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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1 08:01

망각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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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킨 실타래> - 6 -


 「」


 거의 잊고 있었던 이야기 같았는데 괜스레 다시 떠오르는 이유는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일까? 아님 피할 수 없기에 지금이라도 모든걸 받아들이고 행동에 옮기라는 누군가의 계시일까, 다만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인 것보다도 이럴 수 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서 내 속이 조금씩 거북해질 뿐이다. 더군다나 녀석과의 사투를 끝낸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한 번 녀석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밖에 없단 말인가….

 "그 녀석, 설마 그 몸으로 움직인건가? 어허, 그럴 수가…. 그런 몸으로 움직이다니…. 그 상처를 입고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인가?"

 나보다 더 호들갑을 떨면서도 한 손에 잡은 깡통만은 놓지 않는 저 집념에 박수를 칠 찰나, 나는 슬쩍 주위에 녀석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반쯤 감긴 눈알을 돌리며 그 녀석의 자취를 찾았다. 

 "…."

 역시나 녀석은 레오스로 향한게 틀림 없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그 녀석을 가만히 놔두었다간 레오스보다 녀석이 더 위험하다. 일 년 전, 나에게 베인 그 상처가 다시금 터져 피가 흐른다는 이 남자의 말에 따르면 그 상태로 계속 자신의 몸을 혹사했다간 녀석의 몸은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거다. 더군다나 몸집은 산더미만 한 녀석이 갑작스레 힘을 잃고 쓰러지면 엄청난 충격을 받겠지. 1분 1초라도 빨리 녀석의 뒤를 쫓아 그 녀석의 행동을 저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더 이상 가르톨이 힘들어하는걸 볼 수 없어.

 〃아인, 미안해….〃

  젠장…. 왜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한거냐고…. 그 말만 아니였다면, 그 말만 아니였더라면….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텐데…. 

 "…."

 너란 녀석은, 어찌할 수 없는거냐….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나를 먼저 생각해주는 것이 꼭…. 아니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겨를이 없어. 지금 당장 레오스로 향한다. 그리고 가르톨을 찾는다. 이 두 가지가 먼저다. 그리고 그 뒷 일은….

 "이, 이보게. 지금 어딜 가려는건가?"

 "이럴 시간 없어, 지금도 녀석은 자신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을거라고…."

 "안돼, 절대 움직이면 안되네! 아무리 자네가 녀석보다 덜 다쳤다곤 하지만 자네의 상처도 만만치 않다고!!"

 "…그렇담, 다행인걸."

 "…뭐?"

 "그 녀석 혼자만 죽지는 않을테니까…."

 나는 황급히 검을 집어 들고 녀석의 발자취를 따라 앞으로 달려갔다. 그 남자는 미처 나를 잡지 못하고 멍한 얼굴로 달려 나가는 나의 뒷꽁무니만 가만히 바라볼 뿐이였다. 

 주군께서 내게 연락하지 않았어도 어처피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거다. 주군께서도 그걸 아시고 나를 서둘러 부르신거겠지. 처음에는 그저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였다. 누군가가 가르톨에게 악몽을 심어준거다. 그렇지 않으면 가르톨이 저런 행동을 할 리 없고, 더불어 그런 소리까지 하며 나를 지키려고 한 의미가 전달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내 입 밖으로는 계속 빌어먹을이라는 단어가 흩날리며 서서히 레오스의 모습이 내 눈 앞으로 다가왔다. 어딘지 모르는 캄캄한 숲 속 어딘가를 계속 걷다보니 나오는 레오스의 모습, 역시나 가르톨은 레오스로 향한 것이 틀림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 외로워보이는 달의 그림자를 흘깃 스쳐가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가르톨의 모습으로 보이는 짐승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가르톨의 발자국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녀석은 어디론가 뿅하고 사라진 것처럼 모습까지 감춰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라면 녀석의 거친 숨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테지만 녀석은 없었다. 마치 원래 이곳에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한 공기만이 흐르고 있는 지금, 나는 조금씩 한기가 도는 숨을 내뱉으며 주위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

 가르톨, 너 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거냐. 이 주위에 있다면 제발 내 발걸음에 귀를 기울여, 난 지금 너를 구해야해. 그 날,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너와 대화를 나누려고 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 대화로 인해 너의 악몽을 떨쳐낼 수 있던 그때처럼 다시 한 번 내게 모습을 나타내. 그래야만이 내가 널 구원해줄 수 있잖아? 혼자선 절대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어, 아무리 내가 뛰어난 용병이라 하더라도, 네가 아무리 용맹하고 우직한 녀석이라하더라도, 절대로 혼자선 그 무엇도 할 수 없어. 누군가는 한 번씩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거라고. 

 "…."

 그러니까 가르톨, 제발 다시 한 번 내게 얼굴을 보여죠. 그때처럼 나를 금방이라도 죽여버릴 것만 같은 섬찍한 그 눈초리로 나를 다시 한 번만 봐달라고!!

 "…가르톨."

 그때 같이 처음부터 다시 해보자는거냐. 그때처럼 다시 한 번 내가 너를, 다시 한 번 내가 너를 베어야만 하는거냐고. 하지만 이미 너는 그때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 더군다나 너의 상처는 그때보다 더욱 더 붉은 빛을 내면서 네 주위를 물들이고 있다고….

 "…."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거야, 그때처럼 그 눈빛으로 나를 한 번 제압해보라고. 그때처럼 다시 한 번 내게 화를 내며 덤벼보라니까!!

 "…하아."

 제발…. 제발 한 번만…. 나를 한 번만 더 돌아봐줄래…? 무척이나 날카롭게 쳐다보는 네 눈동자 뒤로 아련하게 느껴지는 너의 슬픔이 나를 말 없이 다가가게 만들었던 것처럼, 속으로는 나를 제발 도와달라는 슬픈 눈망울로 바라보는 너를, 나는 다시 한 번 또 한 번 구원해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가르톨….

 〃…미안해, 아인.〃

 겨우 다시 만나게 된 가르톨은 내가 알던 가르톨이 아니였다. 그는 이미 너무나도 참혹한 형태로 자리 잡힌 악마의 틀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작은 생명체가 같은 모습으로 가까스로 움직이는 고개를 내 쪽으로 움직이며 말했다.

 〃이젠…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되버렸어….〃

 씨익 웃으며 말하는 가르톨을 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다. 그저….

 "…."

 녀석에게서 뚝뚝 흘러내리는 피를 묵묵히 바라보며 깊은 슬픔을 숨기는게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아니, 이 이외엔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었다.

 "누가…."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한동안 달려서일까? 메말라버린 입술이 금방이라도 터져 붉은 핏방울이 맺혀 흐를 것만 같은 통증을 뒤로 한 채 나는 다시 한 번 입술을 떼어 녀석에게 말하였다.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든거냐…."

 그 대답에 가르톨은 미소를 거두며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라니, 네가 이 지경이 됬는데도 아무 것도 아니라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거야?!"

 〃난 괜찮아 아인.〃

 "넌 맨날 괜찮다고만 하지…. 더 이상 자기 몸을 갸눌 수 없는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억지로 미소까지 띄우며 말하는 꼴이라니…."

 〃아인….〃

 "…그런 녀석이 또 다시 사람을 공격하다니."

 〃아인, 그건.〃

 "아니, 아무 말도 하지마. 난 너의 변명을 들으려는게 아니야. 네가 겪은 그 사실을 알고 싶은거지 날 걱정한답시고 흘려 말하는 거짓말을 들으려는게 아니라고. 난 너를 이렇게 만든 놈을…."

 또 다시 막혀오는 말문에 또 한 번 입을 꾹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또 다시 가르톨은 슬픈 미소를 띄우며 나를 바라볼 뿐이였다.

 〃아인, 그때 기억나?〃

 "…."

 〃그때…〃

 "그만…."
 〃그때 네가 나한테 그랬잖아….〃

 "그만해…."

 〃꼭….〃

 "그만하라고!!"

 〃아리아를 지켜 달라고….〃

 …!

 〃나…. 매일 밤을 울며 지냈어. 아리아를 잃고 난 그 날로부터 하루도 빠짐 없이 말이야. 그런데도 내 눈에는 눈물이 멎는 날이 없더라…. 그 정도로 울었으면 눈물이 메마를 법도 한데, 어떻게 된게 눈물이 더 나오기만 하더라….〃

 가르톨은 웃었다. 그게 지난 날을 기억하며 떠오른 반가운 웃음인지, 그 날을 떠올리며 다시금 우울해지는 기분에서 느껴지는 웃음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녀석은 또 다른 누군가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 결심했어. 더 이상 나로 인해 슬퍼할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환하게 웃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아인은 결코 웃지 않았어. 아리아가 떠나고 나서부터 늘 아인은 혼자였거든…. 가끔 가다 웃는 얼굴을 하지만 그 웃음은 결코 기뻐서 웃는게 아니였어. 이렇게라도 흉내라도 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우울해질 것 같아서…. 그래서 아인은 그런 미소를 지었던거야…. 눈물을 흘리는게 너무 힘들어서, 눈물을 흘리다 그 눈물을 본 다른 이까지 우울해질까봐, 그것이 무서워서 아인은 그런 표정 밖에 지을 수 없던거야. 그리고…. 지금 나를 바라보는 아인의 표정도….〃

 "…."

 〃내가 만일…. 그때 아리아를 지켜줬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그랬다면 지금쯤 아인은….〃

 "그만해."

 …난, 얼만큼 더 그들의 아픔을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는걸까. 더 이상 그 누구도 아파하는걸 보고 싶지 않다. 나로 인해서든, 다른 누군가로 인해서든,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 다들 그렇게 슬퍼할 수 밖에 없는걸까? 하지만 않으면, 하지만 않으면 아무도 슬퍼할 필요 없어, 아파할 필요 없어. 그런데 그들은 멈추질 못해…. 왜지? 왤까? 왜 그들은 자신을 거역하지 못한 채, 그런 표정을 지으며 쓴 눈물을 흘리는걸까….

 〃아인…. 혹시 그때 내가 했던 말 기억나…?〃

 "…."

 〃아…. 너무 오래되서 기억이 않날 수도 있겠구나….〃

 가르톨의 말에 나는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이 이상 말을 꺼내면 말을 하기가 힘들어질 것만 같았다. 애써 욱씬거리는 입술을 꾹 다물며 한 쪽으로 흘러 내리는 머리카락으로 나의 얼굴을 가리며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만약…내가 또 한 번 사람들을 해치게 된다면…. 그땐 아인이 나를…."

 복잡한 감정이 자꾸만 나의 목구멍을 타고 바깥으로 뛰쳐 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이내 다시 가라앉음과 함께 이번엔 날카로운 무언가가 나의 심장을 꿰뚫고 나오며 말했다.

 〃죽여줘.〃

 난…. 그 대답에 아무런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내가 또 다시 인간을 해친다면 네가 날 죽이면 되는거다.〃

 "…."

 〃원래 네 녀석은 날 죽이기 위해 온거 아니였나? 그렇다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닐텐데.〃

 "난 널 죽이러 온게 아니라 대화를 하기 위해서 온거다. 애초에 너를 죽일 생각은 요만큼도 안했어."

 〃너는 괜찮을지 몰라도 다른 이들이 볼 때는 별로 달갑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렇기 때문에 이런 말을 남기는거다.〃

 피식 웃으며 말하는 녀석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하지만 또 한 번 내가 인간을 해칠지는 내 자신도 잘 모를 일이다. 물론 내 의지로 인간들을 해칠 리는 없을거다. 하지만 누군가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친다면 나는 또 다시 인간들을 해칠 수 밖에 없겠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건가?"

 〃그러나, 그런 일은 없을거다. 이번 일은 내가 자발적으로 행한 일이고 인간들에게 대한 안 좋은 감정 때문에 행한 일이였지만, 그 다른 이의 의지로 또 한 번 인간들을 해치게 된다면…. 그땐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네 녀석이 나를 죽여라. 내가 다른 이의 의지에 움직인다면 또 한 번 또 다른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을 리는 만무할테니…. 한 마디로 보증을 선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물론 우리 같은 경우엔 돈이 아닌 다른 것을 잃게 되겠지만….〃

 "…."

 〃하지만 걱정마, 그럴 일은 두 번 다신 없을테니까….〃


 「」


 두 번 다신 없을, 그 날의 기억이 또 다시 악몽으로 되살아나 가르톨의 목을 조여왔다. 괴로운 듯 켁켁거리는 가르톨을 도와줄 방법이 없는 나에겐 그 모습을 보는 것이 고통 그 자체였다.

 발버둥을 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목을 조이는 운명을 헤쳐 나올 수만 있다면, 가르톨이 이토록 힘들어하지 않아도 될텐데…. 지금의 가르톨로썬, 그러는 것이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아인…. 약속했잖아…. 내가 다시 누군가를 해친다면…. 그땐 네가 나를 죽여주기로…. 우리 그때 서로…. 약속한거 아니였어…?〃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가르톨의 시선을 그대로 마주칠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두 눈에선 붉은 눈물이 흘러 내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녀석의 시선을 피하면 피할 수록, 점점 더 내 앞으로 다가오는 녀석의 슬픈 목소리에 자꾸만 나의 시선은 녀석을 향해 움직였다.

 〃아인….〃

 내 왼 손에 들린 검을 향해 녀석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부탁할게.〃

 "…."

 「 툭 」

 "난…. 할 수 없어…. 어찌…어찌하여 내 손으로 내 친구를 죽이란 말이야…. 그 말은 즉, 내 손으로 아리아를 베는 것과 똑같은거잖아…. 내 손으로…. 수 많은 적들의 피로 물든 이 검으로…. 내 친구를…. 베라는 말이냐…? 그 말이 얼마나 내게…. 얼마나 큰 슬픔을 주는지…. 모르겠어…?"

 〃…아인.〃

 "미안하지만, 너와 한 약속 지킬 수 없겠다."

 〃아인…?〃

 "어처피 너도 나와 한 약속을 어겼으니까, 나도 너와 한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잖아?"

 〃…아인.〃

 "그러니까, 나도…. 약속을 어긴다고…. 우린 이미 서로의 믿음이 깨진 관계란걸…."

 난 그대로 뒤를 돌아 앞으로 걸어갔다. 어느센가 하늘 위에서 쏟아지는 빗물이 눈물에 섞여, 내 볼에 흐르는 것이 눈물인지 비인지도 모르는 지금, 하염 없이 나의 이름을 부르며 서서히 옅어져만 가는 녀석의 목소리에 나는 두 입술을 꽉 깨물며 앞으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뒤돌아보는 순간, 내 눈가에 가득 차 있는 이 슬픔이…. 언제 톡하고 터질지도 모르는데…. 나는 애써 이 상황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서서히 빗 속에 잠겨 가르톨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의 슬픔 또한 흘러 내렸다. 두 번씩이나 친구를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던 나의 무능력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는 오늘의 하늘은, 그런 나에게 벌이라도 내리는지 울퉁불퉁한 빗방울이 내 주위에만 내리는 것만 같이 매섭게 나에게 쏟아졌다.

 "…."

 자리에 주저 앉아 멍하니 땅바닥만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황급히 가르톨이 있던 곳을 향해 되돌아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가르톨을 구할 수 있다. 잠시나마 회피했던 가르톨을, 내 손으로 구원해줄 수 있다. 비록 서로의 믿음이 깨져 이젠 서로 가진 것도 없는 이 상황에서 나는 더 이상 잃은 것도 없었다. 아니, 아마도 녀석이 있다면 나의 슬픔은 더욱 배가 될지도 모르지.

 "가르톨!!"

 빗 속을 헤치며 허공을 향해 가르톨을 불렀다. 하지만 소리 없는 메아리만이 내 귀에 다시 들어올 뿐, 가르톨의 목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가르톨!!"

 이젠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흘러 나올 자리에는 빗물이 고였고, 그 빗물이 나의 두 뺨으로 흘러 내려 눈물을 대신하고 있었다.

 "가르톨…!!"

 얼마 지나지 않아 거칠게 내리붓던 비가 점차 그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장막에 가려 보이지 않던 가르톨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황급히 가르톨을 향해 달려 가려 했지만 이내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가르톨 앞으로 다가갔다.

 "…가르톨."

 녀석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그리고 나를 향해 웃어주지도 않았다. 언제나 레오스 숲을 통째로 날려버릴만한 굉음을 내며 내게 다가오던 가르톨이 아무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잠깐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잠이 든걸까? 하긴 그리 심한 상처를 입었는데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건 괴물이겠지…. 하지만 가르톨은 아니다. 가르톨은…. 가르톨은 괴물 따위가 아니라고….

 평온한 미소를 짓는 가르톨의 모습에 괜시리 설움이 북 받쳐 흘렀다. 이제 흘릴 눈물은 다 흘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더 나올 눈물이 있는 모양이다.

 "…."

 가르톨, 너는 아마 기억을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지금도 그 약속을 잊은 적이 하루도 없다. 되려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기를 바라며 하루를 지샌 적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이란 단어가 없듯이 이렇게 내가 너에게 이 말을 하는 날이 온 것 같구나….

 "…그 날, 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지. 다시는 사람을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 하나와, 만일 네가 또 다시 사람을 해친다면 그땐 날 죽여달라는 약속 하나를 했지. 하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라 또 하나, 내가 너에게 한 약속이 하나 있었다."

 물론, 네 녀석은 네 스스로가 받아 들겠다고 했었지만 너도 모르게 자신이 매우 힘든 처지에 놓여 있다는걸 알게 되었지. 하지만 너는 내게 걱정을 끼치는게 싫어서 아무 말하지 않고 있었을 뿐, 이미 나는 너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가르톨.

 "비록…. 한 가지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되었지만, 이젠 두 번 다신 악몽을 꾸지 못할거야. 너를 궁지로 몰아 넣었던 너의 운명을, 네가 내게 말했던 것처럼 네 스스로가 만든 것처럼….

 그리고 앞으로의 너의 꿈 속엔, 아마도 아리아가 함께 있을지도 모르지, 우리들이 함께 웃던 그때처럼….


 P.s : 제 4화 '엉킨 실타래' 종료. 즐감하세요~!

Who's 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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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탓하지마라.

시간을 흘려보낸건 나 자신이다.

시간은 주어진게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연히 나라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그 시간의 흐름에 어떻게 따라가느냐의 내가 증명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증명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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