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킨 실타래> - 3 -
"제게 하고 싶으시다는 그 말씀을 듣기 전에 제가 먼저 주군께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
잠시 한 템포를 쉬어가는 작은 숨소리. 희미하지만 깊고도 그윽한 미소를 띄며 흩날리는 나의 작은 말소리. 주군의 표정과 목소리가 조금씩 나를 향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아니네, 미리 말을 해줬어야 했던건데…. 자네 말대로 내가 이 나라의 용병이 아닌 다른 나라에 도움을 요청한 이유는 따로 있네. 그건 자네가 물었던 그대로 내 나라의 용병들은 그를 막을 힘도 전력도 없네. 다른 나라에서 말하기를, 내가 이끄는 이 나라의 힘은 아주 막강하다고 자기들끼리 떠들지 하지만 실상은 달라 하루하루 빚에 쪼들려 자신의 본분도 잊은 채 망나니가 되어 뛰어다니는 녀석들이 대부분이지. 자고로 백성을 지키기 위해 이 나라의 용병이 된 자들이 역으로 백성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됬으니 우스울 뿐이지…."
"그 얘기를 듣기 위해 꺼낸 말이 아닙니다. 제가 묻고 싶은건 그놈의 정체입니다. 왜 별안간 마을에 쳐 들어와 애꿎은 사람들을 공격하는지를 알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데에도 이유가 있을 터, 평소에 이 마을과 그놈들이 서로 무슨 마찰이 있었다거나."
"그런건 일체 없네, 그놈들을 본 것도 최근이였고 녀석들이 모습을 나타낸 시점부터 이곳을 공격하기 시작했네, 더불어 녀석들은 아무런 대화도 통하지 않았고 대화를 하려 들지 않아, 그저 무언가에 홀린 듯 붉게 물든 그들의 눈동자만이 녀석들의 분노를 표하고 있었지…."
붉은 눈?
"평소엔 그 녀석들을 볼 수 없었어. 아니 오히려 우리가 보기 위해 찾아야 했지. 그런데 최근 들어 갑자기 녀석들이 모습을 나타내더니 우릴 공격하기 시작한거야, 누군가가 꾸민 일인가싶어 여럿 용병들을 고용해서 뒤를 밟았지만 녀석들은 레오스 숲에서 모습을 감추더군. 그걸로 보아선 녀석들은 누구에게 길들여져 행한 행동이 아닌, 자의적인 공격이라고 볼 수 밖에 없었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메그로란게 대체 무엇이죠?"
"아, 자네가 살고 있는 마을에선 한 번도 볼 수 없기 때문에 모를 수도 있겠군. 미안하네 내가 미리 설명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들은 인간이 아니네, 아마 자네의 표정을 보니 무슨 도적단으로 오해하고 있는 얼굴이라 먼저 그들의 정체를 밝히네. 그들은 짐승이네, 그것도 엄청나게 난폭한 성격을 띈, 그들의 힘은 곰을 능가하고 지능은 여우와도 같네. 한 마디로 말하면 지혜와 힘을 겸비한 녀석들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들은 난폭한 성격과는 달리 평소에는 아주 온순하여 사람들을 먼저 공격하기는 커녕 사람들의 공격을 당해도 내빼는 경우가 대다수네. 그들은 태생적으로 동족 이외에 다른 종족이 근처에만 다가와도 경기를 일으키는 녀석들이라 다른 종족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방랑한다는 걸로 알고 있네."
"하지만 주군께서는 그놈들이 먼저 이곳을 공격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내가 자네를 부른걸세."
"그게 무슨…."
잠시 상기된 얼굴로 얘기를 이어가던 주군이 슬쩍 자신의 안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곤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네준다.
"자네가 꼭 이 사건을 해결해줬으면 하네."
"…저는 일개 용병일 뿐이지 누군가를 도와주거나 할 정도에 실력이 되질 못합니다."
"하지만 자네가 아니라면 불가능 해, 이미 이 나라를 자랑하는 용병들이 나섰어도 해결하지 못한 일이네."
"그렇기 때문에 저 또한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최악의 경우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죠. 하지만 목숨 때문에 이러는게 아닙니다. 한 명 한 명 맛보기용으로 녀석들을 제압하려 했다간 더러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녀석들의 횡포는 더욱 심해질테고 주군께서 다른 용병을 구하기도 전에 이곳은 폐허가 되고 말거란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주군께선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시려는겁니까?"
굵지만 소름 끼칠 정도로 얇은 바늘이 내 목을 지나 주군을 향해 움직였다. 내 어깨를 꾸욱 짖누르던 주군의 손이 조금씩 옅어지는 느낌과 함께 축 처진 그의 얼굴 뒤로 검은 실루엣이 아련하게 흩날렸다. 마치 한 송이의 꽃처럼….
"…부탁하네."
"결국 당신의 선택은 변하지 않는다는겁니까."
"자네마저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가망은 없네. 자네 이상의 용병을 찾는건 어려운 일이테니."
"그만큼 저를 신용하고 계신거군요."
"이미 자네의 실력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나? 물론 정상을 지배한건 자네가 아니였지만 그 정상을 밟기 위해 헤쳐나갔던 수많은 관문을 홀로 뚫고 지나간 사람은 자네라는걸, 의외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 아마 이 나라에서 자네를 감당할 수 있는 녀석들은 없을걸세. 놈들에게 당당하게 맞써 싸운 녀석들치고 멀쩡히 돌아온 녀석들은 없었지. 하지만 자네를 달라 그걸 자네가 몸소 증명해주지 않겠나?"
청량하게 울리는 주군의 목소리가 한 방울의 구슬이되어 나의 심장을 톡하고 움직인다. 자연스레 걸친 나의 손등 위로 소리 없이 다가오는 한 방울의 두근거림이 물기를 머금고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절 높이 사는 주군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부탁을 들어주기 전 주군께 해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그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희생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 혼자였다면 절대로 그 관문을 통과하진 못했겠죠. 수많은 용병들이 전장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피로 얼룩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결코 그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는걸, 그들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신이 죽음으로써 또 다른 생명이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그들의 얼굴에서도 미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길을 가지 않았더라면 누구처럼 가만히 앉아서 결과만을 기다리면 되는 사람처럼 그저 다른 세계 일인 듯 방관하면서 말이죠. 그들은 전장에서 죽은게 아닙니다. 그들은 제 가슴 속에 남아있고 그들의 죽음이 저에겐 살아 남아야하는 목적을 갖게 했습니다. 절대로 이 전장에서 죽지 않겠다며 다짐하고 또 다짐해서 살아 남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봤을 땐, 제 주위엔 아무도 없더군요. 그제서야 비로소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죽었다는 것을 실감했죠. 그들은 전장에서 죽은게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도 제 곁에 있고 저와 함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함께 살아가고 있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하루가 달리 잊어갑니다. 그들은 여기에 있는데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는데, 그들은 죽었지만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잊을 뿐이죠…. 사람들에게 잊혀져 자신의 존재를 잃어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죽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갑자기 저의 가슴을 쿡쿡 찌르는군요…."
『』
레오스 숲. 거친 바람과 함께 흩날리기 시작하는 연두빛 생명들, 그러나 내가 찾는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붉게 흔들리는 바람을 통해 조각조각 모습을 바꾸어가는 구름들, 그 속에서 천천히 노란 빛을 내며 새 하늘의 빛을 내쬐는 밤의 태양이 모습을 나타냈다.
석양을 가로 질러 앞으로 5보. 그리고 또 다시 우측으로 6보. 둥그런 타원형의 모습을 한 작은 짐승들의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릉?〃
주군께 들었던 얘기와는 매우 스몰하다. 이런 녀석들이 레오스를 공격한 녀석들이라는건가?
〃그르릉….〃
내가 아직 뭘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겁에 질린 마냥 오들오들 떨기 시작한다. 이 역시 주군의 말과 일치하다. 그렇다면 대체 이 녀석들이 뭐가 삐뚤어졌길래 그런 횡포를 부렸는지부터 아는게 먼저겠지? 과연 녀석들과 말이 통할까….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나?"
〃그…그릉?〃
"들을 수 있다면 왼 손, 아니라면 오른 손을 들어."
〃그르릉….〃
"너희들을 해칠려고 온게 아니야, 너희들과 대화를 하고 싶을 뿐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내 말을 들을 수 있는가?"
〃…들을 수…있다. 우리 매그로는 인간의 말을 들을 수 있다….〃
…일단 말은 통한다는건가.
"너희들이 한 마을을 공격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평소에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를 꺼려한다는 너희들이 되려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얘길 들었다. 왜지? 대체 왜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공격하는거냐?"
〃…그, 그건 우리들이 한게 아니야.〃
"뭐?"
〃우리들은 아무 잘못 없어…. 우리들은 그저 가르톨이 하라는대로 했을 뿐이야….〃
가르톨?
"그게 누구지? 너희들의 우두머리라도 되는건가?"
〃가르톨은 우리의 친구…. 하지만 요근래 가르톨이 이상해졌어….〃
"이상해졌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가르톨은 우리의 친구…. 쉬지않고 인간들을 괴롭힌다. 절대로 인간을 해해서는 안된다고 말한건 가르톨인데 가르톨이 인간들을 해하고 있다. 〃
"그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나?"
〃…가르톨은 요즘 들어 뭔가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어. 평소에도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감기라도 든 것처럼 신경이 날카로웠어.〃
"그게 무엇 때문인지 알고 있나?"
〃알 수가 없어, 가르톨은 매일 아침만 되면 어디론가 쫓기 듯 달려가. 그리곤 밤 하늘에 달이 뜬 시간에 맞춰 이곳으로 돌아오지.〃
〃그때마다 가르톨의 얼굴엔 인간들의 피가 묻어 있어. 사람들의 절규가 묻은 피가…. 그리고 지금도….〃
"…뭐?"
「 부스럭 」
내 등 뒤로 사무칠 정도로 차가운 숨결이 조금씩 나의 목덜미를 휘감는다.
〃…네 녀석은 누구냐?〃
피비린내…. 그렇다면 이 녀석이?
"네 녀석이 가르톨인가?"
〃…내 영역에 침범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P.s : 즐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