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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1 08:03

망각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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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쇄 기억> - 2 -

 탁한 먼지의 향이 진하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한 적막감과 고요히 일그러지는 공기의 모습에서 낯설지 않음을 느꼈다. 바닥에서 무언가를 집는 행동을 취하며 시뿌연 먼지가 내려 앉은 소파를 손으로 탁탁 털며 이쪽에 앉으라는 듯한 손짓을 하며 녀석은 왼쪽에 배치된 책장 쪽으로 시야를 돌린다. 앉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서 있기도 애매한 나는 그저 멋쩍은 눈빛을 띄며 조용히 녀석을 향해 시선을 움직였다.
 "여긴 어디지?"
 내 물음에 책장에 기웃거리던 녀석이 내 쪽으로 고개를 틀며 말했다.
 "그게 궁금해?"
 싱긋 웃으며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아니.' 라는 대답을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녀석의 집을 찾아온건 실로 1년만인가? 아님 그것보다 더 적은 시간 내에 다시 찾아온걸까. 물론 그때 이후론 이곳을 찾아오는 일도, 아니 찾아온다는 생각조차 못했고 녀석의 존재 또한 오늘에서야 다시금 상기 했으니, 어찌보면 녀석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나에겐 망각하고 싶은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물론 어찌보면 이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이곳을 찾아온거지만…. 다만 그 진실을 찾기 위해선 내가 알고 있는 사실 이외에도 내가 모르는 것들이 밝혀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두려움 때문에 조금 망설였을 뿐이다. 녀석은 계속해서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으며 나와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을텐데, 녀석은 이곳에 들어온 이후부터 내게 말을 걸긴 커녕, 무언가를 찾는 듯한 바쁜 눈초리로 책을 읽어내려갔다.
 한참이란 시간이 지나 조금은 지루함이 느껴질 무렵, 수십 권에 달하는 책을 읽던 녀석의 손이 멈췄다. 책을 덮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먼지가 하늘로 붕 뜨다 이내 바닥으로 가라 앉는다. 언제 안경을 주워 꼈는지, 잠시 반짝이던 안경을 벗으며 그는 먼지 쌓인 서랍장 위로 안경을 내려 놓으며 내 쪽을 향해 걸어온다. 그리고는 '오래 기달렸지?' 라는 능글맞은 목소리로 내게 말하며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책 한 권을 내게 건네며 자신 또한 옆에 놓인 오래된 의자 위에 앉는다.
 "자, 그럼 이제부터 너가 왜 나를 찾아왔는지에 대해 물어보도록 할까?"
 이제부터 뭔가를 해보겠다는 식의 말투로 말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아무 말 없이 그가 건네준 책을 녀석의 면전에 갖다대며 '이게 뭐냐.' 라고 묻자, 그는 자기 눈 앞에 펼쳐진 책을 왼 손으로 걷어내며 내게 말했다.
 "요즘 내가 읽는 책인데 너무 재밌어서 너도 한 번 읽어보라고. 왜? 그런 쪽은 너와 안 맞을라나?"
 "…장난은 그만해라."
 "난 장난 아닌데…."
 "…."
 이런 녀석을 조력자 삼아 찾아온건 내 불찰이였을까. 그래도 이 녀석 밖에 이 사건에 대한걸 아는 녀석은 없으니 그래도 조금이나마 믿고서 찾아온거였는데…. 이 녀석 머릿 속엔 이런 단순한 생각 밖에 들어 있지 않는걸까. 아님 이미 오래 전에 그 일들을 잊어버린 채로 수 일을 살아온걸까. 뭐 잊어버렸다해도 이 녀석은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니까 별 문제 될건 없다. 아니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교차하니 참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만 가볼게."
 "벌써? 아니 온지 얼마나 됬다고…."
 "내 볼 일은 끝났어."
 "아니 이런 이기적인 녀석! 나한테 무슨 할 말 있어서 온거 아니야?"
 "할 말 없어. 잘 있어라."
 녀석이 내게 말을 꺼낼 틈도 없이 나는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애꿎은 시간을 녀석에게 허비하기도 아까운 뿐더러, 그곳에서 오래 있다간 머리가 멍해질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리고 이미 녀석은 그 기억을 오래 전에 잊어버린 듯 싶으니, 이 일은 나 혼자서 해결할 수 밖에 없다.
 "…."
 너무 허둥지둥 나와서 미처 책을 두고 온다는걸 깜빡했다. 그렇다고 이 책을 주기 위해 저렇게 꺼림칙한 곳을 또 다시 들어가기도 싫다. 중요한 책이라면 녀석이 날 찾아올테니 일단은 이 책은 가지고 가야겠다. 그런데, 녀석이 왜 뜬금없이 내게 책을 권한거지? 정말로 아무 뜻도 없이 너무 재밌어서 그런가?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닌 그 녀석이라면 당연할걸지도 모르지.
 「 툭 」
 뭔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고, 흙먼지가 흩날리는 바닥 위로 낡은 종이 한 장이 이쁘장한 모습으로 떨어져 있었다. 아마도 책 안에 꽂혀 있던 종이가 떨어진걸로 보이는데 뭘까? 혹시…러브레터?!
 …는 말도 안되는 소리, 만약 사실이라고 해도 이렇게 아무데나 방치해둘…리는 있다. 상대가 녀석이니까. 그렇다고해서 이렇게 방치된 러브레터를 아무렇지 않게 보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지, 뭣보다 중요한건 내가 보기 싫다.
 바닥에 떨어진 편지를 다시금 책장 어느 한 부분에 껴놓고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슬슬 겨울이 다가온 듯,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에서 여인의 흐느낌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리고 조금씩 내 기억 속의 파편들이 차갑게 얼어 붙는 듯한 날카로움 또한 날이 갈수록 매섭게 변하는 듯한 따끔거림이 가끔씩 나의 가슴을 쿡쿡 찌르며 흩날린다.
 「 끼익 」
 쌀쌀한 바람을 문으로 가로 막으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베르에트는 방금 전에 집을 나간 듯, 홀연히 모습을 감추며 텅 빈 집 안을 연출했다. 아까 전에 그 마찰로 인해 베르에트 또한 심리적으로 혼란스러웠음을 염려하니 조금은 미안한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나 혼자만의 문제였다면 이렇게 복잡할…리는 있었을까. 후우…. 잘 모르겠다. 그냥 휑한 느낌 뿐이다.
 기억해야할게 너무나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그 모습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는데에 걸리는 시간만해도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그 시간을 정리하기 위해선 무언가가 필요한데,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선 또 다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줄 녀석들은 그 어디에도 없다. 있다하더라도 잊거나 아님 숨기거나하는 문제의 갈림길에 서서 자신들의 양심을 걸 뿐, 아니 양심을 걸 필요도 없이 그저 망각할 뿐이다. 잊고 싶으면 잊을 수 있다는 옛날의 모토와는 달리, 잊으려면 그 기억을 잊기 위해 계속해서 그 기억을 기억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기억을 흐트리기 위해선 그 기억의 전체적인 모습을 상기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결말은 그 기억을 잊거나, 아님 그 사실을 왜곡하거나, 이 둘 중 하나의 결말로 남을 수 밖에 없다. 그 중 몇 명은 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고, 그 중 한 명은 이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여기까지만해도 나를 도울 사람은 그 어느 하나도 없다는걸 나는 알고 있다.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지만 그 가능성 또한 불투명한 색의 불과했다. 이젠 그 누구도 이 일에 대해 내게 조언하거나 힘을 줄 인물은 그 어디에도 없다. 아무리 찾아 헤맨다한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더불어 이 일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 또한 그들을 제외하곤 그 아무도….
 "!"
 있을지도 모르겠다.

 「」

 「 똑 똑 」
 정말로 오랜만에 찾아본다. 내가 두드른 이 문도, 이 주변거리도 오래 전 내가 봤던 그 모습 그대로다. 그 일 이후로 변하지 않은 곳이 있다면 바로 이곳을 말하는걸지도 모르겠다. 그것보다 더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건, 아마도 이 집에서 새어나오는 익숙한 향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누구세요?"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아…아인?!"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지?"
 "너…너…."
 말을 잇지 못하며 휘둥그레진 눈으로 한동안 나를 바라보던 크리스탈은 이내 눈물을 흘리며 내 품에 안겼다. 누가보면 수십 년만에 처음 보는 이산가족 상봉인줄 알겠다. 물론 그에 못지 않도록 오랜 시간동안 보지 못한 상황이지만….
 "도대체 이게 몇 년만이야? 왜 지금에서야 나타난거야?!"
 "미안,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일단 안으로 들어와, 날이 많이 춥다."
 "그런데…어머니는?"
 "…어머닌."
 "…."
 오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오늘이 바로 그 날인건가. 바람 잘 날 없던 나날이였지만, 오늘따라 바람이 더욱 매섭게 불어오는건 내가 옷을 얇게 입고 와서 그런거라고 믿고 싶은 날이였다. 푸르른 등불 밑으로 바알갛게 달아오른 심지가 위태로운 자태를 뽐내며 흔들리는 것 또한, 이 날의 악몽이 되살아나는걸 방지하고자 하는 누군가의 모습이였을까? 문이 닫히는 그 시점에서도 나의 불안함은 자꾸만 더 커져만 갔다.

 『』

 오늘도 바람에서 피비린내가 난다. 언제쯤 이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 내 실력으로는 전장에 나가봤자 개죽음은만 당할테지, 난 절대로 전장에서 죽을 생각은 없다. 죽였으면 죽였지 절대 죽임을 당하진 않을거다. 물론 내 실력이라면 적군 5명 이상은 베어낼 자신은 있지만 싸울 상대는 그의 몇천 배는 달하는 상대이니 섣불리 대항할 순 없겠지. 물론 내 검솜씨를 본 동네 어른들도 감탄을 하니 어찌보면 이대로 전장에 지원하는 것도 나라를 위해서 한 몫하는거겠지?
 "좋아! 이 기세를 힘 입어!"
 「 딱 」
 "또 그놈의 전장 타령이야?"
 울타리 너머로 나타난 금발머리의 한 소녀가 나의 뒷통수를 울트라적인 파워를 가진 작디 작은 고사리 손으로 꿀밤을 내리 찍어서야 나는 녀석의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울타리에 걸쳐 앉아 피리 부는 소년마냥 갈대를 입에 물고 있던 나에겐 꽤나 충격적인 장면이 연출되어서 조금은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였다.
 "아오…. 왜 꿀밤을 때리고 난리야?!"
 "내가 그랬지? 또 한 번 전장에 '전' 자만 꺼내지 말라고! 그 전장인지 뭔지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실을 잊은거야?!"
 내가 전장이란 말을 내뱉은 적이 없는데 왜 남의 속마음까지 읽어서 나의 뒷통수에 크나큰 영광의 치욕스러움을 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평소에는 얌전하디 얌전한 요조숙녀 크리스탈께서 이런 행동을 보일 때마다 나는 약간 겁이 난다.
 "그런걸 잊을리가 없잖아…."
 안으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를 하자 크리스탈을 더욱 더 불 같은 성깔머리로 내게 밀어 붙이며 소릴 질렀다.
 "그런데 왜 그렇게 집착하는건데?"
 "그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크리스탈을 알고 있다. 내가 왜 그토록 전장에 매달리는지를, 대신 먼저 입 밖으로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 나를 기다리며 자신도 그 진실을 외면할 뿐, 아마도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내가 왜 이러는지 알고 있을거다. 그 중에서도 특히 크리스탈은….
 아버지가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것, 목숨을 잃게 만든건 다름 아닌 우리들이란걸, 아버지는 우리들을 지키기 위해 살육이 난발하는 전장 위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밤 아버지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전장터에서 잘게 잘려 나갔다. 
 "…그만 와서 밥 먹어, 어머니가 기다리셔."
 "응."
 잠시 말이 없던 나와 크리스탈은 조용히 집으로 향했다. 어찌보면 모든 근원이 여기서부터 시작된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뇌리를 스치는건 기분 탓일까? 왠지 이 일로 인해 앞으로의 내 인생이 조금은 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내 심장을 움켜진다.

 「」

 「 끼익 」
 "이제 오니?"
 집 안에서 울리는 포근하면서도 애뜻한 목소리에 차갑게 얼어 붙어 있던 심장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곧 조용해지고 등불에 일렁이는 촛불에 가려진 공허함으로 가득찬 집 안, 나와 크리스탈, 그 이외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집엔 너 뿐이야?"
 혼자 살기엔 딱 좋은 환경이 집 안에 노출되어 있으니 나는 조금 의심스러움과 걱정스러운이 반 정도 섞인 눈으로 크리스탈에게 물었다.
 "응."
 그러자 크리스탈은 슬픈 미소를 띄며 대답했다.
 "아르카와 횰은?"
 "떠났어, 아마도 3년 정도 됬나? 1년 전까지만해도 연락이 잘 왔는데 어느 순간 뜸해지더니 이젠 연락 한 통 보기 힘들어."
 녀석들도 나처럼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났던건가? 물론 녀석들이라면 나보다 훨씬 전에 이 집을 떠났어야 정상이지만 놈들은 나보다 몸만 컸지, 두뇌 회전속도라든지 검 다루는 실력이라든지, 독립정신이라던지 나보다 훨씬 밑바닥을 깔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1년 전부터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건….
 "어머니는? 어머니는 어디 계시지?"
 "…."
 크리스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르카와 횰이라면 내가 온 즉시 어머니에게 달려와 나의 복귀를 알렸을거다. 그렇지만 아무리 부끄러움이 많고 내성적인 크리스탈도 내가 오랜만에 왔다는걸 보고 가만히 있을 리는 없으니까. 그런데도 크리스탈은 아직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혹시 말도 없이 떠난 나를 크리스탈은 원망하고 있는걸까? 하지만 그때 마지막으로 크리스탈이 내게 한 말 때문에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더군다나 크리스탈은 누굴 원망하거나하는 성격이 아니고,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탓이라며 자기비하를 했을 정도니까.
 "…."
 하지만 이상하다. 방금 전까진 몰랐는데 전에 본 크리스탈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였다. 항상 찰랑거리던 금발머리가 짧게 잘려 있었고, 온 몸 구석구석에 멍으로 보이는 보란 빛깔의 상처가 내 시야에 들어오자 왠지 모를 두근거림이 내 몸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보니 집 안도 내가 떠나기 전 그때의 집 안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크리스탈,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이 멍자국은 뭐고, 집이 왜 이 꼴이냐고?"
 "…아인."
 "어떻게 된거냐니까?!"
 "…도와줘, 아인."
 "!"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냐…. 내가 없던 그 10년의 세월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 끼익 」

 P.s : 즐감하세요.

Who's 아인

profile

시간을 탓하지마라.

시간을 흘려보낸건 나 자신이다.

시간은 주어진게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연히 나라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그 시간의 흐름에 어떻게 따라가느냐의 내가 증명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증명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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