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이야기

|  나는 작가가 될 테야! 글을 창작해요

2012.06.15 06:20

망각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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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박의 굴레> - 2 -


 주군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은 여유로운 모습일지라도 오늘의 주군은 뭔가가 달라보였다.

 밖으로 나온 나는 물끄러미 뒤를 돌아보며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신 것처럼 말 끝의 머뭇거림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보름 전까지만해도 평소와 다름 없는 모습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멋있는 인사를 나누었는데 말이야. 뭐가 주군에 심기를 건드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주군의 명을 따라 레오스 숲에 가는게 먼저일테지. 하지만 그 전에 어딘가에서 홀로 꽃 구경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아리아를 찾아서 주군에게 돌려보내는게 아마도 지금 내게는 가장 급한 일일지도.

  마을 어귀를 걷던 도중, 어디선가 달콤하게 흘러내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어떤 소녀의 목소리로 들리는 노랫소리는 간간히 내 귀 안으로 들어오면서도 그 매혹적인 노랫말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 나는 조용히 그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기 위해 온 시선을 집중했다.

 "…저긴가."

 레오스 숲과 정반대 방향에 위치한 작은 수풀 사이에서 소녀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그쪽으로 올리면서 자칫 누군가의 등장으로 깜짝 놀랄지도 모르는 소녀에 마음까지 헤아리며 조심스럽게 수풀 쪽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내 짐작은 틀리지 않았는지 수풀에 가까워질 수록 그 노랫소리는 한층 더 흥을 돋구며 들려왔고, 그 노랫소리에 흠뻑 취한 나머지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나는 그대로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수풀 안에는 한 소녀가 누워 있었다. 마치 제 집 안방인마냥 편안한 모습으로 그루터기를 마주본 채 누워있는 아리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루터기 옆 작은 노란 빛의 꽃 송이를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는 아리아를 나는 그저 대단하다고 밖에 여길 수 없었다. 그녀와의 거리는 고작 1m, 그러나 그녀는 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거다. 평소의 아리아는 꽃이 있으면 주변에 누가 있든 관심 밖이였으니까.

 "이런 늦은 시간까지 이러고 있는걸 주군께서 아시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아인?"

 누군가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듯한 아리아가 휘둥그레해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여기 있다는걸 어떻게 알았어?"

 "저 마을 입구에서부터 들려오던걸."

 "에에?!"

 "걱정마, 들은건 나 뿐이니까."

 두 뺨이 붉게 변한 아리아를 보며 나는 또 한 번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아리아에게 이만 집으로 돌아가라며 말을 전했고, 아리아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이로써 주군의 걱정 중 하나를 짊어드릴 수 있어서 내심 기쁘기도 하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리아의 습관은 그리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 같다. 꽃을 위한 삶, 어찌보면 아리아의 삶은 오로지 꽃을 보기 위함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꽃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어떨 때는 그저 평범한 소녀의 감수성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어쩔 때는 무서울 정도로 꽃에 대한 관심이 많은 그녀를 차마 방관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자제력은 그 누구보다 더 뛰어났고, 그녀는 자신의 고집도 꺾을 정도로 대단한 여자이니까. 그 점에 대해선 나는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어찌보면 아리아는 나와 베르에트보다, 아니, 이 나라를 짊어지고 계시는 주군보다 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녀석일지도 모른다. 단지 그녀의 잠재력이 아직 표출되지 않은 것 뿐, 만약 이 나라가 불의의 사고로 인해 정체가 혼란해질 때 그 불안한 정체를 바로 잡을 수 있는건 아리아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이 닥친다면 비로소 아리아에 숨겨진 잠재력이 빛을 발할지도.

 물론 이 모든 생각은 나 혼자만의 가벼운 상상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주군도 한편으론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시고 계시겠지. 하지만 그렇게 된다는건 곧 이 나라의 정체가 흔들린다는 뜻, 그렇게 되는걸 그 누구도 원치 않는다. 더욱이 주군께서는 그런 미래를 바라지 않으시니까. 주군을 위해서도, 이 나라를 위해서도, 또한 아리아를 위해서라도 그날이 와서는 절대 안된다. 그래야만이 우리는 더욱 진보할 수 있을테니까. 그 진보를 막는건 그 누구도 용서치 않으니까, 만일 그게 나와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말이야.

 "무슨 생각해?"

 "응?"

 "갑자기 얼굴이 굳길래, 무슨 심각한 생각이라도 하는거야?"

 아리아가 궁금하다는 듯이 내게 묻는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씨익 웃어 넘겼지만, 방금 내가 한 생각이 조금이라도 뒤틀린다면 결코 웃어 넘길 수는 없는 일이겠지. 더군다나 방금 전 주군의 표정이 왜 그랬는지도 조금씩 머릿속으로 이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왜 그때 주군께서 그러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를. 분명 주군께선 이 나라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는걸 육감적으로 느끼신거다. 보름 전 그 일이 있던 뒤부터….

 "이만 돌아가. 주군께서 많이 기다리시니까."

 딱딱해진 말투 뒤에 조금은 날카로운 가시가 돋친 듯한 따가움이 느껴진다. 잠시 그 일에 대해 생각을 한 탓 때문인지 방금 전까지 미소를 짓고 있던 내 얼굴엔 어두운 그림자만이 드리워졌다. 내 표정을 보곤 아리아 또한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머뭇거리는 발걸음으로 내 앞을 서성거렸다. 나는 다시 한 번 아리아에게 말을 하려 했지만 도통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걸 몸소 느낀 것일까, 나의 시선은 언제부턴가 레오스 숲을 향해 있었다.

 "그만 가볼게."

 "이 시간에 어디 가는데?"

 "알 필요 없어, 그저 주군께서 부탁하신 일을 하려고 가는거니까."

 "그러니까 어떤 일을 하러 가는거냐고!"

 아리아의 목소리가 나의 목덜미를 슬쩍 쥐었다 편 듯한 느낌이 든다. 아리아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리아."

 "…가는거야?."

 "…!"

 "베르에트처럼, 친구인 나한테는 한 마디 말도 없이 가는거냐고…. 어떻게 나한테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럴 수가 있어…? 그것도 두 번씩이나…. 내가 정말 너희들의 친구 맞아? 정말 나를 친구로 생각했다면, 이런 일을 숨기는 것보단 제일 먼저 알려야하는거 아니냐고!!"

 아리아의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자기 몰래 마음대로 행동한 나와 베르에트에 대한 화를 참을 수 없다는 모습이였다. 나는 생전 처음보는 아리아의 격앙된 모습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로 우리가 아리아를 위해서였다면 절대로 이런 일을 숨겨서는 안되고 숨길 생각조차 해선 안된다. 그런 정도는 나 또한 알고 있지 않았는가? 베르에트가 아리아 몰래 전장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 나의 모습은 지금의 아리아와 동일했다. 절대로 이 사실은 친구에게만은 속여서는 안된다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친구를 위해서라도 이 사실을 숨겨서는 안되었다. 하지만 끝끝내 베르에트는 아리아에게만은 알리지 않고 떠나버렸다. 그리고 내가 대충 얼버무린 그 거짓말을 아리아는 아직까지도 믿고 있다. 아니 믿을 수 밖에 없을거다. 지금의 아리아는 그 거짓말이 이번만큼은 진짜였으면 할테니까. 그러나 오늘로써 끝내 그 거짓말이 들통나고 만건가….

 "그만 돌아가자."

 "아인."

 "주군께서 찾아."

 "아인!"

 "금방 돌아갈게."

 "거짓말 마."

 "거짓말 아니야."

 "그걸 어떻게 증명할건데?"

 "그건…."

 내가 너에게 묻고 싶은 말일지도 몰라. 어떻게하면 너가 안심을 하고 돌아갈 수 있는지, 어떻게하면 너를 위해줄 수 있는지를, 이 해답을 찾는데까지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 그러나 지금에서도 나는 그 해답을 잘 모르겠다. 그저 이 사실을 묵언하고 널 주군이 있는 곳으로 돌려보내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거야. 그러니까 아리아, 이번큼은 부디 내 뜻에 따라 주길 바….

 "…더 이상 그 누구도 내 곁을 떠나는건 싫어. 베르에트도 없는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인, 너 밖에 없어. 그런데 너마저 나 모르게 어딘가로 간다면, 난 하루도 못 살거야."

 아리아의 말이, 다른 때보다 더 슬프게 들려왔다. 그렇다. 베르에트가 떠난지 두 달이 되어가는 때에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거다. 그녀의 아버지인 주군은 나라를 위해 그리 아리아에게 신경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다는걸 잘 알기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나와 베르에트는 주군의 빈자리를 챙겨주는 역할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아는 누구보다 더 우리들과 있는 시간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와 베르에트는 아리아를 두고 전장으로 떠났고, 운 좋게 두 사람 다 멀쩡히 돌아왔지만 그때의 아리아는 너무나도 초췌해진 모습으로 우릴 반겼다. 그때 나와 베르에트는 서로 약속한게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두 번 다신 아리아를 두고 떠나지 말자고. 그런데….

 "날 위해서가 아닌, 아리아를 위해서야."

 그딴 말로 자신의 야망을 쫓기 위해 전장으로 향한 녀석 때문에 그날의 약속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하지만 녀석은 그냥 가지는 않았다. 단지 나와 함께 지켜야 할 약속을 나에게 넘겨주고 간 것 때문에 약간은 기분이 쓸쓸할 뿐이다. 그러나 그때처럼 두 명이 아닌 한 명뿐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안도를 했었는데도 그 빈자리를 나 혼자 메꾸기엔 너무나도 커다랬을지도.

 이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니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도, 앞으로 갈 곳도 남아있지 않은, 그저 벼랑 끝에 마주 선 두 남녀의 모습이랄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우스울지도 모르는 장면으로 보일지도 모르겠군.

 그나저나 어찌해야할까, 이대로 계속 대답을 회피하고 아리아를 돌려보낸다해도 순순히 돌아갈 아리아는 아니겠고, 그렇다고 주군께서 내게 레오스 숲에 관련된 부탁을 하셨다고 하면 당연히 나를 레오스 숲에 못가게 막겠지. 이래저래 막막한건 똑같다. 단지 어떤 편이 더 아리아에게 좋은지에 대해 골머리가 아플 뿐이니까. 

 "…."

 또한, 아직까지도 아리아의 몸상태가 좋지 않다. 주군께서 그렇게 안절부절하신 모습을 보인 것도 아리아 때문일거라는 짐작도 간다. 전과는 달리 많이 호전된 모습이지만 아직까지도 불안정한 상태, 여기서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 마셨다가는 곧바로 감기에 들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곤 있지만, 결국엔 이 방법 밖엔 없는 것 같다. 모든 사실을 아리아에게 말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중 제일 난이도가 높고 어려운 일이라고 자부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이 이외엔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 것도 없다.

 "…."

 하지만 내가 이 선택을 한걸, 언젠가는 후회하게 될테지. 그게 내일이 될지 오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


 "그리고 그날 밤, 아리아는 죽었다. 그때 내가 한 선택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게 만들었다. 이 사실은 1년이 지나서도 변치 않아. 그녀는 예기치 못한 사건에 의해 죽었다고 주군께서는 나를 위로하며 말씀하셨지만, 결국 그 사건에 휘말리게 한 장본인은 바로 나란걸…말야. 이런 나를, 용서해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그저 나는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그 슬픔에 허우적거리며 살게 될거다. 또한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의해서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자꾸만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벌써 1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일은 아직까지도 내게 악몽 같은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베르에트는 이야기나 끝났음에도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멍하니 그녀의 무덤을 바라볼 뿐이였다. 

 "…그래, 그랬구나."

 "베르에트."

 "아니,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아도 되. 나를 위하려 할 필요 또한 없어. 생각하면 이렇게 된 것도 너 혼자만의 책임도 아니야. 그때, 내가 나의 이기심만 아니였더라면 아리아는 죽지 않았겠지, 또한 그렇게 됬다면 네가 그런 표졍으로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겠지. 이렇게 된건 어찌보면 나 때문일지도…."

 그 말을 끝으로 베르에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전장에서 모든 것을 끌어내린 한 남자의 뒷모습이 태양에 그을려 붉게 물드는 동안에도, 그의 침묵과 나의 한숨은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듯한 가녀린 목소리로만이 커다란 빈자리를 애써 메꾸고 있을 뿐, 쓸쓸히 불어오는 바람 앞에 우리들은 하얀 먼지로만 존재했다.

 "미안해, 아인. 나 때문에 이렇게 되어서."

 그녀의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나의 어깨 위에 맴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P.s : 분위기가 무거워서 그리 자유롭게 쓰질 못하겠네요. 아, 활기찬 분위기의 소설로 찾아 뵐려고 했는데 그게 쉽게 되질 않네요. 역시 이런 장르의 소설은 아직은 무리인 듯 싶네요. 하지만 꼭 완결을 내겠다는 약속 하나로 달려보겠습니다!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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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탓하지마라.

시간을 흘려보낸건 나 자신이다.

시간은 주어진게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연히 나라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그 시간의 흐름에 어떻게 따라가느냐의 내가 증명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증명해보려한다.

  • ?
    가온  2012.06.26 08:45

    와 ㅋ 오랜만에 다시 뿌야와서 봣는데 아직두 쓰고계시내요

     

    브금도 깔아주시구 ㅋㅋ 깔끔합니다~ 나중에 처음부터시작되는 소설 쓰신다면 그때 다시 찾아뵐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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