단 주위에 덩그러니 놓여진 메달이 빛에 휩싸여 모습을 감추더니, 또 다시 강한 바람이 사당 안에 불어 닥친다. 제단과 가까이에 위치한 나는 그대로 바람에 직격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사납고 날카로운 바람이 아닌, 따뜻하고 포근한 사람의 손길 같았다.이윽고 사당 안은 영롱한 빛으로 가득 물들었다.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던 달이 제 모습을 나타낸걸까, 사당 안으로 모든 달빛이 비춰진 것 마냥 사당 안은 새하얀 달의 모습만이 감돈다.빛이 발했다. 그 빛으로 한 줌의 액운을 날려 보내니, 그 뒷모습은 한 송의 꽃 같이 싱그러운 향기가 풍겨온다." 이게 … 라셀이 말한 힘인가? "불꽃이 꺼질 때, 누군가가 그 불빛을 살려준다면 그보다 더 기분이 좋을 순 없다. 마지막 생명이 꺼질 때, 누군가의 손길로 그 누군가의 생명이 다시금 부활할 때, 우리의 눈가에는 촉촉히 무언가의 희망이 담겨 있었다.“ 너라면 할 수 있어. 그게 바로 내가 너에게 준 미션이자, 너의 힘을 깨우치는 열쇠야. ”“ 네가 왜 나한테 그 돌을 받았는지에 대해 알 때겠지. 그 전까지는 나는 절대로 네게 그 이유를 말하지 않겠어. ”그들의 말이 새록 새록 손 끝에서부터 나의 머리를 자극했다. 그들이 말한 뜻을 지금에서야 알겠다. 그들은 그때부터 나를 시험에 들게 한거다. 나는 절대로 무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절대로 그런 일을 할 수 없으며, 그들은 괜한 기대심으로 나를 부담스럽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들의 눈은 진실이였다. 나 자신은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기던 이 상황을 그들은 먼 옛날부터 예견이라도 했던건지, 그 믿기지 못할 현장이 지금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 ”나는 그때부터 한 약속을 지금까지 품 안에 꼬옥 간직하고 있었다. 언젠간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나는 지금까지 쓰디쓴 아픔을 묵묵히 씹어 삼키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드디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으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아프고 괴로워했던만큼, 나는 그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 했다. 불현듯, 이곳으로 온 나에겐 너무나 큰 고통이자, 공황상태를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니까. 이번만큼은 꼭, 나의 소망을 들어주길 빈다.“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 ”….란, 지금 내가 간다.“ 부서진 잔해가 다시 모여 하나의 쿠피디타스를 이루니, 그로 인해 이 세상은 다시 암흑으로 물들어진다. 라는 구절이 있어. 그 말은 즉, 어떻게서든 봉인을 하지 않으면 몇번이나 부셔도 소용이 없다는거지. 그러니 그 광경을 보고 나 역시 놀랄 수 밖에. 하지만 이제야 나는 그 봉인법을 알아 냈고, 그 봉인법을 네게 전수를 할 수 있게 됬어. 나는 네가 꼭 내 대신 봉인을 해줬으면 좋겠어. ”라셀은 나를 보며 그런 말을 건넸다. 꼭 내 대신 봉인을 해달라고. 하지만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정말로 이 녀석을 대신해서 쿠피디타스를 봉인할 수 있을까한 의문이 들었다. 만일에 내가 실패를 하고 만다면, 이 녀석의 기대도 저버리는 행동이 될테니, 함부로 일을 저질렀다간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셀은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내게 부탁한다는 말만 연신 내뱉었다. 그럴수록 나는 조금 더 부담감을 느꼈다.“ 정말로 내가 할 수 있을까? 괜히 건들였다가 뒷감당도 못하면 어떡해? ”불안한 듯 떨리는 나의 목소리에 라셀이 괜찮다는 미소를 지으며 그 정도는 누구나 저질를 수 있는 실수라며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안심시킨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을 수록 더욱 더 떨려오는 이유는 내가 아직 어리기 때문일까? 세상이 멸망한 이후로 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왔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는 절대 꿈꿔보지 못할 행동들을 그 이후로 계속해서 범해왔다는거다. 그렇기 때문에 맨정신으로 하지 못할 일들을 손쉽게 할 수 있는거고.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다르다. 자칫하면 나의 목숨은 물론, 이 모든 고생들이 한순간에 사르르 녹아버릴 수도 있다는 그의 말에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말로, 정말로 내가 봉인에 실패하게 된다면, 라셀의 고생도, 수색꾼들의 땀도, 나는 모조리 저버리게 된다. 그런대도 라셀은 나를 믿었다. 꼭 내가 할 수 있다는 눈빛을 보였다. 그런 눈빛을 보니 더 이상 망설일 수도 없게 됬다. 하든 못하든, 일단은 해봐야 미래를 정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조금씩 나의 마음이 움직인다.“ 처음 마우리스 산에서 널 봤을 때부터 느꼈어. 이 녀석이라면 이 세계를 구할 수 있을거라고. 그 반면에 우리라면 절대로 이 세상을 움직일 수 없다고. 하지만 너라면 할 수 있어, 우리가 못했던 그동안의 시련과 고비를 너라면 넘길 수 있어. 우리가 범접할 수 없던,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무리인, 하지만 너에게는 우리와는 달리 무언가가 있어. 그로 인해 너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어. 네가 아니면 안돼, 이 모든 악연을 끊기 위해서는 너희 힘이 절실히 필요해. 만약 네가 이 일을 할 수 없다면, 우리들은 그 누구에게도 어깨를 기댈 수 없어. 그야 말로 우리는 파멸, 이 세계는 더욱 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거야. 그러길 원하는건 아니잖아? ”그의 눈동자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그 때문인지 나의 손도 바들바들 떨리며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불안에 빠졌다. 그의 말을 들으니 더욱 더 나를 짖누르는 무언가가 나의 발목을 붙잡는 듯한 느낌과 함께 나를 더욱 더 위축시켰다. 라셀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내게 부탁했다. 평소와 같으면 이 녀석의 부탁은 거절했겠지만 이번만큼은 그게 쉽사리 되질 않는다. ' 나한텐 무리야 ' 라는 이 두 마디면 되는데, 이 말만 건네면 이 무겁고도 추악한 이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나는 왜 망설이고 있는걸까? 정말로 내게 그런 힘이 있을 것 같아서? 아니면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의무감 때문에? 하지만 나한테는 라셀이 말하는 그러한 힘은 없다. 그저 지금까지 평범하게 살아온 소년일 뿐이다. 그런데도, 왜 내 두 손은 이토록 떨리는거지?“ … 쿠피디타스를 봉인하면 영원히 그 봉인은 풀리지 않는건가? 다시는 그 재앙을 볼 수 없는거야? ”파르르 떨리는 입술 뒤로 내뱉은 그 한마디에, 나는 금세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면 펑펑 울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는 너무나도 지쳐 있었다. 나는 어찌해야 하는걸까? 이 악연에서, 이 악몽에서 나는 벗어날 수 있는걸까? 다시는 오지 않을 그 빛의 일상을 나는 다시는 꿈꿀 수 없는걸까? 한번만이라도, 한번만이라도 그때의 시절로 돌아간다면 이보다 더 성실하게 지낼 수 있을텐데, 함부로 지세던 하루를 더욱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을텐데. 그동안 하지 못한 일들을, 생각을 마음껏 꿈꿀텐데. 지금에 나로서는 너무나도 먼 이야기일까?“ 다시는 볼 수 없을거야. 되려 보고 싶다 한들, 그때의 악몽으론 다시 돌아가지 않을거야. ”라셀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그도 역시 감정이 북 받친 듯, 고개를 떨구며 가까스로 내게 말을 건넸다. 그의 눈물과 나의 슬픔이 서로 소통을 이루는 듯, 한동안 나와 라셀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책으로 가득찬 책들이 모두 물기에 스며들어 퉁퉁 불어날 듯, 우리들의 눈물은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려해도 도저히 이 눈물은 닦아낼 수가 없었다. 지난 세월이 무색하게도 나는 아직도 너무나도 어렸다. 아직 이런 일을 하기에는 나의 나이는 너무나도 어렸고, 라셀 역시도 그럴 것이다. 어린 나이에 시작된 이 고난과 슬픔을 어찌하여 남에게 돌리겠는가, 그저 우리들이 눈물을 삼키며 이 쓰린 가슴을 어루 만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껏 이런 상황은 몇번이나 찾아 왔다. 다시는 울지 않으리 다짐했던 나의 말과는 달리 나는 너무나도 슬프게 울고 있었다. 누가 나의 어깨를 토닥여줘도, 나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을 것만 같다. 그저 나는 이 눈물이 다시 내 눈가에 맺히지 않도록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쿠피디타스는 하나의 생명이자, 이 세상을 움직이는 여러 물질 중에 하나야. 그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이 세계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어. 서로 삐걱거리며 금방이라도 망가질 듯한 모습으로 세상은 점점 피폐해지겠지. 하지만 우리는 그걸 막아야 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그날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그러기 위해서는 더더욱 너의 힘이 필요해. 너는 할 수 있어, 너의 힘이라면 그 힘을 제어할 수 있어. 그러니까 … 그러니까 …. ”라셀이 말을 멈췄다. 도무지 말을 잇기가 힘든 듯, 그가 서있는 자리에는 축축한 온기만이 가득했다. 라셀은 내게 말했다. 이 일을, 이 악몽을 끝내기 위해서는 나의 힘이 절실하다고, 내가 아니면 이 세상은 더 이상 우리에 손으로 움직일 수 없다며, 본의 아닌 부담감과 함께 책임감을 부여했다. 사실 나는 너무나도 이 상황이 버겁고, 힘들다. 나는 지금까지 내 힘으로 모든걸 해결한 적이 없다. 반면에 내가 혼자였다는 나는 진작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거다. 세상이 처음 모습을 보였을 때, 그때 내 곁엔 로빈이 있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나를 보고 방긋 웃어줬다. 이 세상이 어둠으로 가득 했을 때, 그녀는 내 옆에 꼬옥 붙어 있었다. 내가 힘들 때나, 슬플 때나 그녀는 나와 함께 였다. 그녀는 힘든 그 상황에서도 꿋꿋이 내게 미소를 보여주기 위해 애썼고, 그 미소에 답하기 위해 나는 더욱 더 힘을 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껏 나는 꿋꿋이 버텨올 수 있었고, 로빈이 있었기에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혼자서 이 일을 해낼 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나는 무용지물이다. 혼자서는 아무런 기분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나는 이 상황을 망각할 뿐이였다. 이 기억을 지워야만이 나는 살아 남을 수가 있고, 이 남은 모든 시련들을 잊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지금껏 내가 이러한 사실을 뒤로 하고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 있고, 더불어 이 모든 아픔을 스스로 위로할 수 있었기에, 나는 더욱히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했다.“ 아직도 너는 그 어둠 속에 잠겨 있는거야? ”“ … ! ”“ 그 어둠 속에서 언제나 다시 뒷걸음질 친거냐고, 어떻게하면 너는 그 어둠 속에서 빠져 나갈 수 있지? 언제까지 너는 그 어둠을 피하고 있을거냔 말야. ”가슴이 … 아프다. 라셀의 말에 더욱 더 나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잊으려해도 잊을 수 없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내 가슴에 콱 박혀 나를 아프게만 했다. 언제까지나 이 아픔을 나는 안고 가야 한다는 책임에 나는 하루도 이 속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그 어둠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거야? 너를 억제하는 그 악에서 벗어날 수 없는거냐고! ”“ … 무리야, 나는 절대로 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어. 행여 억지로 떼어낸다 한들, 다시 갇히고 말거야. ”힘없이 내지른 나의 말에 라셀의 얼굴은 점점 굳어만 갔다. 눈물자국이 흘러 넘쳐 메마른 자리엔 새하얀 한이 맺혀 있었다. 그 누구도 나의 속박을 벗겨 낼 수 없다. 벗겨 내려 할수록 그 속박은 더욱 더 내게 달라 붙을 뿐, 아무 것도 달라지는건 없다. 더욱이 그건 더더욱 ….“ 만약, 만약에 그 어둠을 떼어낼 수 있다면 날 도와 줄 수 있어? ”고개를 떨군 라셀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내게 물었다. 더 이상 흘러 내릴 눈물도 남아 있지 않던 나는 라셀의 물음에 고개를 돌리며 ' 뭐? ' 라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는 무언가를 굳게 다짐한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확신에 찬, 그리고 위험에 잔뜩 움추러든 어깨를 쫙펴며, 그의 입술은 서서히 움직였다.“ 만약,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넌 날 도와줄거냔 말이야. ”!순간적으로 나의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지금까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던 그런 라셀에게서 그런 말이 튀어 나온 것에 대한 놀라움과 당혹함이 연신 교차하며 나의 움직임을 봉쇄한다. 나는 믿기지 못하는 눈동자로 그에게 다시 물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금 나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마키 족이 가지고 있는 쿠피디타스는 ' 시공 ' 을 이동할 수 있어, 그렇기에 내가 이곳에 올 수 있었던 이유이니까. ”“ 그렇다는 말은 …. ”“ 그래, 과거로 돌아갈 수 있어.”정말로 …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는걸까? 그때의 약속을 드디어 지킬 수 있는걸까? 그 악몽에서 나는 벗어날 수 있는걸까? 라셀은 확신에 찬 미소를 띄며 내게 말했다. 그 말을 듣는 동시에 나는 도저히 서있을 수가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며,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맨정신으로는 이 상황을 도무지 받아 들일 수가 없었는지, 조금씩 나의 의식이 흐릿해지는걸 느꼈다. 하지만 나는 정신을 바로 잡고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는 나와의 시선을 마주치며 다시금 그 한마디를 내뱉었다.“ 널, 과거로 보내 줄게. ”몽롱해진 의식 속,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한 점 바람도 불지 않던 사당 안엔 웬일인지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다. 무겁게만 느껴졌던 눈꺼풀이 점차 가벼워짐을 느끼고 천천히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방금까지만해도 나는 사당 안에 있었다. 사당 안에 벌어지는 믿기지 않은 상황을 그대로 두 눈을 뜨고 바라보며 그들의 움직임을 느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그들의 파동은 점자 요동치며 사당 안을 가득 메꿨고, 불현듯 나타난 달마저 사당을 향해 빛을 내뿜었다. 새하얀 빛과 함께 사그라든 붉은 파동과 푸른 파동이 다시 나타나며 그들만의 조화를 이루었다. 금방이라도 이 사당이 부서지고 내 몸이 갈기 갈기 찢어질 듯한 바람이 이르고 귀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한순간에 나의 의식은 사라졌다.그리고 몇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어디론가 휩쓸려 간건지, 사방이 온통 수풀로 가득찬 어떤 곳에서 정신을 차렸다. 언제부턴가 자리를 지키며 붉은 노을을 내미는 태양이 점점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고, 나는 점차 낯 익는 주변 풍경에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포근하게 불어오는 바람들 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게임 속 이야기
| 나는 작가가 될 테야! 글을 창작해요
2012.03.11 22:46
루에르 5화 : 망각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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