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이미 이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루에르- 영원의 신념 -2 - 12“ 내가 아버지를 다시 만났을 때는, 이미 모든게 뒤틀려있던 상황이였다.
" 너…나와 함께 죽고 싶은거냐?! "
" 그럴 수 밖에 없다면…너와 함께 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수 밖에! "
" 뭐, 뭐라고?! "
마키와의 대립관계를 형상한 아버지의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잠시 한 눈을 파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 뒤에 떨어진 쿠피디타스가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처음 보는 남자 하나가 멍청하게 서 있는 것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 루에르, 들리나? 나는 이제 이 녀석과 함께 이 절벽 끝으로 떨어질걸세. 그렇게되면 더 이상 그 메달을 노리는 자도 없어지겠지. 하지만, 그 메달이 이 세상에 남아있는 동안에는 몇차례나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될걸세. 그러니 그 메달을 박살내게.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산산조각을 내버리게! "
아버지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만을 하고 계셨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그는 그 남자의 손에 이 세상을 구하는게 먼저였던 모양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무 뒤에 숨어 말 없이 그 상황을 조용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 …부디, 내 딸…로라를 부탁하네. "
그때, 아버지가 낭떠러지에 몸을 던지기 전 남긴 그 한 마디가, 얼마나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지는 그분 또한 모를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남긴 이후에 벌어질 비극 또한 모른 채 말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보았다. 내가 있는 수풀 쪽으로 온화한 미소를 짓는 아버지를. 그분은 내가 있다는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고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를 보고 아무런 말도 없이 포근한 미소로 나를 바라봐주는 아버지의마지막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 안돼!!! "
아버지를 향한 나의 절규가 마우리스 산에 울려 펴졌다. 힘 없이 풀리는 두 다리로 더 이상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촉촉하게 젖은 대지 위로 흘러 내리는 내 눈물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흙투성이인 땅을 손으로 쥐어 뜯으며, 바보 같은 나의 지난 행동을 반성하는 나의 모습을 차마 내 자신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
" 내 딸, 로라를 부탁하네. "
라는 말은, 그 남자에게 한 말이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하신 말씀이였다. 내가 그 남자의 밑에 있다는걸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계셨다는 눈, 그리고 그런 나를 꾸짖지도, 탓하지도 않는 그의 미소가 더욱 더 나의 가슴을 찢어 내렸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대해 잘 알고 있었음에도, 한순간에 일어난 충동 때문에 그런 아버지를 멀리 했다. 그분은 이미 그때부터 모든걸 알고 계셨을텐데…내가 이런 모습이 되는걸 바라지 않으셨을텐데…. 그런데도 아버지는…나를 절대 미워하지 않았어….
" …아버지…. "
난, 당신에게 위로를 받아도 마땅한 녀석이였단…말입니까? ”
" 그분은 알고 계셨다…내가 그런 행동을 하므로써 나에게 닥치는 불행을 막고 싶으셨던거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분은 오래 전부터 눈치채고 계셨지만, 차마 그런 나를 막을 수 없으셨다. 그분은 오랫동안 나를 봐왔기에 나의 성격이 어떠한지, 나를 막음으로써 내가 어떠한 행동을 보일지도, 그분은 이미 알고 계셨어. 나는 절대 나의 의사에 관해 신경 쓰지 않았어. 오직, 내 가슴 안에 뜨겁게 불타오르는 이 흥분을 가라 앉히기에 급선무였지. 그래서 난 보지 못했던거야. 그분이 내게 바랬던 진정한 모습을…. 그는 내가 죄를 짓지 않기를 빌었어, 죄를 짓는다면 자신이 짓겠다며 내게 무언의 말씀을 하신거지…. 하지만 나는 그런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분을 죽음으로 내몬 것도 순전히 내 탓이다. 내가 미리 그분의 마음을 눈치 챘더라면…그런 비극은…. "
레안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다시금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눈물을 흘렸다. 지금껏 오직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였다. 레안, 이 남자 또한 쿠피디타스로 인한 희생양에 불과했단 말인가…. 등 뒤로 훌쩍거리는 로라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런 레안의 심정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로라에겐 충분히 레안은 너무나도 여려져 있는 상황이였다.
" …그 누구보다 더 가슴 아파했던 사람은, 내가 아닌 본인 자신임을 알고 있었어도…자식인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이니 자신은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었겠지. 자신의 아픈 마음을 자식에게 내색했다간, 내게 닥칠 엄청난 슬픔을 그 자신은 볼 수가 없었던거니까…하지만 그런 그분의 마음도 모르고…나는 나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해왔다. 그게 아버지가 사랑했던 여자인 로라였더라도 말이야. 하지만 그분은 어머니를 잊지 않았다. 잊을 수 없었기에 그분은 로라와 혼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방법이자, 최선의 선택이였을테니까…. "
대체…언제부터였을까, 이런 상황이 익숙해지는게. 처음에는 너무나도 당혹스러웠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위로를 해야하나? 아니, 난 그런걸 해본 적이 없어. 혹시나 나 때문에 우는건가? 사과를 해야 할까? 아니 할 수 없었어. 나는 다른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할 수 있는 표현임에도, 나는 그게 너무나도 어려웠어. 그래서 나는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게 사과조차 할 수가 없었어. ' 미안해. ' 이 한 마디면 모든게 끝났을텐데도….
“ 미안해 루에르…. 나 때문에 네가 상처를 받은 것 같아서 미안해…. "
아니, 사과하지마. 왜 네가 사과하는거야.
“ 미안해, 루에르. 정말…미안해. ”
하지마, 하지말라고, 왜 네가 나한테 사과를 하는거야!! 정작, 사과를 받아야하는건 너잖아. 너가 나한테 사과를 받아야 마땅할 상황이잖아!! 그런데, 그런데 왜 네가 사과하는거야? 왜 나 때문에 상처 받은 네가 사과를 해야 하냔 말이야!!!
「 털썩 」
" 부탁한다. 제발…날 도와줘. "
" 그게 무슨…. "
" 너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잖아…. 너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제발…나 좀 도와줘라…루에르. "
…!!
내 이름을…알고 있다?
" …부탁할게요. 부디, 저 불쌍한 아이를 도와주세요. "
" 로라…? "
눈물을 흘리고 있던 로라가 내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그녀는 한껏 얼굴에 미소를 가득 안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흘러 내리는 눈물을 자꾸만 자꾸만 훑어 내렸다.
" …살아 생전에 그이가 저한테 이런 말을 하셨더군요. 자신과 똑같은 목적을 가진 친구가 나타났다고…. 이 세상을 위해 미래에서 온 친구가 있다며 기쁜 얼굴로 하며 말씀하시더군요. "
란이…?
" 그분은 정말 기뻐하셨어요. 자신이 없어도 이 세상을 대신해 지켜줄 상대가 나타나서 다행이라고 하시면서, 그리고 그날 란은 다신 돌아오지 않았어요. 붉은 노을 위로 떨어진 한 송이의 꽃이 되어 사라지셨죠…. "
란이…로라에게 그런 말까지 했다는건가? 내가, 이 세상을 구할거란 말을…그리고, 자신의 죽음도 미리 예측하고 있었단 말인가….
"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땐, 저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당신이 그이가 말한 남자라는 사실을 몰랐어요. 그저 이곳 저곳을 누비며 생활하는 방랑자로 생각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알 수 있었어요. 당신이 루에르라는걸. 란이 말한 남자가 바로 당신이란걸 말이에요. "
" 그걸 어떻게…. "
" …당신 가슴 속에 숨겨져 있는, 다른 하나의 쿠피디타스. "
" 에? "
" 그것이 당신이 루에르라는걸 증명해주더군요. "
내 안에 숨겨진, 또 하나의 쿠피디타스…?
" 이제야…모든 진실이 밝혀졌군…. 생각보다 꽤 걸렸는걸…. "
라셀?
" 크흑…그런데, 너무 늦었잖아…? "
" 라셀…! "
죽은 줄로만 알았던 라셀이 입을 열었다. 그토록 심한 공격을 당했음에도 꿋꿋하게 살아있는 라셀을 보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라셀은 자기를 보고 웃는 나를 보곤 기분이 썩 좋지는 앉은지, 뭘 웃고 앉았냐며 덩달아 미소를 짓는다.
" 알겠나, 루에르. 이 세상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우리가 알던 기억과는 전혀 상반된 모습이지…하지만 이렇게 된건 레안이나 다른 이들의 잘못이 아니야…그들은 그저, 앞에 놓인 희망을 잡기 위한 발버둥에 불과해. 그들이 절실히 원하는건 이런 모습이 아닌, 그저 평화롭던 날들이 계속 이어져가기를 바라고 있어. 왜냐면 그들은 그때의 생활을 정말로 행복했다 생각하거든…. 물론, 지금 이 상황을 보면 씁쓸한 상황이지…. "
다친 상처가 아픈지 미간을 찌푸린다. 그들에게 모질게 공격을 당한 라셀의 몸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그곳에 도착했다면 라셀은 물론이고, 다른 수색꾼들 역시 무사했을텐데….
" 그렇지만, 루에르. 너무 늦진 않았어, 지금이라면 충분히 되돌릴 수 있어. 그렇지만 그러기 위해선 너의 힘이 필요해. "
" 하지만, 아직 네가 말한대로 남은 쿠피디타스를 찾지 못했어. 검은별과 붉은 태양은 찾았지만, 나머지 한 개의 쿠피디타스는…. "
" 루에르. "
" 응? "
라셀이 진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불렀다. 나는 갑작스레 진지해진 분위기에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라셀을 쳐다봤다.
" 루에르 이미 너는 그 쿠피디타스를 찾았어. 그러니 이제 준비는 완벽해. "
" 완벽…하다고?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준비가 되었다니? 나한텐 그 쿠피디타스가 있을리가. "
그 순간, 바르르 떨며 괴로워하던 라셀의 손이 나의 가슴을 가리켰다.
" 바로, 여기에 있잖아…이 바보야. "
" …뭐? "
" 네가…나머지 쿠피디타스라고. "
" …에? "
무,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라셀. 내가 쿠피디타스라니? 그들에게 너무 얻어 맞아서 머리를 다친거냐?!
" 너는 이미 그 쿠피디타스를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었다. 단지 그 능력이 재 힘을 되찾은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
" 그, 그게 무슨 말이야…? "
" …네 안엔, 그때 죽은 루에르의 영혼이 담겨져 있다. "
…!!
내, 내, 내 안에…죽은 루에르의 영혼이 있다고…?P.s : 앞으로 3편,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꾸준히 달려와주신 독자님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