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안 온다. 곧 있으면 동이 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두 눈은 초롱초롱하다. 오래 전부터 나의 뒤를 쫄쫄 따라다니는 불면증,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잠을 자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해봤다. 커피를 좆나게 쳐 마신다든지, 수면제를 한 알, 두 알, 땅콩 까먹듯이 먹는다든지, 아무리 졸리지 않아도 몸에 피로가 누적되다보면 저절로 눈이 감겨지기 마련,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음에도 돈 운동장 20바퀴. 그러나 잠은 커녕, 더욱 말짱한 나의 정신. 대체 내 몸엔 뭐가 들어 있는걸까?
' 피곤 ' 이란 단어는 이미 잊은지 오래, 그 단어를 쓴 것도 아마 5~6년쯤 된 이야길거다. 그때만 해도 나도 여느 평범한 아이들처럼 평범한 일상에, 평범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평범한 잠자리에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찾아온 ' 불면증 ' 이라는 씹새끼가 나타나 나의 뒷통수를 매번 강타하고 있다. 그 때문에 지금껏 자살시도를 몇 번이나 한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잠이 안 오면 부럽다는 눈빛을 보내지만, 정작 본인은 죽을 맛이라는거지. 누구는 잠이 안 오면 피로가 계속 쌓여서 나중엔 붕괘가 되지 않냐고 말하는데, 방금 언급했다시피 피곤이란건 예전에 잃어버려서 무슨 짓을 해서 말짱하단거지. 그러면 좋은게 아니냐고? 아니, 아주 좆 같은거야. 남들이 다 자고 있을 시간대에 혼자 남아 벽과 대화를 해봤어? 컴퓨터를 켰는데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쓸쓸한 채팅창을 봐봤어? 한 명씩 들어와있는 놈들도 대개 컴퓨터를 켜놓고 자는 놈들이 대부분이고, 답장을 하면 답장도 안하는 아주 씹쓰레기들 뿐이라고. 게임? 나 개인적으로 게임 별로 안 좋아해. 언제 한 번 애들이 게임을 권유했는데 안 한다고 하니까 좆나 까인 경험이 있는데, 아씨 갑자기 떠오르니까 열받네. 아무튼간에 이러한 상황 탓에 매일 밤마다 나는 홀로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이거야. 오늘도 다른 날과 똑같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하며 궁리하고 있는데, 도통 무슨 일을 해야 알찬 시간을 보낼지 모르겠어. 늘 하는 일임에도 하루마다 바뀌는 패턴이 중요하거든. 좋아하는 라면도 계속 먹다보면 질리는 것처럼, 나도 그런 진부한 삶은 싫단 말씀.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먹을걸 먹으면서 밤을 지새우려고 해. 늦은 밤에 너무 많이 먹으면 살 안 찌냐고? 그것도 문제이긴 한데, 옛날부터 빈약하기로 소문난 나에겐 그저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해. 그 때문에 내 주위 친구들은 날 보면서 만날 밥 좀 많이 쳐 먹으라고 욕짓거리거든? 그런데 말야, 사실 너희들보다 배 이상의 밥을 먹어요. 그런데 살이 안 찌는걸 나보고 어쩌라고? 이것도 다 내 복이라면 복이지만, 아주 좆 같다 이거에요. 나도 남들처럼 잠 잘자고, 밥 많이 먹으면 살 찌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단 말이야.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못 알아주고 자기는 살 안 찐다고 비아냥거린다고 때리는 네 놈들이 나쁜거야. 네들 귀에 그렇게 들리니까 그렇게 들리는거지, 나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고. 에이씨, 그때 생각하니까 또 기분이 더러워지려고 하네.
아무튼, 오늘도 잠을 잘 수 없는 나는 인근에 위치한 편의점에 들어왔다. 늘 즐겨먹던 삼각김밥이 요즘 들어 너무 물린다고 해야 할까? 옛날에는 누가 내 삼각김밥을 뺏어 먹기만해도 주먹이 날아가곤 했는데, 요즘에는 대신 삼각김밥을 먹어 줬으면 하는 기분이 들더라. 더군다나 오늘 같은 날에는 더욱 더.
" 어서 오세요. "
계산대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던 편의점 양반이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인사한다. 이봐, 이봐, 난 이미 이곳에 들어온지 꽤 됬거든? 인사할 필요 없으니까, 마저 보던거 보시라고.
편의점 냄새는 언제 맡아도 식감을 자극하는 맛의 천국이다. 대신 값이 더럽게 비싸서 그렇지, 이곳도 어찌보면 뷔폐라고도 볼 수 있는 곳이다.
오늘 밤 먹을 야식들을 찾기 위해 이런 저런 진열대를 오가던 중, 우연히 발견한 컵라면 하나. 럭키~! 요즘 내가 엄청나게 먹고 있는 라면인데 이 주변에는 아무데도 팔지 않아서 저 멀리 다른 동네까지 버스타며 가던 기억이 있었는데, 언제부터 이 편의점에서 이 컵라면을 팔고 있었지? 아무튼 오늘 밤은 이 컵라면으로 하루를 불태워보는거야!
" 48,210원이요. "
" 예? "
이게 무슨 발정난 개 거세하는 소리야? 뭔 라면 값이 5만원씩이나 들어?! 씨발, 이건 말도 안돼. 분명 내가 집은 라면은 10갠데 어찌 그런 금액이 나온단 말이야? 다시 세어봐도 10개, 또 한 번 세어봐도 10개인데. 더군다나 가격은 다른 라면에 비해 월등히 낮아서 내가 즐겨 먹는 이유 중 하나였는데, 어찌하여 그런 금액이 나온단 말이야?
" 여봐요, 지금 저랑 장난해요? "
" 아닌데요. "
" 어떻게 라면 10개 산 값이 담배 3보루 값과 비슷해요? 씨발, 누군 눈 뜬 장님으로 아나. "
" 전에 하신 외상 값이랑 합쳐서 센 가격인데요…. "
" …예? "
아, 그리고보니 전에….
" 야, 야, 야, 야, 야, 야, 야, 야, 야, 야. "
이 새끼는 아가리에 모터를 달았나, 드럽게 쫑알거리네.
" 나, 배고픈데. "
니 배고픈걸 나보고 어쩌라고요. 아, 그냥 집에 혼자 갈걸 그랬나.
" 저기 편의점 가서 맛있는 것 좀 사주지? "
" 지랄한다. 그 돈으로 우리 밍밍이 줄 개껌을 사는게 더 낫겠다. "
뭔 빽 믿고 나한테 그딴 말을 하는거냐, 네가 제정신이냐.
" 너, 전에 나한테 돈 빌린거 있었지 아마? "
….
" 그런 적 없었는데요. "
" 하하, 이런 피노키오 같은 녀석 같으니라고…잘 생각해보라고. "
기억이 안 난다고.
" 내가 반으로 낮춰 줄테니까, 뭐 좀 먹고 가자. "
" 나, 지금 돈 없는데…. "
" 하하, 이 순진무구한 친구 같으니라고, 그럴 때를 대비해서 ' 외상 ' 이란게 있지 않은가? "
" 나, 별로 저 편의점이랑 안 친한데…. "
" 하하, 이런 어리숙한 녀석 같으니라고, 요즘 세상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그깟 외상 하나 못 해주겠어? 자자, 그러지말고 가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네가 이런 행운을 맞이하겠냐. "
행운 같은 소리하고 있네…. 널 만난게 내 인생의 불행이다.
씨발, 그때 그 새끼가 쳐 먹은 것만해도 3만원 어치 정도는 될거다. 어찌 인간의 위장이 그렇게도 늘어날 수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광경이였다. 그 자식 쳐 먹는 속도에 멍해가지고 쳐 먹지 못한게 그렇게 도움이 될지는 그때는 상상치 못했다. 하지만 지금되서 보니까 그 새끼를 멍 때리고 바라본게 도움이 될줄은….
" 안녕히 가세요. "
피 같은 돈 5만원을 건네고 받은 돈 1,790원. 이 돈으로 어찌 일주일을 버틴다냐….
암담한 현실에 눈이 돌아버릴 지경이다. 지금 주변에 내가 아는 놈들을 만나면 배때기에 라면빵을 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지만 그 빌어먹을 자식들은 내가 사는 동네에서 17 정거장이나 먼 곳에 서식하고 있으니, 그놈들에겐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나한테는 스트레스를 팍팍 몰아주는 요인에 불과하다.
밤길을 걷는 나의 발목에 시린 통증이 동반한다. 안 그래도 쌀쌀한 가을바람에 슬리퍼를 신고 온게 문제였다. 집 나올 때는 바람 한 점 안 불어서 금방 다녀오면 될거라 생각했는데, 편의점을 나서자마자 바람이 쳐 불고 지랄이야, 지랄이.
" 으흐흐흐흐…. "
슬리퍼만 신었으면 다행이지, 반팔, 반바지까지 입고 온 내겐 가을바람은 너무나도 섬뜩한 존재였다. 나의 겨드랑이와 가랑이, 그리고 발가락 사이로 숑숑 흘러 들어오는 바람에 금방이라도 오줌을 찔끔 흘릴 뻔 했다. 평소에 추위와 더위를 엄청나게 잘 타는 나는 봄과 가을을 제일 좋아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봄과 가을도 싫어지는게 흠이다. 그냥 아무 날씨가 우리 집 방 안처럼 포근했으면 하는게 나만의 바램이다.
추위에 못 버텨 양 겨드랑이에 팔을 끼고, 다리를 부비부비하며 걷는 내 모습이 이상했는지, 귀에 이어폰을 꽂고 흥얼거리던 한 여성 분이 나의 모습을 보곤 흠칫 놀라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씨발, 나도 당신 얼굴보고 오줌 지릴 뻔 했으니까 피차일반이야.
" 아오…뭔 놈의 날씨가 더럽게 차갑네. "
계속 말을 했다간 나오는 말이 ' 씨발 ' 밖에 없을 것 같아서 입을 다물긴 하는데, 입을 다무니까 입이 간지럽다. 아오, 씨발 빨리 집에 들어가는게 좋겠다. 평소에는 엄청 가깝던 집이, 오늘따라 더럽게 머네, 그냥.
" 으히이힛히. "
뭐여, 저건.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내 옆으로 낯 익은 사운드가 들려오며 나의 앞에 모습을 나타낸다. 검은 실루엣 사이로 보이는 낯 익은 얼굴, 그 뒤로 감춰진 그의 모습에 들고 있던 봉지를 땅에 떨어트린 나는 그대로 경직되버릴 수 밖에 없었다.
" 다, 당신은…. "
P.s : 그냥 한 번 써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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