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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21:09

Noble Princess - 7

조회 수 671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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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날리는 꽃잎 - 1]

 

 닷새 째 계속된 숲의 풍경을 지나 드디어 길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이라도 할 듯이 껴안았고 환호를 내질렀다. 어제의 습격 이후 우울하게 걷다가 이제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레인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싱긋 웃었다.

 

 

  "모두 힘내라. 조금만 더 달리면 마을이 나올 것이다!"

 

  "오오! 레인 경! 슬프겠습니다! 오오! 드디어 반이나 왔으니! 공주님 불쌍해서 어쩝니까?"

 

  "뭐? 방금 떠든 놈 나와! 네 놈 등에 친히 내 롱소드를 꽂아줄테니까!"

 

  "이봐. 크론. 어서 나가."

 

  "뭐, 뭐? 나 아니란 말이야!"

 

 

  "그런 식으로 빈정거릴 녀석은 너밖에 없다 이말이다."

 

  "뭐, 이 자식이?"

 

  "허허. 역시 찔리시나보군."

 

  "이, 이 자식들이! 내 말을 무시하는 게냐!"

 

  레인은 그들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질렀고 그들은 낄낄거렸다. 제이크는 그의 어깨는 툭툭 두드리고는 갈 길을 재촉했다. 레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걸어갈 것을 명령했다. 그렇게 몇 분을 더 달리니 마을로 도착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활기참이 느껴졌다.

 

  "레인 경."

 

  "무슨 일입니까, 제이크?"

 

  "역시 어제 고블린들의 습격이 좀 껄끄럽게 생각됩니다."

 

  "제이크께서도 그렇게 느끼고 계십니까?"

 

  "가치. 대체 무슨 가치라는 걸까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이지? 대체 고블린 들이 왜?"

 

  그때 조용히 그 대화를 듣고 있던 크론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들 옆에 서서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역시 공주님의 출중한 외모에 반해서……."

 

  "너 정말 내 롱소드에 칼침 맞고 싶은 것이냐?"

 

  "왜요. 그 사실을 가장 알 아시는 레인 경께서."

 

  "우, 우리 공주님이 이쁘신 것은 맞지. 암."

 

  "팔불출이라니까."

 

  "윽. 공주님 신병이 위태로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장난이 나와!?"

 

  "어이구. 우리 레인 경 화나셨네. 네, 네. 알겠습니다."

 

  레인은 씩씩거리며 그를 째려보았고 크론은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제이크는 그 둘을 향해 난감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게 몇 분을 무표정하게 있던 크론이 말했다.

 

  "이런 말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들었던 이야기를 하나 할까합니다."

 

  "무슨 이야기지?"

 

  "이 세상에는 세계를 관장하는 무엇인가가 존재합니다. 뭐, 흔히들 말하는 신이겠죠. 빛과 운명의 신 루멘, 어둠과 우연의 신 칼리고. 당신도 알다시피 이 세계를 관장하는 두 신이죠. 그 아래로 물의 신 아쿠아, 불의 신 이그니스, 바람의 신 웬투스, 땅의 신 테라가 있죠. 그리고 한분이 더 있죠."

 

  "하나가 더 있다니?"

 

  "뭐, 한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섯 딸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하나는 모릅니다."

 

  "다섯 번째 딸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어. 빛과 운명, 어둠과 우연, 물, 불, 바람, 땅만으로도 이 세계는 충분히 조율되고 있어."

 

  "어, 그건 그렇습니다만 역시 다섯 번째 딸이 있기에 가능한거죠."

 

  레인과 제이크는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에 빠진 듯 합니다. 레인 경."

 

  "크론. 혹시 다른 이야기 알고 있나?"

 

  "죄송하지만 이게 제가 아는 전부예요. 다섯 번째 딸이 누구인지, 아니 실제로 존재하는지 조차 모릅니다. 그냥 말그대로 전설일 뿐입니다."

 

  "고맙군. 크론. 아무튼 그 이야기가 이 사건의 열쇠가 될지도 모르겠군."

 

  "크론.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면 즉시 우리에게 말씀해주시오."

 

  "알겠어요. 나도 공주님이 매우 걱정된다고요. 한나라의 공주이기전에 한 여자니까 걱정되는 건 정말이라고요."

 

  "그 마음 이해하겠소. 그럼 이만 가보시오."

 

  "알겠습니다."

 

  레인과 제이크는 골몰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손을 턱에 괴고 앉았다. 크론의 말과 고블린들의 말들이 조합이 될듯 말듯했다. 가치? 도대체 어떤 가치를 말하는 것이지?

 

  "혹시 생각해봅니다만 그들이 말하는 것이……."

 

  제이크는 고개를 거칠게 가로저었다. 무엇인가 정말로 생각하기 싫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는 침울하게 고개를 떨구고는 말을 멈췄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제이크. 난 당신의 생각을 알고 있습니다. 단지……."

 

  "말씀하지 마십시오. 이건 추측일 뿐입니다. 추측을 말로서 내뱉음으로 가짜일지도 모르는 진실같은 말들을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추측으로서 남겨두시면 좋겠습니다."

 

  "나도…… 알고 있습니다. 현실은 아무리 괴롭더라도 현실입니다. 꿈 따위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젠간 밝혀질 진실들을 받아들여야하고 그것에 대한 고통 또한 받아들여야합니다. 이 추측은 크론에게 말하지 않는 것으로 합시다."

 

  "그 사내 또한 이 고통에 빠지게 하고 싶지 않다는건가요?"

 

  "크론은 착한 녀석입니다. 때론 사람을 곤혹스러울 정도의 장난을 하여 저를 화나게 합니다. 하지만 크론은 나쁜 녀석은 아닙니다. 그 착한 병사에게 고통일지도 모르는 현실을 지게 할 순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 또한 잊어주십시오. 이 일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금련화의 꽃말을 아십니까?"

 

  "금련화……."

 

  "당신은 매우 이기적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괴롭습니다. 저의 짐의 무게를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제가 모두 안겠습니다. 저 혼자 고통을 받겠습니다. 저 혼자서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 저 혼자서! 저 혼자서 다치고 괴로워하겠습니다."

 

  "레인 경."

 

  "저의 짐의 무게를 덜어주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럴수록 전 고통스럽겠죠. 당신 또한 좋은 사람입니다. 난 당신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가만히 있어주시길 바랍니다."

 

  레인은 피가 베어나올 정도로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고통 따윈 없었다. 그저 자신의 비루한 인생에 대한 씁쓸함만이 베어나왔다. 슬펐다. 대체 왜 나 혼자 모든 것을 떠안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 왜 나 혼자서 짊어지면 안되는 것이지? 대체 왜?

 

  "모든 것을 혼자서 짊어지려 하지 마십시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혼자서 하려는 사람은 천재이고 모든 것을 같이 하려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바보를 원합니다. 당신은 세상이 원하지 않는 천재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세상이 원하는 바보가 되겠습니까?"

 

  레인은 그를 향해 피식 웃었다. 세상은 그런 바보를 원한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그 천재가 될 것인지 그 바보가 될 것 인지는."

 

  "그럼 이만."

 

  제이크는 그에게 목례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레인은 그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원하지 않는 천재와 원하는 바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한 의미에서 바보와 천재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무엇인가의 뜻일 것이다.
  그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후련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갔다.


 
  "크론. 나에게 장난 좀 걸어."

 

  "예? 언제는 그렇게 질색하시더니 왜 그러십니까?"

 

  "요즘 기분도 울적하고 화라도 안내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말이야."

 

  "울적한건 항상 그랬지 않습니까. 미쳐버릴 것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요."

 

  "어. 그랬던 것 같아. 오, 정말 신이 존재하신다면 제 이 슬픔을 거두어주시오."

 

  "오! 레인이여! 그대가 슬픔이 거두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인가?"

 

  "그래. 크론."

 

  크론은 아쉬운 표정으로 레인을 바라보았다. 이제 정말 장난으로 걸어도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 이렇게 슬픔에 젖어버린건가? 이제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크론은 한숨을 쉬며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안타까운 남자군.

 

  "저기, 레인 경. 전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렇게 아픈 적이 있지만 그것하고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레인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크론은 울적한 표정으로 울적한 표정의 상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대화인데? 착각인가?

 

  "하지만 당신이 공주님을 얼마나 걱정하고 사랑하는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어요. 그녀가 아무리 싫다고하더라도 당신은 그녀를 위해 뒤에서 그녀를 지켜줄 아주 멍청한 사람이죠."

 

  "멍청한 사람이라고?"

 

  "예. 당신은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순진남이라고요. 제이크가 그때 그랬죠? 혼자하는 사랑도 아름답다고. 그때는 멍청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니예요. 짝사랑이든 같이하는 사랑이든 사랑인건 모두 똑같아요. 그러니까 죄책감을 느끼지 마세요."

 

  "크론. 하지만 난 공주님을 지키지 못했어. 그때처럼 지금도 지키지 못할꺼야. 넌 알꺼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공주님을 사랑하는 것 조차도 루멘과 칼리고의 저주를 받아 마땅하는 것을. 내가 죽어 마땅하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내가 이 모든 죄를 짊어지어야 해. 날 제발 내버려둬!"

 

  크론은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리고는 레인의 멱살을 잡아올렸다. 레인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응시했다. 그러다가 주먹을 올려 그의 얼굴을 세게 쳤다.

 

  "정신차려요! 당신이 지금 사춘기 소년이에요? 그렇게 부정적으로 밖에 생각못해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죠? 당신이 지켜보이고 싶은 사람이 누구죠?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누구죠? 당신이…… 누구보다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누구죠?"

 

  "나, 나는……."

 

  크론은 거칠게 그의 멱살을 놓았다. 그리고는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잡혀있던 멱살이 놓아지게 되자 레인 또한 주저앉게 되었다. 레인은 뭐라 혼자서 계속 중얼거렸다. 내가 가장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대체 누구지? 그게 대체 누구였지? 대체…… 누구야?

 

  "위대한 루스 폐하의 하나 뿐인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이쁜 여동생 루미너스 베리타스 공주님. 그녀입니다."

 

  "루미너스……공주님."

 

  "예.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여자입니다."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잊지마십시오. 저 또한 공주님을 좋아합니다. 여자로서가 아닌 한 나라의 공주님으로서요. 그녀를 좋아하는 이들은 당신말고도 많습니다. 그저 당신이 그녀를 다른 사람보다 더 좋아할뿐이죠.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녀를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은 당신 뿐인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그녀를……."

 

  "다음에도 그런 헛튼 소리를 한다면 전 제 계급장을 떼고서 당신의 턱을 날려버리겠습니다. 한가지 더 알려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뭐지……?"

 

  "우리들 또한 당신과 공주님이 행복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는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당신은 행복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너무나도 불행해왔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짐을 잠시 내려놓으시고 행복을 가지십시오."

 

  "행복?"

 

  "당신 매쉬메리골드의 꽃말을 아십니까?"

 

  "……."

 

  "제가 굳이 말씀 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죠. 행복이라는 것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단지 변할 뿐입니다. 이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크론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갔다. 그는 레인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 또한 레인의 고통과 슬픔을 안다. 당신 그때 왜 그랬죠? 왜 당신이 짊어져야할 짐을 스스로 가져버리는 것이죠? 바보같은.
  레인은 멍하니 크론이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멍한 체 자신의 부하가 때린 볼을 만지작거렸다. 입에서는 볼이 터졌는지 피가 세어나왔다. 하지만 왠지 마음은 편한 것 같았다. 무엇인가 깨달아서 이렇게 편한 것일까?
  레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크론이 걸어간 곳을 따라 걸어갔다. 그렇게 여정의 닷새째 아침이 흘러갔다.

 

 

p.s 과거편은 언제 끄적이지

  • profile
    아인 2012.05.08 02:47

    오오, 오랜만에 보는 귀족 공주네요. 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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