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날 악마를 만났던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이 이야기를 듣던지 말던지 그건 자유겠지만 말하겠다. 악마는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와 만나고 나서.
"넌 인간이 아니군. 넌 누구지?"
"그렇다. 난 악마다. 너희들이 악이라 칭하고 두려워하고 마음대로 죽이려하는 악마이다."
"아? 하지만 무엇 때문에 나에게 왔지?"
"너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 최강이라 칭송받으며 받들여지는 팔라딘(성기사)이라는 너에게."
"아니, 난 너와 대화를 나눌 생각 따윈 없다. 난 팔라딘. 악마를 죽여야할 의무가 있다."
"잠시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다. 그다음엔 나를 죽이던지 말던지 그건 네 자유이다."
"흥. 이야기를 듣도록 하지. 허나, 대화 도중 허튼 생각을 한다면 바로 널 베겠다."
"좋다."
나는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그 또한 나의 정면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생각하듯이 정면을 응시하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앞서 말했듯이 악마이다."
"악마..."
"그렇다. 먼저 최초의 악마와 인간이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되겠군."
"최초의... 악마와 인간?"
"그렇다. 최초의 인간인 플레누스."
"......!"
"그리고 최초의 악마인 크에라에."
"플레누스라니! 거짓말이다! 어째서 네가 최초의 팔라딘, 역대 최강이라고 불렸던 그녀인 플레누스를 알고 있는거냐!"
"뭐, 이 경우라면 최초로 가장 인간다웠고 가장 악마다웠던 이들이라고 해야겠군."
"가장 인간답고 악마다웠다고?"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나는 허리춤에서 바로 검을 뽑고 일어나 그에게 검을 겨눴다. 하지만 그는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봤다.
"진정하거라. 젊은 팔라딘이여. 너가 지금 죽게 된다면 이 계층은 붕괴되어버릴 것이다. 그건 너도 바라지 않겠지."
"쳇. 젠장. 하지만 설명해줘야겠어. 당신, 크에라에와 플레누스에 대해서."
"좋다. 일단 앉아라."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원래 있던 자리로 다가가 앉았다. 순간 그녀, 플레누스라는 이름이 나와 흥분하게 되어버렸다.
"처음 난 그녀, 플레누스를 만났다. 인간과 악마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도 못한 체 평화롭게 살아가던 어느 날, 난 인간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난 인간 세계에 대한 이질감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이 또한 나와 다른 생물이 살아가는 '세계'라는 것이다. 난 이곳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났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싸우는 아름답지만 엉망인 곳을."
"악마가...인간을 사랑했다고? 내가 그 헛소리를 믿을 것 같아?!"
"너에게 악마란 어떤 존재인지는 몰라도 내 말은 진짜다."
"너희들은...너희들은 우리가 살고 있던 평화로운 세계를 파괴하고 있다. 너희야말로 악이다! 진정한 악이란 말이야!"
"악? 그건 오히려 너희 인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뭐라고?"
"우리 악마들은 인간과 그 세계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 세계를 지켜주고 싶었고 그녀또한 지켜주고 싶었다. 허나, 인간들은 악마들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곳 또한 지배하려고 들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저항했다. 사랑하는 이들과 싸워야했다. 지켜주고 싶었던 이들과 싸워야했다. 사랑하는 그녀와...싸워야 했다."
"거, 거짓말! 거짓말이다!"
"아직도 모르겠나? 팔라딘? 웃기지마라. 그녀는 악마를 죽이고 그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칭호를 거부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악마들이 인간들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어째서 악마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는지 알겠는가? 그들은 무서웠기 때문이다."
"!"
"자신과 다른 존재는 무섭다. 자신과 다른 것은 무섭다.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른 것은 무섭다. 자신이 알았던 세계가 붕괴되는 것은 무섭다. 두렵다. 절망적이다. 그렇다. 사랑하는 이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그 주체들은 우리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고통과 절망. 그녀는 최선을 다해 인간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그녀는 악마들에게 꼬인 마녀라며 그녀를 화형시켰다. 알겠느냐. 이것이 우리 악마와 인간들이였다."
"그, 그렇다면 팔라딘이란...?"
"그렇다. 인간과 악마를 화합시키기 위한 그녀가 자신에게 부여한 칭호. 이노센스 나이트ㅡ팔라딘."
"......!"
"그녀는 인간과 악마의 화합을 바랬다. 그러나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려들지 않는 인간들은 우리들을 악이라 칭하며 두려워하고 죽이려했다. 그에 위협을 느낀 우리들은 그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너희들은 말한다. '악이니까 우리들을 공격한거야!'라고 말이지. 우리들은 그저 친해지고 싶었다. 그들과 화합하고 싶었다. 그들과 공존하고 싶었다. 그저 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친구...라고?"
"최초의 악마인 나를 거둬들였던 그녀는 같은 인간에게 죽음을 맞았지. 그저 자신과 다른 존재와 친하다는 이유로 말이지."
"다른 존재..."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인간과 악마의 전쟁이 잊혀질때 쯤. 그들은 위협을 느꼈다. 아니, 단순한 착각이겠지. 다시 한번 그들을 악마 세계로 쳐들어와 우리들을 공격했다. 지레 겁먹었다고 할 수 있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우리들을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학살하고 죽이고 없앴다. 그에 분노한 악마들이 다시 한번 인간을 공격한다. 공격한다. 죽인다."
"죽인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 뭐가 나쁘다는 것인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것이 왜 나쁜 것인가. 어째서 인간을 죽인다는 것만으로도 악이라고 칭해져야 하는가? 그렇게 따지자면 인간들이 더 악이라고 불려야하지 않을까? '먼저 내민 손'을 처버린 인간들이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당황하여 같이 일어나게 되었다.
"너는 순수하다. 말 그대로 이노센스 나이트ㅡ팔라딘이겠지. 너라면 할 수 있겠지. 인간과 악마가 화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면한다."
"자, 잠깐! 어떻게 네가 그런 상세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거지? 넌 도대체 누구야!"
"내 이름은 크에라에, 창조이다. 플레누스, 완성이라는 그녀의 이름과 아주 잘 어울리지 않는가?"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잠깐! 기다려! 악마와 인간이 공존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할 일이다."
"내가? 어떻게?"
"너는 이노센스 나이트ㅡ팔라딘이다. 너라면 할 수 있다. 그럼 나중에 보자. 나의 오랜 친구여."
"잠깐! 기다려!"
그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악마와 인간의 화합, 공존.
"정말로...인간과 악마가 공존할 수 있을까?"
p.s 악마도 그렇게 나쁜 존재는 아니랍니다.
밥하님은 연재작보다 이런 단편작을 쓰는게 더 필력을 발하는 것 같네요.
한편으로는 이런 단편작을 보면서 나도 한 번씩은 이런 소설을 써볼까하고 생각은 하지만,
평일에 소설을 쓰기엔 버거운 나머지 그 일에 대해선 제대로 행해지지 않네요.
아무튼 저와 함께 오랜시간을 함께 소설을 쓰셨으면 좋겠네요.
항상 건필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