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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31 19:31

루에르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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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셀이 내게 말해준 것,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자, 이 세상에 마지막을 위한 발걸음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나는 왜 이런 상황에까지 다다랐는지에 대해 묻고 싶을 뿐이였고, 그도 알겠다는 눈치를 보이지만 쉽사리 그의 말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만 라셀 자신이 한 종이 한 장을 들고 이곳으로 돌아온 뒤, 마키 족에게 찾아가 그곳의 서재를 빌린 것까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 하지만 이상해…네가 이곳에 있었다면 내가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널 볼 수 없었어. 네 말대로라면 너는 내가 그곳에 돌아온 뒤에 왔다면 널 볼 수 있었을텐데. "


  의심스러운 나의 물음에 라셀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 내가 돌아왔을 땐, 넌 이미 제정신이 아니였잖아?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내가 있는지 없는지 볼 경황이라도 있었어? "


  그는 피식 웃으며 내게 말했다. 라셀의 말대로 내가 그곳에 돌아온 뒤,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져 그 충격에 헤어나오지 못했을 때였다. 내 곁에 있던 로빈도 그런 나를 보며 많이 아파했는데…그런 시간동안 이 녀석을 이 상황들을 대비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잠시동안은 나와 라셀은 아무 말도 없었다. 차분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손등을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듯한 적막감이 찾아온 뒤에도. 말 없이 라셀의 옆자리를 지키던 나는 문득 궁금해진 사실 하나가 있다. 그가 이곳에 오기 전, 란의 방에서 찾은 종이 한 장, 라셀은 왜 란의 방에서 다른 것도 아닌 한낱 종이 한 장을 들고 이곳에 왔던걸까? 설마 그 종이 안에 란이 마지막으로 남긴 단서라도 있는걸까? 나는 슬쩍 라셀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 그 종이, 뭐였어? 네가 방에서 찾은 종이 말이야. 혹시…란이 남긴거야? "


  의문을 가진 나의 말에 라셀의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란이 남긴 것 맞지만, 단서는 아니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그는 왜…그 종이를 들고 온거지? 

  의아스러운 나의 표정을 묵묵히 지켜보던 라셀, 종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든지 그의 모습에서 머뭇거림이 보였다. 허나 라셀은 왜 자신이 그 종이를 가지고 왔는지, 왜 다른 것도 아닌 그걸 갖고 왔는지에 대해 내게 설명을 해주려는지 한참을 애를 쓰며 머뭇거리던 그의 얼굴에서 결심을 다진 듯한 모습이 보이며 그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인다.


  " …옛날, 마우 마을에 한 사건이 있었어. 한 여자가 남편이 보는 앞에서 살해 당하는 사건이 말야. "


  라셀의 입 밖에서 나온 말은 충격 그 자체다. 왜 그가 이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지만, 라셀은 그 말을 계속 이어가려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그때의 나는 갓 수색꾼으로 들어온 신입이였으니까 지금처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위에서 하라는 대로만 움직여야하는 몸이였지. 그런 내가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발견한거야. 그 여자가 살해 당하는 모습을…. "


 


  “ 라셀은 오늘도 상부에 지시대로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며 마을에 안전과 질서가 그대로 유지되는지에 대해 관찰하고 있었다. 그때는 아직 햇병아리인 라셀은 신입답게 매사에 모든 일들을 열심히 처리하며 윗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하게 주위를 둘러보던 라셀의 귀에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런다고 달라지는건 없어요. 이미 저는 이 마을사람이 됬다고요. "


  " 우스운 소리하지마. 너는 이쪽 사람이야. 너는 이곳 사람이 될 수 없다고!  "


  " 제 마음은 변치 않아요. 그만 돌아가줘요. 그이가 이 모습을 본다면, 큰일날거에요. "


  " 내가 그깟 녀석 하나 무서워할 것 같아? 단지 나는 너만 있으면 되. 너만 있다면 그런 고철 덩어리 따윈 신경쓰진 않을거라고. 나는 그저 너와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야. 예전처럼, 후회 없는 삶을 말야. "


  " …미안해요. 저는 이미 마음을 굳혔어요. 그리고 당신에겐 후회 없는 삶일진 몰라도, 제게는 하루하루가 힘든 나날이였어요. 이만 갈게요. 다신 절 찾아오지 말아주세요. "


  마을 구석 민가에서 들려오는 두 남녀의 대화에 자신도 모른 체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라셀은, 자신 쪽으로 걸어오는 한 여자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벽 쪽으로 황급히 몸을 숨겼다. 그녀는 라셀이 있는 민가를 지나친다. 그때 그녀의 눈가에서 작은 눈물 한 방울을 발견한 라셀의 눈빛이 살짝 흔들린다.  


  " …너, 날 무시하고도 무사할 것 같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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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탓하지마라.

시간을 흘려보낸건 나 자신이다.

시간은 주어진게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연히 나라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그 시간의 흐름에 어떻게 따라가느냐의 내가 증명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증명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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