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잔병> - 1 -
〃아인, 믿어줘. 그건 우리가 그런게 아니야. 우리가 안 그랬어!〃
돌아가는 발걸음 내내 머릿속에서 가르톨이 한 말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뭐 나야 그 녀석 앞에서는 믿는다는 말은 했지만서도 의문이 가시지 않는게 영 마음에 걸린다. 그 녀석 말대로 그들이 공격을 하지 않았다면 대체 그들은 누구에게 공격을 당했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하나 같이 완벽한 단절선을 내고 잘렸으니 말이야. 어찌보면 그들의 손톱이 아니라고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정교한 잘림이다. 그리고 내가 레오스 숲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들은 이성을 놓아버린 때였다. 뭐라 말해도 이 사실은 명백하다. 그렇지만 그 녀석의 짓이라고 단정 짓기엔 너무나도 의심이 가기에 쉽사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녀석에 뭐라도 하나 물어보고 왔으면 좋을련만, 그때는 그냥 그 녀석 머리털을 가지고 가야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다행이 주군은 내 말을 믿는 것 같아서 다시는 그 숲에서 해괴한 소문은 들리지 않을테지만, 그들을 해친게 그 녀석이 아닌 또 다른 ' 누군가 ' 라면…. 꽤나, 골치 아픈 사건이 되겠군….
"아인님!"
밖으로 나서는 나를 불러세우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주군의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어야 할 남자가 허겁지겁 내쪽으로 달려온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주군께서 뭔가 내게 남기신 말이라도 있는걸까?
"무슨 일이죠? 주군께서 제게 남기신 말이라도 있으신겁니까?"
숨을 헐떡거리는 그를 향해 묻자,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나를 바라본다.
"그, 그런건 아니지만…필시 아인님께서 아셔야 할 일이 있어서요."
"뭐죠?"
"그게 말이죠…."
뭔가를 망설이는 듯한 그의 모습에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며칠 전, 주군께 날아온 한 통의 편지가 있었습니다."
"편지…말입니까?"
주군께 보낸 편지라면 아마 다른 마을에서 보내온 전갈 같은거겠군. 그런데 그게 왜 나랑 상관이 있다는거지?
"그 편지엔 주군에게 보낼 편지지 이외에 다른 물건이 들어 있었습니다. 원래라면 주군께 갖다드려야하지만 이 부근에서 처음보는 나그네가 건네준 편지라…. 주군에게 건네기 전 제가 잠시 들여다보았는데 이런게 있더군요."
그는 편지 안에 들어 있었다는 뭔가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내게 건네준다. 그에게 물건을 건네 받은 나는 잠시 놀란 표정으로 물끄러미 그 물건을 바라봤다.
"…이게 편지와 함께 들어 있었다는 말입니까?"
"그러한데, 왜 그러십니까? 안색이 갑작스럽게 안 좋아지셨습니다."
혹시나하는 생각에 잠시 근심을 두었던 탓인지 나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걱정스러워보인다.
"지금 그 편지를 가지고 계신다면, 잠시만 제가 볼 수 있을까요?"
"예? 아, 안됩니다. 아직 주군께서 확인하지않으셨고, 그 편지 안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
난처한 듯 우물쭈물대는 그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편지를 전해준 남자를 어디서 만났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뭐, 그건 어렵지 않지만…."
뭔가 말하기가 꺼려지는 듯한 표정을 짓는 그 남자를 보며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슬쩍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이 주위에는 우리의 얘기를 듣는 자는 없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이 남자는 무언가를 의식하고 있는 모습이였다. 이건 내 추측이지만, 만약 이자에게 편지를 건네준 자가 레오스 숲과 무슨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는건 분명히 이 나라와 다른 마을 사이에 균형이 흐트러졌다고 볼 수 있겠지. 그렇다는건 조만간….
"…."
내가 너무 앞서가는걸까, 그래 그럴거야. 괜히 성격이 예민해져서 이런 생각을 하는걸지도 몰라. 정신차려라 아인, 이미 그날은 오래 전에 있었던 일들일 뿐이다. 다시 일어날리는 없다고. 그러니까 너무 일찍이 그에 대한 생각으로 현혹되지 말자고.
"말씀하시기 어려우시다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단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물어본 것뿐입니다."
"아니요, 아인님이 그러시는 이유를 알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도 가끔 가다가 그날의 기억 때문에 조금은 우울해지거든요."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자도 그때 나와 함께 참전한 남자였으니까, 충분히 내 기분을 이해할지도 모른다. 단지 그날을 기억하지 못하는건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백성들 뿐, 더군다나 그날 참전한 전사들에 대부분은 전장터에서 전사했으니까…이자와 나 그리고 지금은 없지만 나와 함께 이 마을을 위해 싸웠던 ' 베르에트 ' 만이 알고 있을테니 말이다.
"꼭 돌아올테니, 걱정하지말라고."
웃으면서 말하던 그 녀석의 얼굴이 별안간 떠오르는 것도 갑작스러운 옛 기억 때문일까, 왠지 씁쓸하면서도 그리운 듯한 향수에 잠기는 듯하다.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그가 나의 어깨를 살짝 붙들며 나의 발길을 멈춘다. 나는 의아한 듯 그를 바라봤다.
"하실 말씀이라도…?"
"레오스에 있습니다."
"네?"
"제게 편지를 전한 남자를 만난 곳은 레오스에 있었습니다. 그는 전부터 레오스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더군요. 혹시나하는 마음에 슬쩍 그자를 떠볼까하는 생각으로 다가가니 역시나 제게 편지를 건네주더군요. 만약 그자를 찾아가실 생각이라면 레오스로 가보시는게 좋을 듯 싶습니다."
방긋 웃으며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살짝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반쯤 숙였다. 레오스라면 이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 작은 마을이다. 우리 마을보다 백성의 수도 적고, 무역활동 또한 아주 적은 수치에 이르는 곳, 그러나 이상하게도 다른 마을보다 세력이 제일 강한 마을. 그곳의 주군이란 자가 아마 ' 주르트 라이드 ' 라고 했었나? 우리 바티칸 마을과 제일 가까운 마을이자 극심한 힘의 차이를 보이는 곳, 그런 곳에 그자가 있었다는 말인가….
"알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그 남자는 바삐 발걸음을 움직여 주군이 계신 장소로 돌아갔다. 나는 그가 떠난 자리에 잠시동안 머무르면서 그가 남긴 말들을 조목조목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자가 그에게 편지를 준건 며칠 전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레오스 숲에서 불길한 소문이 돈 것 또한 그 시기와 엇비슷할거다. 내 추측이지만, 만약 주군에게 편지를 전하려던 그자가 레오스 숲에서 일어난 사건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저 근거 없는 비슷한 측면으로 바라본 추측이지만, 그렇다고해서 거의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정말로 그자가 레오스 숲과 관련되있다면 왜 그자가 멀쩡한 그들을 깨우고 사람들까지 헤쳐야할 이유가 뭔지, 또한 그 남자가 왜 주군께 편지를 보냈는지, 그리고 왜 그 편지 안에 이런게 들어 있었는지, 이 모든걸 설명해야할거다.
『』
마을에서 약간 먼 곳에 위치한 언덕으로 놀러간 나와 아리아 그리고 베르에트, 날씨는 화창, 구름은 물 흐르듯 금방이라도 두 뺨을 뜨겁게 달군 땀을 슬쩍 닦아줄 것만 같았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실은 우리들은 한 손에 빨대를 꽂은 바나나 우유를 들고는 아무 말 없이 쪽쪽 빨며 하나 같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화로운 나머지 따분했던 일상에 잠시나마 활력소를 돋우다고 해야할까?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여느 때와 같았지만 오늘은 혼자가 아닌 셋이라는 것 때문인지 어깨가 움찔거린다.
"으으음~♬"
한쪽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아리아, 잔디 위에 배를 깔고 두 손으로 턱을 괸 채로 꽃을 쳐다보고 있는 그 녀석을 보며 나는 살짝 콧방귀를 끼었다.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베르에트가 갑자기 깊은 한숨을 내쉰다.
"…하아."
막연한 한숨이 그 녀석의 얼굴 주위로 분산된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무언가에 대해 심히 걱정되는 표정을 하고 있는 그 녀석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평소에는 방실방실 웃으며 아리아와 함께 나를 골탕 먹이던 녀석이 갑작스레 저런 진지모드를 하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적응이 안된다. 나는 슬쩍 베르에트가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려 그를 쳐다봤다. 다리 위에 팔은 얹어 턱을 괴고 있는 그 녀석을 보아하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쉬어진다.
"왜 갑자기 한숨들이야? 어린 나이에 한숨 쉬는 버릇, 별로 안 좋아."
맥이 끊어지는 한숨 퍼레이드에 아리아가 나와 베르에트를 번갈아가며 노려본다. 그 말에 베르에트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쉰다. 그 모습에 아까 전부터 신경이 쓰였던 나는 베르에트를 쳐다보며 물었다.
"베르에트,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아까부터 안색이 별로 안 좋은데."
"아무 것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
아무 것도 아니라며 시선을 회피하는 베르에트를 나는 의심쩍은 눈초리로 그를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단지, 조금 가슴이 답답할 뿐이니까…."
말을 마친 베르에트가 또 다시 크게 한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미안해, 오늘은 이만 돌아갈게. 내일 보자."
내일 보자는 말 한 마디를 한 뒤 그대로 몸을 돌려 마을로 향하는 베르에트를 우린 멍하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그 녀석이 우리에게는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마을로 돌아 갔다는게 조금은 의아스러울 따름이였다. 평상시에는 사소한 일이 생겨도 쪼르르 달려와서 참새마냥 짹짹거리는게 듣기 싫을 정도였는데, 그런 녀석이 갑자기 저런 차마도(=차가운 마을의 남자)로 변한게 당황스러울 뿐이다. 더군다나 저런 모습이 며칠 전부터 계속 되었다는걸 알기 때문에 그 녀석에 대한 걱정이 커지는게 당연할 수 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풀밭에 앉아 여유로이 휴식을 만끽하려던 베르에트 때문에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그 녀석이 떠난 뒤 우리들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멍하니 그가 떠난 자리를 쳐다보며 앉아 있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결에 따라 흔들거리는 꽃을 뒤로 한 채, 아리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말했다.
"이만 돌아갈까? 날도 곧 있으면 저물 것 같은데."
"뭐, 그럴까."
바지에 묻은 흙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와 아리아는 베르에트가 떠난 길을 따라 천천히 마을로 향하였다. 마을로 돌아가는 중에도 우리들은 베르에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녀석이 없는 자리에서 그 녀석의 이야기를 꺼내봤자 뒷담화로 밖에 보이지 않을테고, 그 녀석의 행동을 보아하니 조만간 그 녀석이 한바탕 소동을 일으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인지 마을로 돌아가는 내내 우리들은 그저 침묵을 유지할 뿐이였다. 둘이서 나눌 수 있는 사소한 대화는 오늘따라 조심스럽게 이어지는 듯 싶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자 나는 평소와 똑같은 모습으로 집 밖을 나섰다. 역시나 여느 때처럼 분주한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천천히 그들 사이를 지나가며 베르에트가 있는 목공소로 향했다.
"여, 베르에트."
문 밖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베르에트를 발견한 나는 정답게 손을 흔들었다. 한쪽에서 망치로 열심히 나무를 두들기던 베르에트가 나를 발견하곤 씨익 웃으며 나를 반긴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뭐 사러 온거야?"
"사러 오긴, 그냥 너 만나러 온거지."
"그래? 그럼 조금만 기달려, 이것만 끝나면 시간이 좀 비니까."
"그러지 뭐."
나는 잠시 베르에트가 안으로 들어간 사이에 슬쩍 베르에트가 만들고 있던 물건을 쳐다봤다. 뭘 그리 열심히 만드나했더니 왠 작은 나무 상자 하나가 떡하니 놓여 있다. 귀고리를 담는 상자일까? 아님 목걸이? 일단은 액세서리를 넣는 용도로 쓰이는건 분명할텐데. 그런데 이걸 여기에서 팔았었나?
"오래 기달렸지? 이거 받아."
활짝 웃는 베르에트가 건넨건 작은 육포였다.
"왠 육포?"
"요근래 입이 심심하길래 한 상자 사왔지."
"그래?"
"그런데 무슨 일이야? 아침부터 날 찾아오고."
"왜, 내가 아침부터 찾아오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냐?"
"아니, 뭐 그런건 아니지만 이상해서."
"이상하긴…."
그나마 다행이다. 어제보단 베르에트의 얼굴이 활짝 핀 것 같아서. 그간 고민했던 근심들이 싸악 가신걸까? 오랜만에 보는 미소에 덩달아 내 입가에도 자그마한 웃음이 번진다.
"그런데 저 상자는 뭐야? 이번에 새로 파는 물건이야?"
"이거? 그냥 심심해서 만들어 본거야. 마땅히 시간도 널널해서."
"심심해서 만들었다고 보기엔 엄청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던데?"
"그래? 하하, 그런가…."
이 녀석, 뭔가 이상하다. 아까부터 실 없이 웃는 것도 그렇고, 말 끝마다 뭔가 스스로 억누르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내게 무언가를 말할려는 눈치이긴 한데,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 같다.
"왜 그래? 뭐 할 말이라도 있는거야?"
"어?"
"아까부터 뭔가 망설이는 것 같던데, 뭐야? 할 말 있으면 말해, 너답지않게 왠…."
나는 말을 하려다 이내 말을 멈추었다. 나를 바라보는 베르에트의 표정이 너무나도 쓸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이상했다싶었지만 이정도까지 심할지는 생각도 못했기에 그에 달하는 충격이 조금은 짜릿하게 느껴졌다.
"너…."
"나, 잠시 떠날려고."
머뭇거리던 베르에트가 이내 결심을 했는지 말문을 열었다. 베르에트를 쳐다보던 나는 그의 말에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 이내 살짝 놀라며 그에게 물었다.
"떠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며칠 전부터 생각해봤어, 이대로라면 이 마을도 조만간 대혼란을 겪을지도 모른다는거, 그렇게 되면 이 마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거. 마냥 지켜볼 수 만은 없잖아?"
베르에트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차마 나를 향해 웃고 있는 베르에트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아무 걱정 없이 편안 미소를 짓고 있는 베르에트를 보며 나는 반쯤 어이가 없다는 식의 웃음을 지어보지만, 한쪽에선 긴 탄식을 흘려 보내는 내가 있었기에 나는 그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줄 수 밖에 없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아직 이 마을은 물론이며, 다른 마을 또한 힘의 균형이 일정한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는걸. 자칫하면 한쪽으로 기울여져 큰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지만, 섣불리 전쟁을 일으키는 곳은 한 곳도 없다. 만약 누군가와 전쟁을 치루게 된다면, 이기는 곳과 패하는 곳 모두가 큰 피해를 입는걸 알고 있다. 어처피 이대로 있어도 서로 참견하지않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기에 그들은 위험천만한 도발을 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균형을 이루며 지내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속셈을 꾸미는 몇몇 마을들도 있기에, 누군가가 먼저 전쟁의 불씨를 지핀다면 한순간에 모든 마을이 초토화가 되버릴 수 있다는걸, 그저 그들은 자신이 세운 속셈을 행여나 들킬세라 이 아슬아슬한 평균대에서 수평을 이루고 있는 척을 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요즘 들어 각 주군들의 의견충돌이 일어나는 시기인만큼 전쟁이 발발할 확률이 매우 크니, 한시라도 마음 편히 있을 여유 따윈 없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서 갑작스레 이곳을 떠난다는 베르에트의 말에 적잖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너, 설마…."
"…응, 맞아."
"너, 그래서 며칠 전부터 그런 표정을 짓고 있던거냐?"
"…아인."
"너…정말…그래서 그런거냐…."
"…."
"…젠장."
벽에 기대어 육포를 뜯고 있던 나는 이내 입에 물고 있던 육포를 삼키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당혹스럽고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였지만, 차마 그 녀석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더 이상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일을 이제서야 마음을 잡았다는 듯한 그 녀석의 표정이 나는 무척이나 싫었다. 나와 아리아, 그 누구에게도 상의하지도 않고 모든걸 혼자서 끙끙 앓다가 결국엔 반 강제적으로 자기의 의사를 결정하고 이제서야 내게 그 사실을 전한 것이…무척이나 짜증나고 섭섭했다.
"왜…말하지 않았었냐. 어제, 어제라도 그 사실을 말했다면…이토록 황당하지는 않았을거 아니냐고…."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마냥 즐거워하는 너희들을 보고는 그런 말을 할 용기가 없었어."
"그래서 그런거냐, 그래서 그렇게 하루종일 그런 표정을 지었냐고…. 혼자서 모든걸 결정하겠다는 녀석의 의지가 그 정도 밖에 안된거냐? 정말로 네가 원한거라면, 정말로 네가 바라던거라면, 웃으면서 함께 있을 수도 있었잖냐…. 왜 하필, 아리아가 있는 자리에서까지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냔 말이다…."
"…미안하다."
"결국, 넌 또 다시 아리아에게 상처 주는 일을 되풀이하는거잖아…. 그때 네가 나한테 뭐라고 했어? 두 번 다신, 아리아를 울리지 않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 약속이 채 1년도 되기 전에 이런 말을 해? 네가 정말 아리아를 위한다면 이런 짓을 하면 안되는거야!!"
끝내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분노가 폭발했다.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베르에트의 모습을 보니 더더욱 울화가 터져 흘렀다. 대체 네가 전생에 이 마을과 무슨 악연이 있었길래, 널 두 번씩이나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일이 반복되다니…. 대체 언제까지 너는 이 마을 위해 네 목숨을 희생할 생각이냐….
"…미안해 아인, 이미 나는 결심했어. 이 마을을 위해 싸우겠다고, 그러니까 이번에는 날 막지 말아줘. 부탁이다."
"너,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이번에도 널 막지 못한다면, 대체 나는 언제까지 네게 사죄를 하며 살라는 말이냐? 그때, 내가 널 막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테지, 그랬다면 너는 네 의사와 상관 없는 그런 곳에 갈 이유도 없었겠지…그러니까 이번에는 널 꼭 막을거다. 절대로 널 보내지 않겠어. 이건 너와의 약속이자, 아리아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그러니, 너는 아리아와 함께 있어. 내가 널 대신해서 그 역겨운 곳에 가줄테니…."
P.s : 즐감하세요.
게임 속 이야기
| 나는 작가가 될 테야! 글을 창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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