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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1 08:02

망각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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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쇄 기억> - 1 -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바라보니 벌써 사흘이란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멈췄다고 느꼈는데 시간은 나와는 전혀 개의치않게 흘러가고 있었고, 두 번의 새벽 뒤 찾아오는 붉은 밤이 시간이 흐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동안 집을 비운 나를 베르에트는 뭐라 뭐라 짜증 섞인 말투로 잔소리로 하지만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내내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공허함 때문에 나의 인생까지 공허해진건 아닐까하는 의문조차도 품지 않을 정도로 지금의 나는 너무나 초췌해져 있다. 아직까지도 나의 검엔 지난 날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붉은 빛을 띈 채 내 곁을 맴돌고 있었고, 그 기억의 잔해들이 조금씩 바닥에 떨어져 나의 발걸음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곤 나는 그저 퀭한 한숨만을 내쉴 뿐이였다.

 피식 웃음을 지었지만 그 뒤에 느껴지는 잔혹한 맛은 전혀 달갑지 않았다. 차갑게 느껴지는 식은 기억 뒤로 나는 매일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하루를 지샌다. 나의 책임, 그 누군가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나의 뒷통수를 후려 갈기는 통증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 옛날 불어오던 산들바람마냥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렇게 사라졌다. 그리고 그 뒤로 뒤늦게 불어오는 숨결만이 나의 대답에 응답을 할 뿐이였다.

 미쳐 날뛰는 그 날의 기억 때문에 하루하루가 고달프기만 하다. 밥을 먹는 것 같지도 않고 먹는다고 해도 그때 뿐,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목구멍 뒤로 모습을 감추는 음식들이 나의 아픔을 대변하는 듯이 커다란 응어리를 만들며 사라진다. 눈가에 맺힌 것이 눈물인지 아님 내가 삼킨 응어리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 벌컥 」

 이 아픔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오늘로 끝이 날 것인지 아니면 내일, 모래, 1년이 지나도 내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인지. 그 기한을 알면서 보낸다하더라도 내 마음은 아프기만 할 것 같다.

 "아인."

 바닥에 쪼그려 앉아 멍하니 창 밖만을 바라보는 나를 보며 베르에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뭔가를 건네줬다.

 "뭐야?"

 "일단 받아."

 빨간색을 띄는 봉투 하나를 내게 건네주며 베르에트는 입고 있던 망토를 벗으며 내 옆에 앉았다. 베르에트에게 건네 받은 편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나는 조심스럽게 봉투 안에 든 편지를 꺼내보았다.

 "누가 보낸거야?"

 "주군께서."

 "뭐?"

 나는 살짝 놀란 얼굴로 베르에트를 쳐다봤다. 

 "왜 이렇게 놀래?"

 베르에트는 당황해하는 나를 보며 이상하다는 눈을 하며 내게 말했다.

 "사흘 전에 주군께서 직접 전해 주고 간 편지야."

 "…사흘 전이라고?"

 "네가 없어서 내가 대신 받긴 했는데 꽤나 심각해보이더라."

 …사흘 전.

 "아인?"

 사흘 전이라면…. 그때….

 "아인!"

 "…."

 "너 왜 그래?"

 "…주군께서 날 보자고 했어?"

 "그런 말은 없었고, 그냥 네가 편지를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하시던데?"

 "…."

 "그런데 진짜 너 왜 그래? 그 날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 밖으로 나섰다. 지난 날 내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베르에트의 말을 싹 다 씹어 삼키며 주군을 찾아갔다. 마치 내가 이곳에 올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평소와 같았으면 근처 주점에서 술을 퍼마시고 있을 주군이 의자에 앉아 거만한 추태를 보이며 나를 바라봤다.

 "무슨 일인가 아인 경? 이런 이른 아침부터 나를 찾아오고."

 "주군께서 보낸 편지에 대한 출처를 묻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건 내가 베르에트에게 말하지 않았었나? 자네가 편지를 보게 되면 저절로 알게 될거라고 내가 베르에트에게 말했었는데…."

 살짝 당황한 듯 머리를 긁적이는 주군을 보며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물론 편지는 봤습니다. 다만 그 편지에 대해 묻기 전에 이 대답부터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뭐지?"

 껄끄러운 듯 흩어지는 작은 모래알이 내 목구멍에 담긴 듯 씁쓸하다. 삼키려고 하지만 삼킬 수록 더욱 더 잘개 부서지는 모개알 때문에 입 안이 텁텁하다. 물로 입을 헹구고 싶어도 그 물이 닿는 곳엔 모래알은 닿지 않는다. 더욱 더 밀려 들어가 서서히 나의 목구멍 안에 작은 공간을 만들 뿐, 그렇게 나의 입 밖으로 쓸쓸한 한숨만이 헤어져 나왔다.

 "주군이, 어떻게 베르에트의 이름을 알고 계신겁니까?"

 "뭐?"

 그 물음에 주군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성을 찾고 그는 너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찌 주군이란 자가 백성의 이름을 모를 수가 있나?"

 그 말이 왜 그렇게 의혹스럽게 느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말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긴 것도 같았다. 그러나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직 확실한건 아니니까, 그저 신경이 예민해진 내가 섣부른 판단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말을 멈춘 것 뿐, 그의 의혹은 조금씩 커지고만 있는 것 같았다.

 "…그렇습니까."

 "왜 그러지? 무슨 일이 있었던건가?"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내게 다 털어놓게. 우린 가족 아닌가? 왕과 백성에 직위를 떠나서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진정한 애국인! 난 그래서 아인이 참 좋다네."

 실실 웃는 주군을 보며 나는 살짝 어둡게 잠긴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알고 싶지 않던 진실들이 하나 둘 내 앞에 나타나는 듯이 갑갑한 시야에 도저히 이곳에 더 머무를 수 만은 없었다.

 「 덜컥 」

 베르에트는 집에 있었다. 낡은 나무 판자 위에 나와 같이 먹을 콘스프를 준비한 채 밝은 미소를 띄며 걸어 들어오는 나를 반기며 말이다.

 "주군께서 뭐라셔?"

 "베르에트."

 "응?"

 이상하게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말하고 싶은건 이건데, 내가 말해야하는 문제이기도 하는데, 이상하게도 나오지 않았다. 왤까? 라는 의문점을 품기도 전에 사라지는 의심. 역시 아직은 너무나 이른 판단일까. 그렇지만 이대로 넘어가기에도 껄끄러운건 매 한가지. 이래 저래 입 안에 있는 모래알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렇다면.

 "베르에트."

 "자꾸 왜 그래? 나한테 할 말이 있으면 말해."

 "너, 주군을 봤어?"

 "어?"

 너가 말할 수 있도록 내 스스로가 입을 열어주는 수 밖에 없다.

 "주군을 봤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네게 편지를 줬다는 그 주군을, 그 주군의 얼굴을 봤냐고 묻는거야."

 "아인…. 너 왜 그래? 진짜 무슨 일 있는거야?!"

 베르에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가 물으면 물을 수록 나한테 왜 그러냐는 둥, 무슨 일이 있었냐는 둥, 동문서답을 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아니, 회피하려고 하는 기분도 들었다.

 "아인, 정말 왜 이래? 너까지 이러면 나보고 어떡하라는거야!"

 "…."

 "너까지 이렇게 되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버텨나가냔 말이야…."

 "…."

 베르에트는 자리에 털썩 주저 앉은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로 인해 그을린 자국으로 반짝이는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며 자기 앞에 놓인 콘스프를 말 없이 한숨으로 지워내고 있었다. 그런 베르에트를 보며 나는 또 다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날, 베르에트가 전장을 가겠다며 내게 말했던 그때처럼, 우린 또 다시 침묵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 끼익 」

 의심스러운 발걸음이 집 밖으로 나서자 이젠 다신 볼 수 없을 푸른 하늘이 점차 붉게 흩날리기 시작했다. 가볍게 웃어 넘기며 들썩이는 어깨가 오늘따라 무거워지는건 기분 탓일까? 아마 기분 탓이라고 보기에는 조금은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허탈한 미소만을 지닌 채 나는 거리를 걸어갔다.

 거리 위로 보이는 푸르른 들판, 그 들판 뒤로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아리아의 모습. 이 기억들이 자꾸만 충돌하여 나의 이성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주군과 베르에트에게 보였는지, 그런 기억들로 인해 혼잡해진 내 기억을 바로 잡을 무언가가 필요했던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의문과 흑막들, 이젠 지쳐만 가는 나의 육신과 마음으로 인해 피폐해진 세상이 조금씩 묽게만 느껴진다.

 「 띠링 」

 웬만해선 절대 찾아가지 않는 이곳에 스스로 당도하다니, 그만큼 내가 혼란스럽다는 증거인가? 허나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그것 말고도 많다. 녀석이라면 이 상황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하여 내게 말해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녀석을 찾아온거다. 하지만 내 목적 이외에 말을 꺼낼 시에는 가차없이 베어 버릴거라는 다짐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축축하면서도 휑한 공기가 자꾸만 내 코를 간질인다. 재채기가 나올 듯 말 듯 나의 코를 자극하며 서서히 깊숙이 들어갈 수록 내 시야는 점점 불투명하게 번져만 간다. 명색이 사람들 상대하는 일을 하는 녀석이 이런 곳에서 사람을 어떻게 대한다는거지? 소문으로 들어서만 알았지 이렇게 음침한 곳인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체 뭐가 좋다고 이런 곳에 오는건지….

 「 툭 」

 무언가가 발 끝에 닿았다. 딱딱하면서도 물컹한 듯한 촉감의 물체의 등장에 살짝 놀란 듯 움츠러든 어깨를 다시금 느슨하게 펴며 나는 발 밑을 보았다.

 "…."

 동그란 형태의 물체는 흔들거리며 움직였고,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보이는 누군가의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나의 시선과 맞닿자, 씨익 웃으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어깨에 내려앉은 시뿌연 먼지를 툭툭 털며 나를 쳐다본다. 

 "여~"

 "…."

 "뭐야, 오랜만에 봤는데 그 시큰둥한 반응은?"

 "할 말이 있다."

 "이야기는 나중으로 하고 일단은 들어와. 여긴 청소를 안한지 꽤 되서 지저분하니까."

 "…."

 공기마저도 먼지로 뒤덮힌 듯한 탁함이 조금씩 나의 코를 시큰하게 만들며 피로에 빠지게 한다. 원래부터 지저분하기로 한 손가락에 들만큼 더러움의 최강자로 불리는 이곳에서 과연 깨끗한 곳은 존재할까?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먼지의 크기도 조금씩 두꺼워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이곳은 너무나도 더럽다.

 하지만 이 더러움보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그걸 알기 위해 찾아온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전에도 그랬듯이 나 혼자만의 힘으론 아무 것도 못하는 철부지 꼬마애처럼, 또 다시 반복되는 그 고통의 파편들이 이번에는 나를 향해 날아오는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걸 피하기 위해 남을 이용하여 가까스로 피한다고한들, 그게 또 다시 나를 향해 날아온다는 사실을 망각한 나는 결코 피할 수 없을지도….

 "들어와."

 어두컴컴한 복도를 따라 걷다가 발견한 낡은 문 하나. 그리고 그 문 틈 사이로 빠져나오는 희미한 빛이 조금씩 내 앞에 나타나자 알 수 없는 몽롱함과 함께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에 대한 혼란을 안고서 나는 천천히 그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P.s : 즐감하세요.

Who's 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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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탓하지마라.

시간을 흘려보낸건 나 자신이다.

시간은 주어진게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연히 나라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그 시간의 흐름에 어떻게 따라가느냐의 내가 증명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증명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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