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이미 이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루에르- 영원의 신념 -1 - 7
그리고 이틀이란 시간이 지났다.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이 있던 나는, 그날 이후 다시 한번 사당에 찾아 갔지만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건 아무 것도 없었다. 자욱한 먼지 뒤로 보이는 제단만이 내 눈에 보일 뿐, 그 어디에도 쿠피디타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며 쿠피디타스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 다녔지만 역시나 쿠피디타스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단서 하나 때문에 서둘러 내가 발길을 옮긴 곳은 다름 아닌 신사 앞. 예전에 내가 이곳에 왔을 때도 쿠피디타스는 이곳에 모셔져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향했지만, 미처 내가 생각치도 못한 일이 있던 뒤였다. 오래 전부터 이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모신다는 신사를 누군가가 뽑아서 마을 밖으로 버렸다는거다. 더군다나 그 일을 시킨 장본인이 다름 아닌 이 마을 촌장이라는 것이였다. 이 마을의 안위와 평화를 지켜야하는 촌장이 그런 짓을 꾸미니, 마을사람들도 오죽하겠는가. 오랫동안 이 마을을 지켜준 신사를 무너뜨림과 동시에 남들의 평온까지 산산조각 내버린 것에 대해 나는 큰 분노를 삭혔다. 지금 내가 이 마을을 위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나섰다간 나는 물론이며 이곳에 사는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을게 분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녀의 뒤를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뜻 밖에도 그녀는 내게 불평불만이 담긴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자신을 귀찮게 군다면 화를 넬텐데, 나에 대한 정보도 정체도 모름에도 그녀는 언제나 미소를 지으며 나의 부탁을 다 들어주었다. 그런 모습에 나는 점점 그녀에 대한 믿음이 커져갔다.
「 드르륵 」
오늘도 허탕을 치고 돌아온 나는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드러 누웠다. 움직일 힘도 하나 남지 않은 나는 숨을 내쉬며 천장을 바라봤다.
" 오늘도 못찾은건가요? 마을이 작아서 그런 물건을 찾는건 그리 어렵진 않을텐데. "
문을 닫으며 들어오던 그녀가 바닥에 누운 나를 보며 말했다.
" 이틀동안 찾아도 나오질 않는걸 보면, 누군가가 일부러 숨겨 놓은게 맞는 것 같군요. "
" 숨겨요? "
"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안 나올리는 없으니까요. "
" 그럴까요…? "
" …일단은 추측일 뿐이에요. "
왠지 기운이 쭉 빠진다.
" 그런데요. 전부터 궁금한게 있었는데. "
" 뭔데요? "
" 그 쿠피디타슨가 뭔가하는게 그렇게도 위험한 물건인가요? 저는 한 번도 그런 물건을 본 적이 없어서…. "
그녀가 쑥쓰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 그때가 되려면 멀었지만, 그걸로 인해 미래는 엉망진창이 됬어요. 사람의 목소리도, 삶의 의욕도 잃어버린 말 그대로 지옥인 세상을. "
" 지…옥이요?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을 그녀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녀의 후손은 그 모습을 볼 수 있을거다.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는 암흑 그 자체의 삶을. 살아도 사는게 아니고, 먹어도 먹는게 아닌, 그저 무(無)의 세계. 나는 그런 곳에서 사람을 찾기 위해 지금껏 아둥바둥하며 걸어왔다. 그 덕분에 영원히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과의 만남을 할 수 있었고, 이 힘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도 알아갈 수 있었다. 그 점으로 보면 내게 이로운 점도 있지만, 대부분은 안 좋은 감정만이 남을 뿐이였다.
「 똑 똑 」
멀뚱히 바닥에 누워 곰곰히 무언가를 생각하던 도중, 누군가의 노크소리에 화들짝 놀란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 또한 당황한 듯 허둥지둥하며 나를 서둘러 옷장 안으로 집어 넣었다.
"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4명의 검은 남자 중, 나를 그 남자가 있던 곳까지 안내했던 남자의 목소리가 문 틈 사이로 들려왔다. 그녀는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문 앞으로 달려갔고, 나는 조심스럽게 옷장의 문을 닫으며 슬쩍 문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들어오세요. "
"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들어와도 좋다는 말에 그 남자는 문을 열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그 남자 단 한사람 뿐, 그 전에는 3명의 남자가 그 뒤를 쫄쫄 따라왔었는데….
" 무슨 일이죠? "
" 촌장께서 당신을 찾으십니다. "
" 촌장님이 저에게 무슨 볼일이 있다고 절 찾으시는거죠? "
" 그건 저로서는 모르겠지만, 촌장님이 당신을 부르신건 맞습니다. "
" 전 촌장님과 할 말은 없는데요? "
" 그러지 마시고 순순히 따라오시죠. 촌장님의 명을 거스르는 짓은 무모하다는걸 잘 아시는 분께서 그러시면 안되죠. "
" 전 안가요. 볼일이 있으면 그쪽에서 오라고 하세요! "
살짝 화가 난 듯한 그녀가 문고리를 잡고 문을 닫으려하자, 그 남자가 문을 막아서며 그녀를 노려본다.
" 이러면 힘들어지는건 당신일텐데? 촌장님께선 인질을 데리고 계시다고. 네까짓걸 왜 촌장님이 살려뒀을거라 생각해? "
" 당장 이 방에서 나가요. 빨리! "
문고리를 두 손으로 잡아 당기는 그녀가 귀엽다는 듯한 미소를 짓던 그 남자가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는다.
" 왜? 도망가고 싶어? 이 집에서 나가고 싶냐고.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도 되. 그 누구도 말리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명심할게 있어. 네 년이 도망가는 날에는 그 녀석들은 모두 끝이라고. 알아?! "
그녀의 뺨을 후려치던 그 남자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방에서 빠져 나간다. 바닥에 주저 앉은 그녀는 욱씬거리는 뺨을 한 손으로 가리며 그 남자의 눈을 노려본다.
" 그렇게 노려보면 뭐라도 될 것 같아? 웃기는 소리하지마. 어처피 너는 아무 짓도 하지 못해. 지금의 너는 무력, 그 자체라고. 너는 그냥 여기에서 촌장님이 하라는걸 하기만 하면 되. 쉽잖아? 다른 놈들이라면 그것보다 극심한 일을 주셨을텐데, 너란 이유 때문에 너는 이렇게 편히 먹고 잘 수 있는거야. 이런 특혜가 있는데 너는 고작 촌장님과의 만남을 거절하겠다? 이런 건방진 년이!! "
「 탁 」
" 그만해라, 한 번만 더 그랬다간 손모가지를 끊어버릴테니까. "
" 넌 뭐냐? 뭔데 함부로 이 집에 들어온거야! "
방 밖으로 누군가가 나타났는지, 그 남자의 심한 언행과 폭력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허공에 내지르는 듯한 그의 주먹질에 갑작스럽게 나타난건 의문의 주먹. 단 한 번의 주먹질로 인해 바닥으로 쓰러진 그의 얼굴엔 권력 앞에 무릎을 꿇은 자의 눈물이 고여 있었다.
" 괜찮으신가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하셨습니다. "
" 다, 당신은…. "
"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안색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
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안으로 들어온 그녀의 뒤로 낯 익은 얼굴의 사내가 모습을 나타냈다. 옷장 안에 쭈구려 앉아 이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깜짝 놀라며 옷장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 라, 라셀?! "
" 여~ "
악당의 손에서 그녀를 구출하고 멋진 폼으로 들어온 자는 다름 아닌 라셀이였다. 어떻게 이 녀석은 무슨 일이 닥칠 때마다 짠하고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마치 누구와 짠 듯한 타이밍에 나는 살짝 라셀을 의심하는 눈빛을 쏘아 보낸다.
" 어떻게 된거야? 어떻게 네가 여기에. "
" 못 올 이유는 없잖아? "
" 못 올 이유는 없지만서도, 왜 하필 이런 타미잉에 맞춰서 나타나냔 말이야? "
" 내가 안 나타났으면 이 분이 다치셨을텐데, 지금이라도 나타난게 다행이지. 어처피 너는 도와주지도 않았을거 아냐. 그 점으로 보면 내가 지금 나타난건 잘된 일이지. 안 그래? "
" 그, 그렇긴 하지만…. "
" 이야기는 나중으로 하고, 일단은 그 녀석 좀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
" 이 녀석을?! "
" 왜, 싫어? "
" 싫은 이유는 없지만…. "
" 그럼 데리고 들어와. "
왠지 내가 이용 당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건 기분탓일까. 아무튼간에 그 녀석의 말대로 그 남자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온 나는 슬쩍 라셀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빨갛게 부어오른 뺨에 그녀는 슬픈 눈을 하며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에 앉아 그녀를 위로하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라셀을 보며 나는 살짝 짜증 섞인 미소를 흘렸다.
" 여기에 앉아 계세요. 촌장과는 제가 만나고 오겠습니다. "
" 아니요, 그러지 마세요. 촌장님은 저와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은데…. "
" 몸상태가 안 좋다고하고 제가 다녀오면 됩니다. 그러니 여기서 안정을 취하고 계세요. "
" …그럼 부탁드릴게요. "
라셀은 그녀를 향해 싱긋 웃으며 내 쪽을 돌아본다.
" 따라 나와. "
" 응? 아, 응. "
순간, 라셀이 무섭게 느껴진건 내 착각이였을까. 갑자기 오한이 드네.
방 밖에서 얘기할 줄 알았으나, 나를 데리고 건물 밖으로까지 나선 라셀은 슬쩍 뒤를 돌아보며 나를 쳐다본다. 아무 말 없이 그의 뒤를 쫄쫄 따라 걸어나온 나는 그의 시선에 살짝 위축된 모습으로 그를 쳐다봤다.
" 어떻게 된거야? 마키 족은 어떻게하고 이곳에 온거야? "
"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하는 말이 고작 그거냐, 하긴 그때도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았으니까. "
라셀이 웃으며 말했다.
" 왜 그런거야? "
" 뭐가? "
" 왜 여기에 온거냐고. "
" 내가 온게 싫어? 왜 아까부터 묻는 패턴이 똑같아. "
" 내 의도는 그게 아니잖아! "
" 그럼 네가 묻는 의도는 뭔데? 아, 혹시 이거 때문에 그러는거야? 걱정하지마, 나 한 사람 정도는 몇 번이고 움직일 수 있으니까. "
" 웃기는 소리 하지마! 그때 분명 네가 말했잖아. 그곳에서 가지고 온 쿠피디타스는 온전하지 못하다고. 능력을 사용하고 난 뒤, 한달간의 공백기간을 가진다고해도 그게 유효할지는 너도 잘 모른다고. 그게 두 번이 될지 한 번이 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왜 네가 이곳에 온거냐고! "
" …그것 때문이냐. 그거라면 걱정하지마. 앞으로 몇 번은 더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것보다 의외인걸, 네가 날 걱정하다니. 이거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정돈걸? "
능청스러운 태도를 보이며 웃는 라셀의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때, 이 녀석이 말했던 대로라면 이제 그 쿠피디타스를 사용할 수 있는 것도 몇 번 남지 않았을텐데…. 최악의 경우엔, 영영 원래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 그런데, 용케 만났네.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빨리 만났어. "
" 그게 무슨 말이야? 만났다니? "
" 뭐야, 너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던거야? 아까 그 소녀가 바로 네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던 로라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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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이래가지곤 100편이 지나도 완결이 안 날 것 같아서 빠르게 스토리를 움직였습니다. 즐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