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킨 실타래> - 2 -
후우…후우…후우….
젠장…. 아무리 이성을 잃고 날뛰는 짐승이라 하여도 얕봐서는 안되는거였나…. 제길, 아까부터 오른 팔이 심하게 저려오는걸 보니 오늘 내일은 아주 죽어나가겠군. 그럭저럭 녀석을 눕히는 것까진 좋았지만 그 후가 나를 고역스럽게 만드니 이거 영 좋지 않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을 써가면서까지 이 녀석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본 이는 아무도 없다. 녀석의 출현 그리고 녀석의 횡포로 인해 이미 마을 밖으로 도망간 듯이 텅 빈 마을에서 나와 녀석을 본 이는 없었다. 만약 봤다면 내가 이 녀석을 데리고 여기까지 올 수도 올 리도 없었겠지. 그 자리에서 녀석을 죽이던가 다른 놈들이 와서 가르톨을 채 가던가, 뭐 거기까진 알 필요도 없고 더 이상 그 뒷 얘기에 대해 떠들어봤자 내 머리만 아플 뿐이다.
그나저나 벌써부터 달이 뜬걸 보면 녀석과의 싸움은 꽤나 길었던 것 같군. 별로 긴 싸움이 될거라 생각도 안해본 터라 왠지 당혹스럽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몇 배는 더 강해졌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가르톨은 쉽게 제압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의외로 녀석도 그때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파워풀한 공격을 날리는걸 보면 녀석도 많은 수련을 거쳤다고 생각해야겠다. 하지만 그때의 녀석도 그리 만만한건 아니였다. 당시의 나로서도 한 눈을 파는 즉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한 강자였고, 그때 나의 위에 있던 용병들 또한 쉽사리 건드릴 수도 건드려서도 안될 존재였으니까. 그런데도 이 녀석은 강해지기 위해 그토록 울부짖으며 싸워왔단건가?
"으윽."
더 이상은 무리인가? 내 몸 하나 움직이기도 힘든 지금에서는 녀석을 데리고 이 숲을 빠져 나가기는 역시나 불가능한 일이였나? 하지만 여기서 이대로 주저 앉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지체됬다. 주군께서 시간을 정해준건 아니였지만 웬만한 일들은 신속히 해치우는게 내 신조,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이 벌어져도 하루가 지나기 전 내게 맡겨진 임무들을 끝내는게 보통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내 신조가 꺾일 듯 싶다.
「 풀썩 」
더 이상 움직일 기력이 남아있지 않다. 움직이려고 발가락 하나라도 더 힘을 내려고 안간힘을 써도 세상은 나를 짖누르며 더 이상의 행동은 용서치 못하겠다며 무언의 경고라도 하듯 나를 에워싼다. 눈 앞이 아른거리고 서서히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내 어깨에 짊어진 가르톨의 무게마저 뎌디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의식을 잃은 듯 한 쪽으로 기우는 시선을 통해 나는 서서히 주변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
별안간 밥을 먹고 있던 내게로 한 통의 쪽지 대신 한 명의 사람이 찾아왔다. 아마도 주군 곁에 머물고 있는 대리인으로 보이는 약간 젊어보이는 남자였다. 오랜만에 바깥 향기를 쐬러 밖으로 나온 나에게로 할 말이 있다며 다가오는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숟가락에 담겨 있는 국밥을 입에 넣으며 그에게 물었다.
"흐아왈 이스시오?"
입에 음식이 있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허겁지겁 입에 국밥을 집어 넣어서인지 뜨거운 국밥 때문에 입천장이 다 덴 것처럼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서둘러 입 안에 든 음식을 빠르게 씹어 삼키고는 옆에 놓여진 물을 남자답게 마시고는 나를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제게 할 말이라도 있는건가요?"
나의 말에 가만히 서 있던 그가 잠시 후 내 쪽으로 발걸음을 움직이며 다가왔다. 느릿느릿 걸어오는 그를 보며 나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먹던 국밥을 마저 입에 넣고는 포만감을 느끼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 사이에 그는 내 앞에 다가왔는지 이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하였다.
"주군의 호출입니다. 서둘러 저와 함께 가시죠."
!
주, 주군의 호출? 갑자기 왠 호출? 요근래 주위가 조용해졌다 싶었더니 다시 일 하나가 터진건가? 아니 그 전에 왜 이런 이른 아침부터 나를 부르는거지? 진짜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가? 아니 그 전에 나는 지금 밥을 먹고 있는데, 원래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 법인데 난 개보다 못한건가? 아니 그러면 나를 부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부르는게 맞을텐데, 아니 그 전에….
"시간이 없습니다. 주군께서 한시 바삐 아인님을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이럴 시간 없다며 나 혼자만의 생각에 침범하여 서둘러 주군께 가자는 그의 말에 조금 기분이 나빠진 표정을 지었지만 나보다 더 굳은 그의 표정을 보곤 나는 한숨을 쉬며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가시죠.'라는 말을 건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가시기 전에 아인님께 부탁할게 있습니다."
"부탁이요?
그는 안쪽 주머니에 미리 준비해놓은 듯한 낡은 쪽지 하나를 내게 건네준다.
"이건…."
설마…러브레터?
"…그런거 아닙니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주르트 라이드 님이 직접 아인님께 보내오신 서찰입니다."
"주르트 라이드…? 그자가 제게로 말입니까?"
"네."
주르트 라이드라면…. 현재 레오스의 주군 자리에 앉아있는 남자 아닌가? 별안간 모습을 나타내는 것도 모잘라 단숨에 전대 주군을 바닥으로 떨어트리고 한순간에 레오스의 통치를 사로 잡은 남자. 그런 남자가 왜 내게 이런 쪽지를….
"요근래 레오스 숲에서 나타나는 괴생물체 때문에 레오스에 크나큰 피해를 준다는 말을 들은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일 때문에 그쪽 주군께서 아인님께 그러한 편지를 보낸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면 그쪽 나라의 용병들이 해결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아마도 그 나라의 용병들은 이미 그 괴생물체에게 당한 듯 보입니다."
"…!! 그, 그게 정말입니까? 아, 아니…어떻게 그럴 수가…."
현 나라 중 강력한 세력을 과시하는 나라 중 하나인 레오스. 그 중에서도 용병들의 힘이 막강하다고 전해내려오는 그들이 갑작스레 나타난 괴생물체에게 쪽도 못 써보고 당했다고? 그래서 그 나라의 주군이 내게 이런 편지를 남긴건가?
"하지만 그쪽 용병들이 당했다는건 나 또한 당할 위험이 높다는거 아닌가요? 더군다나 그쪽의 용병들 중 저보다 유능한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런데 그들 또한 당했다는건…."
"거기까진 자세히 제가 아는 바는 없지만, 그들 모두가 그 괴생물체에게 대항했다는 말까지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확실한건 상대가 좀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는 철벽과도 같은 녀석이라는 말 밖엔."
철벽과도 같은 상대라…. 제법 고난이도의 임무가 되겠지만.
"상대가 누구든 결과가 어찌되든간에 누군가가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분을 위해 싸울 수 밖에는 없겠죠. 그게 저희 같은 용병의 숙명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주군을 먼저 찾아 뵙는게 우선일 듯 싶군요.."
"아뇨, 아인님은 그 일부터 실행해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주군께서 저를 부르셨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그랬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했다간 레오스가 더욱 큰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렇게 되면 아인님께 가해질 막중한 책임에 대해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입니다. 주군을 뵙는건 그 일을 해결하신 뒤에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더불어 주군껜 제가 잘 말씀드릴테니 일단은 레오스로 떠나시지요."
….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은 레오스로 가서 상황을 어느 정도 알아보고 판단을 해봐야겠군요."
"부탁드립니다."
"주군께는 잘 말씀해주세요. 괜히 좋은 일하고 왔는데 욕 먹을까 걱정되는군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
"이것 좀 아리아에게 갖다 줄래요?"
나는 안쪽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꽃 한 송이를 꺼내 그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건넨 꽃을 받아든다.
"요 앞을 지나다가 예뻐서 하나 꺾었는데 아리아한테 주면 기뻐할 것 같아서 말이죠."
"아마 기뻐하실겁니다. 꽃을 좋아하시는 분이니까요."
"그렇겠죠?"
"그런데 별안간 무슨 일로 꽃을."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
"아마도 그것 때문이겠지."
"네?"
"그럼 레오스로 가보겠습니다. 주군껜 늦기 전에 도착한다 말씀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
그자가 부탁한대로 일단 레오스에 오긴 왔는데 영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네. 그 마을에는 나보다 더 유능하고 강한 용병들이 많을텐데 왜 굳이 나를 지목해서 그런 임무를 맡긴걸까하는 의문점이 자꾸만 내 머릿속을 혼동시킨다. 내가 아무리 날고 긴다해도 이 조그만 마을의 일개 용병일 뿐인데 이런 일을 내게 맡기다니, 의문이 커지니 이젠 근심으로 바뀌는구려.
국밥을 미처 다 먹지 못하고 나와서인지 금방 허기가 지네. 일단 이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가서 아까 다 못 먹은 국밥이나 먹어야지. 그런데 그자가 내게 부탁한 일이 뭐였더라?
나는 주머니에 꾸깃꾸깃 쳐 박혀있는 쪽지를 꺼내 다시 한 번 확인해보았다. 레오스 숲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부터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뭔가를 처치해달라는 문장은 봤긴 봤는데….
천천히 쪽지를 읽어내려가던 도중 이내 한 문장을 발견한 나는 시선을 멈추고 그 문장을 주의 깊게 읽어내려갔다.
【요즘 들어 갑자기 나타난 메그로들 때문에 우리 마을에 큰 피해가 생기고 있네. 레오스 마을만의 일이라면 이렇게 자네에게 부탁을 하진 않았겠지만 머지않아 메그로들이 바티칸 마을에도 피해를 입힐거라는 걱정 때문이네. 아무리 우리가 적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해도 일단은 가까운 이웃마을 아닌가? 자네가 메그로들만 처치해준다면 내가 자네에게 큰 상을 내려줄 생각이네. 하지만 아직까진 자네가 조금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자네가 내 부탁을 들어줌으로써 자네 마을에 2차 피해가 가는걸 막을 수 있다는 점이 자네에겐 큰 영광이겠지. 만약 그렇다면 그곳의 주군께서도 자네에게 큰 포상을 내릴지도 모르겠지. 서론이 길어졌군. 이 편지를 받는 즉시 레오스로 와주게, 자네가 메그로를 처치하기 전 해줄 조언들이 몇 가지 있으니 말이네.】
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내용이였다. 그 위에도 몇 줄 써 있었지만 그건 그냥 쓸데 없는 내용이라서 생략하고 넘어갔다.
메그로라…. 요근래 평화롭다 싶었더니 이젠 별의별 녀석들이 나타나서 훼방을 놓고 가는군. 뭐 이왕 잘된 일인건가? 안 그래도 요즘 몸이 뻣뻣해졌다고 느끼던 참이였는데 몸이나 풀 겸 그 녀석들을 해치우는 것도 좋겠지. 더군다나 녀석들을 해치우면 상을 내린다니 그 상이 무엇인지 심히 궁금하네. 그런데 그런 일이라면 더욱이 자기 나라의 용병을 쓸 것이지 왜 다른 나라 용병까지 끌어 들이면서 이런 서찰 같은걸 보내오는걸까. 요즘 들어라면 아마도 며칠 됬다는 말일텐데 그 시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게 이 서찰 하나 딸랑 보냈다는건 말이 안되는데…. 뭐 편지를 받는 즉시 레오스로 와달라고 했으니 가보면 알 수 있겠지.
「 덜컥 」
이곳의 문은 미는 식이 아닌 당기는 식이라서 그런지 조금 편하군. 그나저나 이곳은 왠지 꺼림직한 분위기 때문에 들어가기가 영 쉽지만은 않다. 아무리 부탁을 받고 온 길이지만 주위에 적들이 우글거린다고 생각하면 조금 속이 울렁거린다.
"거기 누구지?"
날카롭게 울려퍼지는 누군가의 목소리, 나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주르트 라이드님을 뵈러 왔습니다."
"그렇다면 자네가 아인인가?"
"네, 그렇습니다."
검은 장막이 빛에 휩싸이며 모습을 감추자 내 앞으로 어떤 한 남자가 모습을 나타냈다. 딱 봐도 이곳의 주군으로 보이는 사람이였다. 하지만 뜻 밖에도 앳되보이는 그의 외모에 잠시 넋이 나간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추스리고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전했다.
"바티칸 마을에서 온 아인이라고 합니다. 주군께 감히 인사 드립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네."
"보내주신 편지에 적힌 내용을 보고 제가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잘 알고는 있으나, 그 일을 행하기 전 먼저 주군을 만나뵈라는 말에 이렇게 서둘러 주군께 인사 드립니다."
"그래 고맙네, 자네라면 내 부탁을 들어줄거라 생각했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나와 함께 밖으로 나가세. 안 그래도 자네에게 하고 싶은 말과 함께 주고 싶은 것이 있으니."
P.s : 즐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