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이미 이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루에르- 영원의 신념 -2 - 10" 로라…. "
" 두 번 말하지 않을게요…그냥 들어주기만 해주셔도 되요…. 그러니까…그러니까…. "
' . '
" 절…도와줘요. "
….
“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 ”
란, 너와의 약속, 이제서야 지킬 수 있게 된 것 같다. 많이 기다렸지,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말이야, 너를 너무 기다리게 한 것 같아. 그저 바라만 보고만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어. 정말로 로라는 내 보살핌을 받으면 안되는 녀석이였어…네가 죽던 그날,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했는지, 왜 하필 나한테 그 말을 남겼는지…이제야 알 것 같다. 너는…라셀 그 이상으로 날 믿었던거야. 이 씻을 수 없는 참혹한 현실에서, 로라를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남자로 본거야…. 그런데 나는 그런 너의 마음도 모르고, 그저 마음만으로 로라를 위한다고 했어. 사실 내가 한 행동 중엔 로라를 위로해줄 수 있는건 아무 것도 없는데도 말이야. 미안하다, 란. 이제서야 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어. 정말로 네가 바라던 삶이 무엇인지, 그토록 니가 절실히 원하던 삶이 어떤건지…. 난 할거야, 너의 의지를 이어서, 이 세상을 위해서!…그리고….
" 나를 위해서…. "
그날, 나는 이처럼 운 적은 별로 없었을거다. 그때 나의 심정은 나 또한 놀란 모습이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의 오열이 그토록 나의 가슴을 자극할지 몰랐다. 로라의 눈물을 몇 번이나 맛보았음에도, 이때 내가 눈물을 보인 로라를 보니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끓어오르는 분노, 참을 수 없는 불의, 금방이라도 그 남자에게 달려가 그 남자를 쓰러트리고 싶은 나의 굴뚝 같은 마음. 이 방아쇠를 당긴건 로라였다. 나 자신도 망설이던걸, 로라는 단숨에 잡아 당긴거였다.
" . "
문득, 전에 라셀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왜 이런 상황에 들이 닥쳐야만 그런 긴박한 상황이 떠오르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지만, 그럴 때마다 샘솟는 나의 기억 조각이 나의 머릿속에서 퍼즐을 맞추는 것도, 이때가 아니면 절대로 다시 맞출 수 없는 조각이기 때문이다. 난 스스로를 잊고 있었다. 나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며 그저 흘러가는대로 가기만 한다면 모든게 끝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였다. 다른 이들이 움직인다 한들, 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저 나는 고여있는 웅덩이에 불과하다. 언젠간 자신이 메마를 날이 올걸 알면서도 그 자리에 멈춰있는 물 웅덩이. 그 모습이 흡사 나와 같아 보였다. 하지만 지금엔 달랐다.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정하는 것보단, 내 자신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게, 내 한계를 이 세상에 한 번 맞춰보겠다고, 설령, 나의 뼈가 으스러지고 다시 움직일 수 없는 빈사의 상태가 된다해도, 이번만큼은 꼭, 이 목적을 달성하고 싶다.
“ 미안해, 루에르…. ”
“ 루에르 씨…. ”
난…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사과한 적이 없다. 그저 나 자신이 잘난 줄만 알고 뻐팅기기만 하던 바보였다. 정작, 사과를 받아야하는건 내가 아닌 자신들이란걸 잘 알면서도, 그런 나의 비유를 맞춰주기 위해, 나와의 사이가 흐트러지지 않기를 위해서, 스스로 내던진 나에 대한 사과, 그리고 이럴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비웃는 나를 보면서 늘 느꼈다. 사과를 받아야하는건 내가 아니야, 사과를 하는 너희들이 사과를 받는게 마땅하다고…!! 그걸 알면서도 왜 너희들은….
“ 이 세상을 구하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쿠피디타스의 봉인, 그것으로 이 세상은 구제 받을 수 있다. 봉인을 하기 위해선 봉인을 해야하는 쿠피디타스와, 봉인되어야하는 쿠피디타스, 두 종류가 필요하다. 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이 닥치면 봉인을 해야하는 쿠피디타스는 2개가 될 수도 있고 3개가 될 수도 있다. 그것들을 한꺼번에 상대하려면 너로서는 무리일거야. 하지만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해.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이 보름달이 되는 날, 이 일의 시발점(始發點)이 되었던 곳으로 쿠피디타스를 가지고 가는 수 밖에 없다. 단, 하나의 쿠피디타스도 빠져서는 안돼. 모든 쿠피디타스를 한 번에 들고 가야한다. 만약, 모든 쿠피디타스가 모이지 않는다면 봉인을 실패하는건 물론이고, 다시는 이 세상을 볼 수 없을거다. 즉, 이 세상은 멸망한다. 우리가 아는 멸망이 아닌, 그 이상의 비극을 낳고는…. ”
그 이상의 비극…하지만 지금 이 이상의 비극은 없다. 평화로운 삶에서 행복한 하루를 만끽해야하는 로라와, 그런 로라와 함께 자신의 마을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로라,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며 그런 어머니를 사랑하는 레안…. 그런 세상이 되어야하는 세상이 오직 쿠피디타스로 인해 처참히 붕괴했다.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리오크를 죽인 레안의 잘못도 아니고, 그의 협박에 못 이겨 스스로 자신의 친한 친구를 죽이려 했던 남자의 잘못도 아니다. 쿠피디타스에 눈이 멀어 로라를 죽인 마키의 잘못도 아니다. 그 누구도 죄를 짓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행한 행동들이 아니였는가? 아무 말 없이 이 세상을 마음대로 멸망시킨 쿠피디타스의 죄일 뿐, 그들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기 위한 일이였잖아? 그런데…단순히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그들에게…그런 결과를 낳는…쿠피디타스가 있었기에 이런 결말을 낳을 수 밖에 없었잖아…. 단순히…그런 것 뿐이잖아…. 다들…그렇잖아…. 그런 우리들을…왜 우리 스스로가 증오해야만 하는거냐고…. 대체 왜….
" 루에르, 내가 전에 말했던거 기억나? "
울타리에 걸쳐 앉아 대화를 나누던 라셀이 내게 물었다. 나는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는 전에 내게 했던 말들 중, 쿠피디타스를 봉인하는 방법 중 모조리 한꺼번에 봉인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내게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전에 라셀이 했던 말이 떠올랐고, 그런 방법이 있었다는걸 다시금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라셀을 보며 긴 한숨을 내쉬면서 그에게 말했다.
" 하지만, 우리가 찾지 못한 쿠피디타스가 있잖아. 그게 없다면 절대로 봉인은 성공할 수 없잖아. "
" 그래서, 내가 널 선택한 이유야. "
" 뭐? "
" 너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
"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니? 난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해, 아무런 힘도, 아무런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난 아무 것도 해낼 수 없다고…. 그러니 이번 일도 나에게는…. "
" 루에르, 너는 누구지? "
" 뭐? "
" 네 자신이 누구냐고. "
"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누구냐니…. "
갑작스레 이상한 말을 꺼내는 라셀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나. 그는 그런 나에게 계속해서 나의 정체를 자꾸만 내게 되물었다. 그에 계속된 물음에 잠시 말문을 닫고 있던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며 라셀에게 말하였다.
" 난…. "
그때, 라셀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그래…루에르다.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남자, 너는 루에르다. "
…!!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유일한 남자…루에르.
나라면, 이 참혹한 세상을 뒤바꿀 수 있다. 그 누구라도 슬퍼하는 사람이 없는, 행복한 낙원을 만드는게 나의 꿈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이 처음 멸망하던 날, 나는 이 세상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것을 보곤 한동안 먹지도, 자지도, 움직이지도 않는 말 그대로 속박의 굴레에 잡혀 있었다. 그 누구도 나를 보고 달려와주지 않았다. 왜냐면 내 주위엔 나를 제외한 그 어떤 생명체도 남지 않았으니까, 산산조각이 난 건물 잔해들 사이로 멍하니 이 세상을 공허하게 흘러 보내고 있던 내게는 아무런 의욕도,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 수록 짙어지는 캄캄한 시야, 고요히 불어오는 바람의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던 그때, 누군가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세상이 멸망한 이후 처음 느껴보는 온기로 나의 얼어 붙은 마음을 녹여내렸다.
“ 정신이 들어? 정신이 드냐고! ”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거지. 여긴 저승이 아니였던건가? 여긴 아직 지구란 말인가?“ 정신이 들었으면 말 좀 해봐! ”정령, 내 앞에서 나의 뺨을 두들기는게 귀신들이 아니라 사람이란 말인가? 그 말은 아직 이곳에 생존자가 있다는 말인가?“ 너. 너는 … 누구지? ”나는 가까스로 떨리는 입술을 가다듬도 그에게 말을 걸었고. 그는 나의 말에 활짝 함박웃음을 지으며 큰소리로 만세삼창을 외친다. 그런 그를 나는 떨떠름하게 쳐다봤다.“ 다행이야 …. 난 또 혼자가 될까봐 … 두려웠어. ”그는 눈물이 그렁 그렁 맺힌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땅바닥에서 꼿꼿히 누워있던 나는 부들거리는 두 팔로 몸을 지지하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주일만이다. 이 대지에 두 발로 서있게 된 것이. 그는 한쪽 손으로 쓰윽 눈물을 닦곤 제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손을 내민다.“ 내 이름은 로빈이야. 네 이름은? ”…….루에르. 이 세상을 유일하게 구제할 수 있는 남자, 루에르다P.s : 이 노래만 듣고 있으면, 자꾸만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쓸 때 감동적인 부분만 쓰게 되더군요. 아마 마지막 편은 꽤나 슬를 듯 싶겠네요. 물론, 그걸 느끼는 독자, 그들 자신이겠지만 말이에요. 앞으로 5편, 즐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